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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배경
지난주에 이스라엘의 성전 안에서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가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를 당하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떠날 때 떠나기 싫어 지체하며 머루르고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장에 한번에 휙 성전을 그룹과 함께 나갈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이동하면서 머문 장소에서 지체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전 동문을 나와 성읍 동쪽 산으로 가셔서도 지체하시는 모습은 우리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습니다.
결국 남 유다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고 회개하지 않아 여호와의 영광을 떠나고 , 성도 성전도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성전이 더러워지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우상숭배의 죄로 가득차게 되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예언한대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음에도 하나님은 에스겔서를 통하여 남은 자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새로운 땅의 분배와 새로운 성전의 모습, 예배의 회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각자의 마음 속에, 교회속에서 세워지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옛 성전을 무너뜨려 정화하고 새로운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마음의 성전도, 예배의 처소도 마찬가지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옛 성전이 무너진 후에 에스겔에게 새로운 성전을 보여주는데 이것을 우리는 “에스겔 성전”이라 부릅니다.
성이 함락되고 14년 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성과 성전을 그리워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있었던 것처럼 (요 2:7) 남아 있는 백성들이 성과 성전을 사모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그때에 새롭게 분배되는 땅과 에스겔 성전을 소망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한 것은 영원히 망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망하는 자, 죽는 자 가운데서 남아 있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성전과 예배를 보여주며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남은 자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래와 소망을 주기 위하여 에스겔에게 성전의 모형을 보여주고, 예배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고 각 지파별로 땅도 새롭게 분배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에스겔 성전 안에 분향단과 향, 진설병이 없습니다. 금등대로 없습니다. 언약궤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예수님이 실체로 오셨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의 중보자 되시며,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요 말씀이시며, 예수님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성전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제 새롭게 지어져야 하는 성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각자 지어야할 마음의 성전, 영적 성전을 그렇게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먼저, 땅 분배부터 그 영적 의미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땅: 기업의 의미)
1)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셨습니다.
성전이 있는 중앙의 거룩한 땅 “예물로 드려지는 땅”이 기준입니다 (겔 45:1).
예물로 드려지는 땅 위쪽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지파의 땅이 있으며, 그리고 왕의 땅과 예물로 주어지는 땅이 있고, 그 아래 쪽에는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 지파의 땅이 분배되어 있습니다.
왕의 땅은 “예물로 드려지는 땅” 좌우에 있습니다.
① 먼저, 살펴볼 것은 나라 간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12지파에게 분배된 땅의 좌우 경계는 서쪽에는 대해(지중해), 동쪽에는 아랫부분은 사해와 요단강, 동쪽 위쪽에는 하살에논, 남쪽 경계는 가데스, 북쪽 경계는 하맛까지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스라엘 땅의 경계입니다 (겔 48:1)
이것은 다른 나라와의 경계인 것입니다.
▶ 나라 간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경계가 있으므로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기 위하여 침범하면 안됩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안됩니다. 푸틴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지만 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영적으로 믿지 않는 자들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구원받은 백성의 땅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땅도 있는 것입니다. 무슬림의 무함마드처럼 땅을 정복해서 개종시키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찾아오는 자는 이방인 중에서 구원받는 백성인 것입니다. 괜히 불교 절에 가서 여리고 돌면 안됩니다. 여리고를 도는 것은 하나님 주신 땅에 대하여 도는 것입니다. 여리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락한 땅이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허락하지 않으신 남의 기업에 가서 여리고 돌지 마세요. 기업 사냥꾼이 되어서 남의 기업도 뺏으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땅의 좌우 경계는 직선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경계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합당한 영역을 그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②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와 왕의 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가 있습니다.
상하 지파간 경계, 왕의 땅의 경계가 수평으로 자로 그은 것과 같이 경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상하 경계가 구불 구불하지 않습니다. 면적이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성전과 가까이 있는 지파가 있고 멀리 있는 지파가 있습니다.
