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영국인의 선조는 한반도 고인돌 종족
영국, 즉 잉글랜드(England), 웨일즈(Wales), 스코트랜드(Scotland), 그리고 아일랜드(Ireland)와 영국의 식민지인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는 지금부터 4000년 전 아시아인들이 서쪽의 죽음의 땅을 찾으러 갔다가 살게 된 곳입니다. 선사시대에는 죽음이 또 하나의 '저세상(the other world)'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많은 아시아인들이 브리티쉬(British) 제도로 이주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이 남긴 언어는 아직도 웨일즈 지방에 방언으로 남아있으며, 스코트랜드와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가장 분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즉 문장 마지막에 동사가 따르는 우리 한글의 문법이 이들 웨일즈와 아일랜드 고어(古語)에 남아있으며, 또한 수많은 고인돌(Dolmens)과 거석유적(Megaliths)들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주한 비이커족(Beaker People)들이 만들었지요. 스토운헨지(Stonehenge)와 애브버리 둘레돌(Avebury Circle) 등 수많은 영국과 아일랜드 유적들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주한 비이커족이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비이커(beaker)라는 것은 바로 신의주에서 평양 사이에서 많이 출토되는 '미송리형 단지'와 같은 것입니다.
또한 한반도의 많은 고인돌들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러시아 코카사스지방에서 발견된 고인돌들의 원형이며,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에서는 돌널무덤(Cists)과 함께 우리나라의 개석식(蓋石式) 고인돌과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이 발견됩니다. 또한 이같은 고인돌들은 피레네산맥에서도 발견되면서, 프랑스와 그리고 브리티쉬 제도로 연결되지요. 그런데 유럽의 모든 대형 거석유적들은 모두 우리 한반도의 고인돌에서 파생된 것들입니다.
인도의 고인돌은 한참 늦은 시기에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브리티쉬 제도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원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건너간 한반도 고인돌 종족의 후손들의 영향을 받아, 우리말로 '뫼'라고 부르는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에서 비롯된 구조입니다. 그러니 영국에서의 둘레돌이 얼마나 늦게 만들어졌는지 알만 하지요. 이 '뫼'라는 말은 영국에서 무어(Moor)라는 말로 남아있으며, 이 무어인(Moors)①들이 바로 웨일즈 지방과 잉글랜드 서남쪽의 콘월(Cornwall) 지방, 그리고 아일랜드에 살던 아시아인들의 후손입니다.
① 무어(moor)는 보드민무어(Bodmin Moor), 다트무어(Dart Moor), 엑스무어(Exmoor), 노스욬무어(North York Moor) 등 영국 중남부 지역의 황무지 고원지대를 일컫는 말인데, 그 원래의 뜻은 개활지(open land)로서, 평원에 솟은 언덕 정도로 여기면 적당하다. 이 고원지대에 크고 작은 거석문화 유적지들이 지천으로 산재하고 있는데, 현재는 일년 내내 거센 비바람을 맞아 기후가 최악으로서 아무도 살지 못하는 지역이지만 청동기와 철기시대에는 나무와 꽃이 피고 샘이 솟는 기후 좋은 지역이었다는 점이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이런 점은 특히 원시고원족(일명 하이랜더, Highlander)이 거주하였던 스코틀랜드 고원지대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지금의 무어인의 명칭 자체는 고아시아족 계통이지만 대개의 잉글랜드인들이 그렇듯이 영국을 점령한 침략자들은 기존의 거주민들의 문화를 통째로 훔쳐 자신의 것으로 도용하였다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많다. 영국해안에는 해안단구들이 많이 발견되는데, 원래 잉글랜드는 바다 지역으로서, 영국제도 전체가 지반이 떠오르면서 바다가 육지로 바뀐 지역이어서 처음부터 주인이 없던 지역이었다.
색슨족(Saxon)은 대개 독일의 작센(Sachsen) 지방에서 건너온 종족으로, 영국에서 거석문화 이후에 영국으로 들어온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작센은 곧 우랄산맥 주변에 퍼져있던 용맹한 무사 코작(Kozak)인들과 인도 북부를 점령했던 무사귀족 사카(Saka)인들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코작과 사카는 터어키(색륜-탁륜-튜르크-토이기)족과 함께 근본이 아시아족으로서, 그 근간이 동아시아의 색륜족으로 알려져 있다. 색륜은 곧 한반도 북방 동이족으로서, 색에서 작 또는 탁으로 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잉글랜드의 이주민이었던 앵글로 색슨족은 단군시대에 만주 일대에서 서로 앙숙이었던 앙골(앙骨, Angol)과 숙신(肅愼, Sukshin, Jushen)과 발음이 통하여 색슨족의 어원이 숙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라이프찌히(Leipzig) 근처의 할(Halle, 또는 쌀, Saale)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엘베(Elbe)강 유역의 작센 지방 또한 그 대부분 지역이 원래 바다이었다.
