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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4:12-22> 빼앗긴 법궤,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과 이가봇, 사무엘의 등장, 법궤를 모셔라, 하나님이 임재하는 교회 ,아비나답과 오벧에돔의 집이 되라 (참고 말씀: 삼상 7:1-17)
1. 말씀의 배경
오늘 말씀은 사사시대 후반에 있었던 말씀입니다. 이제 엘리 제사장이 죽고 사무엘(1132-1015, 향년 117세 정도)이 등장하려는 때입니다. 블레셋의 압제하에 있던 시기로 사사 삼손과 입다, 입산, 엘론, 압돈이 활동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매우 어두운 시기입니다.
영적 상태가 어두우니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벡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스라엘이 패하여 전체 3만 4천명 가량의 군인들이 죽습니다. 그리고 전장으로 가져갔던 법궤도 빼앗기고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장에서 죽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엘리도 뒤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주전 1102년, 삼상 4:17-18)
▶ 성경은 굳이 엘리 제사장이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한다고 했으며(삼상4:15), 비대한 까닭에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4:18).
→ 이것은 그의 영의 눈은 어두워졌고 육신의 기름진 것만을 추구하여 비대해진 그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엘리 제사장 당시의 영적 상황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 3:1)
더구나 이 패배의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이며 비느하스의 아내가 난산을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고 죽고 맙니다.
[삼상4: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예언한 그 저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 2:27-36)
→ 이가봇의 뜻은 “영광이 떠났다”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법궤를 빼앗겼으니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마지막 장에 사사시대의 영적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없으므로 입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런 영적으로 암흑과 같은 시대가 되니 전쟁이 터지고 법궤가 빼앗기게 되는 어려움이 다가온 것입니다.
이런 암흑기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등장시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진정한 왕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다윗왕의 시대를 열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가 기름부어 세운 사울 왕은 다윗 왕을 등장시키기 위한 과도기적 왕에 불과합니다.
▶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시대도 아마 “이가봇” 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더러운 영이 사람들과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거하실 거룩한 곳이 많지 않습니다.
이 상태대로라면 머지 않아 실제적인 전쟁도 터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온 세상이 종말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도록 사무엘과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하나님을 찾도록 하여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이 사무엘과 다윗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빼앗긴 법궤를 다시 마음의 성전에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2. 성막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법궤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여 군사 4천명 가량이 죽으니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실로의 장막에 있던 법궤를 전장으로 가져옵니다(삼상 4:4). 법궤는 거룩한 성막 지성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 의해 법궤를 전쟁의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거룩함이 훼손되었습니다. 전쟁에 지고 있으면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의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법궤를 이용하여 전쟁에서 이겨보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유익을 위하여 도구로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 그래서 이스라엘은 또 패하여 블레셋에게 3만 명의 군사가 죽고 법궤도 빼앗기고 법궤를 지키고 있는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습니다 (삼상 4:11). 이들도 제사장들입니다. 성물을 함부로 갈취하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법궤 옆에 있을 만한 거룩함이 없던 자들입니다 (삼상 2:12-23). 그래서 그들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하면 법궤 옆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후에 법궤는 블레셋의 아스돗, 가드, 에그론을 거쳐 다시 이스라엘 지경인 벧세메스로 7개월 만에 돌아옵니다(상상6:1)
▶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 성읍에 죽음과 독종이 있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 다른 우상들은 인간들이 찾아와야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는 하나님 스스로 구원하여 돌아온 것입니다.
이후 법궤는 이스라엘의 벧세메스로 보내졌고 거기서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오만) 칠십 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삼상6:19)
→ 궤를 단지 눈으로 본 것인지 그 속을 본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성경은 궤를 만지는 것도 보는 것도 안됩니다 (민4:5-6,15)
제사장 외에는 성소 안에만 들어가도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민4:20), 그래서 법궤를 이동할 때에도 칸을 막는 휘장으로 증거궤를 덮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또 순청색 보자기를 덮는 것입니다(민4:5-6)
대제사장도 법궤를 그냥 볼 수 없고 향연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레16:13)
→ 벧세메스에서 죽은 인원이 많은 것을 볼 때 덮개처럼 덮여 있는 속죄소가 그들을 통하여 법궤 위에서 벗겨졌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성경에도 “They had looked into the ark of the LORD” 그 안을 들여다 본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속죄소가 벗겨졌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법궤 안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 증거의 말씀, 심판의 말씀이 속죄소라는 것으로 덮혀져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사는 것입니다.
벗겨지면 속죄의 은총은 없어지고 말씀대로 심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속죄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피입니다. 그것으로 덮혀 있으니 우리들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소입니다. 그곳이 시은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을 들여다 본 자나 보지 않은 자들도 함께 수없이 죽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속죄소를 벗겨내면 그 앞에서 살 자가 없습니다.
▶ 법궤가 벧세메스 사건을 겪은 후에 다시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졌습니다. 그곳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다 놓았으며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법궤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 기럇여아림은 “수풀의 성읍”이란 뜻입니다.
아비나답, 엘리아살은 분명히 레위인일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 제사장 엘르아살 (=엘리아살)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제사장 계보의 사람일 것입니다.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 집에서 법궤가 거의 99년을 보냅니다.
