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수지역 산업단지에서 유독가스가 누출되어 68명의 근로자가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회사 측에서 초기에 포스겐이라고 하였고, 한 전문기관에서도 포스겐이 맞는다고 한 것이 모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일부 근로자들은 상큼한 풀향기가 난다는 것을 들어 포스겐이라고 주장하였다. 일부 근로자는 눈도 뜨지 못하고 호흡하기 힘들었으며, 평상시 나지 않는 냄새가 심하게 났고, 누출 직후에 공장 주변에 매캐한 가스 냄새 일부가 남아 눈과 코 등을 따갑게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누출 가스가 포스겐이라는 보도는 인근 사업장의 근로자는 물론 여수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포스겐은 매우 독성이 강하여 누출되면 다수의 사망자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는 즉시 사고를 조사했는데, 공학적으로 포스겐 누출보다는 염화수소의 누출 가능성이 높고, 노출 근로자들의 증상과 경과를 보아서도 염화수소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일부 근로자들이 1994년도에 같은 회사(같은 공정이지만 현재는 협력업체로 분사되었음)에서 발생하였던 포스겐 누출사고의 경험을 들어 포스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향후 유사 누출사고에 도움이 되도록 포스겐과 염화수소의 차이점에 대해 소개한다.
사건 개요
2005년 7월16일 0시경에 여수 산업단지 내 M사의 의약품 중간제품 생산공장에서 유해가스의 누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공정은 아민계 화합물과 톨루엔에 포스겐을 투입하여 완전 반응시킨 후 톨루엔을 투입하여 의약중간제품을 얻고 부산물로 염화수소가 발생한다. 이때 반응후 남은 톨루엔과 부산물인 염화수소는 진공증류를 통해 중화조로 이송하여 제거하는데, 이 과정에 설치된 배관의 드레인 밸브를 잠그지 않아서 누출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밸브는 사건 발생 3일전에 교체된 것이다.
염화수소는 약 10kg 정도가 누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의 기류를 감안할 때 확산 거리는 약 200m 내외로 추정되었다. 유해가스에 증상을 느낀 근로자는 주로 기류 방향에 위치한 사업장에서 발생하였다. 사건 발생 후 회사 측은 사고를 자체적으로 수습하려고 하고 바로 관계당국에 신고하지 않다. 사고는 응급실에 환자가 많이 오는 것을 보고 소방서에서 추적하여 알게 되었다. 여수시나 산업안전공단은 사건 발생 4~6시간이 지나서 소방서의 통보에 의해 사고 발생 상황을 알게 되었다.
65명이 병원 진료를 받았고 24명은 외래 진료를 받았거나 하루 입원 후 퇴원하였으며 37명이 2일 이상 입원치료를 받았다. 사건 발생 사업장의 근로자 1명은 비교적 중독이 심해 동맥내 산소농도가 떨어져서 인공호흡기로 치료를 받았으나 곧 회복되었다.
1994년의 포스겐 누출 사고
1994년 8월8일 H사의 TDI제조공정 분리탑 하부의 배관이 부식에 의해 파열되면서 유해가스가 배출되어 인근 사업장의 근로자를 포함한 56명의 중독자가 발생하고, 이 중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염화수소에 의해 부식된 배관이 내부 압력 상승에 따라 파열되어 이를 통해 내부에 있던 포스겐, 염화수소, TDI(톨루엔디이소시아네이트)가 누출된 사건이었다. 당시 일부 작업자들은 방독면을 착용하였지만, 누출량이 많아 정화통이 오염되면서 유해가스를 마셔 사망자와 중독자가 발생하였다.
포스겐
포스겐은 1812년에 처음 합성된 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화학무기로 사용하였다. 독일군은 맨 처음에 화학무기로 염소가스를 사용하였다. 염소가스는 고농도에서 치명적이지만 자극적인 냄새로 저농도에서도 쉽게 감지되므로 실제 치명적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독일군은 자극이 없으면서 독성이 강한 포스겐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포스겐을 염소가스와 혼합하여 추운 날씨에도 잘 퍼질 수 있게 하였다.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120만 명의 군인이 화학가스에 노출되었고, 10만 명이 사망하였는데 이중 80%가 포스겐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스마스크가 개발되면서 포스겐은 1917년에 머스타드 가스로 대체되었다. 효과적인 가스마스크의 개발로 포스겐은 더 이상 화학무기로 사용되지 못했다.
