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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선집 46권 4편
우리의 사명과 책임 (훈독본) 9270
1971.08.13 (금), 한국 청평수련소
금번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이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를 혁신하고, 우리의 사명의식을 고취하면서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겠다고 새로이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우리의 사명과 책임'이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짊어진 책임
우리의 사명은 대한민국내의 어떤 일단을 책임진 입장에서의 사명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더 나아가 세계를 넘어서 전체의 섭리적 관점에서 본 사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명자는 과거를 완성시킬 수 있고, 현재에 새로운 하나의 승리적 기점을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새로운 출발의 기점을 마련해 놓을 수 있는 사명을 해야 합니다.
6천년 역사를 재탕감하는 비운의 노정을 걸어온 통일교회
지금까지 6천년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아담이 타락한 이후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섭리가 출발됐습니다. 역사는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소모해 왔으며, 막대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 전체의 희생의 대가를 다시 한 번 실체적으로 탕감하기 위한 가치적 내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섭리의 뜻이 오늘의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출발했습니다.
통일교회가 기독교와 한국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할 때에 기독교가 반대하고 한국 정부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6천년 역사를 재탕감하는 비운의 역사의 고빗길을 다시 걸어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종적인 승리의 터전을 세워 가지고 그것을 횡적으로 이어받게 하여 종족적인 환경을 거쳐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 무대까지 확대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은 선생님이면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은 사명만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사가랴 가정과 요셉 가정이 있어 가지고 종족적 가인형과 아벨형의 협조의 터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터전을 기반으로 하여서 이스라엘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을 갖추지 못한 예수는 필시 비운의 운명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역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인 한 개인과 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서 가인적인 가정과 아벨적인 가정이 하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원을 모색하고 나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적 터전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재탕감의 노정을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이런 경지에 처해 있는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의 개교회를 책임진 여러분은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자리
이스라엘 복귀역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선조들이 오늘날 재림부활의 한때를 바라며 섭리를 협조해 나오던 사실을 미루어 볼때, 재림주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재림부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현재는 어떤 입장이냐?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서 한 군을 대표하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과 그러한 기준에 서게 된 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군과 국가의 탕감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 시대에 있어서 종족적 기준을 승리하여 이루지 못하였던 그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서 부여받은 특권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권에 섰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예수가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해서 새로운 세계 복귀노정의 중심사명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권(圈)은 예수가 이루지 못한 것을 종족적으로 승리한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보다 나은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종족 앞에 유대교가 있었듯이 여러분 앞에 기독교가 있어야 되고, 그 종족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듯이 오늘날 여러분 앞에 새로운 이스라엘인 대한민국이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제3이스라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짊어진 분의 가는 길 앞에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옛날 민족 사상을 지도하던 유대교와 같은 교회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통일교회요, 그 교회가 목표하고 나가는 것이 제3이스라엘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이루지 못한 종족적 메시아의 기준을 세운 터전 위에서 그 기준을 이어받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 지으려면
축복받았다는 자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적 부활권을 공인받는 자리입니다. 선조들이 여러분에게 부활된 종족적 메시아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협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적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아브라함이라든가 모세, 혹은 예수가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벗어나 가지고, 여러분의 선조들이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입장에서 협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은 전체적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종족적 메시아임과 동시에 한 중심 앞에 있어서는 메시아적 사명을 분담받은 입장이요,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종족이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뜻을 이룬, 즉 재림부활의 목적을 완결한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이 종족을 중심삼고서는 걸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지상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혜택권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여러분 자신의 구원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그와 더불어 선조를 부활시켜 구원해 줘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선조의 부활과 더불어 그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김씨면 김씨의 종족을 구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입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종족을 탕감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가인 종족을 위해 먼저 책임을 다하고, 그 다음에 아벨의 종족을 위해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지어 가지고 종족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갖기 위해서는 가인적인 종족을 굴복시켜서 아벨적인 종족과 규합시켜 놓아야 됩니다.
영계에서 협조하는 것은 복귀노정을 위해서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아벨을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아벨을 세워서 가인 세계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벨의 입장에서, 혹은 제사장의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자기의 가정을 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듯 자기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기 고향이 아닌 외지에 나가는 것은 가인 족속을 사랑해 가지고 가인 족속을 구해 주었다는 입장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생명까지 바치면서 따를 수 있는 전통적 사상을 심어야
여러분 자신들이 종족적인 기준에서는 통일교회 식구를 만드는 것이 책임이지만, 민족적 기준에 있어서는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를 연결시키는 사명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가정도 연결시켜야 돼요. 소생급 사람은 기성교회 교인들입니다. 다음 장성급 사람은 지금까지 여러분들 중심삼고 연결된, 종족적 가인편의 입장에서 전도된 사람들입니다. 그럼 완성급의 사람은 누구냐? 여러분의 혈족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몇 가정을 구원해 가지고 그 가정이 자기를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면서도 따라올 수 있는 그런 전통적 사상을 심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로서 해야 할 책임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아벨이면 여러분은 가인이기 때문에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그 한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아벨인 선생님이 죽을 수 있는 운명에 있을 때 여러분이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 중심삼고 새로운 이스라엘 편성을 해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열두 가정을 중심삼아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찾아 놓은 것같이 그 길을 그대로 밟아 가야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생명을 대신해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친 아들딸 기르는 것보다 3배 이상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사람의 아담이 완성되는 데는 1차 구약시대, 2차 신약시대, 3차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의 아들을 거쳤기 때문에, 이 세 아들의 가치와 같은 수고를 거치지 않고는 복귀완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3단계의 사망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사망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의 아들딸, 혈육을 위해서 겪는 수난보다도 3배 이상의 수난의 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기와 생명을 같이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딸을 못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신을 투입해서 정성들여 보았는가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오며 수고했지만, 어느 한때 인간을 대해서 '내가 살지 못하고 죽겠다. 내가 이 뜻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말을 못 했다는 거라구요. 인간들이‘당신은 기쁘신 분이 아니쟎습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네가 잘 알았다'고 대답은 할 수 있지만, 타락한 이 원수의 세계에 놓여 있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슬프다고 하게 되면. 그 슬픈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사연을 통고할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십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자기가 택한 사람을 잃어버린 입장에서도, 그 사람을 잃어버렸는지, 안 잃어버렸는지 모르게끔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탄이 그걸 알면 좋아한다는 거라구요.
이 길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려면 가인적 종족을 복귀해 가지고 아벨적 종족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아 있을 때 선생님이 고향 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은 영계에 가서 걸린다구요. 그러므로 북한 땅을 점령하고 있는 원수들을 전부 다 격퇴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남북한을 살아 생전에 통일시켜 가지고 뜻을 세워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일대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그 한을 남기게 될 때에는 여러분의 후손은 어떻게 될것이냐?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종족적 기준에 서서 역사적 부활체로서 자기의 선한 선조들을 규합해야 됩니다. 선한 선조의 그룹을 해방시킬 수 있는 주모자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 하는 결정을 갖기 전에는 시대적 아벨 사명의 중심자로 설 수 없는 겁니다. 그러한 시대적 아벨의 중심이 되려면 가인적 종족권을 굴복시켜 놓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필사적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3대를 제물로 드릴 수 있어야
여러분은 지금까지 전부 건달 노릇만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아벨의 책임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 처자까지도 죽여 제물 드려야 하는 길이 있다면 해야 합니다. 자기 1대에 3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기 자신, 자기 아들까지 3대를 제물로 바쳐 탕감할 수 있는 그런 비운의 역사도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아담과 예수와 재림주 이렇게 3대입니다. 3대를 희생시켜 가지고 복귀섭리를 해 내려온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야 되고,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그런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를 붙들고 마지막 판결을 지어야 할 운명길이 복귀도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아벨은 가인을 복귀하고 나타나야 돼
아벨은 가인을 복귀하고야 나타나는 겁니다. 복귀할 수 있는 자리는 자랑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입장에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이 무엇이냐? 가인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아벨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가정적 아벨이라면 가정적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종족적인 아벨이 되면 종족적인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민족적인 아벨 통일교회라면 민족적인 가인 교단을 구해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거기서 비로소 국가를 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 선의 결실체
사명은, 첫째는 역사적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세계적이어야 하고, 다음에는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현재 여러분 자신은 역사적 종족을 중심삼은 결실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한 선조들이 있어 가지고 그 선조들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난 것이 아니요, 여러분이 잘나서 만난 것이 아니라구요.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그 다음엔 시대적인 결실체요. 미래적인 결실체입니다.
대담했던 어린 시절
복귀역사는 가인 아벨 복귀역사입니다. 원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너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 내 마음을 바쳐 죽기까지 사랑하고, 부활해서까지도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꺾여 넘어갑니다.
죽더라도 3시대의 사명을 다 해야
여러분은 역사적 결실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결실체인 내가 '선조들 오시오' 해서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역사적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시대적 중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김씨면 김씨 문중, 박씨면 박씨 문중에 있어서 '전부 내 말 들어야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자신을 가져 봤습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종족적 메시아가 못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미래의 출발체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한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한 개체가 3시대의 결합체가 되는 겁니다. 3시대의 종합적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열매로 태어난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택받은 대표자들인 여러분입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3시대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수행해야 할 시기
또 여러분은 어떤 책임감이 있느냐? 책임감이 문제라구요. 종족이면 종족, 나라면 나라를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상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구해야 되고,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되는 겁니다.
인류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역사적 결실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시대의 중심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지가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붙인 여러분은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소원은 전부 다 미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한 참부모와의 인연은 영원토록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거라구요.
영원한 천국을 유지하는 기점
망하고 흥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한 시간이 아니라구요. 현재 중에서도, 과정 중에 서도 순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맞고 싶으면 순간적 천국을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순간적 천국을 상실하기를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로 영원한 천국을 맞을 수 없습니다.
순간을 놓고 얼마나 심각해 보았는가
일순간이면 일순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 기간에 얼마만큼 자기의 정성을 들인 양이 많으냐? 사람을 구해주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얼마만큼 사무쳤느냐? 거기서 하늘의 인격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요, 승리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 책임에 있어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입니다.
현실적인 섭리의 터전에서 책임을 다하라
여러분이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신앙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받는다구요. 그러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잘못한 것이 뭐 있느냐, 여러분과는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외로울 때, 내가 고단할 때, 내가 어이없을 때에 인간의 위로는 못 받을 망정, 하나님의 위로는 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래야 발전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막중한 사명을 짊어진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시대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3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그에 대한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노정이 6천년이 걸렸으니 6천년의 고빗길을 어느 한 토막이라도 잘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가 눈을 깜박깜박하는 이 순간에, 내가 숨을 쉬는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눈이 얼마나, 내 입이 얼마나, 내 손이 얼마나, 내몸이 얼마나 하늘을 중심삼아 필요한 승리점을 이 순간에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쁘고, 하나님이 다급할 때, 또 하나님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의논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어려우실 때 나를 불러 서슴지 않고 의논하고자 하실 때, 나도 서슴지 않고 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무엇을 시키면 밤을 새워 가며 책임을 다하려 몸부림치고, 선생님이 부탁하는 것이라면 어려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 홀로 가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움 가운데서 세계적 책임, 이런 3시대의 책임을 현재의 순간을 중심삼고 다짐하는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지방이면 지방에서 그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후세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명이 엄청나니만큼 그에 비례해서 서 있는 무대도 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더우기 선생님과 관계를 맺은 이 시대는 길지 않습니다. 그렇게 알고 금번에 여기를 왔다 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혁신을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좀더 재비판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이 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 입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 입이 밥 먹기 위해서? 이 귀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 또 이 몸뚱이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를 비판해 보아야 된다구요. 그리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중심삼고 번영해야 할 현실적인 섭리의 터전에서 책임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길 바라며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말씀선집 46권 4편, 원문
우리의 사명과 책임
1971.08.13 (금), 한국 청평수련소 말씀선집 46권 4편, 원문
그간 여러분들이 지방에서 많은 수고를 한 줄 알고 있습니다. 더우기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이번에 새로이 파송된 전도대원들을 맡아 책임지고 있는 교회장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금번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이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비교해 볼 때 차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입장에서 새로운 차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실인 것을 직시할 적마다, 섭리의 뜻도 그것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새로운 각도에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를 혁신하고, 우리의 사명의식을 고취하면서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수행하겠다고 새로이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은 '우리의 사명과 책임'이란 제목을 가지고 잠깐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현재 어떠한 부모의 슬하에 태어난 한 아들로서 해야 할 사명이 아닙니다. 또 어느 지방에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그 한정된 책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짊어진 책임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은 대한민국내의 어떤 일단을 책임진 입장에서의 사명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더 나아가 세계를 넘어서 전체의 섭리적 관점에서 본 사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지방에서 책임진 개개의 교회는 그 전체를 보다 가치 있게 하고, 전체를 보다 뜻 앞에 일치시키는 데에 공고한 터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교회가 나가는 방향은 틀림없는 하나의 표본을 이루기 위해 책임지는 입장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니 그 자리는 이 시대적인 사명만을 완수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귀섭리를 두고 볼 때에, 성약시대는 신약시대를 완성지어야 되고, 신약 시대는 구약시대를 완성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뜻을 완성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이 신약시대로 넘어왔고, 신약시대에 뜻을 완성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이 성약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성약시대는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시대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이런 책임을 갖고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실감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입장이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시대는 물론이지만, 오늘 현실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위주로 해서 연결되어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와, 이 지구상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국가에 대한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책임은 물론이고 현재의 시대적 책임까지도 그들을 대신해서 짊어질 수 있는 사명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자가 나타나지 않고는 미래의 새로운 소망을 현실 무대 위에 옮겨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명자는 과거를 완성시킬 수 있고, 현재에 새로운 하나의 승리적 기점을 마련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새로운 출발의 기점을 마련해 놓을 수 있는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전체를 책임진 것이 통일교회요, 그 사명의 일부분을 책임진 것이 여러분입니다.
이런 시대적 소명을 받은 우리는 그 사명을 두고 볼 때, 역사적 부활체의 자리에 선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부활체인 것을 우리 스스로가 공인해야 되겠습니다.
