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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樂民(장달수)
땅이름(지명)의 자료와 우리말 연구
이돈주*
1. 들머리
언어란 인간 생활의 전달 기능을 담당하는 하나의 기호 체계이기 때문에 문화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신생․성장․사멸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생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에 알맞지 않은 말은 점차 쇠퇴하기 마련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누대를 계승하여 형태 그대로의 음상과 의미가 면면히 지속 계승되기도 하고, 때로는 개신파에 밀려 변개되기도 한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무언가 명칭을 부여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긴요한 것은 사람마다의 이름과 호칭이고, 다음으로는 생활 공간의 배경이 되는 땅이름(이하 지명이라 한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지명이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자기네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귀중한 언어 유산이요,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지명은 시대에 따른 문물의 발전상을 반영하여 주기도 하고 또한 정신문화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 한 지역의 전래 지명에는 민족의 이동 경로나 언어의 역사가 내재함은 물론 사람이 살아 온 역정과 문화, 여기에서 생성된 온갖 전설이나 민속 등의 정보가 짙게 담겨 있어서 그 지방의 자연환경은 물론 생활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오늘날 산업사회의 구조는 우리 현대인들로 하여금 각자가 태어난 고향에서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환경 오염이 혹심한 도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고향의 땅이름만 들어도 친근한 생각이 들고 향수에 젖어 드는 것이 아닐까.
2. 지명 연구의 의의와 필요성
언어의 본질이 자의적인 음성기호 체계(a system of arbitrary vocal symbols)임은 사실이지만 고유명사로서의 지명은 일반 언어와는 달리 애초의 명명 과정에서 배의성(motivation)이 강하게 작용한다. 바꾸어 말하면 유연성이 짙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한 고장의 전래 지명에는 그 고장 사람들만이 경험한 애환과 특유의 정서가 담겨 있으므로 향토성과 애향성이 매우 짙은 구심적 특징을 지닌다.
지명은 방언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공통어에서는 찾기 어려운 옛말이 어느 지역의 방언 속에 화석화하여 매장되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히 경험한다. 지명어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양자는 우리말의 보고를 찾고 또 변천 역사를 추적하는 데 자못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주는 점에서도 우리말 연구자들에게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지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지명학(toponomy)은 연구자의 관심과 시각에 따라서는 방언학 외에 지리학, 역사학, 고고학, 민족학, 민속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설화․구비문학 등의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보조학문의 자료가 된다. 여기에 지명의 가치가 있고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필자가 아는 바로 우리 나라의 고대 지명에 대한 최초의 어학적 연구는 일본 학자 시라토리(白鳥庫吉:1895)에서 시작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이희승의 “지명 연구의 필요”(한글 제2호, 1932)라는 짤막한 글에서 처음으로 지명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뒤로 소수의 역사학자들에 의하여 상고사의 연구 과정에서 단편적인 논의가 있었고, 또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 해독을 위한 연구가 있었으나, 지명 자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 연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66년부터 한글 학회가 주축이 되어 전국에 걸친 지명의 발굴 조사 작업을 실시하여 한국 지명 총람이 간행되면서부터 지명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최현배는 우리말 지명의 수집 목적을 다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지적한 바 있다.
1) 우리의 역사․지리․풍속․제도 들 문화 생활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요,
2) 우리의 옛말, 말소리의 변천, 말의 꼴과 뜻의 변천, 배달말의 계통들 언어과학적 연구에 다방면으로 소용될 것이요,
3) 배달 겨레의 성립 및 이동에 관한 연구에 무슨 기틀을 줄 수 있을 것이요,
4) 우리와 이웃 겨레와의 겨레스런, 문화스런 관계의 천명에 필요한 자료를 대어 줄 것이요,
5) 뒷날에 우리 나라의 따이름을 순 우리말로 되살리게 될 경우에는, 크게 소용될 것이다.
위의 내용은 지명 연구의 의의와 목적을 잘 지적한 것으로 생각한다.
3. 지명의 유래와 전승 과정
3.1.
