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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훌리건 천국 원문보기 글쓴이: 드가모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근자에 많이 시끄럽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조치를 취함으로서 긴장을 더욱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차 흉흉한 기운이 가득해지고 있다.
사태의 원인과 향후 전망에 궁금해할 훌리들을 위해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우선 언론에 피상적인 수준으로 나와 있는 식의 설명은 가급적 피하려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관,지하자원 때문이라던지, 우크라이나는 동-서갈등이 심하다던지 이런 간단한 사실들은 메인 언론사의 메인뉴스만 봐도 알 수 있기에 피상적으로 이런 부분을 설명하진 않겠으며 상식적으로 알만한 선은 휘리릭 요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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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
(야권과 시민들이 총결집해서 집권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사진출처:로이터 통신)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그로인해 촉발된 2010년대 유럽의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제의 긴장상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이는 유럽 대다수의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경제적 체력이 있는 유럽국가 들은 이것을 어떻게든 막아 내보고 있지만, 애시당초 경제적 펀더멘털이 두텁지 못한 유럽국가들 특히 남유럽과 동유럽의 경우는 직격탄을 맞게 되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경제는 이 여파에 대한 직격탄을 맞았고 국고는 수직으로 추락하고, 국민들의 생활은 궁핍하게 되었다.
국내 대외경제 분석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와 연구자 풀을 자랑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2013년 우크라이나 경제 분석자료를 보면 우크라이나 경제는 특히 09년에 경제성장률 -14%라는 직격탄을 맞았으며, 그뒤로 2010,11년에 4,5% 정도의 회복세를 보이다 다시 2012년 0.2%라는 참담한 수준의 경제성적표를 보였다.
우크라이나 정치지도세력들은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위해 2013년 초 450억 달러규모의 재정부양정책을 집행하려했으나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뿌리깊은 여야 간의 갈등과 반목은 경제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2014년 현재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고는 약 180억달러 남짓이지만 반대로 대외 부채규모는 약 1400억 달러 라는 것이다. 2012년까지만 해도 300억달러였던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고는 2년도 안된 2014년 1/4분기인 지금 절반수준으로 토막났다.
이런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우크라이나 정치지도세력은 별수 없이 외부에서 재정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양쪽에서 deal이 들어왔다. EU는 200억유로를 약속했으며, 러시아는 150억달러 규모의 자금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2013년 시점)
그러나 여기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EU를 위시한 서방의 경우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에 다음과 같은 조건을 걸었다.(중요하고 큰 것만 설명함.) 첫째 재정건전성을 강화할 것, 둘째 이를 위해 공공부문과 민간부분의 경제개혁을 수행할 것 마지막 앞의 두 가지를 위해 세금을 인상하고 공적연금 등을 축소 할 것 등이 그것이었다.
사실 EU와 IMF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구조조정요구는 합당한 것이었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08년과 10년에 100억달러가 넘는 대규모 자금지원을 받고도 한 푼도 상환하지 못했을 뿐 더러, 우크라이나의 비효율적인 경제구조를 수정하지 못한다면 대출해준 자신들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며, 유럽전체로 불이번지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유럽전체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못하는 허접인 그리스 경제에 불이 나자 전 유럽과 세계증시가 시끌벅적했던 2012년을 떠올려보자. 하다못해 그리스에 비해서 우크라이나는 훨씬 많은 지하자원과 4배나 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 (물론 총gdp는 현재 그리스가 더 높음)
유럽과 IMF는 자신들의 돈을 상환받기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압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러시아의 경우 아무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150억달러 지급을 약속했다.
(2005년의 잠가라 가스사건은 아직도 종종회고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보는 우리들이야 푸짜르의 위엄 이러면서 오오~ 하거나, 재밌다고 느낄지몰라도 당하는 당사자에겐 충격과 공포감을 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진출처-구글이미지 검색)
사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야 상식적으로 이 상황에서 러시아의 손을 잡는게 현명해보이겠지만, 이미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대채권국 1위는 러시아이기에 이번에 다시 150억달러를 러시아로부터 대출 받게 된다면 우크라이나 경제를 러시아가 좌지우지 하는게 가능할 정도로 종속 되는 것이며, 다들 알다시피 푸틴과 러시아는 그렇게 선량하고 자비로운 자원봉사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자금을 택함으로서 친서방 성향인 야권과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유권자들을 자극했다. 사실 야누코비치 개인의 입장에서야 자신의 집권여당과 집권정부의 표와 지지율을 깎아먹게 될 공적연금 축소나, 대량해고를 부를 것이 분명한 경제구조조정, 세금인상등을 하고싶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좋아할 이유가 하등 존재하지 않는 우크라이나 서방지역의 사람들이나 야권의 입장에서 자칫잘못하면 러시아에 더욱 종속될 이번 경제적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현재 우크라이나 경제는 무역,금융,자원,소비 등 거의 전부문에서 대러종속이 심각한 상태이다. 우크라이나 물건을 제일많이 사는나라도 러시아, 우크라이나에게 가장 많은 자원을 공급하는 나라도 러시아,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것도 러시아인 마당에 다시 대규모 경제지원을 받게된다면 꼼짝없이 러시아에게 종속될 것이 무척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최근 푸틴이 야심차게 추진 하고 있는 유라시아 연합체와 구소련권 관세동맹은 과거 소련연방이었다가 독립한 지역들을 타겟으로 하는 것인바, 우크라이나가 이것의 타겟이 되어 사실상 러시아의 위성국이 다시 되는 악몽이 충분히 떠올랐을 것이다.
(왜 우크라이나 인들 특히 서부인들은 왜 러시아를 믿지 못하는가? 이는 2번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사진출처:ap통신)
그러나 야누코비치는 이런 정서를 무시하였고, EU가입과 EU와의 경제협력협정을 포기하여 벌떼같은 반발을 사게된다. 야누코 비치는 처음엔 야권과 대화하는 제스춰를 취하고 EU와 다시 대화하는 척을 했지만, 반시위법을 제정하고 2013년 말부터 경찰을 동원하여 어마어마한 탄압을 가했고, 탄압은 다시 시위대의 규모를 불려서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을 야기했고 결국 경찰측이 발포->시위대의 무장대응의 수순을 거쳐 우크라이나 전역은 지금 우리가 언론에서 보듯 동서로 분열되어 막장이 되고 말았다.
(이글의 제일 서두에 썼듯 언론사 국제섹션 메인만 뒤져도 나오는 야누코비치의 러시아 망명, 우크라이나 임시정부의 성립, 크림자치공화국의 중앙정부에 대한 반발 등은 개별팩트 임으로 다루지 않겠음. 이글의 목적은 큰틀에서 지금 왜 이런일이 터지고 있나를 설명하려는 것임.)
2.역사적 연원과 갈등의 축적-중세,근대,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1>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분열 과정-중세,근대
(러시아의 명소인 성바실리 성당 형색색 색깔들이 예쁘다 출처:http://blog.daum.net/cosmicchung/7185238)
한국판 단군 신화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의 루시신화를 단순히 3줄요약 하면 이렇다.
-옛날옛날에 북유럽 계통의 루시라는 양반들이 왔는데 토착민이었던 슬라브 사람들과 친하게지내다가 이민족들을 때려주고 친하게 지내다가
-서로 하나로 합쳐서 루시족들의 나라를 만들었고,
-그들이 그들의 영토를 지키기위해 새운성채를 크레믈린 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지금 러시아의 국호명과 크렘린궁으로 대변되는 러시아 권력자들의 상징은 이런 신화적 기반을 두고있다.
루시들의 나라는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지역등에서 촌락국가,부족국가 단계에서 점점 고도화된 도시공국들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먼저 흥했던 최고의 공국은 단연 키예프 공국이었다.
키예프 공국은 우크라이나의 풍부한 곡창지대와 수운의 이점을 살려서 식량과 물을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었으며, 9세기경 러시아일대를 방문한 유럽의 선교사 키릴 등을 통해 종교와 문자체계를 확립했다.(이로 인해 현재 러시아 알파벳을 일컫는 명칭인 키릴문자는 이 선교사의 이름에서 기원하며 러어와 우크라이나어는 뿌리가 같다.)
키예프 공국은 날로번성하여 경제력과 문화력을 기반으로 도시민들 개개인이 참여하는 형태로 당시시대 치고는 상당한 정치수준을 자랑하는 민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11-13세기경 연달아서 발생한 아시아 유목민족의 침입 특히 몽골의 침략은 키예프를 가루로 만들었고, 격동의 혼란기 속에서 오스만 투르크나 기타 투르크 계통의 유목세력에게 지배를 당하기도하고, 폴란드 리즈시절 의 지배를 받아보기도 하고(우크라이나 서부), 막판에는 다시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과 러시아가 땅을 분할 하기도 하는 등,
이런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소위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러시아’(현 러시아)개념에서 우크라이나는 분화되고, 이질화되었으며 문화적으로도 다른길을 걸어왔다.
(모스크바 공국의 대빵 드미트리 돈스코이 몽골에게 의미있는 타격을 준 첫 러시아의 왕이다.
사진출처:http://blog.naver.com/rlagudtjq94/10130536699)
반면에 모스크바 공국으로 대변되는 현 러시아는 드미트리 돈스코이를 필두로 몽골에게 저항하며 타격을 주는 것에 성공하며 후임 대공과 왕 황제들이 차츰차츰 힘을 축적하여 우리가 아는 역사속의 러시아제국이 된다.
즉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뿌리는 같은 나라이나 수백년의 긴 세월을 거쳐서 역사 문화적으로 나라자체가 분화된 즉 같은 슬라브족이나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가 되는 과정을 거쳤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는 오스만과 크림반도 일대를 두고 여러차례 격전을 벌였다.)