6천년 역사를 재탕감하는 비운의 노정을 걸어온 통일교회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역사적 부활체와 같은 승리적 자리에 서 있다면…. 지금까지 6천년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아담이 타락한 이후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섭리가 출발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뜻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노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120년 기간을 통해 이루려 했으나 거기서 또한 가정적 일치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섭리의 뜻은 다시 연장되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 창건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데라의 가정에서 불러내는 섭리의 출발과 더불어 3대를 거쳐 가지고,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갖은 수난과 고역을 거쳐서, 일대의 뜻을 종결지었던 야곱의 21년노정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터전 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가정적 형태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선민적인 가정의 형태를 갖춘 야곱 가정을 하나님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발전시켜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창건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 나온 길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4백년간의 애급고역을 거쳐서 이스라엘 나라를 복귀해 가는 노정에는 주위의 수많은 국가 앞에 존경을 받기도 했고, 뜻 앞에 그들이 서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새롭게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민족을 선민국가로서 부활시키기 위해 사탄세계에 내주어서 시련을 거듭 받게 하는 역사를 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시련의 역사를 거쳐오다가 예수님 시대에 와서 하나의 승리적 터전을 종결짓기 위한 사명을 이어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승리의 터전에서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수난의 역사는 다시 연장되었습니다. 즉, 기독교라는 서러운 영적 터전을 계승해 가지고 다시 수천년 역사를 거치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기독교가 영육(靈肉)을 중심삼고 지상에 하나의 국가적 터전을 갖지 못하고, 그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된 사상에 의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의 변천과 더불어 영적 이스라엘권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며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역사는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소모해 왔으며, 막대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왔던 것입니다. 그 전체의 희생의 대가를 다시 한 번 실체적으로 탕감하기 위한 가치적 내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재림사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섭리의 뜻이 오늘의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출발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섭리적인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섭리를 대표했던 이스라엘 민족과 오늘의 기독교를 회고해 보면, 그 민족이 소원했던 뜻을 이룬 때가 없습니다. 그 소원의 뜻은 이스라엘 민족적인 뜻임과 동시에 선민을 중심삼은 어떤 한계내의 뜻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선민적 기반을 토대로 해 가지고 어느 한때에 세계적 터전 위에 완결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시는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그런 섭리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을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기독교와 한국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할 때에 기독교가 반대하고 한국 정부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통일교회는 6천년 역사를 재탕감하는 비운의 역사의 고빗길을 다시 걸어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6천년 역사과정에서 실패했던 그 전체의 양상을 오늘날의 어떤 교단이나 어느누구에게 재현시켜 가지고 탕감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어느 특정한 책임을 진 개인, 중심적 사명을 담당한 그분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분이 역사적 주류 사상권내에 있어서 승리의 기점을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도 사실이고, 전체를 탕감한 내적 승리기반을 결정지어야 할 사명을 짊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적인 중심을 결정하기 위한 사명이지, 전체의 횡적 기반을 연결시켜 가지고 전체의 사명을 해결지을 수 있는 입장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적인 이 전통적 승리의 터전을 세워 가지고 그것을 횡적으로 이어받게 하여 종족적인 환경을 거쳐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 무대까지 확대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 섭리의 뜻을 종결지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섭리관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은 선생님이면 선생님 개인을 중심삼은 사명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는 물론 전체를 대표해서 종적인 핵심을 결정지어 승리의 터전을 닦아야 할 사명이 있지만, 이것은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예수님 때에는 사가랴 가정과 요셉 가정이 있어 가지고 종족적 가인형과 아벨형의 협조의 터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터전을 기반으로 하여서 이스라엘 교단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준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입장을 갖추지 못한 예수는 필시 비운의 운명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역시 기독교를 중심삼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인 한 개인과 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서 가인적인 가정과 아벨적인 가정이 하나될 수 있는 가정의 기원을 모색하고 나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적 터전을 갖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재탕감의 노정을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를 다시 한 번 회고해 본다면, 우리의 20여년이란 세월은 기독교로부터 몰려났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몰려났던 비운의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비운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 와 가지고 이제는 우리가 기독교와 상봉할 수 있는 새로운 시점에 왔고, 대한민국을 대할 수 있는 새로운 시점에 온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와 다른 것이 뭐냐? 과거에는 우리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하지 않고, 우리와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 시대권내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경지에 처해 있는 우리 통일교회의 입장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교회의 개교회를 책임진 여러분은 중차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한 교회를 두고 볼 때, 어떤 교회가 한 부락을 단위로 해서 서 있다면 그 교회는 그 부락만을 대표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가 한 군(郡)이면 그 군을 반드시 탕감하고야 도(道)를 탕감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도를 탕감하고야 국가를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탕감노정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군을 중심삼고 거기에 우리 교회가 있다면, 그 군을 대표한 교회장은 그 군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하늘편으로 끌어 넘기느냐, 혹은 사탄편으로 끌려가게 하느냐를 결정지어야 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교회장은 전체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하나의 군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체를 두고 본다면 어떤 입장이냐?
종족적 메시아의 자리
이스라엘 복귀역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선조들이 오늘날 재림부활의 한때를 바라며 섭리를 협조해 나오던 사실을 미루어 볼때, 재림주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재림부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선조들은 지금까지의 섭리노정에 있어서나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온 섭리노정에 아무런 협조도 해 오지 않았고, 아무런 인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인연을 갖고 있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전통적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온 조상들밖에는, 기독교를 중심삼은 조상들 외에는 섭리의 뜻에 협조한 전통적 혈족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현재는 어떤 입장이냐? 자기가 하나의 군의 책임자라고 할 때, 그 군 전체의 생명과 재산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대한민국에 150개의 군이 있으면 그 150분의 1을 책임진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되면, 어떤 교회장이 김씨면 그는 김씨라는 한 개인이지만 김씨를 대표한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김씨를 대표한 것으로서만이 아니고,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서 한 군을 대표하는 입장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과 그러한 기준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동기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중심삼고, 군과 국가의 탕감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 시대에 있어서 종족적 기준을 승리하여 이루지 못하였던 그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서 부여받은 특권입니다. 그래서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하라고 축복받은 430가정을 중심삼고 지시를 했던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던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종족적 승리의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 교단을 중심삼고 나가려다가 반박받았던 그런 자리가 아니라, 환영받을 수 있는 자유로운 입장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종족적 메시아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적 선조의 인연을 갖지 못하고 통일교회에 들어와 종족적 메시아의 인연을 허락받았다는 그 자리는 어떠한 자리이냐? 여러분의 조상들, 즉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임씨면 임씨의 조상들이 전통적 섭리를 이어온 역사적인 노정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여러분의 선조들도 전통적 이스라엘권에서, 하늘에 협조한 선한 선조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권에 섰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예수가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유대교를 대표해서 새로운 세계 복귀노정의 중심사명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권(圈)은 자기 종족을 중심한 대표자가 되어 가지고 예수가 이루지 못한 것을 종족적으로 승리한 자리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처해 있는 자리는 예수보다 나은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종족 앞에 유대교가 있었듯이 여러분 앞에 기독교가 있어야 되고, 그 종족 앞에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듯이 오늘날 여러분 앞에 새로운 이스라엘인 대한민국이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제3이스라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종족을 이끌고 가는 책임자, 종족적 메시아의 책임을 짊어진 분의 가는 길 앞에는 민족이 있어야 되고, 옛날 민족 사상을 지도하던 유대교와 같은 교회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통일교회요, 그 교회가 목표하고 나가는 것이 제3이스라엘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직도 우리 통일교회는 반대받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가인적 유대교단, 가인적 민족권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반대받지 않는 가운데 출발되었다면 가인적인 교단과 가인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선생님 일대에 승리적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여러분은 종족적 메시아가 아니라 세계적인 입장에서 하나의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메시아의 사명, 즉 개개인이 개개의 민족적 사명을 분담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메시아적 책임을 대행해야 할 민족을 대표해서 메시아적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섰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 입장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가 이루지 못한 종족적 메시아의 기준을 세운 터전 위에서 그 기준을 이어받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 지으려면
그러면 축복받았다는 자리가 어떤 자리냐?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적 부활권을 공인받는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선조 가운데, 대한민국이 제3이스라엘 민족이 되기 전에 선을 위해서 이 민족을 염려한 선조들이 있었으면 그 선조들이 세워 놓은 공적은 이스라엘권의 선조와 같은 선의 가치로서 공인받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이 오늘 여러분에게 부활된 종족적 메시아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협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적 기대를 조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여러분은 아브라함이라든가 모세, 혹은 예수가 직접 주도할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벗어나 가지고, 여러분의 선조들이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입장에서 협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권내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조상들은 중생 부활할 수 있는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은 전체적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종족적 메시아임과 동시에 한 중심 앞에 있어서는 메시아적 사명을 분담받은 입장이요,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종족이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룬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뜻을 이룬, 즉 재림부활의 목적을 완결한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조상이 종족을 중심삼고서는 걸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지상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혜택권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와 성신과 같은 신념을 가지고 김씨면 김씨 문중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임을 지고 나간다면, 여러분의 선한 선조들은 여러분을 전적으로 후원하게 됩니다. 그런 영계의 협조와 더불어 여러분의 활동무대를 횡적으로 전개시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이스라엘 종족권을 넘어서 민족 편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의 사명은 자기 일대만을 위한 사명이 아니라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자기 일대의 구원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구원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고, 그와 더불어 선조를 부활시켜 구원해 줘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선조의 부활과 더불어 그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횡적으로 김씨면 김씨의 종족을 구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책임을 지는 데에 있어서,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전체 분야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터전을 연결시켜야 되고, 또 그러기 위해서 현재 여러분이 하나의 군이면 군을 중심삼은 책임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다시 말하면, 종족에 있어서도 가인적 종족과 아벨적인 종족이 있듯이, 김씨면 김씨 문중을 중심삼고 볼 때, 김씨 문중을 직접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벨적 종족이라 하게 된다면 가인적 종족이 있어야 되겠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외지에 나가서 일개 군을 대표한 한 사람의 교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에 예수님의 가정과 사가랴 가정이 하나되어야 했고, 그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는 여러분도 오늘날 본연의 가인적인 기준을 규합해 가지고 아벨적인 가치를 중심삼고 이것을 종족과 민족, 종족과 국가와 관계를 맺어 연결시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 앞에는 민족이 있는 것이요, 민족 앞에는 국가가 있는 것이며, 국가 앞에는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들은 종족을 탕감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가인 종족을 위해 먼저 책임을 다하고, 그 다음에 아벨의 종족을 위해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교회장이니까 이중적 사명을 감당해내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예수님이 뜻을 이루려면 안팎이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안팎이 하나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못하고는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벨 혼자 가서는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가인 아벨이 분립된 입장에 서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갈라졌다는 거예요. 둘이 됐다는 겁니다. 하나되어야 하는데 둘이 됐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둘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둘이 하나 안 되면 부모를 모시고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지어 가지고 종족적인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갖기 위해서는 가인적인 종족을 굴복시켜서 아벨적인 종족과 규합시켜 놓아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 여러분의 입장은 예수님이 하지 못했던 것을 가정적으로 다 해야 될 입장입니다.
여러분이 가인을 위해 하는 충성은 비단 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곧바로 여러분의 종씨면 종씨, 혹은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관계를 맺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인을 굴복시키는 범위가 넘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터전을 활용해 가지고 아벨적인 승리의 터전을 대신할 수 있게끔 영계에서 협조해 줄 것입니다.
영계에서 협조하는 것은 복귀노정을 위해서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아벨을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아벨을 세워서 가인 세계를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중적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아벨의 입장에서, 혹은 제사장의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자기의 가정을 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이렇듯 가정을 버리고 나오는 것은, 즉 자기의 가정을 돌보지 않고 자기 고향이 아닌 외지에 나가는 것은 가인 족속을 사랑해 가지고 가인 족속을 구해 주었다는 입장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의 골자라구요.
