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답사기
6월 18일 오전 10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뉴욕에 도착하니 6얼 18일 오전11시였다. 시차가 -13 시간이니까 14시간이 소요되었다. 옛날 어른들은 미국은 한국 땅 아래라고 했던말이 기억난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로 깊은 우물을 파니까 그 우물아래서 개짖는 소리가 들렸다나? 그곳이 미국의 개 짖는 소리라고도 했다.
사실이지 한국의 지구 건너편에는 미국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구의 지름이 12,756 Km 이니 지구를 께뚫을 수도 없겠지만, 지구 중심에는 핵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구의 구조를 살펴 보면,
지구의 밖은 대기권으로 1,000Km 이지만, 그 중 30 Km 이내에 전체 대기 질량의 99%가 존재한다고 한다.
대기권은 지표 10 Km 이내를 (1).대류권이라 부르며 공기의 대류현상에 의한 기상현상이 일어 나는 곳이다. 기층이 불안하며 올라갈 수록 온도가 하강한다.
지상 10-50 Km 사이를 (2).성층권이라 부르며 오존층이 있어 자외선을 흡수하므로 기온상승, 대류현상이 없어서 기상현상이 없는 곳이다.
지상 50-80 Km 를 (3).중간권이라 부르며 대기권에서 온도가 가장 낮다. 약간의 대류현상은 일어나지만, 수증기가 없어 기상현상이 없다.
지상 80 Km 이상을 (4).열권이라 부르며 전리층을 형성 오로라(극광)현상이 일어난다. 밤과 낮의 온도차가 크다. 또한 오존층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해로운 자외선을 흡수하여 생물을 보호하는 중요한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기이 있어서 태양계의 천체조각들이 지구의 인력으로 지구에 떨어지는 유성은 대기와의 마찰로 빛을 내는데, 보통 지구 표면 100-130 Km 높이에서 부터 보이기 시작하고 대부분은 20-90 Km 높이에서 완전히 연소되어 소멸된다.
전리층은 70-400 Km 범위에 존재하는 전기를 띤 입자들의층으로 지상에서 발사된 전파를 발사하므로 방송이나 무선통신이 멀리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구의 기상현상은 대류권에서 일어 나기 때문에 국제선 여객기가 보통 8-9 Km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국제선 여개기를 타면 밖은 언제나 맑은 하늘이며 기상 현상이 거의 없는 지역이기네에 아주 고요하다. 옛날에는 구름위로 인간이 올라 가 볼 수가 없었기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기상에서는 온 천지가 암흑이고 세상이 전부 암흑같았지만 사실은 그 현상은 대기권 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그저 하느님의 조화로만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구름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수가 없었기에 중국의 황산에 올라 바라 보는 운무의 현상은 정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몇 년 전에 올라 본 황산의 절경은 비행기를 타고 구름위 올라 보지 못한 옛 사람들에게는 천국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구의 내부 구조는 우선 지표면인 (1). 지각으로 지각은 대륙지각과 해양지각으로 구분되는데, 대륙지각은 두께 35Km, 밀도 2.7 ,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해양지각은 두께 5 Km, 밀도 3.0, 현무암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지하 2,900 Km 까지를 (2). 맨틀이라 부르며 유동성이 있는 감람암질로 되어 있고, 밀도는 3.4 이다.
그 내부는 (3). 핵이라 부르며, 액체 상태인 외핵과 고체상태인 내핵으로 구분하며, 철과 닉켈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며, 밀도가 10-16 정도로 높다.
따라서 인간이 지구의 내핵까지를 관통하여 지구 반대편가지 지구를 구멍 낼 수는 없다. 먼 옛날의 땅굴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는 이웃동네나 건너 마을의 소음이든가 아니면 지어낸 허무맹랑한 거짓말일 것이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자유여행사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 중에서는 우리들이 제일 꼴찌였다. 우리 부부까지 전부 8명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6명 모두가 여행사 직원과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 연장자인 사람은 보통키에 얼굴이 햇볕에 검게 그을린듯한 인상에 70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체구는 다부져 보였고, 그의 부인은 1미터 65센티 정도의 큰키에 약간 말라 있었다. 2-3일 여행 중에 느낀 인상으로는 그는 목사로 보였고, 부인은 전업 주부로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은 정말 목사였고, 부인은 간호사 출신으로 수술실 전문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고 했어며, 현재는 수원의 어느 큰 교회의 목사 아내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다음 부부는 용인의 700평 전원 주택에 사는 사람으로 남자는 고향이 전라도 광주이며, 65세이고 여자는 7-8세 손아래로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는 중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초창기 80년 도에 인도네시아에서 수년간 교사생활을 지냈다고 했다. 끝까지 물어 보지는 않아서도 부인도 교사 출신으로 보였다. 남자는 장발에 골격이 운동 선수같아 보였고, 알고 보니 태권도 유단자라고 했다. 일찍부터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갖고 여러번 투자 끝에 지금은 서울 근교의 교외에 제법 많은 땅을 갖고 있는 부자라고 했다. 부인은 아주 앳되게 보이는 말이 없는 새침뜨기형 같았다. 나머지 한 가족은 남자가 56-7세의 부모님의 고향은 광주이나 부산과 대구에도 오래 살았다고 했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방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고, 처음에 토지공사에 입사하여 주택공사와 통합이 된 후에 퇴사를 하고 현재는 법인체의 감정평가회사에서 이사로 근무 중인 감정평가사 였다. 그의 부인은 간호사 출신으로 결혼하면서 남편의 권유로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성격이 아주 활달하고 전라도 고창이 친정인 사람이었다.
