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자헌 산악회와 등산
<성모자헌 산악회>는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 성당의 등산 동호회이다.
산악회는 매월 넷째 주말에 산행을 한다. 補藥三貼 不如 週末登山이듯이 등산은 건강에 제일 좋은 운동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 특별한 기술을 배울 필요도 없는데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경치까지 감상할 수 있다.
주말에 각종행사가 많아도 등산을 빠지지 않는 것은 5-6시간의 산행으로 1주일간의 에너지가 충전되고
명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쌓인 심신의 노폐물이 깨끗이 씻겨 산행 후에는 언제나 활력이 솟고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힘들수록 등산을 하고나면 삶이 좀 더 여유로워진다.
산행 때마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관례대로 산악회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서
떡과 음료수가 나눠지고 총무님이 철저히 준비한 등산안내에 이어 부회장님 주제로 합동묵주기도 5단을 바치게 되고
다음으로 회원소개가 끝나면 전월 등산 소감문 낭독에 이어 그날 등산할 산의 각종 정보가 소개된다.
산을 오르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등 간부들의 헌신적이 준비와 봉사로 교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여
저절로 다음 산행이 항상 기다려지게 된다.
언제나 전국의 유명산을 섭렵할 수 있게 산행을 주선하고 안전에 노력하는 산악회 임원들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산 정상에서 호연지기를 키운다.
국내 산행 중에서 특이하게 추억에 남는 산들은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마니산이다.
백두산은 양강도 삼지연과 중국길림성에 있고 주봉은 장군봉(2750미터)이며 민족의 영산이다.
제주도 한라산(1950미터)은 남한에서 제일 높으며 정상에는 백록담이 있다.
지리산은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군. 경남 산청군 즉 3도에 속하며 천왕봉의 높이는 1915미터이다.
지리산의 방장산과 금강산의 봉래산과 한라산의 영주산을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한다.
강화도의 마니산은 높이가 468미터이지만 등산하기는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 지형이 東高西低이기 때문이며
정상에는 성화점화를 위한 참성단이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 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지리산 등을 등산할 수 있다.
설악산은 태백산맥이며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고 만물산. 울산바위. 백담사 등이 유명하고
대청봉의 높이는 1708미터이다.
오대산은 강원도 평창에 있고 주봉은 비로봉(1563미터)이며 5대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월정사에서 적멸보궁까지의 오대천 계곡은 관광객과 등산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한다.
태백산은 태백산맥 주산이며 개천절에 단군님께 제사지내는 천제단(1567미터)이 있다.
치악산(雉岳山)은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주봉은 비로봉(1288미터)이다
소백산은 경북 영주군과 충북 단양군과 강원도 영월군에 속하며 부석사, 도담삼봉, 구인사. 등이 가깝게 있고
철쭉제가 해마다 열리며 비로봉의 높이는 1440미터이다.
속리산의 주봉은 천황봉(1058미터)이고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군에 속하며 정이품 소나무, 문장대, 법주사가 유명하다.
2005년 4월 23일
월출산(809M)을 산행했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고 청명했다. 벚꽃은 조락( 凋落)했지만 산들은 여러 가지 꽃으로 울긋불긋 하였다.
화서오거리에서 6시 10분에 출발할 때는 이른 아침이라 날씨도 춥고 배도 고팠으나
차안에서 준비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는 묵주기도를 바쳤다.
고창 고인돌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탑승하여 나는 월출산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고창에는 곰소만이 있고 모양성(牟陽城)이 있고 선운사와 백양사가 있고 고인돌이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다.
지역 유명특산물로는 풍천장어, 작설차, 복분자술, 수박이 유명하다. 부안을 지난 함평휴게소는 나비를 형상화해서 건축되었다.
수원을 출발하여 서해고속도로 위를 달려 6시간여만인 13시 30분에 월출산 입구에 도착했는데
도로에서 보이는 월출산 전경은 <호남의 금강산>답게 장엄하고 신비스러웠다.
월출산은 영암 아리랑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으며 소백산맥이 국토의 서남쪽으로 달리다 바다로 빠지기 전에 멈춰서
뭉쳐진 산으로 산 전체가 신령스런 바위로 이뤄졌다 하여 그 지명을 영암(靈岩)으로 부르게 되었다.
매표소를 출발하여 산 입구에서 단체기념사진촬영을 하였고 일행 중에 사진작가선생님이 계셔서 이번 산행은 추억거리를 많이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군락을 이룬 대나무 숲을 지나 산을 조금 오르니 산세가 험하고 등산이 쉽지 않음을 실감했다.
월출산 일대의 연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름다리는 매봉과 사자 봉을 잇는 철제 현수교(懸垂橋)로서 하중이 800키로 그램임으로
건널 때는 규정을 지키고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고소공포증을 느끼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구름다리 밑으로 난 계단을 통해 바람계곡으로 하산하게 되는데
이 등산 코스는 2시간이 소요된다.
같은 높이의 산이라도 전라도의 산은 강원도의 산보다 등산하기가 더 힘이 든다.
구름다리위에서는 아찔한 기분과 월출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니 더욱 가파른 철제사다리가 계속되었다. 로프와 철제계단을 수 없이 오르고 통천문(通天門)을 지나서
정상인 천황봉에 오르니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지리산이나 속리산 정상봉은 천왕봉(天王峰)인데
월출산만 천황봉(天皇峰)이므로 왜색 냄새가 배어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산 정상에서 각자가 준비해간 음식들을 펼쳐 놓고 식사를 하는 그 즐거움과 맛은 산악회원이 아닌 사람은 체험할 수 없다.
정상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사위를 둘려 봤다.
정상은 시야를 넓혀 주고 호연지기를 느끼게 하므로 많은 등산객이 애써 정상을 오른다.
예부터 <해돋이는 동쪽 영일만에서, 달돋이는 서쪽 월출산에서>라는 말이 있다.
다행이 황사도 안개도 없어서 수려한 주위경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고 영암읍과 영산강도 코 아래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도로위에는 차량들이 바퀴벌레처럼 기어가고 서남쪽 멀리로는 목포 앞 서해가 보였다.
