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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회복을 꿈꾸는 영혼들에게 띄우는 편지(통권 65호)
예 수 사 랑 • 가 족 사 랑
11권 1호 2010. 1. 1. Daum Cafe: 가족치유상담센터
국토순례여행에서 얻은 교훈
2010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12월 21일 제가 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을 출발해서 국토순례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두 달 정도에 걸친 여행을 계획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막상 출발하려고 하니까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고요. 추운 겨울에 이것이 무슨 엉뚱한 짓인가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땅의 이곳 저곳을 발을 디디면서 걷고 싶었고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지역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싶었습니다. 떠나는 날 건강검진을 해야겠기에 오전에 출발하지 못하고 오후에 출발했습니다. 오후에 출발하려고 했지만 왜 그렇게 떠나는 여행이 그렇게 미련이 많은지요. 우리가 천국에 갈 때에도 이 땅에 미련이 많겠구나 하고 집에 와 있던 아들 은섭이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양주시와 구리시가 만나는 왕숙천에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지나가니까 한강이 나왔고 김포까지 가려는 계획을 그만두고 뚝섬까지 가는 지하철과 버스로 김포 고정교회까지 갔습니다. 김포에서 강화도를 거쳐서 인천에 들어왔습니다. 인천에서 시흥시와 안산시를 거쳐서 화성시 진토리교회에서 12월 25일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26일 날 화성시를 출발해서 평택시를 거쳐서 아산방조제를 넘어서 충남 아산시로 들어왔고 당진과 서산과 태안을 거쳐서 안면도남단까지 왔습니다. 안면도의 영목항에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영목항에서 배를 타고 대천항에 들어왔고 서천군을 거쳐서 금강하구둑을 거쳐서 군산시에 들어왔습니다. 충남에서 전북으로 도로로 걷는 감회는 새로웠습니다. 금강하구둑을 건너면서 배낭객 한 명을 만났는데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요. 여러 명의 배낭여행객을 만날 것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군산시에서 익산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익산시에서 완주군 봉동읍까지 갔습니다. 오늘 길에 삼례읍에서 동학농민의 길을 지나면서 역사의 한 현장을 지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봉동읍에서 전주를 거쳐서 임실과 순창을 거쳐서 전북에서 전남으로 넘어갔습니다. 현재는 전남 곡성군 입면에 있는 마삼교회에서 새 날을 맞이하면서 이 글을 적도 있습니다.
여행중에 만났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해 준 모든 지인들이 감사할 뿐입니다. 찜질방에서 보내면서 스쳐갔던 많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만남이지만 서로가 얼굴을 스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도로를 걸으면서 나와 마주쳤던 모든 분들도 감사합니다. 은혜가 임하면 열심히 손을 흔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이 길손에게 반응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답례를 했고 어떤 경우에는 경적을 울리면서 응답을 했습니다.
조국의 산야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산과 농토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시골과 도시들도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도로는 얼마나 잘 정비가 되었는지요. 이 땅은 하나님의 많은 축복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났던 사람들도 너무나 친절했고요, 정감이 갔습니다.
여행길은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가는 자의 행복이 있었습니다. 여행중에 주님은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받은 은혜는 기도가 되었고 혼자 걷는 길에 마음껏 찬양을 했습니다. 지역을 지날 때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나온 지역과 그 지역주민들과 그들의 가정을 위한 중보기도가 더욱 구체적으로 되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물론 이 땅에 기쁨과 행복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온갖 더러움이 있는 것처럼 겉으로는 평안함이 있지만 그 내면에는 온갖 염려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행복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온갖 아픔이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보이는 현실에도 부정적인 면이 있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도 분명히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역사하시고 너와 나 사이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부정을 넘어서 긍정을 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환란도, 핍박도, 어떠한 땅의 것도, 어떠한 사탄의 세력과 어두움의 세력도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승리와 평안함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고 승리의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2010년 한 해가 우리들에게 승리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계획하는 범사에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전남 곡성군 입면 마전리에서 김영근목사<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인> ***
2010년 1월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주님 모시고 살다보니 2010년이 1월의 초반이 되었습니다. 국토순례여행을 하면서 이 땅이 정감이 가면서 이 땅의 백성들을 더욱 섬기며 사랑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이 땅을 떠나가겠지만 우리들의 후손들은 또한 이 땅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에게 치유와 회복이 된 이 땅을 물려주는 것은 우리들이 중요한 사명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땅의 아픔들도 많지만 그 아픔이 있기에 성장도 있는 것같습니다. 이 땅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더욱 기도합시다.
1. 기도시간
매일 오전 6시, 낮 12시, 저녁 9시에 개인이나 혹은 그룹별로 1회 10분 이상씩 하면 좋습니다. 시간 여건상 하루 세 번이 불편하면 편리한 시간에 한두 번을 선택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은 10분 이상씩 하기를 권면합니다.
2. 중보기도참여자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기를 원하는 누구나(개인, 교회, 기관별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기도하기를 원하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3. 기도의 대상
중보기도참여자가 사는 <시, 군, 구>에 있는 가정들을 대상으로 기도합니다. 저는 경기도 남양주 금곡동에 살고 있어서 저의 기도대상은 <남양주시>의 가정들입니다.
4. 기도의 제목
1) 일반기도제목
첫째, 가족구성원들의 상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옵소서!
둘째, 거절의 아픔을 겪는 지체들이 나를 수용하시는 주님을 경험케 하소서!
셋째, 주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가족 안에 용서를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넷째, 세상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자신과 주변을 보게 하옵소서!
다섯째, 가족들의 생각이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여섯째, 가족들의 언어가 불평과 원망에서 감사와 축복의 언어로 바뀌게 하소서!
일곱째, 가정의 신맛(미움, 정죄, 음란)이 단맛(사랑, 격려, 순결)으로 바뀌게 하소서!
여덟째, 이웃을 향한 적대감이 환대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하소서!
아홉째, 성도들이 바리새인들의 마음(교만)이 세리의 마음(겸손)으로 변하게 하소서!
열 번째, 가족식구들의 마음에 두려움이 떠나가고 주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옵소서!
열한 번째, 식구들이 사탄과 과거와 세상과 탐욕의 묶임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열두 번째, 식구들이 예수님을 닮은 상처를 경험한 진정한 치유자로 살게 하소서!
2) 특별기도제목
첫째, 지역과 계층간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허락하옵소서!
둘째, 북한 땅에서 굶주림과 억압으로 고통당하는 가족들에게 치유를 허락하소서!
셋째, 도박중독, 마약중독, 알콜중독 가정들에게 치유와 회복을 주옵소서!
넷째, 기후의 재앙으로부터 이 지구촌을 회복시켜주시고 자연과 친화하게 하소서!
국토순례여행(1) - 12월 21일
출발하면서
거창하게 국토여행을 출발한다고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떠나는 날은 무척이나 망설여집니다. 특히 건강검진을 연말까지 받아야 하기에 아침 일찍 서둘러서 양병원에 들려서 건강검진을 마쳤습니다. 암계통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소변, 대변, 피검사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비만이 문제가 된다고 문진실에 있는 의사선생님이 주의를 요청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미련이 많은지 둘째 아들 은섭이에게 하나님나라를 갈 때에도 미련이 참 많을 것이라고 맗했습니다. 그래요, 떠나기로 했으면 떠나야지요. 혼자가는 길은 외롭겠지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여행에 관한 모든 것을 조건이 허락되면 카페에 올리고자 합니다. 아름답고 풍성한 여행이 되도록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의미있고 당신과 동행하는 멋있는 여행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부족한 제가 주님의 긍휼을 경험하시는 귀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옵소서!"
