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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니케아에서 니케아 신경까지
4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교회는 여전히 삼위일체 교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정의하는 방법을 분별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깊은 차원에서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 사이에 어떤 중요한 구별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예배받으셔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는 태어나고, 살고, 죽은 실제의 유대인 남자였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성경적. 신학적, 철학적으로 일관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언어를 찾아내는 일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발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는 그 진리를 바르게 말하고, 오류로부터 지키기 위해 시간과 세심한 성경적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시는 수단은 바로 성경, 시간, 그리고 깊이 사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은 종종 건전한 교리를 명확히 세우도록 교회를 돕는 다른 수단을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진리가 더 온전히 알려지고 표현되기 위해, 논쟁과 분열이 반드시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고전11:19). 니케아 신경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그러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온 신학적 전염병
논쟁은 주후 318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폭발했습니다. 아리우스(약 250∼336)라 이름하는 한 장로가 자신의 신학적 견해를 보다 더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리우스는 자신감 있고, 말에 능하며, 성경을 진지하게 다루는 교양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자신의 신념에 진실했고,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한다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아리우스가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이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리우스가 고민한 것은 “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유일성과 일체성(하나 되심, monotheism)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아리우스는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의 존귀와 주권을 수호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아버지와 똑같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고난을 받고 죽으셨으며, 한계를 경험하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연약하다, 하나님이 고통받는다, 하나님이 죽는다, 하나님이 변한다’라고 말하는 셈이 아닌가? 그것은 하나님 같지 않다.” 아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반대의 배경에는 특정한 헬라-철학적인 전제들이 깔려있었습니다. 아리우스에게 영향을 미친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는 ‘불변하고 창조되지 않은 천상의 영역’과 ‘변화하며 창조된 지상의 영역’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을 전제했습니다. 따라서 아리우스에게는, 사실상 그에게는 불경하게조차 느껴졌던,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았으며, 항상 존재하는 하나님이 유한하고 변화하는 인간이 되셨다”라는 생각이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실 수는 있지만, 아버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일 수는 없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우리는 아리우스의 논리를 살펴봄으로써 이단에 대해 한 가지 사실, “이단은 거의 언제나 한 진리를 지키려다가 다른 진리를 부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아리우스가 무엇을 믿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가르침 세 가지 예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는, 5세기 교회사가가 인용한 “아리우스의 삼단논법(Arian syllogism)”에서 온 것입니다. 아리우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을 낳으셨다면, 낳음을 받은 자는 존재의 시작을 가진다. 따라서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그는 무(無)로부터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 논리를 따라가 봅시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나셨다”는 진술은 사실입니다. 모두가 이 진술을 인정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낳아지셨다(begotten)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들’이라는 말 자체가 그것을 함축합니다. 문제는 ‘아들의 나심(begottenness)’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였습니다. 아리우스는 “낳는다는 것은 곧 시작이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의 자녀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만약 아들이 낳아지셨다면, 그는 시작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항상 존재하신 것이 아닙니다. 즉,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어떤 ‘때’에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리우스의 유명한 문구는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입니다.
두 번째 예는 같은 요점을 말해줍니다. 두 번째 예를 보면, 앞서 본 것과 같은 핵심 논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약 서기 321년경, 아리우스는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우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부터 존재했다”라는 생각을 분명히 거부했습니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은 항상 계셨고, 아들도 항상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틀렸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유세비우스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창조되기 전, 임명되기 전, 세워지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비창조된 자(unbegotten)’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아리우스의 논리는 “만일 아들이 ‘나셨다(begotten)’하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피조물(created being)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가르침 때문에 자신과 추종자들이 박해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아들은 시작이 있지만, 하나님은 시작이 없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는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예와 완전히 같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났다”라는 사실은 곧 “그에게는 기원이 있다”라는 뜻이며, 따라서 그는 참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된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리우스 신학의 기본 구조였습니다.
세 번째 예는 아리우스가 직접 쓴 시, 곧 “탈리아(Thalia)”에서 나옵니다. 이 시는 단순히 문학작품이 아니라, 노래나 찬가로 불리던 교리적 노래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훗날 이 노래를 언급하며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그 가사의 내용도 나쁘지만, 곡조조차도 나쁘다.” ‘탈리아’라는 제목은 ‘풍성함’ 혹은 ‘잔치’를 뜻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아리우스의 신학 저작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바로 이 시라는 점입니다. 이 시의 중간 부분에서, 우리는 아리우스 신학의 중심 사상을 만나게 됩니다.
“시작이 없는 분(Unbegun)께서 아들을 만드셨으니,
그분은 모든 창조된 것들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양자로서 자신의 아들로 세우셨다.
그는 하나님께 고유한 본질(proper subsistence)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도 아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이시니, 그분은 지혜의 스승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그분은 아들을 통해 창조된 모든 것에게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아들에게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분명히 말하건대,
보이지 않는 분이 어떻게 아들을 통해 보이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그 능력 안에서, 그분의 한계 안에서,
아들이 합당하게 허락된 만큼만 아버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 위격(삼위)은 존재하지만,
그들은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지 않다.”