사방으로 매달린 능선들은 웅장한 자태와 비경을 자랑하며 천황 봉을 처다 보고 있었다.
종주하려면 서남쪽 능선으로 하산해서 도갑사로 가야 한다. 서쪽 능선으로 조금 내려가면 남근석과 구정봉(九井峰)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장관을 이루는 광활한 갈대밭이 있고 계곡 끝에는 도갑사가 자리 잡고 있다.
도갑사는 신라말엽의 도선 국사가 출생하고 공부한 곳으로 지금도 그 일대에는 도선 국사의 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도선 국사는 고려태조 왕건의 부친에게 송악에 터를 잡게 했고 삼국통일을 예견하고 선(禪)을 체계화하신 대승이다.
도갑사는 옛날에는 전국에서 승려들이 운집하던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옛 명성뿐이다.
우리는 천황 봉에서 바람 골로 하산했다.
하산하면서 쳐다보는 바위들은 설악산 천불동계곡을 통과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기암괴석이여서 감탄과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장군봉 밑에서는 그 위용에 위협을 느끼면서 인간의 존재가 미약함을 절감했다.
월출산 등산이 두 번째이지만 등산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2005년 5월
계절의 여왕에 소백산(1440M)을 다녀왔다.
문막 휴게소에서 전에 다니던 직장산악회원들을 만나는 등 휴게소마다 유명산마다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소백산은 태백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국립공원으로 삼개도 즉 동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남쪽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서북쪽으로 충청북도 단양으로 싸여 있고 매년 봄에는 철쭉제가 열리고 적당한 온도로 수많은 야생화와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은 표고 1,439미터이다.
해발 1,330미터인 죽령휴게소를 출발해서 등산을 시작했고 천문대까지 포장도로이지만 거리가 멀어서 지루했다.
천문대에서 사위를 둘러보니 가깝게 멀게 높게 낮게 수많은 산들과 연봉들이 눈 아래로 보이면서 호연지기를 느끼었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세속의 근심이 모두 날아갔다.
주변 문화유산으로는 경상북도 쪽으로는 봉황산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영주부석사가 있고, 소수서원이 있고,
희방계곡의 폭포위에 있는 희방사는 1,500년 된 신라 고찰이다.
북쪽으로는 온달성과 천태종의 본산인 구인사가 있고 충청북도 쪽으로는 단양팔경의 고수동굴과, 도담삼봉이 가까이 있다.
남보다 먼저 연화 봉에 올라서 이황(호: 퇴계,1501- 1570)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되새겼다.
퇴계선생이 풍기군수 재임 시, 관. 민. 승(官. 民. 僧)의 도움으로 말과 견여(肩輿)를 이용했다지만 공사다망 중에
허약한 몸으로 등산로도 없는 소백산을 모두 답사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시서예악(詩書禮樂)에 뛰어난 퇴계선생은 경승지(景勝地)마다 시를 짓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이 지금껏 그대로 전해지고 불러진다.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인용하면 ‘만일 하늘이 개이고 날이 맑을 때를 만나면 용문산(龍門山)과 국도(國都)인 한양까지도
바라볼 수가 있었으나 이날은 산 같은 아지랑이와 바다 같은 안개가 가득히 끼어 있어 용문산도 바라볼 수 없었으며,
오직 서남쪽의 구름사이로 월악산(月嶽山)이 은은히 비칠 뿐이었다. 그 동쪽을 바라보니, 구름과 산이 천만 겹으로 쌓여 있는데,
어렴풋이 상상하여 보일 뿐, 진면목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 것은 태백산(太白山),청량산(淸凉山), 문수산(文殊山),
봉황산(鳳凰山)이요, 그 남쪽은 잠깐 나왔다가 잠깐 들어와서 구름과 하늘 속에 멀리보이는 것은 학가산(鶴駕山),
팔공산(八空山) 등 여러 산이며, 그 북쪽으로 형체를 숨기며 한 지방에 아득히 있는 것은
오대산(五大山), 치악산(雉嶽山) 등 여러 산이었다.
내려다보이는 물은 더더욱 적어 죽계(竹溪)의 하류인 구대천(龜臺川)과 한강의 상류인 도담(島潭)의 굽이 뿐이었다‘고 했다.
456년이 지난 지금의 지도를 펼쳐 놓고 기록한 착각이 들 정도다.
소백산은 특히 희방계곡(喜方溪谷)과 죽계계곡(竹溪九谷)이 유명하며 웅장하고 부드러운 산세와 수려한 경관과 부드럽고
우아한 능선을 자랑하고 있다.
죽계계곡은 예부터 많은 유현(儒賢)들이 유상(遊嘗)하던 잘 알려진 계곡이다.
굽이굽이 펼쳐지는 기경(寄景)이 산수화(山水畵) 두루마리에 견줄 만하다.
희방계곡의 울창한 고목 숲은 하늘을 뒤덮어 쾌청한날 한낮에도 어두침침하다.
천문대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 연화 봉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가장 단거리 코스인 희방사로 하산했는데 계곡의 경사가 심해서 다리가 휘청거렸다.
희방사에 도착하여 계곡에 들어가니 더운 날씨임에도 금시에 땀이 쑥 들어가면서 한기마저 들었다.
흐르는 물에 잠시 발을 담갔는데 세상의 걱정까지 씻겨 갔는지 심신이 너무나 상쾌했다.
1,960년도 중학생으로 소풍 다닐 적에는 물소리 새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고 삼복더위에도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무하경(無夏境)이기도하였고 티끌 같은 나그네로 하여금 세상사를 잊게 하던 천고비경(千古秘境)이였건만
지금은 사시장철 붐비는 행락인파로 속진(俗塵)으로 더럽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전국에서 이만한 경치를 갖춘 곳도 드물다.
희방사 주차장에 이르니 야생화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2005년 6월
강원도 홍천에 있는 팔봉산(302M)으로 산행을 했다.