남양주시 도농쪽에서 왕숙천을 향했습니다. 왕숙천은 한강의 지류로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한강이 나옵니다. 구리시와 남양주시 사이를 흐르는 왕숙천을 구리시에는 구리시의 허파라고 언급해 놓았습니다. 냇가에는 향가로이 철새들이 노닐고 중간에 낚시질을 즐기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운동에 열심있는 분들이 걷고 뛰고 또 자전거를 타는 모습들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면서 세워진 서울외곡순환고속도로가 보입니다. 한 시간 반 정도 걷다보니까 한강에 도착했습니다. 구리시민공원를 지나가면서 지난 가을에 꼭 들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코스모스 축제가 있었던 곳입니다. 한강변 도로를 거닐면서 강남쪽과 강북쪽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길가면서 예수님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부르면서 짧은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 속에 깊은 감동이 솟아올랐습니다. 주님, 나의 주님입니다. 주님, 나의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기쁨이고 나의 소망입니다. 어느듯 천호대교를 지나고 올림픽대교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다리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강남의 아파트 숲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대한 아파트의 군락들을 보면서 내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반에는 저곳이 허허 벌판이었는데 한국의 최고급아파트군락이 되었으니 세월이 많이 흘러간 것 같습니다.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걷기 시작한 지가 네 시간 정도가 흘렀습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옵니다. 오늘 저녁에 머물 곳은 고정전원교회였습니다. 그곳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곳이어서 7호선 뚝섬유원지역에서 전철을 타고서 다시 5호선을 바꿔타고 고정교회에 까지 갔습니다. 고정교회를 담임하는 김영철목사님은 나의 고등학교(신일고등학교) 2년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사모님이 준비해놓은 식탁을 함께 나누면서 그 동안 쌓였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여행 첫날밤의 평안함을 맛보았습니다. 피곤한 여행객에게 주님은 평안한 잠을 주셨습니다.
국토순례여행(2) - 12월 22일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는 강화도에서
고정전원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둘째날을 출발했습니다. 교육관에서 모이는 새벽기도회는 은혜가 많았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린 후에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을 했습니다. 출애굽기를 묵상했는데 여러가지 많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세의 소명을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고난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했습니다.
아침 조반을 먹은 다음에 강화를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새날의 출발은 생생한 하루였습니다. 김포에서 강화로 가는 큰 길을 만나기전까지는 도로는 2차선이었습니다. 인도나 자전거전용도로가 없는 곳에서는 위험한 요소도 있었지만 그래도 유쾌한 여행이었습니다.
중간에 문수산성교회라는 교회가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감리교회였는데 예배당의 문은 잠겨져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말씀을 보면서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휴식을 취하면서 피곤한 몸을 쉬게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 이 교회를 축복해주세요."
강화대교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긴다리 아래로 한강과 예성강이 만나는 큰 물이 흘러갔습니다. 다리가 생겨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역사의 소용돌이가 본토와 강화도를 사이에 두고 생겨났는지 모릅니다. 강화도쪽에는 철새들인 오리들이 한가롭게 바닷가에서 노닐고 있었습니다. 아무추어 사진사인데 카메라에 담아보자고 애를 썼씁니다. 강화대교를 건너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 잠시만 건너는 곳인데 걸어가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강화대교를 건너고 나서 왼쪽으로 향했습니다. 이 도로가 강화도 동쪽 해안도로입니다.
점심식사시간이 되어서 진해추어탕이라는 집을 찾았습니다. 상호명이 진해라서 내가 목회했던 진해지역을 생각하면서 들렸는데 진해의 상호명은 경남 진해가 아니라 강화도내의 이 지역의 특별한 지역이름임을 알았습니다. 손님들이 제법 많이 모였습니다. 음식도 맛이 있었습니다. 이 번 여행을 하면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한 시간 정도 말씀묵상을 하고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식사를 한 뒤에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서 주님의 긍휼함을 구했습니다.
식당을 나와서 보니까 조봉암선생의 공적비가 세워져있었습니다. 조봉암선생님이 이곳 강화의 빈농으로 태어나서 한국의 정치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승만정부 당시에 간첩혐의로 사형을 당했지만 한국 역사상 휼륭한 지도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2000년 들어와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공적비가 세워졌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종종 생각하지만 뚜렷한 결론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와 좌의 접근방법은 뿌리깊은 차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결국 결론은 어떤 당도 아닌 예배당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갑곶천주교성지를 가보았습니다. 외세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었던 천주교회는 초창기에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강화도는 외국 문물이 들어오는 길목이어서 이곳에서 순교를 당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곳에 있는 순교자의 묘의 주인은 순교당한 많은 순교자들의 시체를 수습해서 장례식을 치뤄준 일을 했습니다. 신앙의 선진들의 귀한 희생이 아름답습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까 강화역사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겨울방학동안에 체험학습을 나오는 두 남매들과 그들의 인솔자로 온 부모님에게 어떤 가이드 한 분이 열심히 진열물들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지루한 듯한 내용들이지만 아주 흥미있게 아이들이 경청했습니다. 나는 강화도의 넓은 섬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간척지라는 것을 알고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강화도에는 많은 양식이 필요했기에 넓은 농토가 필요해서 간척지를 만든 것 같았습니다.
기념관을 나와서 갑곶돈대를 보았습니다. 이곳은 해안초소로서 돈대를 만들어서 침략하는 외국군대와 전쟁을 벌였던 곳입니다. 조상들의 항전정신은 귀한 것이지만 그 전쟁이 올바른 전쟁이었느냐 하는 것을 늘 역사의 의문점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것이 대원군의 쇄국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된 것을 보면서 안타깝습니다. 이곳에 가까운 북한을 보더라도 그들의 쇄국정책이 온 인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해변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곳곳에 팔랑개비가 한가로이 돌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길손을 위한 준비가 너무나 아름다워보입니다. 초지대교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아직도 멀어서 열심히 발을 옮겼지만 피곤한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누산교회 문수근 목사님이 초지대교까지 마중을 나왔고 아직 초지대교에 도착하지 못한 나그네를 위해서 내가 걷고 있는 현장까지 왔습니다. 귀한 종의 환대하는 마음이 감사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들과 저녁식사를 나눈 후에 누산교회 사택으로 왔습니다. 발바닥은 물집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문수근목사님댁에서 하루는 머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모님은 좁은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염려를 많이 하신 것 같았습니다. 좁은 집이지만 귀한 환대 속에서 평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교회앞의 도로가 확장되어서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늘 신실한 섬김을 감당하는 문목사님은 그 때에는 방문해서 평안하게 머물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물집치료를 한 뒤에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올렸습니다.
국토순례여행(3) - 12월 23일
인천에서 보낸 하루
누산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분들의 귀한 기도가 아름다웠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기도와 섬김이 교회를 아름답게 세웠던 것같습니다. 나그네도 이곳에서 함께 기도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김포에서 강화에 가는 길은 왕복2차선의 도로였는데 현재는 왕복4차선으로 확장되었지만 이제 또 이 도로를 확장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산교회의 바로 앞까지 도로가 확장된다는 이야기를 문수근목사님이 했습니다.
문수근목사님은 내가 경남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 당회장으로 계셨던 분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다음에 문목사님이 양촌면의 면소재지가 있는 양곡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걷기 순례 여행이어서 차를 타려고 하다가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걷는 길은 매우 위험한 도로였습니다. 인도가 없는 차도밖에 없는 곳이었고 주변에는 김포장기지구 아파트 건설지역이어서 민가도 없는 차도만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위험한 곳이어서 얼마를 걷다가 인천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인천에 들어서서 다시 버스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검암지역에 가니까 한강과 서해안을 있는 경인운하건설 현장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땅을 파서 배가 지나가는 운하를 만드는 모습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걷다보니까 공원이 있어서 그곳에사 쉬면서 말씀을 보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걷다가 부평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부평역에서 내려서 서점에 들려서 간단한 대한민국 전도가 있는 지도를 샀습니다.
차를 타고 동인천 역까지 갔습니다.그곳에서 자유공원까지 걸어갔습니다. 이곳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습니다. 너무나 귀한 분입니다. 미국 육사출신 중에서 가장 귀한 분입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 2차 대전이 일어나서 다시 근무를시작해서 태평양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서 성공해서 한국동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귀한 분입니다. 늘 이 분이 썼던 자녀를 위한 기도문은 언제 묵상해보아도 감동적인 기도입니다.