우리 8명은 여행사 가이드가 직접 운전해 온 10 인승 규묘의 벤을 타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약 40 여분 달려 간 곳에서 한인타운이 있었다. 4차선 도로 양 옆으로 한글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고, 길가 어느 식당에서 된장찌게를 먹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식당이었다. 옆 좌석에도 한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인도를 두 부부 노인이 다정스럽게 걸어 가고 있었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타국 땅에서 살아온 흔적들이 그대로 베여 있는듯한 노부부였다. 서로를 위하는 정성과 믿음이 그대로 느껴지는듯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던 잠깐의 그 모습에서 나는 야릇한 향수(?)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고독같은 것을 읽었다.
식사 후 10 여분을 달리자 맨하탄으로 들어 가는 터널이 있엇다. 터널 공법이 한국의 가거도 터널과 같은 해저 침잠식 도관으로 연결된 터널이었다. 터널 설치 연대가 1930년 경이라니 놀랄 따름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 터널을 지나는 것을 조금은 꺼린다고도 했다. 러시아워에 엄청난 혼잡으로 터널 내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모두들 불안해 한다고도 했다. 언젠가는 이 터널이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라고들 했다. 오후 시간인데도 꽤 지체되고 있었다. 이곳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고 회사와 개인에 따라서 오전이나 오후가 될 수가 있다고도 했다. 터널을 지나 맨하탄을 들어가니 할렘가가 나타났다. 이곳 할렘가에는 대부분 흑인들이나 멕시코계의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할렘가 중앙에 할렘아폴로극장을 경유하여 콜롬비아 대학으로 갔다. 시내 한 가운데에 자리한 유명 법학대학으로 캠퍼스가 거의 없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학생같은 이들이 아무데서나 앉아서 책을 보고 있는 광경이었다. 광장의 계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광경은 정말 감명 깊게 보였다.
맨하탄에서 가장 부러운 곳은 센트랄파크 공원이었다. 맨하타의 절만 정동 걸처있는 공원으로 면적으로도 맨하탄의 4-5분의 1 정도를 찾지하는 넓은 면적을 공원으로 만들어 도심속의 숲을 형성한 것은 정말로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해 부러움의 상징이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입구는 두 곳이라고 했다. 우리가 들어 간 곳은 대로에 있는 로타리에서 정문으로 연결된 곳으로 차량이 통행하지 못하는 곳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 누군가의 동상이 서 있었고 우리들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원으로 들어 가는 입구는 큰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고, 들어 가서 50-60 미터 거리에 넓은 바위가 있었다.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면서 기념사진 찍는 기분도 괜찮은 듯 했다. 우리들 8명만이 여행하는 길은 조금은 심심하기도 했지만 우리들만의 공간이라 아주 편한 도보 여행이었다.
뒤이어 메트리폴리탄 박물관을 들렸다. 박물관 관람료는 20달라이었지만, 1 달러를 기부하면 관람은 무료였다. 생각보다 엄청 넓은 박물관이었고,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들은 문외한에게는 프랑스 루블박물관에서 보는 그림들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한국관도 있었는데, 규묘면이나 내용면에서 작은 방이었고 연이어 있는 중국관은 꽤 넓은 공간과 전시물도 제법 그 규묘를 자랑하고 있었다. 성요한 성당은 규묘가 대단하였고, 유럽의 이른있는 성당에 비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규묘와 내부장식이었다. 어느 한 공간에는 육체는 인간이고 머리는 염소같은 형상을 한 많은 병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무언가 의미가 있을 터였지만, 알 수가 없었다.
박물관 괌람을 시간에 쫒겨 허급지급 마치고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자동차 매점에서 사 먹은 아이스크림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그 외 줄리아드 음대와 링컨대학교를 경유해서 가는 길에 한식으로 식사를하고 맨하탄에서 1 시간 정도 떨어진 호텔을 찾았다.
뉴저지주에 위치한 가버너 호텔이었다.
조용한 교외에 지어진 제법 규묘있는 호텔이었다. 오후 8시 경이었는데, 해가 아직 서편 하늘에서 반 중천에 떠 있었다. 아내와 둘이서 호텔방을 나와 호텔 내의 주변을 둘러 보았다. 제법 넓은 주차장과 별도의 아주 넓은 운동장 비슷한 공간이 있었다. 아마도 훗날의 증설을 위해서 마련된 부지 같았다. 기후는 한국의 6월 말 보다 낮동안은 다소 더운 날씨였지만 저녁은 좀 쌀쌀함을 느낄 정도의 시원한 날씨였다. 이렇게 해서 미동부 여행의 하루 일정이 저물었다.
호텔에서

호텔에서

호텔에서

멘하탄

콜롬비아대학

콜롬비아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