특히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크림반도 및 동부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몽골을 몰아낸 후 힘을 축적하여 주변의 유목민족들을 제압하고, 오스만 투르크와 전쟁을 하던 (사람들은 보통 1850년대 크림전쟁과 그 이후의 러-오스만 전쟁을 굵직하게 기억하는데 사실 이미 17세기부터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그 주변 동우크라이나를 두고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벌였다.)
곳이며 결국 이것을 끝내 탈환 한 것도 러시아 이기에 인종적,문화적으로 러시아인들이 많고 국가적 정체성 마저도 러시아라는 인식이 박혀버린다.
반면에 서부 우크라이나 인들은 러시아가 갑빠를 완전히 대제국으로서 다 키우고 서부를 탈환한 것이 나중에 폴란드가 개판 나서 폴란드 분할 크리 시절 밥숟가락을 얻고 탈환해 온것 이기에 위에 열거한 수많은 침략과, 수 백년의 분리 시간으로 인한 이질감이 겹쳐서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으로 인식하지 러시아인으로 인식하는 정체성을 갖지 못하였다.
<2>소비에트 연방시절-분열의 대못을 박다.
(적백내전 시기 적군병사들. 당시 우크라이나는 백군을 도와 적군에 싸웠다.
사진출처:http://blog.naver.com/kw2465/60180233519)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서 우크라이나 사람들 입장에서 러시아는 또다른 압제자일뿐 그다지 환영할 만한 통치를 하지 못했다.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반의 러시아는 러시아제국이네 뭐네 하면서 여기저기서 전쟁을 했고 농노제나 유지하던 봉건적 사회였으며 당연하게도 새로 탈환한 지역은 땅따먹기 확장용도의 장소이지 현명한 통치를 통해 행복을 시전해줄 장소는 아니었다.
따라서 서 우크라이나 인들 입장에서 러시아는 그다지 환영할만한 지배자들이 아니었기에 러시아의 혼란기 시절 종종 반란을 도모했다. 적백내전시기(적백내전-러시아가 공산혁명하고 나서 초반에 혼란스러웠던 시절 혁명을 지지했던 적군과 지지하지 않던 백군이 나누어서 서로 러시아를 놓고싸운 전쟁 다들 알다시피 적군승.)
백군을 도와 뒤엎어볼 생각을 가졌지만 트로츠키, 투하체프스키 등이 이끄는 적군은 결국 초반의 열세를 뒤집고 백군을 모조리 진압하는데 성공했으며 서 우크라이나 역시 괜히 편만 잘못들었다가 더욱 압제를 당하기만 했다.
(사진출처-구글이미지:우크라이나 대기근은 30년대 내내 해당지역에 참혹한 재앙을 가져왔다.)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시절 그 유명한 우크라이나 대기근 사건으로 소련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심은 더욱 증폭된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라 함은 스탈린이 무리하게 공산주의식 집단농장 체계를 소련 전역에 구축하기 위해 난리를 치다가 비옥한 농토지대를 기반으로 자영농 위주였던 우크라이나에 까지 비효율적인 이 짓을 한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반대했던자들은 살해당했으며, 나라전체가 기아크리에 직면했던 대기근 사건을 말한다.
통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적게잡아도 이당시 200만에서 많게는 500만명이 굶어죽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우크라이나 인들(특히 서부)에게 소련에 대한 엄청난 증오심을 품게 했고, 초기 서부 우크라이나의 경우 2차 대전 초반 당시 독일의 나치군대를 해방자로 환영하기도 했다.
(물론 나치도 그다지 다를바 없는놈들이란걸 깨달은 뒤엔 저항으로 돌아섬.)
(2차대전 당시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수만명의 소련군들이 사망했다. 오늘날 러시아 해군에게 세바스토폴 항구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나치에게 피로써 저항하며 지키려 했던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2차 대전은 우크라이나에게 가혹한 것이어서 600만에서 700만의 사람들이 이 시기 나치나 소련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동질감이 깊고 그들의 한 부분이었던 동부지역사람들이면 모를까 이질감도 깊고 러시아와 소련의 막장행위로 분노감만 깊었던 서부 우크라이나 인들에게 소비에트 연방시절은 지옥과도 같았다.
<3>흐루쇼프의 크림할양-우크라이나를 사랑했던 러시아 지도자
(사진출처:구글이미지 검색 소련의 서기장 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의 사진이다.)
1954년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현재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의 중심지역인 크림반도와 동우크라이나 일대를 자신의 정치적고향이었던 우크라이나에 할양한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고향자체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지대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친숙했고, 자신의 부인도 우크라이나인이었으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지해준것도 우크라이나인 출신 공산당원들이었다. 그렇기에 2차대전 당시 정치장교로 참가해서 나치와 맞서 싸웠을 때 키예프 함락을 막기 위해 현장을 직접방문해서 현지지도를 하기도 하는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한번은 식량배급에서 우크라이나를 홀대하는 스탈린에게 불만을 품고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가 스탈린의 면전에 대고 문제해결을 요청했을 정도인데, 당시 스탈린의 광기를 생각하면 이런 행위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행위며, 그는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을 배려하고자 했다.
젊은시절의 니키타는 당 간부로서 우크라이나 지방을 돌아보며 강압적인 정책만으로는 우크라이나 인들의 반소,반러 감정을 누르기에 한계가 있고 유화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경험하게 된다. 이는 그가 직접 토착저항세력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우크라이나 반소 무장세력을 진압하며 느낀 점이며(이는 1950년대까지 계속된다.) 소련 공산당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선 서부의 풍부한 곡창지대와 동부의 공업지대를 바탕으로한 우크라이나 전역을 기반으로 광범위한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를 밀어준 우크라이나 계파의 지지는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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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술하였듯, 크림과 현 동부우크라이나 일대는 현 우크라이나에 할양된다. 당시엔 소련이 망할지 몰랐기에 내린 결정이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80년대말 90년대 초 미소냉전질서 가 해체되고, 시대에 뒤떨어졌던 소련의 몰락으로 소련 휘하의 수많은 공화국들이 독립하게 되었고 우크라이나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소련 몰락의 막장상태는 가히 어마어마한 수준이어서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는 챙길 수도 없었다.
<4>크림 자치공화국의 성립
<!--[if !supportEmptyParas]--> (사진출처:연합뉴스)
당연하게도 동부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에 거주하던 소련인 들은 날벼락을 맞았고,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분리독립요구를 막기 위해서 자치공화국의 성립을 허가해주었다. 그리고 동부 우크라이나와 크림일대는 우크라이나의 공업기반과 가스관이 상당히 지나다니는 곳이라 당시 소련으로부터 갓 독립한 우크라이나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포기 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물론 자치공화국의 성립은 미봉책에 불과 했으며 매년 그렇듯 선거시에 한국의 동서 갈등 조까 수준의 분열양상이 전개된다. 적어도 한국은 영호남 지역감정이 있다 한들 어느한쪽에서 독립하자는 소리는 드립으로라도 안나온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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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 언론과 인터넷글들은 대부분 동부랑,크림의 독립의지를 지나치게 크게보고있는데 동부인들도 이중적인 선택을 한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소련말기 소비에트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은 대단했으며, 레닌동상이 무너지고~~~ 스탈린동상이 무너지고~~~~ 크리였다. 즉 동부 우크라이나인들도 소련말기체제에 대한 환멸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감이 있었기에 소련의 몰락 그 자체에 대해 안타까워 하진 않았다. 적어도 당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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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이런 상당히 깊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러-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축적되어 온 것이다. 중세부터 소비에트 연방 전후까지 한꺼번에 요약하느라 세세하게 하나하나 전부 서술하지 못했고,(그럼 안 그래도 긴 내 HOF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해당 사항들이 전부 궁금한 훌리들은 러시아사 서적을 대출받아 볼 것. 러시아사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재밌는 서양사다. 그리고 서적의 내용과 내 글의 내용이 다를 경우 무조건 서적을 신뢰할것. 적어도 거의 절멸수준으로 치닫는 국내 역사학계에서 서양사 그것도 러시아사로 역사서적을 출판하는 분들의 역사내공과 전문성은 일개 백수에 불과한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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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러시아를 자극한 NATO의 동진 미국의 MD, 그리고 동유럽 문제-지정학 패권을 차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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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참혹한 러시아의 90년대
(사진출처:blog.jois.com/tony4328 쓰러진 소비에트의 상징 낫과 망치.)
90년대 러시아는 소련이 망한뒤로 어마어마한 혼란기를 맞이해야했다. 대외적으론 수많은 소련연방 시절의 휘하 공화국들이 독립해버렸으며 (벨로루시,우크라이나 등등),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수많은 동유럽국가들(헝가리,체코,폴란드 등등)은 이제 반소를 외치며 민주주의로 돌아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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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내적으로는 개혁개방과 민주주의가 낡은 공산체제를 부수고 국민들에게 행복을 줄거라는 환상을 초반엔 심어줬지만, 결국 그 환상은 부패한 관료들과 구 공산 상층부 출신의 경제 독점,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러시아 정치지도세력의 개판 크리로 인해 산산 조각나고 말았다.
러시아인들은 소련시절, 국민 개개인은 조금 생활이 궁핍하고 불편할지라도 세계를 양분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사유쓰~로 시작하는 장엄한 소련국가. 그리고 국가가 연주될때 나오는 찬란한 TV화면들, 그들 혁명의 창시자 레닌부터 톨스토이, 도스도예프스키, 우주조종사 유리 가가린, 인공위성의 창시자 세르게이 코묠로프, 나치의 깃발을 가멸차게 밟으며 조국을 구한 소련판 이순신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아름다운 러시아의 정교유적들과, 볼쇼이 발레단, 올림픽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드는 소련의 운동선수들, 그리고 크렘린..
최근 인터넷에서 한국의 지나친 애국주의, 국가주의 강요풍토에 대한 경멸틱한 어조로 ‘국뽕’이라는 말을 쓰는데 막말로 러시아보다도 국력이 미약한 한국수준의 나라도 국뽕거리가 넘쳐나는판에, 러시아인들에게 저런 어마어마한 마르지 않는 국뽕 소재는 그들 스스로 그들이 세계에서 자랑스러운 러시아인이라는 자신감을 부여했다. 그러나 소련의 멸망 이후 바닥까지 떨어진 러시아의 상태는 러시아인들의 자존심을 가혹하게 짓밟았다.
