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밑 땅' '열사의 땅' 데스벨리

[jaeki]

[자동차로 미국 누비기⑥] 굿바이! 데스벨리

기사입력 2010-10-08 17:24

[CBS정치부 이재기 기자] 열사의 사막도 열대의 바다도 데스벨리(daeth valley) 만큼 뜨거운 곳은 없을 것이다. 데스벨리는 정말 일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끈하게 뜨거운 곳이다. 마치 핀란드식 사우나에 들어간 것 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 여름철 데스벨리가 뿜어내는 열기는 사우나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9월 하고도 하순이면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아침 저녁으로는 찬 바람이 제법 선선할 때지만 데스벨리는 한 여름보다 더 푹푹 찐다. 작열하는 태양 그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바위, 대지 위를 달리며 열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피부를 따갑게 때리고 속살을 익혀버릴 듯한 기세로 가슴 속 깊숙이 파고든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아 들어가 보지만 뜨겁기는 마찬가지이다. 데스벨리 비지터센터가 위치한 곳의 지명도 'furnace creek' 용광로다. 물론, 데스벨리에는 금,은,구리 같은 광물자원이 풍부해 아마도 어느 광물 제련 용광로의 이름을 땄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곳의 열기는 용광로를 방불케 할 정도다.

그래서, 6월부터 9월까지는 자동차의 엔진이 열을 받아 퍼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데스벨리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유한다. 도대체 온도가 얼마나 높기에... 여행길에 오르기 전 주위에서 너무 더우니 데스벨리는 피하라는 권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곳을 가보기 위해 여행계획을 새로 짤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2009년 9월 22일 예정대로 데스벨리로 출발했다.

라스베가스 숙소에서 한껏 늑장을 부렸더니 데스벨리 도착시간이 근 오후 1시가 다 됐다. 더위는 이미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라스베가스를 벗어나 교외의 사막으로 접어들자 수은주는 벌써 화씨 100도를 육박했고 퍼니스 크릭에 있는 데스벨리 비지터센터 주변은 107~108도까지 오르더니 오후 2,3시쯤 미국에서 가장 낮은 땅이라는 베드워터 배신(badwater basin)에서는 수은주가 112를 기록했다. 화씨 112도는 섭씨로 환산하면 40도. 역대 최고기온은 1913년 7월의 화씨 134도=섭씨 57도, 7월 평균기온은 화씨 115도이다.

데스벨리는 두 세 가지 점에서 특별히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북미 전 지역에서 가장 덥고 건조하고 또 가장 낮은 곳이 바로 데스벨리이다. 데스벨리가 위도상으로 적도와 더 가까운 지역보다 더운 이유는 특이한 지형 때문이다. 해수면보다 최고 85미터 낮은데다 동쪽에 아마르고사(amargosa), 서쪽에 panamint(페나민트)를 비롯해 동서남북이 높은 산맥으로 둘러쳐진 분지 지형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내리쬐어 계곡내 공기가 덥혀지면 위쪽으로 상승하지만 사방에 높게 솟은 산맥에 가로 막혀 열기가 주위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정체돼 "불볕더위'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습도가 낮아 한국의 고온다습한 더위와는 차이가 있다.

해수면 보다 85.5미터나 낮은 계곡 내 포인트는 베드워터(bad water)로 이름 붙여진 곳으로 바닷물이 증발한 자리에 남은 광활한 소금밭이 장관이다. 베드워터 배신에는 아직도 조그만 물웅덩이가 남아 있고 주변으로 펼쳐진 흰색 소금밭은 그 두께가 수십 센티미터에 이른다.

소금밭으로 난 길을 따라 트레킹에 나서는 것은 정해진 관광 루트 가운데 하나지만 열기가 사납게 이글거리기 때문에 별다른 대비없이 나섰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나는 약 300미터 정도 트레킹을 시도해 봤지만 손이나 천으로 얼굴과 눈, 코를 가리지 않고는 더운 열기를 견디기 힘들었고 소금밭에 반사된 햇볕이 강렬해 선글라스 없이는 앞을 바라보기 조차 어려웠다. 베드워터를 동쪽에서 병풍처럼 막아선 아마르고사 산맥의 중턱에는 바다의 해수면 위치를 알려주는 'sea level'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US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2시간 가량 달리면 아마르고사(Amargosa)사막 중간에 비아티(Beatty)란 작은 도시가 나온다. 여기서 서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데스벨리의 동쪽 입구가 나타난다. 데스벨리는 과거 거대한 호수였으니까 이 곳의 동쪽 제방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프바인(rapevine)과 퓨너럴(funeral)산맥을 넘어서면 눈 앞으로 광대한 데스벨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끝없는 사막과 드 넓은 소금밭, 눈 앞에 보이는 듯 한달음에 닿을 것 같지만 첫 목적지 퍼니스 크릭까지는 차로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계곡은 넓고도 깊다. 동쪽 입구에서 부터 시작된 40여도 가량의 경사길은 평탄한 소금밭까지 계속되는데 자동차를 타고 시속 40~50㎞의 속도로 20분 가량 달려야 바닥에 닿을 수 있다.

