절로 간 흑염소
황태영
프라이드는 어느새 태안읍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직행버스 정류장을 지나자 편도 일차선 도로가에 승용차들과 일톤 봉고트럭들이 무질서하게 마구 주차되어 있었다. 그때문에 차도가 좁아져서 주차된 차들과 접촉사고를 내지않으려 하다보면 중앙선을 살짝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아직 운전 경력이 육 개월 밖에 안된 초보운전자여서 이런 길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듯 봉고트럭에서 물건을 내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고, 리어카에 수박을 잔뜩 실고 " 오천원 ! 오천원!" 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장사꾼도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자 아낙네가 신경질적으로 대야의 물을 자신의 가게 앞에 휙 뿌려댔다. 그 바람에 가게 옆에 묶여 있던 흑염소들이 화들짝 놀라서 합창하듯이 일제히 메에 메에 애처롭게 울어대었다. 흑염소 보양탕집 주인 곽씨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흑염소가 들어있는 찜통 안에 십전대보탕을 넣고 있을까. 아니면 개소주가 될 운명에 처해 있는 누렁이의 개껍질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벗겨낸 후 내장을 송두리채 빼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자신의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면 가게 안으로 우악스럽게 끌고 들어가서 진맥을 짚어보았다. 그리고는 허허, 진이 다 빠졌군, 이러다간 조만간 초상치겠는걸, 흑염소 한 마리만 잡숴 보슈 금방 원기를 되찾을 수 있을 테니, 하며 내 건강을 걱정해주곤 했다. 어쩌면, 그때 그는 내 건강보다는 자신의 빈 호주머니를 더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흑염소 예찬론자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흑염소야말로 만병통치약이었다. 허리 디스크는 물론이요 심지어 우울증 같은 정신 계통의 병에까지도 효험이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흑염소에 관한한 놀라울 정도로 박식했다.
- 몽고의 한가이 (Hangai) 산맥에 중국종(種) 염소, 흔히 말하는 몽고양(蒙古羊)이 서식하고 있어요. 털 색은 흰색이 많으나, 갈색이나 흑색 털을 가진 염소도 있습니다. 염소는 워낙 대식가이어서 마리 수가 천문학적으로 많아지다 보면 먹이가 부족해지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 다다르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먹이가 풍부한 새로운 숲을 찾기 위해 다른 산악지형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어요. 이 몽고양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중국의 타 힌간 링 (Ta Hingan Ling) 산맥을 넘어 태백산맥에 정착한 것이 한국 야생염소가 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한국 야생염소와 같은 뿌리를 가진 일부 야생염소는 타 힌간 링 산맥에서 한반도로 넘어가는 기나긴 염소 대열에서 이탈했어요. 그리하여 러시아로 향했지요. 블라디보스톡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호테 알린 (Sikhote Alin) 산맥으로 발굽을 돌린 겁니다. 현재 거기 해발 천 팔백 미터 이상의 높은 봉우리에 그 후손이 되는 염소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국 야생염소는 향로봉, 설악산, 백두산의 높은 봉우리에 일부 서식하고 있어요. 이 야생염소를 길들인 게 바로 산삼뿌리보다 좋다는 재래종 흑염솝니다. 그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갑자기 새벽의 짙은 안개 속에서 산악을 넘는 야생염소들의 기나긴 대열이 눈앞에 환각처럼 떠올랐었다. 가파른 비탈을 씩씩거리며 올라가는 야생염소들의 따각거리는 발굽소리도 환청처럼 들렸었다. 갑자기 끼익, 급정거하는 소리를 날카롭게 내지르며 앞차가 정지했다. 잠시후, 똥개 한마리가 오줌을 질질 싸면서 미친 듯이 튀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만약 내 프라이드 앞에서 저런 상황이 발생했더라면 똥개 한 마리를 그대로 치었으리라는 불길한 생각을 하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계속 달리면 서산시가 나오고 더 달리면 상왕산 정상에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일정 관계로 이번에는 태안과 서산 시의 중간쯤에서 부석면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어 부석사를 찾아볼 작정이다. 어제 아침 연포로 가기 위해 서산시를 통과하여 태안으로 향해 오면서, 도중에 부석사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부석면으로 빠지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삼거리에서 한번 더 확인을 해 볼 생각이었다. 