아벨적 입장에 선 여러분들은 종족권을 중심으로 자기의 부모가 있을 것이요, 친척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적 종족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자기 혈육을 중심삼은 부모 형제, 혹은 처자보다도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을 하늘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가인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이러한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자기의 식구들과 더불어 고향에 돌아가서 친족들을 복귀시키려고 하면 간단히 복귀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정성들여 가지고 백 명이면 백 명, 혹은 그 이상의 수를 전도하여 그들이 아벨적인 사명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명령대로 '죽으라면 죽자, 어떠한 어려움에도 일치단결해 행하자' 하면서 아무 이의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무리를 거느려 가지고, 그들의 협조하에 자기의 씨족이면 씨족권내에 들어가서 씨족을 전도하려고 하면 간단히 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여러분이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아벨이 되려면 가인권을 복귀해야
오늘의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아벨이라면 가인 교회를 복귀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력을 어디에 쏟아야 되느냐 하면, 아벨을 위해서 쏟는 것이 아니라, 가인을 위해서 쏟아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1971년도에 들어서면서 기성교회 목사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원리공청회를 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별의별 말을 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방에서 고통받고 있는데도 전혀 대우해 주지 않으면서 난데없이 반대만 하는 기성교회 교인들이나 기성교회 교역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이나 말을 하는 사람은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완전한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권을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벨로서의 승리의 자리로 돌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만을 위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적 운명입니다. 가인과 아벨로 인하여 타락의 암(癌)이 그렇게 생겨났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시켜 주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하나의 아벨 교단으로서 가인 교단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가인 아벨이 화합해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때, 대한민국은 아벨 국가형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성교회와 통일교회가 하나된 터전 위에서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아벨적 사명을 책임지고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면 그 민족에도 아벨 민족과 가인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대비해 가지고 남북이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이 북한을 무력으로 쳐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들보다 강한 사상의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이상 우리도 우리의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그들이 공산주의를 사랑하는 이상 우리도 하늘을 사랑할 수 있는 사상적인 강한 힘을 가지고 인격적인 면에서 그들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북한을 흡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활적으로 감복시키고, 인생관이나 생애를 통해서 감복시킬 수 있는 인격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타난 인격의 가치를 중심삼고 볼 때에, 공산주의의 사상으로 무장한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우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을 갖지 않고는 가인 국가를 복귀할 수 없습니다. 가인 국가를 복귀하지 못하면, 하늘나라를 중심한 세계적인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복귀의 국가는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성립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또 다른 하나의 상대적인 국가가 있어서 가인 아벨형과 마찬가지의 기준을 결정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가 완성된 입장에 선다는 것은 아담적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하나의 통일된 아들의 입장을 결정짓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참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자리를 복귀한 형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인 아벨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북이 통일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고, 또한 아담 국가 형태의 체제를 갖추고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아담국가의 자격을 갖추어야
아담국가가 생겨나면 거기엔 반드시 상대적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때부터는 평면적인 형제가 아닌 것입니다. 전후관계가 됩니다. 형이 있으면 동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후관계는 되지만 횡적 관계는 아닙니다. 아담국가로서 승리한 국가기준을 중심삼고 비로소 처음으로 횡적으로 그 상대적인 국가형태를 필요로 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안 되면 복귀노정이 완결을 볼 수 없는 거예요. 이러한 때를 중심삼아 가지고 외적인 해와의 국가형태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 오늘의 한국을 중심삼은 일본의 처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 국가만 있어 가지고 복귀가 되느냐? 여기엔 반드시 천사장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세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이것을 국가적으로 거두어야 할 아담 해와 국가가 있음과 동시에 천사장 국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시아에서 천사장 국가는 어느 국가냐? 중국입니다. 중국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3개국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 3개국은 어느 국가로 말미암아 수습되어야 되느냐? 물론 조국인 아담 국가로 말미암아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천사장을 굴복시키는 데는 아담 자체가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해와를 내세워 가지고 굴복 시켜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알지 못하겠지만 지금 선생님이 책임진 분야는 뭐냐 하면, 한국에 있으면서 대만을 어떻게 일본에게 흡수시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그 섭리적 노정을 닦아 나온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여러분이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일주일 금식투쟁을 했습니다. 그것은 중공과 일본이 정책적으로 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데모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일본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삼아 그 회원들이 일주일 동안 가두에 나가 투쟁을 했던 것임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 투쟁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일본 자체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을 흡수시키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고립된 입장에 처해 있던 중국의 장개석에게는 그들의 구세주와 마찬가지인 구보끼 회장에게 전체적인 희망을 두고, 구보끼를 중심삼아 연결될 수 있는 기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국 신문을 보게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것을 연일 일면에 대서특필로 취재 보도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중국에서는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중공에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일본도 실제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세계가 이렇게 급변해 돌아가고 있는데, 국제승공연합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꼬대하고 있다'고 하면서 조롱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을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어디까지나 중국을 흡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일본내의 우익권에서도 그런 뜻을 품고 있지만 용공세력의 한계권내에서 활동하기를 주저하고 숨어 있는 사람들을 구해 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놓고, 우리가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는 것보다도 활동하는 것이 이익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는 중국과의 새로운 풍토가 조성됐고, 그것을 계기로 하여 아시아 전체 민족을 규합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내에 있는 화교와 한국 교포, 그리고 일본 국제승공연합이 합할 수 있는 운동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곽적으로 그러한 섭리적 터전을 닦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온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구보끼를 세워서 장개석을 연결시키고, 구보끼를 세워서 대한민국을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해와가 먼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도 망하게 했고 해와 자신도 망하게 했습니다. 국가적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해와 국가는 아담 국가도 망하게 할 수 있는 입장이요, 천사장 국가도 망하게 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 있어서 중요한 책임을 누가 짊어지고 있느냐 하면, 물론 한국에 섭리적인 입장에서 중요한 책임이 있지만 사탄세계를 대비해 가지고는 일본에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국가로서의 한국, 천사장 국가로서의 대만 정부는 일본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대가 오지 않도록 미리 방비하기 위해서 내적으로 하나되는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나라의 주권을 책임진 사람들과 한 목적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면, 아무리 요동하는 정세가 벌어지더라도 한 방향을 갖추어 섭리의 터전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반을 세우지 못했기에 지금 이 세계는 복잡한 정세 가운데로 몰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일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 평면적으로 연결지어야 할 아담 국가, 해와 국가, 천사장 국가보다도 먼저 아담 국가로서 완전한 자격을 갖출 수 있는 터전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남북이 하나될 수 있는 결정적 기반이 아직까지 수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남한을 중심삼고 볼 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남한이 뜻을 중심한 아벨 국가권이 되어 있느냐 하면, 아벨 국가권이 아직 되지 못했습니다. 아벨 국가가 못 됐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섭리적 관(觀)으로서 요구되는 비장하고 중대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벌써 4배가운동을 전개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바랐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앞으로 남북총선거 시대가 반드시 오게 되므로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1천만 이상의 인원을 확보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승공연합과 함께 반공사상을 갖추고 나서기 때문에 공산당에게는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가입될 수 있는 그만한 인원을 국가로부터 후원받아서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항시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준비를 다 갖추지 못한 채 그런 시대는 우리의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경제부흥이니,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니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민족의 사상 무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기성교회와 대화하고 있지만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근본적인 입장에서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유도작전하여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나가면서 이 민족을 끌고 나갈 수 있는 형태로 전개시키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선생님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통일교회가 살아 나갈 수 있는 길
그래서 우리 교회는 종교협의회나 [주간종교]를 중심삼고, 종교 최고 책임자들을 한 곳으로 몰아넣기 위한 작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풍토가 어느 정도 조성되면 모든 종교단체는 초종파적인 입장에서 종교의 원수인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사상적 터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가 종파를 초월하고, 초종교적인 입장에서 반공자세를 어떻게 확립하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을 중심삼고 보면, 개개인의 사명도 물론 중요하지만, 전체를 책임진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이것을 염려하여 여러분이 이해 못 하는 초교파운동을 중심삼고 종교협의회까지 끌고 나왔고, 또한 그것을 중심삼고 [주간종교]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주간종교]를 만들고 보니 우리가 유리한 것은, 아무리 훌륭한 종단의 장(長)이라도 주간종교 신문사에서 초청하면 안 나올 수 없다 이겁니다.
이리하여 그들을 1차 2차 타진해 가지고 나라의 비운을 그들도 염려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합의하여 공동전선을 세워 가지고, 그들에게 여기에 어떻게 반공정신을 집어넣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했던 거예요. 본래는 종교협의회를 중심삼고 그 일을 하려 했습니다. 종교협의회를 지도하는 책임자가 공적인 민족적 사명을 갖고 모든 종단을 초월해 가지고 개인을 희생하여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못 했기 때문에 지금 종교협의회가 부진한 상태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간종교]를 통해 몰아냈고 새로운 종교협의회 강화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뭏든 통일교회가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느냐? 통일교회 자체로는 절대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살아가려면 반드시 기성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를 흡수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정책을 수립하는 수많은 배후의 인물들을 움직여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교수들을 중심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8월에도 24일경부터 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3차에도 50여명 참석했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막대한 경비를 써 가면서 대학가의 유명한 교수들을 중심삼고 우리 통일교회 원리를 연구시켜 가지고 각자 전문분야에서 본 통일교회의 원리에 대한 대조 비판과 더불어 자기 소감을 첨부한 것을 책자로 빨리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명한 교수들이 공인한 책자를 보는 사람들은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시급히 해야 되겠습니다. '경이적 통일원리'라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내에 책자를 발간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일본어라든가 영문으로 번역해 각 나라의 지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교수들이 쓴 책이 몇개 국어로 번역이 됐다 하면, 그건 대한민국의 교수들로서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사실 원리의 내용이 그만큼 방대한 것이기에 그들이 칭찬할 수 있고, 또한 칭찬받을 수 있는 내용이 충분하다 이겁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교수들의 공청회를 통한 실증적인 증거를 통해서 볼 때 어느누구도 공인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벨 대신 죽을 수 있는 가인이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방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선생님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자체내의 어려운 교회에 협조하지 않고 막대한 경비를 기성교회 목사나,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수들 앞에, 그것도 그들을 손님 중에 최고의 손님으로 우대하면서 소모하는 그런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하는 종교단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과 사명으로 볼 때, 먼저 가인을 굴복시킨 후에야 아벨로서의 사명이 출발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인을 복귀한 터전을 갖지 못하고는 아벨로서 출발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자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방에서 통일교회를 책임진 책임자로서 양면의 세계를 규합할 수 있는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종족적인 기준에서는 통일교회 식구를 만드는 것이 책임이지만, 민족적 기준에 있어서는 기성교회와 통일교회를 연결시키는 사명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가정도 연결시켜야 돼요. 이렇게 볼때 소생급 사람은 누구냐? 기성교회 교인들입니다. 거꾸로 되는 겁니다. 다음 장성급 사람은 누구냐? 지금까지 여러분들 중심삼고 연결된, 종족적 가인편의 입장에서 전도된 사람들입니다. 그럼 완성급의 사람은 누구냐? 여러분의 혈족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가인적 터전을 확보하고 난 후에 아벨적 터전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아벨적 종족을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원리라구요. 그러면 아벨적 가정과 종족을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벨적 가정의 사명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또 아벨적 사명을 완결지으려면 가인적 가정을 굴복시킨 터전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결국 무엇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자기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의 몇 가정을 구원해 가지고 그 가정이 자기를 위해서는 생명까지 바치면서도 따라올 수 있는 그런 전통적 사상을 심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 관계에 있어서 하나된다면, 그것은 어느 기준에까지 하나되어야 하겠느냐? 그냥 따라만 가면 되겠느냐? 아닙니다. 그냥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와 열두 제자가 맺었던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완전히 하나됐다는 것은 무엇이냐? 상대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기준까지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될 때에 제자들은 아벨인 예수님을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기 때문에 아벨이 죽음을 당할 상황하에서는 가인이 대신 죽어 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탕감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민족적 섭리를 중심삼고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노정에 있어서 반대하던 유대교를 수습하기 위해서 내세웠던 열두 사도는, 곧 12지파를 대표한 입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아벨적 입장이라면 열두 사도들은 가인적 입장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비운의 역사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 들어 가게 될 때, 아벨을 죽이는 가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가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해 나오고 있는 여러분이 가인적인 개인이면 개인, 가인적인 가정이면 가정, 가인적인 종족이면 종족을 전도했을 때, 그들 중에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그런 사람이 없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책임자들은 전통적 사상 기준 앞에 일치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혁신해 가지고 실질적인 내용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아벨적 자리를 다시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이 시대가 절실히 요구하는 중요한 문제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체의 종족적 가인권의 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우리 교단은 교단적 가인권을 확정지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민족적 가인권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벨로서 해야 할 책임
그러면 종족적 가인을 굴복시키지 못한 터전 위에서 민족적 가인을 굴복 시키는 일이 가능하냐?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방에 있는 여러분은 책임지고 있는 군(郡)이면 군을 중심삼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중앙을 중심으로 하는 도(道)가 되고, 도를 중심으로 하는 군입니다. 그러므로 군이 최일선입니다. 군은 횡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제일의 터전입니다. 이 터전에서 가인 아벨의 승리적 터전을 가려내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섭리적 터전은 어떻게 되느냐? 크나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을 책임지고 있을 때, 선생님은 교단을 중심으로 기성교단과 수많은 종교계와 이 민족과 관계맺을 수 있는 내적 기반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1970년도부터 지금까지 준비해 나왔습니다. 원래는 1968년부터, 제2차 7년노정을 출발하면서 초교파 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지금까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가지고 이만큼 끌고 나왔습니다.
자,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기도하는 내용이 뭐가 돼야 하느냐, 전도하는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느냐? 까놓고 얘기하면 가인 아벨의 자리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전도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역사적인 노정을 탕감시키기 위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의 협조를 받는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하늘과 아벨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책임을 완수 못 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아벨대로 책임할 수 없는 거라구요. 다시 말하면, 아담 혼자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복귀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아벨은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야 하는데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자신이 아벨이라고 하며 출발한다고 해서 아벨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인을 복귀하기 위해서 나섰다고 스스로 적당히 결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결정돼야 됩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하늘과 먼저 하나된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된 그 기준은 어떤 것이냐? 아벨은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먼저 죽을 각오를 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아벨이면 여러분은 가인이기 때문에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이냐?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그 한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아벨인 선생님이 죽을 수 있는 운명에 있을 때 여러분이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열두 사도는 왜 비참하게 죽었느냐?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기름 가마에 튀겨 죽고, 톱으로 켜 죽는 등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느냐? 그렇게라도 죽지 않으면 죽은 후에 면목을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희생하고, 더 밟히고. 더 비참한 길을 가야만 가인형의 기준을 완결 했다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 예수님 앞에 설 수 있지 예수님보다 덜 고생해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수난의 종교요, 희생의 종교입니다. 응당 죽어야 될 것을 알고 죽어야 돼요. 자기가 맞고 복귀해 돌아가는 길이 기독교의 도리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 중심삼고 새로운 이스라엘 편성을 해 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열두 가정을 중심삼아 36가정 72가정 120가정을 찾아 놓은 것같이 그 길을 그대로 밟아 가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그냥 이 놀음 한 것이 아니라구요. 예수가 그것을 해결짓기 위해서 운명을 가려 가면서 비운의 죽음길까지도 가게 됐고, 하나님도 그런 문제를 해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6천년동안 역사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선생님이 가는 길은 그 분야가 여러분보다 한 단계 앞서서 더 넓은 국가적이요, 세계적일 뿐이지 내용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선생님이나 여러분이나 밥 먹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요. 호흡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요. 이와 같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같은 공식노정을 떠나서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 자신을 두고 보게 되면 어떻게 되어 있느냐? 선생님의 입장은 예수님이 씨족과 종족 앞에서 쫓겨나 가지고 외부에 나가서 씨족을 복귀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 입장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지금까지 일생은 그야말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기독교의 반대를 받았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의 터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와야 되겠기에 거리에서 난데없이 만난 행인과 마찬가지의 입장인 여러분을 선생님의 혈족보다도 부모 처자보다도 더 사랑해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생명을 대신해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친 아들딸 기르는 것보다 3배 이상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사람의 아담이 완성되는 데는 1차 구약시대, 2차 신약시대, 3차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의 아들을 거쳤기 때문에, 이 세 아들의 가치와 같은 수고를 거치지 않고는 복귀완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3단계의 사망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사망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의 아들딸, 혈육을 위해서 겪는 수난보다도 3배 이상의 수난의 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기와 생명을 같이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딸을 못 만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러분이 언제 믿음의 아들딸을 대해서 자기가 낳은 아들딸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아 가지고 낳은 아들딸도 완성시대의 아들딸로 낳은 것이 아니라구요. 그들은 장성기 완성급이라구.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축복은 타락한 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실체를 복귀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원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죄가 부부에 의해서 심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벗기 위해서도 부부의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죄를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기준에서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그 아들딸이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완성단계의 7년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리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성진이 어머니와 성진이의 입장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선생님이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를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새로운 원수의 세계를 향하여 7년노정을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 기준은 뜻을 이루지 못한 입장이기 때문에 자식의 손목도 못 잡아 보았습니다. 나는 성진이를 대하여 '성진아' 하며 이마를 맞대고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못 해보았습니다. 성진이는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선생님' 이라고 했습니다. 기막힌 놀음입니다. 성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까지 연필 한 자루 안 사주었습니다. 옷 한벌 안 해 주었습니다.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그 반면에 통일교회 사람을 위해서는 내 뼈와 살을 깎아 가면서, 감옥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내 자식은 제물로 바치면서…. 이런 정성을 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 앞에 가인적인 입장에서 가인 아벨 중심삼은 원리적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책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냐? 이걸 묻고 싶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죽을 자리에 서게 될 때 자기가 대신 목이 잘리고, 피를 토하면서라도 죽음길을 헤쳐 나갈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어요? 어디,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손들긴 쉽지. 내려요.