팔봉산은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 강이 여덟 개의 암봉군을 감싸고 휘돌아 돌면서 홍천강 제일의 경관을 이룬 산이다.
낮은 산으로 경사가 심한 '8개의 뾰쪽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 가을은 등산객들이, 여름철은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여덟 개의 바위 봉이 절벽단애를 이루고 여덟 봉우리마다 비경을 자랑한다.
주능선이 마치 병풍을 펼친 듯 한 산세로 예부터 "소금강" 이라 불리어질 만큼 아름답다.
산을 감싸고 흐르는 홍천강물과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팔봉산 입구에서 홍천 강을 건너는 팔봉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매표소가 있다. 1,500원을 지불하고 입장표를 사서 옆에 있는 계곡숲속으로 내려가면 등산로가 나타나는데 등산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녔는지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팔봉산은 홍천 강을 끼고 있어 1봉-8봉까지 능선을 걸으면서 모두 홍천 강을 내려다 볼 수 있다.
2봉을 오르면 정상에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당굿을 한다.'는 삼선당(三仙堂)이 있다.
산 전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팔봉산은 제3봉이 정상(302m)이다.
각 봉의 정상을 지날 때면 양쪽으로 절벽이라 아찔한 순간도 있지만 바위 사이로, 나무 사이로 보이는
홍천 강은 서로가 잘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4봉을 오르려면 해산(解産)굴을 지나야 하는데 좁은 바위사이를 통과하는
고통이 '해산하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산의 ‘호랑이굴’ 관악산의 ‘관악굴’ 월출봉의 ‘通天門’과 너무나 유사하고 헤비급은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1봉에서 8봉으로 갈수록 경치가 더 아름답고 1봉을 오르는 길과 8봉을 내려오는 길은 길고 경사가 심하며 안개가 심할 때는
7봉에서 하산하는 것이 좋다. 특히 마지막 8봉에서 홍천 강으로 하산하는 길은 그 경사가 어찌나 심한지 위에서 미끄러지면
강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산을 첨부터 끝까지 붙잡고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오십 견으로 목과 어깨가 아픈 사람이 팔봉산을 등산하면 완쾌되지만 초보등산객들은 며칠간 어께통증을 겪게 된다.
산행종주시간은 2시간 30분이 소요되고 하산 길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주차장은 평일에도 대형관광버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하산하면 곧바로 홍천 강이다.
팔봉산은 흔히 두 번 놀라게 한다.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아름다워 놀라고,
일단 산에 올라 보면 암릉이 줄지어 있어 산행이 만만치 않아 두 번 놀라게 된다.
팔봉산 여덟 봉우리를 다 넘는 연인들은 모진 고비를 넘기고 오래 간다고 한다.
팔봉산은 가족단위 산행에 적합하고 백사장과 경기장이 있어 단체관광이나 야영하기에 좋다.
우리선조들은 八字를 많이 썼다.
산 이름으로는 충남 서산의 팔봉산(362m), 경북 대구의 팔공산(1193m), 전남 고흥의 팔영산(609m), 수원의 팔달산이 대표적이다. 그 이외에도 八德, 八苦, 八災, 八穀, 八卦. 八達, 八道, 八方, 八字, 八角亭, 八陣圖, 八珍味, 八月仙, 八重奏, 八人轎와 八人舞, 八朔童과 八不出 等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이다.
2005년 7월
삼악산(654M)을 다녀왔다.
삼악산은 춘천시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서면 덕두원리에 있는 산이다.
경춘 국도변에서 가깝기 때문에 수도권 시민들의 주말여행이나 일일관광코스로 적합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및 기암괴석 사이로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고 협곡과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으로 이루어진 삼악산의 산세는 설악산의 빼어난 암봉미와 오대산의 웅장함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하다.
울창한 수목도 인상적이고 의암호와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상에 서면 마치 다도해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주변경관이 아름답다.
삼악산은 광주산맥에 속하며 용화봉. 청운봉. 등선봉의 세 봉우리로 이어져 있으며, 산정은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은
급경사이다. 기반암은 변성암이며 남쪽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등선폭포 등을 이루며 의암호로 흘러든다.
기암괴석이 많고 소나무·참나무 등의 수림이 울창하며 계곡미가 빼어나다.
산정에는 삼악산성의 유적과 삼악사 터가 남아 있으며 남쪽 계곡에는 높이 15m의 등선폭포가 있다.
그밖에 신라 때의 사찰로 현대에 재건된 흥국사. 상원사 등이 있다.
산 입구에 서니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는 것만 같았고 몇 년 전 보다 훨씬 자란 것처럼 느껴졌다.
초장부터 체력과 폐활량을 테스트하며 등산로를 오르려니 바람 한 점 찾아보기 어려워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온몸이 후줄근하다. 8부 능선에 이르니 넓지 않은 터에 돌무덤이 나타나고 북한강 줄기가 서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삼악산성은 삼한시대 맥국의 성이고 서기 894년경 후삼국시대(후고구려)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이기도 하다.
부족국가인 맥국이 세운 절은 옛날 그대로 흥국사로 일컫고 속칭 '큰절'이라고 부른다.
그 후 여러 번 전란에 불에 탄 것을 광무2년에 다시 중수하였다가 퇴락하고 협소한 관계로 불기 2,529년에
대웅전 17평을 중창하여 망국의 한을 전하고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오늘도 탐스런 불두화가 곱게도 피어 있고 샘터에는 시원한 산수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와
등산객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한다.
청운 봉에 오르니 높다란 용화 봉이 위압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삼악산의 주봉인 용화 봉을 오르는 산길은 다시 한 번의 지구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지친 다리를 끌고 용화 봉에 올라 지나온 능선을 돌아보았다.
맑은 날 조망되던 화악산과 복배산 등은 희뿌연 연무에 오리무중이고
의암댐위로 강 가운데 위치한 중도유원지가 항공모함처럼 떠 있다.
숲이 울창한 하산 길을 얼마간 내려서니 경사진 사면에 돌을 가져다 만들어 놓은 333계단이 나타난다.