한 때에 이곳에서 좌파진영의 사람들이 북한침략을 좌절시켰던 맥아던장군을 외세침략의 대표자로 몰아서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어거지를 썼던 여러 해 전의 사건이 생각이 났습니다. 생각이 다르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거던요.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은 옳고 네 생각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너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진리라고 함부로 주장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까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와 미국의 수교는 한국발전에 큰 일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역사적인 관계를 조명해보면 아쉬운 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있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가장 대표적인 선순환의 관계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곳에 연인끼리 사랑을 나누는 커플이 있었는데 내가 가니까 둘 사이의 행동에 약간은 멋적은 듯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은 조금은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내려서 차이나타운으로 갔습니다. 끌끔하게 정리된 차이나 타운은 너무나 깨끗한 풍물이었습니다.이곳에 사진을 한장 찍었습니다. 많은 중국 음식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벌써 발은 부르텄지만 월미도를 향했습니다. 월미도 가는 길은 인천의 옛모습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부르튼 발로 월미도를 올라가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발이 약간 부르터도 힘드는데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월미도 정상을 올랐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전경에 넋을 잃을 정도 였습니다. 너무나 멋있는 인천항구였고 너무나 아름다운 월미도 공원이었고 특히 월미도 전통공원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월미도 기행을 마치고 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부개역에서 신학동기동창 목사인 조환국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나그네를 환영하기 위해 바쁜 목양 중에도 이곳까지 왔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귀한 말씀에 은혜를 받았고 이곳에서 개척해서 20년이 지나면서 아름다운 교회가 세웠습니다. 섭리하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고요. 충성스럽게 귀한 헌신으로 목양했던 사랑하는 종의 사역에 감동이 왔습니다. 저녁에는 교회 게스트 룸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동안 양말과 속옷을 몇 가지를 세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본교회와 조환국목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축복해주세요."
국토순례여행(4) - 12월 24일
시화호를 바라보면서
예본교회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충분한 안식을 누렸습니다. 새벽기도는 교육관에서 드렸는데 마루바닥에 방석을 놓고 드렸습니다. 깊은 은혜와 영감이 임했습니다.
힘든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여기까지 지금까지 인도하여주신 주님의 긍휼하심이 감사했습니다. 새벽기도 후에 카페에 들려서 글을 적었습니다. 조목사님이 유명하다는 설렁탕집으로 안내해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나그네의 여장을 정리한 뒤에 교회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조목사님이 부천버스터미널까지 인도해서 안산을 거쳐 목포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안산까지는 이천원이었습니다. 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오이도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오이도까지 걸어볼 심산이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이도는 아주 먼 곳이었습니다. 30분 정도 걸었는데 발바닥이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좀 가다가 오이도가는 버스를 탔는데 반대방향이었습니다. 종점에 도착해서 깜빡 잠이들었습니다. 운전기사가 종점에 왔는데 내리지 않는다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승객이 좀 졸 수도 있지 왜 그렇게 소리지르냐고 한 바탕할까 하다가 그냥 내리고 말았습니다. 운전기사가 여유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길을 건너서 역방향으로 다시 버스를 탔습니다. 오이도까지 가는 버스였습니다.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요. 오이도는 안산시가 아니라 시흥시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안산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요. 오이도역에서 내려서 시화호를 향해서 해안도로를 찾았는데 차지 못하고 남서쪽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걸었습니다. 조용한 공원이 있어서 준비해 온 먹거리를 가지고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축구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는데 열심히 하면서 서로가 의견이 맞지 않았는지 치고 박고 그렇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오래 전에 저런 경험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벌써 두 아들들이 저 나이를 훨씬 넘겼으니까 많은 세월이 흘러간 것이지요.
공원뒤에 나 있는 산책길은 걷기에 아주 편한 흙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 짓물려진 발바닥은 여전히 고통이 심했습니다.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골고다를 향했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러한 조그만 상처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예수님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픈 발을 가지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인내함이 필요했습니다. 이곳은 안산시가 아니라 시흥시라는 깨달았고 반월공단은 안산이지만 시화공단은 경기도 시흥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옥구공원이 있었는데 공원이 참 잘 가꿔졌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공원 가운데는 등산하기에 알맞은 산도 있었는데 오르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발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계속해서 걷는 고통을 무릅쓰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오이도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대부도를 가는 버스가 있으면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가지는 못했습니다. 공원의 전망대를 오려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서 올라가지를 못했습니다. 내려와서는 바닷가를 바라보니까 썰물이 된 상태에서 갯벌이 넓게 펼쳐졌습니다. 갯벌이 생명의 보고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 갯벌속에는 귀한 생명체들이 풍성하게 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시화호를 둘러싼 해안도를 걸었습니다. 사화호안쪽에는 매립을 하면서 여러가지 공사를 벌여놓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를 메워서 공장부지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발전을 실감했습니다. 많은 공단들이 간척지에 세워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각해보니까 한국에는 간척지가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 강화도의 약 1/3 정도는 간척지를 활용해서 육지가 되었습니다. 부산에게 가면 부산역과 부산 시내의 옛 중심지인 광복동과 남포동도 간척지를 활용해서 도시로 만든 것입니다.
아픈 다리로 걸으면서 주님을 계속해서 묵상했지만 원하는 큰 은혜는 임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주님과 교제를 하는데 침묵하는 주님을 만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이 그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도 지나가고 다리도 아파서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버스를 오지않아서 그냥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넓은 길에 혼자 거닐면서 우리 인생은 단독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몇 분들이 성탄축하 멧세지를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시화공단안에 있는 작은 시내를 따라 걸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안산역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전철을 타기 전에 덩킹 도넛에 들려서 덩킹 도넛을 샀습니다. 안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상록수역까지 갔습니다. 전철을 타고 퇴근하는 분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상록수역에서 내려서 99-1번 버스를 타고 부곡 플라자에 내려서 김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조금 기다리니까 목사님이 나오셨습니다. 김목사님은 건강때문에 교회를 일찍 은퇴하시고 진토리를 교회를 섬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목사님 댁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직장생활을 하시는 사모님이 오셔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김치찌게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김목사님은 3남매를 두셨는데 따님 두 분은 결혼하셨고 아들님은 현재 미혼인데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찍 은퇴했지만 열심히 의미있는 일을 찾아서 지내고 있는 김목사님의 신실함이 마음에 감화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선배이고 목회의 선배이신 김목사님에게서 인생의 경륜이 묻어났습니다. 성탄절전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는 못했지만 정말 조용한 성탄절 전날을 보낸 것 같습니다. 불현듯 가족이 생각이 나서 아내와 아들과 전화를 통화했습니다. 역시 가족은 가장 소중한 것같습니다. 늘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는 하지만 늘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아쉬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이러한 아쉬움속에서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주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임마누엘이 모든 인생들에게 사죄의 은총과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국토순례여행(5): 12월 25일
진토리교회에서 성탄절을 보내면서
성탄절 아침입니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성탄절을 매우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목회를 내려놓고 교수사역만을 하고 있어서 성탄절을 한가하게 맞았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김태현목사님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사모님과 한 자매님과 함께 진토리교회로 향했습니다. 성탄절 예배는 가정별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가정별 모임에는 여러 가지 순서가 있었습니다. 간증도 있었고 특순도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기악연주도 좋았고요. 한 소대(구역)에서 아이들이 율동을 곁들인 찬양은 참으로 감화가 되는 순서였습니다. 남편을 먼저 하늘 나라로 보내고 자신의 삶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한 삶이라는 것을 간증했던 자매님의 간증은 마음 속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사는 딸 아이의 미소가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간증을 했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 연구원으로 일생을 보낸 권사님 한 분은 삶을 살면서 나를 버리지 못하면 주님을 시인하지 못한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한 소대에서는 남자아이들로 된 특순을 했는데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을 했던 어린 친구들의 섬김이 복되었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소대원 한 분은 현재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모니커 연주를 하면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말씀 순서를 맡았는데 창세기 11장과 12장을 중심으로 "가나안으로 가는 길"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점심으로 떡국을 먹었습니다. 아주 맛있는 떡국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면서 점심먹고 화성요양원을 방문했습니다. 진토리교회의 소속으로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벌써부터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곳에 사는 분들의 가장 큰 낙은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않고 방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벌써 나도 종종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면 부모들의 가장 큰 행복은 자녀들의 방문하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늘 부모님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보면서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인생을 살다보면 찾아뵙고 싶어도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아서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때로는 인생을 살면서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지 못한 부끄러움때문에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양로원 방문모임의 사회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국토순례여행 중에 성탄절을 뜻깊게 보내는 것 같습니다. 김태현 목사님이 말씀을 증거했고 한 가정 식구들이 아버지와 두 아들이 기악연주로 노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할머니 방으로 옮겨서 소대모임을 가졌습니다. 할머니가 자녀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연들이 눈물겨웠습니다. 이 할머니는 여러 해 전에 심하게 치매가 왔는데 이제는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치매의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 아니라 이 병도 주님 은총 아래서는 치유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양원 방문을 마치고 같은 4가정식구로서 뇌졸증으로 노인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사모님 한 분을 찾아 뵈었습니다. 이 사모님이 쓰러진 후에 나는 병원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이 번에 방문할 기회가 주어져 감사했습니다. 이 날의 방문은 새벽송이 아닌 늦은 오후송이었는데 환자인 김사모님은 너무나 행복해했습니다. 남편 유목사님은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유목사님은 목사이니까 불편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화도 못내고 참아야 할 때도 많다는 것입니다. 은퇴하신 유목사님은 병원으로 출근하고 병원에서 퇴원합니다. 정성껏 아내를 섬기는 모습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여행중인 내가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한 번 쏜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13명이었는데 두부요리로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갔습니다. 음식이 맛이 있었습니다.