지방국도를 달린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정확하게 지도대로 차를 몰고가고 있는지 썩 자신이 없었으니까. 어제 낮에는 즉석 미역국 스프로 국을 만들어 대충 점심식사를 마친 후, 전국지도를 펼쳐들고 부석사로 가는 길을 묻는 나에게 모텔 관리인 박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석사를 찾는 손님이 있었다면 자기가 알아뒀을텐데 지금껏 그런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했다. 휴양소 안의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않는 부석사에 나는 왜 이토록 매달리고 있는가. 부석사는 절망에 빠진 내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부석사에 가서 무량수전을 보기만 하면 기적처럼 새로운 삶의 의욕이 용솟음치리라는 나의 기대는 어쩌면 무모한 것은 아닐까. 부석사 무량수전은 수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고려 현종 7년(1016)에 원융국사가 무량수전을 중창했다 하니 구백년 이상된 건물이 아닌가. 전란이 많았던 이 땅에 본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거니와, 배흘림기둥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 기둥이 동일한 굵기가 아니라 가운데가 조금 부풀어서 팽창감을 주고 윗부분은 좁아진 기둥이 바로 배흘림기둥이다. 이런 양식을 쓴 이유는 기둥이 지붕에 짓눌려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고 힘 안 들이고 지붕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십여년 전부터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속의 부석사 무량수전 사진을 보며 언젠가 한번은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겨우 칠십 살도 살기 힘든 인간과는 달리, 끈질긴 생명력으로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묵묵히 견뎌온 무량수전의 강인한 모습을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량수전이 들려주는 소리없는 지난 세월 이야기를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적극적이지 못하고 멀리서 속 태우며 바라보고만 있게 되듯이, 다른 곳은 쉽게 가서 보았으면서도 정작 늘상 찾아보고 싶었던 무량수전은 마음과는 달리 찾아가보기를 자꾸 미루어 왔었다. 나는 이제 그토록 마지막까지 미루어왔던 무량수전을 찾지 않으면 안될 만큼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일까.
부석사로 들어가는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이 보였다. 나는 비포장으로 된 길을 바라보며 삼거리에서 차를 세웠다. 조수석을 보니 이 여행의 유일한 동행자인 내 딸, 다미가 입을 벌리고 잠에 푹 빠져 있었다. 어제 새벽 인천에서 출발하여 네 시간동안 달려 연포 해수욕장의 숙소 하이마트 모텔에 도착했었다. 짐을 풀자마자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는 딸과 함께 해변에서 하루종일 파도타기도 하고, 부질없이 무너지기 마련인 모래성을 거듭거듭 쌓았다. 그리고 모래구멍마다 호미로 파고 들어가 물이 뿜어져나오면 왕소금을 넣고 잠시후 올라오던 맛조개를 잡아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렇게 노느라고 피곤했던지 꽤 오랜 시간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다미가 마침내 깨어났다. " 아빠, 다 왔어 ? " " 아직은 아니다. 길 좀 물어보고 올테니 잠깐만 기다려라. " 삼거리의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부석사로 가는 길이 맞느냐고 가게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시큰둥하게 짜증스런 목소리로 " 그리 들어가면 되유. " 하더니, 쭈글쭈글한 얼굴을 내밀었던 방문 속으로 자라처럼 순식간에 얼굴을 숨겨버렸다. 일상에 찌들린 권태로운 목소리를 서산 부석면 가는 초입에서도 듣게 되다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지도 상에는 부석사 가는 도로와, 태안과 서산을 연결하고 있는 직진도로인 32번 국도의 중간 지점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휴가준비를 할 당시에는 어떻게 부석사를 찾아가야 되나 무척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실제로 와서 보니 비포장의 좁은 도로 형태로라도 연결되어 있으니 다행이었다. 비포장도로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앞에서 부옇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트럭이 여차하면 받아버리겠다는 듯이 위압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트럭이 지나가도록 길가로 차를 바짝 붙였다. 그리고 먼지가 들어오지 않도록 차창유리를 올렸다. 흑염소들을 잔뜩 실은 채 트럭이 스쳐지나갔다.
