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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경 엘레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 of Elea, BC 490?-BC 430?)이 반대자들의 공격으로부터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BC 445?)의 학설을 지켜내기 위해 사용했던 논증 방법이다. 제논의 이름과 그의 논증방식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고려하여 ‘제논의 역설(逆說)’ 또는 ‘제논의 패러독스(Zenon's paradoxes)’라 부른다.
제논과 스승으로 알려진 파르메니데스는 일원론적인 철학사상을 토대로 참되고 진실한 실재는 하나밖에 없으며 이는 변화하지 않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존재만을 하나의 참된 것으로 보고 이것이 공간을 가득 매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와 대립되는 비어있는(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한곳에서 다른 비어있는 공간으로 물질이 이동한다는 ‘운동’ 개념의 거부로 이어졌다. 세상 사물의 움직임과 다양성은 인간의 감각으로부터 생긴 거짓된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았으며 그 자체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제논은 파르메니데스 학설 자체의 타당성을 곧바로 증명하는 대신 이를 비판하는 견해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모순을 드러내는데 주력하여 스승의 학설을 옹호하고자 했다.
상대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기 위한 제논의 역설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같은 후대 철학자들의 저작을 통해 알려졌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①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역설(Achilles and the tortoise paradox)
② 화살의 역설(Arrow paradox)
③ 이분법의 역설(Dichotomy paradox)
등이 있다. 이를 상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반대자들의 말처럼 운동이 실재한다고 가정한 다음 아킬레우스와 거북이가 경주를 할 때, 거북이가 A만큼 앞서 출발한다면 아킬레우스가 A만큼 갔을 때 거북이는 다시 B만큼 더 가게 되며 아킬레우스가 B만큼을 갔을 때 거북이는 다시 C만큼 더 가 있을 것이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② 또한 운동이 실재한다면 물체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날아가는 화살을 찰나의 순간 보았을 때 그것은 각각 특정한 지점에 멈춰있다.
③ 한편, 물체가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간다고 할 때 중간지점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 할 때 물체가 도착점을 향해 절반을 가고 다시 남은 거리의 절반을 가고 또 다시 남은 거리의 반을 가는 현상이 무한히 일어나므로 유한한 시간동안 물체는 다른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다.
위는 모두 <이분법의 역설(Dichotomy paradox)>을 근거로 하여 파생된 것 같다. 이분법의 역설은 길이를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에 적용된다. 어떤 물체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그 중간 지점인 C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A에서 C로 가려면 그 중간 지점인 D를 통과해야 한다. 또 A에서 D로 가려면 그 중간 지점인 E를 통과해야 하고... 이런 식의 사고를 계속하다 보면 A와 B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짧다 해도, A에서 B까지 가려면 무한히 많은 점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물체는 이동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분법은 목적지에 가려면 중간점을 통과해야 하고 그 중간점에서 목적지까지의 중간점을 또 지나야만 하는데, 결국은 이런 식으로 해서 나오는 무한 개의 중간점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아킬레스와 거북이 역시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있던 지점을 뒤쫓아가면 그 사이에 거북은 조금 앞으로 나아가 있다. 거북이 나아가 있는 그 지점을 다시 아킬레스가 뒤쫓아가면 그 사이에 거북은 다시 조금 앞으로 나아가 있다. 이렇게 해서 아킬레스는 거북에게 무한히 다가가기는 하지만 결코 따라잡을 수는 없다. 날아가는 화살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무수히 많은 중간지점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은 동일하다. 극히 짧은 순간에는 일정한 지점에 있고, 다음 순간에도 다음의 일정한 지점에 있다. 이렇게 날아가는 화살은 각 순간에는 정지해 있고, 정지가 겹쳐 쌓이면 운동은 없다. 따라서 모든 물체는 운동하지 않고 정지해 있으며 이를 통해 제논은 따라서 그의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학설을 뒷받침하려고 했던 것이다.