세계최고의 과학기술진중 하나로 인정받는 러시아의 과학기술자들은 외노자들이 팔려가듯 세계 곳곳에 팔려나갔으며 (석박사급만 수만명이상 유출된 것으로 파악됌), 한때 이로인해 한국의 대덕연구단지 연구인력중 러시아인이 박사의 3분의1을 차지한 희안한 풍경을 볼 수도 있었다.
엘리트 러시아 장교들은 월급이 나오지 않자 마피아에 무기를 팔거나 마피아에 들어가며 중동,남미,아프리카 분쟁지역의 용병으로 팔려나갔다. 찬란함을 뽐냈던 러시아의 문화유적들은 빈곤함을 이기지못한 서민들의 도굴로 피해를 입었고, 러시아가 자랑하는 러시아 미녀들은 해외에서 창녀취급을 받으며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해외로 팔려나갔다.
(이 시기 러시아를 방문해본 전직 조선일보 종군기자 님과 한때 이야기를 해본적이 있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국립 5성급 호텔에 휴지가 모자르고 형광등이 들어오지 않아서 정말 러시아 상태가 심각하구나라고 느끼셨다고 한다.)
유럽과 미국의 가십잡지에서 러시아는 항상 유머코드로 풍자당하고 조롱당했으며, 러시아란 나라는 그저 힘만 쎄다가 망한 가난한 후진국인 것처럼 비웃음을 당했다.
젊은시절 러시아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KGB에서 특수전 훈련을 받았으며 KGB요원으로 끝까지 근무하던 한 러시아인은 이 모든 것을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지켜보며 언젠가 갚아주리라고 깊게 다짐했다. 이 사람은 독소전 참전용사 가정의 아들이며, 젊은 시절 자신에게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국가가 주려고했던 스포츠엘리트 코스와, 고급행정관료 코스라는 혜택을 거부하면서 까지 가시밭길인 KGB 근무의 길을 택한 강성 애국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며, 조용히 힘을 키우다 90년대초 러시아 정치의 혼란기 시절 초반 불리했던 옐친의 목숨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서 권력의 2인자의 자리에 다가선 인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그를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이라 부른다.
<!--[if !supportEmptyParas]--> (사진출처:구글 이미지검색,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을 상대하는 푸틴)
왜 이 부분을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가 하면, 지금 푸틴의 애국감성정치 마케팅과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동유럽의 지정학적 중요성
좋은 이권과 예쁜 여자와 좋은 영토는 절대로 ‘중립’이라는 단어로 공유 될 수 없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로써 인류사에서 단 한번도 예외 없이 지켜져 왔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2013년 미스 우크라이나. 니들 같으면 너 혼자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여자 공유할거야? )
1)자원
이미 이쪽일대는 19세기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유전으로 인해 애시당초 옛날부터 지리학적으로 중요했었다. 지금이야 석유의 메카가 중동이지만 적어도 중동석유개발이 대규모로 본격화되는 1920-30년대의 이전에는 동유럽 지방 특히 코카서스 일대와 크림, 발트, 등등은 이권이 하도 걸려있어서 열강등의 충돌과 전쟁이 극심했다.
근데 현대에 와서 석유메카가 중동이 된 뒤에도 계속적으로 천연가스가 발견되었고, 이런 석유와 천연가스들을 잇는 송유관들이 지속적으로 이 일대에 성립되면서 이 동네는 애초에 ‘자원’하나만으로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지정학적인 이익이 걸리게 된다.
2)군사
(사진출처:http://blog.naver.com/s5709h/120042606405 동유럽은 군사적 완충지대다.)
서유럽/러시아의 가운데를 구분하는 동유럽의 광활한 영토넓이와 공백지역, 수많은 숲과 강, 산맥들은 침략자들에겐 극복해야할 벽이었고, 방어자들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이선을 최대한 지켜서 본토를 방어할 시간을 벌어야 하는 선이었다. 그렇기에 나폴레옹 전쟁때도, 1차대전때도 2차대전때도 수많은 격전이 벌어진 장소이며 NATO와 소련이 대립하던 시절에도 동유럽과 동유럽의 인접국들은 언제나 수백만명의 무장병력을 대기시킨 상태에서 긴장의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해야했다.
즉 , 동유럽지대는 서유럽과 러시아 양쪽에게 있어서 모두 중요한 군사적 완충지대다. 역사적으로 양측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경우 언제나 동유럽은 전쟁터로 변하고 말았으며 이중에는 폴란드처럼 양쪽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제국 혹은 나치랑, 소련한테 얻어터져서 나라꼴이 개판 났던 곳들도 많다.
해상방면으로는 흑해연안과 크림반도 등이 군사적 요충지인데 부동항이 부족한 러시아의 입장에서 지중해로 갈 수 있는 바다로의 출구는 흑해연안 이었고, 냉전시절 이곳에서는 첨예한 대립이 이루어지게 된다.
만일 소련이 서유럽세계에 전면전을 선포하게 될 경우 소련해군은 흑해를 통해 기동하여 지중해로 올 것이 자명지사(이쪽에는 해군길이 그것뿐이니까 북유럽은 논외),
미국은 지중해에 6함대를 편성하여 상시 이를 경계했으며, 인접한 터키에 대대적인 군사지원을 통해 혹여 소련이 폭주하여 전쟁을 시작할 경우 이를 저지해줄 것을 당부함은 물론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함대 그리고 미국 지중해 6함대+후속지원함대로 철저하게 지중해를 우주방어할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즉 자원으로 보나 군사적으로 보나 동유럽 지역은 어느 한쪽이 이곳에서 지배적인 이익을 성립하거나, 한쪽만 영향력을 가지려고 상대를 자극할 경우 결국 피를 부르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가 있다.
<3>EU와 NATO 그리고 미국의 동진과 MD
1)90년대의 상황
<1>에서 설명했듯이 90년대 러시아의 죳망은 실로 참혹한 것이어서 이시기 러시아는 동유럽에 거의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반대로 소련에서 이탈한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미국과 EU는 이런 동유럽 국가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각종 경제협정과 군사적 지원 및 여러 가지 도움패키지로 구성된 손길은 갓 소련을 이탈했고, 오랫동안 공산주의적 통치로 망가진 국내 사정을 해결하고 싶어했던 신생 동유럽 정치지도세력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이었다.
이런 미국과 EU의 동유럽에 대한 손길을 처음부터 러시아도 나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EU는 러시아도 유럽의 안보이익을 위해 NATO에 가입해도 상관없다고 까지 이야기했고(1995년 실제발언), 이런 미국과 EU의 동쪽으로의 손길은 단지 동유럽 지대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도 이어져서 90년대 막장상황을 겪던 러시아에 각종 재무적 지원같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부터, 군사적으로는 구소련 무기 암시장 척결을 위한 협력이 이루어졌고 범죄분야에선 러시아 여성 인신매매 문제, 환경문제에선 구소련 핵물질이나 노후 핵잠수함 처리문제 등에서 상당한 규모의 협력이 진행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 만해도 러시아는 이런 식의 협력이 자신에게 크게 나쁠 것이 없으며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98년 촉발된 코소보 사태는 러시아로 하여금 자신이 힘이 빠진 사이 미국과 유럽세력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자신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동유럽 문제를 독단적으로 그것도 무력으로 결정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코소보사태 한줄요약-1998~99년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셰비치가 자국 내의 코소보지역의 소수민족을 쌩가고 학살하여 미국과 NATO가 달려가서 다구리를 친사건.)
9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발칸지방의 무력분쟁(발칸의 패자 유고연방은 실상 말이 연방이지 인종, 종교, 문화,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각 발칸내의 집단들을 연방이란 이름하에 뭉쳐놓은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시절엔 이념과 국가주의로 내재된 불만이 묻혔으나, 공산이념이 산산조각난 90년대에 들어 결국 무력충돌로 분출됐다.)은 결국 코소보 사태라는 이름의 비극을 낳았다. 러시아는 일단 같은 슬라브계인 세르비아를 보호해야한다는 민족뽕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군사적 요충지인 이곳을 일방적으로 서방이 두들겨패서 러시아가 좋을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서방은 결국 공습을 감행했고 밀로셰비치는 대가를 치루어야했다. 당시 러시아가 받은 충격은 크게 세가지 였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이 동네는 늘 중요한 화약고 였다.)
첫째 러시아가 3차대전 까지 운운하며 세르비아에게 군사지원을 하겠다고 블러핑을 걸며 유럽과 미국을 협박했지만 서방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고, 둘째 미국과 유럽은 도리어 경제를 미끼로 러시아를 압박하며 세르비아를 종전협상 테이블로 끌고나오라고 도리어 명령하듯 말했으며, 셋째 결국 러시아가 한일이라고는 종전이후 UN의 평화유지군에 참가하여 러시아군이 UN밑으로 배속되어 평화임무활동을 한것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자존심이 상했던 러시아는 종전협상 다음날 바로 러시아군대를 UN과 미국 유럽에 통고도 하지 않고 세르비아 영내에 투입하였으며, 실상 대단한듯 선전했던 미국과 NATO의 공습이 그다지 세르비아 군단에 유효하지 않았음이 입증되어 그나마 덜쪽 팔릴 순 있었지만 이제 발칸에서 러시아의 입지따윈 그다지 미국과 유럽이 고려해주지 않게 되었다는 “뒤바뀐”현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더욱 자신감을 얻은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만만하게 보게된다. (그리고 98년-99년은 소련멸망이후 현재 러시아 성립 이래 가장 굴욕적으로 기록된다. 이때 러시아는 채무조차 못갚아서 모라토리엄까지 선언했던 시기..)