구불구불한 경사길에서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연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물이 말라 버린 호수 속을 차를 타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캘리포니아주 서쪽 끝에 위치한 데스벨리는 남북으로 150킬로미터가 넘고 전체 바닥면적이 7800제곱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 워낙 넓고 관광포인트도 많아 데스벨리 관광에는 2~3일은 족히 걸린다.

데스벨리의 중심이자 가지런히 정리된 리조트가 갖춰져 있는 퍼니스크릭 주위 반경 20마일 안에는 데블스 골프코스(devil's golf course)와 골든 캐년(golden canyon), 아티스트 드라이브(artist drive),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 badwater, 단테스뷰(dante's view) 등이 모여있는 데스벨리 관광의 중심이다.

데스벨리는 워낙 극한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고온 건조해 척박한 이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사막 식물’이 있다. 키가 약 30~50센티미터 안팎인 이 관목은 사막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입사귀엔 엽록소가 없다. 녹색 빛을 띠어야 할 입과 줄기는 표면이 단단하고 매끄러워 태양빛을 반사하기 좋은 은색으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

데스벨리의 바닥부분에서 녹색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퍼니스크릭 부근엔 거대한 야자수 밭이 조성돼 있어 황량한 경관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낮 시간에는 스프링클러가 연신 물을 뿌려대지만 강렬한 태양빛에 잎사귀의 가장 자리가 타 들어간 야자수들은 극지에서의 생존이 얼마나 힘든 지 보여주고 있다.

퍼니스 크릭을 지나 골든 캐년 트레킹을 위해 차에서 내렸을 땐 정말 뜨거운 열기가 절정에 달해 숨이 턱 막힌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자동차가 퍼지는 것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쉼없이 내리쬐는 태양이 대지를 가마솥 처럼 데워 하늘과 땅이 한데 이글거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열기를 가득 머금은 데스벨리의 대기는 뿌옇게 변해 있었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만 그 바람은 열풍이었다. 골든 캐년은 빙하가 바위를 깊게 깎아낸 지형으로 깎아지른 양쪽 절벽 사이로 폭 7~8m 안팎의 길이 나 있고 누런 색깔을 띠고 있다고 골든 캐년이다.

데스벨리는 신생대 4기 전반기 홍적세(the pleistocene epoch)까지 북미대륙의 내해 가운데 하나였지만 홍적세 중기를 거치면서 물이 모두 증발해 사막으로 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골짜기 내부엔 퍼니스 크릭과 아마르고사(amargosa)강이 있었지만 주위 산에서 깎여 내려온 모래와 흙에 덮여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퍼니스 크릭과 베드워터 중간 지점에 위치한 ‘아티스트 드라이브’는 정말 기묘한 형태의 바위산와 골짜기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절경으로 중간에 아티스트 팔레트(artists palette) 포인트도 있다. 차를 타고 이 곳을 드라이브 한다면 비단 예술가가 아니라 할 지라도 예술적 영감이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단테스 뷰(Dantes view,1669m)는 데스벨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퍼니스 크릭에서 190번도로를 따라 약 40km 떨어진 산 봉우리다. 60도를 넘을 것 같은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오르면 산 꼭대기에 넓은 주차장이 설치돼 있다. 단테스 뷰에 오르면 드넓은 소금밭과 황량한 사막이 파노라마 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데스벨리에는 금과 구리 등 각종 광물자원이 많아 계곡 서쪽에는 ‘wildrose charcoal kilns’란 가마가 있고 Ballarat town, Greenwater, panamint city 등 광산을 따라 여러 도시들이 명멸했고 일부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개중에는 주민이 2000명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것도 있었고 학교와 극장, 테니스 코트 등 대부분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Greenwater에서는 "the death valley chuckwalla"란 잡지도 발간했을 정도로 도시 규모가 컸다.

