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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행 코스
A팀 : 화엄사 – 코재 – 노고단 –
B팀 : 성삼재 – 노고단 –
(이후 코스 동일)
노고단 – 임걸령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연하천 산장(점심) –
벽소령 산장 – 선비샘 – 세석산장 (1박, @5,000-, 모포 1장 1,000원 임차) -
촛대봉 – 장터목 산장(침실에 배낭 둠) – 천왕봉 –장터목산장 백(아침식사) –
백무동 하산
2. 진행 시간 (화엄사 출발팀 기준)
5/30 22:10 서울발 (종각, 제일은행 본점 주차장)
5/31 02:00 남원착 (남원시청앞)
03:10 조식완료, 남원출발 (솜리식당: TEL 626-1671)
04:15 화엄사 출발
04:45 본등산로 시작시점에서 변복 (가벼운 복장)
06:30 코재 도착 (화엄사코스와 성삼재코스가 만나는 지점)
07:00 노고단 도착
07:45 임걸령 도착 (간식)
-- 임걸령 출발후 중도에 환자발생 응급조치 : 약 30분 소비 --
09:00 삼도봉 도착
09:30 화개재 도착 (뱀사골 산장 위)
10:00 토끼봉 도착
11:00 연하천 도착
11:50 중식, 연하천 출발
13:00 벽소령 도착
선비샘 도착
15:00 칠선봉 도착
15:50 세석 도착, 저녁식사
21:00 취침
6/01 05:00 기상, 세석 출발
06:15 장터목 산장 도착
07:00 천왕봉 도착
09:00 장터목 백, 조식 후 출발
11:15 백무동 도착
3. 준비물 (김용전 개인)
- 야영장비 : 매트리스, 미군 여름용 침낭, 코어텍스 침낭카바, 에어베개
- 취사장비 : 콜맨 휘발유 버너 1개, 코펠 1조 2개, 세라컵(밥, 술 그릇) 1개, 수저 1세트
- 음식물 : 누룽지 20인분(밥 이나 라면보다는 조리가 훨씬 간편하고 맛도 좋음),
갓김치 1통, 고흥에서 가져온 막된장 1통, 깐마늘 약간, 죽염, 마른 멸치,
행동식 빵(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잡곡 통밀빵이 좋음,
며칠동안 상하지 않음), 커피 믹스, 사탕 1봉지 (초코렡과 사탕이 믹스된 것이 좋음, 롯데백화점에서 구입 1,000원)
- 의 류 : 스판 반바지, 쉘러바지, 쿨 셔츠 2, 우모복, 양말 3컬레, 장갑, 모자 등
-기타장비 : 배낭 45리터, 배낭카버, 수통(주둥이가 큰 것 1리터)
-종주코스에 물 있는곳 : 화엄사, 노고단 산장 뒤, 임걸령(물 좋음), 화개재에서 약 100여미터 서쪽으로 내려가면 뱀사골산장(종주시 비상사태 외에는 들릴필요 없음), 연하천 산장앞(물 풍부), 벽소령 산장 밑( 산장에서 밑으로 약 200미터 내려가야 있음), 선비샘(물 좋음),
세석 산장 앞, 장터목 산장(산장 능선에서 동쪽으로 약 50미터 밑에 있음), 백무동 하산시
장터목에서 1시간 30분 하산지점에 참샘
* 곳곳에 샘이 있기 때문에 물을 물통에 많이 채워서 짐을 무겁게 할 필요 없음.
4. 산행기
(5월 30일, 금)
밤 10시 10분 제일은행 본점 주차장을 출발. 오랜만에 제일은행 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일반 버스보다 자리가 넓고 편하다. 최근 비가 많이 내리다가 오늘 오후부터 개었다. 오전까지 지리산 국립공원에 전화했더니 입산통제란다. 미친놈들, 할일 없으니 별 짓 다하고 있다. 이 정도의 비에 입산을 막는다면 언제 산에 가라는 말인가. 산악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등반대장인 나의 의지는 강하다. 입산통제하면 개구멍으로라도 들어가야 한다. 많은 산악회에서 이번 산행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는 무조건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고 이메일로 그 사실을 알렸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통제가 심하지 않았는데 국립공원 인원이 많이 늘어나더니 별 것을 다 갖고 시비를 걸어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짜증난다. 저녁에도 입산을 통제하여 산에 오를 수 없다. 한심한 작태다. 오후에 다시 알아보니 통제를 해제한단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미친놈들. 지네들 말만 믿고 산행계획을 취소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총 34명,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충주지점 직원 1명을 죽암휴게소에서 태우고 대전을 지나 진주까지 이어지는 새로 개설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이쪽은 비가 내렸던 것 같다. 함양에서 대구 광주간 88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남원 톨게이트로 빠져 나왔다.