그러기 위해서는 피를 토하듯이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이 그리워서 자기 일신이 기절해서 혼미상태에 빠질 정도의 한때를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선생님이 6.25때 피난 나와 가지고 부산 영도에서 3년 기간을 홀로 지낼때, 수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의 부르는 소리는 들리는 것 같지만 만날 길이 없었어요. 그 그리움이라는 것은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던 그리움의 심정을 땅 위에 있는 아들이면 아들에게 체휼시킬 수 있는 좋은 시기였습니다.
자기 처자가 그리워서 눈물짓는 것이 아니요, 처자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인 가인 아벨을 중심한 복귀의 원칙을 어떻게 해결짓느냐? 자기 아들딸 가지고 안 되는 거라구요. 자기 여편네 가지고도 안 되는 거라구요. 자기 혈족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외적인 혈족을 중심삼고 종족기반을 승리의 터전 위에 세워 가지고 민족적 터전으로 가려는 데 있어서는 혈족이면 혈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의 노정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1970년도에 들어와 가지고 이 아산 패들을 전부 다 데려온 거라구요. 그들에게 집까지 사줬어. 이것은 원리 중의 원리라구요. 그걸 여러분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가인 씨족이 아벨 씨족을 모시고 돌아 들어오게 해야 됩니다.
자기의 전신을 투입해서 정성들여 보았는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지금까지 책임을 다 못한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7년노정을 중심삼고 밤을 지새워 가면서…. 평균 수면시간이 두시간도 안 됩니다. 그런 무리를 거듭해 가면서 정성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여러분도 그와 같이 해야 되는 거라구요. 요전에 듣기로는 전도대원들이 아기들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다시 생각해야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북 갈 때 아기 업고 간 것이 아니며 여편네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구요. 거리에 내던진 거라구요. 떠날 때 집에 쌀 한 톨이 없었습니다. 백천에 쌀 사기 위해 배낭을 지고 나선 걸음이 이 길이 되었습니다. 편지 한 장 써 놓고 간 것이 아니며 만나 가지고 의논한 것도 아닙니다. 간데 온데 없이 사라져서 6년간, 햇수로 7년간 소식불통이었습니다. 편지를 못 쓰는 거라구. 그런 놀음을 해온 거라구요. 목석 같은 사나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뜻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가인을 위해서는 눈이 빠지도록 정성들였습니다. 어떠한 군왕이 있으면 그 군왕 이상의 군왕이 되고, 어떠한 형제가 있으면 그 형제 이상의 형제가 되고, 어떠한 스승이 있으면 그 스승보다 훌륭한 스승이 되고 어떠한 부모가 있으면 그 부모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영계가 몽땅 동원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지금 지방의 책임자로서 종족적, 씨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씨족적인 메시아의 사명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씨족적인 가인의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0명을 전도해야 합니다. 이번 전도기간에 120명 전도하라는 겁니다.
밤을 지새워 가면서라도 해야 됩니다.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천지가 녹아 나고, 자기의 역사적 운명이 엇갈릴 수 있는 긴장된 자리에 여러분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을 두고 볼 때, 태어나기는 아무 문중에서 태어났고, 연령으로 보아 몇 해밖에 살지 않았지만 여러분은 역사적인 부활체입니다. 박씨면 박씨 문중을 대표하여, 역사적으로 자기의 선의 선조들을 전부 다 종합한 결실체로 나타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호흡하는 것은 선조들이 힘줄을 당기면서 호흡하는 것이요, 또한 여러분이 활동하는 것은 선조들이 모든 운명을 걸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또 현재의 김씨면 김씨 문중, 박씨면 박씨 문중, 전체를 위해서 대표적인 제사장의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런 입장에서 '나는 종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메시아의 사명을 하겠다'고 다짐했으며, 자기 일신의 모든 것을 투입해 가지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생명을 내놓고 단판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임재할 수 있는 아벨의 종족기반을 넓혀 가지고, 가인의 종족을 굴복시켜야 할 사명이 나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사명을 완수해야만 민족적 터전을 닦아 나오는 전체의 책임을 진 선생님이 가야 할 그 길에 있어서 제일의 터전이 될 것이 아닙니까? ’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자기의 일신을 제물삼아 활동하는 사람이 그 누구냐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하고…. 그렇게 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난의 길을 걸어오며 수고했지만, 어느 한때 인간을 대해서 '내가 살지 못하고 죽겠다. 내가 이 뜻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말을 못 했다는 거라구요. 인간들이‘당신은 기쁘신 분이 아니쟎습니까? ’하고 물으면, 하나님은 '네가 잘 알았다'고 대답은 할 수 있지만, 타락한 이 원수의 세계에 놓여 있는 이 땅 위의 수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슬프다고 하게 되면. 그 슬픈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것이 타락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사연을 통고할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수천년의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하십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자기가 택한 사람을 잃어버린 입장에서도, 그 사람을 잃어버렸는지, 안 잃어버렸는지 모르게끔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사탄이 그걸 알면 좋아한다는 거라구요.
이러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신앙자세, '이 통일교회가 틀림없는 사실이냐?' 상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성경을 다시 보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비참했습니까. "내가 불을 이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리요(눅 12:49)" 이게 기가 막힌 말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기가 막히는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라는 특권적인 혜택을 받았다면 얼마만큼 예수님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서 나라를 염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해 보았느냐 이거예요. 예수님은 24시간 기도하지 않는 때가 없었습니다. 시간만 있으면 기도하고, 영계와 의논하면서 내일의 하루를 보다 가치 있는 날로 남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그분의 일생에 그런 가치 있는 하루를 남기지 못하고 도중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머금고 돌아가지 않았는가. 그런 비운의 역사를 가로막아 가지고 예수님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리를 하늘로부터 특권적인 혜택으로 받은 자격자가 있다면, 오늘 여러분과 같은 사람일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재차 결의를 해야 되겠고, 재정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
여러분이 승공강의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무엇 때문에 하느냐? 국가적 기준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외적 환경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아벨적 입장에서 가인 교단을 흡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런 놀음을 해 나온 거라구요. 이중 삼중으로 겹놓아가는 것은 어느 한때가 되어 한꺼번에 내몰게 될 때, 상충과 방해가 없게 해 가지고 섭리의, 뜻의 한 고개를 국가를 중심삼고 넘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통일교회를 승공연합의 승공활동과 직결시켜 가지고 생각하는데, 기분 나쁘다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종족적 메시아의 사명을 다하려면 가인적 종족을 복귀해 가지고 아벨적 종족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정성들여 가지고, 여러분의 명령에 따라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전부 다 투입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자를 120명만 확보하게 되면 그들이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대해 '당신의 아들을 길러 놓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당신의 아들이 우리를 살려주기에 얼마나 수고했는지 모릅니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120명이 여러분 문중을 중심삼고 잔치 하면서 전부 한마디씩 치사를 하게 되면, 하루 저녁에 다 돌아간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일족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간부들이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가인적인 종족적 기준을 결정짓고 아벨적 종족 기준을 완결시켜야만, 선생님도 안팎에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의 중심을 결정짓고 나설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책임이 중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아 있을 때 선생님이 고향 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은 영계에 가서 걸린다구요. 그러므로 북한 땅을 점령하고 있는 원수들을 전부 다 격퇴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남북한을 살아 생전에 통일시켜 가지고 뜻을 세워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일대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그 한을 남기게 될 때에는 여러분의 후손은 어떻게 될것이냐? 비참해질 것입니다.
그러한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크게 보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 현재의 입장에서는 통일교회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성교회를 어떻게 굴복시키느냐, 어떻게 우리의 뒤를 따르게 하느냐, 문제는 그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힘이나 술책으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의 진실과 실적을 가지고 그들이 내심으로 굴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요, 방편적인 것이 아니요, 수단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진실된 입장에 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당신들이 가는 길을 생애의 보람으로 계승하고 우리 후손 앞에도 남겨 줄 전통적 사상으로 이어받겠으며 당신들이 수고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죽을 수 있는 희생의 길이 있으면 우리가 대신 죽겠다'고 하는 민족적 움직임이 이 삼천리 반도에 싹트게 될 때, 대한민국은 살아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늘의 아담 국가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한국을 중심삼고 해야 할 섭리의 뜻을 한국사람을 중심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일본 사람을 중심삼고 하는 입장이니 이것이 비참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개인은 개인으로 끝나지 않는다구요. 아벨은 이 길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거라구. 안 가고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안 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 가고도 해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노아 할아버지가 갔던 그 길을 안 가도 되겠느냐. 아브라함이 갔던 그 길을 안 가도 되겠느냐 이겁니다.
하늘의 중차대한 명령을 책임지고, 종족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여 나선 사람은 죽더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자기 후손 몇십 대, 몇천 대를 통해서라도 가야 합니다. 일 대에 못 간 것은 수천 대를 통해서라도 가야 하는데, 그 수천 대가 하는 고생은 누가 책임지느냐? 여러분이 책임져야 됩니다. 짧은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탕감의 원칙적 기반을 해결지어야 할 사명이 오늘 여러분의 생애노정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뼈에 사무치는 어려운 생활을 극복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오고 힘줄이 당기듯이 신경이 마비되는 심정을 가지고 역사적인 이 원한의 구렁텅이를 어떻게 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해방을 받고 하늘 앞에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영광의 한날을 찬양할 수 있고, 승리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그날을 갖게 될 때에 '내가 부모님 앞에 올바른 자녀로서 아버지 앞에 돌아왔노라'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가서도 왔다는 얘기 못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선생님' 하고 부르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지도 못할 것입니다. 원리대로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올해가 1971년도인데 작년 일년을 돌이켜 볼 때, 우리가 여의도 땅, 청평 땅, 수택리 땅까지 마련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전부 현시가로 계산하면 한 15억쯤 됩니다. 이런 재산이 일년 동안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여러분은 여기 와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겁니다. 정말 부끄러운 거라구요.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책임진 선생님은 밤낮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당연히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내 의식이 남아 있는 한 내 책임은 누구한테 의논도 안 할 것이다' 하며 홀로 감당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도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종족적 기준에 서서 역사적 부활체로서 자기의 선한 선조들을 규합해야 됩니다. 선한 선조의 그룹을 해방시킬 수 있는 주모자가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 하는 결정을 갖기 전에는 시대적 아벨 사명의 중심자로 설 수 없는 겁니다. 그러한 시대적 아벨의 중심이 되려면 가인적 종족권을 굴복시켜 놓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필사적 투쟁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을 내걸고 식구를 사랑하라
여러분,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남의 사람을 자기 친척 이상의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게 쉬운 일이예요? 죽기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앉아서 공염불하며 생각만 한다고 될 것 같으면 누구나 다 합니다. 그러한 일은 생명을 내걸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식구를 얼마나 사랑해 보았느냐 이겁니다. 한 여자 식구가 왔으나 그녀가 해결받고 가야 할 생명의 길을 해결 못 지워 주고 보내게 되었다면, 남자로서의 체면도 불구하고 그의 치맛자락이라도 붙들고 밤을 지새워 단판기도라도 해야 됩니다. 한번 왔다 하면 영적으로 끌어당겨 붙잡아야 합니다. 안 끌려와서는 안 되게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사탄과 하늘이 사랑을 중심삼고 빼앗기 싸움하는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자기 남편보다도, 자기 부모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갖고 생명을 투입하게 되면 끌려오는 거예요. 그것이 쉬울 것 같아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동삼(冬三)에도 솜바지 저고리가 젖어 가지고 짜면 물이 나올 정도의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전부 건달 노릇만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통일교회의 정상적인 아벨의 책임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부모 처자까지도 죽여 제물 드려야 하는 길이 있다면 해야 합니다. 자기 1대에 3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기 자신, 자기 아들까지 3대를 제물로 바쳐 탕감할 수 있는 그런 비운의 역사도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아담과 예수와 재림주 이렇게 3대입니다. 3대를 희생시켜 가지고 복귀섭리를 해 내려온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야 되고, 그런 아버지의 심정을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그런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아버지를 붙들고 마지막 판결을 지어야 할 운명길이 복귀도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금후에 있어서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제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한번 보라구요. 우리가 다짐하는만큼, 우리의 길은 아슬아슬하리만큼 점점 최후의 고빗길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시아에 있어서도 중공이 저렇게 넘어오고…. 그러니 섭리가 급전될 수 있는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발판을 잘 가려 가지고 딛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한 군을 책임진 자들로서 하늘이 왕림하게 될 때에 공고하고, 변치 않고, 요동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반석과 같은 터전이 되어 있습니까? 전부 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리 생각은 다 집어치우고 먹을 것을…. 거기에 다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해서는 그것을 뭉청 짜르고 나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개체에 가까운 것을 짜르고 나서게 될 때에 하늘이 나를 더 가까이 대해 주더라 이겁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남을 위해 희생했을 때, 그 희생한 것을 그가 몰라주면 옆의 사람이 내편이 되어 공인해 준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확대시켜 나온 역사의 움직임
여기서 선생님이 꼭 한마디 말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제 세계는 갈 길이 막혀 버렸다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인류가 개인의 욕망. 국가의 욕망, 세계의 욕망을 찾아 나오면서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를 모색해 나왔지만, 이제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도 갈 길이 다 막혀 버렸습니다. 그건 왜그러냐? 안 막히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모든 움직임이라는 것은 개인을 확대시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이 어떠한 출세라든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써 나왔느냐?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체를 이용하기도 하고, 개인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3의 무대를 이용하기가 일쑤였습니다. 그게 지금까지의 역사적 전통이었습니다.
결국은 자기 하나 잘되기 위해서 제3자를 이용하겠다 해 가지고, 개인을 이용하고, 단체도 이용해 왔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나라까지 이용하는 부패상이 많습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방향이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서 출발한 그날부터, 사탄의 피를 받고 난 그날부터 본의 아닌 교만을 중심으로 간접적인 무대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갈구해 나온 것이 그 역사적 방향이 아니었더냐 이겁니다. 타락이 뿌린 씨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이 자기 일개국을 희생시켜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면 부활할 수 있는 미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민주세계를 희생해서라도 자기 일국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를 이용하는 날에는 망합니다. 고립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닉슨 행정부를 중심한 '닉슨 독트린'이라는 현재의 정책 방향을 보고, 민주주의의 약소국가는 '믿지 못할 미국'이라며 안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 미국 자체도 막히게 됩니다. 그러니 미국이 미국만을 위하는 날에는 세계에 남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미국이어야 합니다.