늘 진토리 교회를 올 때마다 나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했던 소대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번에 작은 섬김이지만 대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윤선집사님의 수고로 진토리교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가 너무나 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교회를 방문하는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 머물수 있도록 이렇게 게스트 룸을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진토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고 화성시의 모든 가정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했습니다. 진토리 교회, 늘 마음속에 감화를 주는 교회입니다. 아름다운 섬김이 늘 나에게 도전이 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한 것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진토리 교회하고 인연을 맺은 것도 꽤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신실하게 살아가려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 감화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매여 살지만 예수님께 매여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몇몇 분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성탄인사를 보냈습니다. 한 해를 잘 보내고 2010년을 감사함으로 맞도록 문자를 보냈습니다. 진토리교회 공동체는 혈연가정보다는 신령한 가족으로 하나 되는 너무나 귀한 모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사는 진토리 교회 공동체는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국토순례여행(6) - 12월 26일
남양방조제를 넘어서 평택으로
12월 26일 토요일은 진토리교회에서 새벽제단을 쌓았습니다. 이 날은 좀 일찍 잠이 깨어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4시 반에 기도회 장소로 갔습니다. 강영기목사님의 인도로 주로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전 세계지역에 흩어져 선교하는 다양한 분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들의 사역의 성공은 바로 이렇게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강영기목사님이 대표기도를 시켜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후에 구체적으로 각각의 선교사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대륙마다 또한 중요한 지역마다 그곳에서 섬기는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는 감동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의 일정에 대해서 알고 계신 강목사님이 매우 귀중한 물건들을 챙겨주시면서 노자돈도 커피값이라고 하면서 챙겨주었습니다. 받아야 될까를 망설였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주시는 것을 받는 것도 귀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섬김을 감당하는 형제들과 아침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식사후에 여장을 풀고 이윤선집사의 차량봉사로 장안까지 와서 이곳에서 도보순례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장안리에서 큰 길을 걷기도 하며 작은 길을 걷기도 했는데 추운 겨울이지만 말씀을 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남양방조제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방조제가 참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양방조제, 아산방조제, 삽교천 방조제 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 홍원교회를 만났습니다. 나사렛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워서 사진을 몇 컷을 찍고서 목사님을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나오셔서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하던 중에 차 한잔을 대접받고서 내가 하는 가족치유중보기도를 부탁을 드렸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장신대를 나오고 도봉구에서 부목사로 교회를 섬긴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인연이라는 것이 참 많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원에서 안중까지 가는 길은 걷게 너무나 좋은 시골길이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걷기 여행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과 땅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곳 주민들과 교회들을 마음껏 축복했습니다. 이 땅에 가정들이 많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느 한적한 곳이 있어서 그곳에 매우 추운 날씨지만 말씀을 소리를 내어서 영감있게 읽어보았습니다. 말씀이 살아움직이는 역사가 있는 것 같았고 말씀은 부족한 저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계속 길을 걷다보니까 어떤 봉고차가 제 앞에 멈추어 서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만났던 홍원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길손을 서운하게 보내는 것 같아서 저를 찜질방까지 태워주시면서 찜찔방비용까지 부담해주셨습니다. 길손을 솜기는 목사님의 섬김에 큰 감화를 받았지요. 사모님이 나그네를 그냥 보내면 안된다고 해서 이렇게 다시 나왔다는 것입니다. 두 분의 귀한 섬김이 마음 속에 너무나 큰 감화가 되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쉼을 얻게 되었습니다. 찜질방에서 하루룰 보내는데 이곳의 영화관에서 과속스캔달이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꼭 한 번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값싸게 영화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비록 복잡한 공간이지만 말씀을 볼 수 있는 조용한 시간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조금은 외로운 여행이지만 주님과 더불어 함께 하는 여행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주님, 귀한 여행길을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초들의 삶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토순례여행(8) - 12월 28일
삽교방조제를 건너면서
곽일귀목사님의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면서 실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배후에 사모님이 떡국을 맛있게 끓여주셔서 함께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사모님이 좋은 찬양곡을 틀어주어서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하는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안디옥교회의 2009년 12월 27일 주보에 이해인 님의 시가 실려있었습니다.
작은 감사(이해인)
엄마, 저는요
새해 첫날
엄마가 저의 방에 걸어주신
꽃 달력을 보는 것처럼
늘 희망과 설렘이 피어나는
그런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어요
첫눈이 많이 내린 날
다투었던 친구와 화해하고
손잡고 길을 가던 때처럼
늘 용서하고 용서받는
그런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어요
엄마, 저는요
장독대를 손질하며 콧노래를 부르시고
꽃밭을 가꾸시며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시는
엄마의 그 모습처럼
늘 부지런하면서도 여유있는
그런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어요.