현재 호칭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전래 지명을 자세히 검토하여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1) 그 지역 주위의 자연 환경 곧 산천․초목․암석․고개 등의 이름에서 온 것,
(2)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샘․못․다리․성(城)․향교․서당․시장․창고․주막․정자․제조소․상점 등과 관련된 것,
(3) 신앙의 흔적인 신당․장승․입석․지석․불탑이며,
(4) 서원․재실․비석․가로․유적 등에 따른 것,
(5) 그 밖에 지역의 위치․형태․풍수지리․직업․취락 발생의 신구, 또는 외래 종교의 영향에서 유래한 것 등 참으로 다양하다.
지명은 고유명사이기는 하나 처음 명명될 당시에는 일반 언어와 같은 보통명사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한내’, ‘한들’은 큰 내(大川), 큰 들(大野)의 뜻에서 유래하고, ‘수리재․수리산’ 의 ‘수리’는 인체에서 가장 상부인 ‘정(頂)수리’와 같은 뜻으로 ‘높은 재, 높은 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어느 대상을 일상적인 말로 지칭하던 것이 차츰 일반화한 끝에 마침내는 그것이 어느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진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명을 통하여 향토사의 지난 모습을 재구성해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에는 현재도 ‘불당골[불땅꼴]․불당동․불당샘․불당섬․불당재․불당치․불당터’ 따위와 같은 지명이 전국 각지에 고루 산재하고 있으며, 또 ‘불대산’이라는 산 이름도 있다. 이 중에 지금은 그 자취가 인멸된 곳일지라도 과거 어느 때인가는 그곳에 부처님을 모신 불당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다. 또 ‘사창(社倉)․창고지․창곡․창골․창동’ 등과 같은 지명은 일단 조선 시대에 곡식을 저장한 창고가 있었던 곳임을 추정케 한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여산 조에는 군입산(軍入山)이라는 산 이름이 나오는데 그 연유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에 여기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지명의 유연성은 이루 다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3.2.
지명이란 일정한 어형(form)과 어의(meaning)와 표기(writing)의 세 요소를 갖춘 장소 표시의 언어 기호이다. 그런데 지명은 오랜 시기를 통하여 전승되어 오는 동안 자연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생기는 변화에 따라 유연성을 상실한 경우도 많지만, 음운의 변동․변화 등으로 인하여 어형이 달라짐으로써 본래의 어의를 상실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하여 새로운 어형이 형성되면 여기에 끌리어 가공적이거나 견강부회한 어원을 부여함으로써 후세에는 원래와 다른 지명으로 변개되고 본뜻이 엉뚱하게 바뀌어 전해지고 있는 예가 허다하다.
필자는 지명이 달라지는 요인으로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2.1. 발음의 부정확성과 음운 교체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고대 지명은 본시 우리 고유어로 지칭하였는데 한자 문화의 영향으로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이르러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그 이전까지의 우리말 지명을 모조리 중국식 한자 지명으로 개칭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로부터 우리 나라의 지명은 우리말 지명과 한자어 지명이 공존하거나 아니면 전자가 오히려 소멸된 운명을 맞게 되었다.
이렇게 한자어 지명이 우세하여지자 우리말 지명은 표기조차 되지 못하고 입으로만 전승되어 온 과정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운․형태가 변하게 되자 본래의 뜻을 잃은 경우가 많다.
한 예를 들면 현재의 전북 익산시에 배산(杯山)이라는 산이 있다. 익산군지 산악조에 따르면 ‘배산’은 상․하 두 봉인데 각기 그 이름이 다르다고 하였다. 즉 상봉인 동봉은 연주(聯珠)산, 백(柏)산, 척(尺)산, 옥성(玉城)산이라 하고, 하봉인 서봉은 우령대(禹靈臺), 우락암(訏樂巖)이라 함이 그것이다. 군지에는 그럴 듯한 설명을 붙여 놓았다. 곧 산줄기가 울퉁불퉁 뻗은 것이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듯하여 연주산, 울창한 송림이 하늘을 가리어 사시절 변함이 없기에 백산, 암석이 층층으로 몇 천 척이 되어 보이게 서 있어 마치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다 해서 척산, 옛적 옥야(沃野)현 때의 주봉이기에 옥성산, 금쟁반 위에 옥잔을 놓은 것 같기에 배산, 하우(夏禹) 씨가 9년 동안 여기에 앉아서 치수를 했기에 우령대, 반석이 널리 깔려 만인이 앉아 즐길 만하기에 우락암이라 불린다는 것이다. 명소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작은 산 이름이 일곱 개나 있는 셈인데 한자의 뜻에서 연기한 설명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먼 부회에 불과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裡里가 속한 땅은 백제 때는 소력지(所力只)현이라 하였는데 경덕왕 때 옥야현으로 개칭하였다. 위 산 이름의 열쇠는 상기한 옥성산이다. 이것은 옥야현의 성산(城山)이라는 뜻이다. 고대에는 적의 침범을 대비하여 주․군․현의 치소 부근이나 요새 지역에 성을 쌓는 일이 예사였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배산’에 성을 쌓았음직하다. 그렇다면 애초의 산 이름은 잣뫼(城山)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우리말의 ‘잣뫼’를 한자의 자석을 빌어 표기한 과정에서 ‘柏山․尺山․杯山’의 이름을 낳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원명으로 생각되는 ‘잣뫼’는 소멸되고 지금은 배산[잔메]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우령대, 우락암’도 실상은 우리말의 ‘우렁대, 우락바우’를 한자로 취음한 경우로 보인다.