또한, 벨리의 북서쪽 가장자리에는 스카티 캐슬(Scottys castle)이란 성이 가볼만한 관광포인트다. 미국 동부에서 이주해와 카우보이로 일하던 스카티(Scotty)란 인물이 데스벨리에서 금광산 사업에 손을 대면서 시카고에 사는 보험왕 알버트 존슨(Albert Johnson)을 투자자로 끌어들여 수 천 만달러를 유치한다. 하지만, 스카티는 금광사업은 커녕 보내준 돈을 다 써버리고, 투자자인 알버트 존슨이 '왜 이익금을 보내지 않느냐'고 물으면 "운송도중 사고가 났다"는 말로 핑계를 대곤했다고 한다.

참다 못한 알버트 존슨이 직접 데스벨리를 방문했고 스카티는 어린시절 큰 사고로 건강이 좋지 않은 투자자를 말에 태워 극한의 데스벨리 이곳 저곳으로 데리고 다니지만 정작 알버트 존슨은 데스벨리의 건조 기후 속에서 오히려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데스벨리의 매력에 빠져 1920년대에 지은 별장이 바로 스카티 캐슬이다.

데니벨리의 지명은 왜 하나 같이 죽음과 관련된 것일까? 데스벨리나 퓨너럴 레인지 처럼, 정말 누군가 죽어 퓨너럴 레인지에다 장사를 지낸 것은 아닐까? 아니면 데스벨리가 극한의 자연조건을 갖고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스벨리란 작명이 죽음과는 무관하다.

얘기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터스 밀(sutter's mill)이란 곳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캘리포니아 이곳 저곳에서 금맥을 찾기에 혈안이 돼 있던 차에 한 곳에서 금맥이 터지자 이른바 노다지를 찾는 광산업자들과 광부들이 줄줄이 몰려들어 골드러시(gold rush)가 일어나게 된다.

메이 플라워호(May flower)의 제임스 타운 상륙과 함께 시작된 미국사회도 안정을 찾으면서 동부에서 돈벌 기회가 점차 줄던 차에 금맥이 터지자 모두 서부로의 길을 재촉한 것.서부의 1차 관문은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최종 관문은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였다. 솔트레이크시티는 늘 노다지를 쫓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849년 금을 찾아 서부로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해서 훗날 이들을 '49ers'라고 불렀다.

그해 10월 도너 파티(Donnor Party)란 한 무리의 개척자들이(pioneer) 솔트레이크에 도착했지만 폭풍우에 갇혀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던 중 누군가로부터 캘리포니아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막고 있는 시에라(sierra)산맥을 넘지 않고 남쪽 끝으로 우회하는 "Old spanish trail"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이들은 누구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컸지만 어렵사리 안내인을 찾아 서부로 떠났다. 여행중 'captain jefferson hunt'의 방침에 반기를 든 한 젊은이가 시에라 네바다 사막을 가로질러 서부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자 마차 120대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이 루트로 노선을 바꾸게 된다. 무리가 둘러 갈라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유타주와 네바다주의 경계지점에서 거대한 캐년을(beaver dam wash)만나자 마차 20대만 대열에 남고 나머지는 발길을 돌려 버린다.

이들은 물 부족과 힘겨운 사막길에서 고난의 행군을 한 끝에 파나카 네바다, 베넷즈 패스, 델마 벨리, 그리스탈 스프링스와 티카부 벨리를 거쳐 1달만에 중앙 네바다의 그룸 레이크에 닿았다. 184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스벨리 정션을(death valley junction) 통해 드디어 데스벨리에 도착한다.

기진맥진한 ‘49er’들은 데스벨리 센듄에서 마차와 가진 물건을 모조리 버리고 번드 왜건 캠프에서 소를 도살해 육포를 만든 뒤 다시 서부로의 여행길에 올랐다. 에미그런트 패스(emigrant pass)와 와일드로즈캐년(wildrose canyon)을 지나 데스벨리를 벗어날 때 일행 중 한 여인이 계곡쪽을 돌아다 보면서 "Goodbye Death Valley"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데스벨리의 어원이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뒤에도 최악의 루트였던 모하비 사막 고원(Mojave desert plateau), 팜데일을 지나 산타클라리타 리버에서 스페인 카우보이 란초 샌 페르난도를 만나면서 3개월에 걸친 서부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3개월 대장정에서 희생된 사람은 컬버웰(Culverwell) 단 한 사람 뿐이었는데 그도 데스벨리의 극한 자연 때문이 아니라 네바다 사막을 넘으면서 겪은 고초가 사인이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데스벨리는 사람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름인 셈이다. 데스벨리는 극한의 자연조건 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