이제 또 순례의 도보여행을 출발해야 합니다. 고생길입니다. 밀두리까지 가는 길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떠나기 전에 사진을 한장 찍었습니다. 곽목사님은 교회를 돌보면서 토끼와 닭을 기르고 계셨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목양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산시 금성면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은 꽤 규모가 있는 공장인 것 같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위해서 걷고 있는데 작은 상가건물 위에 노조지부 사무실인듯 한 사무실에 여러가지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최근의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나는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 분들도 억울한 일이 참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종종 생각합니다. 현대 자동차는 노동자의 것도 아니고 정몽구회장일가의 것도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주장을 늘 나는 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때로는 탐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노조에 소속된 사람들은 한국사회에서 20%이내의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더 억울하고 힘든 위치에서 일하는 중소기업체의 노동자들과 그 회사를 운영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노동운동은 때로는 배부른 자들의 투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마을을 다니는 시내버스는 깨끗하고 손님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노인들이 주로 약국이나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시골 노인분들은 서로 만나 담소하면서 안부를 물었습니다. 낯선 배낭객이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모습이 그들에는 조금은 낯설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언제보아도 시골풍경은 정감이 있었습니다. 눈두렁, 눈덮이 가로수, 이제는 농촌이 많이 쇠퇴했지만 과거에는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가난했지만 인정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 지역은 현대자동차의 영향으로 꽤나 번성되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밀두리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당진으로 향했습니다. 당진하면 늘 떠오르는 것이 당진 현대제철소입니다. 당진이 최근에 새롭게 발전하는 서해안으이 중요 공업도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걷다보니 곧 삽교방조제가 나타났습니다. 방조제 입구에서 조금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삽교방조제는 길이 길었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 옆에 조금은 거칠지만 길이 있어 그 길을 걸었습니다. 삽교호에는 겨울 철새들이 얼지 않는 곳을 찾아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으면서 떼를 지어 하늘을 날다가 다시 물가에 내리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저 철새가 먼 곳에 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흙길이 끝나고 도로옆의 길로 다녀야 합니다. 큰 트럭이 지나면서 눈바람을 일으키면 추웠고 눈녹은 물이 튀어올라 옷이 많이 젖었습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오전시간이라 그런지 몸은 상쾌했습니다. 한창 걷다 보니 삽교유원지에 도착했습니다. 유원지에는 여러 음식점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을 걷다보니 통합측 교단마크가 있는 삽교천교회가 눈에 띄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사진 한 컷 찍고 조금 교회를 위해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사님과 교제하고 싶어 전화를 했지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당진에 들어섰습니다. 당진을 향해 걷는 길은 매우 기분 좋은 길이었습니다. 차량이 많이 통과하는 도로 옆이라 조금은 위험했지만 어쨋든 선택한 도보여행이어서 걸으면서 주님을 묵상했습니다. 피곤해지고 조용한 곳이 시작이 되면 말씀을 읽었는데 디모데 전후서를 읽으면서 바울사도가 디모데에게 보냈던 말씀이 감동이 되어서 내 마음이 새로운 은혜로 가득채움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 4시가 지나면서 당진읍내까지는 10km 정도가 남아서 아무래도 버스를 타야할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서 당진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사내를 다니면서 축복기도를 드리다가 오늘 저녁에 머물 찜질방을 찾았습니다. 어떤 분에게 물어보니까 당진 워터프리아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사촌 동생을 이곳 당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곳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찜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목욕을 하고 찜질방에 올라가서 말씀을 읽으면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동생이 왔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왔다고 해서 산채비빕밤을 시켜 먹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정이야기도 했고 자녀들의 이야기도 했습니다. 외사촌 동생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저녁에 잠자리를 들었습니다. 걷기에 피곤했던지 그냥 벌써 골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국토순례여행(9) - 12월 29일
당진에서 서산으로 가는 길
조금 일찍 잠이 깨어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주님을 묵상했습니다. 모두가 조용한 시간에 주님과 나누는 교제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전후서를 읽으면서 초대교회 성도를 향한 베드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사촌동생은 그 사이에 출근하기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동생의 앞길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빌었습니다.
가까운 친척이어서 어렸을 때는 늘 자주 만났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까 삶이 달라지니까 자주 만날 기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종종 생각합니다. 혈연가족보다는 신령한 가족이 더 가까워지는 것같습니다. 비록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함께 거룩한 성찬에 참여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신령한 가족의 교제가 더욱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진토리교회 식구들을 볼 때마다 신령한 가족의 진실된 교제를 보는 것 같아서 늘 감화를 받습니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주님 모시고 살다보니까 형제보다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아침에 간단히 사워를 하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 뒤에 당진군청으로 갔습니다. 민원실에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돈 안들이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법이지요. 급한 성적처리를 하고 당진을 출발해서 서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32번 지방도는 왕복 이차선이었습니다. 34번을 만나서 갈 생각을 했는데 34번과는 연결이 되지않고 32번을 타고서 계속해서 긷게 되었습니다. 차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지는 않아서 걷기에는 오히려 편했습니다. 시골 농토사이를 길을 걷노라니 여유가 생겼고 자연속에 홀로 걷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빈들판을 바라봅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고 여름지나 가을이 되었고 이제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네요. 겨울에 저 산들과 논받은 쉬고 있지만 새롭게 생명을 잉태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뚜렷한 4계절을 주셔서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비록 저곳에는 생명은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봄을 향하여 준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평안한 걷기를 통해서 마음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가는 길에 행정교회라는 간판이 들어왔습니다. 교회를 들어가보았습니다. 이곳이 행정리라는 곳인데 행정감리교회였습니다. 본당을 들어갔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였습니다. 박제란권사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한다는 프랭카드가 걸려있습니다. 이 분이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레" 라는 유행가를 불렀던 가수입니다. 요한 계시록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오늘 떠나가는 당진군의 모든 가정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요즘에 많은 가정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정의 회복과 치유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의 여행의 중요한 목표중의 하나도 깨어지는 가정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정들을 위해서 믿음의 형제들이 중보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중보기도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군구에 있는 가정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이 기도운동의 목적입니다.
여장을 다시 한 번 꾸려서 계속해서 서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가늘 길에 작은 송림이 눈에 띄었습니다. 소나무는 사실 좀 천대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송충이만 많고 쓸모가 없는 나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에는 잘 생긴 소나무는 관상용으로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소나무 숲 뒤에는 성경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의 수효가 많지 않은 학교입니다. 그러나 그 옛날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것 같았습니다. 농촌이 항샹 융성할 때에 대부분의 시골학교는 학생들이 거의 오백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교생이 50명 이내인 학교가 많습니다. 농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왔지요. 그들이 도시로 나와서 산업전선에 기여한 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경제부흥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의 교육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의 결과는 오랜 후에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저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어느 곳에서 신실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운동장에는 너무나 멋있게 생긴 소나무가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학교입구에는 이곳 출신 학생들이 학습능력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는 프랭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조금 길을 걷다보니까 기사식당이 있었습니다. 시장기가 있어서 라면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남자 식당 주인은 언젠가 나를 본적인 있다고 말하면서 그 때가 언제인지를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식당에 온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손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2,500원 짜리 라면인데 밥도 한그릇 갖다주고 오뎅반찬까지 갖다 주었습니다. 서비스가 좋았습니다.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 나서 500원 거스름돈을 받지 않으려고 하니까 기어이 주겠다고 해서 받았습니다.
은석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서산에서 오후 5시 경에 대산으로 가는 엘지 사원들을 위한 버스를 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걷는 것을 멈추고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타고서 서산으로 향했습니다. 서산은 최근에 아주 발전하는 서해안 도시입니다. 서산에서 버스를 타고 대산으로 갔습니다. 엘지 사원아파트에는 공원마다 크리스마스 츄리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역시 아내의 사랑이 감사했습니다. 늘 결혼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던 것같습니다. 늘 새로운 일을 추구하느라고 안정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니까 아내에게 좋은 남편은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슈퍼에서 간단한 음료수캔을 하나 사서 친구 집으로 향했습니다. 친구의 집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이 불청객을 환영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조금은 염려가 되었습니다. 친구 아내는 정말 편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은석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부산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 때는 부산은 미국처럼 먼 나라처럼 생각되던 때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0리떨어진 속리산으로 수확여행을 간 것을 제외하면 동네를 떠난 적이 없던 나에게 부산은 먼 곳이었습니다. 친구는 부산으로 떠나가서 주로 동래에 살았다고 합니다. 부인도 동네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텔레비전 체널 선택의 힘은 주로 남편이 쥐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주로 여행이나 퀴즈나 다양한 교양프로그램을 좋아했습니다. 부인은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하루 종일 수고한 남편에게 체널 선택권을 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빨래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칭에 일어나니까 친구가 빨래를 잘 개서 가져왔습니다. 그 옷을 친구가 개었는지 친구의 집사람이 개었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어쨋든 감사했습니다. 옛 친구를 환영해준 친구가 감사했습니다. 이제 또 언제 만날런지 물런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늘 만나겠지만 인생은 이렇게 만났다고 헤어지고 또 만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에 헤어져서 거의 50대 중반에 만났으니 그 세월의 흐름은 얼마였던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만남이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 시기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 친구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우리의 만남이 주님안에서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국토순례여행(10) - 12월 30일
서산에서 태안으로
대산에서 서산으로 나오는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하는 엘지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친구 아내는 몇몇 개의 인삼사탕을 주었습니다. 가는 길에 피곤할 때 먹으라고 주는 정성이 고마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집에 와서 머문다는 것은 요즘에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식사 대접도 집에서 하지 않고 밖에서 대접을 합니다. 친구 아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귀한 손님(?)으로 생각했는지 집에서 대접해야 한다고 남편이 말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아내를 만나서 어머니가 콩을 팥이라고 하면 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결혼의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효성이 지극한 친구였습니다. 요즘에는 찾아보기가 힘든 사람이지요. 세밀하게 마음을 써주는 친구를 뒤로 하고 서산으로 향했습니다. "친구야, 잘 있어라, 행복하라."