3.2.2. 표기 한자의 교체
역사적으로 볼 때 지명의 표기 한자가 바뀜으로써 본뜻이 달라진 경우가 있다. 예컨대 ‘大山縣→翰山縣→鴻山縣’이 그러하다. ‘홍산현’은 지금의 충남 부여군 홍산면인데 백제 때에는 ‘대산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한산’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는 ‘홍산’으로 개칭한 곳이다. ‘翰’은 ‘大’(하다→한)의 음차자임은 물론인데 한편 ‘大’와 ‘鴻’도 ‘크다’는 뜻에서 공통점이 있으므로 한자를 갈음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는 달리 한자음이 같아서 글자를 바꾼 예도 있다. ‘漆田→七田里’가 그러한 보기다. 현재 이곳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 속한 이명(里名)인데 우리말로는 ‘옻밭’이라 부르고 있다. 원래 옻나무가 많아서 漆(옻나무:칠)자를 썼을 가능성이 짙은데 한자의 획이 복잡하여 동음의 ‘七’자로 바꿈에 따라 본뜻이 숨겨지게 되었다.
지명 표기 한자를 바꾼 이면에는 미화의 동기도 작용한다. 한 예를 들면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 지역에 ‘옥밭거리’라는 곳이 있다. 본래 백제 때는 복룡(伏龍)현 지역이었다. 아마도 과거 어느 시기에는 이 부근에 옥(獄:감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옥밧(바깥)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1914년에 행정 구역을 폐합한 과정에서 ‘獄’자를 피하여 옥동(玉洞)으로 고쳤다.
3.2.3. 행정 구역 개편에 따른 개칭 지명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지역을 병합하여 행정 구역을 개편한 과정에서 각 지명의 표기 한자를 합하여 새로운 지명이 명명될 경우에 본래 지명의 유래와 그 뜻이 달라진 예는 너무도 많다. 참고로 한 예만 들면 ‘咸豊縣+牟平縣→咸平縣’과 같다. 현재의 전남 함평(군)은 조선 시대에 위의 두 현이 통합되면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에 일제가 행한 우리 나라의 행정 구역 개편은 지명의 전승 면에서 볼 때 크나큰 변혁을 초래한 계기가 되었다. 이 때에 특히 면 단위 지역 이하의 행정 구역명은 종래의 지명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이른바 혼태(blending)식 지명이 새로 생겨났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3.2.4. 동음 견인에 따른 지명 의미의 변화
이것은 우리의 고대 지명어를 현대어 또는 한자로 표기할 때 생기기 쉬운 유연성 혹은 의미 변화를 초래한 것을 뜻한다. 즉 현재의 지명에 담긴 음상에 의존하여 비슷한 음을 끌어들여 연상적 어원을 부여하는 일을 말하고자 함이다. 한 예를 들면 강원도 영월군에 ‘두무치’라는 마을이 있다. 이것을 ‘杜舞峙’로 표기하고 ‘뒷산이 춤 추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본뜻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오히려 ‘두마․두모․두미’ 등을 포함하는 {둠}형의 변이형태로서 ‘둥글다, 사방을 둘러싸다’의 뜻과 상관성이 더 높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에 나오는 ‘豆音山․豆音只․豆音嶺․豆毛峴․豆毛山․豆毛浦․豆尾山․豆無山․豆麻川․都馬洞․豆音洞․杜門洞’ 등의 지명은 바로 위의 {둠}의 뜻을 가진 우리말을 음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양주동(1954:109)에서 제주도의 원칭 ‘耽羅’를 ‘둠’로 풀이하고 이 명칭이 한라산의 원명 ‘頭無岳’(圓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말 지명으로 전승되고 있는 ‘두모리, 두무실, 두무터, 두뭇골, 두뭇들, 두뭇재, 둠밭등’ 등의 지명도 같은 계열의 지명이라고 본다.
