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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은 신나게 날려보았을 고무동력기랑 글라이더......
이제 늦게 본 아들이 그 나이가 되어 아들과 함께하게 된 모형항공기..
이런 이유로 내가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모형비행기를 만들어 날리기 시작한지 3년이 되었다.
하지만 국제 규격은 올해 들어서 처음 접하게 되었고 또 수많은 대회를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왕에 취미를 붙인 거 목표가 있다면 그 즐거움이 훨씬 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여 출전을 결전하게 된 대구대회...
인천에서 국제규격의 대형 비행기를 들고 새벽에 내려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나는 뭘 하나 하게 되면 엄청 열정을 쏟아 붙는 스타일인지라 대구대회를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토요일 이었으면 좋으련만 일요일 열리게 되어 성가대 찬양도 빠지고 예배도 빠지게 되어 속상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즐거움 이었다.
우선은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도록 큰 상자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큰 상자를 구해서
필요한 크기만큼 잘라내었다.
그리고 바닥에 40미리 정도의 두터운 스티로폼을 깔고
잘려진 부분도 다듬어서 뚜껑으로 사용하게 만들어 두었다.
바닥에 라인 만드는 두꺼운 테이프로 단단하게 상자 뚜껑을 붙혀 모양을 만들고
안쪽에는 비닐 블록으로 선반을 만들어 붙혔다.
그러다가 배치가 실용적이지 못하여 다시 뜯어서 180도 돌려 붙혔더니 문제가 생겨 다시 뜯고 되돌리기를 하면서
일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곤 더 편하고 더 많이 담고 중량물에 의해 날개가 파손 되지 않도록 배치를 하느라 이리저리 손을 대었고
열고 닫고 담고 꺼내기 편하게 하기 위해 또 고민하고 왔다 갔다 뜯고 붙이고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영 옆으로 고무줄이랑 필요 부품을 넣을 공간을 만들고서는 내부를 마무리 하였다.
안에는 구멍을 내고 단단한 종이고 덧붙혀 튼튼하게 만들고 끈을 묶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바깥쪽에도 마찬가지로 단단한 종이를 덧대고 홈을 만들어 끈이 빠져 나오도록 만들었다.
그리곤 이렇게 세우면 내부도 안전하고 손으로 들기도 좋은 가방이 되는 것이다.
바닥에 내려 놓을 때랑 행여 끌고 다닐때를 대비하여 마닥 모서리도 단단한 종이로 보강을 하였다.
이제 가방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일이 시합당일 새벽까지 한 일이었다.
또 비행기를 만들었는데 안내문에는 3회를 날린다고 적혀있었기에
비행기가 3대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어 1대를 더 구입하게 되었다.
아직은 참여에 목적을 두고 있었기에 성화산업의 보이져 보급형으로 준비를 하였고 며칠간 정성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비행기는 두 대만 검사하게 되어 있었는데 안내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시합이후에 찾아보니 한글 규정 화일에 적혀있었지만 난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두 대만 등록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급하게 한대를 더 구입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참여 등록을 할때에는 글라이더랑 고무동력기를 모두 날리고 싶었지만
참여등록을 하고자 하니 싸이트에는 한 부문만 등록이 가능하다는 안내가 나왔고 등록 자체가 불가능 하였다
해서 아쉽지만 고무동력기만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국제규격 대회가 앞서 치런 두번의 수준이라면 내가 금메달 따는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라고..
그리고 금메달을 따오마,., 하고 말했다.
항상 그랬듯이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행복하다.
일정은 당일 새벽에 광명에 주차를 하고 KTX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으로 잡았다.
표를 예매하려 하니 올라오는 표가 매진되고 없었기에 할 수 없이 특실로 예매를 하였다. (내 돈 ㅠㅠ)
아들의 역할만 대신하다가 새로이 가지게 된 이 즐거운 취미생활에 잔뜩 기대를 가지고
단 3번의 비행을 하기위해 먼 대구로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결과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고 기대도 없다. 난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비행은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워낙 집중하는 타입이다 보니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들만큼 수많은 시험을 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또 설명하긴 곤란하지만 남다른 특성이 나에겐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목표에 접근하는 편이다.
