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진찰실에 들어서자, 루디거는 곧장 지난 치료 시간에 앉았던 녹
색 가죽을 씌운 안락 의자로 갔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팔을 아주 이상하게 움직였습니다.
마치 체육관에서 섀도 복싱(상대를 염두에 두고 혼자서 하는 권투 연습)을 하는 것 같은 동작이었습니다.
"그 몸짓으로 우리한테 뭔가를 알리고 싶은 거냐, 루돌프?"
여느 때처럼 책과 서류들로 뒤덮인 커다란 책상 뒤의 회전 의자에 앉아서, 루디거의 희한한 행동을 바라보던 슈발텐페가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뭘······알려요?"
루디거가 웅얼거렸습니다.
"네가 거기서 하는 짓이 뭔가 몹시 비밀스러워 보인다."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비밀스러워요?"
루디거는 되물었습니다.
"저는 그냥 긴장을 푸는 거예요."
"아, 그래·····."
슈발텐페가 선생님은 턱을 긁적였습니다.
아마도 자기가 루디거의 '긴장 풀기' 연습을 다르게 해석한 것이 멋쩍었나 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그 고요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네가 벌써 시작했다니 놀랍구나! 그럼 우리 즉시 그 훈련을 계속할 수 있겠다. 네가 동의 한다면 말이지."
"물론 저는 동의하지요."
루디거가 투덜거렸습니다.
"제가 그 프로그램에 아주 몸이 달아 있다는 거 모르시겠어요?"
"몸이 달아있어?"
슈발텐페가 선생님은 잠깐 기침을 했습니다.
"그래, 오늘은 네가 지난번보다는 좀 덜 창백해 보인다."
안톤은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루디거가 저렇게 사랑 때문에 애가 달아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지!'
하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루디거와 또다시 옥신각신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말로 참기로 했습니다.
그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슈발텐페가 선생님의 책상 옆에 있는 낡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떻게 훈련을 시작하는지를 지켜 보았습니다.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라, 루돌프. 아주 단단히······ 긴장을 해,
그렇지······. 그리고 이제 손을 펴고 긴장을 풀고 ······ 너는 아주 축 처진다······. "
루디거가 오늘은 훨씬 더 집중을 잘 하고, 또 그렇게 불안해 하거나 뻣뻣하게 굴지도 않는구나 하고 안톤은 생각했습니다.
꼭 한 번, 루디거가 자기 팔이 마치 '납으로 만든 관 두 개처럼' 무겁다고 해서 잠시 중단됐을 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불평없이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는 팔의 긴장을 풀고 그리고 등, 어깨의 긴장을 풀었습니다.
그 연습을 하는 동안 기묘하게 가라앉은 침묵은 안톤에게까지 전염됐습니다.
안톤은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루디거가 얼굴 근육까지 긴장을 풀고 난 다음에야 그 기묘한 기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안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무척 애를 써야 했습니다.
루디거가 이마에 주름을 짓고 누워 있는 꼴이 꼭 처량한 닥스훈트 강아지
처럼 너무나 우스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루디거는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안톤은 루디거의 눈꺼풀이 이번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놀라워하면서 지켜 보았습니다.
그는 슈발텐페가 선생님에게 감탄 어린 눈길을 보냈습니다.
이 심리 학자가 루디거한테 조용히 물 흐르듯 내리는 지시는 마치 최면술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는 천천히, 다섯부터 거꾸로 센다!"
슈발텐페가 선생님이 계속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깨끗하게 깨어 있고 정신이 맑다!' 그리고는 눈을 떠라!"
희미한 목소리로 루디거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넷······ 셋······ 하나······.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깨끗하게 깨어있고 정신이 맑다······. "
그는 눈을 뜨고는 이빨 사이로 나지막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저, 진짜로 깨끗하게 깨어 있고 정신이 맑은데요."
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쨍쨍거리는 쇳소리로 웃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꼭 혈액 순환처럼 좋네요, 하하!"
안톤은 눈치를 살폈지만 슈발텐페가 선생님은 기분 좋은 듯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게 너한테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니 기쁘구나!"
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내 또 다른 환자인 이그노 폰 랜트 씨는 첫번째 치료 후에 늘 두통이 있다고 불평을 했었거든."
"두통?"
루디거가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이마를 톡톡 쳤습니다.
"제 사전에는 없는 말이에요."
그리고는 우쭐대며 말했습니다.
"사람은 항상 그 사람 머리가 어떠냐가 중요하죠."
"아니면 그 사람 머리 앞의 널빤지가 어떠냐가 중요하든가(우둔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음)!"
안톤이 덧붙였습니다.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안톤은, 자기가 루디거를 너무 몰아 붙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루디거는 안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 소리를 전혀 못 들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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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th 꼬마흡혈귀의 비밀프로그램 [06] - 섀도 복싱 -
안톤♥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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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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