포스겐은 화학공장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노출될 수 있다. 포스겐은 상온에서 무색이며 저농도에서는 덜 익은 옥수수 또는 새 건초와 같은 냄새가 나고 고농도에서는 숨 막힐 듯한 냄새가 난다. 저농도에서는 곰팡이 냄새, 퀘퀘한 냄새 등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건강장해를 일으키는 수준의 노출에서도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즉 냄새는 유해 농도의 경고 지표가 되지 못한다. 포스겐의 냄새 역치(냄새를 느끼는 최소농도)가 OSHA 허용기준의 5배 수준이기 때문이다. 포스겐은 노출되어도 냄새나 자극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피하지 않고 깊이 오랫동안 마시게 되므로 심한 건강장해를 유발하게 된다.
포스겐의 OSHA 허용농도는 0.1ppm이다. 생명이나 건강에 즉시 위험을 주는 농도는 2ppm이다. 단시간 노출되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농도는 0.2ppm이다. 냄새 역치는 0.4~1.5ppm이다. 포스겐은 비점이 8℃이며, 상온 20℃에서 포스겐 증기압은 1215mmHg 이다. 포스겐은 물에 소량 녹는다.
포스겐은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며 건강한 피부로는 침투되지 않는다. 폐기능이 손상되어 저산소증에 빠진다. 포스겐은 젖은 피부에 닿으면 자극과 발적을 일으킨다. 공기 중 고농도의 포스겐은 각막의 염증과 혼탁을 일으킬 수 있다.
포스겐은 노출초기에 자극은 크지 않지만 일정 시간 후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초기 증상은 기침, 가슴 답답함, 구역과 구토, 두통, 눈물 등이 있다. 포스겐은 물에 잘 녹지 않아 호흡기로 흡입되면 상기도에는 큰 영향이 없고 폐포(허파꽈리) 부분까지 내려가 세포를 손상시켜 폐에 물이 차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초기에는 증상이 없는 시기가 있을 수 있다. 노출 후 30분에서 48시간동안 증상이 없다가 포스겐이 폐포를 손상시키면 폐수종이 오고 호흡곤란이 와 사망한다. 폐수종이 오면 폐에 물이 차므로 다량의 거품형태의 객담을 동반하고 심한 통증이 있는 반복적이 기침이 발생한다.
포스겐은 용혈현상, 메트헤모글로빈혈증, 골수 억제, 빈혈 등을 일으키므로 일반혈액검사로 알 수 있다. 고농도에서는 간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어 간기능저하 소견이 나타난다. 신장의 괴사와 기능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포스겐에 대한 해독제는 없고 증상에 대한 치료를 한다. 처음 48시간 내에 살아남는다면 거의 회복된다. 포스겐은 발암성은 없다.
염화수소
염화수소는 무색의 가스로 날카롭고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 염화수소는 비점이 -85℃로 상온에서는 기체상태이며, 공기보다 약간 무겁고 대기 20℃에서 물에 녹는 정도는 67%이며 증기압이 3만 789mmHg이다. 염화수소가스는 공기 중에 노출되면 대기 중의 수분과 반응하여 수증기 형태를 띤다. 이 수증기는 부식성이 있고 5ppm 이상이 되면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
냄새의 역치는 0.5ppm이지만 노출기준인 5ppm에서도 50% 정도는 냄새를 맡지 못할 수도 있다. 염화수소가스는 코, 목, 호흡기의 점막을 강하게 자극한다. 보통 50~100ppm에서 1시간을 견디기 어렵다. 보통 20ppm 이하에 순간적으로 노출되어도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건강의 이상이 없다. 50ppm 이상에 노출되면 심한 건강장해가 나타날 수 있다. 미국 OSHA의 노출기준은 5ppm이다.