서산에서 가정상담소를 운영하는 조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상담소를 개설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함께 상담소에 들어가서 상담소에 관한 소개도 받고 커피도 한 잔 들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시 반에 상담약속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나왔습니다. 조목사님은 나에게 태안까지 눈이 많이 내리니까 그냥 버스를 타고 가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냥 걸어가기보다는 버스를 타고 여행하면 그곳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에 더욱 의미있는 여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그냥 혼자 걷는 것이 아닌데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인데 얼마나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인데 하고 되뇌었어요. 우선 서산시내를 좀 더 걷기로 했어요. 마음이 동하면 태안으로 걸어가고 여의치 않으면 버스를 타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렇다 주님이 영감을 주시는 대로 행동해야지, 내가 결론을 정해놓고 진행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닐 거야..."
서산 시내를 걸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보면서 시장터도 보고요. 그러면서 태안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어요. 새롭게 채비를 해서 태안으로 가는 길을 접했습니다. 조금 가다가 여의치 않으면 버스를 탄다.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결론은 태안까지 그냥 걸어갔습니다. 여행 중에 처음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만 했던 것은 오늘이 유일했습니다. 그냥 흥분이 되었지요. 도보순례여행에 맞는 일을 오늘 처음으로 했구나,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걸어가면서 감사의 제목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우선 빨간색옷이 감사했습니다. 구리 두레교회(김진홍목사 시무)의 헌옷나누는 코너에서 값싸게 재킷을 하나 샀는데 아래쪽은 파란색이고 윗쪽은 빨간색이었는데 빨간색이 너무 많아 조금은 촌스러워보입니다. 비싼 겨울 등산용 자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냥 빨간 잠바를 입기로 했어요. 그런데 빨간색이 도로를 걷기에는 정말 좋습니다. 빨간색이 너무나 눈에 잘 띄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글래스에 감사했습니다. 편광이라는 기능이 보충되어서 선글래스가 비싸다고 말했어요. 그 선글래스를 이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을 결국 만팔천원에 샀습니다. 걸어갈 때에 햇빛을 차단해주지만 특히 보호영역이 넓어서 내리는 눈으로부터 막아주었고 햇빛으로부터 차단해주었습니다. 선글래스의 선택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중간에 버스를 타려는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걷는 중에 갑자기 찬양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는 찬송가를 읖조리면서 걸었습니다. 찬양을 통해서 주님과 새로운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외로운 여행길이지만 주님과 나누는 기쁨이었습니다. 힘도 나고요, 기쁨도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등 찬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냥 감사했습니다. 찬송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역시 주님 찬양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태안에 들어왔습니다. 입구에 교회가 보였는데 그냥 지나쳤습니다. 슈퍼에 들려셔 라면을 사고 두유를 사며 가까운 곳에서 빵을 샀습니다. 어떤 집에 가면 식사대용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24시간 김밥 집에서 김밥 2줄을 삼천원에 먹었습니다. 어떤 교회에 가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냥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찜질방으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걸을 걸었습니다. 상가에 있는 작은 교회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 교회에 가고자 했는데 또 옆에 큰 교회가 눈에 띄어서 먼저 그 교회를 가고자 했습니다.
그 교회가 태안교회였고 같은 통합측 교단교회였습니다. 후배인 조목사님은 나그네를 열심히 환대했습니다. 저녁으로 김밥 두 줄을 이미 먹었는데 정성스러운 저녁대접에 감사했습니다. 조 목사님은 선약이 있어서 부목님 한 분에게 나그네를 위한 저녁대접을 부탁했습니다. 맛있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김밥 두줄 저녁에다가 후 생선지리 저녁까지 덤으로 먹게 되었으니 나그네의 식사가 너무나 넘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부목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본인은 상담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요예배를 드렸습니다. 담임인 조목사님은 넥타이를 매지않고 목티와 콤비차림의 복장이었습니다. 복장 스타일이 앞서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수요일 저녁예배인데 연합구역예배로 함께 모였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날 저녁은 2010년을 위한 구역편성을 새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수요예배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본질적인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예배 후에 다른 부목사님이 찜질방으로 안내해주었습니다. 나는 찜질방 인생이 되었네요. 그런데 이 날 저녁에 이틀 동안 여행을 함께 할 동행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과 여행 중에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것 같습니다. 여행길에 피곤했던지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단잠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불안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와 목회상담적 접근
김영근교수(Ph. D. 장로회신학대학교)
3. 불안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
이미 언급한 것처럼 불안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는 불안은 인간의 유한성에 근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존재의 결과로 생겨난다. 따라서 불안의 발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차적인 문제가 있다. 불안을 안고 있는 내담자의 불안상황은 개인적이고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면의 끊임없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세실 오스본(Cecil Osborne)은 이 욕구를 생존, 안정, 성, 의미, 자아성취, 주체성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고 로렌스 크랩(Lawrence Crabb)은 중요성과 안전(significance and security)으로 분류하였다.
크랩은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족되었으나 인간의 타락 후에는 각기 변질되어 중요성의 추구는 힘이나 폭력의 추구로, 안전의 추구는 쾌락이나 부도덕의 추구로 전락되었다고 서술한다. 그러므로 힘이나 폭력, 쾌락이나 부도덕의 성취를 추구하는 내담자는 중요성과 안전을 얻기까지는 진정한 안식이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디모데전서 1:7은 “하나님이 우리에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 의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크랩이 제시한 것처럼 인간의 범죄와 타락의 결과로 시작되었다(창3:10). 범죄한 아담은 하나님 자체가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보면 두려움과 불안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마음상태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과는 멀어진 상태에 있다. 하나님의 은총에서 멀어진 사람의 결과는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불안의 원인이 되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은총을 입은 자들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불안의 극복은 은총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 기독교신앙을 활용한 불안극복의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성경의 인물들의 불안극복경험이다. 에스더는 죽음을 염려해서 왕의 명령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갈 수 없었는데 은총을 경험하고 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극히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갔다(에스더4:4-17).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풍랑이 일자 두려워했지만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제자들은 비존재의 두려움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확인함으로 염려에서 벗어났다(마8:23-27). 사도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길에 승선한 배가 좌초되었을 때에 은총을 경험했기에 배 안에서 불안해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평안함을 가졌고 승선한 모든 사람들이 평안함을 갖도록 권면했다(행27:22-25).
이와 같이 성경의 인물들이 불안을 극복했던 방법은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일이다. 주님의 은총을 경험할 때 인간들은 비로소 비존재의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은총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의 제공자가 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과였다.