등선폭포는 등선계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폭포의 남쪽 계곡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6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는데 단단한 규암의 지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시원스럽고 장쾌하다.
등선폭포는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려 있는 선녀탕과 기암괴석의 절벽으로 훌륭한 경치를 이루고 있으며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높이 10m의 아담한 제1폭포를 시작으로 제2,3폭포 및 선녀탕을 경유하여 삼악산 주봉(해발 654m)을 오르는 등산로는
그리 험하지 않아 초보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2005년 8월
치악산(1,288M)을 등산했다.
치악산 국립공원은 강원도 횡성군에 소재하고 있으며 우리국토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허리에서 남쪽으로 내리닫는
차령산맥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유달리 지형이 험하고 골짜기가 많아 곳곳에 산성과 사찰과 사적들이 널리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어울리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또 수도권 일일 관광지와 주말 휴양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자연학습의 요람으로 조성되고 있다.
해발 1,288미터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삼봉, 향로봉, 남대봉, 천지봉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병풍처럼
남북으로 펼쳐 있으며 사이사이에 가파른 계곡들이 자리 잡고 있다.
주능선 서쪽은 급경사이지만 동쪽은 비교적 완만하다.
치악산에는 구룡계곡, 금대계곡, 부곡계곡 등 기이한 암석들이 이룬 아름다운 계곡과
태종대, 구룡소, 세렴폭포, 구룡사, 상원사 등의 수많은 관광명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봄의 진달래, 철쭉꽃과 여름철 구룡사의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 가을단풍,
특히 겨울 설경이 장관이어서 사시사철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구룡사는 원주시내에서 동북방 약 24km 지점에 위치하는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엽 때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에 사세가 기울어진다고 하여 그 혈을 끊었으나
더욱 쇠잔해지자 다시 거북바위의 정기를 살리고자 거북구(龜)자를 써 오늘의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하며,
신라말기 도선 국사의 수도를 비롯하여 고려 말에는 무학 대사, 조선 중엽에는 사명대사 등 고승대덕의 수도처였다.
미륵불탑은 비로봉(1,288m-毘盧峰은 불교용어로 중앙, 머리, 최고의 부처, 석가여래라는 뜻)에 서 있는 3개의 돌탑이다.
이 탑은 원주시내의 조그만 과자방을 운영하던 <용진수>라는 사람이 산신의 계시를 받고 세 번에 걸쳐 9년 만에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황장금표(黃腸禁標)는 구룡사로 들어가는 입구(매표소)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금표는 황장목 봉산(국가지정 보호 국유림)의 경계표지로서 일반인의 도벌을 금지하는 경고표시를 큰 돌에 새긴 것이다. 예부터 왕실에서 소요되는 각종의 필수품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특산물 가운데 가장 양질의 것을 진상케 하였는데
황장목도 그 중의 하나이다.
치악산은 상원사의 종을 울린 꿩의 살신보은(殺身報恩)으로 목숨을 건진 선비가
은혜 갚은 꿩을 기리기 위해 '雉'자를 넣어 치악산(雉岳山)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남대봉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상원사에 들러 보은의 탑과 범종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하산 길에 모두 모여앉아서 준비해간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부부는 배낭을 풀고 보니 밥은 없고 반찬뿐이었다.
일행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여느 때보다 점심을 더 많이 먹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인심이 좋아서 ‘얻어먹는 거지 배 터진다. 라는 말이 실감났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윤리도덕을 지키고 보은과 신의를 지키는데 있다.
치악산의 유래는, 남의 어려움을 지나칠 수 없는 선비의 측은지심은 세상의 몰인정을 돌아보게 하고
죽으면서도 은혜를 갚은 꿩의 보은정신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밥 먹듯 자행하는 배은망덕을 꾸짖으며
종이 울리면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지 않은 암구렁이는 비록 미물이지만 신의를 하찮게 여기는 인간들에게 신의를 가르치고 있다.
2006년 2월 18일
충남 홍성에 소재한 오서산(烏棲山: 791M)을 다녀왔다.
까마귀와 까치들이 많이 서식하므로 산 이름도 <까마귀 보금자리>로 불리고 있다.
전날은 추웠지만 당일은 등산하기에 적당했으므로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기도를 드렸다.
충남 제 3의 고봉인 오서산은 천수만 일대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나침반 혹은 등대 구실을 하기에 예로부터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려 왔다.
정상을 중심으로 약 2km의 주능선은 온통 억새밭으로 이루어져 억새산행지의 명소이기도 하다.
또 오서산은 장항선 광천역에서 불과 4km의 거리에 위치, 열차를 이용한 산행 대상지로도 인기가 높다.
오서산에는 고려 때 대운대사가 창건한 명찰인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고
고찰의 주변은 온통 수 백 년 생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정암사에서 정상까지 구간은 가파르면서 군데군데 바윗길이 자리해 약 한 시간 동안 산행 기분을 제대로 만끽 할 수 있어
등산 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오서산 등산의 최고 백미는 7부 능선부터 서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하는 상쾌함과 후련함이다.
산 정상에서는 수채화처럼 펼쳐진 서해의 망망대해 수평선과 섬 자락들을 관망할 수 있건만
이른 봄의 차가운 서해바람으로 오래 머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에 광천읍의 시장에 들러 육젓, 오젓, 추젓 등 입맛대로 골라서 사 왔다.
광천읍은 충남 도청이전 확정으로 거리마다 플랜카드가 걸려 있고 축제 분위기였다.
2006년 5월 27일
강원도의 연인산(1068M)을 등산했다.
출발 전 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 탓으로 23명만 참여했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회원들과 함께하는 등산의 즐거움이 버스 안에 넘쳤다. 구리를 지나서 가평 경춘 국도에 진입할 때까지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연인산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명지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승안리, 상판리, 백둔리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장수봉, 서쪽은 우정봉,
남쪽에는 매봉·칼봉이 용추구곡 발원지를 "ㄷ"자 형태로 감싸고 있다.