많은 분들이 제논이 극한의 개념을 몰랐다거나, 시간의 유한성을 놓쳤다거나, 뭔가 논점을 잘못 짚었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만, 저는 오히려, 제논이 올바른 문제제기를 한 것이 맞고 매우 의미심장한 역설임을 주장해보려 합니다. ^^
첫째, 둘째는 수학에 익숙하지 않다면 좀 어려울 수 있으니, 과감히 건너뛰고
세 번째 해법부터 보세요^^~
저는 학부 때 컴퓨터공학 전공이면서 수학을 부전공해서 그런지 좀 익숙합니다. ㅎㅎㅎ
<첫 번째 해법!?>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간격을 y 라고 하고,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뒤따라가면서 거북이 있던 자리에 올 때마다 그 횟수를 x 라고 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아직은 시간이란 변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가령,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속도가 2배 빠르다고 하고, 둘 사이의 최초의 거리는 1이라고 하겠습니다.
x = 1 일 때, 즉, 아킬레스가 거북이 있던 곳까지 1만큼 오면 거북이는 1/2만큼 앞으로 전진해있을 것이고, 따라서 둘 사이의 거리는 1/2이 됩니다.
x = 2 일 때, 즉 아킬레스가 그 다음으로 거북이 있던 곳까지 1/2만큼 전진하면, 거북이는 이번에는 1/4만큼 전진해있을 것이고, 따라서 둘 사이의 거리는 1/4이 됩니다.
x = 3 일 때, 둘 사이의 거리는 1/8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간격은 계속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이때 물론 시간 간격도 점점 짧아질 것입니다.
이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이것은 x 값이 증가할수록 y 값은 점점 0 에 가까워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것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x 축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없이 갈수록, 그래프는 점점 x 축에 한없이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결코 x 축과는 만나지 않습니다. 한없이 가까워질뿐...
그런데, 바로 여기서, 많은 분들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다가 어느 일정한 시간이 되면 결국 거리는 0 이 되고, 그 순간부터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 간격이 좁아진다고 한들... 과연 x 축과 그래프가 만나는 순간이 올까요?
적어도 위 그래프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만나는 위치가 2m 되는 지점이며 그 때 시간을 t라고 한다면...
위 그래프 상에서 과연 어느 지점이 시간 t의 순간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위 그래프에서는 시간 t 지점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 t 이전의 상황만 연출되고 있을 뿐입니다. 무한히... 위 그래프를 버리고 탈출하지 않는 한 말이지요.
만약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불편한 분들이 있을 수 있기에 이번에는 다른 방식의 논증을 시도해보겠습니다.
x 값이 무한히 커질 때, y 값이 점점 0 에 접근하기도 하지만,
간단한 식의 변형을 통해서 x 값이 증가할수록, 0 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증가하는 값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아래 식에서 양변에 로그를 취해보겠습니다.
여기서
라 하면,
이때, x 값이 증가할수록 Y 값은 0 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0 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물론 여기서 Y 값은 y 값과 어떤 관계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만,
제가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은,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의 간격을 바라보는 관점을 살짝 바꾸기만 해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로그를 취해서 식의 변형을 가하는 것처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의 거리가 마냥 좁혀져가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법!?>
첫 번째 논증에서 사용된 다음 그래프에서 x의 값을 아예 시간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물론 y 는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간격입니다.
그래프와 x 축이 결코 만나지 못하듯이,
시간이 제아무리 흘러가도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프는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상황은 제논의 역설과는 또 다른 설정입니다만... 본질에 있어서는 그게 그것인 듯합니다)
<세 번째 해법!?>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생각해볼까요?
버버리 코트를 입은 키아누 리브스가 몸을 뒤로 쓰러질듯 말듯 몸을 눕히면서 아슬아슬 총탄을 피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우리가 무언가에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하면,
이처럼 시간의 느려짐 현상을 체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논의 역설 그림을 다시 보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킬레스가 점점 거북이와 간격을 좁혀오고 있습니다.
좁아지는 그 간격을 클로즈업해서 봅니다.
좁아진 간격이 확대되어 보일 것입니다.
또 좁아지면 또 클로즈업해서 봅니다.
이렇게 계속 클로즈업해가면서, 그 간격을 확대해가면서 본다고 생각해봅시다.
아킬레스가 제아무리 거북이를 뒤쫓아가도, 늘 제자리인듯이 보일 것입니다.
"어휴 ㅡ.ㅡ; 난 평생 거북이 뒤꽁무니만 쳐다보고 뛰는구나" 라고 말하는 아킬레스가 상상이 됩니다.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의 거리가 무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아킬레스는 거북이와 한치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거리만 무한히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함께 느려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아킬레스 본인은 시간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겠지요.
그 속에 갇혀 있으니까요.
인간의 의식이란 것도 이렇게 한 없이 무한트랩(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이런 무한트랩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주변에서 한 번 찾아보세요~^^
혹시 여러분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ㅎㅎㅎ
만약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만나는 시간을 t 라고 해보겠습니다.
무한트랩에 빠진 아킬레스에게는 결코 t 라는 시간이 도래하지 않습니다.