올해만 해도 9번의 시합에 참가해 크고 작은 상을 모두 받았고 이 때문에 아이는 학교에 알려진 인물이 되어 있다.
카페를 통해 사람을 알게 되고 그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조차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부푼 기대와 함께 나이 오십이 넘어 골프보다 더 재미있는 이 비행을 위해 골프장 가는 것 보다 백배 더 설레임을 안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상자가 워낙 커서 염려했지만 객실의 선반에 무난히 올라갔고
밤새 상자와 비행기를 만드느라 3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지만 내려오는 내내 길게 한잠 잠들지도 않았다.
열차가 동대구역에 도착을 하고 난 역을 나섰다.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내려와 이 즐거움에 참여하려 인천에서 대구로 내려온 것이다.
혼자 고무줄 감는것도 힘이 들어서 우진과학에서 와인딩스탠더를 구입했는데 성화산업에 맞지 않아서
주객이 전도되어 스탠더에 맞추려고 비행기에 구멍을 죄다 뚫었고 그것을 베낭옆에 꽂았다.
(사진보충)
그리고 고무줄 끼우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인천대회에서 본것을 본따서
알미늄 작대기를 구입해서 직접 구멍내고 갈고 해서 고무줄 끼우는 작대기도 만들었다.
대회장소로 가기 위해 지도를 들고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하지만 급히 오느라 지갑을 채우지 못해 다시 역으로 돌아가 현금을 인출해야만 했는데
큰 상자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택시기사는 70쯤 되어 보이는 영감님이셨는데 길을 잘 모르셔서 내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길을 찾아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길도 잘 모르는 영감님이 카드단말기도 없이 개인택시를 하셔서 불만이었는데
장소에 다가가니 이 길이라면 다른 기사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가 아래쪽으로 부터의 길은 강둑길이라 일반 도로가 아니어서 택시가 오려고 하지 않을것 같았고
온다고 해도 나갈때 사람이 전혀 없으니 웃돈을 요구할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좁은 장소에서 생각보다 적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난 체전이라하여 아주 많은 사람이 올 줄 알았었다.
게다가 장소는 너무 좁아서 강물에 비행기 빠질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더구나 바람도 약하게 그쪽으로 불고 있었고..
옆에는 인천대회에서 만난 빅파파님이 와 있었고 카페의 아는 분을 만나 옆에 자리를 두게 되니 마음이 한결 든든하였다.
보이는 사람도 대회를 3년째 다니다보니 이제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듯도 하고
특히 올해엔 내가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기도 하고 또 국제 규격을 하다 보니 더 많은 얼굴을 알게 되었다.
상자를 열고 열어 놓으니 먼 거리를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지런한게 뿌듯하고 맘에 흡족하여 기분이 참 좋았다.
기체검사를 하는데 항상 뵈 오던 우진과장님이 계셨고 또 다른 분들도 계셨는데 우진 과장님이 무게를 재려고 하자
다른 분이 이전과 달리 세팅을 한 후에 무게추를 고정시킨 다음에 검사를 받으라고 하였다.
항상 해오던 것에 맞춰 준비를 하고 왔는데 다르게 요구를 하면 시간이 애초보다 곱절은 더 걸리게 마련이다.
세팅을 하다가 프로펠러를 깨먹은 기억이 두 번이나 있었기에
맨땅에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 잡초 우거진 곳에 들어가 던지기를 반복하다가 보니
손에 상처도 생기고 가슴까지 오는 잡초사이를 다니다 보니 힘도 들었거니와
무엇보다 냄새가 심하게 옷에 베어 괴로웠다. (손에 아직 흉터가 남음)
하여 진행에게 돌아가 세팅은 나중에 하겠다고 하고
이전에 그래왔듯이 무게추에 도장을 찍고 던지기 전에 이를 확인하면 안되겠냐고 하여 우선 기체 검사를 마치게 되었다. 기체 검사를 2대만 한다는 것을 그때야 처음 알았다.