2)2000년대의 상황-본격적인 미,EU,NATO의 동진과 미국의 MD체제
(사진출처:동아일보. 911테러는 미국에게 어마어마한 빡침을 느끼게 했다.)
2001년 9-11테러라는 사상초유의 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빠따를 꺼내들고 범인을 색출하던 와중 빈라덴을 숨겨놓고 안주려고했던 아프가니스탄이 두들겨 맞게 되고, 평소부터 미국한테 씰룩씰룩 깝쭉대던 후세인의 이라크 역시 덤으로 같이 맞게 된다. (미국의 빠따는 1+1! 서비스!)
미국의 한복판 그것도 미국식 자유경제의 상징인 뉴욕에서 미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하던 WTC는 무너졌고, 미국의 강한 국방력을 자랑하는 펜타곤 역시 테러를 당했다. 당시 미국의 빡침은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라 눈깔에 뵈는 것 없이 애들을 후드러 까고 다녔고 국제사회에선 아무도 미국에게 뭐라 못하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강성반미국가인 북한조차도 미국에게 위로의 표현을 했을 정도였다.
사실 9-11 테러 이전에 이미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불량국가로 부터의 미사일을 방어하겠다며 미사일디펜스 시스템(MD)의 본격화를 선언했던 지라 러시아와 중국은 이는 실상 말이 불량국가가 목적이지 실은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상황이었으나, 테러를 당한 눈깔 뒤집힌 미국은 사납고 무섭기 때문에 일단 MD문제로 인한 비판을 자제했고 러시아의 정보망으로 테러리스트세력을 찾는것을 돕거나, 해당지역 영토의 영공개방등으로 미국을 도리어 돕기도 했다.(단 이는 똑같이 이슬람계통 테러에 취약한 러시아의 국익문제도 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했던 아프간,이라크전은 갈수록 장기화 되었고 미국의 지속적인 MD추구는 러시아를 크게 자극했다.
러시아로서 MD는 다음 세 가지의 이유로 절대 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첫째, 이미 과거 전략핵무기감축협정 당시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를 공격할 핵은 일정수준으로 갖더라도 서로의 핵을 미사일로 방어하는 시스템 같은건 구축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1972년 미러간의 ABM조약-일명 탄도미사일 방어조약) 이는 서로에게 동등하게 창만갖지, 방패를 갖지 않음으로서 서로의 핵으로 서로를 겨누는 공포균형체제를 쭉 유지해서 과도한 핵군비경쟁을 유발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둘째, 90년대의 막장상황을 경험한 러시아군은 크게 약화되었다. 러시아로서는 과거처럼 10만대에 가까운 전차와 장갑차를 자랑하던 붉은군대의 위용이 있는것도 아니고 크게 약체화된 러시아의 안보를 핵과 전략미사일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입장인데, 미국이 이것을 막는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그리고 나아가서 이것을 유럽과 공유하게 될 경우 강대국 지위는 커녕 이빨빠진 호랑이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애초에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국경선이 넓은나라다. 이 넓은 면적을 재래식전력으로만 커버할 수 가 없다.
마지막으로 당시 미국은 절대로 러시아를 겨냥하는 것이 아닌, 북한,이란 같은 불량국가를 겨냥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희안하게도 MD시스템을 구축하는 군사기지와 MD기지 건설, 미국의 MD 동맹국 협력 플랜은 정말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서로는 동유럽에서부터 동으로는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러시아의 접경지대나 군사적 완충지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러시아왈-니들같으면 믿겠냐?) 그리고 2002년 부시행정부 시절 부시대통령이 일방적으로 ABM 조약을 탈퇴해버림으로써, 러시아의 이러한 의심과 심증은 확증으로 굳어지게되고,
(사진출처:중앙일보,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를 크게 자극했다.)
2000년대 중반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슬로베니아,루마니아 등등등 수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EU나 NATO에 가입하고, 가입하면서 NATO에 협력국 지위등을 부여받으며 (현 우크라이나 사태의 우크라이나 역시 peace-partnership 으로 NATO에 맺어져있음 물론 해당지위는 나토 본가입국 수준의 지위는아님.) 미국의 달콤한 군사,경제 지원을 조건으로 해당 국가들이 MD기지를 만들거나 혹은 미국,서유럽과 군사협력 플랜을 갖게 되기까지 하자 러시아의 빡침은 극에 달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에 반전은 늘 있는 법, 아프간, 이라크 전으로 인해 폭등한 국제유가와 때마침 국내경제개혁을 가속화 하고 있던 러시아의 푸틴행정부는 대박수혜를 맛보게 돼고, 모라토리엄까지 몰렸던 국고는 빵빵하게 쌓이고, 수천억달러의 달러뭉치들을 외환보유고에 두게된다. 국내재정건전성 역시 국가 GDP대비 부채비율이 답이 안나오던 막장 수준에서 10%대로 하락하게된다.
도리어 러시아는 이를 바탕으로 재군비에 박차를 가했고, 건전화된 국가채무를 이용해서 채무를 약간 늘리더라도 군비와 경기부양에 투자하자는 발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힘을 바탕으로 우리가 알다시피 잠가라 벨브 사건이나 핵위협 사건 같은 명짤방 들을 터트리게 된다.(당하는 입장에서야 공포겠지만) 2008년 결국 국제정치학계에선 신냉전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며 러시아를 부활한 러시아제국이라며 비유하는 평론까지 나오고 말았다.
당시 러시아는 폴란드와 체코를 향해 미국식 MD에 가입하고 MD기지를 건설하는 나라들은 러시아의 핵전쟁시 전략핵타격의 첫 번째 대상이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위협을 가했다.
4.푸틴의 과감한 땅크 드리프트.- 결단의 배경들
“당신은 우크라이나를 국가라고 생각하는가.”
-2008년 푸틴이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에게-
애초에 강력한 러시아 국가주의자인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으로 보이지도 않는 그저 러시아의 일부일 뿐이었고 이것이 그의 시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주는 실제발언 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푸틴은 대학시절 법률을 전공하면서, 법률외에 국제관계학과 역사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직접 첩보원생활을 하며 국제사회의 냉혹한 생리에 익숙한 사람이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국익을 위해 결국 우크라이나를 한번 치긴 쳐야하는데 우크라이나는 일단 정규군 16만에 예비군 100만 그리고 전차 4000대와 장갑차 수천대를 가진 육군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에 잘못 후드러깠다간 러시아가 아무리 쎄다 한들 장기화 되면 그뒤의 사태를 감당 하지 못할 것이고, 또 부다페스트협정(1994년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시절 배치된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유럽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약속해준 안전보장협정)으로 안보수혜를 받는 우크라이나를 잘못 후드러까면 분명히 미국과 유럽이 개입할 것이라 신중함이 필요했다.
그러나 때는 오게되었다. 그리고 푸틴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냉정한 승부사다.
<1>빈약함을 드러낸 서유럽과 미국-조지아 사태, 리비아와 시리아 사태
1)조지아 사태 그리고 허점을 보인 유럽과 미국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푸틴은 부시에게 올림픽 개막식 당일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 국제사회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조지아 군이 친러성향 남오세티야 공화국에 선제공격을 가했으며 이 선제공격으로 인해 남오세티야 공화국의 민간인과 2000명과 러시아 평화유지군 수명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조지아 내의 남오세티야 공화국은 원래 91년에 독립을 선언했다가 조지아 내에서 치고박느라 내전크리를 겪은바 있었고 이를 국제사회와 러시아가 중재하여 정전상태로 묶어둔 상태였다. 세바르드나제(80년대 소련 외무상)가 조지아를 10년넘게 통치하던 시절에야 정전이 지켜졌고 세바르드나제는 실리주의자 였기에 러시아와의 마찰을 최대한 자제해왔지만,
강력한 친미성향의 조지아 민족주의자 미하일 샤카쉬빌리가 (미국에서 변호사를 한적도있다고 한다.)
세바르드나제를 선거에서 밀어내고 2003년에 집권하면서부터 생겼다. 사카쉬빌리는 NATO에 접근하여 러시아를 자극했음은 물론 공공연히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고, 합동훈련을 하며 미군 교관들에게 자국 군인들의 훈련을 맡기기도 하는등 러시아의 코앞에서 러시아를 자주 자극하곤 했다.
그리고 2008년 초에는 유럽주둔미군과 공공연히 러시아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벌이며 러시아를 자극했다. 그리고 소규모 충돌이 남오세티야와 조지아 사이에서 벌어지던 찰나 우리가 아는 그 전쟁이 터졌고, 결말은 다들 알다시피 조지아의 일방적인 패배와 미국의 립서비스로 끝났다.
당시 미국은 흑해에 미국과 NATO소속 국가들의 연합함대를 파견하여 러시아 함대와 대치하면서 외교적으로 그만두라는 말 외에 더 이상의 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NATO의 통합방공관제센터가 데이터링크 연동으로 조지아의 대러 방공망에 정보자료를 제공해준 정도가 그나마 소득이 있는 행위였다. 아 물론 조지아의 방공관제센터는 전투기를 격추당한 러시아의 빡친 폭격으로 몇일만에 건물 째로 날아가버렸다.)