성전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지파는 위쪽에 유다지파가, 아래쪽에는 베냐민 지파가 있습니다. 남북시대 때에 남 유다를 구성한 족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물로 드리는 땅 죄우에 왕의 땅이 성전에 가깝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가까이 있는 족속이 있고 멀리 있는 족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왕은 그 어느 지파보다 영성이 높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영광을 나타내고 살았는지로 결정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족속의 영성에 해당될까요?
▶ 각 지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경계가 수평으로 그어진 것은 좋은 땅을 골라서 인간의 욕심대로 경계를 구불 구불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 간의 경계도, 민족의 경계도, 형제 자매의 경계도 침범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힘이 있다고 경계를 허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잠언 22:28]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왕도 자기의 땅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왕권이 있다고 해서 백성들의 땅을 뺏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땅을 침범하면 안됩니다.
▶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그 말로가 비참해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왕상 21:1-19)
그들의 시체를 개들과 공중의 새들이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의 땅을 빼앗았기 때문에 그들의 매장할 땅 조차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웃 간의 관계에서 남의 영역, 이익을 침범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매장당할 땅도 없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남의 것에 탐욕을 내면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전 6:10). 천국의 땅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이웃의 것을 강탈하고, 사기치고, 도둑질하여 빼앗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형제간에 욕심 때문에 재산 싸움을 하는데, 자신 안에 받아야 할 것 외에 욕심이 잇는지 잘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내어 경계를 구불 구불하게 그어 소유하는 자는 천국에서 분배되는 직선으로 그어진 땅을 분배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파의 땅 분배와 경계선의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각자에게 주신 분복이 있음을 알고 욕심내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며 주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땅이 있습니다.
이 땅 안에 제사장의 분깃, 레위 사람의 분깃,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분깃인 성읍기지가 분배되어 있습니다. 제사장 분깃의 땅 안에 성전이 있는 것입니다.
▶ 이 부분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드려진 땅입니다. 왕의 것도 아닙니다. 예물(히, 테루마)로 드려졌다는 것은 원어적으로 드려진 헌물, 바친 제물, 제사장에게 할당된 몫을 의미하므로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체 땅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땅도, 그 안에 사는 사람도 말입니다.
▶ 이 땅은 네모가 반듯한 가로 세로 정사각형입니다. 규모도 가로 세로 25,000척 (13.3km)입니다. 그 크기를 줄이거나 늘이거나 또는 땅의 경계를 구불 구불하게 해서도 안됩니다. 반드시 정사각형의 땅을 드려야 합니다.
※ 솔로몬 성전 : 규빗 (45.6cm), 에스겔 성전 (척 : 53.2cm)
정사각형의 땅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① 사방을 향한 정사각형의 땅을 드리는 것은 사방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12지파 모두가 참여하여 공평하게 드리는 땅을 의미합니다.
솔로몬 성전 시대에는 각 지파에게 분배된 땅 안에서 레위인들이 거주할 성읍을 따로 떼어 주었습니다 (민수기 35장), 각 지파에서 성읍을 준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보더라도 예물로 드려진 땅은 각 지파에서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진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② 또 정 사각형의 땅을 예물로 드리는 의미는 가장 완전하고 온전한 좋은 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위치도 가장 중심입니다. 그 내용도 정사각형으로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느 한 부분은 적게 드리고 어느 한 부분은 많이 드리는 직사각형을 드려도 안되고, 좌우 윗 부분을 싹뚝 짤라 드리는 드리지 않는 삼각형도 아닙니다. 그리고 모서리를 다 짤라 먹는 원형도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탐욕이 가미된 자투리 땅을 드리면 안됩니다.
드리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드리면 구불 구불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땅을 빼앗아 먹고 내가 사는 길은 없습니다. 그 땅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죄사함 받고 복을 받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께 정사각형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려야할 땅은 우리가 가진 재산, 목숨, 시간, 은사 등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예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일조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내것이 아닌 것입니다.
▶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동일한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드려지면 속된 땅에서 “거룩한 땅” 된다는 사실입니다 (겔 48:20). 하나님 손에 들어가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드린 자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다시 가져갈 수도 없고, 변개도 안되고, 대체도 안됩니다.