(뭔가 나서고 싶은 것은 이해 하겠는데 왜 여태 안하던 짓을 내 앞에서 하겟다는 건지....
사실 규정에도 던지기 전에 기체 검사를 하게되어 있는데 말이지...
만약 미리 기체 검사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달린 추를 다른걸로 교체하거나 없애버리면 어쩔려구...
내것은 추를 밀어서 중심이동이 가능하게 고안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추가 밖에 나와있기에 비행 도중에도 추가 보이지만....)
(사진보충)
기체 세팅을 하다가 보니 항상 만나는 친절한 L씨는 글라이더도 준비를 하는 게 아닌가.
분명 한 종목만 등록이 가능하였는데 두 종목을 준비하기에 물어보았더니 지금이라도 등록하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국제 규격대회는 그리 까다롭지 않으니 괜찮다고 하였다.
시합준비를 하는 우진 과장님도 그리하라고 하여 진행 자리로 가서 내 이름을 적고 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진행요원이 안경너머로 인상을 구기면서 결코 안 된다고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젊어 보이는 이 사람이 이 시합 책임자라고 하였다)
설명을 하고 친절한L씨도 등록을 했다고 이야기 하니
고등학생은 한 종목만 가능하지만 일반은 둘 다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의 추가 등록은 L씨와 달리 사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전 등록은 하고 싶어도 애초에 두 가지 등록은 불가능 했었다고 말하자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그리고 사전 등록이 되었다는 친절한 L씨도 사실 사전 등록은 되어 있지 않았었다.
다만 그는 고등학생으로 등록을 했을 뿐 이었다 그리고 일반으로 바꾸어서 볼펜으로 적어서 추가 등록을 한 것이었다.
솔직히 비행기 3번 던지려고 인천에서 여기 까지 왓지만 더 참가 하면 더 즐거울것같아.
나도 글라이더를 하고 싶었지만 기체 검사가 끝났다는 이유를 들어서 추가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뭔 이유가 자꾸만 변하는지 모르겠다.
기체검사야 지금이라도 하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자꾸 우기면 친절한 L씨가 곤란해 질까봐 더 이상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나 때문에 그도 못 던지게 될까봐..
고무동력기를 던지는 나의 작전은 이랬다.
우선은 처음으로 늘 날리던 녀석을 동일한 방식으로 날리되 인천과 지난번과 달리 고무줄을 더 많이 감는 방법으로 진행을 하고
두 번째는 다른 고무줄로 다른 방식으로 날리고
세 번째는 이 중 잘된 것으로 날리되 오르는 상태를 봐서 프롭을 교체해서 더 효율적으로 날릴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다.
시합전에 준비하면서 하나 8000원 짜리 고무줄을 여러 번 끊어가면서 시험하였기 때문에 훨씬 더 감을 수 있었다.
사실은 춘천 대회때 처음에 뒤집히는 바람에 두번째 조금만 감고 날렸고
인천대회때에도 어느 정도 감아야 할 지 몰라서 연습하던 것보다 조금 더 감아서 던진것인데
시험을 하고 보니 그동안 워낙 적게 감았던 것이었다.
친절한 L씨가 먼저 날렸는데 48초인가 49초를 비행하고 내려왔다.
이어서 내가 날렸는데 처음 날린 비행기는 1분을 넘게 날았으나 내가 시험하던 것에 못 미쳐 조금 실망을 하였다.
옆에서 측정하는 사람이 L씨보다 내가 오래 날았다고 초보가 왠일이냐는듯 말했는데
이미 인천대회에서도 그랫던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지 게다가 국제규격만 올해 처음이지1등도 여러번 해본 경험도 있거니와
모형비행기가 뭐 그리 엄청난것이라고 초보 운운 할게 뭐 있겠는가...