그 마지막 문장은 “아리우스주의(Arianism)”라고 알려지게 된 교리 논쟁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논의하는 것은 단순히 신학적 용어나 형이상학적 세부 사항이 아닙니다. 아리우스적 관점의 논리적 결론은 성삼위(Trinity)의 세 위격이 서로 동등한 영광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일 수 있고, 성령도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일 수 있지만, 그들은 성부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그 방식으로 하나님은 아닙니다. 세 위격 모두 영광스럽고 찬양받기에 합당하지만, 동등한 영광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동등한 찬양을 받을 자격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비록 신플라톤주의가 이 논쟁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지만, 아리우스 논쟁은 단지 철학적인 고상한 말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심장부, 곧 복음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처음 열린 공회
320년대 초, 기독교 동방 전체가 아리우스 논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감독들이 감독들에 맞서고, 지방이 지방에 맞서며, 교회가 교회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 신학적이며 정치적인 논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황제 콘스탄틴은 325년에 니케아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약 318명의 감독이 참석하였는데, 이는 당시 전체 감독 수의 약 1/6 정도였습니다. 그중 서방에서 온 감독은 단 7명뿐이었고, 이들은 프랑스, 스페인, 카르타고, 로마 출신이었습니다. 나머지 감독들은 모두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니케아 공회는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전례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교회사 저자로,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는 다른 인물)는 “콘스탄틴은 마치 빛의 광선들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그의 자줏빛 옷은 영롱하고 찬란하였고, 그의 옷은 금과 은의 광채로 장식되어 있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콘스탄틴을 마치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유세비우스가 다소 과장했을 수도 있지만, 수년간의 박해와 적대 이후 로마 황제의 면전에서, 그것도 황제가 모든 여행 경비를 부담해 준 상태에서 회의를 열게 된 일은 감독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경험이었을지 이해할 만합니다. 참석한 일부 감독은 실제로 박해의 흔적을 그들의 육체에 지닌 채 있었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기독교회는 참으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감독들이 니케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세 개의 주요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리우스에게 강력히 반대하는 진영이었습니다. 이들은 소수였지만, 중요한 감독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안티오키아의 유스타티우스, 예루살렘의 마카리우스, 스페인의 코르도바의 호시우스(황제 콘스탄틴의 신학 고문)가 그들입니다. 또한 아직 감독은 아니었지만, 알렉산더의 오른팔이었던 집사 아타나시우스(약 293∼373)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표결권은 없었지만, 훗날 니케아 신조의 가장 끈질기고도 두드러진 수호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아리우스에게 동정적인 진영이었습니다. 이들은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이끌었는데, 그는 황제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아리우스 자신은 공식 대표는 아니었지만, 황제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고, 자주 불려 나와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중도파가 있었습니다. 신학 논쟁이 처음 벌어질 때 흔히 그렇듯, 이들이 다수파였습니다. 신학 논쟁의 핵심은 언제나 “올바른 일을 하려는 중간층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실행할 용기를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교회사 학자 필립 샤프는 이 중도파에 대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정통신앙의 본능은 가지고 있었지만, 분별력은 거의 없었다”라고 평했습니다.
이 중도파의 대표적 인물은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였습니다. 그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 신앙고백서(Palestinian Confession)’라 불리는 오래된 신앙 공식구를 채택하자고 제안했는데, 그 문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매우 포괄적인 용어로 인정하는 형태였습니다. 황제는 이 타협안을 마음에 들어 했으며, 아리우스를 지지하는 이들도 이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反)아리우스파는 우려했습니다. 그들은 신조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우스파가 정직하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명확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제 콘스탄틴은, 무엇보다 제국의 평화를 원했으나, 이 타협이 통하지 않을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조의 교리적 진술을 더 튼튼하고 명확하게 하자고 나섰습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결정적인 단어 “호모우시우스(동일 본질, 같은 본체)”를 제안한 사람은 황제 자신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제안은 아마도 그의 신학 고문 코르도바의 호시우스로부터 나온 것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호시우스는 니케아의 감독들이 합의할 수 있는 문서를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임이 선언되었고, 아리우스주의는 명확하게 정죄되었습니다.
이 “니케아의 신조”는 325년 6월 19일 처음 선포되었습니다. 이 신조는 훗날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발전되고 확고히 정리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Nicene Creed)의 핵심 신학적 사상을 제공했습니다. 이 책 전반에서 나는 325년의 이 첫 번째 교리적 선언을 “니케아의 신조”라 부르고, 보다 더 잘 알려지고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381년의 문서를 그 전통적인 이름대로 “니케아 신경”이라 부를 것입니다. 다음은 니케아 공회(325)에서 감독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니케아의 신조’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아버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신 독생자이십니다. 곧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신 분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하나님, 빛으로부터 나신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이시며, 나심은 있으되 창조된 것이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 본질(homoousios)이십니다. 그분을 통하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사람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성육신하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셋째 날에 부활하시며, 하늘에 오르셨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들, 즉“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라거나, 혹은 “그분은 무(無)로부터 생겨났다”라고 말하는 자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 다른 본질(hypostasis)이나 다른 실체(substance)라고 주장하거나, 그분이 변화나 변형을 겪는다고 주장하는 자들, 이러한 모든 자를 거룩하고 사도적인 교회는 저주(파문)합니다.