4. 지명에 남아 있는 고대국어
어느 나라나 다 그러하겠지만 우리 나라의 전래 지명 역시 애초부터 이름이 붙여진 데는 무언가 까닭(유연성)이 있고 지명어의 소재도 종합하여 보면 일정한 유형이 있는 듯하다. 우리 나라의 지명은 한자어와 고유어가 공존한 것이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지만 아직도 우리말로 전승되는 소지명이 전국에 두루 깔려 있어서 고대국어의 모습을 재구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 항에서는 일상의 말과는 달리 지명에만 남아 있는 우리 옛말을 몇 가지만 찾아 고찰하여 봄으로써 지명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4.1. 「골(谷)」의 뜻을 나타낸 지명어
우리 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가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말 지명에는 산(-뫼,-메,-미)과 ‘골’을 소재로 삼은 지명이 아주 많다. 골(谷)은 대개 ‘-골, -굴’로 쓰임이 일반적이지만, 이 밖에 다음 두 가지 희귀어가 지명에 남아 있다.
4.1.1. -실
삭실~狸谷, 밤실~栗谷 (전남 장성), 너부실~廣谷 (광산), 버드실~柳谷, 절구실~ (나주), 지실~芝谷 (담양), 소노실~ (담양), 보라실~海坪 (담양), 다라실~月谷 (화순), 스무실~二十谷 (화순), 곰실~熊谷: (화순), 둠벙실~ (보성), 바실~所谷里 (신안), 거치실~荒谷里 (충북 보은), 호무실~鋤谷里 (제천), 북실~鐘谷 (괴산), 누릅실~楡谷 (경북 칠곡), 노리실~獐谷 (강원 철원), 가래실~楸洞 (영월), 샘실~泉谷里 (삼척), 삽실~沙谷里 (삼척), 지실개~ 芝浦里 (철원)
위의 ‘실’은 골짜기를 뜻하는 옛말인데 일상의 말에서는 사라진 어휘이지만 현재의 우리말 지명에 잔존하고 있어 가치가 있다. 아마도 이 낱말은 고대국어 시기로 소급할 가능성도 있다
“絲浦 今蔚州 谷浦也”. 삼국유사 권3.
“國音 谷亦謂之室 因俗而各室從簡也”. 택당집 권9. 斗室記
필자가 전남 지방의 지명을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골’형의 지명은 ‘谷․洞’과 대응하며 도서․내륙 지방에 두루 깔려 있다. 그러나 ‘-실’형은 대개 ‘谷․里’와 대응하며 도서 지역에서는 예가 드물고 거의가 山을 끼고 있는 내륙 산간 지방에 훨씬 우세한 점을 분포상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강원 지역에도 ‘-실’형 지명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서는 ‘실’의 두음 /s/가 약화, 탈락된 ‘~일’형이 상당수 발견되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귀일 ~ 耳谷 : 전북 옥구
쇠일 ~ 金谷 : 경기 파주, 여주, 수원; 충남 아산, 천원; 전남 화순.
쇠일 ~ 牛谷 : 경기 이천
대일 ~ 大谷 : 경기 사평; 강원 홍천
서일 ~ 瑞谷里 : 강원 홍천
바일 ~ 梨谷 : 경기 가평; 강원 횡성
이는 국어음운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ㅅ>>ø’의 변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지명이란 전승 과정에서 보수성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고대국어에서의 ‘실’이 ‘谷’의 뜻이라는 어원을 언중들은 의식하지 못 한 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4.1.2. -단, -돈, -둔
① -단: 청등단~靑嶝, 매단(당)골 (전남 진도), 내단~ (강원 정선), 어단이~於丹里, 갈보다니(갈보데이)~ (명주)
② -돈: 단돈~丹頓里 (충북 제천), 대돈~․대둔~ (음성)
③ -둔: 숫둔~ 炭谷 (강원 인제), 어둔~於屯 (횡성), 귀둔~耳屯, (인제), 저둔곡~ (삼척), 곰둔~熊屯 (횡성), 달둔~達屯 (홍천), 한둔내~ (횡성), 용둔~龍屯里 (횡성)
위의 ‘-단’은 ‘-실’과 더불어 지명어에만 남아 있는 희귀어인데 이것은 삼국사기(권 37)의 고구려계 지명에 ‘-呑․-旦․-頓’으로 음차 표기된 지명의 잔존어로 생각된다.