기체는 세팅이 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내려오다가 급격히 하강하는 것이
프롭의 저항 때문에 양력이 급격하게 줄어서 그렇다고 옆에서 설명을 해주었다
만약 접이식 프롭이었다면 20초는 더 충분히 날았을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프롭의 저항때문에 발생한 피칭이 아닌것 같음..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 처럼 보이는데..
프롭의 저항에서 저런 모양으로 떨어진것을 본 기억도 없고,, 머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쉽지만 여전히 마음껏 비행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고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간의 시험을 바탕으로 회심의 두 번째 비행을 준비하는데 도중에 고무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고무줄이 기체 내에서 엉겨 도무지 빠지질 않았고 급해진 나는 동체 옆 부분을 톱으로 썰기 시작하였다.
(사진보충)
하지만 옆을 트고 나서도 워낙 단단하게 엉긴 고무줄은 빠지지 않았고
플라이어로 집으려고 했지만 활성기름 때문에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친절한 L씨가 다가와서 옷걸이로 하자고 했지만
차를 몰고 다닐 때에는 옷걸이가 있었지만 대중교통으로 왔기에 그것이 준비되어 있질 않았다.
한참을 고생하고 있는데 "2차 비행 10분 남았습니다." 하는 멘트가 들렸다.
고무줄은 거의 다 빠졌고 조금만 더 조각을 내면 고무줄은 다 뺄 것 같았다.
그러면 새 고무줄을 끼우기만 하면 되는데 시간이 빠듯해 보였다.
안되면 아까 날린 거 그대로 다시 날리기로 생각하고 고무줄을 마저 빼내고 있는데
다시 "10분 남았습니다." 하는 멘트가 또 들렸다.
지금으로 부터 10분이면 시간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되었기에 고무줄을 다 빼내고
속에 찌꺼기를 입으로 후후 불어내고 있는데 진행요원이 본부석에 다녀와서는 나에게 끝났다고 통보하였다.
나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곧 고무줄만 끼우면 된다고 말하였으나
갑자기 딴 사람이 된 듯 안 된다고 단호하게 계속 말하였다. 처음에 난 한번 본 얼굴이라 장난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현상인가...
여태까지 수많은 대회를 해봤지만 대학 입시 시험처럼 시간 종료되었다고 손 딱 드는 이런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인천 대회 때도 고무줄이 끊어져 애 먹고 있는데 옆에서 계속 기다려주곤 했었지 이렇게 단호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단번에 개인감정이 포함된 것이 딱 느껴지는데 정말 당황스러웠었다.
글라이더 추가 하려고 할 때 인상 쓰며 거부하던 안경 낀 그 양반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져 왔다.
진행요원은 경험이라 생각하라고 하는데 경험이라니.....
이건 정말 어린애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로 넘기려 하는 것에 분노가 일었다.
경험도 경험 나름이지 비행하는 기법이나 지식에 대한 요령이나 경험이라면 몰라도
시합에 경험이라 생각하라 - 무슨 경험을 말하는가?
모형비행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것과 경기하는것이 무슨 연관이 있다고 경험이라고 하는가
비행기 대회라면 3년째 하고 있고 50 넘도록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대회에 다녀봤지만
진행하는데 무슨 경험이라 생각하라는 것인가.
내가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런 말로 넘기려 하다니...
아까 글라이더를 추가 하겠다고 할 때 자신이 안된다고 했으면 아~~ 네.. 하고 굽신거려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것에 대해 뭔가 준엄한 심판을 보여주겠다는 개인의 오기가 느껴졌다.
어떡하던지 나에게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감도 느껴져서 더더욱 화가 치밀었다.
느닷없이 내 앞에서 엄격한 규율을 보여주고 싶어진 것일까?
다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더더욱 분명해지고 이런 쓰레기 같은 경우가 있나 싶었다.
그들의 사사로운 느껴져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기회다 싶어서 마치 당신은 첫 경험이니 내가 원하는 다른사람에게 상을 주고 싶으니 양보라하고 강요하는것 같았다.