▶이후에 다윗시대에 와서 법궤가 다윗이 만든 장막으로 옮겨집니다. 물론 처음에는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잡으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고 다윗성으로 모셔오지 못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법궤가 가게 됩니다. 법궤가 오벧에도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온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삼하 6:10-13, 대상 13:13-14))
[사무엘하 6: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 법궤가 있는 곳에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 속에 임재가 있으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면 복을 받습니다.
→ 그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말을 듣고 다윗은 나라 전체가 복을 받고자 법궤를 다시 다윗성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사무엘하 6: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3. 법궤가 돌아 오도록 하기 위하여
법궤가 왜 이토록 오래동안 성막으로 돌아오지 않고 아비나담의 집에 있었을까요?
저는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아벡 전투 이후 곧 벱궤를 빼앗긴 이후에 실로에 있는 장막이 파손되었는지는 모르나 이후에 놉에 장막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삼상 21:1)
※ 가나안 땅에서의 성막의 이동 장소 : 길갈 → 실로 (1405-1102) → 놉 (1102-1020) → 기브온 (1020-959)
분명히 법궤가 들어갈 성막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막에 들어가지 않고 한 개인의 집에 있었냐? 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무엘이 사역을 하고 있었던 시기에도 말입니다.
→ 이것은 이스라엘이 법궤 곧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할 만한 영적인 상태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영적으로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는 개인의 아비나답과 다윗시대의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수풀이 많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삼상7:1) 거룩하게 구별된 곳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넒은 곳 화려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곳을 찾으십니다.
이 법궤는 다윗시대에 가서 다윗성에 지어 놓은 장막으로 들어갑니다. 이후 솔로몬 시대에 솔로몬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다윗이 법궤를 모실 만한 그릇이 되고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법궤를 이스라엘 전체의 성막에 모실 만한 거룩함이 된 것입니다.
▶ 그동안 나라가 법궤를 모실 만한 영성이 안되니 영성이 되는 개인의 집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때가 되어 다윗이 하나님을 섬길 만한 영성이 되니 그 때에 다윗의 장막으로 법궤가 옮겨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약 100년 동안 개인의 가정에 법궤가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 법궤를 모실 영성이 안되면 법궤가 가까이 있어도 재앙이 다가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블레셋, 벧세메스, 베레스웃사)
▶ 아무리 웅장해도 화려해도 거룩함을 잃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초라하지만 작은 가정이지만 거룩함을 유지한다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 우리 교회가 가정예배를 중시하는 이유입니다. 큰 교회 큰 장소가 아니어도 화려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수풀과 같은 곳이라도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만한 영적인 상태가 되면 다른 어떤 장소보다 복 받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도 법궤가 있으면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하나님 거하신다면, 하나님께서 통치자가 된다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만 법궤를 모실 만한 영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법궤를 모시도록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날 법궤를 모신다는 것은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가 20년 7개월 지났을 무렵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삼상 7:2). 그 이후에도 70년 넘게 성막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7: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 사모하다는 것은 히브리어 “나하”로써 울부짖다, 슬퍼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심으로 인하여 그들은 울부짖듯이 슬퍼한 것입니다.
개인도 회사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함이 있다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냥은 안됩니다.
4. 진정으로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이루어진 미스바와 같은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에벤에셀의 축복이 오고 진정한 평화가 다가 옵니다(삼상7:3-14).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만 향하여 그만 섬기라 (삼상7:3)고 했습니다.
② 미스바로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며 여호와께 죄를 회개를 했습니다 (삼상7:5-6)
▶회개하니 블레셋을 이기게 해 주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우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하고 있을 떼 블레셋이 쳐들어옵니다. 회개를 못하게 하기 위한 사탄의 계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블레셋을 굴복하게 하십니다.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니 큰 우레를 발하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그들이 잘 싸워서 군사력이 우세해서 이긴 것이 아니잖습니까? 승리의 비결은 회개로 온전한 돌이킴입니다.
→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앞 세우고 나아가면 승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벤에셀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삼상7:12).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도움의 돌을 세우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빼앗겼던 땅 에그론에서 가드까지 회복합니다 (삼상 7:13-14). 그동안 우리들은 많은 것을 빼앗겼습니다. 건강적으로 간도 빼앗기고 위도 빼앗기고 관절도 빼앗기고 그래서 여기저기 아팠습니다. 더구나 이 자식 저 자식까지 빼앗겼습니다. 재물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다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가 다가옵니다 (삼상7:14).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은 평안합니다.
▶나라에 한 사람이 제대로 영적으로 서 있다면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블레셋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후에도 벧엘, 길갈, 미스바, 라마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길갈은 수치가 굴러가는 곳입니다. 미스바는 망보는 곳이며 회개하는 곳입니다. 라마는 사무엘의 집이 있는 곳으로 높은 곳 고지입니다 (삼상1:1,7:17)
앞으로 우리교회의 사역 모델입니다. 전국 여기저기 이런 영적인 사역지가 생겨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봉화, 성주, 시흥 등)
라마처럼 우리의 집도 이미 사역지가 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집이 예배하는 처소인 영적 라마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영광이 있는 법궤가 모셔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장막이 우리들 가운데 쳐지는 것입니다 (계7:15). 하나님의 장막이 쳐진 곳에 임재가 있는 것입니다. 법궤가 모셔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가정이나 회사이나 교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장막이 쳐져서 법궤가 모셔짐으로 임재가 있어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