於支呑 一云 翼谷, 習比谷 一作呑, 𢈴谷縣 一云 首乙呑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十谷縣 一云 德頓忽
주지한 바와 같이 위의 삼국시대 지명에 쓰인 ‘忽’은 삼국사기 고구려 지명에만 48개 처가 나오는 것으로 ‘촌락․시․주거의 집단’ 또는 ‘城․邑’의 뜻인 *xol로서 중세국어의 골(谷․洞)과 맞닿으며, 만주어의 holo(谷)와도 대응된다. 그리고 ‘忽’이 대개 ‘城’과 호응하는 까닭은 고구려가 당초 산곡 지대에 ‘都․邑’을 형성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성싶다.
한편 고구려 지명에서는 ‘谷’의 뜻에 대당되는 우리말을 ‘呑․旦․頓’의 한자음으로 음역하였다. 이 세 한자의 중국 상고․중고음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呑: 상고음. *t̒ən 중고음. 吐根切 t̒ən (透痕개1) 평성
旦: 상고음. *tɑn 중고음. 得按切 tɑn (端翰개1) 거성
頓: 상고음. *twən 중고음. 都困切 tuən (端慁합1) 거성
고대국어의 자음체계에서는 아직 무기음과 유기음이 비변별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 한음의 [t-/t̒-]의 대립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골(谷)을 뜻한 고구려계의 낱말은 *{tVn}형으로 재구할 수 있다. 앞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지금의 지명에 전승되고 있는 ‘-단, -돈, -둔’은 바로 이 형태의 모음 교체에 의한 변이형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현재 한자 지명 표기에 쓰이고 있는 ‘丹․旦․呑․頓․敦․屯’ 등의 한자는 실상 그 뜻과는 거리가 먼 취음자일 개연성이 높다.
이 어형은 곧 일본어의 tani(谷)와도 비교된다. 이 ‘-단’계 지명은 전남 지방의 지명에는 그리 흔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북방계의 고구려어 영향 지역에 그 잔존형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볼 것인지, 앞으로 전국 지명을 조사 대비하여 보면 그 분포의 특징이 드러날 것이다. 어쨌든 지명에서만 찾을 수 있는 귀한 우리말임에 틀림없다.
4.2. 「재(城)」의 뜻을 나타낸 지명어
필자가 조사한 전남 지방의 지명 자료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귀생기~東村, 김정기~金亭 (고흥), 마래기~馬勒里, 갱기~, 달애기~月也, 바람재기~ (광산), 홈태기~ (나주, 함평), 아래기~下谷, 꾸지기~ (함평), 다래기~, 나매기~ (해남), 생기~, 도내기~ (담양), 수리기~ (구례), 부애기~富洞 (신안), 뽀르기(뽀래기)~甫玉里 (완도)
그러면 위의 지명에 붙은 ‘-기’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필자는 일찍이 졸고(1965)에서 이를 삼국사기의 백제 지명에 나타난 ‘-己․-只’의 대응어로 본 적이 있거니와 현재도 그러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않고 있다. 즉 삼국사기(권 36. 지리 3)에는 다음의 지명이 보인다.
① 悅城縣 本百濟 悅己縣, ② 潔城郡 本百濟 結己郡
③ 儒城縣 本百濟 奴斯只縣 ④ 奈靈縣 本百濟 奈己縣
⑤ 燕岐縣 本百濟 豆仍只縣
c.f. 厚叱只 훗기 在咸興東三十七里 용가 권7. 25.
