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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9일, 토요일, Hyderabad, Faran Hotel
(오늘의 경비 US $25: 숙박료 1,100, 아침 40, 점심 100, 오토바이 릭샤 30, 사례 50, 식료품 200, 환율 US $1 = 60 rupee)
아침 7시경 일어나니 기차가 서 있다. Hyderabad부터 기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란다. 이제는 Punjab 주를 벗어나서 Sindh 주란다. Punjab 주에는 Punjabi 말을 하는 Punjabi 사람들이 살고 Sindh주에는 Sindhi 말을 하는 Sindhi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별로 변함이 없는 푸른 평야의 계속이다. Punjab이나 Sindh나 모두 Indus 강 유역에 있는 평야이기 때문이다.
Punjab이나 Sindh의 파키스탄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 못지않게 피부가 검다. 같은 아리안 민족의 후예인데도 Punjab이나 Sindhi의 조금 북쪽인 아프가니스탄에만 가도 사람들의 피부가 덜 검고 조금 더 북쪽인 타지키스탄에 가면 거의 백인으로 변한다. 4, 5천 년 전 아리안 족이 러시아 남부에서 인도 쪽으로 이동하면서 원주민과 피가 섞이면서 피부 색깔이 검어지게 되었는데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이 신기하다. 세계 4대 고대문명 중에 하나인 Indus 강 문명은 아리안 족이 이동해 오기 전에 Indus 강 유역에 살던 사람들이 이룩한 문명인데 Sindh 주에 있는 Mohenjo-daro가 제일 중요한 유적지이다. 그곳에 가보지는 못하지만 (가기도 어렵고, 볼 것도 없고, 매우 위험한 곳이라 한다) 근처를 지나갔다는 것으로 만족이다.
하루 종일 가다 섰다를 반복하다가 Lahore를 떠난 지 25시간만인 오후 6시에 Hyderabad에 도착했다. Hyderabad에 도착하기 전 오후 2시경 같은 칸에 탔던 두 파키스탄 친구들은 버스로 Karachi로 간다면서 기차에서 내렸다. 나도 같이 가려면 내리라고 했는데 고맙지만 기차로 Hyderabad까지 가보겠다고 했다. 그들을 따라가면 무언가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Hyderabad까지 가면 철도회사가 대책을 세워줄 것 같아서 그것을 기대하기로 했다. 어쩌면 기차가 Karachi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Karachi는 Hyderabad에서 약 200km 거리다.
Hyderabad 근처에 가서 Lahore에서 기차에 오를 때 나를 도와주던 친구가 자기 친구 두 명과 나타났다. 이 친구는 자기는 Hyderabad에서 내리지만 자기 친구들은 Karachi까지 가니 그들을 따라가면 Karachi까지 문제없이 갈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Hyderabad에서 하루 밤 자고 Lahore나 Peshawar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Karachi까지 갔다가는 돌아올 때도 끊어진 철로 때문에 또 문제인 것이다. 파키스탄에 온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인도에 비하면 친절한 파키스탄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인도 사람들 보다 훨씬 외국여행자들에게 친절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그렇게 느껴진다.