▶ 예물로 드리는 거룩한 땅 안에서 사는 사람들도 예물로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땅도 사람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여기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오늘날도 영적으로 제사장으로, 레위인으로, 헌신된 일반 성도로서 예물로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들에게도 예물로 드리는 땅 안에서 땅이 분배되어 있습니다.
3) 예물로 드려진 땅 안에는 제사장 분깃, 레위 사람들의 분깃, 성읍에서 일하는 각 지파의 사람들이 사는 성읍과 성읍기지가 있습니다.
① 먼저, 이 예물로 드려진 땅에는 제사장 분깃의 땅이 있습니다.
제사장 분깃으로 주어진 땅은 가로 25,000척, 세로 10,000척의 땅이 주어졌습니다 (13.3km * 5.32km).
이 분깃은 제사장이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삶의 터전입니다. 농사를 짓고 짐승을 기르는 곳이 아닙니다. 그들이 먹을 것은 번제물 외에 거제로 드리는 것, 레위인에게 주는 십일조의 십일조입니다 (출 29:28, 느 10:38)
이곳에 아무나 와서 집을 짓고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그 분깃을 침범하면 안됩니다. 성전은 제사장 분깃의 땅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가장 보호가 되어야 할 땅이며, 가장 거룩하게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져야 하는 땅입니다.
제사장 분깃의 땅을 성경은 “지극히 거룩한 땅”(겔 45:3), “가장 거룩한 땅” (겔 48:12)이라 했습니다. 성전이 이 땅 안에 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제사장 분깃”에서 산다는 것은 영적으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배로 드려진 삶입니다. 백성들을 위한 기도로 드려진 삶입니다. 둘러 쌓인 백성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거룩한 성물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분깃인 성물을 안주거나 빼앗아 먹으면 안됩니다. 땅도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제사장의 사역의 영역을 침범해서도 안됩니다.
[요한복음 4:32] 2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사울 왕도 사무엘이 드려야 하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망령된 행동을 하다가 왕의 자리를 다윗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삼상 13: 9-14),
웃시야왕도 자기가 분향하다가 나병이 생겨 평생 별궁에 갖혀 살다가 죽어 왕들의 묘실에도 못들어가고 접한 땅 곁에 장사되었습니다 (대하 26:16-23)
오늘날 우리들이 사역을 하면서 다른 동역자들의 기름부으심을 침해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물로 드려진 땅 안에서도 제사장 분깃, 레위인의 분깃, 헌신된 백성의 분깃이 정확히 상하로 수평으로 그어 정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헌신된 그들 간에도 서로 침범하면 안되는데, 하물며 일반 백성들이 제사장 분깃을 침범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훼손되어지게 되고 눈동자를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슥 2:8).
② 두 번째로, 이 예물로 드려진 땅에는 레위인의 분깃의 땅이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지파입니다. 이들에게 제사장 분깃과 같이 가로 25,000척, 세로 10,000척의 땅이 주어졌습니다. 레위인들이 집을 짓고 살 터전입니다.
▶ 오늘날 “레위 사람들의 분깃”에서 산다는 것은 영적 레위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레위인도 다른 돈벌이를 하지 않고 성전에서 제사장을 도와 하나님께 봉사로 드려진 삶입니다. 이들도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백성들이 주는 십일조로 살게 됩니다. 예배를 위하여, 백성들의 영적 삶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역시 이들에게 주어진 분복이 있습니다. 이들도 욕심을 부려 제사장 땅이나 아래 성읍기지를 탐하면 안됩니다. 물론 다른 백성들도 레위인의 땅과 양식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해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물로 드려진 땅과 그 안에 사는 사람과 그들을 위하여 주어지는 모든 성물이 하나님의 것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세 번째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아니지만 각 지파에서 온 일반 백성들이 온전히 헌신하여 일하며 사는 “여호와 삼마”라는 성읍과 성읍기지가 있습니다.
크기가 가로 25,000척, 세로 5,000척입니다 (13.3km * 2.66km)
성읍의 기지를 성경은 속된 땅 (히, 홀, 겔 48:15)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원어적으로 보통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드려진 땅입니다. 성읍기지는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 땅입니다 (겔 48:18-19). 성읍은 그들이 집을 짓고 일하며 사는 곳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지만 오늘날로 본다면, 일반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께 그들의 삶 전부를 온전히 헌신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일반 백성들로서 성전과 가장 가까이에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더 알기 위해서는 새 예루살렘 성을 보면 됩니다.