B. Karlgren의 재구음에 따르면 ‘己’의 중국 상고음과 중고음은 *kəg>kji이고, ‘只’의 중고음은 ʨiḙ이지만 한국어의 차자 표기에서는 위의 ‘훗기’에서처럼 ki로 쓰인 예가 있다. 따라서 ‘己․只’ 두 자의 고대국어 한자음은 kïj(긔)․ki(통용음)로 추정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백제 지명에서 ‘己․只’가 ‘城’과 완전히 대응하는 예는 비록 ①~③에 불과하지만 고구려계 지명에서 ‘城’에 대응한 우리말이 ‘忽’로 표기된 것과는 대조적이서 그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백제어에서 ‘城’을 뜻한 단어로 ‘己․只’(kïj/ki)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일상어에서 그리 수명이 길지 못하여 신라어 계통의 ‘잣’이라는 말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다. 주지한 바와 같이 중세국어에서 ‘城’을 뜻한 고유어로는 ‘잣’이 쓰였다.
잣곶~城串 용가 4:21 잣뫼~城山 용가 1:52
나라히며 자시며, 히어나 자시어나 석상 6:40
城:잣 셩 훈몽자회 중 8., 신증유합 상. 18.
그런데 이 고유어도 17세기 이후 근대국어 시기에 들어서는 한자어의 세력에 눌려서 ‘셩’과 ‘잣’이 공존하다가 마침내 ‘셩>성’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그러나 전승 지명에는 아직도 ‘잣’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잣개~城峴 (경남 남해), 잣굴~城洞 (경기 고양), 잣뫼~城山里 (전남 승주, 경남 창녕), 잣밭~城田 (경남 사천)
이제 우리는 다시 백제어 ‘己․只’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현재는 물론 없어진 말이지만 이것이 특히 백제어에 존재하였다는 증거는 상대 일본어에서 き(ki)가 ‘城․柵’을 뜻하는 말로 쓰였거니와 현재의 일본 지명 중에도 ‘城’을 き(ki)로 훈독한 실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일본어에는 ‘城’을 뜻하는 말에 ki 외에 さし(sasi)라는 말이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이종철(1995:74-)에 의하면 후자는 전자와는 달리 일본 상대문헌 자료에는 용례가 보이지 않고 오직 日本書紀에 수록되어 있는 우리 나라 삼국 관계 지명 속에서만 용자례가 발견된다고 한다. 참고로 몇 예만 인용하여 보기로 한다.
“東韓者 甘羅城․高難城․爾林城 是也”. 應神 16년 2월
(東韓はかむらのさし․かうなんのさし․にりむのさしなり)
“自熊川入任那己叱己利城” 繼体 23년 4월
(くまなれより, 任那のこしこりのさしに入る)
“築城而還. 号曰久禮牟羅城”. 繼体 24년 9월
(さしを築きて還る.號けてくれむらのさしと曰ふ.)
“取新羅沙鼻․岐奴江, 二城” 天智 2년 6월
(新羅のさび․きぬえ, 二つのさしを取る.)
현재의 일본 지명 중에 ‘城’을 sasi로 훈독한 용례는 없고 오직 日本書紀에 수록된 삼국 관계 지명에서만 나타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것은 분명히 앞에 든 신라계의 우리말 ‘잣/*자시’를 표음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낱말은 후대의 일본어에서 차용어로서 수용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현재 일본 지명표기 자료를 보면 ‘城’의 독법은 다음 세 가지가 있다.
① [じょう] : 七城町~シチジョウマチ (熊本縣 菊池郡)
: 安城市~アンジョウシ (愛知縣)
② [しろ] : 山城町~ヤマシロチョウ (福岡縣 北九州市)
: 城木町~シロキチョウ (愛知縣)
③ [き] : 西茨城市~ニシイバラキシ (茨城縣)
赤城村~アカキムラ (群馬縣 勢多郡)
岩城~イワギ (熊本縣 葦北郡)
天城町~アマギチョウ (鹿兒島縣 大島郡)
위의 지명에서 ①은 일본한자음에 따른 음독이고, ②는 일본어의 훈독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③의 ‘き(ki)/ぎ(gi)’는 우리의 주목을 끈다. 왜냐하면 이 말은 바로 백제 지명에 등장한 ‘己․只’의 차용어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연유는 무엇일까. 이종철(1995)에 의하면 고대 백제인들이 일본에 건너와서 백제식으로 山城을 축성했다는 일본측 문헌자료를 토대로 하여, 만약 그러한 기술문화가 백제로부터 전수된 것이라면 축성 기술자가 건너갔음은 물론이고 그 실물(城)에 대한 명칭도 자국어인 백제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집단적으로 한 곳에 모여 거주하는 지명까지도 자국어로써 명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일본의 소지명을 면밀히 고찰하여 보면 고대한국어는 물론 중세국어와도 비교 가능한 어휘 자료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앞에서 예시한 백제어 계통의 ‘己․只’도 우리말에서는 일찍이 소멸되고 말았지만 일본 지명어에 차용어로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명의 보수성을 재확인하거니와 본항의 서두에 예시한 우리 나라의 ‘-기’형 지명의 어원도 그 일부는 백제어의 ‘城’의 뜻에서 찾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 두고자 한다.