기차역 근처에 있는 Hyderabad Hotel에 들어가서 방을 달라고 하니 외국인은 안 된단다. 외국인이 안 된다는 호텔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런 호텔을 대하기는 처음이다. 호텔 직원이 Faran Hotel로 가면 방이 있을 것이라 하면서 종이쪽지에 호텔 이름을 Urdu말로 적어준다. 오토바이 릭샤를 타고 한참 달려서 Faran Hotel에 도착하니 방값이 제법 비싸다. 너무나 심적으로 지쳐서 방값을 깎을 생각이 안 나서 그냥 들었다. 빨리 하루 밤 자고 내일 기차로 Peshawar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호텔 방에 들어와서 짐을 푸는데 작은 가방이 안 보인다. 호텔 리셉션에 놓고 올라왔나 생각하고 내려가 보니 직원이 작은 가방을 주면서 무어라고 한다. 별 생각 없이 작은 가방을 받고 옆을 보니 금방 타고 온 오토바이 릭샤 기사가 서있다. 알고 보니 작은 가방을 오토바이 릭샤에 놓고 내렸는데 기사가 발견해서 호텔로 가지고 온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그때까지도 머리가 잘 안 돌아서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하고 가방을 받고 돌아서는 오토바이 릭샤 기사를 처다 보니 그저 고마운 정도가 아니다. 다시 불러서 50 rupee 짜리 하나를 주면서 정말 고맙다고 했더니 웃으며 돈을 받고 나간다. 호텔 직원들이 내가 오늘 운이 억세게 좋다고 한다. 방에 들어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작은 가방을 찾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작은 가방을 잃어버렸더라면 참 문제가 복잡해진다.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지난 며칠 동안 찍은 사진도 다 없어진다. Lonely Planet Pakistan 책도 날라 가고 그 외에도 방풍 재킷, 장갑, 검은 안경, 전자계산기 등 항상 쓰는 물건들이 다 없어진다. 이것들을 모두 잃으면 여행을 중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여행이 아주 힘들어진다. 다행히 돈과 여권은 전대에 있어서 안전했지만 당장 Lahore로 돌아가서 카메라와 Lonely Planet 등 잃어버린 물건들을 다시 장만해야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런데 천원 돈도 안 되는 50 rupee를 주다니. 1,000 rupee 짜리 한 장이나 $100 짜리 한 장을 주었어야 했다. 인색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틀림없이 인도사람들 보다 더 친절하고 정직하다. 거의 바가지 씌우려는 사람들을 아직 못 만났다. 인도에서는 오토바이 릭샤 기사들은 거의 다 바가지요금을 씌우려 했는데 파키스탄에서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늘 기차를 같이 타고 온 파키스탄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서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아마 종교 때문일 것이라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키스탄뿐 아니라 이란에서도 똑 같은 생각을 했는데 두 나라 다 철저한 이슬람교의 나라다. 이슬람교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파키스탄 최고급 기차라는 Karakoram Express
중국에서 수입한지 얼마 안 되어서 새 차 같은 침대차 복도
몬순의 마지막 주라는데 Karachi 부근에 내린 폭우 때문에 철로가 끊겨서 Karachi까지 못 갔다
2006년 9월 10일, 일요일, Peshawar 행 기차
(오늘의 경비 US $7: 인터넷 25, 25, 점심 170, 저녁 115, 식료품 50, 오토바이 릭샤 30, 환율 US $1 = 60 rupee)
잠깐 본 Hyderabad는 Peshawar나 Lahore 못지않게 지저분한 곳이다. 길거리에는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있고 그 혼잡, 소음, 매연 등등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전혀 지옥에 사는 것 같은 표정이 아니다. 선진국가 대도시의 길거리에서 보는 사람들보다 표정이 더 밝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서방 세계의 어느 국가 사람이라면 정말 이해가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해한다. 어렴풋이나마 이해한다. 1950대의 서울이 이랬을 것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미국 군인들이 본 서울이 이랬을 것이다.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 사람들이 본 서울도 이랬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들은 서울 시내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인도나 파키스탄의 도시처럼 지저분하고 형편없었던 같은 기억이 없다. 왜 그럴까?
쥐가 여기 저기 다닌다. 호텔 식당 안에도 쥐가 다닌다. 웨이터 친구에게 쥐가 있다고 얘기했더니 아무렇지도 안타는 듯이 "No danger!" 하고 그만이다. 저녁때 나가서 기다린 기차역 플랫폼에도 쥐가 여기저기 다닌다. 이 도시의 사람들과 쥐를 비교하게 된다. 어느 쪽이 더 지저분한 존재일까? 쥐가 더 지저분하다는 대답이 안 나온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네가 얼마나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1950대 우리가 그랬듯이.