자고로 세계를 위한 국가, 세계를 위한 민족, 세계를 위한 종족, 세계를 위한 가정, 세계를 위한 개인의 사상을 지녀야 영원히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개인을 중심한 세계와 국가와 민족과 종족으로 전부 다 가지려고 하면, 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개인주의입니다. 개인주의 사상으로 점점 기울어짐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희미해지고, 나라도 희미해지고, 민족, 종족, 가정까지 전부 다 희미해지고 맙니다. 그러니 이제는 갈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공산당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소련이 세계 공산권을 전부 다 지도해 가지고 '공산권은 언제든지 이 슬라브 민족을 위주로 한 단일민족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이념을 가진 공산주의라면 그런 공산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민족을 넘어서 자기의 민족을 희생해서라도 공산세계까지 하나 만들기 위해서 서로서로 위해 나가는, 세계를 위해서 자기 나라를 희생시킬 수 있는 사상을 가진 주도적인 국가는 언제든지 환영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개 자기 민족과 자기 나라만을 위해 활약하려는 공산당은 남아지지 않습니다. 다 막혀 버리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실험해 본 결과 가는 길이 다 막혀 버렸다는 겁니다.
이제 어떤 길을 취해야 하겠느냐? 그러한 방법을 통할 수 있는 세계의 이상적인 국가는 이미 해가 석양에 지고 있는 때에 들어가는 입장입니다. 그건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결할 길이 무엇이냐? 그와 같은 방식을 통한 일개 국가라든가, 개인의 목적을 추구하던 그런 역사시대는 지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반대해 가지고 흘러가 버리게 됩니다.
최후로 남은 길
그럼 최후에 남은 길이 있다면 그 길이 무엇이겠느냐?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을 보니 뻔하지요. 이제는 그 반대로 해야 됩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대중의 목적 성사를 위해서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사상이 이 역사를 혁명할 사상입니다.
자기 하나가 희생됨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얼마나 잘사느냐. 얼마나 성공하느냐 하는 문제가…. 그것을 생의 보람으로 알고, 자기가 인생으로 태어난 목적으로 알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방향과 역사적 사조의 형태를 갖춘 국가가 이 땅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죽은 시체와 같은 세계가 쓰러진 자리에서 비로소 환생되어 가지고 무한히 자랄 수 있는 새로운 천국이나 새로운 이상적인 하나의 세계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외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한 민족이 세계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씨도 그림자도 없이 깨끗이 희생했다 하면, 세계의 국가가 전부 하나된 후에는 그 민족을 모셔다가 그 민족을 자기들의 머리로 삼고, 신경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러한 사상을 세우기 위한 것이 무슨 사상이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입니다. '나 하나가 죽게 될 때에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요, 나 하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시련 가운데에서 해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 하나가 이슬같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칼끝에서 사라져 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해방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이 예수의 사상입니다. 또한 자기를 죽이고 창끝으로 모해하던 수많은 원수들을 대해서도 '너는 지금 나와 원수이지만 미래에 나의 친구가 되고, 나와 동역자가 되길 바란다' 하는 소망을 가지고 그에게 미래의 축복의 터전을 넓혀 주고 가겠다고 한 것이 예수님의 사상이 아니었느냐.
이걸 볼 때, 이 사상이 아니고서는 하나의 세계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러한 사상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품겨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상이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야 할 통일교회의 사상이 무엇이냐? 바로 그와 같은 사상이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부모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나온 것은 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보다 가치적인 민족을 그리워했고, 보다 가치적인 세계를 그리워했고, 보다 가치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세계를 그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의 승리라는 것은 그런 터전 위에 심어지고, 그런 터전 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테스트해 보고, 경험해 본 후에 그렇게 해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놀음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잘먹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잘입어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돼요. 잘살아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이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원수를 위해서, 가인을 위해서 말없이 일하고 감동시켜 가지고 그들이 무릎을 꿇되 발바닥에서부터 꿇을 수 있게…. 전신이 땅에 붙게끔 굴복시켜야 합니다.
한발이라도 들고 굴복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로 굴복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총칼 가지고 안 됩니다. 자기 권력을 가지고, 자기 기반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피가 끓어오를 수 있는 하늘의 사랑 가지고 접속하는 겁니다. 고압선을 갖다 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사랑의 전류와 같은 것을 받아 가지고 접선시켜야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선생님이 그렇게 해서 망할 것 같은 고빗길을 많이 거쳤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통일사상을 가지고 남아졌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구요. 만일 남한이 통일교회사상으로 뭉치면 어떻게 되느냐? 총칼을 가지고 싸울 때에는 더 강한 총칼을 준비해 가지고 적 이상으로 강하면 되는 것입니다. 적이 열만큼 훈련하면 우리는 백만큼 훈련하는 것입니다. 왜 지는 거냐? 정성이 모자라서 지는 것이요, 사랑이 모자라서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해 못 할 것이 뭐냐 이겁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뜻적인 입장에서 보면 여러분 개인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래,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나아요? 기가 막히다는 거야. 어떤 식구들을 보면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그의 시선 아래는 로마 제국이 있었던 것입니다. 몇백 년이 지나면 유대교는 나한테 굴복한다는 신념이 예수에게 있었습니다. 유대민족은 물론이요, 세계의 적국까지도 굴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사상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살다가 신념을 가지고 죽어갔다는 것입니다. 임자네들도 그래요?
요전에 우리 교회에서 신문사[주간종교]에 근무하는 사람들 월급을 준다고 하니 귀가…. 내가 기가 막힙니다. 그런 것에 연연하려거든 자식들을 낳지 말아요. 여러분이 뜻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원리대로 해 가지고 망하나 보라구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선생님이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1972년까지가 모험기입니다. 오는 12월까지 5억이라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천만원을 들이대야 됩니다. 요즘은 하루에 1백만 원, 2백만 원은 보통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돈은 한 푼도 없다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내 하나의 살림을 위해서, 이 문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이곳 청평 땅을 사는 데도 그렇습니다. 이 땅 사는 데도 지주 1백여 명으로부터 사는 데 약 9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1백여 명에 9개월이니까. 삼구 이십칠(3×9=27), 270일이 됩니다. 주인이 백명이니까 한 사람과 계약을 하는 데에 이틀 정도 걸립니다. 사흘은 조금 못 됩니다. 아무튼 사흘 이내에 한 건씩 계약을 했어요. 세상에서는 이런 일 못 합니다.
그들이 쉽게 팔 것 같애요? 통일교회가 그 땅을 샀으니, 그 다음 사람들은 땅 값을 몇 배로 받지 않으면 안 판다고 할 것 아닙니까? 여기에는 반대 파들이 있는 겁니다. 그저 요렇게 반대하고 조렇게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누구의 땅입니까? 당신의 뜻을 이런 곳을 중심삼고 이루어야 할 것인데…' 내가 정성들이는 것은 내 개인의 일로 정성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손을 대는 녀석은 통일교회의 운세에 꺾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영계에 갔다구요. 그 반대하던 사람들 중에는 이름 모를 병으로 수술하는 등 지금까지 1년 반이나 2년씩,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이 특별히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한 푼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불리는 거라구요. 그걸 보면, 하나님이 선생님을 협조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생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정이니 뭐니, 뜻 세계는 탕감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여의도 땅만 하더라도 현찰로 5억 5천만 원, 한 6억 가까운 돈이 들어가야 되는 거라구. 그것을 3개월 이내에, 두 번 했기 때문에 6개월 이내에 갚아야 됩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니, 따라지 중의 왕따라지입니다.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거라구요. 자, 그것 저것 생각하려니 이건 뭐라고 할까,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수중에 돈 한푼도 없는 상태에서 5억이라는 거액을 계약했습니다. 여기도 한 1억 2천만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 한 1억 4천만 원이 넘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1년 동안에 내가 10억 가까운 돈을 썼습니다. 어디서 마련했겠습니까? 도둑질해 왔겠어요? 필요하게 되면 하나님이 다 갖다 주시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병아리 같은 몇 녀석을 못 먹여 살려, 이놈의 자식들! 시시하다는 거라구. 암만 따라지 신세라도 때가 되어 내가 기동을 하게 될 때는 대한민국이 말려 들어가고, 세계가 말려 들어갈 거라구요.
이 구보끼가 장개석을 만나는 것도 내가 전부 다 코치한 것입니다. '이러 이러한 말을 해라. 그러면 30분이면 꺾여 나갈 거다. 두고 봐라. 내 말이 안 맞으면 하늘은 없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믿지 않고 여지껏 꺼떡꺼떡하고 말이야, 저거.
지금까지 그런 것입니다. 일본의 고관들 전부 다, 기시 수상, 사또 수상의 관저에 들어가 가지고 그들의 여편네까지 녹여 놓는 놀음까지 전부 다 내가 코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도 이런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거 얼토당토않은 얘기거든요. 그러나 삼각점에 가서 딱 걸리게 되어 있어요. 걸려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약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에 오게 되면 박대통령도 홀딱 반하는 것입니다. 정보부장도 홀딱 말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복귀하고 나타나야 돼
그런데 선생님이 왜 밖으로 안 나타나느냐? 복귀노정이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복귀하고야 나타나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복귀할 수 있는 자리는 자랑해 가지고 복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입장에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목사 공청회에도 선생님이 안 나타나는 겁니다. 내가 선전하기 위해 나타나겠어요? 통일교회 자랑하기 위해서 나타나겠어요? 나타나지 않지만 그들이 찾아와서 머리를 숙여야지, 나를 반대했으니까.
언제 나타나느냐? 대한민국이 복귀되기 전까지는 안 나타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위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 뜻이 있고 하늘의 법칙이 있다는 겁니다. 임자네들 대해서는 땀을 흘리며 얘기도 해주지만, 이것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 '우리의 사명'이라 했는데, 여러분의 사명이 무엇이냐? 가인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아벨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가정적 아벨이라면 가정적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종족적인 아벨이 되면 종족적인 가인을 구해 줘야 되고, 민족적인 아벨 통일교회라면 민족적인 가인 교단을 구해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거기서 비로소 국가를 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이제 제일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가 발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어떻게 아벨이 되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교회 소원이야 한꺼번에 다 이루어집니다. 이제 복귀노정을 알겠어요?「예」 개인 아벨은 개인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가정 아벨은 가정 가인을 복귀해야 되고, 종족 아벨은 종족 가인을 복귀해야 되며, 교단 아벨은 교단 가인을 복귀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딱 그렇게 맞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기성교회하고 우리하고 비슷비슷합니다. 이번에 나까무라 목사 부흥회 하는 것 알지요? 「예」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조종한 것인 줄 천하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영락교회 부목사 되는 한목사라는 사람 걸려들어 가지고 껄떡 껄떡거리고 있습니다. 수작 잘한다구요. 저들이 걸려 들지 별 수 있어요? 일본에서 하는 것도 전부 내가 코치하는 거라구요.
지금 여기에 한 70여 개 교회가 가담해 있습니다. 일본에 수십 개 교회, 대만에 한 10여 개 교회쯤 됩니다. 그런 큰 교회를 중심삼고 나까무라를 상당히 훌륭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일본 전역에서 부흥회를 하는 거라구요. 사람들은 '이야! 일본 교회가 다 망했는데, 그래도 나까무라는 살았구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목사들 한 2천 명쯤 모아 가지고 우리 승공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수택리 수련소에 데려다가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너무 이르고 해서 삼각산에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전에 거기에 대한 프로그램을 짜 가지고, 경비도 내가 전부 대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러고 있다구요. 북은 여기서 치고 춤은 다른 데서 추는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지금 기성교회 교계에서도, 무슨 새로운 일 한다고 해서 알아보면 통일교회에서 한다는 거예요. 무슨 청년활동도, 전부 알고 보면 통일교회요, 무얼 세웠다 하면 통일교회요, 어떤 일을 펼쳐 보면 통일교회라는 저예요. 그러기에 그들이 통일교회를 무서워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주간종교 신문사 등록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공보부 장관이 기각 도장을 찍었어도 우리는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1차 기각, 2차 기각, 3차기각, 4차 기각까지 해도 끝까지 내는 것입니다. 과장, 국장하고 싸우다가 장관하고도 싸우고…. 꼭대기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을 수도 있다구요. 어떤 사람은 '빨리 이기지 왜 지금까지 그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런 길이 있는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석 목사가 '선생님 하라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그렇게 안 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신문 팔지요? 「예」 팔아요, 안 팔아요? 「팝니다」 가져갔던 부수를 돌려 보낸 사람이 있다는데 그런 패들 솔직히 손들어 보라구요. 앞으로 1974년도가 되면 일간신문을 만들어야 된다구요. 임자는 기자증 받았다면서? 응?「지국장증입니다」 그래 지국장증이든 뭐든 받았냐 말야. 「예」 아직 안 받은 사람이 있으면 받아놓으라구요. 그건 내 싸인을 받고 내줘야할 텐데…. 3백 부 이상 소모 못 시키면 지국장 능력 없는 겁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왔다갔다하고, 기성교회가 왔다갔다하는 문제를 두고 길을 닦아 나가는 중이라구. 우리가 이러다 마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청평 성지를 마련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화들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3년 전에 청평에 와 있을 때는 낚시터 하나 잡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어디서 얻어 먹던 패들이 와 가지고 주인도 모르게 낚시터를 닦아 놓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얻어먹는 사람이 무슨 체면이 있어요? 하면서 다른 구실을 풍자적으로 빙자해 가지고 '임자하고 나하고 사돈이라구' 하면서 농담을 피해 벌써 그 주인이 누군지 다 알아 가지고, 당신 이름은 아무개 아니냐, 아들의 이름은 아무개 아느냐, 미리 다 알거든. 그래 들이 때리는 거라구요. 그 아들하고 나하고 사돈지간이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어? 이래 가지고 그들도 궁금증이 나거든, 장본인에게 사돈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니 와서 쑥덕쑥덕 하는 거라구요. 그래도 대해 주지 않으니 거북해서 슬금슬금 들어와 가지고 고기가 잘 잡히느냐고 묻기도 하고 그래요. 이런, 욕을 할 때는 언제고…. 그럴 때는 그렇게 슬렁슬렁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웃음) 그렇게 첫날 낚시할 때 얼마나 천대받았는지 모릅니다.