이 상태에서 아킬레스는 스스로 눈치채지 못한 채로 수십년 수백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시공간이 동시에 늘어지기 때문에 눈치챌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늙어가겠지요.
무한트랩을 벗어나는 순간이 아킬레스에게는 t 라는 시간을 맞이하는 순간이 되겠지요.
우리 인간들 중에서도 분명히 이러한 시간 속에 갇혀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시간이란 것이 우리 의식과 무관하게 째깍 째깍 거리며 일정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도...
이러한 시공간의 무한트랩에 빠져버리면, 그 시간과 공간이 한없이 늘어지면서 (물론 본인 자신은 눈치채지 못한 채...)
"내 인생은 왜 마냥 이런거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만 하는거야..."
"난 늘 이렇게 뒤쳐져야만 하는 건가..."
이런 생각 속에서 사는 거죠. 영원히...
<네 번째 해법!?>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아킬레스의 시간은 아킬레스에 속한 것이며, 거북이의 시간은 거북이에게 속한 것입니다.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함께 공유하고 체험하는 동일한 시간이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고 생각만 할 수 있을 뿐이겠죠.
==> 뉴튼의 상대성 개념으로는 서로가 상대방을 관찰하는 속도가 같기 때문입니다.
시간뿐만 아니라 거리, 즉 공간도 각자에 속한 것으로 각자에게 고유하게 체험됩니다. 서로 같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비유클리드기하학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이러한 시공간의 상대성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따라서 아킬레스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거북이 역시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아킬레스가 사는 세상과 거북이가 사는 세상이 다릅니다.
쉽게 말해서, 아킬레스가 체험하는 세상과 거북이가 체험하는 세상이 서로 다른 것이지요.
거북이는 거북이대로 마냥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것이며,
아킬레스 역시 자신의 길을 갈 뿐입니다.
이때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추월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갇혀서, 의식의 무한 트랩에 갇혀서...
즉,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계속 살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요...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일단 생략... 게시판 글이 또 날아갈까봐... ㅠㅠ;;;)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또 다른 해법들...>
2009년도에 서울대에서 있었던 과학철학 세미나에 참석했었는데, 제논의 역설은 지금까지도 그 어느 과학자나 철학자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21세기에 현존하는 역설이라고 합니다.
제논은 자신이 제안한 역설적 질문을 통해 결국 모든 존재는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일 뿐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그날 세미나에서 들은 바 있습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이란 항상 고정된 방향으로(즉, 미래를 향해서 앞으로만) 흘러가는 예측 가능한 성질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시간 관념은 아주 잘못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제논은 철학적인 접근으로 간파했지만, 최근 양자물리학에 의해서도 주장되고 있는 바입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는 것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ㅎㅎㅎ
다만 그 시간이란 것이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과 다르겠지요.
우리는 뭔가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허상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간... 제논의 역설은 정말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새로운 정신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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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세상은 결코 내가 당연시 여기는 그대로 존재하며 그러한 믿음에 맞추어 존재하는 세계가 바로 내가 믿는 객관적 실재입니다. 나의 당위론적 사고를 깨는 순간, 이 객관적 실재도 바뀝니다. 그러면 실재가 더이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인식관이 변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성장해가면서... 부단히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말이지요. ㅎㅎㅎ
추가적으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의 의식은 결코 따로 놀지 않는다는 사실. 시간이 늘어지면 공간도 늘어지고... 이것이 의식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에요. 따라서 나의 의식에 따른 나의 시간과 공간은 결코 타인의 그것들과 같을 수 없고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관찰하고 있는 제3자의 관점은 또 다른 세계를 말해줄 뿐입니다. 제3자는 자신의 의식으로 규정된 자신의 의식세계 속에서의 아킬레스와 거북이를 보고 있는데, 제3자에게 보이는 아킬레스와, 진짜 아킬레스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때 진짜 아킬레스란... 아킬레스 본인이 느끼는 자기 자신을 말함)
참고로, 제논의 역설에 대한 건국대 사범대 학생들의 의견들과 갑론을박 주장들을 보시려면 ==> http://cafe427.daum.net/_c21_/bbs_list?grpid=14Tu9&fldid=SLW8
제논의 역설에 대한 제 생각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거북이와 토끼가 1.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안에 존재하고 2. 시간이 흐르고 3. 토끼는 거북이보다 더 빠른 등속도로 달린다고 생각하면 토끼는 언젠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토끼와 거북이가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정말 의미심장한 역설이 될 수 있지만 제논과 같은 프레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오류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서로다른 공간에서 따로 존재한다는 조건으로 제논의 역설을 살펴 본다면 이해 잘 됩니다. 결국 둘의 공간은 겹쳐질 수 없는 개개의 것으로 생각해야하는 분리된 존재가 될테니까요.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 잡는다고 가정한다면 필수적으로 끝이 있을 수 없는 무한대읜 환경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무한대의 개념을 간과한다면 같은 공간에 있는 토끼와 거북이의 거리차이는 조금씩 좁혀지고 이것은 토끼가 거북이보다 더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데 왜 추월하지 못할까 아직도 의문이 듭니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제논의 역설을 바라보겠습니다. 우선, 거시세계와는 다르게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 이용됩니다.
