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문화유적 탐방
송은석(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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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도동서원을 아십니까? (2), 서원건축의 백미
프롤로그
지난 2015년 우리나라는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다 부득이 포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2019년 7월을 목표로 여기에 다시 한 번 더 도전장 내민다. 참고로 등재를 추진 중인 한국의 서원은 모두 9개로 일명 ‘우리나라 9대 서원’으로 불리는 서원들이다. ‘소수서원(영주)·도산서원(안동)·병산서원(안동)·도동서원(대구)·남계서원(함양)·옥산서원(경주)·필암서원(장성)·무성서원(정읍)·돈암서원(논산)’. 이들 9개 서원중에서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도동서원을 꼽을 수 있다.
위계성과 대칭성
조선시대 서원건축의 대표적 특징이라면 ‘위계성’과 ‘대칭성’을 들 수 있다. 위계성은 서원이 들어선 땅과 그 땅위에 세워진 서원건축물들의 높이가 앞쪽에서 뒤쪽으로 가면서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대칭성은 서원공간의 앞뒤를 잇는 중심축을 기준으로 좌우가 닮은꼴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서원건축의 특징은 앞뒤로는 위계성이요, 좌우로는 대칭성인 셈이다. 유교 예법에 의하면 자리는 앞보다는 뒤를, 낮은 곳 보다는 높은 곳을 윗자리로 친다. 이는 생물·무생물 할 것 없이 공통이다. 이러한 까닭에 도동서원도 신의 공간인 사당이 사람의 공간인 강당보다는 뒤쪽의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도동서원은 공간의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마치 물감을 칠한 마분지를 반으로 접었다 펴는 데칼코마니처럼 말이다. 그런데 도동서원에서 좌우 ‘틀린 그림 찾기’를 해보면 동재·서재를 중심으로 일부 틀린 그림이 있긴 하다. 쪽마루와 대청의 벽·창문·기둥 등이 그러한데, 편의성이나 건축기법 등에서 서재보다는 동재가 한 수 위다. 이는 동재가 상급생 기숙사, 서재가 하급생 기숙사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도동서원 건축의 또 다른 특징은 ‘파격(破格)’에 있다. 서원은 유교적 예제, 다시 말해 유교문화를 건축물에다 구현한 것이다. 서원건축의 특징으로 ‘위계성’과 ‘대칭성’을 드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런데 도동서원에는 이러한 유교적 예제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서 ‘파격의 미’라고 하는 것이다. 도동서원의 교문인 환주문은 출입구의 높이가 채 170cm가 안 된다. 게다가 바닥 중앙에 연꽃봉우리를 조각한 커다란 돌이 하나 박혀 있다. 그래서 환주문을 출입하려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살펴야 통과가 가능하다. 이는 공경을 표하라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도동서원 강당인 중정당 기단을 보면 사용된 돌의 재질·색깔·모양 등이 각양각색이다. 모양의 경우 4각·6각·8각 심지어 12각형 돌도 3개나 있다. 또한 기단부에 꽂혀 있는 4개의 용머리와 2개의 세호[작은 호랑이] 그리고 뜰 상단부 석축 중앙에 박혀 있는 자라머리 등도 다른 서원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것들이다. 중정당 뒤편도 마찬가지다. 땅바닥에 붙여 낮게 설치한 두 개의 굴뚝과 계단식으로 꾸며진 화단. 내삼문의 문은 3개인데 문으로 이어진 계단은 2개뿐인 이상한 계단. 계단 기둥 돌에 조각된 연꽃봉우리와 태극문양·만(卍)자 문양 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둔 샘. 이것뿐만이 아니다. 내삼문 앞 계단 중앙에 박혀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동물 머리와 그 뒤편 바닥 돌에 새겨진 미스터리한 꽃잎 문양. 그리고 땅바닥이 아닌 사당 담벼락에 구멍을 내어 설치한 감[축문 등을 태우는 곳] 등도 그러하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용머리·세호 등과 같은 많은 돌조각들은 한 때 도난을 당했다가 되찾은 것들이다. 하지만 내삼문 계단 좌우 난간석에 있었던 1쌍의 상서로운 동물 조각만큼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쌍귀부와 벽화
일반적으로 비석받침으로 사용되는 돌거북을 귀부라고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몸통은 분명 거북인데 머리가 용이었다가 거북이었다가 한다. 그러나 어쨌든 거북받침이라는 뜻에서 귀부라고 한다. 그런데 ‘쌍귀부(雙龜趺)’라는 것도 있다. 말 그대로 거북이 2마리라는 뜻이다. 현재 국내에는 경주에 3개, 포항에 1개 모두 4개의 쌍귀부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모두 신라시대 때의 유물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도동서원의 한훤당 김굉필 선생 신도비를 받치고 있는 귀부 역시 쌍귀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일한 조선시대의 쌍귀부이다. 한편 도동서원 사당 내부에는 사당 창건 당시의 작품으로 알려진 두 점의 벽화가 있다. 하나는 ‘설로장송’이요, 다른 하나는 ‘강심월일주’라는 제목까지 달고 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의 벽화여서인지 그 보존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신도비의 쌍귀부도, 사당 내부의 벽화도 세상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일까.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해 보임에도 아직 그 어디에도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
에필로그
도동서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표본이자 백미이다. 해마다 수많은 전통건축 전공자들이 도동서원을 다녀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혹시라도 오늘 이야기한 도동서원 건축의 파격미를 확인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동서원 중정당 뜰에 서보라. 그리고 400년 전 도동서원을 기획하고 설계했을 그 분의 입장이 한 번 되어보라. 이제껏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도동서원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도동서원의 파격,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소재지: 대구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