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 하룻밤을 묵고 영암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원래 계획은 천황사에서 출발하여 월출산에 올라 구정봉 마애불을 만나고 용암사지로 하산하려 하였으나
오늘 오후부터 비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어 그러한 계획을 취소하고
아침 나절에 엄길리 암각매향명과 쌍계사지 정도만 돌아보고 군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영암 읍내에서 아래 놓여있는 월출산 산자락의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엄길리로 향했다
엄길리는 영암에서 목포로 넘어가는 길 영산강을 건너기 전에 자리한 작은 소읍이다
영산강의 지류인 영암천이 가로지르는 비옥한 토지와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입지를 가진 이곳은 일찍부터 선사문화가 자리잡기도 하였다
서호면 사무소가 위치한 면소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천리 선사주거지와 청동기 시대를 지나던 사람들의 흔적이 고인돌로 남아있기도 하다
언제 비를 흩뿌릴지 모르는 흐린 날씨 덕에 선사유적을 외면하고 지나쳤지만
나중에 또 이곳을 지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싶다
엄길리 암각매향명을 알리는 문화재 표지판은 매우 조그만하다
도로를 따라 지나가는 길에 조금만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놓쳐버릴 법하다
서호보건지소와 엄길리 지석묘군 사이로 난 좁은 논둑길을 따라 가면
어느새 덩그러니 길은 끊어지고 산 방향으로 작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차를 세우고 산길을 잠시 걸어 올라야 한다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길을 점령한 채로 내버려 두고 산길을 올랐다
어차피 농사를 짓는 때도 아니고 아침 일찍 이 곳을 지나는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므로...
표지판이 놓여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엄길리 암각매향명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띤다
표지판의 문화재 설명을 읽고 나서 주변을 한참이나 두리번 거렸지만
바위에 새겨진 암각매향명은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 둘러보다가 문득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석문이 시선을 잡아끌기에
그곳으로 향해보니 석문을 통과하는 지점 주변으로 선명하게 새겨진 한문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이런 곳에다가 매향명을 새길 생각을 했을까...
엄길리 암각매향명 (보물 제 1309호)
알아본 바 고려시대 어간에는 엄길리 일대 해안가의 간척이 이루어지지 않아
엄길리 마을까지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전한다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매향 풍습은 대개 이런 입지를 갖추고 있는 곳에서 그 흔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매향은 불교 풍습으로서 고려 말에 민간의 결사 형태로 유행하였으며
미륵부처의 도래를 기원하면서 향나무를 갯벌에 묻는 일종의 불교행사이다
이러한 매향 행사가 진행되면 그러한 경과와 발원자들을 비문에 새겨두는데 그러한 것을 매향비라 한다
보통은 돌을 다듬어 석비에다가 매향과 관련된 내용을 음각하기 마련인데
이곳 엄길리 암각매향명은 넓직한 바위 사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글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엄길리 암각매향명은 그 제작 연대가 고려 충혜왕 5년(1344)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고성의 삼일포 매향비보다는 조금 후대에 경남 사천에 남아있는 매향비보다는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매향비 혹은 매향명 가운데에서 세 번째로 이른 것이라 한다
석문을 통과하는 지점의 벽면에는 총 18행 129자가 음각되어 있다
덮여 있는 바위로 인해 바람과 비의 피해를 피할 수 있었기에 오랜시간을 거치면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으며
이에 따라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많아 학술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비문이라 할 수 있다
엄길리 암각매향명에는 매향의 주도자. 연대. 위치. 집단. 발원자가 모두 밝혀져 있다
매향명의 내용은 '고을미 북촌의 미타계 용화회'에서 공양할 침향을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발원자는 천을미분·김금물·김동화·신일소 등이고, 화주·각생·급암·진암 등의 승려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엄길리 암각매향명이 새겨진 곳에서 내려다보면 서호면 일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법한 야트막한 산간의 바위면에서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우리나라의 산천 곳곳에는 아직도 숨겨져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그러한 흔적을 따라 걷게 되는 발걸음이 언제쯤 멈추어지게 될까...
항상 답사를 다니는 발걸음이면 이러한 유산을 남겨준 선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