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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이 주목한 시집
늙은 사자
이달균 시집
이달균
1957년 경남 함안 출생하였으며 1987년 시집 『南海行』과 무크 《지평》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늙은 사자』, 『문자의 파편』, 『말뚝이 가라사대』, 『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 『南海行』이 있으며 영화에세이집 『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가 있다. 중앙시조대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경남문학상, 경남시조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문학부문), 마산시문화상(문학부문)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 속 주목의 시
퇴화론退化論 외 4편
원숭이는 날마다 사람을 닮아가고
나는 점점 녹슬어 원숭이가 되어간다
이보게, 진화론자여, 난 행복한 퇴화론자라네
딱따구리
잊혀질까 두려워 나무를 쪼는 새가 있다
숲은 그 가열한 신념이 안쓰러워
푸르고 무성한 잎새로 비바람을 막아준다
늙은 사자
죽음 곁에 몸을 누이고 주위를 돌아본다
평원은 한 마리 야수를 키웠지만
먼 하늘 마른번개처럼 눈빛은 덧없다
어깨를 짓누르던 제왕을 버리고 나니
노여운 생애가 한낮의 꿈만 같다
갈기에 나비가 노는 이 평화의 낯설음
태양의 주위를 도는 독수리 한 마리
이제 나를 드릴 고귀한 시간이 왔다
짓무른 발톱사이로 벌써 개미가 찾아왔다
좀벌레의 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일두一蠹, 그래 난 한 마리 좀일세 남강 모래톱에 섞이면 모래알 같고 벗어둔 남루에 앉으면 얼치기 바늘땀 같은
여보게 뒤주에 쌀말이나 남았거든 한 됫박 인심으로 함께 노놔 자시게 해 넘긴 쌀 무덤 속엔 좀벌레가 꼬이는 법
어허, 이런 이런! 내 말은 바람 풍월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 심심한 한 마리 버러지의 넋두리인 게야
난중일기․1 -통영 세병관에서 적조를 아룀
대감, 그곳 소슬한 청죽바람은 여전하온지요? 전하께옵서 기우제 드린 소식은 접했으나 이 남도 균열의 대지엔 미금만 풀썩입니다
삼복염천을 나면서 이렇게 지필묵 놓고 글 올리는 이즈음이 매양 우울해서인지 한여름 고뿔이 찾아와 요 며칠 고생 중입니다
문득 임진년 대승첩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왜적이라지만 떠오른 주검 앞에서 승전의 축하일배주는 허할 수 없었나이다
오늘 한산 바다는 동백이 지고도 한참, 다홍빛 저 붉음을 어찌 꽃답다 하겠습 니까 떠오른 고기들의 울음이 놀빛인 양 서럽습니다.
두창 뒤에 따라온 검붉은 호열자처럼 창궐한 떼죽음을 어찌 필설로 다하오리 까 이럴 땐 목민의 자리가 죄스러울 뿐입니다
세월을 당겨서 은하도 가까워진 오늘, 저 붉은 뉫살을 대적할 무기가 벽방산 무릎을 파낸 한 줌 황토뿐이라니
한 차례 태풍이라도 다녀가시면 모를까 의서에도 이 병의 처방이 묘연타 하니 이만큼 차오른 울화만 다독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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