오늘은 밤차로 Peshawar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과 오후에 인터넷을 하러 잠깐씩 나갔다 온 것 외에는 에어컨이 시원한 호텔 방에서 보냈다. 책을 일고 TV를 보고 컴퓨터 바둑을 두면서 보냈다. 이곳 인터넷은 한글이 안 돼서 이메일만 했다. 집사람이 서울에 잘 도착했다는 이메일이 왔다. 아파트에 할 일이 많았을 텐데 다 해낸 모양이다. 내가 끄거나 취소하고 간 전기, 수도, 가스, 전화, 인터넷을 작동시키고 아파트 청소를 하는 등 할 일이 많은데 다 해낸 모양이다.
오후 7시경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중국식 차오메인을 먹었는데 먹을 만 했다. 호텔에 내가 탈 기차가 몇 시에 떠나는지 기차역에 물어봐 달라고 했더니 전화를 걸어보더니 새벽 1시 반경 떠난단다. 호텔 라운지에서 기다리다가 너무 후텁지근해서 밤 9시 반쯤에 오토바이 릭샤를 타고 기차역으로 나갔다. 그 동안 내린 비로 역전이 아직도 물바다다. 기차역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래도 바람이 불어서 호텔 안보다 훨씬 시원하다. 기차가 언제쯤 들어올까 하고 어느 직원에게 물어보니 내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자기가 들고 있는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청한다. 고맙지만 금방 저녁을 먹었다고 하니 "0"시 이후에 들어올 것이란다. "0"시 이후라니 도대체 몇 시라는 얘긴가, 도움이 안 된다. 호텔에서 물어 봤을 때 출발시간은 새벽 1시 반이라고 했으니 기차는 자정쯤 들어온다는 얘기 같다.
작년 인도 경험에 의하면 기차는 보통 떠나기 전 30분 내지 1시간 전에 들어온다. 역사 안에는 사람들도 많고 후텁지근해서 역사 밖 플랫폼에 나가서 바람이 잘 부는 장소에 배낭을 의자 삼아서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책도 일고 음악도 듣고 하다가 1시 반쯤 되어서 영어를 할 것 같아 보이는 젊은 친구에게 얘기를 걸어보니 내가 타려는 Khyber Mail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오전에 Karachi에서 버스로 이곳에 왔단다. 기차표를 비교해보니 같은 기차에 같은 차량이었다. 이 친구만 따라서 타면 실수는 없겠다. 이 친구 얘기가 아마 앞으로 3, 4번째로 들어오는 기차일 것이라 한다. 아마 오전 3시쯤 되어야 들어올 것이라고 한다. "0"시가 새벽 3시가 된 것이다.
금요일부터 이곳에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단다. 내가 Lahore에서 기차표를 산 화요일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Lahore를 출발한 금요일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하루 종일 오고 토요일도 하루 종일 왔단다. 그래서 Hyderabad와 Karachi 사이 어느 곳에 철로가 끊겼다는 것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올해는 처음이란다. 몬순 시즌의 마지막 주에 이렇게 큰비가 오고 그것도 내가 가는 곳에 오고 바로 그때 내가 기차를 탄 것이다. 참 운도 없다.
밤이 되면서 시원해지고 바람이 불어서 기다리는 것이 견딜 만 했다. 낮이었더라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묵었던 Faran 호텔 근처에 Sindh라는 상점 간판이 보인다, 내가 Sindh 주에 갔다는 증거다
내가 묵었던 Faran 호텔, Hyderabad 역에서 호텔만 왔다 갔다 했으니 다른 사진이 없다
2006년 9월 11일, 월요일, Peshawar 행 기차
(오늘의 경비 US $3: 점심 200, 환율 US $1 = 60 rupee)
오늘 아침 5시 반에야 기다리던 Khyber Mail 기차가 들어왔다. 기차역에서 어제 밤 9시 반부터 8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이곳에서 Lahore로 가는 기차는 많은 것 같아서 어제 도착역이 Peshawar인 내 기차표를 Lahore로 바꾸려 했는데 실패했다. 바꿨더라면 어제도 떠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Lahore에서 버스를 타고 Peshawar로 가야하는데 그 역시 번거롭다.