좀 더 달리면 지도 상의 부석면 가는 포장도로가 실제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 잠시후 정말 그 포장도로가 나타나자 제대로 길을 찾아들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되어서인지 즐거웠던 어제 낮의 일이 떠올랐다. 어제 낮에 딸과 함께 연포 바닷가의 바위마다 다닥다닥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홍합들을 엄지, 집게 두 손가락과 대합조개 껍질을 골고루 사용하며 잔뜩 땄었다. 날카로운 홍합의 조갯날에 손가락에 상처가 나기도 했고 손톱의 일부가 부러져나가기도 했다.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홍합들의 필사적인 저항 때문이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바위의 굴곡진 틈 사이에 바닷게 새끼들이 잔뜩 숨어 있었는데 마치 수많은 홍합들에게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 홍합들과 엊저녁에 모래사장을 뒤적이며 캐어내었던 맛조개들을 공용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오늘 아침 수도물로 깨끗이 씻어 코펠에 넣고 물을 부어 부루스타 위에 올려놓고 끓였다. 모텔의 넓은 마당에는 대여섯개의 야외용 식탁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식탁마다 큼직한 파라솔이 세워져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햇빛을 안간힘을 다해 밀어내고 있었다. 마당에는 잎사귀가 많은 나무들이 몇 그루 심어져 있어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나무들 속에는 수많은 매미들이 애처롭게 맴맴 울어대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칙칙하고 어두운 땅 속에서 애벌레로 보내다가 드디어 매미가 되어 따뜻하고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미로는 며칠 밖에 살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절망했으리라. " 여기도 매미 허물이 있네. 실물하고 똑같네. 신기해라. " 다 끓은 조개탕을 야외용 식탁 위에 얹어놓고 딸과 함께 홍합과 맛조개를 먹고 있을 때, 마당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무의 굵은 줄기에 붙은 매미허물을 뜯어내며 옆 식탁의 빨간 반바지 차림의 젊은 여자가 소리쳤다. 그러자, 같이 온 일행 중의 한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 벌써 몇 마리째요? 애마부인이 아니라 매미부인이구먼. 남편이 허해서 양기를 북돋아주려고 자꾸 모으나봐." " 그게 아니라 아이들 자연공부에 쓰려고 하는거죠. " 매미부인이 변명하듯이 대꾸했다. 직원휴양소여서 마음이 맞는 직원끼리 함께 휴가날짜를 맞추어 온 듯 매미부인의 일행은 꽤 많았다. 나는 왜 그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오지 못하고 딸과 단둘이 와서 어색한 구도를 만들고 있는가. 나만 없었다면 완벽해졌을지도 모를 휴양소 그림이 나로 인하여 망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아빠, 조개 안에 게가 들어 있어. " 딸의 손에 들린 입 벌린 홍합 속에 조갯살과 함께 삶아져 투명해져버린 조그마한 바닷게 새끼가 들어 있었다. 홍합이 곁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닷게를 아가리를 벌려 덥쑥 삼킨 모양이었다. 조개껍질을 벌려서 먹다보니 게가 들어 있는 홍합이 꽤 많았다. 홍합은 게를 먹고 산다. 홍합도 무언가를 먹어야 산다. 그 무엇인가가 바로 바닷게다. 죽기 전에는 게는 무얼 먹고 살았을까. 나는 국물을 떠 먹으며 마음 속으로 먹이사슬을 그려보았다. 혹시 나도 누군가의 먹이가 아니었을까. 그동안 내 간을 뜯어먹고 살아온 작자는 누굴까. 불현듯 어떤 얼굴이 떠올랐다. 속전속결 스타일의 야심 많던 최부장은 엄청나게 일들을 벌였다. 그 일들을 빠른 시일내 완료하기 위해 나는 일년동안 야근을 거의 매일 밥 먹듯이 했었다. 그 바람에 최부장은 업무추진능력을 인정받아 그토록 자신이 원했던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중한 건강을 잃었다. 인원감축 바람이 불자 최부장, 아니 최이사는 감축대상자명단에 내 이름을 집어넣고는 나빠진 간 회복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노골적으로 사직을 강요했다. 내 간을 뜯어먹더니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내 목까지 뜯어 먹으려하다니. 나는 인간에 대해 심한 환멸을 느꼈다. 아침을 조개로 때우고 나서 설거지를 굳이 자기가 하겠다는 딸애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난 후 나는 부루스타 위에 찻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물이 끓기 시작하자 커피가루가 담겨 있는 일회용 종이컵에 끓는 물을 부었다. " 어머, 이렇게 어린 애가 설거지를 다 하네. 착하기도 해라." 수돗가에 설거지를 하러 나온 어떤 여자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커피를 마셨다. 어쩌면 저 여자는 홀애비가 혼자 키우는 딸로 오해하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설사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의욕도 없다.