이 성읍은 새예루살렘 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읍기지에 있는 성읍에는 12지파의 12문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도 동일하게 12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지파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들어오는 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성문 위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있고, 문은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성읍도 네모가 반듯하듯이 새예루살렘 성도 길이와 너비가 같은 네모가 반듯합니다. (계 21:9-21).
그러므로 성읍은 새 예루살렘 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단장된 어린 양의 신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계 21:9-27), 보석과 같이 단장된 신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 지파에서 나와 성읍에 사는 사람들은 신부급의 사람들이 사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든 삶을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땅도, 생명도, 자식도 ,사업장과 직장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읍에 살 수 있는 영적 단계에 있는 자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들이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사명은 아닙니다. 그러나 헌신된 사림인 것입니다.
오늘날 각자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살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주님 것으로 생각하며 주님 나라를 위해 산다면 그들이 성읍에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이 성읍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인데 그 뜻이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다”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 함께 하듯이 성읍에 있는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이 성읍에 사는 자들이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자인 것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항상 함께 했습니다. “함께”했다는 말씀이 수차례 나옵니다. 그리고 구약 인물 중에 제대로 쓰임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도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창 39:2,21),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함께했습니다. 다윗도 함께 했습니다 (삼상 18:12, 삼하 5:10)
죄가 있으면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입니다 (창 6:3). 그런데 함께 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성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오늘날 영적으로 이 성읍에 사는 사랍입니다.
이제 성읍에 사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겠습니까?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고 싶은 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일할 기업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성경적인 것입니다.
④ 예물로 드려진 땅 안에서 이 세 영역이 겹침이 없이 자기들의 분깃이 있음을 봅니다.
어떤 분은 제사장적 삶, 어떤 분은 레위인의 삶, 어떤 분은 헌신된 일반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다른 헌신된 분들과 영역 침범없이 조화롭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각각 기름부으심 안에서 자기의 영역을 유지하면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남의 사역의 영역을 침범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상하 경계가 수평으로 그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레위인이 제사장 직분을 탐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인 제사장 시대로 누구나 제사장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거룩함의 단계는 있는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갈 영적 단계가 되지 못하는데 그 영역을 침범하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여 위험한 것입니다. 기름부으심에 따라 사역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역사적으로 고라 일당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한 것은 레위인 고라족속이 제사장직을 탐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채로 땅속에 묻힌 것입니다 (민 16:8-33).
그러므로 남의 사역 영역에 들어가 감 나와라 대추 나와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름 부으심 안에서 충실히 사역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사는 교사로서, 음악하는 자는 음악하는 자로서, 예언하는 자는 예언하는 자로, 치유하는 자는 치유하는 자로, 말씀 전하는 자는 말씀 전하는 자, 전도하는 자는 전도하는 자로 로 말입니다.
남이 부족해도, 잘못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조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혼자 제사장, 레위인, 헌신된 성도의 영역까지 다 하고자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수평으로 구역이 분깃이 그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상하로 구불 구불하게 경계선을 그어서 침범해서 안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사역의 경계선을 침범하지 마세요. 남의 이익의 경계선도 침범하지 마세요.
헌신되었다고 해서 다 가지고자 욕심, 탐욕을 부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물로 드리는 땅 주변에 있는 각 지파의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누가 잘 나고 못 나고 해서 무시하고 편을 가르고 줄을 대어서도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거저, 제사장의 사명, 레위인의 사명, 헌신된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성령이 거하는 전이 제대로 세워져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자신의 사명을 알고 그것을 잘 감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예물로 드려진 삶을 살 것입니다.
직선으로 그어진 영역이 있음을 잘 아시고 새 성전에서는 자기의 기름부으심 안에서 사역하여 마침내 저 천국에서 하나님 영광 가까이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번에는 성전의 각 부분에 대한 의미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