경험이라 생각하라니..
내가 대회에 오늘 처음 출전한 사람도 아니고 올해만 대구대회가 8번째 대회인데
더구나 대회마다 상도 받았는데 무슨 경험을 하라는 건가
지난 3년간 수십번의 대회에서 이렇게 땡처리를 경험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처음부터 그리하였다면 애초에 그렇게 맞춰서 미리 던지기를 하였을 것이다.
왜 갑자기 이날 이자리에서 나에게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주장해야만 한단 말인가.
아는 안면에는 관대하고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고 초보는 경기에서 잘 던지면 안된다는 규정이라도 있단말인가?
그렇게 서로 언성이 높아지면서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2시 2분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끝났다고 통보한 시각조차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런 시합에서 12시 땡... 하고 따지는 것조차 평소답지 않은 것이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않은가.
3번 던져 합산하는 시합에서 2번을 던져야 하기에 성적이 나쁘게 나올 것이란 것 때문에 내가 흥분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성적은 부수적인 문제 일 뿐이다.
솔직히 상품이라 해봐야 주변 아이가 있으면 그냥 줘버리게 되는 그런 수준 아닌가.
지난 국제 규격에 처음 출전한 춘천시합 때 난 아무 상도 못 받았고 기체가 땅에 꽂혀 다 망가지고 말았지만
등수에 상관없이 나는 충분히 행복했었고 즐거웠었다.
인천 시합 때에서 성적에 상관없이 고무줄이 터지고 없어서 곤란해 하시는 분에게 내 고무줄을 드리기 까지 했었던 나였고
정상적인 참가로 성적에 상관없이 친절한 L씨와 서로 지면 맥주 사라고 하면서
기분 좋게 맥주한잔 나눌 생각까지 나를 기대에 부풀게 하고 있었는데
왠지 나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별스런 개인의 고집이 느껴져서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가 치밀었다.
만약 애초에 기존의 모든 시합의 운영에서 시간을 엄격하게 정하여 땡으로 해왔다면 다르게 준비를 했을 것이다.
많은 항의 를 받았을테지..
그러나 내가 첫 경험자도 아니고 비행기 대회만 3년을 다니면서 때마다 상도 타왔고
더구나 2번의 국제 규격 시합에서도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여유가 주어졌으면 주어졌지
동시에 필기시험 치르듯 이렇게 땡 처리로 자격을 박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럴만한 일이 아니질 않는가. 대학필기고사도 아니고...
듣기론 국제 시합에서도 좋은 기후가 될 때까지 때론 하루 넘게도 기다린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웃기는 것은 또 다른 이유로 다른 참가자의 수가 둘 뿐이란 것을 이유로 들었다.
(둘 뿐이란걸 그때야 처음 알았다. 명단에 7명인가 8명이 있어서 그런줄 알았지...)
그때야 감이 오기 시작하였다. 그랬었니? 너희 들이 친해서?
둘밖에 없어서 땡처리를 했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어리석게도 진행요원들의 다른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결과만 초래했을 뿐이었다.
이 시합은 시간되면 손을 올려야하는 대학 입시 시험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필기시험도 아니고 한명씩 나와서 날리는 기록시합인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땡처리를 해서 자격을 박탈한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감정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내가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고 물러난 것은
친절한 L씨가 이로 인해 곤란해 질까봐 참가자 수가 둘 뿐이라고 할 때 그냥 물러난 것이었지
결코 그 말도 안 되는, 아니 오히려 사적감정을 드러낸 이유에 설득해서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둘 뿐이라면 나 아니면 그라는 말인데 묘하게 내가 L씨를 공격하는 양상이 전개 될까봐 참은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기 시작하였다.
새벽에 아침도 굶고 내려와 이런 것에 이런 소리나 들어야 하고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수치스럽고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싶었다.
너무나 화가 치밀어 비행 자체를 버릴 생각 까지 하였다.