부석면 면사무소, 우체국을 스쳐지나서, 거의 삼거리에 당도했을 때 놀랍게도 " 부석사 " 라는 팻말이 눈에 띄였다. 부석사 입구로 차를 돌려 진입했다. 농가가 두 채 있었는데 그 중 한 농가 옆에 차를 붙여 세웠다. " 아빠, 왜 여기에 차를 세워? " " 길 좀 물어보고 가자. " " 아빠, 나도 내릴래. 차안이 너무 더워. " " 그래. 너도 내려라. 바깥 바람이나 쐬게. " 차에서 내리자 정면에 보이는 산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다미의 콧등에 송송 돋아 있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 엄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 아이는 아인가 보다. 인천의 아파트에서 혼자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을 엄마가 불현듯 보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갑자기 휴가 날짜를 잡고 혼자 연포로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아내는 딸을 굳이 붙여 보냈다. " 그래요. 기분전환을 위해 훌쩍 떠나는 것도 좋을 거예요. 대신 꼭 되돌아오셔야 해요. 이번 여름방학동안 아무데도 안갔었는데 이참에 다미를 데리고 가서 바다구경이나 시켜주세요. " 어제 새벽, 시동을 걸고 차가 서서히 움직이면서 백미러 통해 불안해 하는 아내의 모습이 비쳤었다. 그때 나는 왜 아내까지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가슴이 아파왔다. 아내는 같이 가자는 말 대신에 꼭 집으로 되돌아오라고 했다. 무엇이 아내로 하여금 남편의 되돌아옴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했을까. 아내는 그동안 나를 유심히 관찰해왔음에 틀림없다. 아내는 나의 변화의 이유를 묻지 않았고 나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husband)" 은 어원으로 볼 때 "집(house)" 과 "끈(band)" 의 합성어라고 한다. 남편은 끈으로 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집을 떠나 아무리 멀리 간다 하더라도 항상 가정과 가족을 생각하고 집으로 되돌아와야할 책임을 그 낱말 속에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딸을 그런 끈으로 나에게 딸려보낸 게 아닐까. 아파트를 빠져나온 차가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산업도로를 달리고 있을 무렵 어둠은 점점 본래의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다. 애초부터 어둠은 빛깔 자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빛을 섞으면 흰 빛이 된다는데 그렇다면 흰 빛의 반대빛인 검은 어둠은 모든 빛이 죽어버린 상태, 모든 빛이 사라진 상태일 것이다. 애초부터 어둠은 빛깔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아오는 새벽의 도로를 바라보며 나는 그때 어둠이 점점 빛깔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 저기 군인 아저씨한테 길 물어보면 되겠다. " 다미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니 예비군복 차림의 청년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부석사 가는 길을 물었다. " 부석사요? 바로 산중턱에 보이는 저 절이요. " 청년이 팔을 뻗어 산중턱을 가리켰다. 부석사까지 올라가는 가파른 시멘트길은 차 한 대만이 간신히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폭이 좁았다. 하긴 굴곡이 심한 산길이어서 폭을 넓게 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꺼르렁거리며 가파른 오르막을 겨우 다 올라가니 주차할 수 있는 평지가 드러났다. 갤로퍼가 한 대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 옆에 내 프라이드를 주차시켰다. 평지 주위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고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트렁크 속의 아이스박스에서 음료수 캔을 꺼내 딸에게 주고 벤치에 앉아 땀을 식혔다. 둘러보니 평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철제안내판이 서 있었고 그 위로 돌계단들이 있었다. 평지가 끝나는 지점, 즉 벤치 뒤편으로 난 오르막길에는 "경내 차량 진입금지" 라는 팻말이 입구에 서 있었다. 경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거나, 차량 진입을 막는 팻말이 턱 버티고 서 있는 오르막길로 올라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딸이 콜라를 마시고 있을 동안 경내를 둘러볼 요량으로 돌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철제안내판의 내용을 읽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왕명에 의해 의상대사가 개창한 절이다. 