독일과 프랑스 역시 평화가 중요하다며 평화협상을 중재하긴 했지만 중재의 결과물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은 사실상 친러괴뢰정권으로 독립해버렸다. 평화협상의 결과물인 휴전협정 자체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공화국의 지위문제에 대해 일절 다루고있지 않았으며, 애초에 러시아가 이걸 담으면 안한단식의 배짱외교를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결과는 러시아가 원했던 수준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의 여파는 대단해서 친미정권이던 우크라이나의 정부가 결국 선거를 통해 친러정권으로 교체되었고, 러시아 주변의 국가들의 외교노선과 국내정치세력간의 선거대결에서 친러세력들의 줄 연승을 이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변국들이 우리한테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는 그들한테 달려있다”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장관, 조지아 사태이후.한 발언-
미국은 당시 딕체니 부통령을 필두로한 강경파들이 국지전단위로 조지아를 미군이돕고 국지전역으로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한판해봐야된다는 소릴 했지만 부시가 그만해미친놈아를 시전하며 말림으로써 직접 교전을 치르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경제사정은 이미 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를 수습하느라 국고를 다썼지, 이라크, 아프간은 여기대로 안마무리됐지, 이란은 핵만든다고 깝치지,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후속협상 왤케 버벅거리고 늦냐고 땡깡 부리지 여기저기서 경제, 외교적으로 쌍코피가 터지는 시점이라 도저히 러시아와의 일전을 감당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국내정치적으로도 07년의 리크게이트나 08년부터 불어닥친 오바마,힐러리 열풍으로 도저히 노답이었고..
2)리비아 사태(2011), 시리아사태(2011~지금까지계속)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카다피. 그도 결국 시대를 이기진 못했다. 사진출처:전자신문)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국내정치를 말아먹고 원성살 행동을 하자 자유와 정의의 삼총사인 미영프가 크로스 하여 카다피를 족친 사건이 2011년의 리비아 사태임은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근데 이 사건에서 미국은 당황하게 된다. 사실 미국은 당시 냉전이후 꾸준히 재래식 군비를 축소해온 영국과 프랑스라지만 자신들 같이 ‘형님들 레벨’에선 산적두목군벌쯤으로 여길 수있는 카다피 하나를 영프 둘이서 제대로 못 처리해서 곤란해 할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지상군 투입은 없다고 선을 그은뒤 일단 지중해의 핵잠수함에서 발사한 토마호크미사일 200발로 도움을 주고 나머진 영,프가 알아서 하리라 믿었건만 영국과 프랑스는 막상 실전이되자 공대지 미사일이 부족하다, 폭탄이 부족하다, 뭐가 부족하다 등등 민망한 수준의 개판전력을 노출하고 말았다.
사실 이렇게 된 이유는 냉전이후 서유럽의 재래식 군비의 감축도 감축이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와 08년 금융위기가 서유럽국가들의 군비계획을 말아먹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바보가 아니어서 지나친 재래식 전력의 축소가 이라크 파병 영국군의 군화부족사태(그래서 당시 영국군이 잠깐 이라크군 군화를 신기도했었음)마냥 무력이 필요할땐 망신살이 뻗친다는 것을 이라크 전을 계기로 충분히 알았고 전투기, 함정, 등을 중심으로 재군비를 하려 했으나 대부분 이 플랜이 07,08,09년 이후로 구매계획이 잡혀있던 것이 문제였다.(계획잡던 당시엔 서브건 금융위기건 터질지를 몰라서..)
다행히 저항세력의 선전과 미국의 추가적인 도움, 영국군 SAS특수부대원의 선전과, 프랑스 공군조종사들의 크로스로 산적두목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이걸 차가운 미소로 바라보던 러시아의 머릿속에선 이 새끼들 내생각보다 더 허접됐구나 라는 흐뭇한 판단이 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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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2년 프랑스의 경우대 대대적인 군비실태조사에 정부차원에서 나서게 되는데 실가동 전차가 500대뿐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와서 당시 대통령인 사르코지와 프랑스국민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다. 유럽의 육군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뽕이 강했던 프랑스로서는 상당힛 실망 스러웠을 것이다.근데 다들 알다시피 프랑스도 재정위기 크리라 이걸 제대로 복구못하고있다.. (....)
(사진출처:유로저널 3년째에 접어드는 시리아 사태는 아직도 출구가 안보인다.)
“이집트 없인 전쟁도 없고 시리아 없인 평화도 없다.” -헨리키신저-
시리아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근 3년이 되도록 10만-20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지만 미국은 실질적으로 제대로된 무력개입을 못하고 있다.
작년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썼다는 의혹당시에도 이번엔 조지는구나 하고 (나를포함)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국제합의 정도로 끝내고 화학무기를 수거하는 차원에서끝났다.
영,프,독은 아가리 털고 물자지원만 실질적으로 시리아 사태에 의미있는 도움을 못주고있다.
(출처:구글지도 시리아의 인접 국가들은 모두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국가들이다.)
(이 지도를 봐도알겠지만 시리아가 차지하는 중동에서의 지리적인 중요성은 상당하며 시리아가 개판날 경우 중동전체의 헬게이트가 우려돼고 그렇게되면 미국동맹 이스라엘 힘들어지고, 또 그렇게 되면 중동이 불안하니 유가가오르고 미국경제도 피곤해지고~~~~~노답의 첩첩산중)
반면 러시아는 무려 시리아 정부군에 반대하는 시리아 저항세력들로 부터도 우리가 이겨도 러시아의 타르투스해군기지(시리아에 러시아가 갖고있는 역외해군기지)에 관한 권익을 지켜주겠노라는 이야기까지 듣고 성공적인 겐세이를 통해 유럽과 미국이 시리아에 무력개입을 하는것을 제대로 막아내고 있다.
이 일련의 사태들은 러시아에게 "내가 지금 우크라이나에 적정선에서만 개입한다면 미국과 유럽은 무력개입을 하기보단 나에게 협상을 걸것이고, 그 협상은 나에게 유리하게 끌 수 있겠구나" 라는 확신을 주었다.
<2>러시아의 국내정치적 계산-푸틴의 장기집권 공고화, 올림픽과 애국정치
(사진출처:소치올림픽 공식홈피. 러시아는 여기에 한화로 53조를 때려박을만큼 집요하게 올림픽을 바랬다.)
이번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국내정치적 계산도 다분히 깔려있다고 판단된다. 푸틴의 집권 공고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체첸반란 진압이었고, 푸틴은 다분히 애국주의를 자극하며 방사능홍차로 대변되는 자신의 독재적 정치스타일의 부작용들을 무마하는 식으로 집권해왔다. 고유가로 빵빵해진 현찰로 국내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며, 구 재벌부패 척결, 마피아 처단등을 수행하며 인기를 높이고 대외적으로는 러시아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한 미국과 서방 그리고 은근히 신경을 긁던 애들의 엿을 먹여주거나 팰만한 놈은 패주는 방식으로 국내정치에서 인기를 얻어왔던 것이다.
현재 푸틴은 다들 짤방화되어서 기억하는 투표율 140%사건이나 국내정치,언론탄압 문제로 생각보다 러시아 국내에 반대세력이 꽤 있는 편이다. 이를 다시한번 극복하고 푸틴이 자신이 추구하는대로 다시 한번 더 권좌에 앉기 위해서는 체첸반란진압이나 조지아사태 정리처럼 대외적인 행동이 하나쯤 더 필요하다고 여겼을 확률이 높다.
마침 시기는 동계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의 메달수를 거둔 애국뽕의 시기! 애국뽕에 취한러시아 국민들의 국민감정을 기반으로 과감하게 이때쯤 타이밍 좋게 우크라이나에서 건수를 올리고 건방진 그리고 제코가 석자인 미국과 서유럽에게 엿을 먹인다면 자신의 국내정치적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믿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3>손바닥 보듯 볼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군사 지형도
(사진출처:www.kyivpost.com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행진 사실 우크라이나 군은 그렇게 허접한 군대가 아니다.)
사실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적지 않은 공군기지와 육상전투기지들 그리고 방어선들중 상당수는 구 소련시절 소련군이 직접 설계한 곳들이다. 우크라이나 정치가 위기없이 멀쩡하게 돌아가고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담당하는 미국과 서유럽이 멀쩡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단체로 종합독감 및 고병원성 AI에 걸린 상황이라면 러시아로서는 충분히 한번 밀어붙여볼만하다는 용기를 들게 할 수 있는 사전정보가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독립이후에도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존 러시아가 지어둔 군관련 시설이나 건물들을 뽀개기 보단 재활용하는 쪽에 집중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도 설마 자신들이 핵탄두를 2000발이나 포기해가면서 미국하고 영국한테 안전보장을 받았는데 러시아 군이 밀고올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을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났습니다.”
<4>슈퍼종합독감에 걸린 미국의 대외정책-미국은 전쟁을 결정할 수 없다.
주구장창 말했듯이 미국은 현재 대내적 경제수습과 대외적 외교문제로 인해 러시아를 무력으로 응징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의 외교전문가들도 인정하듯, 현재 미국외교가 당면한 외교상황은 미국이 냉전이후 제1패권국이 된이래 가장 노답이다. 대충 굵직한 것만 나열해보겠다. 러시아는 이런 미국 외교의 취약점을 보았기에 더욱 과감하게 지금과같은 행동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1)동북아시아 갈등-한일관계 중일관계 그리고 미중관계
(사진출처:연합뉴스. 사실 아베는 츤데레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여왕님은 쉬운여자가 아닌데~)
다들 알다시피 작년과 금년의 한일관계는 최악이었다. 집단으로 자위를 하자는 이상한 병에 걸린 망상증 환자인 아베신조와 일본우익정치인들의 연이은 망언, 그리고 비뚤어진 일본 극우세력들의 경망스러운 역사관으로 인해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으며 급기야 한국이 민주화 이후 늘 정상회담코스로 삼았던 미->일->중->러 코스를 깨고 파격적으로 미->중->러 순으로 일정까지 조절한뒤 일본에 아직까지 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쌩가고 있다.
문제는 미국으로서는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들어 줄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있어서 마치 아시아의 독일과 영국과 같은 우방국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 정부대로 저런 위험천만하며 절대용납될 수 없는 역사인식과 멈추지 않는 막말패턴을 지속하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섣불리 관계개선에 나섰다가는 국내정치적 반발을 감수해야하며, 반대로 일본의 현 정부역시 자국의 헌법 개정과 국내정치적 지지결집을 위해 물러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거기에 근래에만도 일본의 신사참배질과 다케시마의 날 크리, 문부상 차관의 망언 등으로 악재가 다시 첩첩산중히 쌓이고 말았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일본에게 “실망”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경고를 했고, 일본의 한국,중국 과의 관계개선을 종용하고자 존 케리 국무장관을 직접 한국과 중국에 파견했으나, 일본은 다시 말을 듣지 않고 망언 크리로 미국의 혈압을 올리는 중이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역대 최악의 수위로서, 다들 요즘 허구헌날 중국하고 일본의 아가리파이팅을 뉴스로 시청하는바 굳이 상세하게 쓰지않겠다.)