계곡의 골이 깊고 능선의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의 접근이 용이하고 비경인 용추구곡은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아홉 굽이의 그림 같은 경치를 수놓았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생태계가 훼손되지 않은 수도권 내의 보기 드문 원시림 계곡이다.
정상에서 뻗은 우정. 연인. 장수. 청풍의 각 능선마다 아름다운 철쭉이 군락으로 자생하고 있으며
매년 5월에는 철쭉제가 열리고 금년 6월에는 산삼 캐기 대회까지 열린다.
악천후로 등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백둔리 버스주차장>에 하차하니 빗줄기는 더욱 굵었다. 우의를 입고 배낭을 메고 등산지팡이를 짚고 출발하는 회원들은
산악유격훈련을 떠나는 훈련병 같았다. 2키로 미터를 오른 중간지점에서 거의가 등산을 포기했다.
정상의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석조물에서 거세진 비바람으로 기념촬영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지만
일행들에게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하였다.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이산의 모산인 명지산, 그 오른쪽으로 화악산, 동으로는 장수능선, 남으로는 용추구곡,
남쪽으로는 지난달에 등산한 운악산을 볼 수 있건만 비바람과 산안개로 한치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악천후에서도 등정했다는 성취감을 안고 급히 하산했다.
리더부재는 혼란을 야기했다.
하산 갈림길에서 일행을 놓쳤다. 일행들은 동쪽 능선인 소망능선과 장수능선으로 하산했지만
나는 남쪽능선인 우정능선을 따라 하산했다. 엉덩방아도 찧고 넘어진 고목에 이마도 부딪치면서 하산할수록 일행과 멀어져 갔다.
소리쳐도 연락이 안 되고 핸드폰도 통화불가지역이여서 겁이 났다.
가까스로 연인능선을 넘으니 용추구곡이라는 팻말과 임도가 나타났다. 출발지인 <백둔리 자연학교>의 방향과
5.9키로 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를 보게 되니 안심이 되었다.
중도 갈림길에서 다른 방향의 길을 선택했다가 되돌아오는 등 홀로 심산유곡의 임도를 걷자니 지치기도하고 지루하기도해서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오후 세시에 장수고개에 도착하니 너무나 지치고 배고파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비를 맞으면서 혼자 허겁지겁 점심식사를 끝냈다.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꼴이었다.
가장 고생한 등산으로 추억에 남는다.
식당의 봉고차가 주차장으로 오기 전에 막간을 이용해서 개울로 내려가서 진흙탕이 된 바지와 다리를 씻었는데
흐르는 물이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차가웠다. 결과적으로 내가 길을 잃었기에 온전히 연인산을 파악할 수 있었고
세 시간 이상 혼자 걸으면서 내 판단이 현명하다고 선택하지만 틀릴 수 있다는 것과 동행이나 약도가 중요하다는 것과
기도가 역경과 수난을 극복하게 한다는 것 등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귀가길 차창 밖으로는 농촌 모내기가 한창이다.
들녘에는 이양기가 분주히 다니고 트랙터의 논 써리는 모습들이 가깝게 보였다.
2006년 12월 23일
충남 청양군, 차령산맥에 솟아있는 칠갑산(561M)을 다녀왔다.
칠갑산은 주병선의 <칠갑산>이라는 노래의 그 칠갑산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음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수원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2시간 30분쯤 걸린다.
'충남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험하며 수림이 울창하여 머루. 다래. 자생란 등이 많다.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으며, 명승지와 문화유적 등이 조화를 이루어 일대가 1973년 3월 총면적 32㎢의
칠갑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칠갑산 8부 능선 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는데, 고갯마루에는 조선말기 독립운동가
최익현 선생의 동상과 전망대 칠갑정이 있다.
그리고 천상호수 위에 콩밭 메는 여인상이 있지만 콩밭 매는 여인은 구경하기 힘들다.
주차장에 내려 광장으로 들어서니 갖가지 장승이 눈길을 끈다.
경치가 수려한 장곡천 골짜기의 절벽 위에는 청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곡사(長谷寺)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사지(寺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850년(문성왕 12)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창건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천장호 일대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북쪽 사면에 있는 대치(大峙)는 산세가 험준하여 겨울철에 통제되는 경우가 많다.
1983년에 2차선으로 터널이 개통됨에 따라 공주- 청양 간 교통이 원활해졌다.
주변에 도고온천이 있고 특산물로는 청양고추와 구기자가 유명하다.
연말 산행을 간단히 하고 아산만의 유명한 횟집에서 연말 결산 겸 망년회를 하였다.
2007년 7월 28일
대야산(931m)을 다녀왔다.
대야산은 백두대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경북 문경시(聞慶市) 가은읍(加恩邑)과 충북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에 속한다.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문경의 주흘산, 희양산과 함께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에 올라 있다.
나는 조령전투에서 백제의 견훤이 고려의 왕건에게 정복당하는 대야산에 얽힌 역사를 소개했다.
연풍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달천강의 중류에서 지류를 이루며 흐르는 괴산 8경의 하나인 아름다운 쌍곡계곡을 돌아 올라서 제수리 재(530m)를 넘어 새로이 조성된 주차장에 도착했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 옆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소(沼)가 많아서 한여름인데도 별로 더운 줄을 몰랐다.
북쪽에서 발원하여 괴산 쪽으로 흐르는 선유동계곡은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고, 반면 동쪽에서 발원하여 문경 쪽으로 흐르는
용추계곡은 역시 절경이 뛰어난 곳으로 이곳 사람들은 <선유동계곡>이라 부른다.
두 개의 선유동계곡이 있는 대야산은 피서를 겸한 산행지로 유명한 곳이다.
최근에는 KBS태조 왕건의 촬영장소로 이곳 계곡이 소개되어 (도선 국사와 왕건의 만남) 인파가 몰리고 있다.
대야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을 살펴보면 이곳이 어떠한 곳에 위치한 곳인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절경이 뛰어난 곳이다.
