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작동 국립묘지는 1950년대 초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의 지시로 가꾸어지기 시작했지만 이 곳에는 이미
450년전부터 동작릉이라 불리우던 능이 있다.
이 동작릉의 주인은 창빈 안씨로 조선 제 11대 황인 중종의 후궁이며 조선 제 14대 임금인 선조의 조모이다.
창빈 안씨는 손자인 선조대왕에 의해 빈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창빈 안씨는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9살에 궁녀가 되어 22살에 상궁이 되었다.
중종과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두었다.
중종이 승하한 후에도 평소 덕이 많고 온화한 성품을 높이 샀던 문정왕후의 특명으로 인수궁으로 나가지 않고 궁에 머물렀다.
그 후 제 13대 왕인 명종 4년에 사망했다.
아들이 없었던 명종은 평소 창빈 안씨의 소생들을 총애했다.
명종이 승하한 후 창빈 안씨의 둘째 아들 덕흥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 제 14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이분이 바로 선조로서 후궁 안씨가 창빈으로 추존된 것은 선조 10년의 일이다.
선조 이후 광해군, 인조, 효종, 숙종, 경종에 이르기까지 직계가 계속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후궁의 묘소임에도
능으로서의 위용을 갖추었다.
원래 이 묘소는 1550년 경기도 양주 장흥리에 있었으나 다음 해에 이 곳으로 이장되었다.
그 때부터 동작릉으로 불리웠다.
이 묘소와 묘비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54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분은 대리석으로 곡장을 둘렀고 묘갈과 혼유석, 상석, 장명등, 석인 등이 갖추어져 있어 후궁의 원묘이나
규모가 거의 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후궁의 묘에서는 보기 힘든 신도비도 갖추고 있다.
신도비
무덤 앞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놓는 것으로 죽은 이의 생애에 관한 일들을 새겨 놓은 비이다.
무덤의 남동쪽에 남쪽을 향하도록 세운다.
정2품 이상에 한하여 세우는 것으로 제5대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하였다.
공신과 같이 특별한 공이 있는 인물에 대하여는 왕명으로 비를 세우게 했는데 전해지는 것으로는
안산의 정난종신도비와 아산의 이순신신도비 등이 있다.
조선 제 19대 왕인 숙종은 창빈 안씨가 서거한 지 130여년이 지나도록 묘도에 비석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숙종 9년 이 비를 건립했다.
비의 형색을 후궁의 묘에서 보기 드문 예로서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신도비는 다른 비에서 흔히 쓰이는 거북 모양의 이수와 용모양의 옥개석 대신 웅장한 느낌의 이수와
간결한 연꽃 문양이 들어 있는 유난히 큰 옥개석을 얹고 있다.
비의 전액은 상단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서 '창빈안씨신도비명'이라 되어있다.
요덕대부 동평군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이항의 솜씨이다.
비문은 숙종 때 예조판서와 한성판윤을 지낸 신정이 지었고 글씨는 한성판운을 여섯 번이나 지낸
지돈녕부사 이정영이 썼다.
참고 : 왕과 왕비의 묘소는 능이라 하고 왕의 생모, 왕세자, 세손의 묘소는 원이라 하며 대군, 공주, 빈,
후궁의 묘소는 묘로 구분한다.
동작구에는 사육신묘, 국립현충원, 창빈안씨묘, 남관왕묘, 지덕사, 동래정씨선영 등이 자리잡고 있다.
1. 오위도총부 : 조선시대의 중앙군
도총관은 무인이 아닌 문인으로 임명
2. 예조판서 : 지금의 외교, 문화 등을 종합한 많은 행정사무를 담당했다.
3. 한성판윤 : 지금의 서울시장이라 할 수 있다.
첫댓글 미겅샘님 수고 많으셨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