초대교회이후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불안을 극복했다. 임종을 앞둔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는 로마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한다. “어미를 여기다 묻어다오 내 몸뚱이사 어디에 묻든지 그 일로 인해서 조금도 걱정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다오.” 모니카는 죽음 앞에서 불안하지 않았고 회심한 아들을 바라보면서 평안하게 죽어갔다. 모니카의 아들인 아우구스티누스도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까지는 참 평안이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이와 같이 기독교역사상 많은 인물들은 동일하게 불안을 경험했지만 그들의 불안극복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가운데서 필연적으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또한 기독교적인 신앙으로 불안의 극복을 연구했던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상담학자들이 있었다. 전요섭은 불안장애의 극복을 위한 기독교신앙의 활용을 강조하면서 예배와 설교, 성경, 기도 등의 3가지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예배와 설교에서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찬송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며 신자들과의 상호간의 교제를 통해서 일체감을 느끼며 소외감을 극복해서 궁극적으로 불안을 극복하며 치유설교를 통해서 불안, 슬픔, 미움, 질투 등과 같은 심리적인 어려움에서 자유함을 얻어 불안장애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암송하거나 묵상을 통해서 불안의 요인이나 염려, 갈등, 초조 등을 절대자인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심을 가질 때에 불안이 제거되거나 감소된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불안이 발생할 때에 기도생활을 통해서 불안의 해소, 극복,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크랩은 성경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불안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 상담을 시도했다. 그의 성경적상담의 목표는 인간의 비합리적 신념을 성경말씀에 비추어 검토하고 그가 모든 상황에서 성경적으로 반응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상담은 불안한 내담자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전제하고 있다. 내담자의 불안극복을 위해서 크랩이 제시한 성경적 상담의 7단계 모델의 활용은 효과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의 7단계 모델은 1단계: 문제감정들을 확인하라, 2단계: 문제행동을 확인하라, 3단계: 문제사고를 확인하라, 4단계: 성경적 사고를 명백히 하라, 5단계: 안전한 결단, 6단계: 성경적 행동을 계획하고 수립하라, 7단계: 영적인 조절된 감정들을 확인하라 등이다. 크랩은 사람들이 성경적인 사고를 통하여 불안한 생각을 교정하고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채우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인물이나 신앙의 선진들이나 신학자나 목회상담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불안을 극복케 하는 힘의 근원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이었고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였다.
하나님의 은총은 하나님께서 직접 제공하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제공하기도 한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선지자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신의 생명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불안에 떨면서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다. 이 때 하나님은 천사의 모습으로 직접 오셔서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며 음식을 먹게 하고 쉬게 했으며 그를 위로하며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평안함을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직접 은총을 주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은총을 주시기도 한다. 신약성경의 빌레몬서를 보면 빌레몬의 도망친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로마감옥에서 바울사도를 만난다. 도망치다가 붙잡힌 노예의 운명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오네시모에게 바울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 바울사도는 그 동안에 오네시모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의 불안은 바울사도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바울사도의 사랑의 돌봄을 통해서 극복되었다(몬1:4-22).
오네시모에게 바울은 은총의 전달자였다. 오네시모에게 했던 바울사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목회상담자이다. 오늘날에도 오네시모처럼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위해서 목회상담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4. 불안극복을 위한 목회상담
목회상담자들은 불안장애를 호소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상담하게 된다. 목회상담자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교회에 소속되어있고 교회에 의해 위임받은 자로서 교회의 모든 자원을 활용해서 교회의 도움을 받아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상담하게 되어있다. 목회상담자는 하나님의 은총의 전달자로서 불안의 증상이나 장애를 겪고 있는 내담자를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단절되어 있거나 일시적으로 멀어진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도록 은총의 전달자로서 사명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자이다.
목회상담자는 하나님과 관계있는 영적인 질서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적인 질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확신하면서 불안을 겪고 있는 내담자를 상담할 때에 성경적인 진리에 근거를 두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상담하면서 동시에 일반상담이 개발한 임상적인 지혜와 상담기술의 방법들과 심리학적인 지식을 활용해서 상담을 한다. 본 연구에서는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목회상담의 역할을 네 가지 영역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소리로 접근하기
목회상담자는 우선 내담자의 절망의 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내담자는 절망의 소리를 하면 실패자라는 비난을 받아왔기에 절망의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목회상담자는 내담자의 절망의 소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는다. 인간회복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절망이며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자리 잡을 곳이 없다. 희망의 소리는 절망의 소리를 충분히 들은 다음에 나온다. 목회상담자는 절망으로 가득한 내담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다음에 내담자에게 희망의 소리를 들려주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의 아픈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고 욥의 이야기를 조금 듣고서 그를 정죄했다. 그렇게 되니 나중에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가졌던 욥은 하나님을 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에 나타난 엘리후는 이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은 다음에 욥의 세 친구들처럼 정죄하는 태도가 아닌 공감하는 자세로 욥을 대한다. 예수님은 여러 번 결혼에 실패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 다음에 그 여인이 예배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희망의 소리를 들려준다(요4:7-30). 무자함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한나가 성소에서 기도할 때에 울부짖는 소리를 엘리제사장은 처음에는 술취한 여자의 술주정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울부짖음을 듣게 되었고 한나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소리를 전한다. 엘리의 희망의 이야기를 들은 한나는 불안을 벗어난 평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삼상1:9-18). 예수님과 엘리후와 엘리 제사장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희망의 소리를 들려준 목회상담자의 좋은 예이다.
2) 은총으로 인도하기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와의 관계이다. 그런데 목회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하나님이 계심을 전제로 한다. 이점에서 목회상담은 하나님의 존재와 무관한 일반상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담자의 불안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은총의 단절이나 멀어짐의 결과이기에 불안의 극복은 결국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다.
목회상담은 이 말씀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상담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은 핵심적인 요인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어떻게 내담자의 개별적 상황에 받아들여질 것인가를 살펴보자. 투르나이젠은 인간은 반항하는 존재이므로 목회상담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관철시킨다는 의미에서 투쟁적이라고 했다. 또한 목회상담은 내담자의 반항에 대해서 용납이라는 심리학적인 수단을 활용하며 내담자를 은총에 도달하도록 하기위해서 내담자를 파악하고 분석한 뒤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에로의 인도가 중요하다고 해서 상담자가 첫 대면에서 내담자에게 이것을 이야기한다면 내담자에 의해서 외면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목회상담자는 내담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담자의 상황을 받아들임으로서 내담자의 상황에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한다.
이렇게 하여 서로 간에 멀어지고 갈라진 인간의 상황이 용납되고 실제적인 문제가 궁극적인 관심으로 연결될 때 목회상담은 그 깊이를 더한 것이 된다. 이처럼 상담과정은 상담의 목표에 이르기 위하여 중요하며 상담의 목적은 상담과정에서 완성된다. 결국 하나님의 은총이란 상담의 목표는 목회상담자의 잘 준비된 상담과정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러한 상담과정을 통하여 세상의 이야기는 하늘의 이야기로 바뀐다. 목회상담자는 처음에 하늘나라와 무관한 세상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담자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목회상담자의 모델이신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에서 마실 물을 주제로 세상이야기를 하면서 사마리아여인을 만난다. 예수님이 시작한 이 이야기는 영원한 생수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면서 사마리아여인에게 은총의 역사가 시작된다. 은총을 경험한 사마리아여인은 대인접촉의 불안을 극복하고 이제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메시야를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목회상담자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내담자를 은총으로 인도한다.
3) 목회상담자의 자질 갖추기
목회상담자의 인격과 수양이 내담자의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목회상담자의 자질은 중요하다. 내담자는 목회상담자와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 안에 있는 불안을 인정하고 불안의 해소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임을 확인하게 된다. 은총의 전달자로서 목회상담자의 역할은 일반상담자의 역할과는 다르기 때문에 목회상담자의 자질은 일반상담자의 자질 이상이 요구된다. 그러면 불안상담을 위한 목회상담자의 자질은 무엇인가?