우선 국립공원 월악산과 속리산을 사이에 두고 조령산. 주흘산. 희양산 등 우리 귀에 익은 아름다운 산들이 즐비하다.
하얀 암반위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는 것으로 시원함을 느끼면서 숲길을 따라 올라서니
거대한 화강암반이 마주하는 곳에 용추가 나온다.
龍湫는 龍沼라고도하며 전국유명산에 많이 나오는 용어이다.
문경팔경 중 으뜸인 대야산 용추는 깎아지른 암봉과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대야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2단으로 이루어진 용추폭포는 위험 표지판이 매달린 로프가 가까이 접근을 막고 있지만 하트형의 위 용추와 그곳에 물이 잠시 머물다 흘러내려 소를 이룬 아래 용추는 많은 비경 중에 비경이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 하다 남긴 용 비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의 물은 마르는 일이 없어 옛 부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수만년 기나긴 세월을 쉼 없이 흘러 내려 마침내 떨어지는 폭포아래에는 천하에 보기 드문
신비스런 하트형(♡)으로 깊게 파인 위 용추는 보는 이 마다 미소를 머금게 한다.
위 용추에서 잠시 머물던 물이 다시금 매끈한 암반을 미끄럼 타듯 흘러내려 부드럽게 이루어 놓은
아래 용추는 하절기에는 개구쟁이 꼬마들의 미끄럼틀로 이용되기도 하는 곳인데
젊은 아주머니들이 속살이 드러나는 부끄러움도 불사하고 미끄럼을 타는 모습은 가관이다.
바위주변의 절경에 감탄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숲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니 넓은 암반위로 흘러내리는 물위로 달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이름 붙여진 월영대(月影臺)가 등산인 들을 반긴다.
거북 바위를 돌아서 코끼리 바위의 코의 형상을 만져 보고 바위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니
길목에 커다란 바위가 버티어 서서 줄을 내리고 있다.
웅장하고 거대한 바위 밑 둥에 바쳐 놓은 잔 나뭇가지 지렛대가 웃음을 짓게 한다.
뒤편의 대문바위를 돌아 정상의 둥근 바윗돌에 올라서니 대야산(930.7m) 표시판이 일행을 반긴다.
그리 넓지 않은 암봉 위에 오르니 산위에서 부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 산세를 둘러보니 호연지기를 느꼈다.
계곡마다 안개로 가득 덮여 있어서 신비스럽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컸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진 산세의 아쉬움을 남기며 피아골로 하산하여 월영대 소에서 온몸을 담그니
여름산행의 더위와 피로가 싹 가시고 폐부까지 시원했다.
나 혼자 명산의 명소에서 목욕한줄 알고 우쭐했는데 주차장에 도착하니 등산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은 단체로 소에 들어가서
백주에 노천혼탕을 즐겼다고 하니 은근히 심술이 났다. 귀가차안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 솜씨가 모두 대단하다.
2008년 6월
민주지산(岷周之山: 1242M)을 다녀왔다.
한자(漢字)를 풀이하면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산이라는 뜻이다.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 봉으로 이어지는 활처럼 휘어진 능선과 남쪽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유장한 능선이 펼쳐진다.
도마령- 각호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 물한계곡 코스가 약 6~7시간 소요(15km거리)되며
80년대 겨울 특공부대원들이 행군을 하다 1개 소대원들이 동사한 곳이다.
특히, 남동쪽에 위치한 삼도봉(三道峰·1,177m)은 충청북도 영동군,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북도 김천시의 경계이며
정상에는 각 도민이 모여 세운 3도봉 대화합 탑이 있다.
이곳은 조선 태종 14년(1414)에 조선을 8도로 분할하면서 삼남의 분기점이 되었다 한다. 산행을 하려면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용화면 조동리,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등 4곳에서 올라갈 수 있지만 영동군 쪽의 산세가 완만하기 때문에
주로 물한리에서 오른다. 원시림이라고 알려진 물한계곡, 등산로 왼쪽 계곡은 파란 철망으로 쳐져 있다.
철망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계곡에 들어가지 못하게 설치한 것 같다.
두세 군데 계곡으로 들어가는 철망 문이 있을 뿐 계곡으로 들어 갈 수는 없지만 맑은 계곡의 물소리와
우거진 숲이 어우러져 상쾌하다.
20여분 등산로를 따라 걸다가 왼쪽으로 가면 석기봉, 오른쪽으로 200m 가파르게 오르면 민주지산 정상이다.
마침내, 정상의 밋밋한 대머리 위에 올라 바라본 연릉의 파노라마,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석기봉, 남·북으로 훤히 뚫린 계곡.
이러한 장관이 가히 민주지산이 갖는 매력이며 각 준봉과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다시금 이 산을 찾게 한다.
석기 봉을 돌아 삼도 봉을 지나 내려오다 보면 시원한 계곡 물에 발 담그고 잠시 쉬어 가는 여유도 즐겨 볼 수 있고 특히 5월에 진달래가 만개하는 계절에는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2009년 1월17일
강화도 삼산면 석모도의 해명산(327M)을 세 번째 다녀왔다.
강화도를 지나 외포리 선착장서 버스채로 승선하였다. 진득이 고개에서 하차하여 해명산(327M)에 오르니 11시 10분이었다.
석모 도를 종주하여 상봉산(316M)에 오른 후에 절고개의 눈썹 바위에서 서해절경을 조망하였다.
눈썹바위에 뛰어오르다 종다리 근육파열로 그 후 산행에 고생을 많이 했다.
하산하는 등산객들마저 보문사에 입장할 수 없도록 사찰주위에는 높은 철조망이 견고하다.
등산객들의 쌍욕을 들으니 포교차원에서 사찰 뒤 일부구간이라도 개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2009년 9월 26일
용화산(龍華山 :878m)을 다녀왔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하남면과 춘천시 사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동쪽에 파로호와 서남쪽에 춘천 댐이 있다.
산 정상에서 3갈래의 능선이 이어지며 사면은 대부분 급경사로 기암절벽을 이룬다.
