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개의 세계와 냉전시대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은 원래 입장이 달라 의견이 엇갈려 사이가 나빴으나 독일과 일본을 굴복시켜야한다는 일념에 전쟁 중에 손을 잡았으나 전쟁 후에는 다시 대립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점령한 지역에서 철군하지 않았고, 소련 신임을 얻은 지도자들이 충성을 맹세하여 인민 민주주의라는 국가를 세운 것을 '위성 국가'라고 하며, 위성국가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은 총선거도 없이 수립된 국가를 세계 평화에 벗어난 것이라고 하여 자유주의 나라들이 비난하였다. 서유럽은 전쟁으로 망가진 경제를 바로잡기가 어려워 영국은 노동당의 애틀리 내각이 석탄, 철도, 통신을 국유화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는 등으로 안간힘을 다하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공산당이 강해 파업도 자주 일으켰으며, 미국은 이대로 두면 동유럽처럼 될 것 같았고, 유럽의 경제가 활발하여야 상품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고민하였다. 이 때 그리스는 공산게릴라의 내란이 일어났고, 터키는 소련의 강한 압력을 받기 시작했으나 영국은 이들에 원조할 여력이 없다고 발표하자, 1947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트루먼 선언'을 발표하여 그리스와 터키 정부에게 4억 달러 치의 원조와 무기를 보냈다. 그리고 국무장관 마아샬이 '마아샬 플랜(유럽 경제 부흥)'을 발표하여 유럽에 경제원조를 하겠다고 하였고, 소련과 동유럽이 미국제국주의 조짐이라고 반대하며 프랑스나 이탈리아 공산당과 '코민포롬(공산당 정보국)'을 결성하여 자유주의 국가에 맞서려고 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을 '냉전'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평론가인 월터 리프만이 처음 사용하였고, 공산국가와 소련의 경계선을 '철의 장막'이라고 한 것은 처칠이 1946년 미국에 방문하여 연설 할 때에 처음 사용했으나 냉전이 굳어질수록 유행했으며, 냉전시대의 부산물로 한반도와 베트남의 전쟁이 있었다. <냉전의 상징 '철의 장막' 부란데부르크 문>
(4)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전후 동유럽에 주둔한 소련군과의 군사적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의 수행기구로 1949년 4월 조인되었고, 1949년 8월 24일부터 효력을 발생하였다. 현재 회원국은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스페인, 아이슬란드, 영국, 이탈리아, 체크, 캐나다, 터키, 포르투갈, 폴란드, 프랑스, 헝가리 등이다. 1952년 가입한 그리스와 터키, 1955년 가입한 서독, 1982년 가입한 스페인, 1999년 가입한 체크, 폴란드, 헝가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원래의 조인국들이다. 프랑스는 NATO의 회원국으로는 계속 남아 있었으나 1966년 NATO 통합군에서 탈퇴하였고, NATO에 대응해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이 맺어지고 위성국들이 동맹국이 되었다. 1950년대 초반 NATO는 상대적으로 우세한 소련군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핵무기와 우수한 병기를 배치해 대응하였고, 약 30만 명의 미군이 NATO 소속 주둔군으로서 서독과 그 밖의 서유럽에 배치되었다. 이런 상황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1980년 말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NATO와 냉전 시대를 마감하였으며, 1989년 소련의 동유럽 통제권 포기는 바르샤바 조약이 서유럽의 위협을 포기하는 의미로 그러면 NATO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1990년 동독과 서독의 재통일과 통일 독일의 NATO 지지는 유럽의 국제적 안정유지에 기여하는 정치기구로 변화시키기 위한 제안들이 나오게 하였고, 1999년 NATO군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평화유지 작전에 참가하여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에 공습을 가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