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보충수업,
1교시~7교시 수업이 끝나면
이어서 2시간 보충수업이 앰프가 고장이 나면 종지기의 땡땡거림에 발을 맞추고 나면 1시간 반의 저녁시간이 된다.
집이 가까운 학생은 도보로, 조금 먼 학생은 자전거로 급행 숟가락질로 때우고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 부리나케 오면서 되새김질도 체면을 구겨 가면서 저지르기도 하니,
고딩의 수난시대는 고난도 해법을 찾게 된다. 일명 야간자율학습이다.
10시 반까지 감독을 해야 하지만,
버스는 끊긴 지 1시간이나 지난 후 대구까지 열차를 타기 위해선 10시 10분까지 역 승강장에 기다리지 않으면
그것도 놓치기 때문에, 아침처럼 뒷문으로 무사히 통과하는 일도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열차 의자에 기댈 수만 있으면
왕이된 느낌으로 흐뭇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귀가하는 열차는 통일호로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11시 20분 앞뒤의 시간대이면,
시내버스에 타고 집에 걸린 벽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 이전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런다고 도착하면 급하게 무얼 할 일도 마땅히 없으면서도
그저 1분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쉬는 순간을 바램이다.
많아야 4시간 반을 자면 흡족하다.
그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하기야 철로를 건너는 발목의 힘이 몸무게를 지탱하기에 무리가 오는지 후들거림을 느끼면서도,
병치레를 하지 않은 것은 그 통근열차를 타는 고행을 하나의 오락게임으로 즐겼기 때문이리라.
뒷문에서 뒷문으로 묘한 발걸음을 해야 할 때의 스릴에 쾌락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배우의 심정은 아닐까?
그럼, 일요일은 맘껏 가슴을 펴고 자유를 만끽하는가?
한 주일을 건너서 김천중앙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출근해야 한다.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 고행의 길이었다.
그러면서도 왜 아둥바둥
거기서도 내보다 나이 많은 학생 한 둘에다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단에 취직한 햇병아리 담임을 맡고,
방학 1주일을 빼고 본교 여름 보충수업에 방학 때에도 수업하는 방통고 업무를 보고
김천소년교도소 방통고 1반까지 뒤통수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수업을 또 치르는
일하기에 미친 병자처럼 그렇고 그렇게 30대 후반과 40대 전반을 무엇에 홀린 듯
나 자신 무엇을 잊기나 하는 것처럼 일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달랑 남은 것이라곤 소년교도소 학생지도로 법무부장관의 상패만이 전축 위를 장식할 뿐인 그 돌덩이를
지금은 쳐다보며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웃음을 실실 흘려보는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이런 시절에 몇 달을 그렇게도 자장면 집을 들락거렸다.
두어 달이 지나면서 서서히 새로운 식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는 그렇게 중국음식 아니 한국인이 만든 중국식 음식에 식상함을 느끼지도 않는가?'
그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물었다.
그럼 뭐 별다른 길이라도 있는가?
색다른 메뉴를 청하려고 해야 무엇이 있관데,
그 집에는 그 밖에는 적혀있는 것이라곤 늘 시켜 먹은 것 이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짬뽕을 시켜 먹으면서, 짬뽕에 있는 해물에다 밥을 볶아버리면 밥으로 된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2편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