새벽 2시. 남원 시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뼈해장국, 콩나물해장국으로 아침을 챙겨먹었다. 정읍지점장이 산행인원에 추가로 합류하였다. 결국 36명이 산행하게 되었으며 여자는 없다.
(5월 31일, 토)
이른 아침을 먹고 남원을 출발하여 A팀 출발지인 화엄사로 향했다. 비가 뿌렸다. 원래 전부 화엄사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직원들 면면을 보니 화엄사에서 코재까지 가면 그로키 상태가 될 직원이 있고 하여 두 팀으로 나누어서 출발하기로 했다. 다른 한 팀은 버스로 성삼재까지 간다. 지리 종주인데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차로 다 올라가 버린 것이다. 의미가 없다.
내가 혼자서 갈 때면 구례구역에서 새벽 4시경에 열차를 내려 택시로 화엄사 절문앞 까지 갔다. 택시비는 2년전 1만원 주고 갔는데 지금도 같다고 한다.(지난 5월 백무동에서 만났던 등산객에 의하면) 그런데 대형 버스도 거기까지 가서 돌릴 곳이 있을 것인지 불분명했다. 새벽길을 달린 버스는 화엄사 매표소를 무사 통과(이곳은 아직 근무자가 없었다. 설악산 설악동 매표소는 24시간 돈을 받는다. 새벽 3시에도 근무자가 있었다)하고 한화콘도 입구를 지나 잘 포장된 숲길을 달렸다. 화엄사 못 미쳐 우측에 있는 주차장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저 밑에 있는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걸어와야 할 생각을 해보아라. 그것도 아스팔트길을 말이다.
차에서 내려 화물칸에서 배낭을 꺼냈다. 성삼재로 가는 직원들은 지금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비가 내리는 것인지 바람에 나뭇가지의 물들이 떨어지는 것인지. 이곳에서 출발할 직원이 11명이다. 다들 실력을 알고 있는 직원들인데 4명은 처음 본 젊은 행원들이다. 이들 복장을 보니 엉성하다. 아까 남원에서 그들을 불러 자신이 없으면 성삼재로 가라고 했더니 꼭 가겠단다. 별수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산행 실력을 모르는 마당에. 헤드랜턴을 켜고 배낭카버를 씌웠다. 이번에 메고 온 배낭은 미국에서 만든 Gregory 45리터, 등판이 내게 맞지않지만 장거리 산행에 한번 사용해보고 싶었다. 매트리스는 배낭 옆에 달았다. 5분여를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니 화엄사 절문이다. 이 곳에도 버스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엇다.
절문 오른쪽으로 안내표시판이 있다. 노고단까지 7km. 산에 가보면 초입이나 산장근처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불분명한곳이 있다. 따라서 초입을 잘 들어서야 하느니라. 다리를 건너 화엄사 옆 계곡을 따라 돌로 잘 다듬어진 길을 2km 올라간다. 계곡물이 어제, 그제 내린 비로 많이 불어나 거센 물살과 함께 물소리가 요란하다. 암자로 통하는 포장도로와 마주친다. 바로 밑에 취사장이 있었는데 어두워서 잘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없어진 것 같다. 여기서 중무장을 하고 온 복장을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반바지와 가벼운 상의만 입도록 지시했다. 지금부터 2km까지는 가파르지 않고 돌로 다듬어진 길이 비교적 좋다. 내가 선두에 서서 속도를 내었다. 다들 마라톤으로 달련 되서 인지 잘 따라온다. 뒤에서 쉬고 가자는 말이 들려온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쉬었다. 젊은 친구 4명중 2명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쳐지면 정말 문제다. 한참을 가다 다시 쉬기로 하고 인원파악을 해보니 역시 4명이 문제다. 약 10분을 기다려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 그들 중 2명은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 성삼재에서 하산할 것을 권유했더니 끝까지 종주를 하겠다고 하여 그들 4명이서 함께 천천히 산행할 것을 부탁하고, 나머지 7명은 고속 질주다. 약 1.5km의 가파른 오르막, 이 곳이 화엄사 코스의 크라이막스다. 다들 단단히 마음먹었는지 생각보다 쉽게 코재에 올랐다. 아침 6시반. 광양만을 보니 구름에 덮여 시야가 엉망이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산하가 멋있었는데 아쉽다. 성삼재로부터 이어진 큰 길을 따라 진행하다 오른쪽 숲으로 난 길에 들어섰다. 아 이곳도 오르막이 만만치 않구나. 벌써 힘이 빠지나 보다.
