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글]
장애해방운동가 박흥수 열사 10주기 추모제에서
장애해방운동가 박흥수 열사 10주기 추모제 며칠 전, 2011년 7월 21일 나무날.
‘장애인 의무고용 위반 법원, 검찰청 규탄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 후에는 장애인 의무고용을 미이행한 대표적 고용차별 사업장인 국회, 서울시 교육청, 서울대병원 등에서 1인시위가 진행되었구요. 한 여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이 자리에서 저는 장애인 노동권을 위해 투쟁했던 90년대 장애인운동 그 현장에 있었던 박흥수 열사, 정태수 열사 등이 떠올랐습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장애인계는 장애인의 취업과 고용 문제의 개선을 통한 생존권 보장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해요. 이러한 투쟁의 과정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체는 일정 비율의 장애인 고용을 의무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이 1989년 국회를 통과했구요. 현재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라는 이름의 이 법률로 현재 공공기관 3%, 민간기업 2.3% 등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6%, 독일 5% 등에는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의무고용률입니다.
그럼에도 재계와 정부는 1990년 이 법의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1%로 낮추고자 시도하는 등 장애인의 삶을 짓밟는 시도를 계속했으며, 이후 1993년에는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회원 5명이 야당인 민주당사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투쟁을 본격화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등 90년대 말까지 장애인의 날은 전장협 등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이 중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장애인의 고용 현실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근본적이고 심각하게 위협하는 원인으로, 장애인 노동권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어느 곳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일까요..
박흥수 열사의 10주기 추모제 현수막에 작게 자리한 박흥수 열사의 사진을 보고, 박경석 동지는 그 사진 속 머리띠 등을 만드는 실무를 직접 했던 때를 기억하며 얘기했어요. 장애인고용촉진법 의무고용율 2%를 1%로 내리려고 해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 쳐들어갈 때 준비했던 것이라구요. 그리고 장애인고용촉진법 투쟁을 준비하면서 저상버스도 콜택시도 전혀 없던 시절 어렵게 정립회관에 모여, 박흥수 열사에게 정태수 열사랑 2시간 넘게 구호 외치는 훈련(?)을 받고 집회에서 선동을 하게 되었던 때를 얘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를 믿고, 그들이 함께 만들어갈 장애인운동을 바라보며 현장을 조직해나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박흥수 열사는 김종환 동지의 기억처럼 서글서글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기는 동지였고, 낮은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박흥수 열사가 살았던 10여년의 장애인운동의 현장은 그야말로 ‘뼈빠지는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장애인운동의 힘든 시절을 함께 했던 동지들의 기억처럼 박흥수 열사는 운동에서 느끼는 무력감으로 힘든 시간도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90년대를 지나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전개하면서는 장애인운동이 조직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시적 성과를 따내며 전진하는 시기를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는 동지들은 그 20여년의 장애인운동 과정에서 맺힌 열매를 먹으며 운동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운동의 현장에서 장애인 노동권 운동의 흐름은 거의 90년대 중반의 시간에 정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99년 장애인실업자연대에서 박흥수 열사와 함께 활동했던 문상민 동지가 장애인 노동권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했던 다짐처럼, 박흥수 열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선 현장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실천의 과정에서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지들과 함께가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흥수형’을 만나러 온, 최의왕 선배님의 편지글에서처럼 살아있는 자로서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며 이 뜻을 실천해나가리라는 약속. 이것이 박흥수 열사가 꿈꾸고 실천했던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박김영희 동지가 추모글에 적었던 ‘흙이 되어 다시 피는 꽃으로’ 붉게 우리의 장애인운동을 물들여가는 것이겠지요.
그 길 속으로 동지들과 함께 다시 뜨거운 마음으로 들어가보아요.
마지막으로 장애해방운동가 박흥수 열사의 10주기 추모제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한 동지들을 타고 돌아오는 글귀가 있어 적어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한 여름이 지나가도록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기둥 펼침막에 쓰여 있는 글귀입니다.
“산 자 죽은 자가 없습니다. 모두 산 자이고 또한 모두 죽은 자입니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기로 결의를 모았습니다.”
사진이 있는 글_박흥수열사10주기.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