기회만 있으면 쳐라 이겁니다. 우리가 언제는 허가받아 가지고 뭘 했어요? (웃음) 사건을 저질러 놓고 욕을 먹든 뭘 먹든 어거지 떼거지를 써 가지고 자리잡아 나온 것이 통일교회인데. 그렇지 않아요? 체면보고 눈치 봐가지고 언제 합니까?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굴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다 거꾸로 일을 시작한 거예요. 여기 한 100평쯤 되는 땅을 사려는데 한 평에 4만 원, 5만 원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4만 원, 5만 원이 뭐냐고, 우리를 천대하면 벌받는다고 해 가지고 만 오천 원 줬나? 이렇게 해서 산 것입니다. 그때는 아주 형편이 무인지경이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천막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이 와서 수양하는 줄 알고 있거나,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소일하러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때 이 지방을 탐지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내가 뭐 낚시로 고기 잡으러 다녔겠어요? 소문 내지 않고 터를 잡아야 되겠기에, 3년 전부터 여기에 사람들을 파송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전부 배를 사 주고, 그물도 사 주니까 그들은 자기들 살림살이하기 좋다고 해서 거기에만 열중했지, 선생님 계획을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비상대책을 세웠던 것입니다. 여기에 터를 잡고 있는 모든 왕초들을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아무 골짜기나 블록(block)에 가면 대장이 다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전부 다 있습니다. 어떤 면이든 다 있어요. 그들은 색다른 사람이 오면 자기들의 기성 기반을 침입한다고 해서 텃세를 아주 많이 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자식들을 꼭대기에서 누르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보를 전부 다 수집해 가지고…, 별 수 있어요?
맨 처음 청평 버드나무집도 그래요. 그 사람이 평양내기인데 옛날엔 싸움꾼이었고 여기에서 왕초라구요. 그래서 이 사람을 휘딱 잡아 뉘어야 되겠다. 잡아 꺾어 놔야 되겠다…. 그래야 우리가 왕초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웃음) 이래 가지고 서너 명을 꺾어 놓았습니다. 또 가평군 일대의 우리 승공연합의 간부들이 진을 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패거리가 많거든요. 그들을 다 잡아채는 겁니다.
그 후로는 우리가 땅을 안 산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못 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돈을 가지고도 못 산다구요. 우리가 포기한다는 결재가 나야 그들이 땅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 사는 거라구요. 언제 따라다니면서 땅 사겠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 그 기간에 약 백만 평90만평 이상의 땅을 살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집이 몇 평 됩니까? 교회가 몇 평 돼요? 만 평쯤 됩니까? (웃음)
여러분은 역사적 선의 결실체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돌려서 우리의 사명이다 할 때, 이 사명은 무슨 사명이냐? 그것은 3시대의 사명입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총탕감하기 위한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이제 보라구요. 선생님이 전체에 대한 책임을 졌다면, 전체의 책임을 진 선생님은 반드시 연결체를 통해 가지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렇지요? 그러면 여기 중심의 생각이 삼각이라면 여기에 와서 동그라미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요것이 요렇게 되어서 전부 다 같아야 통일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선생님과 똑같아요? 얼굴은 다르지만, 내용은 같아요? 여러분, 닌징 (당근)이 새빨갛지요? 그걸 빨간무우라고 합니까, 닌징이라고 합니까? 응? 그것은 결정체가 같은 것입니다. 그 결정체는 그물코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도 작은 분야에 있어서의 책임이 절대적입니다. 그 분야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작은 분야에 있어서 책임이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돌아다니면서 딴 짓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자체도 반드시 여기에 돌아가야 합니다. (판서하심 ) 돌아가야 돼요. 그렇지요? 주고받아야지요? 「예」 그러려면 여러분은 어디에 뿌리를 박아야 되느냐? 선생님에게 뿌리를 박아야 됩니다. 아무리 싱싱한 가지라도 뿌리로부터 영양을 받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잎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뿌리와 접해 있지 않으면 죽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은 선생님하고 하나되어 있어요? 선생님은 뿌리지요? 「예」 그래 하나되어 있어요?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역사적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세계적이어야 하고, 다음에는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3시대의 사명을 우리는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여러분 자신은 무엇이냐? 역사적 결실체입니다. 그렇지요? 결실체는 결실체인데 여러분은 역사적 종족을 중심삼은 결실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선한 선조들이 있어 가지고 그 선조들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난 것이 아니요, 여러분이 잘나서 만난 것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누구를 통하여 태어났든지간에 그 선조가 대한민국의 공적인 역사의 일 분야와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악한 나라라도 거기에 더 악한 것과 덜 악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악한 나라도 그 배후에 덜 악한 편이 있는 거예요. 하늘은 덜 악한 편을 중심삼고 역사해 나오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공적인 분야에서 선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조의 공적이 있는 그 혈통적 인연을 따라, 유전법칙에 의해서 그 선조의 소성(素性)을 많이 닮아난 그런 인연이 있기에 선생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만난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러분의 눈 하나도 여러분의 눈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의 얼굴을 보면 그의 어머니를 닮았든가, 그의 아버지를 닮았든가, 할아버지를 닮았든가 그들의 모습에서 한 부분 정도는 닳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전부 다 분석해 보면, 여러분의 수천 대 선조의 핏줄이 다 엉키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세포든지 전부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그것을 전부 빼 가면 여러분은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선한 조상 주식회사의 사장이라구요. (웃음) 그 사장의 명령에는 전부 다 복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장이 잘난 사람이어야 되겠어요, 못난 사람이어야 되겠어요? 잘나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잘났다는 사장은 어떤 사장이냐? 과거의 역사적 전통에 거슬리지 않으며, 시대적 활동 무대에 있어서도 선두에 서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잘난 사장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 결실체이옵니다. 우리가 아니면 뜻도 이루지 못합니다'라고 하는데, 수작들은 잘하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런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죽으면 천만 대의 선한 선조가 있더라도 그 선조들은 모가지가 달아납니다. '우리 종회에서 이 시대에 통일교회 문선생과 만날 수 있는 종족의 대표적인 선한 결실로 이 사람을 보내나이다!' 하며 선포하고 보냈는데, 그런 여러분들이 뜻을 못 이루면 그 선조들의 목이 달아난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수가 목숨 하나 내놓으려 할 때 아브라함, 모세, 전부 다 걸렸어요, 안 걸렸어요?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갔습니까?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그랬습니다」 그리하여 제2이스라엘 민족이 없으니, 제3이스라엘이 대한민국에 날아 온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맞던 이상의 심정을 가져야 되고. 요셉보다도, 마리아보다도, 사가랴 가정보다도, 또한 그때의 제자들보다도 강력한 심정을 가지고 제2이스라엘권을 책임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3이스라엘권을 성립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그때 당시에, 살아서 사탄세계를 때려부술 수 있는 실권자가 되지 않고서는 제3이스라엘권을 하늘로부터 옮겨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여러분이 알아 듣는지 못 알아 듣는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
그러니 여러분은 역사적인 열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했을 때, 여러분 하나가 망하는 것은 좋지만…. 여러분, 축복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무서운 것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영계에 가 보라구요. 여러분이 잘못하고 영계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선조들이 심판합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사탄이 된다구요? 「선조들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누가 참소하는 사탄이 되었습니까? 종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여기에서의 사탄은 누가 되느냐 하면 선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선조들이 '이놈의 자식, 너 왜 그렇게 했어. 이 자식아, 남자라는 게' 그런다는 겁니다. 여기 박종구는 안 걸리나, 한번 죽어 볼래? 얼굴이 넓적해 가지고 능청맞은 데가 있거든. (웃음)
결국은 누가 뿌리냐 하면, 선조들이 뿌리가 아닙니다. 알아요? 여러분이 뿌리입니다. 복귀역사는 선조로부터 이렇게 내려오는데, 여기서 돌아설 때는 누가 대표가 됩니까? 그 종씨 가운데 대표자가 있지요? 그러면 선조가 조상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종지조상은 맨 마지막 자손이 되는 겁니다. 그게 천지개벽입니다, 천지개벽. 그런 것을 두고 천지개벽이라고 한다구요.
할아버지가 손자 된다는 말이 세상에 있습니까? 어머니가 맏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맏아들 된다는 거라구요. (웃음) 세상에 그런 법이 있어요? 그런 법이 있을 수나 있느냐구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데리고 살려면 자기 조상한테 승락 받아야 됩니다. 그런 거 알았어요? 그것이 천지개벽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는 놀음이라 이거야. 그런 놀음을 하려다가 예수가 죽게 된 거라구요. 그것을 누가 좋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조상이라구요? 「우리가 조상입니다」 보기 싫은 임자네들이지만 여러분이 조상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조상 될 자격이 당당합니까? 조상 될 자격이 당당해요? 자, 우리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당당합니까, 못 합니까? 「당당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앞에 나갈 때 '예' 이렇게 머리 숙일 겁니까? 아니면 당당하게 '오, 임자구먼' 그러겠습니까, 어떡하겠어요? 대답을 솔직히 해보라구요. 「당당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배포도 있고 실적도 있겠구만?
불신의 뿌리를 뽑으려면
자,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산 꼭대기에서 그 얼마나 정성이 지극했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까 제2의 조상이 되었지요. 이거 하나님의 복귀역사라는 것은 전부 엉터리 역사라구요. (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엉터리 중에 그런 엉터리가 없어요. 배를 지으려면 강가에 가서 지으면 얼마나 좋아요. 왜 그 높은 산 꼭대기에 가서 지었느냐 말이예요. 그런 멍청이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 믿지 못할 것도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불신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니 믿지 못할 것까지도 완전히 믿어야 불신의 뿌리가 없어지는 거라구요.
아브라함도 보라구요. 무엇 때문에 야간 도망하게 해서 집시무리를 만들어 가지고 뭐 복을 줘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사막지대의 도토리나무 아래서 3대 제물을 바치던 곳이 이스라엘에 아직까지 있다구요. 그 형편없는 집시무리예요, 지금도 짚시가 있다구요. 짚시라는 것은 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막을 치고 다니고 낙타에다 짐을 싣고 다니면서 하루는 여기에, 내일은 저곳에…. 그런 떠돌이 생활하는 무리입니다. 그 옛날에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살이하던 그런 것과 같은 겁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남의 것을 슬쩍슬쩍해 가면서 보따리 싸 가지고 양떼 몰고 풀밭 따라 다니는 족속들입니다. 그런 패들이 천문학 많이 숭상하지, 비가 오면 안 되겠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여러분 하나 잘못하면 여러분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영계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조상이 여러분을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아, 너한테 온갖 소망을 다 걸고, 온갖 정성을 다 해서 길렀는데, 네가 이렇게 될 게 뭐냐? 문중을 망치고 역사적 조상을 망쳐도 유만부동이지' 그럴 게 아니겠습니까? 원리를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재림부활 완성하기 위해서 바랐던 소원이 나무아미타불이 되었으니, 좋았다가 망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만약에 선생님이 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망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노정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해 오던 조상들이 전부 걸리겠습니까, 안 걸리겠습니까? 전부 다 걸리지요? 「예」 예수도 걸리고 전부 다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6천년의 공사가 도로아미타불 된다구요. 그렇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을 수도 없고 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죽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망할 수는 없다는 거라구요.
우리 생의 일대라는 것은 잠깐입니다. 그렇지요? 이 일대가 영원의 척도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장되면 무한히 연장되지요? 반면에 이걸 꺾으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천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저울과 마찬가지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생님이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이 세계적인 말이 되는 거라구요. 또 선생님은 못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은 전부 다 선조들 얼굴을 대신 쓰고 나온 부활체입니다. 역사적인 부활체다 이거예요. 그 역사가 얼마나 되느냐? 6천년, 지금 몇십만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수고한 역사과정이 결국은 나 하나 만들기 위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김씨면 김씨라는 나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선조들이 왔다 갔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는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걸려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그토록 수고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그것은 선생님 하나 출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영계가 선생님 하나 출세시키기 위하여 동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 여기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입니다. 우리가 뭐라구요? 「역사적인 결실체요」 그 다음엔 시대적인 결실체요. 미래적인 결실체입니다. 엄청나구만! 그래, 여러분이 역사적인 결실체라구?
어떤 결실체가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 그러면 이러한 결실체가 고자리가 먹고, 벌레가 먹어서 구멍이 뻘 뚫린 과실이라면 좋겠습니까? 떠억 벌려 보면 새까만 씨가 도르륵 굴러 나오는 사과가 좋아요, 그 씨가 찐득찐득 해 가지고 붙어 다니는 사과가 좋아요? 씨가 잘 익은 사과가 되고 싶지요?「예」 알긴 아는구만요.
그래 여러분을 쩍 쪼개면 잘 익은 과일의 씨와 같은 것이 나올 것 같아요? 여러분의 2세가 틀림없는 하늘의 열매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마음속을 쪼개 보면 잘 익은 통일교회가 나올 것 같아요?
그 6천년 결실체가 낙과처럼 익지 못하고 떨어져서야 되겠습니까? 그저 바람 불까 걱정하면서 '아이구 내가 떨어질 것 같다. 조금만 더 불면 떨어지겠는데, 선생님, 흔들지 말고 가만 놔 둬야 됩니다' 해서 되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패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선생님이 도끼로 들이치고 가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가지가 찢어져 나가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는 무리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패에 속합니까? 바람 불까 봐 걱정하는 패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패들입니까? 「흔들어도 안 떨어지는 패입니다」 흔들어도 안 떨어지는 패? 「예」 거 말 잘했어요. 정말 그래? 「예」 웃는 패들은 틀려 먹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가 한번 테스트해 볼 것입니다. 사막지대로 몰아낼 것입니다. 저 산중에 밀어 넣고 한 번 훑어 볼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러고야 말것입니다. 모가지를 밟고, ‘이 녀석, 통일교회 믿겠어? 믿겠으면 말해 보라구?’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어때요? 그래도 믿을 수 있겠어요? 「예」 믿으려면 통일교회 식대로 믿어야지, 남의 교회 식대로 믿으면 되나요?
여러분은 '나 하나 죽으면 망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코를 떡 막고 '나 죽소' 할 때 하나님이 쫓아와 가지고 손바닥을 후려갈기며 '야 이놈아, 죽다니'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실감적으로 느껴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항의하는 것이요, 담판짓는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자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나 죽습니다' 하면서 죽을 자리 있으면 먼저 대가리 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생길이 훤하지요.
보라구요. 개인 복귀, 가정 복귀, 종족 복귀, 민족 복귀, 국가 복귀, 세계 복귀, 천주 복귀, 하나님 복귀, 이렇게 8단계까지 나가려면 죽어야지 별 수 있어요? 하나님 때문에 죽었으면 그것은 땡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발길로 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죽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 해봤습니까?