나와 함께 기다리던 파키스탄 친구를 따라서 기차에 올랐다. 내방은 4인 실인데 나 혼자 뿐이고 파키스탄 친구 방은 2인 실인데 자기뿐이다. 자기 방으로 옮기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고맙기는 했지만 독방에 혼자 있고 싶어서 사양했다. 어제 밤에 잠을 못 자서 빨리 자야겠다고 하니 방문을 잠그고 자라면서 잠그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파키스탄에는 도와주는 사람들을 너무 많아서 마음이 느긋해진다. 문제가 있으면 항상 도와주려는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방문을 잠그고 잠에 들었다.
얼마를 잤는지 누가 문을 뚜들겨서 일어나 보니 웨이터가 점심을 주문하라며 "치킨?" 한다. "오케이" 하고 커피를 타 만들어 마시려고 웨이터에게 보온병을 주면서 뜨거운 물을 달라고 했더니 반시간이 지나서 가져오는데 보온병에는 얼음이 들었고 콜라 두 병을 가져왔다. 뜨거운 물을 달라는데 얼음과 콜라를 가져오다니, 그래도 오랜만에 얼음 넣은 콜라를 잘 마셨다. 어떻게 해야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을까하고 궁리를 해도 방법이 안 생긴다. 그런데 차장이 젊은이 한 친구를 내방으로 데리고 온다. 대학생인데 이곳에서 약 5시간 걸리는 Multan이라는 곳까지 간단다. 웨이터가 다시 와서 영어를 하는 이 젊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뜨거운 물을 다시 요구했더니 반시간이 지나서 가져오는데 뜨거운 물이 아니고 미지근한 물이다. 뜨거운 물 얻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커피 만들어 마시는 것은 포기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주문한지 3시간이 되어서야 점심을 가져온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어제 기차에서는 15분 정도면 가져왔는데.
점심은 맛있었다. 카레에 만든 치킨인데 양도 많고 참 맛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격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가격이 250 rupee라는데 너무 비쌌다. 어제는 80 rupee였는데 250 rupee라니 또 바가지를 씌우려는가? 메뉴를 가져오라고 하니 한참 만에 계산서를 가져오는데 내 것과 역시 치킨을 시킨 젊은이 것을 가져온다. 내 것은 216 rupee로 내렸고 젊은 친구 것은 116 rupee이다. 젊은 친구 설명이 나의 치킨은 500g이고 자기 것은 250g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라 한다. 내 것이 양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다니. 그리고 나는 500g을 주문하지도 않고 "치킨?" 해서 그저 "오케이"를 한 것뿐인데 뭔지 좀 이상하다. 앞으로는 주문하기 전에 메뉴를 요구하던지 미리 가격을 물어봐야겠다.
내 방에는 조그만 화장실도 딸려있어서 편했다. 샤워는 못해도 면도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몸도 젖은 수건으로 대강 닦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에어컨이 시원치 않다. 어제 탄 기차는 객차가 새것이라 그랬었는지 에어컨이 잘 나왔는데 이 객차는 어제 객차보다 더 넓고 화려하기는 했지만 오래된 객차라 그런지 에어컨은 제대로 안 나온다. 그래도 선풍기도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창문을 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저녁때가 되고 젊은 친구는 내리고 혼자 밤을 맞이했다. 이 객차는 서비스가 시원치 않아서 저녁 주문도 안 하고 침구도 안 갖다 준다. 담요는 필요 없지만 베개가 시원치 않아서 좀 불편했다. 침낭을 베개로 쓰면 문제없는데 침낭을 덮고 자자니 베개로 쓸 수 없다. 대신 작은 가방을 베개로 삼아서 잦는데 좀 불편했다. 다음에 여행할 때는 베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화장실도 딸려있는 4인 실에서 혼자 편하게 왔다, 그러나 피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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