하천은 정상부에서 발원하여 남쪽 사면과 북동쪽 사면으로 흐르는데, 남쪽 사면을 흘러내리는 양통개울은 춘천호로 유입하며,
북동쪽 사면을 흐르는 계류들은 파로호로 유입된다.
정상부에는 부족국가시대의 석성으로 알려진 용화 산성과 참나무 숲이 있어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산록에는 용화사 절터를 비롯한 용흥사· 용암사 등의 사찰이 있고 백운대· 은선암· 현선암 등의 기암괴석이 많고,
용마 굴· 장수 굴 등의 작은 동굴이 있으며 경치가 뛰어난 산이다.
2009년 10월 24일
경북 김천의 황악산(黃岳山: 1111.4미터)을 다녀왔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는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수원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위를 달려서 황간IC에서 빠져 나와 영동으로 접어들었다.
영동의 가로수인 감나무에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장관이었다.
牛頭嶺에 내려 등산을 시작했다.
소백산맥의 지맥에 있는 고개의 형상이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예로부터 경상남도 북부 산간지방과
경상북도 남서부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김천-산청을 잇는 국도에 위치하고 있다.
구름도 쉬고 넘는다는 추풍령 아래 첫 동네가 김천시이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산세 좋은 황악산은
소백산맥의 한 자락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마음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장엄한 기세로 남하하던 백두대간이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한반도 중심부로 들어오면서 그 기세를 낮춘 곳인 추풍령이다.
추풍령을 지나면서 다시 힘차게 일어서는 형국인 황악산(黃岳山: 1111.4미터)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세가 마치 학(鶴)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누런 금빛 학을 상징하는 황학은 상상 속의 상서로운 새로 옛사람들이 이곳을 황학이라고 부른 이유는 이 산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추풍령을 넘어 김천으로 내려오는 4호 국도 오른편에 있는 황악산 자락에는 신라의 고찰 직지사가 있다.
황악산의 수려한 산세에 묻혀 있는 직지사는 수려한 산세가 흘러내린 기슭에서 단아한 풍채를 자랑하며 산사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신라에 불교를 전해 준 아도화상이 눌지왕 때인 418년 창건한 직지사는 규모나 연륜에서 볼 때 예사 절과 사뭇 다르다.
고려 때에는 불교 숭앙 정책 덕택에 중건을 거쳤고, 억불정책을 편 이조에 들어서서도 큰 절로 남아
사명대사 같은 큰스님을 배출하기도 했다.
지금도 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율곡 이이가 이 절의 사적기를 편찬했을 정도로 혜택 받은 사찰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전까지 발전을 거듭하면서 지어 놓았던 마흔 채가 넘었던 건물들은 왜적들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천불전, 천왕전, 자하문만 남아 있게 되었다.
폐허가 된 직지사는 아낙네들의 지성터 정도로 쓰이다가, 400년이 지난 1966년 복원되기 시작해 지금의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무려 15년 걸린 복원작업은 우리나라 곳곳의 큰 산에서 벌채해 온 좋은 목재와 고증을 받아 정성스럽게 구운 기와로 만들어졌다.
복원된 건물에는 여러 백년의 풍상은 서려 있지 않지만 400년 전의 웅자(雄姿)를 제대로 찾았다는 점에 있어 의미가 크다.
이 절의 큰 볼거리는 천불전이다.
천불전 안에는 천여 개의 옥돌로 된 불상이 있어 경탄을 자아낸다. 그 불상 가운데에는 알몸의 동자상이 하나 있는데
첫눈에 이 동자 상을 찾아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어 이곳을 찾는 아낙들은 동자 찾기에 열중이다.
산이 깊은 황악산에는 산나물이 많이 난다. 하산 후에 푸짐한 모둠 산채정식에 반주로 직지사의 명물인 더덕주도 맛볼 수 있다.
직지사 구경을 마친 후 절 마당에서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거대한 병풍을 세워 놓은 것 같은 황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4시간동안 산행한 황악산은 그 기개가 더욱 웅장하게 보였다.
2010년 10월 30일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
산악회에서는 매월 유명산에 가지만 나는 성당단체일, 향우회일, 문중일 등으로 자주 참여하지 못한다.
오랜만이지만 모두 반겨 주었다.
행락 철이라서 진고개 휴게소 까지 가는데 만 5시간 소요되었으므로 산행을 변경하여 대관령으로 갔다.
오대산은 여러 번 등산한 경험이 있다.
오가는 버스에서 종전과 같이 또 사회를 맡았다. 좀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2010년 12월 11일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내장산을 등산했다. 최고봉은 신선봉(873M)이고 고려시대부터 靈隱山으로 불렸으나
언제부터인가 內藏山으로 불렸고 197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단풍이 아름답기로 전국에서 유명하다.
몇 년 전만해도 엄두도 낼 수 없는 산행이지만 이제는 교통이 좋아져서 수원에서 3시간만이면 내장사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다.
내장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내려오는데 감나무마다 먹음직한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작가 자매님이 매번 등산기를 써서 낭독하는데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서 등산기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읍 한우마을에서 암소등심을 배부르게 먹으며 회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금년 한해의 등산을 즐겁게 마무리하였다.
2011년 2월 26일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국립고원의 계방산을 등산하기로 했는데 버스 출발 직 후
산악회장님이 계방산은 입산금지이므로 오늘산행은 축령산으로 변경하였다는 안내방송을 했다.
계방산(1577M)은 한라산(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 설악산 대청봉(1708M), 덕유산 향적봉(1614M) 다음으로
한반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승복 생가를 들러서 송어양식장에 들러 회를 먹기로 한 꿈이 깨지니 아쉬웠다.
축령산(886M)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아름다운 산이다.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9시 30분에 매표소에서 일주코스(8.7KM. 4시간)로 등산을 시작하였다.
출발점 계곡에는 인조빙벽이 가관 이였고 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들과 야영 테크가 많았으나 한가하였다.
산이 예상외로 경사가 심해서 로프를 이용하는 구간이 많았지만 오를수록 파란하늘과 넓은 시야는
답답한 세상사를 잊게 하기에 족했다.