4.2. 「지형․지세」를 나타낸 지명어
지형과 지세는 처음 지명을 명명할 때 유연성 면에서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일상어에서는 볼 수 없는 두어 가지를 들어 보자.
4.2.1. -구미, -기미
① -구미: 상목구미~香木里, 유토구미~柳吐里, 감구미~加用里 (전남 진도), 샘구미~泉口里, 대구미~大口味, 봇낭구미~, 선창구미~, 오청구미~ (완도), 대삿구미~ (보성), 큰구미~, 돌구미~石穴 (강원 삼척), 절터구미~ (양구)
② -기미: 고락기미~洞井, 가마기미~, 연못기미~, 모래기미~, 잉기미~漁村, 하방기미~, 뻘기미~, 생끼미~ (전남 고흥), 모래기미~ (장흥), 후리끼미~ (보성), 따슨기미~, 예들기미~, 우러기미~, 샌기미~, 큰기미~, 지풍기미~, 외들기미~, 넙텅기미~ (완도), 꼴기미~邑洞 (흑산도)
③ -지미: 갓지미~ 邊村 (여천), 모지미~馬村 (신안), 청지미~ 靑村 (흑산도)
④ -금: 청석금~, 한박금~, 오천금~ (완도), 고라금~, 생끔~ (고흥), 정강금~, 진막금~, 대풍금~, 이성금~, 파장금~, 고려금~, 정창금~, 건금~ (이상 초도 8금), 작그미~作錦 (여천)
위의 ‘-구미’형은 지역에 따라서는 ‘구미, 귀미, 기미, 끼미, 지미, 금, 그미’ 등 여러 변이형으로 실현되고 있다. 현지를 모두 답사하지는 못하였으나 필자가 전남 지역을 조사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위의 지명어는 대체로 바다에 연하여 있거나, 또는 하천이나 바다 곁의 후미진 곳(凹형 지형)을 지칭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구미, -귀미, -기미’형 지명은 북한 지역에서도 쓰인 듯하다.
갈구미~甫靑洞, 밖귀미~外口味村 (함북 북청), 놀귀미~鹿野洞, 배귀미~梨津 (함북 나진), 논귀미~畓九尾里 (함남 고원)
명지기미~明湖洞, 핏기미~上津洞, 배기미~梨津洞 (함북 경흥), 달래기미~月洛洞 (황해 옹진)
그런데 ‘~기미’ 와는 달리 ‘~구미’는 그 유래가 꽤 오래임을 다음의 문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① 北仇未, 馬仇未, 蒿三仇未 세종실록 지리지
② 倉仇未, 彌造仇未, 於仇未, 船仇未, 馬仇未, 基道仇未, 大仇未, 銀仇未津, 被(彼)仇未, 甘湯仇未 등 홍양호(1724-1802), 「北塞紀略」
이상 ‘仇未’계 지명의 촌락들이 대개 바다에 연해 있거나 또는 하천 곁에 위치한 곳이라는 사실은 이 대목이 ‘海路考’라는 점에서 상기한 전남 지역의 지명어와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면 그 어원은 무엇일까? 그리고 ‘구미’와 ‘기미’는 동일어의 변이형태인가, 아니면 별개의 것인가도 깊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장의 결론을 유보한 채 몇 가지 가능성만을 들어 두기로 한다.