첫째, 목회상담자는 신앙인격을 잘 갖춰야한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상징적인 능력을 나타내주며 신앙전통에 대한 믿음의 상징이며 윤리적인 삶의 모델이다. 목회상담자는 성경에 근거한 선함과 지식과 지혜를 가져야 하며 신학적인 차원과 인격적 차원과 사명적 차원에서 은총의 전달자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둘째, 목회상담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자원을 상담사역에 활용할 수 있다. 힐트너는 그 자원을 기도, 성서, 종교적인 문서, 기독교교리, 성례전과 의식 등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자원들은 소중한 도구로서 내담자의 상황과 상담의 진행상황에 조화롭게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목회상담자가 자신에 대해서도 온전한 이해나 수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상담자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불안의 해소에 기도가 유익하다고 해서 내담자에게 기도를 권면하면 기도는 효과적인 상담의 방법이 될 수가 없다.
셋째, 목회상담자는 자신이 긍정적인 정서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특히 평안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긍정적인 정서로서 사랑, 기쁨, 용서, 평안 등을 제시할 수 있는데 불안상담을 위해서는 상담자의 평안함은 필요하다. 여기에서 평안함은 육체적인 평안함 이상의 마음의 참 평안함이다. 이 평안은 단순히 심리적인 갈등이나 시련에서 벗어나는 차원이 아닌 구원의 확신으로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바탕을 둔 내적인 평안함이다. 성경은 평안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25:12, 13)와 온유한 자(시37:11), 화평한 자(시37:37),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은 자(사53:5), 하나님의 교훈을 받은 자(사54:3), 선을 행하는 자(사57:2),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롬5:1)라고 했다.
4) 글쓰기고백 활용하기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로 알려진 성경도 글로 적혀있고 글로서 읽게 되어있다. 사람들은 기록된 글을 읽으면서 감화를 받지만 기록된 글을 옮겨 적을 때도 감화를 받는다. 그래서 최근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필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한다.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기록할 때이다. 목회상담자들은 글쓰기고백을 활용해서 불안에 쌓여있는 내담자들을 치유할 수 있다. 글쓰기고백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어왔다.
Pennebaker & Beall(1986)의 연구는 2차 대전 때 유태인들의 나치수용소 경험과 같은 심각한 외상사건도 몇 차례(3-4회)의 글쓰기 고백으로 치유되었음을 보여준다. Glaser & Kiecolt-Glaser(1988)는 50명의 대학생들을 4일에 걸쳐서 두 주제 중 어느 하나를 하루에 20분씩 쓰게 했는데 그 결과는 심리적 외상 경험과 관련된 그들의 깊은 생각과 느낌을 적었
던 사람들이 피상적인 주제에 대해 썼던 사람들보다 면역기능이 좋아졌다. Spera, Buhrfeind & Pennebaker(1994)는 해직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신들의 퇴직의 경험에 대해 생각과 감정을 연속으로 5일 동안 매일 30분 동안 글쓰기를 했던 사람들이 일상적인 일에 대해서 쓰거나 아무 것도 쓰지 않았던 사람들에 비해서 당장은 더 화가 나고 분노했지만 나중에 훨씬 직장을 많이 얻게 된 연구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세 가지 사례들은 각각 나치수용소생활, 학교생활, 직장해고를 통해서 경험하는 불안의 내용과 정도는 다를지라도 공통적으로 글쓰기고백을 통해서 치유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글쓰기고백을 통한 치료효과를 근거로 해서 글쓰기고백을 활용한 심리치료프로그램은 다양한 연구자들에 의해서 여러 현장에서 실시되어왔다. 특히 중독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 감옥이나 감호소,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병원이나 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글쓰기고백은 이 훈련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건강의 증진과 정서적인 안정 및 심리치료와 영적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글쓰기를 통한 불안치료의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글쓰기를 통한 자기고백은 그 동안 겪어온 불안의 경험을 직면하게 함으로서 그 외상을 치료해준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글쓰기과정 속에서 성령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한다. 둘째, 글쓰기고백은 자신의 불안에 얽힌 삶의 상태와 위치를 살펴보도록 하면서 참여자들의 삶을 통합하고 조직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글쓰기고백은 깊은 묵상을 실천하게 함으로 내담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총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도와준다. 넷째, 글쓰기고백은 내담자가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객관화시키면서 동시에 미래적인 통찰력을 줌으로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III. 닫는 글
본 연구는 현대인에게 늘 따라 다니는 불안의 극복을 위한 목회상담적 접근을 시도했다. 인간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그가 처한 환경 때문이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사고방식에 달려있다. 따라서 한 인간이 불안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있어 상황에 대처하는 삶의 자세와 그의 해석능력은 아주 중요하다. 목회상담은 하나님의 은총에 이르는 통로를 불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내담자에게 제시한다.
목회상담은 불안의 이해와 원인분석과 치료책에서 일반상담이 제시하는 모든 접근방법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접근을 내담자를 하나님의 은총에 이르도록 하는 통로로 목회상담자는 활용한다. 목회상담자는 내담자의 사고를 성경적사고로 전환시켜 불안에 관한 전인적인 치유를 도모한다. 성경적인 사고로 전환한다는 것은 말씀에 비추어 내담자의 잘못된 신념을 수정하고 그로 인하여 영적으로 조절된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내담자의 불안을 치료하는 데에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목회상담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기도하여야 하고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여 성경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하여 내담자의 불안을 전인적으로 치료한다.
하나님의 은총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집착이다. 이 집착은 인간의 잘못된 추구의 결과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소유, 성공, 명예, 인정, 장수 등을 추구한다. 이러한 추구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질 때는 가치가 있지만 그 은총을 떠날 때는 잘못된 집착이 된다. 잘못된 집착을 가진 사람의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불안을 극복한 평안에 이르는 길은 집착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집착을 벗어나는 것은 목회상담자에게도 내담자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미 은총을 경험한 목회상담자는 내담자와 함께 더욱 풍성한 은총을 향해 길가는 순례자이다.
【가족치유상담센터이야기】
평소에 저는 목욕탕을 자주 가는 편은 못됩니다. 주로 집에서 샤워를 합니다. 그런데 이 번 여행 중에는 본의 아니게 찜질방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지역을 여행하다가 적당하게 신세를 질 수 있는 지인이 없는 경우에는 찜질방을 사용했습니다. 찜질방은 값도 싸고 문화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값비싼 문화도 아니고 고급의 문화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값싸게 활용할 수 있는 귀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부닥치는 공간이었습니다. 내 것과 네 것이 뚜렷하게 구별되지는 않고 공동으로 소유되는 곳이었어요. 종종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내 것을 쌓으려고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내 집, 내 자식, 내배우자, 내 재산, 내 교회, 내 친구, 내 나라, 내 민족 등을 생각하면서 내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구별하면서 더욱 내 것을 쌓으려고 살아왔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찜질방처럼 우리의 모든 소유는 잠시 동안 우리가 소유하거나 누리다가 놓고 갑니다.
그렇지요, 우리들의 삶은 영원한 순례자인 것 같습니다. 본향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나 본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는 길가는 여행이어서 행복하고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하루를 머물다가 다음 행선지를 출발합니다. 만남은 아름답습니다. 헤어짐은 슬픔이 있습니다. 이렇게 만났다가 언제 다시 만날는지 기약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분명히 회자정리(會者定離)입니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으로 마감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더욱 사랑하며 감사하며 친절하게 대하며 서로를 축복해주는 것이 우리들이 인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번 여행길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여러분의 2010년의 여행길도 행복하기를 빕니다.
월간쪽지 예수사랑, 가족사랑 2010년 1월호를 발행했습니다. 필자가 여행중이라 늦게 발행했습니다. 컴퓨터 작업이 여의치 못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이번 호에는 주로 필자의 여행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필자의 불안에 관한 기독교적인 이해와 기독교상담적인 접근에 대해서 실었습니다. 인쇄매체가 아닌 온 라인(On-Line)으로 발행된 쪽지에 회원들이 조금이나마 읽을거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 여러분 행복하시고 주님의 은총의 삶이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여러분의 좋은 길 벗 김영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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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치유상담센터/대표: 김영근(010-3290-1007) 070-7648-3007
경기 남양주 금곡동776 신도브래뉴@102-1304호/ daum cafe: 가족치유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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