밤부터 폭우와 폭설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출발 시에는 추웠는데 산중턱에 오르니 완연한 봄날이었다.
정상능선에는 지난해 <콘파스>태풍으로 수십 년 된 나무들이 뿌리 체 뽑히어 넘어져있었다.
독수리바위를 지나니 오른쪽은 완전절벽이므로 긴장하였다.
조선시대 남이장군이 심신을 수련하였다는 남이바위에 오르니 시야가 넓게 확 틔이였다.
정상(886M)에 오르니 돌탑위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날씨가 좋아서 멀리까지 잘 보였다.
북쪽으로 운악산(936M), 연인산, 명지산(1267M), 북동쪽으로 청평호와 남이섬과 화악산(1468M),
동남쪽으로 천마산과 유명산과 용문산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산 길은 음달이라서 잔설과 빙판길로 아이젠을 착용하고도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억세 밭을 지나니 키 큰 잣나무군락지가 나오고 산행은 쉬워졌다.
서리 산 정상(832M)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철쭉동산으로 하산했다.
키 낮은 철쭉가지 사이 질척이는 눈길을 내려오는데 수색대원들의 작전수행을 방불케 했다.
철쭉이 만개하는 장관을 보기위해 다시 오고 싶을 정도로 철쭉군락지가 길게 이어졌다.
경사가 심해서 무릎과 엄지발가락의 통증은 심했지만 오히려 오십 견은 치료가 된 것 같다.
전망대를 거쳐 삼림 휴양관으로 하산하니 14시 30분이였다.
2011년 3월 26일
사순시기이므로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 구산성지를 순례하고 도드람산을 등산하였다.
구산성지는 서울인근에 있지만 수원교구성지이며 거북같이 생겼다 해서 龜山이다.
수원에서 8시에 출발하여 9시에 성지에 도착하였듯이 가깝고 아담한 성지이다.
첫눈에 참 좋다는 것을 느끼며 현양탑등 모든 것이 도자기로 이루어 졌으며 도자기는 성지 안에 가마가 있어 직접 빚어서 사용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미사시간에 신부님은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이 남긴 我朝剽胸聖血 求賜欽崇之恩 與含忍之德을 사순시기에 새기자고 강론했다.
도드람산은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산(높이 349m)으로 일명 ‘저명산(猪鳴山)’이라고도 한다.
옛날 한 효자가 어머니의 병을 구환하기 위해 절벽에 매달려 석이버섯을 뜯다가 멧돼지 울음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절벽에 급히 올라가 보니 몸을 매단 밧줄이 바위모서리에 닳아 거의 끊어져가고 있었다.
산신령이 멧돼지를 시켜 효심이 뛰어난 효자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2011년 5월 23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王方山(737M)을 다녀왔다.
조선조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환궁하다가 왕자들의 골육상쟁 소식을 듣고 머물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도선 국사가 수도하던 普德寺는 王山寺라 한다. 동두천에서는 동쪽이고 포천에서는 서쪽에 우람하게 보이는 산이 왕방산 國事峰 줄기이다.
問禮峴藥水(물어고개약수라 한글로 쓴 것은 번역에 문제가 있음)에서 출발하여 왕방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각자 싸 온 음식과 송 전이사님이 협찬한 돼지고기로 포식을 하였다.
국사봉(745M)에 오르니 군 통신대가 자리자고 있고 헬기장에서는 포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하산 시 경사가 너무 심해서 발톱이 빠지는 줄 알았다.
깊이올 저수지로 하산하니 계곡주변의 풍광이 빼어나고 맑은 계곡물로 채워진 저수지에는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부활전야미사에 참례하기위해서 서둘러 귀가했다.
우리는 천혜의 땅에서 살아가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4계절이 분명한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산들은 숲을 이루게 하여 신성한 공기와 산새랑 산짐승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계곡과 강을 만들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아름답고 웅장한 산들은 휴식과 건강을 제공하면서 자연의 신비와 계절의 순환을 깨닫게 하므로
등산을 할수록 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경건해진다.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나는 산을 좋아하므로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산은 사람을 육체적으로 건강하게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심성을 순화시켜 준다.
산은 모든 것을 정화하고 복원시키며 등산은 몸의 약화된 기능을 향상시켜 주고 피곤해진 신심에 활력을 준다.
숲의 청정산소는 체내 산소부족을 해소하고 피부호흡을 통해 피로해소, 암 예방, 두뇌활동 증진. 피부노화방지에 좋다.
숲은 정서적 치유뿐만 아니라 긍정적 행동을 유도해서 비행청소년, 인터넷 중독증, 가족관계개선 등에 좋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날로 상승하고 있다.
흡연율, 음주량, 교통사고 등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OECD평균수명(80.7세)을 넘어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첫째 등산이다. 등산에 관한한 한국은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 북한산의 경우 한해 500만 명,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을 정도다.
산은 심장으로 오르고 무릎으로 내려온다.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고지혈증 등 심장마비의 위험성이 높은 분들은 올라갈 때 경사가 완만한 곳을 골라야 한다.
무릎이 약한 사람은 등산용 스틱을 사용하면 몸의 균형도 잡아 낙상도 방지하고 체중을 분산시켜 무릎도 다치지 않는다.
어느 경우든 무리해선 안 된다. 정상까지 올라야 된다는 강박관념이나 뒷사람들의 추월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숨이 가빠지면 휴식을 취하는 등 무리하지 말고 자신의 체력에 맞게 등산을 즐겨야 한다.
등산이 고된 극기 훈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통즉 등산(通則登山)이요. 궁즉 입산(窮則入山)이다.
이집트 왕자인 모세가 온통 바위로만 된 골산(骨山)인 시나인 산으로 간 것은 입산이요.
주말마다 산악회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산에 가는 것은 등산이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등산은 계속될 것이다
첫댓글 오늘 성모산악회의 역사를 읽고 있습니다.
기록은 영원한 우리의 재산이고 삶의 얼굴입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