(1) ‘구미’를 ‘굼+이’로 분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굼’은 무슨 뜻일까. 첫째는 숨다(隱)라는 뜻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홍순탁(1963:10)에 의하면 흑산도 방언에서 ‘숨다’에 해당되는 말로 ‘꿈다’가 보고된 바 있는데 이를 믿는다면 그 전신형은 ‘굼다’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구미’ (‘굼’의 명사형)가 붙는 지명은 바닷가나 하천가에 위치하되 해안선보다는 ‘움푹 들어간 곳, 후미진 곳’을 가리켜서 ‘해안선보다는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는 곳’을 지칭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둘째는 ‘>구무(穴․孔․窟), 구모’의 어근인 {*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쨌든 ‘구미’가 존재하는 한 ‘귀미’는 전자의 ㅣ모음 역행동화형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구미→귀미→기미 →지미’의 변이형을 상정할 수 있다.
(2) 또 하나의 가능성은 ‘-금․-끔’형을 고려할 때 손희하(1984:54)에서 언급한 한자어 ‘阿’의 자석(:자회 하 18./ 광주판 천자문 23.)을 고려할 수 있다. ‘阿’자에는 ‘大陵, 曲處, 水岸’의 뜻이 있다. 중세국어에서 ‘>’은 원래 틈(隙․罅)의 뜻이지만 ‘阿’자 역시 ‘’으로 풀이한 것을 보면 아마도 ‘산모퉁이, 등성이, 굽이고개, 물언덕’을 지칭한 말로 확대 혹은 전이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금’의 평음화가 국어음운사를 고려할 때 마음에 걸린다.
한편 ‘, ’의 이형으로 ‘, ’이 문헌에 등장한다.
묏메 브터 이쇼 슬노라 (蕭然依山阿) 두시언해 초 7:28
이 안자셔 계축일기
일찍이 필자는 졸고(1965)에서 ‘기미’를 지명접미사로 간주하고 이를 ‘기(城)+미(水)’로 분석한 바 있거니와 아직도 확신이 없다. 그리하여 이제 ‘-기미’를 ‘+이’로 생각해 보지만 역시 국어음운사의 일반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난점이 있어 후고로 미루어 두기로 한다.
4.2.2. -고지, -구지
① -고지: 외고지~, 돌꼬지~立石 (강원 명주), 모롱고지~ (충북 중원), 보싯고지~ (음성), 문꼬지~ (충남 서산), 질꼬지~ (보성)
② -구지: 모롱구지~ (경기 광주), 돌방구지~ (파주), 대꼬지~竹串里 (충북 제천), 가매구지~, 절구지~ (강원 영월), 질구지~ 深井 (곡성), 대꾸지~大串, 나리꾸지~羅里 (전남 진도), 싱구지~ (신안)
위의 ‘-고지, -구지’계 지명은 결론부터 말하면 위의 ‘-구미’계와는 반대로 대개 해안선에 육지가, 또는 평야에 산기슭이 불쑥 나온 지형․지세(凸형)에 붙여진 지명어로서 ‘串․岬’의 뜻에 해당한다.
이 말의 유래가 오래임은 다음의 삼국사기(권 37) 지명 표기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獐項口縣 一云 古斯也忽次,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楊口縣 一云 要隱忽次, 穴口縣 一云 甲比古次
이상은 고구려계 지명인데 그 표기로 보면 ‘口’자의 우리말은 ‘忽次․古次․串’과 대응되는 셈이다. ‘忽次․古次’는 당시의 한자음을 빌려서 우리말 ‘고지’를 적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아마도 고구려 말에서 ‘입’은 ‘*고지’라 했을 가능성이 짙다. 고대일본어의 kuti(口)와도 비교되는 말이어서 흥미를 끈다. 지명에 이 말이 쓰인 까닭은 해안선에 육지가 불쑥 나온 형상이 마치 사람이나 짐승의 입과도 비슷한 데서 연상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5. 맺음말
지금까지 지명 연구의 의의와 필요성을 비롯하여 지명이 명명된 유래와 전승 과정에서 생겨난 변이․변개의 요인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일상 생활어에서는 이미 사라진 우리의 옛말이 지명에 남아 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국어사의 연구는 회고적 방법과 전망적 방법이 다 가능하다. 다만 자료면에 있어서 고대국어 시기 이래의 문헌어의 예증이 중요한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말의 화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각 지방의 방언은 물론 보수성이 강한 지명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 연구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방언과 지명 자료는 언어의 이동은 물론 대외적 비교 연구에도 긴요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본고는 적으나마 이런 점을 다시금 확인하여 보려는 뜻에서 작성한 소론이었음을 말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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