노고단 앞 화장실을 지나 취사장 뒤에서 잠시 휴식. 비는 내리지않는데 약간 쌀쌀하다. 솔트랙에서 지급한 가벼운 카버를 꺼내서 걸쳤다. 취사장 부근에는 아침식사를 하고있는 등산객들이 많다. 무전기로 성삼재 출발팀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불통이다. 5시경에 성삼재를 출발했을것인데 약 1시간 전에 이곳을 통과했을 것 같다. (실제는 5시반에 통과했단다)
노고단에서 임걸령 까지는 걷기에 비교적 좋은 흙길이다. 돼지평전을 지나고 피아골 산장으로 내려서는 능선을 통과했다. 임결령 샘터에 가까이 왔다는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임걸령 샘터에도 줄을 쳐 놓았다. 2년전에는 없었는데. 그 대신 이동식 화장실은 없어졌다. 심한 악취가 바람에 날렸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짐을 풀고 간식을 먹었다. 나는 잡곡빵을 뜯었다. 조금전 무전을 해보니 성삼재 후미팀 김대진군이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오르고 있었다. 우리와 불과 30여분 거리에 있는 것 같다. 임걸령을 출발하여 등반중에 조상만 부부장 손가락 하나가 마비되어 칼로 째도 안되어 물을 끓여 담그고 커피를 타서 주었다. 날씨가 싸늘하다.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인지 잘못하면 하이퍼써미야에 걸리기 쉬운 날씨다. 나는 김대진군에게 무전으로 쉬는 중에 몸의 체온을 뺏기질 말 것을 당부했다. 체온을 뺏겨서 몸이 떨리고 이가 흔들릴 정도라면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 더운물이나 커피가 좋다. 그리고 젖은 옷을 갈아입어 피부의 찬 기운을 없애 주어야 한다. 노루목을 지나고 반야봉은 오르지 않았다.
삼도봉에 가니 성삼재 후미팀이 2명 쉬고 있다. 김대진군은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중이란다. 화엄사팀은 벌써 성삼재팀을 따라잡고 있었다.
약 20분 휴식. 대진이와 한성근부장 외 1명이 삼도봉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출발했다. 지겨운 나무계단을 내려와 화개재에 도착. 여기를 역으로 올라간다면 정말 힘들것다. 옛날 계단이 없을 때 내가 정말 가파르구나 하면서 중간에 한번 쉬고 올랐던 길인데…..
화개재에는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멀리 능선들이 맑게 개인 하늘을 이고 뚜렷하다. 드디어 사진기를 꺼냈다. 그 동안 구름속을 지나왔는데 이렇게 멋있는 연출을 볼 수 있다니, 역시 산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좋다.
토끼봉까지는 오르막길. 나도 이젠 다 되었나 보다. 무게도 15여kg 밖에 안 되는 배낭을 메고 어깨가 아파서 쩔쩔매다니. 80리터 배낭을 가득 채우고도 끄덕 없었는데 왜 이러지. 아무래도 어깨가 어긋난 것 같다. 토끼봉에 바람이 세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휴식. 다른 등산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거듭한 끝에 연하천 산장에 도착. 11시.
나는 코펠에 누룽지를 끓였다. 동료 직원들도 나름대로 식사를 준비하여 겨우 자리잡은 통나무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등산객들이 많았다. 보통 연하천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산장에서는 원래 술은 팔지않는데 캔맥주를 다른 음료수 캔과 함께 시원한 물에 담아서 팔고 있었다. 나는 우모복까지 입었다. 쉬는 중에는 날씨가 쌀쌀하다. 명동지점 이대리 외 1명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연하천 출발. 아직 김대진군이 이끄는 후미는 오지 못했다.
벽소령 산장 능선에서 휴식. 화장실까지 다녀왔다. 화엄사 출발팀은 대단했다. 지칠줄 모르고 잘 간다. 여기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을 구간인데도 말이다.