원래 절터에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살고 있었는데, 의상대사를 사모하여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환생한 선묘 낭자가 신통력을 부려 집채만한 바위를 세 번 공중으로 뜨게 하는 이적을 보였다. 그러자 모든 무리들이 의상의 법력이라 믿고 무릎을 꿇고 절 짓는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맹세했다. 마음으로 열복(悅服)한 무리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바위가 떴다 해서 "부석(浮石)" 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절이 세워질 수 있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어쩌면 선묘 낭자가 나에게도 괴력을 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높은 단의 왼쪽에 대웅전에 해당하는 극락전이 있었고 거의 바로 옆에 요사채가 이웃하고 있었다. 극락전 건너 아랫편의 보잘것 없는 건물 안에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는데, 현판을 김삿갓이 썼다고 철제안내판은 말하고 있었다. 요사채 옆에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옆에 시멘트로 지어진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무량수전이 없었다. 꽤 큰 절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너무나도 규모가 작고 초라한 절이어서 도저히 무량수전이 있을만한 공간이 없었다. 요사채는 무더위 탓인지 방문들이 열려 있었는데, 밥상이 몇 개 이어 붙여진 제법 횡으로 넓은 방에 절밥을 먹기 위해 신도들이 모여 있었다 요사채에서 내려와 비탈길을 따라 걸으니 딸이 앉아 있는 벤치가 나왔다. 갤로프 옆에 사십대 중년남자가 안경알을 닦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무량수전의 위치를 묻기로 마음먹었다. " 부석사가 여기 말고 경북 영주에 또 있어요. 무량수전은 그 절에 있지요. 한자도 똑같아서 착각하고 잘못 찾아오는 분이 많지요. " 나는 갑자기 힘이 쑤욱 빠졌다. 내가 그토록 일생동안 찾아오고 싶어했던 무량수전이 없다니. 이제서야 어렵게 찾아왔더니 엉뚱하게도 다른 절이라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땅이 갑자기 푹 꺼져버리는 듯 하여 나는 비틀거렸다. 두 다리에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겨우 몸을 추스리고 벤치로 가서 힘없이 앉았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을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나를 여기 부석사까지 끌어당긴 알 수 없는 손길이 만약 있었다면, 어떤 메세지를 나에게 던져주기 위해 이런 예기치 않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어냈을까. 그 메세지는 무엇일까.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이 없다. 아니, 다른 부석사에는 무량수전이 있다. 무량수전이 없다. 무량수전이 있다. 무량수전은 의미가 없다. 무량수전은 의미가 있다. 나는 몹시 혼돈스러웠다. 중년남자는 실망감이 역력한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차에서 잘라놓은 수박조각들이 든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먹으라고 나와 딸에게 한 조각씩 주었다. " 하지만 이 절도 역사가 꽤 오래된 절이요. 신라시대에 창건됐어요. 그리고 보통 대웅전이 중앙에 있고 요사채, 즉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은 한 단 아래에 있기 마련인데 이 절은 특이하게도 같은 단에 있어요. 그 이유가 전설이나 기록으로 전해내려오고 있지는 않으나 당시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거요. "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여기 잘못 찾아온 것이 공연한 헛걸음이 아니라는 어떤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 절이 다른 종교보다 가난한 편이지요. 누구나 절밥을 먹고 가는데다가 주지스님 차량유지비에 여러가지로 드는 비용이 많지요. 절살림이 힘들다보니 한쪽 건물에 학생들을 묵을 수 있게 하여 어느 정도 보탬이 되고 있죠. " 웅성웅성 소리나는 쪽을 보니 다시 마을로 내려가는 신도들을 봉고와 승용차에 나눠 태워주는 주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내려가자 주지 스님이 벤치쪽으로 올라왔다. 나는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 인천서 왔구먼. " " 차번호판을 보셨군요. " " 아냐, 사람 얼굴을 보면 사는 곳을 대충은 알 수 있지. " 주지승은 넓은 주차공터를 지나 경내로 들어가는 비탈길로 터벅터벅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뒤이어 올라가서 경내를 구경시켜주면서 이곳 저곳 설명해주었다. " 청개구리다 ! 