동이족의 고인돌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참으로 많습니다. 남북한 할 것 없이 나지막한 언덕과 평지에는 크고 작은 고인돌이 수없이 많은데, 이러한 고인돌이 바로 역사시대 이전의 우리 조상들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와 현재 중국 땅에 속해있는 요령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의 동북삼성(東北三省)은 원래 같은 종족인 동이족(東夷族)들의 근거지이었으며, 고인돌이 바로 이들이 만들었던 돌무덤입니다.
원래 동이족 출신인 진 시황(秦始皇)이 중국 대륙을 통일하면서 동이족(夫餘族, 현재 길림성 지역)의 한자(漢字)를 차용하여 나라의 글로 삼았으며, 책력(冊曆) 또한 동이족에게서 차용하여 수없이 교정하면서, 그들의 책력으로 바꾸었지요. 그리고는 동이족들의 모든 역사와 증거물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과거의 책들을 보지 못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산동반도(山東半島) 또한 동이족 지역이었는데, 진 시황에게 가장 처참하게 당한 곳이 이 산동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산동지역에서는 고인돌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① 나머지 요동반도를 비롯하여 길림성 지역에는 아직도 수많은 고인돌들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동이족은 처음에는 진 시황을 우습게 알았지요. 오로지 과거의 명성에만 매달리기 바쁜 처지라 새롭게 등장하는 새 물결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엄청난 사실이 숨어있었습니다. 바로 천지개벽이지요. 바다가 땅으로 바뀌고 땅이 바다로 바뀌는 엄청난 변혁을 겪고 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방랑생활을 시작한 때가 천지개벽 이후의 일입니다.
그 때가 바로 중국대륙에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이지요. 이 이후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주로 만리장성 동쪽의 요서지방(遼西地方)에서부터 점차 새로운 청동기가 들여오면서 고인돌을 만들던 동이족들도 중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지요. 그 전까지는 거꾸로 모든 것이 동이족에서 비롯하였지만, 천지개벽 이후에는 오히려 야만족으로 강등되고 뿔뿔이 배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유랑생활을 시작하였지요. 사실 동이족은 원래 해양족 출신이었거든요.
천지개벽 이전에도 동이족들은 서쪽으로 항해하면서 베트남을 거쳐 인도북부, 그리고 팔레스타인지역, 그 다음에 이디오피아 그리고는 지중해에서 위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요르단, 그리고 터어키 중부,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까프까즈 지방까지 배를 통하여 그들의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중해 연안의 유럽인(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동부)들의 원조들은 이 동이족의 고인돌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점차 더욱 커다란 고인돌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곧이어 대규모의 거석건축물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지요.
또한 지중해로 이주한 일부 동이족들은 알프스 계곡을 지나 독일 남부로 들어가 또 다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가 현재의 영국(Scotland)과 아일랜드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지요. 그러니 브리튼(Britain) 섬에서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우선 이베리아 반도인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다시 동이족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이렇듯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는 한반도와 만주지역이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고인돌과 거석문화가 사실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황해도 황주 일대는 이 고인돌시대에 가장 중심 되는 지역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고인돌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곳이지요. 평양일대는 주로 천지개벽 이후에 확산되었지요.
한강일대는 이 고인돌 시대에 가장 애매모호한 곳입니다. 분명 황주에서 고인돌 문화가 일어날 때 한강 유역에서는 또 다른 기존의 나라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고인돌 문화에 밀려 고령을 거쳐 김해와 부산으로 이주한 듯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고인돌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봉토분(封土墳) 문화를 개척하였지요. 그러니 고령을 비롯한 김해 지방은 전 세계 봉토분의 출발지인 셈이지요. 그러나 황주에서 비롯한 고인돌이 요동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중국 내륙의 문화와 충돌하여 규모가 커졌으며, 여기에서 김해를 비롯한 남해안 세력과 함께 발길을 해외로 돌린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봉토분조차 고인돌과 돌무지무덤과 함께 지중해를 거쳐 서쪽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 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프랑스 브르따뉴(Bretagne) 지방입니다. 비록 나중에는 브리튼 섬에서 쫓겨 간 브리튼족들이 더욱 거석문화를 확대시키고 성장시켰지만, 원래에는 프랑스 동남부의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던 동이족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 세계의 고인돌과 거석문화가 몽땅 한반도와 요동반도에서 비롯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곳이 있었지요. 이 한반도와 요동반도의 고인돌로서는 전 세계의 모든 거석문화가 일목요연하게 해명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얼어붙은 북극(北極) 근처의 카라해(Kara) 어디쯤에 있는 빙판 속에 그 열쇠를 풀어줄 흔적들이 남아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①산동성 태산(太山) 근처의 제(齊) 나라 지역에는 과거에 여러 기의 탁자식 고인돌들이 남아있었다고 전하는데, 모택동 시절 문화혁명을 치르면서 홍위병들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어 현재 남아있는 고인돌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