니케아 공회의 중요성은 단지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회의 자체가 무엇이었는가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조(creed) 혹은 신앙 진술(statement of faith)이 공식적으로 채택된 최초의 경우였습니다. 그 신조가 모든 교회에, 모든 곳에서 반드시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채택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회의를 “첫 번째 에큐메니칼 공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라틴어 oecumene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뜻은 “알려진 세계의 거주하는 모든 지역(the inhabited part of the known world)”을 의미합니다.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길
아리우스주의는 니케아 공회에서 정죄되었지만, 그로 인해 촉발된 신학적 논쟁은 결단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니케아 이후에도 여전히 몇몇 사람들은 “호모우시오스”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경쟁하는 여러 집단이 등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호모우시오스((ὁμοούσιος))에 굳게 매달렸고, 다른 이들은 “아들이 하나님의 본성과 유사하다”라고 주장하거나, “아들이 하나님의 활동과 유사하다”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아들이 하나님의 본질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니케아의 신학을 더 명확히 정의하고, 더 확고히 세우기 위한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때로는 제국의 권력과 정책이 이러한 노력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니케아를 지지하는 신학자들(pro-Nicene theologians)은 그 이후 남은 세월 동안, 니케아 공회의 의미를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논쟁에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일에 헌신해야 했습니다.
380년 2월 27일,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한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니케아 신조가 “우리가 믿기로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인들에게 전해주었고, 그 전통적인 형태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온 신앙”을 대표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동방의 감독들 일부가 콘스탄티노플에 모여 두 번째 보편공회를 열었습니다. 그 공회에서 발표된 첫 번째 조항은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모인 318명 교부가 세운 신앙은 폐기되어서는 안 되며, 굳건히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회가 니케아를 재확인했다고 말한 것은 분명 사실이었으나, 그 안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회는 단순히 니케아의 신조를 반복하거나 수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니케아의 신조 자체는 거의 잊혀졌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콘스탄티노플은 “새로운 신조”를 세운 셈이었습니다. 이 신조는 아마도 니케아 이후 발전한 예전적 신앙고백 공식에서 취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콘스탄티노플의 감독들 자신은 새로운 신조를 작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단지 325년에 확증된 정통 진리를 확장하고 재확립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니케아의 정통신앙, 비록 그것이 325년 원문 그대로의 신조는 아닐지라도, 이 두 번째 보편공회, 곧 콘스탄티노플 공회에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립되었습니다. 이 공식 신조는 종종 “니케노-콘스탄티노폴리탄 신경”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다소 길기 때문에, 비록 그 문장들이 직접 니케아에서 온 것은 아닐지라도, 그 신학적 내용은 니케아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81년에 승인된 이 신앙고백서를 간단히 “니케아 신경”이라 부릅니다. 만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전 세계 교회가 보편적으로 수용한 신조를 하나 꼽는다면, 바로 이 신조가 그 하나입니다. 전통적으로 사도신경은 열두 사도에 맞추어 열두 조항으로 나뉘어 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니케아 신경도 열두 조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내가 집중하여 다루려는 단어들과 구절들을 볼드체(밑줄)로 표시했습니다
| 1항 | 우리는 한 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
| 2항 | 또한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독생자, 세상이 있기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나신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하나님, 빛으로부터 나신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 나심은 있으되 창조된 것은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one substance)을 가지신 분,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
| 3항 |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
| 4항 | 그분은 또한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난을 받으시며 장사되셨습니다. |
| 5항 | 그분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
| 6항 | 그분은 하늘에 오르시어,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
| 7항 | 그분은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의 나라(왕국)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
| 8항 | 또한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
| 9항 | 또한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
| 10항 |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한 하나의 세례를 고백합니다. |
| 11항 |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기다립니다. |
| 12항 | 그리고 오고 있는 세상의 생명(영원한 생명)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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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은 교회에서 보통 열두 개의 조항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행과 구절로 나누어 보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니케아 신경을 암송할 때는 보통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즉, 성부에 대한 짧은 부분, 성자에 대한 긴 부분, 그리고 성령(그리고 성령께서 창조하시는 신자와 교회에 대한 삶)에 대한 마지막 부분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앞으로의 장들에서 취할 접근 방식은 위에서 이탤릭체로 표시된 일곱 개의 단어나 구절들을 창으로 삼아 니케아 신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중 첫 번째 단어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