소금쟁이도 있네. 아빠, 잉어도 있어 ! " 연못 앞에서 신기한 듯 딸이 소리쳤다. 나는 개구리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연못가의 풀더미 속의 작은 돌에 앉아 있던 개구리는 전혀 도망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난 잡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니 그제서야 귀찮은 듯 팔짝 뛰며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는 미물들도 아웅다웅거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구나. 나는 이 절의 청개구리가, 이 절의 중이 부러워졌다. " 염소다 ! " 어느새 다미는 시멘트건물 옆에 가서 비탈 아래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나무들을 연결한 줄에 빨래들이 걸려 있는 걸 보며 학생들이 묵고 있는 하숙건물이리라 짐작하며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흑염소가 절안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시멘트건물 아래쪽에 철사줄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나머지 3면은 개방되어 있는 천연의 염소 방목지였다. 비탈 아래 평지에 추위를 피하거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염소집이 두 채 있었고 나무로 만든 먹이그릇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비탈에 앉아 한동안 명상에 잠겨 있던 주지승이 눈을 뜨더니 울타리 가까이 가서 보라고 딸에게 손짓했다. 딸은 풀을 뜯어 철사구멍 사이로 주둥이를 내미는 흑염소의 입에 넣어주었다. 바위 위에 올라가 있는 흑염소도 있었고 젖을 빨고 있는 새끼들도 많았는데 어림잡아 스물 마리는 되어 보였다. 주지승이 먼저 말을 붙여왔다. " 절에서 흑염소를 키운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 내가 작년에 이 절에 부임했을 때 전임주지가 흑염소까지 인수하라고 하길래 못 받겠다고 했지. 근데 내가 인수하지 않으면 그 날로 이 흑염소들이 목숨을 다하게 생겼더라고. 불제자로서 그것도 못할 짓이라 생각되어 어쩔 수 없이 인수인계 받아 그래, 니네들 명껏 살다가 죽으라 하고 기르고 있지. 키워보니 흑염소가 손이 거의 안가는 가축이야. 여긴 전국에서 제일가는 천연의 흑염소 사육지야. 이 도비산은 정상은 흑염소가 좋아하는 암산이요 산 곳곳에 온갖 약초로 가득하고 저쪽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거든. 좋다는 것은 다 먹고 자라니 여기 흑염소야말로 약이 되겠지." " 절 살림이 넉넉치 않을텐데 팔면 도움되지 않겠습니까? " " 내가 팔지 않으니까 어떤 신도는 돈을 주면서 절 경비로 쓰시고 돈이 생기면 되돌려달라고 하더군. 절 살림에 그 돈을 금새 다 썼지. 그 양반도 알고 돈을 준건데 돈을 되돌려줄 수 없을 테니까 마음의 부담을 느껴 흑염소 한마리를 달라는 수작이겠지. 난 지금 갚을 돈이 없고 그래서 모른척 안갚고 있지. " " 언제부터 이 부석사에서 흑염소를 키워왔습니까? " " 그건 모를 일이야. 내 추측엔 어쩌면 의상대사 때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할 것 같군. 흔히 부석사라 하면 봉황산 부석사 만을 떠올리지 않나? 도비산 부석사도 창건 연대와 창건한 스님이 동일해. 동일한 이름이 된 이유도 거기서 쉬 짐작할 수 있지. 바위가 떠오르는 기적을 보고 감복한 무리들이 봉황산 부석사를 짓고, 불심 깊은 그들을 이끌고 백두대간을 따라 의상대사가 여기 도비산에도 부석사를 지었을 거야. 그 때 도비산에 서식하던 야생흑염소를 가축으로 길들여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을까 ? 불제자들이야 고기를 먹지않지만 부석사를 짓는 대역사에 동원된 중생들이야 풀뿌리만 먹고서야 무슨 힘으로 일을 해낼 수 있겠어, 안 그래?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추측이 맞다면 그들은 놀라운 불심을 가진 무리임에 틀림없다. 바위가 공중에 뜨는 것 만으로 그렇게 갑자기 불심이 생겨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었던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 부석사가 마침내 창건되고 절 근처에 밭이 생기자 불심 깊은 그 무리들은 살생을 금하고 스님이 되고 보살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흑염소는 살아남아 어떤 화두를 던져주고 있지 않을까. 의상대사가 우리에게 던져주고 싶었을지도 모를 화두 말일세. " " 화두의 답을 얻으셨습니까? " " 글쎄.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 아뭏든 흑염소는 대단한 생명력을 가진 짐승이야. " 주지스님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갑자기 흑염소 보양탕집 주인 곽씨의 말이 떠올랐다.