미중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얼마전 오바마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직접 미국안에서 만나는 바람에 상당히 틀어졌고 그것은 3/5일짜 국제 뉴스에서 우리가 봤다시피 중국이 러시아를 만나 “큰틀에서 러시아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중국의 대미 엿먹임으로 돌아왔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원칙(-요약:대만, 티벳 조까고 우린 전부 하나의 중국임)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고, 미국으로서도 명분에서 흠이가는 것이 미-중 수교선언 당시 미국이 분명히 중국에게 하나의 중국원칙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었고, 그 이후로도 립 서비스를 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중,일 갈등은 21세기 들어 전례없는 수준이다. 일본은 애초에 잊을만하면 독도와, 역사인식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신경을 긁긴하지만 지금처럼 1년 2개월남짓한 기간동안 멈추지 않고 한달에 한번씩 망언을 하며 개판을 친것은 일본 외교사에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즉 여기에 복잡하게 꼬인 미중관계까지 더해져서 미국의 아시아 외교는 상당한 수준으로 피곤해진 상태고 이것이 단기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실상 없다.
2)시리아 문제
사실 오랜기간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에 속하던 반미적인 시리아를 그간 미국이 봐주었던 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아사드 정권은 그래도 꼴통치곤 미국과 대화를 하는 편이었으며, 아사드를 내칠 경우 수면아래에 있는 복잡한 시리아의 종교갈등문제(시리아 안에는 기독교인들도 상당히 사는데 아사드는 기독교인들을 딱히 탄압하지 않고있다.)와 알카에다 연계세력 문제, 그리고 꽤 공들여서 오래간 서로를 안싸우게 만든 시리아-이스라엘과의(2007년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 폭격을하긴했음 다만 전면전은 아님) 관계를 통한 중동의 평화, 시리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위에서 언급했듯 시리아문제가 꼬이면 중동전체가 화약고가 된다.) 등등 거기에 러시아가 빽 봐주는 것 등등 요약하자면 미국이 계산기 두들겨보니 현상유지정돈 되니까 냅뒀던거다.
근데 2011년 중동민주화 시위의 바람은 아사드라고 피해가지 못했고 아사드는 지나치게 강경한 대응을 해서 내전을 촉발 시키고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껏 헬게이트가 진행중이다.
현재 미국이 시리아문제에 확실한 무력개입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자국의 경제사정도 사정이고, 다른 대외문제도 문제지만 시리아 반정부군이라고 해서 딱히 미국이 의도하는 100%의 친미와 100%의 역내질서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할 확률이 대단히 높아보이기 때문이다.
아사드 정권의 “테러분자”드립은 아사드가 개새끼이기에 그럴 명분이 있나 싶지만, 실제로 시리아 반정부군엔 알카에다 성향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수가 왔다 갔다 한 정황이 포착되었고, 여기에 이슬람원리주의자(아사드 정권은 나름 세속주의)에 뭐에 어중이 떠중이 들이 겹치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반정부군을 집권시켜 봤자 미국이 원하는 안정된 시리아가 아닌 이라크,아프간 시즌2가 될 것이 뻔해보인다고 느끼게 했고, 여기에 강대국들의 밥그릇싸움이 겹치면 문제가 해결되긴 커녕 더 곪아터질 것이 자명해보이는 지라 미국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진전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3)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문제
(사진출처:연합뉴스, 차랑폭탄테러 현장을 어린아이가 지나가고 있다. 망가진 벽돌과 불타버린 차는 다시 세우고 만들면 되지만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남을 상처와 증오가 지워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안타깝다.)
오바마의 대외정책 성과물로 오바마와 민주당이 내세우고 싶어했던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단계적인 군대철수와 평화플랜을 통한 평화질서 확립인데 이것 역시 원하는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라크 평화재건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UN이라크 지원단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해 이라크에서는 유혈사태, 폭력테러로 인해 7800명이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의 막장스러움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도리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들에게 탈레반들도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 정부구성에 참여 할 수 있다는 당근까지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는바, 미국은 여기서 군대만 뺀다고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원래 예정대로 이번 3월 조인하기로한 미-아프간 군사협정에서 미국의 충실한 부하 노릇을 하던 카르자이 현 아프간 대통령이 협정에 서명하지 않겠다며 땡깡을 부리고 있는 통에 미국의 혈압을 올리고 있다.
상황의 악화가 전혀 해결될 기미가 없자 해당지역들의 반미감정이 극도로 올랐음은 물론이다.
4)이란 핵 문제-매듭 아닌 매듭
작년 하반기 그나마 오바마 정권의 의미있는 외교적 성과물은 새로 취임한 비둘기파 성향의 이란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 정권과 국제적 합의를 통해 이란과의 핵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미,러,중,프,영)+독일로 구성된 협상단은 이란과 몇가지 원칙을 합의했다.
첫째 5% 수준 이상의 우라늄 농축 중단, 기존 20% 농축 우라늄의 농도 낮춤, 둘째 원심분리기 추가 설치 중단, 마지막으로는 지하 농축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상시 사찰 허용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국 안에서는 이것이 결국 통수를 부를 임시변통이 아닌지에 대한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첫째 일단 애초에 이합의안은 6개월짜리 잠정합의다. 2014년인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6달간 이행기간을 거친 후 재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전면 금지한다거나, 기존의 원심분리기를 해체하는 것을 관철 시키지도 못했다.
둘째 이미 미국은 영변 냉각탑 폭파 옵션을 조건으로 북한이 냉각탑을 폭파하자 2008년 북한의 테러지원 국 해제를 해주고나서, 2009년 북한이 핵실험을 해버린 바람에 통수를 쎄게 맞은 적이 있다. 그런 바람에 이미 미국내에서 이 협상도 북한마냥 통수의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반대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란의 신정정치체제는 온건파 대통령이 아무리 평화추구를 하고싶어도 반미성향의 신정의회와 야당이 조까를 시전하면 평화추구자체가 힘든 정치구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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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핵을 근본적으로 근절시키지 못하는 핵협상은 다시 통수를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주구장창 많이봐왔다. 즉 이란 핵협상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임시적인 매듭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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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북한의 지속적인 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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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는 우리가 허구헌날 보는 것이니 세세하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북한은 상시존재하는 미국외교의 가시같은 위험요소이며 작년에도 핵실험을 통해 미국의 뚜껑을 열게만들었다.
존케리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포괄적인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하겠다고 하며, 오바마 대통령 역시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됨을 약속하겠다고 했지만 김정은이 독재권력을 든든하게 떠받칠 핵을 포기할 확률은 내가 금연을 하거나 훌천 위원장을 지금 당장 그만둘 확률 만큼 희박하다. 즉 그럴일은 없다.
6)해당 단락에 대한 세줄요약
-현재 미국외교문제는 대단히 곤란하다
-하나하나의 외교문제들이 서로시너지를 내며 더욱 문제를 키우는 상황이다.
-미국은 하나를 막으면 하나가 튀어나오는 식의 답이 없는 두더지 게임 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끝날지 모른다.
<5>회복된 러시아 그리고 실험적 군사행동
이것은 상당히 부차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의 배경이지만 러시아는 2008년 당시 조지아전을 승전하고도 해당 군단의 러시아군 사령관을 해임했던 전적이 있다. 사유는 그런 죳만한 나라를 밟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생각보다 피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지아전은 러시아의 힘을 보여준 전쟁이기도 하지만 취약점을 드러낸 전쟁이기도 하다, 수기의 투폴레프, 수기의 수호이 기가 격추당했으며 일부 보병부대와 기계화부대가 그루지야군의 선전으로 고전하기도했다.
당시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총리는 군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결국 장교,부사관,병사의 월급을 대폭인상하여 처우를 개선해주며 군의 장비를 확충해주는 대신 태만한 직업군인을 잘라내고 병사들의 가혹행위 관행을 개선하고 전투훈련 횟수를 늘리는 식의 군개혁을 지난 6년간 진행해왔다.
러시아로서는 이왕 이번사태가 난김에 사태를 통해 지난 6년간의 군개혁의 성과가 이런 기동성이 필요한 군사작전에서 얼마나 개선되었나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다분할 것 이다.
<6>터키에 대한 안배 작업-터키는 나서지 않는다.
이것도 부차적인 단락이다.
러-터 관계는 피의 역사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의 숱한 전쟁부터 가깝게는 1차대전 까지, 터키와 러시아는 부단히도 싸웠고 양국의 감정도 대단히 안좋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터키는 러시아와 무척가까웠기에 냉전시절 미국이 터키에게 막대한 군사지원을 하면서 소련에 대한 견제 역할을 시키고자 터키의 힘을 키웠다.
90년대 중반에는 체첸 반군 지도자들이 터키로 종종 망명을 하기도 하면서 러-터간의 신경전은 더욱 깊어졌다. 당시 러시아는 당장 내놓으라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터키는 "능력이있으면 와서잡아간던가"라고 패기를 시전했고, 당연히 양국관계는 안좋았다.
그러나 푸틴은 집권이후 경제으로도 안보 전략적으로도 터키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하에 꾸준한 작업을 해왔다. 무역규모를 확대하고, 경제접촉을 늘려 양국의 관계개선을 시도하여 자신의 집권이래 러-터 무역의 규모를 10배가까이 늘렸고, 작년 11월 에도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를 만나 2020년까지 무역규모를 현재의 3배이상으로(약 1000억달러)늘릴 것을 합의했다.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현재까지 터키는 그저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립서비스성 멘트 한번을 날린채로 현 상황을 방관 하고 있다. (물론 흑해에서 비행하는 러시아 정찰기에 대해 통상적인 전투기 방어기동정돈 했다. 이건 한국도 러시아 정찰기오면 매년 하는 연례행사.)