매일 수십 번씩 비행하고 기록을 남기고 시험을 하고 동영상을 분석하고 했던 일들이 다 허탈하기만 하였다.
이런 쓰레기 같은 시합은 그만하고 짐을 싸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차시간은 6시30분경인데 그때까지 뭘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내가 새로운 취미 가지려다가 이런 꼴을 당하는 자체가 너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허탈해서 앉았는데 친절한 L씨가 라면과 귤과 얼음물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만 날려야 하냐고 말했다.
그래서 L씨의 시합에 들러리나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새로 만든 기체로 한 번도 날리지 않은 예비 기체로 날렸다.
기체를 잃어버릴까봐 다 감지도 않았고 더 이상 즐겁지도 않았다.
고무줄을 적게 감은 비행기는 고무줄이 다 풀리기도 전에 땅에 내려앉았다.
그리곤 진행위쪽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말하는것을 들었다.
"L씨 드디어 일등 한거야? 축하해,.,,!!!"
이 말은 하지말았어야 했다. 아니면 내가 듣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고 행복했었다.
혼자라면 썰렁 할 수도 있는 이 활동이 모여서 하는 시합이란것이 있기에 그곳을 향해서 충분히 즐거웠었다.
매일 점심에 나가 던지고 고무줄만 해도 수십개를 끊어먹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오늘 때문에... 이 함께하는 즐거움 때문에...
하지만 수년간 준비해온 선수가 느닷없는 이유로 올림픽경기 도중에 그만둬야 하는 상실감을 가져야만 했다.
상상할수나 있겠는가... 이 상실감 뒤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기분을..
떨어진 기체를 줍는데 언덕위에서 누군가 불렀다.
돌아보니 대구에 사는 집사님이었다.
서산에 살 때 공군비행장에서 시합할 때 그 비행장에 근무하시던 분이 대구로 이사 와서 내 소식을 듣고는 찾아온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데려온 늦둥이 아이와 함께 내가 날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마 하구선 원래 계획 했던 2차 비행 방식대로 날렸다.
또 끊어질까 혹은 강물에 빠질까 행여나 싶어서 고무줄은 조금 덜 감기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신경을 조금 많이 기울였다.
어쩌면 저 교만한 사람들에게 내 솜씨를 과시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는 내 예상대로 날아올랐다. 높이 올라갔고 멀리 꾸준히 날아 갔다.
너무 멀리 날아가 찾으러 뛰어가는데 쏘어링 시합하는 곳을 지나서 가는데
시합하시는 분들이 감탄사를 내보내며 박수까지 쳐 주었다.
꽤 오래 날았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는 강위에 자란 나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졌고
나는 L씨에게 긴 낚싯대를 빌려서 배를 타고 겨우 비행기를 구출 할 수가 있었다.
맘과 몸이 지쳐 있는데 낙시꾼에게 피해가 될까봐 하나뿐인 노를 저으며 멀리 돌아가느라 힘이 들었다.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종이를 붙힌 이 정이 담뿍 담긴 비행기를 회수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짐을 챙기는데 옆에 누군가가 내비행기를보면서 종이 결이 잘못되었다면서 지적을 하였다.
그러면서 옛날에 있었던 모형항공기 이야길 하면서 자신은 아주 노련한 사람이란걸 내게 알리고자 하였다.
"아 네.. 그렇군요..."
항상 나는 같은 대답을 한다.
약간 이야기를 옆으로 흘리자면 나는 지능지수가 내 키보다도 높은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분야에서 누구보다도 빠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내가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이 한가지가 있다.
현장에 아주머니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한가지를 알고 있을 것이고 난 그것을 존중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그 한가지가 개선이나 연구성과에 큰 씨앗이 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작은 의견도 존중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지 잘 알기 때문에 항상 그들은 존중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항상 느끼지만 그러나 그 앞에서 존중을 표하기는 하지만
모형항공기를 하시는 분들중 다수가 이상하리 만치 교만스럽다고 느끼는 편이다.
