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낭만 드라이브
이경애
어느 겨울밤, 나는 상사호 휴게소의 화려하게 움직이는 조명등 아래 음악에 맞춰 큰딸과 왈츠를 추고 있었다.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의상은 두꺼운 오리털 코트, 털 달린 큼직한 모자, 목에 둘둘 감은 목도리.
한 바퀴 돌며 뒤뚱뒤뚱, 한 번 인사하며 키득 키득...... 왈츠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왈츠를 추고 있었다.
나의 입가에는 행복이 가득했고 큰애는 “엄마, 창피해. 으이그 창피하다고.”라고 말하지만 싫지 않은 미소로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준다.
인상파 남편은 나더러 철 좀 들라며 핀잔을 주고 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드문드문, 드라이브 온 연인들이 보기도 했지만, 밤이었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음악이 그칠 때까지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밤, 상사호로의 야간드라이브가 만들어 준 추억의 한 장면을 마음속의 사진첩에 올려놓았다.
" 이제 이런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큰애와 얼마나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얼마 후면 내 품 안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가기 때문이다.
고2 여름에 이곳으로 전학을 와 1년 반을 생활하다 다시 올라가는 가는 큰애.
우리나라에서의 고등학교 시절은 입시지옥으로 표현할 만큼 힘이 드는데, 전학이라는 무거운 짐까지 지워 주었다. 그리고 전 학교와 교과과정이 맞지 않아 공부하기 힘들었고 새로운 친구들과의 적응도 만만치 않았다. 위기의 순간도 몇 번 있었지만,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이겨내 준 것이 고마운 아이. 나에겐 항상 미안했던 딸이 이제 의젓한 성인이 되어 독립해 나가는 것이다
입시를 앞두었기에 여기 순천에 내려와서 변변한 드라이브 한 번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려 이 겨울 우리 가족은 함께 시간을 많이 갖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다. 얼마 전까지도 가족이 함께하려고 시간을 잡으려면 네 식구 모이기도 힘들었는데 요새는 무조건 맞추고 함께 한다.
우리 가족은 특히 야간에 하는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큰애가 시간이 없어 주말 밤에 여유가 잠깐이라도 생기면 머리도 식힐 겸 스트레스도 풀자고 가기 시작한 것이, 그 묘미에 빠져 즐기게 되었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일 것 같지만, 낮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내 가슴을 잡았다. 답답한 도시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이 작은 사치를 큰애에게 한 번이라도 더 선물해주고 싶다.
이사 오기 전에는 주말에 시간이 나거나 연휴일 때 큰맘 먹고 여행이라도 가려 하면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즐겁던 마음이 짜증으로, 후회로, 분위기를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분 망치지 않으려고 가까운 곳을 선택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정말 재미없는 곳이었다. 회색빛의 감옥이라고나 할까
송도 신도시나 인천대교를 타고 인천근교의 바다를 지나가며 획~ 보고 오는 것이 그나마 기분전환을 하는 것이었다.
느리게 돌아가고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 순천.
우리 아이들이 같은 도시에서의 전학이었다면 아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우리 딸들이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자주 접하며 정서적으로 안정을 생각보다 빨리 찾았고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예민하던 큰애가 부드러워지고 힘들었던 일들을 극복하는데 이 멋진 자연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큰애가 힐링이 필요할 때 잠깐씩 내려와서 에너지를 맘껏 충전해 갈 것이다. 자연과의 대화를 배우며 초록과 함께 호흡하는 제2의 고향에서.
순천만 정원의 눈부시던 별빛 축제와 와온 해변 밤하늘의 쏟아지던 그 많은 유성들, 상사호 주변의 멋진 드라이브 길, 여수의 다채롭고 호화로운 야경을 가슴에 담아두며…….
이 겨울, 큰애를 떠나보내면서 본격화된 우리 가족의 추억 쌓기 놀이는 그야말로 평생 즐거운 재산으로 남겨질 것이다. 힘들 때 하나씩 꺼내보며 느낄 수 있는 그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여보, 오늘 저녁 여수 밤바다 어때?” 하고 걸려 온 남편의 전화에
"콜!"하고 십분 이내로 나가는 이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의 행복한 사랑 찍기가 또 시작되고 있다.
첫댓글 멋진 글 감사합니다! 행복이 넘치네요.
교수님!
수고가 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