간략하게 그 이유를 말하자면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의 확률이 충분히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예: 양자역학에 의하면 인간은 벽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시세계라서 확률이 극히 희박할 뿐이죠, 0%는 아니라는 것이죠.)
1) 거시세계(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 적용 어려운 환경)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추월할 수 있죠.
제논의 역설이 수학적으로는 무한소의 개념처럼 점점 작은 시간단위, 거리단위 개념을 가지고 논리를 펼치는 것은
결국 미시세계에서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제논의 역설과는 다르게 실제 거시세계에서
제논의 역설과 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죠.
2) 미시세계
제논의 역설이 논리로 삼은 환경. 즉 미시세계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물체의 운동량과 위치의 정보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운동량, 즉 속도를 측정하는 순간 위치의 정보는 측정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반대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 누가 더 빠른지 속도, 상대속도 등 운동량과 관련된 정보는 측정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론을 정리하면 제논의 역설에서 아킬레스가 영원히 거북이를 추월하지 못하고 정지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관찰자가 위치 또는 운동량 중 먼저 관측한 값에 비해 다른 정보는 그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결국 확률적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제논의 문제제기는 틀린 것도 아니고 언제나 맞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확률적으로 제논이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이 존재할 수는 있다는 것이고 그 확률에 대한 것은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숭실대 이용석입니다. 제논의 역설은 그 자체로 무언가 결론을 짓는다는 것 보다는 현재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 해서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을 통한 세계관을 조명하여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관점을 뒤집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논의 역설은 주관적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방식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추월해야 하지만, 제논의 역설을 보면 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즉 제논의 역설들은 감각적인 인식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논의 역설은 현재까지도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 논리적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 활동의 자극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ㅡ^
<세사람이 1만 원씩 내서 3만 원어치 점심을 먹었는데 손님들이 가고 난 뒤 다시 계산을 해보니 음식값이 2만 5천원 이였다. 그래서 주인은 종업원에게 5천원을 더 받았으니 손님께 되돌려 드리고 오너라.그런데 그 종업원은 손버릇이 나쁜 사람이였고 2천원은 자기가 갖고 3천원만 갖다 줬다. 3천 원을 되돌려 받게된 세 사람은 기분이 좋았다. 3만 원을 내고 3천 원을 되돌려 받았으니 2만 7천원 어치 음식값이라 생각 되었다. 종업원도 2천 원의 부수입으로 기분이 좋았다. 세 사람이 낸 2만 7천 원과 종업원이 가진 2천원을 합하면 2만 9천 원밖에 되지 않는데 천원이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
교수님 이런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나요? ㅎㅎㅎ
주말 내내 제논의 역설이야기만 친구들이랑 떠들고왔는데요 결론은 제논의 역설을 부정하듯 그렇지 않듯 둘 다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역설을 주장하는 역할과 반론을 제기하는 논리성이 둘 다 틀리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완벽하게 서로의 주장을 논리적이게 부정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페러다임의 차이에 의해, (저는 이 문제에서 가장 큰 차이가 흘러가는 시간 그대로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였습니다) 두 가지 시선이 모두 독립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댓글을 쓰고있지만 지금도 제가 무슨말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네요.ㅠㅜ
인하수교 김성식입니다. 교수님의 해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을때 제논의 역설은 결국 우리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두번째 해설에 등장한 지수로그함수의 극한으로의 해석으로 볼수 잇지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기울기가 다른 두 직선이 만나는 그림으로 상황을 해석할것입니다. 세번째 해설에서 거리가 늘어나면 시간도 함께 줄어드는 것에 저는 공감하였습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계속 무한과 계속 마주하면서도 정말 오묘한 한 것 같습니다.
[심화1]이라고 리플 달아둔 현대판 제논의 역설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논의 역설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역설적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