선비샘에 가니 우리 직원들이 있었다. 샘에서 목을 축이고 30여분 쉬었다. 배낭의 무게에 어깨를 이리저리 뒤틀어 본다. 역시 어깨에 문제가 있다. 다시는 짐을 지지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다음에 또 무거운(?) 배낭을 꾸린다. 산장에 라면을 포함하여 먹을 것들이 많이 있고 산장에서 자면 되기 때문에 짐을 많이 질 필요가 없다. 적어도 지리산 등반에서는 말이다. 암릉, 계단을 올라 영신봉에 올라보니 멀리 여인의 젓가슴 같은 반야봉, 그 왼쪽으로 노고단이 보인다. 길게 이어진 능선을 보니 우리가 많이도 걸어왔다. 세석산장으로 내려서니 먼저 온 직원들이 산장 앞 마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3시 30분. 점심후에는 많이 쉬고 왔는데도 빨리 도착했다. 긴 낮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세석평전의 철쭉은 그 색깔이 약하고 옛날보다 많이 줄어 있었다. 멋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직 10여명이 도착하지 못했다. 우리는 저녁을 준비하고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돌려 마셨다. 산장에 예약확인, 5시 이후에 방 배정 이란다. 예약 없이 온 사람들은 대기표를 받아서 방을 배정 받는다. 예약 없이 온 사람도 전부 재워줘야 하는 것이 산장의 의무다. 최방현군 팀은 많이도 짊어지고 왔다. 팩소주 10개에 삼겹살(구워먹고도 남았음), 주말농장에서 채취한 야채까지, 야채가 맛이 좋았다. 우리는 2층에 36명이 배정받아 자리를 정했다. 그런데 뒤에 쳐진 명동팀 2명과 젊은 친구들 4명이 밤 9시에야 도착했다. 나는 산장 근처에서 비박을 하려고 준비해 갔는데 이 친구들 기다리느라고 그냥 산장에서 자기로 했다. 산장은 시끄럽고, 코 골고, 땀 냄새, 새벽 3시경부터 산행 준비에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6월 1일, 일)
새벽 5시경 기상.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여 이미 잠이 깼다. 밖으로 나와 장터목으로 향했다. 나는 직원들을 먼저 보내고 5시 반경에 출발, 촛대봉에 오르니 해가 한 뼘 정도 올라와 있다. 빨리 출발했던 직원은 촛대봉 일출을 감상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세석-장터목 구간을 감상하면서 중간에 볼일도 보고 천천히 이동.
장터목산장에 도착. 배낭을 방에 넣어두고 맨 몸으로 천왕봉으로 갔다.. 등산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천왕봉 정상에서 이병호차장에게 정상 사진을 디지털로 찍고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왔다.
제석봉에는 사진찍으러 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내려오면서 나도 죽어서 서있는 고사목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제석봉 고사목 자유당 시절 인위적으로 불을 내어 불법 벌목의 흔적을 없애려 했다고 하니
천왕봉 밑 칠선계곡 길은 2005년까지 자연보호 입산통제중이다. 칠선계곡 윗부분은 작년 장마로 산사태가 엄청 난 것이 지난 백무동 오름길에 보였었다. 입산통제를 어기고 칠선계곡으로 내려서고 싶다. 추성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1994년 1월 어느날 오후 의탄교에서 차를 내려 추성리로 들어섰다. 산 자락에는 벌통들이 놓여있었다. 마을을 벗어나 밭둑을 따라 용소가 있는 계곡을 타고 두지터를 거쳐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야간산행으로 천왕봉에 올라 지리종주에 나섰던 것이다. 안치국군이 같이했다. 그때만 해도 소위 말하는 등산학교도 다녀봤고 혈기 충천하여 밤낮없이 산을 헤집고 다닐 때다. 수유리 북한산 밑이 집이었으니까 북한산은 새벽부터 밤까지 집을 나서면 산이었다. 그러다가 바위에서 떨어져도 보고 이렇게 다쳐도 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 산은 그러한 나의 만용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고, 겸허한 마음으로 산을 찾게 되는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지워버리고 싶은 세월이다. 성장이 멈추어 버린 시간이었다. 마우스로 크릭하여 날려버리든지 안되면 숨기기로 보이지 않게라도 하고 싶다. 그 10년은 많은 시간을 산에서 보냈다. 그만큼 나에게는 방황의 시기였으니까. 내게 산은 도피처다.