염화수소가스에 주로 손상되는 부위는 호흡기이다. 기침과 천명(숨쉴 때 쌕쌕거리는 소리)이 나타나고 호흡곤란, 가슴이 답답함,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염화수소는 일부 수용성이 있어 상기도의 손상과 부종을 초래하여 질식을 일으킬 수 있다. 일부는 폐포까지 들어가 폐수종을 일으켜 사망할 수도 있다. 폐기능 저하는 노출 후 7~14일이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위장통과 구토와 구역질이 나타난다. 노출부위의 눈에 통증이 오고 눈물이 난다. 피부는 발적과 통증이 나타나고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염화수소에 대한 해독제는 없다. 치료는 호흡곤란에 대해 기관지확장제나 산소로 증상 치료를 한다. 기관지 경련이 와서 호흡 곤란이 오면 기관지 삽관술이나 기도절개술을 하여 인공호흡을 한다. 심한 증상을 보인 환자는 입원시켜 관찰하여야 하나 경미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나중에 나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증상이 1~2일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소량의 염화수소가스에 한 번 노출된 사람에게서 후유증은 없다. 그러나 많은 양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영구적인 폐의 손상이 올 수 있다. 소량이지만 만성적인 노출도 폐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염화수소는 발암성은 없다.
누출가스가 염화수소라고 판단하는 이유
산업안전공단에서는 설비에 대한 공학적인 검토에 의해 누출가스가 포스겐이 아니고 염화수소가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의학적 이유에서 누출가스는 염화수소 가스라고 판단하였다.
첫째 포스겐과 염화수소의 냄새 역치의 차이이다. 포스겐의 냄새역치는 0.5ppm으로 노출기준 0.1ppm의 5배 수준으로 노출기준 이하에서는 근로자들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만일 포스겐 냄새를 맡았다면 이는 이미 건강장해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염화수소는 냄새의 역치가 0.5ppm 또는 그 이하 수준으로 노출기준 5ppm의 1/10 수준이다. 물론 5ppm에서도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염화수소는 냄새를 맡거나 자극을 느꼈다 하더라도 대부분 건강장해에 영향이 없는 수준이다.
둘째 노출 근로자들의 건강상태이다. 이번 사건의 재해자는 총 68명으로 대부분 근로자들이 냄새나 자극을 느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입원하고 있던 근로자 45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39명이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데 다수가 자극증상이었다. 특히 누출 지점에서 바람이 직접 부는 방향에 위치한 근로자들은 모두 자극증상을 호소하였다.
비염이 있는 근로자, 마스크 착용자를 제외하면 2명만이 냄새를 맡지 못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냄새를 맡았고 그것이 포스겐이라면 이들의 대부분에게서 건강장해가 나타나야 하고 누출지점에서 가까운 근로자들은 사망 등 심한 건강장해가 나타났어야 한다. 또한 냄새를 맡지 못한 인근 사업장의 근로자에게서도 호흡기의 장해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누출 사고를 수습하던 한 명의 근로자를 제외하고 모든 근로자에게서 폐나 혈액학적 이상 소견을 보인 근로자는 없었다. 즉 냄새로 인지되는 노출 강도에 비해 증상이 경미한 것으로 보아 이는 포스겐이 아니고 염화수소가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염화수소와 포스겐의 물리화학적 특성이다. 이 두 가스 모두 공기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 않는다. 염화수소가 포스겐보다 가볍고 증기압이 10배 정도 커서 더 쉽게 멀리 확산될 수 있다. 염화수소가 수용성이 있으나 수증기화 하므로 수증기나 가스 상태로 확산된다.
포스겐에 대한 오해
이번 누출 사고의 원인을 포스겐으로 믿게 된 동기는 회사 측이 초기 사건 발생 후 포스겐이라고 한 것과 일부 근로자들이 포스겐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 것이다.
회사 측이 포스겐이라고 한 것은 초기에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포스겐을 사용하는 공정에서 발생하였으므로 일단 포스겐 누출로 의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근로자들이 풀잎 향을 맡았다고 하고 그 냄새는 1994년 포스겐 누출 사고 때 냄새와 같다고 하는데, 이것은 염화수소의 냄새를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1994년 사고 당시 포스겐이 누출되었지만 동시에 염화수소와 TDI도 누출되었다. 염화수소는 포스겐에 비해 더 쉽게 멀리 확산된다. 1994년 당시 냄새를 맡았지만 건강장해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들이 맡은 냄새는 포스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염화수소에 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
여수 산업단지에서는 다양한 유독가스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사전 예방은 물론 사후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나 이번 사고에서도 사후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4년 누출 사고 당시에도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번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독성 화학물질이 누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독성이 적은 염화수소이었지만 향후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고, 그 때 누출될 수 있는 가스는 포스겐은 포함한 모든 유독가스이다. 자칫 이번 사고의 원인을 무리하게 포스겐이라고 주장하다가 문제의 초점이 흐려져 염화수소가스라는 것에 안도하는 상황이 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