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리
최 성 길
가마득한 옛날이야기이다. 괴정에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하면서 피아노를 한 대 들여놓았었다. 피아노 학원엘 다니는 연년생 어린 세 딸을 위해서였다. 애들이 너무 좋아했다. 피아노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그날 이후 내 집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큰애가 출가할 즈음,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한 해가 다르게 정원의 나무를 관리하는 것도 힘이 들고, 연못의 고기를 돌보는 것도 힘에 부쳤다. 게다가 애들이 다 출가하고 나면 아내와 둘만 남게 될 것이니, 큰 집도 필요 없고, 세간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버릴 건 다 버리고 이사를 했다. 그러나 애들의 손때가 묻은 피아노만은 가지고 왔다. 출가한 딸들이 들리면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나의 바람이었을 뿐, 막내딸마저 출가한 후로는 내 집에서 피아노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나보다.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것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영원히 사라져서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것들도 다시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내 집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줄로만 알았던 피아노 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출가한 막내딸이 일을 나가게 되면서부터 연년생 어린 두 자매를 데리고 우리 내외가 사는 아파트로 솔가(率家)해왔다. 자연 두 자매를 돌보는 일은 내 아내에게 맡겨졌다. 마침 우리 아파트 뒤에 피아노 학원이 있어 거기에 두 자매를 함께 보냈다. 피아노학원 원장 선생님이 우리 손주들을 무척 예뻐해 주셨다. 이따금 피아노 연주 대회에도 데리고 나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큰상을 받아오곤 했었다. 어린 손녀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들 엄마가 치던 피아노를, 대를 이어 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들 엄마인 내 딸에게서는 느끼지 못 했던 또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어 너무 좋았다.
연년생 손녀들이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작은애가 조기졸업을 하는 바람에 두 자매가 같은 해에 대학 진학을 하게 되었다. 큰애는 서울로, 작은애는 포항으로 진학을 했다. 손녀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로는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겠거니 기대를 했으나, 방학이 되어도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피아노 소리를 기다리다 못 한 내가 피아노를 한 번 쳐 보라고 채근을 할라치면 “네!” 대답만 하고는 그만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작심을 하고 캐물었더니, 피아노가 너무 낡아 못 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속상해 할까봐 말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피아노도 나처럼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힘들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조율사를 불렀다.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완전히 고물이 되어서 못 쓰게 되었단다. 이런 고물 피아노는 중고로 팔려고 해도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버려야 하는데, 버리는데도 비용이 많이 든다. 버리는 돈도 돈이지만, 버리는 장소까지 운반해야 하는 비용이 더 들겠단다. 야속한 말만 골라서 내뱉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휭하니 달아나버리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또 다른 조율사를 불렀다. 그 역시 버리는 게 정답이란다. 마지막으로 옛날에 피아노를 샀던 가게를 찾아가 보았으나 허사였다. 피아노 가게가 있던 건물에는 옷 가게가 들어서있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의 세 딸들과 손녀 둘까지 대를 이어 집안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피아노 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 하게 되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그날 밤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 까짓것 내다버리고 하나 새로 들이면 그만이겠지만, 대를 이어 손때가 묻은 피아노를 그리 쉽게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가 우연히 어느 피아노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텅 빈 가게에 노인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가게를 지키고 있던 노인이 예를 갖추어 손님을 맞는다. 왠지 그런 그 노인의 기품 있는 모습에서, 어쩌면 내 피아노를 살려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간의 사정을 말하고 출장을 의뢰했다.
피아노 내부를 살펴보던 노인이, 피아노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아니, 이럴 수가?!” 하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더니, 내게도 보라며 건넨다. 1977년 5월 23일, ‘영창피아노사’에서 발행한 영수증이었다. 1977년이면 45년 전이다. 그 노인이, 그 영수증을 보고 그리도 놀란 것은, 그 영수증이 바로 자기 가게에서 발행한 영수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가게에서 발행한 영수증이란 말은 이 피아노가 자기 가게에서 판매한 피아노란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이 노인에게서 이 피아노를 샀다는 말이다. 내가 피아노를 샀던 가게를 찾아가보니 이미 없어졌더라고 했더니, 오래 전에 지금의 자리로 이사를 했단다. 이런 인연도 있구나싶어 이번에는 내가 깜짝 놀랐다.
여기저기를 두드려보고 살펴보고 하더니, 피아노 건반이 많이 파손되었다. 전부 수거해 가지고 공장에 보내서 새로 만들어 와야 한다. 조율도 너무 오래 하지 않고 방치해 두어서 상태가 아주 좋지 않지만 손을 보면 쓸 수는 있겠단다. 1주일 후에 다시 오겠다더니, 약속한 1주일이 체 되기도 전에 새로 만든 건반을 가지고 왔다. 건반 하나하나를 제자리에 조립하면서 일일이 줄로써 몇 번씩이나 갈고 다듬는다. 조율까지 마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마침내 소리가 돌아왔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조율사들은 버리라고 했지만, 나의 세 딸들과 손녀들까지 2대애 걸쳐 손때가 묻은 피아노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애를 태우다가 끝나지 않은 인연을 다시 만나 잃어버린 소리를 되찾았다. 바라는 바가 지극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다시 집안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니 기분이 날아 갈 것만 같다. (202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