새로 구입한 Quest wind3 텐트까지 짊어지고 선녀탕을 지나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고 막 출발을 하는데 바윗길이 반들반들하게 얼어있는 것을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힘차게 올라서다 그만 미끄러져 오른쪽 눈두덩이를 얼음바위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때는 그 흔한 스틱 하나 가져가지 않고 80리터 배낭을 가득채워 메고 다녔으니 역시 젊음이 좋았노라고 말해야 할까. 얼굴 한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안티푸라민을 발랐다. 계속 신경이 쓰였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거울이 없어서. 손으로만 자꾸 만져 보았다. 칠선계곡길이 그렇듯이 우리는 뚜렷하지 않은 길을 찾아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면서 산행을 계속했다. 그날 밤에 천왕봉을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우리는 적당한 곳을 찾아 눈 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밥과 찌게를 먹고 밖에 둔 코펠에 어떤 놈이 달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큰 놈이라면 텐트까지 덮칠 것 같았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텐트 안에 누워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을 뜰 수 없이 부어 올랐다. 아픈 것은 둘째 치고 과연 산행을 마치고 출근할 수 있을 것 인지가 가장 걱정이 되었다. 산행 속도가 늦어졌다. 치국군이 짐을 많이 져서 그런지 나를 따라 오르지 못한다. 안군의 짐을 내가 나누어 메었다. 천왕봉에 올라 사진을 찍는데 어떤 등산객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치국군은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종주를 포기하고 장터목 산장 앞 능선에 텐트를 쳤다. 다음날 세석을 거쳐 한신계곡으로 내려왔다. 백무동 버스정류장 공중전화기 근처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가관이 아니었다. 치국군이 계란을 사서 문지르라고 했다. 그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주로 가서 병원에 들렀더니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병원을 그냥 나와서 약국에서 바르는 약을 사고 버스로 서울에 왔다. 한동안 시커멓게 변해버린 얼굴 한쪽 때문에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명동 어떤 성형외과에 가서 상담까지 했었다.
그 뒤로도 90년대 초반에는 추성리를 자주 찾았다. 언젠가는 7월 장마철인데 지리 종주중 장터목에서 자고 산장지기의 만류를 뿌리치고 칠선계곡으로 하산했다. 추성리 가게에서 캔맥주를 들이키고 버스시간이 맞지않아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남원행 버스를 타기위해 마천까지 걸었다. 히치도 할 수 있을 터인데 내 속에 끓고 있는 젊은피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미친 짓이었다.
며칠전 치국군을 정말 우연히 안국동 4거리에서 만났는데 그 때 둘이서 찍은 천왕봉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웠노라고 했다.
장터목에서 누룽지를 끓이고 10여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물도 뜨러 가지않고 밑에 놈들한데 시키기만 했구나. 커피를 마셨다. 그 맛이 정말 좋았다.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커피 맛이 좋다는 것이다.
이제 지겨운 하산길. 지난 5월초 보다는 신록이 우거진 길이 좋았다. 중간에서 몇번 쉬고 참샘에 도착. 발도 씻고 한참을 쉬었다.
원래 하산을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잡았는데 그 길은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길이다. 그리고 산길을 벗어나서 한참을 내려가야 중산리 주차장이 있다. 그래서 참샘 부터는 계곡의 물도 있고 그 깊은 백무동 계곡이 좋아서 하산을 이쪽으로 변경했다. 나는 고로쇠나무들을 찾아 유심히 살폈다. 이 곳 나무들은 2-3월이면 물을 빼내가는 인간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고로쇠나무에도 푸르른 잎이 나부끼고 있었다.
계곡을 옆에 두고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일었지만 등산로 옆이어서 그냥 백무동까지 내려왔다.
우렁찬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지난 5월에 비박을 하면서 이용했던 야영장 개울건너 음식점에 도착, 송어회와 산채비빔밥에 막걸리를 곁들었다. 이 음식점 아주머니 인심이 좋다. 지난번 야영시 막걸리 한병을 사러 갔는데 취나물을 듬뻑 그릇에 담아 주는 것 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술이 과했다. 옆에 앉은 처음 보는 부부에게서 얻어 마신 술까지 너무 많이 마셨다. 이병호 차장은 얼굴에 상처를 입어 남원으로 후송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김정식차장도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주차장의 제일은행 버스를 확인하고 차에 오르자 나는 잠에 골아 떨어졌다. 술 때문에 언제 출발했는지도 모르고. 남원 톨게이트인가 시끄러워서 눈을 떠 보니 백무동에서 인원파악을 소홀히 하여 3명이 음식점에서 자고 있는데 그대로 출발하여 그들이 남원까지 와서 합류하는 모양이다. 이번 산행은 술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서울에 오니 밤 10시 반이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