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書와 創作 (1)
서예를 공부함에 있어서 臨書는 교과서적인 학습 방법이다.
나의 지식과 견문이 짧기 때문에 옛 名 書家들의 글씨를 본받아
그 기량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때문에 그 서체의 정확성을 살려 반복적으로 베껴 씀으로써 그 글씨에 내포된 정법과 기교를 100% 본뜨려는 자세를 가지고 임서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을 쓰는데 있어서 서예 4대 원칙에 합당하게 운필하여 예천명 글씨가 정확하게 묘사되었다면 그것은 정법이라 할 수 있다.
임서는 크게 意臨과 摸臨 두 가지로 나눈다.
意臨法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보편적인 실기 방법이다. 법첩 내지는 체본을 옆에 두고 보면서 화선지에 옮겨 써보는 방법인데 쉬운 만큼 놓치는 부분이 있다. 시각의 차이, 착각, 기량 부족에 의해 체본 보다 못하게 나오거나 아니면 자신감이 넘쳐서 체본 보다 더 잘 쓰려는 생각에 어긋날 수 가 있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임서 단계에서 자기 의지를 앞세우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몇 해 전 TV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칼린 뮤지컬 예술 감독은 노래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히 기본기를 익혀서 나오는 테크닉 이라고 했다. 기본기가 갖추어져 모방의 극치가 있은 다음에 더 나은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은 모든 예술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법첩 한 번 끝냈다고 해서 그 글씨를 뗐다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다섯 번은 완파해야 한다. 첫 번째 보이지 않던 것이 세 번째에 보이고 세 번째에 보이지 않던 것이 다섯 번째에 보인다.
처음부터 법첩을 보고 직접 임서하기는 쉽지가 않다. 때문에 스승의 체본이 필요한 것인데
이는 升堂入室에 비유하면 맞을 것이다. 마당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갈 수 없음이다.
摸臨法은 한 획 한 구성을 정확히 익히는데 의미를 부여한다. 그대로 본뜸으로써 100% 묘사에 의의가 있다할 것인데 40~50년 전만 하여도 책상 유리 밑에 체본을 놓고 밑에서 전등을 켜서 글씨가 비치도록 한 다음 유리 위에 화선지를 올려놓고 글씨를 베껴 쓰는 연습을 하였다.
摸臨을 하면서 체본과 똑같이 묘사가 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체본의 운필과 나의 운필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양순의 필법이 아닌 한 구양순체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오랜 옛날 중국에서는 몇 가지의 摸臨 방법이 있었다. 탁본하여 그 위에 써보는 방법, 얇은 미농지를 글씨 위에 얹고 글씨 윤곽을 그려내어서 그 위에 덮어 써보는 방법, 글씨 위에 얇은 종이를 올려놓고 써보는 방법이 그것이다. 요즘은 복사기가 발달하고 비닐, 코팅이 자유로워 摸臨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현재 우리나라 서예 학습법은 意臨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예술은 창작이기 때문에 법첩 글씨나 체본 글씨를 똑같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書家들이 많은데 이러한 생각은 習氣와 俗氣에 젖기 쉽다.
습기란 자기의 개인적인 잘못된 습관이 베어버려 고치지 못하게 된 것이고,
속기는 어느 한 지역, 계보, 환경에 의해 잘못된 것이 고수되어 전해 내려온 것을 말한다.
배우는 과정에서는 임서의 능력이 곧 창작기량이다.
모임과 의임의 학습 비중은 대략 6:4정도로 하면 알맞다고 생각한다.
열 번을 쓰는 중에 여섯 번은 모임을, 네 번은 의임을 해보면 運筆法과 構成法, 章法을
동반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