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슬람교의 분파
마호메트는 죽으면서 후계자를 정해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장인이었던 아부 바크르가 2년 동안(632~634) 후계자 일을 맡았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를 도왔던 우마르를 제2대 후계자로 지목하였고, 우마르는 10년 동안(634~644) 여러 나라를 점령하는 등 많은 일을 해냈다. 우마르는 어느 날 아침 메디나에서 기도를 인도하던 중 페르시아인 노예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죽기 직전에 여섯 명의 위원을 지명하여 그 중에서 후계자를 선출하라고 명했다. 이 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내분이 생기고, 이때 이후 이슬람 역사는 파벌 간 암투의 연속이었다. 마호메트의 심복 겸 사위였던 우스만과 그의 4촌 겸 사위였던 알리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 우스만이 다음 후계자가 되고 그도 12년 만에 암살당한 다음, 알리가 제4대 후계자로 나왔지만 역시 곧 암살되고 말았다. 이후 우스만을 지지하는 파와 알리를 지지하는 파가 갈라서게 되었다. 이슬람 내에 복잡한 계보가 있지만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수니파
수니(Sunni)파란 ‘전승주의파’라는 뜻이다. 전 세계 이슬람교인의 85% 정도가 이 파에 속한다. 이 파는 제1대 후계자 아부 바르크부터 정식으로 인정하고, 종교적ㆍ율법적 권위를『코란』과 『전승(하디스)』에서 찾는다. 코란의 율법을 어떻게 적용할까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약간씩 다른 의견이 있어서 다시 4개의 파로 갈라지는데, 그 중 각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적용하려는 가장 진보적인 파가 사아파로 4파 중에 신자수가 가장 많다. 이집트ㆍ시리아ㆍ인도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에 분포한다.
② 시아파
시아(Shiite)파란 ‘분리파’란 뜻이다. 세계 이슬람교인의 10~15 %로 본다. 모하메드의 4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따르던 사람들은 알리가 모하메드의 참된 후계자여야 하는데, 처음 세 후계자가 자격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결국 656년 알리가 후계자가 되긴 했지만 그가 암살당한 후, 지도자 자리는 우마이야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이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시아파에서는 우마이야 가문에서 세습적으로 내려온 지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시아파는 알리가 죽은 후 칼리프(후계자)는 끊어지고, 이맘(imam)이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라고 한다. 알리를 이어 그 뒤로 여섯 명 혹은 열한 명의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 마지막 지도자는 죽지 않고 어딘가 숨어 있다가 언젠가는 다시 이 땅에 돌아와 세상에 종말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렇게 다시 올 이맘을‘마디(Mahdi)'라고 한다. 시아파는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순교당한 것을 기념하여 그의 고통을 재현하는 의식을 행하고, 신도들의 순교를 찬양하고 고무한다. 지금 이란은 시아파를 공식 종교로 받아들인 나라이고, 이라크는 인구의 3분의 2 정도가 시아파이다. 사우디아라비아ㆍ인도ㆍ파키스탄ㆍ아프리카 동쪽 등에도 시아파가 살고 있다.
③ 수피
완전히 독립된 종파라 볼 수 없지만 수피(Sufi)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수피라는 말은 ‘양털 옷을 입은 자’라는 뜻이다. 염색하지 않는 조야한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처음에는 참회의 표시로 입다가 나중에는 정식 의복이 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그 수는 미약하지만 특별한 가르침 때문에 영향력이 크고, 특히 외부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율법주의ㆍ형식주의적 이슬람에 반대하고 신비체험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자이다. 신플라톤주의ㆍ기독교 신비주의ㆍ힌두교 신비주의 등에 영향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이슬람은 하나님과 사람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신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죄를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로 인정하여, 신인합일(神人合一)을 강조하는 신비주의가 들어갈 틈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기 쉽다. 이슬람 신비주의는『코란』에 하나님이 우리의 핏줄보다도 우리에게 더 가까운 분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에 근거하여 하나님 안으로의 몰입ㆍ체험을 강조한다. 이들은 진리가 말이나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몰입되는 체험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수피들 중에서 한 집단은 이런 체험을 갖기 위한 방법으로 한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도는 회전무를 추기도 하는데, 이들을 ‘춤추는 수도사’라고 한다. 수피는 권력화, 성인 숭배 등 내부적인 문제와 사회의 산업화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19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수피파는 현재 페르시아ㆍ인도 부근에 퍼져 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