꽃다운 청춘 시절에 조금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바쳤다는 영광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타고난 본성의 운명길보다 하늘을 위해서 죽었다는 그 가치와 자기의 사명감에 대한 절박한 도수가 강하게 되면 자기 운명의 자리보다 더 큰자리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에서 죽겠다고 생각해 봤어요? 「예」 그래, 죽겠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그러고 있어? 만약에 안 죽을 입장에 있으면 죽게끔 만들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각오가 돼 있으면 잘사는 남의 집 남편 한번 도둑질해 오는 것입니다. 잘사는 남의 집 여편네도 한번 도둑질해 오는 것입니다. 아들딸 전부 다 도둑질해 오는 것입니다. 그런 일도 해봐야 합니다.
자! 그럼 도둑질 해오는 그 패당이 원수 패당이야, 우리 패당이야? 원수 패당이야, 우리 패당이요? 「원수패입니다」 원수 패당이라구요. 김일성 패당 전부다, 김일성의 여편네와 아들딸 전부 잡아오면 그것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잘한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상 주겠습니까, 벌 주겠습니까? 「상 줍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이걸 빼앗아 오자할 때는 그걸 위해 정성들여 보는 것입니다. 끌려오는 데는 강제로 끌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목을 내놓고 따라오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 많이 해봤습니다. 그러려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대담했던 어린 시절
복귀역사는 가인 아벨 복귀역사입니다. 원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너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 내 마음을 바쳐 죽기까지 사랑하고, 부활해서까지도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꺾여 넘어갑니다. 그런 실험을 해보면 하나님이…. 지금은 그런 놀음 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딱 걸고 낚아채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오나 안 오나 보자' 이겁니다. 누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더라도, 칼을 꽂더라도… 선생님은 그런 운동을 많이 했다구. 알겠어요?
이왕에 죽음을 각오한 녀석이니까 죽을 놀음을 한번 해보는 것입니다. 죽을 놀음을 해서도 안 죽게 되면 추앙받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사람은 엉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생각을 할 줄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엉뚱한 생각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생각을 함과 동시에 엉뚱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엇을 하는 데도 시시하게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우리 동네에 엿 고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서당이 있었는데 서당 애들이 왔다갔다할 때는 그 엿 고는 냄새가 코를 자극시켜 군침이 돌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엿이 덜 된 것을 무엇이라고 하나? 「조청이라고 합니다」 그래 조청. 선생님이 하루는 애들에게 '그것 먹고 싶은 사람 손들어라. 내가 한번 실컷 먹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라구요. 시골 불쌍한 사람들 한을 한번 풀어 준다는 마음으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가서 '아버지, 제가 돈을 좀 써야 하겠는데, 거 소 판 돈 있지요? 아버지 오늘 내가 죽으면 그돈 어떡할거예요? 아들한테 쓸 돈 있으면 나죽기 전에 좀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쓸 거냐'고 하시길래 '주시면 얼마를 쓰든지 제가 알아서 적당히 쓰겠습니다' 하고는 타냈습니다.
선생님의 아버지도 선생님 말 잘 들으셨다구요. 벌써 열 네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작전 계획을 딱 세워 놓고, '이리 갑시다' 하면 따라오실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잘못하면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 심정을 역이용해 가지고 딱 걸어 놓으면…. 뭐 왼다리 걸리고 바른 다리 걸리고 다 걸린다는 것입니다. 내가 열 다섯 살쯤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지금 파주에 묻히신 할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의 주모자였습니다. 원래는 그분이 33인 가운데 들어가야 됩니다. 그분은 5도 책임자가 되어 가지고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강원도를 순회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으러 다녔습니다. 3·1운동 거사할 때, 그 교회 장로인 이 명룡씨를 대신 파송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금광을 했는데 목사하는 양반이 금광을 하다 망했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 그분이 그때 우리 재산을 전부 다 저당잡아서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된 일이예요.
그 할아버지가 그랬기 때문에 우리 큰집 일가가 전부 다 동양척식회사에 저당잡혔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이름으로 도장을 전부 다 찍어 주었기 때문에 몽땅 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우리 어머니가 대단했다구요. 공부도 안 한 우리 어머니가 그걸 전부 다 빼돌렸습니다. 삼촌, 친척 할것 없이 살살살 해 가지고 전부 빼돌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큰집이 삼촌 이름으로 돼 있었어요.
그 삼촌은 욕심이 많은데다 덜렁덜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삼촌이 우리집에 쫓아와서는 '이 집이 큰집 것인가, 우리 집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어머니가 듣고 몹시 기분 나빠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해 가지고 열 네살 때 작은 어머니를 구슬러 가지고 도장을 살짝 넘겨 온 거예요. 사촌들이 내 말을 잘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뒤주짝 어디에 함이 있다는 걸 알아 가지고 작은 어머니를 구슬린 겁니다.
작은 어머니는 나를 좋아했습니다. 나도 또 그분을 좋아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가려면 반드시 여비도 대주고 그랬어요. 작은 어머니와는 통했기 때문에 '아, 우리 집안에 아무개가 우리 전부를 대표한 조상이다'라고 하며 정성들여 가지고 내게 여비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그런 것을 영계의 대감님이 전부 다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내가 어디 가려고 하는데 여비 좀 해달라고 하면 투정을 부려도 통하고 그랬어요.
그런 작은 어머니를 내가 살랑살랑 구슬러 버린 겁니다. '작은 어머니, 내가 도장 하나를 갖고 싶은데 삼촌 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그랬더니, '열 네살 난 녀석이 도장은 무슨 도장이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꾸며대는 겁니다. '내가 꿈에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도장이 요러요러한 도장인데, 그 도장을 꾹꾹 찍으니 하늘이 기뻐하더라구요. 그거 아주 좋았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꾸며서 들이대니 멀거니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삼촌 도장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어요. 그 도장을 가진 사람은 복받아요. 삼촌 도장이 꼭 그렇게 생겼을 것 같은데 한번 구경했으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아, 그래? 하면서 보고 싶으면 한번 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도장을 보긴 했는데, 그걸 가져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작은 어머니, 이런 도장을 나도 하나 새겨서 갖고 싶은데 하루만 빌려주세요' 해 가지고 그 도장을 가져다 그날 척 넘겨 버린 겁니다. 그리고 나서 후에 도장을 갖다 주면서 '나 도장 하나 잘 새겼습니다' 하고 갖다 준 것입니다. 뭐 조그만 녀석이 그런 놀음을 했을 줄 알았겠어요?
그렇게 한 1년쯤 지난 후에 삼촌이 '어, 큰집은 우리 집이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맏동서인데 세찬 분이었어요. 작은 동서들이 대사를 치를 때 잔치를 잘못하면 기합을 주었어요. 그러면 아랫 동서들은 맏동서라고 그러냐고 툴툴하고 코웃음을 치고 그랬어요. 그런데 삼촌이 뒤에 알고 보니 그집은 큰집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선생님이 그런 놀음을 잘했다구요. 살짝 하러 다니고 말이예요. 벌써 열두살쯤 될 때는 동네의 시집장가가는 사람들 사진만 봐 가지고도 나쁜 것 좋은 것 다 가렸다구요. (웃음)
자, 그러면 동네 총각들, 이 못사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조청을 한번 실컷 먹여서 한을 풀어 주어야 할 텐데, 이게 돈 몇푼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아버지 돈을 갖다가 몽땅 써 버리면 안 되겠고, 그래서 투전 판에 가서 한판한 것입니다. 소판돈 전부를 한꺼번에 떡 거는거예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내가 틀림없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는 겁니다. 알겠어요? 새벽 닭이 홰를 치고 나면 코가 비시시해 가지고 돈은 전부 한 곳으로 모이는 거라구요. 그렇게 돈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보고 한잠 잘 자고, 새벽에 일어나 쓰윽 보고 '나도 한번 하자' 하고 대드는 거예요. 돈이 있느냐고 하길래 나도 그만한 돈 걸면 될 거 아니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판 하는 겁니다. 짓고땡이를 하는데 내가 장땡인 거예요. (웃음) 선생님은 그런데 빠릅니다. 벌써 이길지 질지 안다구. 자신 있게 딱 들이대면 틀림없어요. 한번 해 가지고 먹고 쥐고도 남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라고 해서 함부로 얕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서운 사람인 줄 알거든요. 서슴지 않고 칼침도 놓는다구요. 만약에 어떤 녀석 도망가면 그의 어머니 아버지를 깔고 앉아 가지고라도 끝을 내고 만다는 이름이 나 있었다구요. (웃음)
내가 아홉 살 때 한번 맞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녀석이 내 코피를 터뜨리고 도망을 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 문전에서 30일 동안 기다려 가지고 끝내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또 떡까지 한 시루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웃음)
선생님은 한번 한다 하면 하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도 '내가 한번 할 테다' 하게 되면 나중에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래 가지고 한판 해 가지고 조청을 산 것입니다. 그때 조청이 한 독이 십 몇원밖에 안 하더구만요. 그래 가지고 '옛다, 이거 먹고 물러가라' 하면서 한바탕 먹였더니 그만 설사가 난 거예요. (웃음) 그 일이 잊혀지지도 않아요. 몹시 궁하던 판에 기름기 있는 음식이 들어갔으니…. 그 음식이 기름기가 좀 있거든. 그래 가지고 설사가 났습니다. 내가 그런 놀음도 해본 거라구요. 나는 무엇을 한다 하게 되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지독하다면 지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팥죽 사발이 되어 가지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허리 부러진 호랑이 모양이 됐으니 이거 됐어요?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도망갈 수도 없는 길
선생님이 씨름판에 가서 씨름을 하면 지고는 안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면(面)에서 왕초였습니다. 그런 사람인데 이 통일교회 영신(靈神)이 되어 가지고 이 꼴이 뭐냐 이겁니다. 임자네들 뒤치닥거리나 해주고 이게 성질상, 이게 본질상…. (웃음) 그러나 알고 보니 할수없다구요. 암만 잘났어도 내가 이 길 안가면 안 되겠기 때문에 지금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슨 생각을 안 해봤겠어요?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면 내가 먼저 도망갔지. (웃음) 내가 잘살기로 했으면 빌딩을 짓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라구요. 그렇게 지독하기 때문에, 한번 마음 먹으면 뿌리를 빼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놀음 해 가지고 이 길을 닦아 나온 거라구요. 선생님은 남들이 하는 시시한 그런 기도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난 것은 팔자가 사나워서 만났든가, 그렇지 않으면 운명이 드세서 만났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이왕지사 좋게 살게는 못 되어 있다구요. 또, 여러분 얼굴 상을 보면 알아요. 이빨도 뭉텅하고, 골상도 제멋대로입니다. 전부 바람에 맞아 죽게 된 사람들이라구. (웃음) 그렇다는 거예요. 잘난 녀석 하나 없다구. 이건 쓱 보게 되면 전부 천대나 받고 살 팔자들입니다. 그러니 감지덕지해야 된다구. 이제는 사람 노릇 하고 있잖아요. 이젠 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은 간판을 그렇게 뒤통수, 앞통수에 붙였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만난 거라구요. 딴 데 가서 해보라구요. 뭐가 되나. 통일교회에 들어와 정성들이고 있다가 나가서 해보라구요. 전부 다 따라지 중의 왕따라지가 되어 가지고 코를 끌고 다녀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문선생이 이제는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내일 모래면 링컨차(링컨 컨티넨탈)를 가져올 겁니다. 내가 돈이 한푼 없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에서 고급차가 들어오면 장관들이고 누구고 부패한다고 해서 대통령령으로 고급차 들여오는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도 거기에 예외일 수 없다 해 가지고 안 내주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공관을 통해서 들어왔지만. 그것을 내어 주면 전례가 되기 때문에 안 내어 주겠다는 겁니다. 만약 하나만 나가게 되면 '아, 통일교회 문교주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나' 하면서 장관이고 뭐고 얼룩덜룩한 패들 전부 다 난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경매에 부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차가 1971년도까지만 해도 한국에 한 대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소문이 나 가지고 부산의 부자들로부터 그들의 서울 친척들까지 동원되어서 한 50명의 경쟁 입찰자가 들이닥친 거예요. 기껏해야 1천만 원 정도될 것인데 1천 3백만원, 1천 4백만 원이나 써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넘겨 주면 큰일이라구요. 외국에서 처음으로 선물이라고 들여 왔는데 그 물건을 도깨비가 물어 가게 된다면 통일교회 운세가 꺾인다구요. 그렇잖아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것은 넘겨 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 갖고 '이놈의 자식들, 이 차가 어떤 차인데, 어디 빼내 가기만 해 봐라. 가다가 직사할 것이다' 반 공갈 협박을 하면서 대낮에 꽝꽝 싸움을 한거예요. 그랬는데 아 1천 4백만원 써 낸 사람이 있다고 요란해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의 뒷덜미를 눌러 가지고 1천 3백만 원으로 내려 놨습니다. 그런데 1천 3백 3십만 원까지 쓴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1천 3백 5십만 원으로 안 쓸 수 없었어요. 이래 가지고 마감 3분전에 1천 3백 50만원 써 가지고 낙찰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돈을 내일 가지고 가야 할텐데. 돈 1천 3백 50만 원이 있어야지. 1천 3백원도 없는데…. 그래서 도깨비 방망이 흔드는 놀음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내일 모레면 차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번에 차 가져오면 여러분 전부 한번씩 태워 줄지 모르지. 여러분의 신수가 트였으면 말이야. 그러나 타려고 생각 말라구. 앞으로 차 안 태워 주려고 합니다. 그 차 가져오면 절대 안 태워 줄 거라구. 타려고 생각지 말라구? 「예」 선생님도 이제 권위를 세워야 되겠다구.
이제 그 차만 떡 타고 다니게 된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한국에서 제일 가는 차 타고 다닌다' 하고 소문이 졸졸졸 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돈이 어디서 그렇게 났노? 하게 되면, '어디서 나긴 어디서? 777쌍 축복받을 때에 선물로 받은 것이다' 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내가 그 차를 타더라도 그것은 내 돈 가지고 산 것이 아니고, 선물로 받은 것이라구요. 그것 신문에도 났거든.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차 타고 다녀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자랑으로 여기는 겁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서 1천 3백 50만 원이면 교회가 몇 개요? 교회가 몇개입니까? 이런 어려운 사정에 이것을 팔면 틀림없이 한 2천 5백만 원 정도는 받을 것입니다. 그건 당연한 값이라구. 누가 한 3천만 원 주겠다고 하면 팔아 버릴까요, 둬 둘까요? 여러분하고 의논해 보자구요. 팔까요, 그냥둬 둘까요?「둬 둡시다」 그래 '둬 둡시다' 할 때, '둬 둡' 하는 소리는 큰데, '시다' 소리는 작구만요. (웃음) 그럼 팔까요, 둬 둘까요? 「둬 둡시다」 그것 두어서 뭘 하자는 거요? 그 차 탄다고 날아 다니나요? 뭘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 선전해 주는 것입니다.