사실 터키의 입장에선 지금 중립을 지키며 가만히 있는게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길이다. 그간 EU가입을 꾸준히 시도했으나 번번히 그리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그때 마다 터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휴 병신 서유럽새끼들, 지네 재정하나 못지켜서 유럽거덜내고, 군사력도 약한 그리스는 eu에 두면서 힘도 쎄고 그리스처럼 경제 민폐도안끼치는 우린 무시하네. 잘 생각해봐 우리가 더 도움이될걸?"
6.향후 전망-이번 사태가 부를 나비효과
<1>단기전망- 결국 협상으로 끝날 것.
(사진출처:구글이미지 검색, 푸틴은 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결국 협상으로 끝날것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위에 매우길게 주구장창 나열해뒀지만 미국과 서유럽은 전쟁을 할 형편이 못된다. 둘째, 러시아 역시 대외변수에 매우 취약한 지하자원수익을 기반으로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당장에 사태가 터지자마자 증시가 11%가 급락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싫고 증오스럽겠지만 러시아가 최대 무역파트너이며 경제갑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메르켈 독일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화를 위한 중재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단 협상의 결말은 러시아의 판정승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러시아는 이번에 중앙은행의 금리를 인상시켜가면서 까지 크림에 투입한 병력을 바로빼지 않았다.(러시아는 크림스스로 일어난 자경 민병대라 하지만 개인적으로 교분이 있는 한 군사전문가 분은 나더러 역사상 가장 잘 무장 된 민병대군요 껄껄 이라고 답변을 대신했다.) 즉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것을 명확하게 밝힌셈이다.
-이번 사태의 패턴은 상당히 지난번 조지아 사태와 겹친다. 미 랜드연구소의 한 러시아 전문가는 “조지아 사태와 패턴이같다 미국과 서유럽이 할 수 있는것은 외교전뿐이며, 러시아가 미리 군사적 선수를 친것도 같다. 결말은 러시아의 판정승이다.”라고 했다.
-크림 주민들이 러시아군인 들에게 호의적이라며 인터넷에 떠도는 크림반도는 지금 셀카열풍이네 뭐네하는 인터넷 게시글자료 들을 봐도 알겠지만 러시아군을 침략자 이미지로만 몰아붙이기엔 조지아 사태와 같은 깡패 이미지 마케팅이 힘들다. 일단 기본적으로 거주민들이 러시아인들에게 저항하거나 화를 내야 러시아도 협상에서 “나쁜 깡패 러시아 OUT!”하는 식으로 좀더 여론몰이를 당해 욕을 먹을텐데 지금 크림반도 굴러가는 꼬라지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2>중 장기전망
이 단락은 이번사태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전망해보는 단락이다.
1)찢겨진 부다페스트 협정,-불량 국가의 핵포기는 없다.
계속 언급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의 독립당시 핵을 들고 독립했다. 수천발의 핵무기를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장거리 핵전략폭격기에 ICBM에 핵탄두 까지.. 근데 미국과 서유럽은 이걸 포기하는 조건으로 너의 안전보장을 해준다며 부다페스트협정이란걸 1994년에 맺고 우크라이나의 핵을 해체했다.
그리고 적어도 지난 20년 정도는 병크가 있건, 없건을 떠나서 최소한 군사개입 전은 안맞으며 살아온 우크라이나에 버젓이 오늘날 같은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북한이 항상 핵협상에서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주접을 떠는 것이 핵포기 하면 미국이 나를 공격할 것이라며 과대망상 피해자 코스프레질을 하는 것인데, 북한의 이런 코스프레질에 우크라이나의 오늘날 모습이 더욱 논거를 보강해 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이미 한 ,미의 외교관료 들은 리비아식 해법을 근거로 카다피가 핵하고 미사일 포기하니까 테러지원국도해제되고, 건설수주도 더많이들어오고, 무역도 늘고 리비아가 행복해지잖냐 라고 북한을 자주 설득해왔었다.
실제로 카다피가 약속을 지키고 핵과 미사일프로그램을 포기했을때 미국은 대단히 환영했고 테러지원국 해제약속과 각종 약속들을 하나둘씩 이행하는 단계였다. 적어도 이 산적두목이 폭주해서 자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실탄을 갈기게 될것이라고는 당시의 미국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근데 카다피는 정말 폭주해버렸고, 미국은 별 수 없이 이를 진압했다. 미국은 2011년 당시 카다피 사태를 정리하고 나서 북한에게 “카다피를 정리한것은 카다피가 깽판을 쳐서지 핵을포기해서가 아니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는데, 당시 북한은 다음과 같은 성명으로 응수했다.
“결국 미국이 운운하는 리비아식 해법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웃는 낮짝으로 평화를 논하며 상대를 방심시킨 후 승냥이 처럼 덮치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간악한 사기수법이다.”
미국이 카다피를 응징한 것은, 카다피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민간인 학살을 했기때문이지, 핵을 포기했기에 깐것은 아니라는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잔인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과연 카다피가 핵이 있었다면 미국이 그렇게 쉽게 공격이 가능했을까? 이건 이미 답이 나온거다. 카다피를 응징한 것이 국제적 명분이건, 핵포기건 그렇지 않건간에 좌우당간 카다피가 만일 핵이있었다면 저렇게 무너졌을까를 북한으로 하여금 그리고 특히 세습받은 독재적권력을 영원토록 누리고 싶어하는 북한의 3대 두목인 김정은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각인 시켜준 것이 리비아 사건이었다면, 강대국의 안전보장협정을 기반으로 한 핵포기가 위험천만하다는걸 입증 시켜준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될 것이다.
결국 안전보장협정이 국제사회의 환경에 따라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된 북한은 향후 한,미가 제의하는 6자회담을 시간벌이용으로만 활용할 확률이 높다.
한국의 입지가 취약해진 것도 물론이다. 그간 한국정부는 6자회담을 통해(2005년 9-19성명 2007년 2월 성명) 북한에게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을포기 할 경우, 한미는 물론 중,러와 일본까지 참여하여 북한의 안전보장을 외교적으로 약속해 주겠다고 설득해왔다. 그러나 이번사태로 하여금 북한은 대단히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핵포기는 이미 물건너 간 상태에서 이번사태로 관뚜껑에 드릴대못을 박아주게 되었다고 본다.
2)북한의 위험한 자신감 획득
북한은 요 며칠간 신나게 신형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들을 실험했다. 난 이것이 단지 현재 진행 되고 있는 한미양국의 합동방어훈련인 키리졸브 훈련 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며, 현재 취약한 미국의 외교 상태를 보고 더 자신감을 갖고 쏜것이라고 본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결말에서 다시 미국이 조지아 사태와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은 이런 망상을 하게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헤헤 지금 이새끼들 이빨빠진거 같은데 장거리 미사일 실험하고 핵실험을 1-2년 사이에 땅! 터트리면 이새끼들 피곤해지고 난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해겠지?”
애시당초 요 몇 년사이 미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상 이제 북한 핵 완전폐기는 어렵다며 핵능력의 동결이나 정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협상해야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북한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시 핵실험을 진행할 확률을 배제 할 수 없다.
그리고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아마도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몇회 이상 더 진행하여 미국을 장기적으로 압박하는 협상전술을 구사하려 할 것 같다.
3)미국 대외정책의 종합적 혼선- 꼬맹이들의 반란
여기저기서 곪아터진 대외문제들의 종합적인 개판화로 인해 미국의 대외협상력이 취약해진 것을 간파한 꼬맹이들이 예전 같았으면 “네 닥치고 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것을 “형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하고 개김성을 증대시킬 확률도 상당히 있다.
요즘 일본이 미국말을 잘안들어처먹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고본다. 실제로 엊그제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몇몇 독소조항을 이유로 미-아프간의 군사협정을 체결 할 수 없음을 통고했다.
간략이 핵심만 요약하자면 현재 미국이 원하는 아프간과의 군사협정은 미공군기의 아프간내의 자유로운활동을 보장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데 우린 주권국이고 작년 한해 미군이 무수한 오폭크리와 인명사고를 내놔서 현재 아프간 국민들의 대미 감정이 안좋고, 자신도 아무리 미국의 꼭두각시랍시고 국민들에게 욕을 먹는다곤 해도 최소한의 성과물은 있어야 할것 아니냐며 미국에게 땡깡을 부리고 있다.
사실상 하미드 카르자이는 미국이 권좌에 “앉혀준”것이나 다름없는 인물인데도 뻗대는 것이니 미국으로서는 당황 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카르자이는 꼭두각시일 지언정 최소한의 긍지도 없는 인물은 아니다. 20대 청년 시절 한손에는 AK를 쥐고 한손에는 수류탄을 들고 아프간을 침공했던 소련 침략군과 맞서 싸웠으며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나이먹고는 탈레반에게까지 저항했던 나름 ‘강단있는’ ‘꼭두각시’다. 그가 자국국민들에게 미국의 개, 카불시장(직접 통치력을 제대로 행사 할 수있는 범위는 수도인 카불정도라는 조롱섞인 별명)이라는 오명까지 쓰면서도 대통령자리를 지키려 노력했던 이유는 그가 스스로 밝힌바와도 같이, “탈레반식으로 돌아가면 아프간은 영원히 개판오분전 국가”로 남기에 다소 힘들더라도 미국한테 붙어서 나라꼴을 살려야된다는 그만의 철학 때문이다. 해외에도 나름 오가본 편이라 국제정세에도 아프간의 인적수준을 생각해보면 나름 밝은 편이다.
그런 카르자이가 보았을때 지금의 상황은 애들이 가끔하는 노무현식 유머드립마냥 “때때로 한번! 배짱이라도 부려볼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닙니까!”의 상황인 것이다.