(물론 아닌 사람이 있다. 나는 늘 까다로워보이는 그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모형항공기 솔직히 이건 대단한 것이 아니다. 츨거움을 주는 보조일 뿐..
물론 고등학생들에겐 큰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래서 과외를 하려면 자신이 실력있는 사람이란걸 알려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람 저사람 만나보면서 웃긴것이
비행기는 한대인데 자기가 그걸 만들었다는 사람은 3명이었다.
때로는 그들은 기초물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이나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말하고
그것에 대해 과하게 자만하는것을 지켜보고 있는 편이다.
그 교만이 나에게 경험이라 생각하라는 전혀 논리적이지 못한 변명을 하게 만든다던가
처음 출전해서 욕심이 많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 놓기도 한다.
그들의 가르침에 잘못을 알면서도 존중을 표했지만 내 방식대로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은것이 인천대회이다.
100개를 아는 사람이 내가 가진 10개의 지식을 모두 알 수는 없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앞에서 항상 자신은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란걸 과시하려 해 왓었다.
나를 아주 귀여운 생초보 취급을 하면서 (지식적으로 초보이긴 하지만)
젊은 F1 레이서들이 나보다 운전 경력이 오래되지는 않을것이다.
그들은 그에 맞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세계최고의 드라이버가 된 것이겠지...
그들의 경험이 그렇게 절대적이라면 그들이 데려온 아이들이 왜 죄다 상을 타야하고
대회마다 크고 작은 상을 타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들은 아무상도 못 받았어야 하는것 아닐까..
모형항공기... 이건 목숨걸고 죽기 살기로 치열하게 경쟁해서 살아 남아야 하는 일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건전하게 집중적인 취미를 가질 수 있는 도구 일 뿐...
50이 넘은 사람에게 이렇게 쓰레기 같은 기분을 던져주고 하찮게 취급해야할 성질의 것이 아닌것이다.
나무에 걸린 비행기를 건져서 돌아오니 그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끝내고 내 자리에 은메달과 상장을 놓아두고 떠났고 없었다.
친구집사님은 나에게 위로를 해주며 그들이 점심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먹었다고 거짓으로 말하며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까지 대접하였다.
(그들이 점심을 먹었다는 것은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집사님의 늦둥이 아들 녀석이 눈치 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상품으로 받은 비행기는 집사님의 아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대구 스타디움에서 400미터 2조 결선도 보고 사진도 찍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안에서 어렵게 맥주 두개를 사다 마시면서 나는 전혀 행복하지도 않았고 즐겁지도 않았다
앞으로 어떡할 것인가.. 생각에 우울하기만 하였다. 정말이지 이런 대접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8시가 넘어 광명에 도착하니 내 차에는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차들이 모두 주차되어 그래도 되는 줄 알았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허탈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말 비싼 비행을 하고 온 셈이다. 한번 날리는데 비행기 보다 비싼 값을 치렀다.
(내 비행기는 55000원 짜리다)
돌아오는 길도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잘못 지나쳐 서산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와서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한번 웃어주지도 못하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이에게는 실망을 주지 않으려 상장과 은메달을 보여주고선 나중에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나중에 아내의 화장대위에 다시 올라와 있는것을 보았다)
새벽 월요회의에 참석차 일찍 일어나 본사에 다녀온 이후로도 계속 기분은 우울 하였다.
수많은 자료들과 동영상을 대충 보았다.
그저 허탈하고 허탈했다. 이런 수준이었나 싶었고 이게 무슨 창핀가 싶기도 하였다.
무슨 따돌림 당한 초딩의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 나이에 그래도 이런 대접을 받은 위치는 아닌데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저녁에 잘 못 먹는 술을 한잔 걸쳤지만 어제 역시도 잠이 깊이 들지는 못했다.
그리고 방금 점심시간에 설교집을 읽다가
이 쓰레기 같은 사건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렇게 긴 일기를 쓰고 마무리하기로 생각하였다.
이제 아이를 위해서 다음 시합을 준비해야지...
2012.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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