- 일본 가고시마 섬과 가사끼 서해안 일대에 시바염소라고 불려지는 일본 재래종 염소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요. 어떻게 넘어갔을까요? 놀라운 생명력 아닙니까? 몽고 한가이 산맥에서 수많은 험한 산맥들을 넘고 넘어 태백산맥에까지 왔던 야생염소에게 바다 역시 극복 가능한 장벽이 아니었을까요? 나 말이요, 흑염소 장사를 하면서 느낀 게 많수다. 어떤 화두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 흑염소란 놈은 새순을 가장 좋아하지만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낙엽에 이르기까지 살아남기 위해 안 먹는 것이 없어요. 수박껍질, 밥찌꺼기, 심지어는 흙까지도 먹습니다. 솔가지를 잘라서 주면 사람의 손이 닿았던 부분은 처음에는 먹지 않다가도 배가 고프면 그때는 모두 먹지요.
울타리너머 닭 한마리가 푸드덕거렸다. " 저기 닭도 한 마리 있군요. " " 먹이를 주면 염소와 닭이 서로 먹으려고 다투는 경우도 있는데, 힘으로야 염소가 이기겠지만 닭이 거세게 날개짓을 하면 염소가 놀래서 달아나버려. 양이 겁이 많은 동물 아닌가. 염소도 양 종류라서 그런지 겁이 많은가 봐. 그러나, 저기 뿔이 구부러진 숫염소가 우두머리이자 종돈인셈인데 외부의 적이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려하면 굉장히 사나와져서 목숨을 걸고 가족을 지켜내지. 그때는 순한 양이 아니라 호랑이로 변해. " 가리키는 쪽을 내려다보니 숫염소가 암염소의 엉덩이 뒤에서 쏟아져내리는 오줌세례를 받으면서도 계속 오줌냄새를 맡으며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주지가 일어나서 극락전 쪽으로 비탈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울타리 쪽으로 비탈을 걸어 내려갔다.
양은 평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흑염소는 험한 돌산을 뛰어오르는 것을 좋아하고 거친 나무껍질을 먹으며 야성을 잃어버리려 하지 않는다. 의상대사가 던졌을지도 모를 흑염소 화두를 곰곰히 되씹으며 울타리에 두 손을 얹고 서 있는데 숫염소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그 녀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두 눈이 충혈되어가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겁에 질린듯 다미가 황급히 내 뒤로 몸을 숨겼다. 갑자기 숫염소가 낮은 울타리를 향해 순식간에 돌진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녀석의 두 뿔을 붙잡고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려는 듯이 힘을 주었다. 내 팔뚝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딸이 아빠의 등을 힘껏 밀고 있었다. 나의 선묘 낭자가 바로 내 딸이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든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흑염소의 뿔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나는 결코 여기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어디에 이런 힘이 남아 있었나 의아할 정도로 나는 흑염소의 대가리를 힘껏 비틀기 시작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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