내가 장담컨대 이런 판단은 카르자이 한명만 내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현재 한국정부가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만큼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도 단순히 국민들의 격앙된 반일감정과 국내정치 문제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 미국이 자신이 필요하다는걸 영악하게 잘알고 있다.(내가보기에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당분간 미국대외정책의 혼선은 더욱 가중되게 됐다.
4)미국의 차기대선 그리고 공화당의 승리
난 이번사태와 이번사태의 나비효과들로 인해 결국 미국 민주당이 차기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1차적으로 미국의 현재 경제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뛰어나다한들 자기 임기안에 처리할 선을 넘었으며, 2차적으로 미국인들은 안보적으로 약한 대통령과 약한 정당을 싫어한다. 더군다나 미국의 20세기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이 두 번 대선승리를 거둔 한 뒤에 다시 또 이기는 패턴은 쉽게 찾기 어렵다.
미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외교/안보영역에 있어서 한 두 군데도 아니고 시리아, 북한, 중국, 아프간, 이라크, 그리고 러시아 까지 여기저기서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외교적 결과물이나 승리를 내놓지 못한 정당에게 투표를 해줄 수가 없고, 위에 언급한 나비효과들까지 작렬할 경우 오바마 임기말년의 이미지는 평화하겠다고 했다가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다닌 샌드백 이미지가될 확률이 농후하다.
특히 공화당의 경우 몇 년전 부터 시리아 사태를 비롯하여 대외정책에 강경책을 주문해왔고, 오바마-메드베데프 간 전략무기 감축협정과 오바마-푸틴 간 핵확산방지협정 등의 서명을 러시아에 대한 비굴한 타협이라고 정치적으로 공격해왔다. 근데 때마침 그 러시아가 또 사고를 쳤으니 “오바마와 민주당의 유약한 평화외교가 이번사태를 불렀다.”식으로 네거티브를 걸기엔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공화당이라고 내가보기에 딱히 이걸해결할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한들 분노한 미국인의 감성을 능숙하게 자극할 줄 아는 공화당의 애국마케팅과 네거티브 전략역시 지금까지 미 대선에서 절륜한 위력을 보였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미 몇 달 전에도 오바마 정부의 대러시아, 대 시리아 외교를 비판한 전직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의 오바마 비판 칼럼이 나왔던 적이 있고 미국 보수계통엔 이런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이런 미국 내의 기류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 본다.)
7.한국이 얻어야할 교훈
<1>미국식 MD체제에 편입하지말기
난 평소부터 MD 무용론을 늘 주장해왔다. 미사일 디펜스 (MD) 시스템에 대해 내가 회의적인 이유는 다음 네 가지 이다.
1)MD는 돈이 많이 든다. 지금껏 미국이 1800억 달러를 퍼붑고 옆 나라 일본도 조 단위로 돈을 퍼부었다.
2)근데 돈 퍼부은거에 비해 실명중률은 지극히 낮으며 미국처럼 높은 수준의 실명중률을 달성하기위해선(이것조차도 미국 내에선 확실하지 않다며 논란이 많다.) 1회에 5000억-1조가 드는 실험을 최소 10회이상 해야 된다. 이 돈이면 북한을 타격할 탄도미사일을 확충하고 북한의 핵을 감시할 첩보위성을 띄우는 편이 낫다. 실제로 일본은 08년도에 8000억원을 md관련에만 썼다.
3)MD는 미국의 국내정치세력이 어떤 성향을 갖느냐에 따라 플랜이 보류되고,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등 오락가락 하는 경향이 짙다. 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경우도 선거유세기간동안 MD를 완전 폐지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을 정도이며 집권이후에도 예산을 전액삭감하려다가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마지못해 조금의 예산을 부여했다.
4)러시아는 이미 미국식 MD체제를 도입한 나라는 러시아의 전면 핵타격 전쟁 때 핵타격 1순위가 될 것임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녔다.
즉 쓸데없이 돈이 엄청나게 소모되며 미국의 대내/대외정책에 따라 오락가락 되고, 굳이 러시아를 자극할 미국식 MD체제에 한국이 편입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MD에 지금까지 수조의 돈을 퍼부은 일본은 정작 북한이 미사일 실험할 때 한국군 일개 해군하사보다도 북한 로켓의 발사를 늦게 파악하고(물론 이건 지리적 요인도 있음), 자위대의 요격 트럭은 도로에서 전복되는 등의 촌극을 벌였다.
괜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현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식 KMD는 철저히 북한만을 목표로 한다.”라고 하면서 미국식 MD체제에 대한 편입에 대해 미국의 섭섭함을 사면서까지 가입 안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미동맹도 좋고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이익부터 지키는 것이 선행되어야하지 않겠는가? 미국도 러시아도 이익을 위해 움직이건만 한국이 왜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인가.
특히 러시아는 현재 한반도 주변국중 한국과 영토,영해 갈등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며 6자회담의 파트너이자, 장기적으로 중요한 무역 상대국임을 간과하면 안된다.
<2>자주 국방에 대한 노력 게을리 하지 말기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니 길게 쓰지 않겠다. 미국은 훌륭한 동맹국이고 지금까지 한국에 좋은 신뢰를 보여 왔으며 이는 한국이 가진 좋은 외교적 자산이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대외, 대내적으로 취약할 때 미국은 돕고 싶어도 타국을 돕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은 미국입장에서 우크라이나 보다 100배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와 중요성을 갖고 있기에 어지간하지 않으면 미국이 무조건 우릴 도울 것이다.
하지만 미 본토 지상군 1개사단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시간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20일에서 길면 30일까지 늘어질 수 있다. 그때 까진 우린 국군+주한미군+오키나와의 미해병대+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군사기지에서 출동할 미국의 전투, 폭격기들+기타 미국의 안배 들로만 견뎌야 하며 이는 자주국방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불가능한 일이다.
잊지말자 역사는 자신을 지키려하지 않은 나라에게 언제든지 멸망을 선사했다.
<3>정치가 막장이 되면 군사도 막장이 된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딸랑 몇 천명에서 1만5천명 밖에 안 되는 크림자치공화국의 자경단+러시아군대에 우크라이나가 쩔쩔매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는 16만명 규모의 상비군을 갖고 있으며 전시에 100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할 수 있고, 수천대의 전차와 장갑차, 전투장갑차 그리고 400여대의 항공 전력과 5000여문이 넘는 각종 박격포, 자주포, 견인포, 로켓포 등의 포를 갖고 있는 나라다.
러시아가 아무리 군사강국이라 한들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넓은 국토와 깊은 군사종심 그리고 가진 전력만 제대로 활용 할 수 있어도 고작 1만5천명 안팎의 군대에 허무하게 자국의 영토를 사실상 반 헌납 상태로 빼앗기진 않을 조치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단 소리다.
그러나 막장 스러운 우크라이나의 정치와 갈등은 가진 전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부랴부랴 이제 와서 예비군 소집령을 내린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러시아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예전에 보수 성향 언론인인 조갑제 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언제나 국내의 종북세력 만큼 낡고 부패한 기득권 세력들을 경계해왔다. 그들은 김정일 치하라도 자신의 이권과 기득권만 보장된다면 김정일 치하를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난 솔직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연평도 사태에서 보여준 용감한 군인들의 헌신과 17분만의 반격은 훌륭했으나 국내 정치인들의 반목과 상호에 대한 사태책임전가들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국민 개개인이 보수든 진보든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를 하면서 정치인들이 안보결정에 있어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경우 투표로 응징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는 한 적을 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잘못된 정치인들의 안보관행은 개선될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한국정부가 이라크 신생정부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한국 정부는 그들 스스로 판단내리고 결정해도 될 간단한 일들을 5분단위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질문하며 물어왔다. 그 수준의 초보적 방어계획 결정은 이라크 신생정부도 할 수 있다.”
-연평도 사태 당시를 회고하는 주한미군 작전참모부장 존 맥도널드 소장-
적어도 이석기 같은 명확한 종북적 인물들이 버젓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세금을 받아먹다가 이제 와서야 재판에 가는 이런 구조에서 위급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정치를 기대하긴 글렀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기간시설을 타격한다는 망상을 하는 자가 버젓이 국회에 가서 몇 년 씩이나 의원직을 달던 현실이란..
덧붙여 언제나 종북 종북을 입에 달고 살면서 북한핵실험 정보나 미사일 정보에 대한 수집보단 유능한 국정원 직원들을 잘못된 방법으로 다루어 국내정치공작 덧글을 달게 했던 보수 세력의 수준도 반성해야 된다. 다행히 신임 남재준 원장은 원세훈 같은 삼류 국정원장과는 격이다르다고 보고 있다.
명심하자 정치의 무능은 군사력이 유능해도 그 군사력의 10분의1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고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다. 길고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어 고맙다.
(사진출처:뉴시스. 크림반도에 있는 민병 자경단(!)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경단일 뿐이지만 수송트럭에 러시아 남부군 차량번호가 있으며, 무기가 러시아 정규군 제일 뿐이다. 그렇다! 이것은 순수한 자경단인 것이다. 그것도 세계 최강의!)
P.S:혹여 내 글의 내용이 신뢰할 만한 언론기사나 전문가의 서적과 다르다면 무조건적으로 기사와 전문가의 서적을 우선으로 할 것. 요즘처럼 역사나 정외쪽으로 전공삼았다가 밥도못먹고 죽어나는 시대에 그분야에서 살아남고 책쓰고 기사쓰는 양반들은 진짜 대단한 전문가다.ㅇㅇ
http://news.mt.co.kr/mtview.php?no=2014022410562094247&VBC
->근래 기사중 가장 압축적으로 러시아가 왜 우크라이나를 원 하나를 쉽게 잘 요약한 기사니 읽어보면 좋을듯.
복사,펌,스크랩 허용. 단 훌리건 천국 마크만 유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