'야! 우리 선생님은 외국의 축복해 준 사람들로부터 한국에서 제일 가는 차를 기부받아서 그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 겁니다. 욕하는 녀석은 못난 녀석입니다. 여러분도 누구한테 기부받으면 타고 다니는 거라구. (웃음) 이제 앞으로 고관집 심부름을 시킬 때는 이 차를 태워 보내면 정문 앞에 가서는 '빵빵빵' 클랙슨 세 번만 누르면 척 내다보고는 묻지도 않고 째까닥 문을 열어 줄 겁니다. 그 차가 효과가 있는 겁니다. (웃음) 청와대를 직접 들어 가더라도 경비원이 수두룩하지만 '빵빵' 몇 번 하고 쏵 들이닥치면 '야, 문열어 ?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벌써 그만하게 된다면 누구든지 여러분을 깔보지 못하는 겁니다. 알겠지요? 앞으로 여러분들 비상 교섭이 있을 때는 그 차를 빌려 주지! (웃음) 그렇다는 거라구요.
이번에 구보끼가 와서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태워 보내는 거라구요. 그런 놀음 해야 되겠다구. 그러니까 이젠 통일교회에 그런 차 한 대 있어도 괜찮다구요.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이 돈을 모아서 사 줬다고 해서 여러분들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구요. 내가 따라지로 나왔지만 죽지 않았다구. 자, 여러분들,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박자 맞춰서 춤 한번 춰 볼까?「예」오늘 저녁에 해볼까?「예」자, 누가 일어나 춤출 거야? 자신 있어?「예」거 한번 해보자우. (웃음) 어어, 이거 농담하네 하겠지만, 농담은 무슨 농담. (웃음) 그럴 수 있어요? 「예」 말이야 잘하지, 정말 그래요? 「예」
여러분들 눈 하나씩 팔아 먹자구. 앞으로는 눈을 바꿔치는 때가 올 겁니다. 눈이 하나에 못 해도 5천만 원 이상 나갈 거예요. 그렇다고 5천만 원이면 팔래요, 안 팔래요? 눈 하나 가지고 천국 가는 게 낫지. 「5천만 원이면…」 뭣이? 임자 눈은 5백 원도 안 준다구. (웃음) 그것도 다 격이 맞는 눈이라야지, 팔리지도 않는다구.
신념이 앞서야 한다
뜻을 위해 가고 공적 입장에서 지독히 고생하면 망할 줄 알아도 안 망합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저 녀석 용 될 줄 알았더니 번데기 되었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용이 될 줄 알았더니 번데기가 되었다는 거예요. 내가 번데기 될 사람이라구요. (웃음) 여러분들, 번데기 될 사람을 따라다녀도 좋아? 무엇 될려고? 「용이요」 번데기에서 용이 돼?
새로운 일은 어느 때나 칭찬받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린이 무용단을 비롯해서 선생님이 하는 것은 전부 다 그래요. 말이 났으니 국제승공연합 이야기 한번 해봅시다. 국제승공연합을 공보부에 등록하러 갔더니 '국제승공연합, 이거 반공연맹이요? 하고 물어요, '반공연맹? 국제승공연합이요' 라고 했습니다. 국제승공연합에서 승공이란 말을 빼면 뭡니까? 「국제연합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 '뭐 국제승공연합?' 국제승공연합에서 승공을 빼 놓으면 국제연합이거든. 승공은 공산당을 이기는 것이니까 국제승공연합은 공산당을 이기면 국제연합이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승공을 집어 넣은 것입니다. 이래서 공보부에다 등록하려고 하니, 공보국장이 단체 이름이 뭐냐고 그래요? 그래서 '뭐긴 뭐요? 국제승공연합이지' 라고 하니, 또 가만 보더니 연합은 뭐고 승공은 뭐냐고 해요. 그래서 승공이 승공이고 연합이 연합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웃음)
그들이 지도하는 반공연맹이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냥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얘기만이 아닙니다. 내가 반공연맹을 5년 이내에 밀어낸다고 선언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이제 5년 이내에 국제승공연합이 꼭대기에 설 것입니다. 천지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없다구요. 알겠어요? 「예」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청평 땅이 누구의 땅 되겠습니까? 누구 땅 되는 거라구요? 「우리 땅 됩니다」 뭐 또 우리땅 돼요? 「예」 말을 해도 격식에 맞는 말을 해야지, (웃음)
맨 처음에 선생님이 여기 와서 쓱 보니까 자리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자리잡고 기도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일생 동안 정성들이는데 있어서의 기도하는 길을 닦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슨 그룹이든지 최고 그룹은 정성들인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혼자 울업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아요. 내가 비록 이 손바닥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내 결심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못 하는 게 없었습니다. 한번 이룬다는 것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기필코 이루고야 맙니다. 내가 기도하던 것이 엊그제 같아요. 이곳 일도 내가 작년 4월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들은 이 좋은 곳을 요즘에야 알아 가지고 '야, 통일교 문선생이 좋은 곳을 전부 다 샀다'고 야단들입니다.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입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그런 성격인데, 만약에 딴 곳으로 도망가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었더라면 여러분보다 내가 먼저 갔을 거라구요. 알겠어요?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가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의 코를 보라구요. 누구 말 안 듣게 생겼습니다. 눈을 보세요. 보면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겁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선생님이 되고부터는 겁이 제일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건 왜? 선생님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놀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심각하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내가 가는 데는 하나님이 따라오신다고 생각하지 내가 하나님을 따라간다고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대한민국이 따라온다고 생각하지, 내가 대한민국을 따라간다고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를 따라온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신념에 있어서 앞서야 되고 실천에 있어서 앞서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기 통일교회 간부들 얼마나 부작용이 많아요? 돈은 뭐가 어떻고 어떻고…. 자기들이 돈을 주고 나서 그런 타령이나 하면 좋겠어요. '우리를 이렇게 못살게 만들어 놓고…'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수작들 부리고 있습니다. 보리밥도 못 먹고 못살게 만들어야 뭐가 되는 거라구요. 그렇게 돼있지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 하는 것이 우리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전부 다 반대입니다. 역설적인 방법이 곧 복귀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좋다는 것은 절대 안 합니다.
죽더라도 3시대의 사명을 다 해야
요전에 어느 지구를 좀 도와주겠다고 했더니, 아무개가 '선생님, 이렇게 이렇게 되어 얼마가 필요하니 돈 좀 보내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언제나 선생님이 돈 보내 주는 사람인 줄 알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나 원리의 일단을 만들려니 할 수 없이 이렇게 보조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은 아직까지 젊습니다. 정정합니다. 젊지요? 「예」 젊어요. 늙어요? 「젊습니다」 정말로? 「예」 나보다 젊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못하는 일을 전부 다 시켜먹겠습니다. 그럼 약속하는 겁니다. 「예」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이 신념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 결실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결실체인 내가 '선조들 오시오' 해서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김씨면 김씨의 위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선조들 가운데서 혹시 나라에서 욕을 먹으면서 민족사상을 고취한 선조들이 있으면 그 선조의 절개를 존중시하고, 내 일대에서 그분들의 절개가 빛날 수 있는 사상적 중심이 되면 되었지 부끄러워 머리 숙이는 모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역사적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 다음엔 시대적 중심체가 되어야 합니다. 김씨면 김씨 문중, 박씨면 박씨 문중에 있어서 '전부 내 말 들어야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자신을 가져 봤습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종족적 메시아가 못 되는 겁니다. 종족이 전부 내 말 들어야 되고, 내가 주는 것 받아야 되고, 내가 달라고 할 때는 줘야 되는 것입니다. 진짜로 주면 진짜 받을 수 있는거예요.
그 다음에는 미래의 출발체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한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한 개체가 3시대의 결합체가 되는 겁니다. 입체적이라구요. 3시대의 결합체가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소망이 내일에 있었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명으로 보면 그러한 사명이 있는 거라구요. 3시대의 종합적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열매로 태어난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택받은 대표자들인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사명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3시대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책임을 수행해야 할 시기
또 여러분은 어떤 책임감이 있느냐? 책임감이 문제라구요. 종족이면 종족, 나라면 나라를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상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구해야 되고, 세계를 구해야 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되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인의 책임입니다.
그러면 그 책임을 언제 해야 되느냐? 미래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책임의 시기가 언제냐 하면 현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책임의 시기가 언제라구요? 「현재입니다」 여러분, 그걸 잘 알아야 됩니다. 현재가 책임의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통일교회에 있어서나,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서나 그 소망의 터전은 어디냐? 현재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중심삼은 여기 이 자리가 그런 자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족복귀 민족복귀의 때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적 운명을 뒤넘이칠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잘 넘어가게 된다면 국가의 해원성사를 하는 것이요. 세계복귀의 출발기지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해방받으실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은 어떤 입장이냐? 참부모를 중심삼고 동시대에 처한 때인 겁니다. 이것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수많은 흐름 가운데…. 고기 토막으로 말하면 맨 가운데 토막이라구요. 그와 같은 기간입니다.
인류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역사적 결실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시대의 중심이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지가 뭐냐 하면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접붙인 여러분은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소원은 전부 다 미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한 참부모와의 인연은 영원토록 한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거라구요. 알겠습니까? 여러분의 선조들도 못 가졌고 여러분의 후손들도 못 가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전체 역사의 시대권내에 있어서 소망의 기점이 어디에 있느냐, 그 소재지가 어디냐 할 때, 그 중심은 여기다 이겁니다. '오늘 못 하면 내일 하지, 올해 못 하면 내년에 하지' 이것이 지금까지 여러분이 생활해 온 습성입니다. 미래를 향해서 나갈 소망을 찾겠다고 하는데, 그 소망의 터전은 이미 지나가고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세계를 복귀하겠지 하며 미래를 소망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복귀하려면 참부모를 모시고 가야 됩니다. 그렇게 복귀해 가지고 여기 돌아와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목적관이 달라지고 소망관이 달라져야 됩니다. 고개를 들고 나왔지만 머리를 숙여야 하고…. 앞으로 여러분의 후손들이 추모할 지난날이 소망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그 지난날이 미래의 행복의 기점이 되는 거라구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여러분의 소망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아들딸 되는 겁니다. 참부모의 아들딸 되어 참효자 효녀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 참부모가 앞으로 천하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상의 만왕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망이니 역사의 소망이니 시대의 소망이니 하는 모든 소망의 중심이 결실할 수 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여러분의 소망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을 유지하는 기점
하나의 나라를 복귀하더라도 그 나라의 소망이 이곳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세계를 복귀해도 세계의 소망의 중심지는 여기입니다. 여기서부터 하늘땅을 찾아 들어가는 겁니다. 여기를 통과하지 않고는 어떠한 세계적 하늘땅도 없는 것이요, 영계의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전체의 종합목적 완성의 터전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이상적 실천의 기반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여기라는 것은 일대에 한한 것입니다. 영원이 아니예요. 일대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대권내에 있지요? 한 세기권내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를 믿는 10년 20년이 천년 만년 역사를 대표하고, 또한 그것을 몽땅 책임질 수 있다는 하나의 권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 있는 사명관, 이런 가치 있는 책임이 오늘날 하나님을 중심삼고 여러분과 선생님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완수해야 할 때가 언제냐? 그것은 미래도 아니요, 과거도 아닙니다. 언제라구요? 「현재입니다」 현재인데, 그것이 시간권내냐, 순간권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 무슨 권내야? 「순간권내입니다」 순간권내입니다. 사람의 흥망성쇠의 동기는 한 시간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로써…. 손짓 한번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흥합니다. 그렇지요? 발길 하나 잘못 디딤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흥하는 거라구요. 눈 하나 잘못 감음으로 말미암아 흥하고 망한다는 거예요. 망하고 흥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한 시간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현재 중에서도, 과정 중에 서도 순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 영원한 천국을 맞고 싶으면 순간적 천국을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순간적 천국을 상실하기를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절대로 영원한 천국을 맞을 수 없습니다. 뜻을 위해 충성하고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 '아, 오늘 못 하면 내일 하지!'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귀한 가치의 때는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겁니다. 보다 가치 있는, 종대와 같은 한 때는 시일이 가면 갈수록 여러분과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선생님 일대를 중심삼고 사탄을 대해서 정면 공격으로 투쟁하는 때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무대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거기에 동반자가 되어서 승리적 결실을 가져올 수 있도록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냥 구경이나 하고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귀한 가치는 영원을 잴 수 있는 무한한 잼대로 저울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맞추는 사람이 영원한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년 책임자가 되려 하지 말고, 하루 책임자가 되려 하지 말고, 순간의 책임을 하는 데 있어서 생사의 결정권을 염려하면서 그 순간을 심각하게 하늘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순간 천국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순간 천국을 유지해야만 하루 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요, 하루 천국을 유지해야만 한달 천국, 일년 천국, 생애의 영원한 천국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을 유지하는 기점이 어디냐 하면 순간입니다.
그러면 이런 엄청난 사명을 하기 위한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느냐? 순간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결심했으면, 그 결심한 것을 실천할 때가 언제냐? 그 결심을 하자마자 실천해야 됩니다. 만일 그것이 지연되면 지연될수록 그 결심이 나를 옭아매더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결심이나 맹세를 함부로 말라고 그랬지요? 잘못하면 아니한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맹세하고, 선생님 앞에 손을 들어 뭐 이렇게 하겠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대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현재의 시간을 중심삼고 내가 죽고 사는 것을 느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가 한 순간 순간을 잘 넘기기 위해서 마음을 조여 가면서 숨쉬기가 가쁘고,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쁜 심각한 어느 한때를 가져 본 적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으면 이제부터라도 해야지. 이게 뭡니까?
실패와 성공이라는 것은 하루 24시간 가운데서 좌우되는 게 아니예요. 순간의 생활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실체화할 수 있는 책임을 감당하고, 그 사명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책임은 언제 해야 되느냐? 하루 동안에 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간에 그 책임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사명감을 중심삼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권내에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장은 원리 말씀을 하루에 못해도 10페이지 이상 읽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밥을 먹지요? 하루에 세 끼 밥을 먹지요? 「예」 세 끼 밥을 먹는다면 그에 맞추어 영적 호흡도 같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 원리 말씀 다 알아요? 그 원리 말씀을 중심삼고 실천의 복귀노정을 현재 몸부림치며 가는 선생님이 있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골수에 흐르는 깊은 심정의 골짜기를 좀더 알고 싶으면 거기에 자신의 뿌리를 깊이깊이 박아야 됩니다.
큰 가지가 되려면 깊은 뿌리의 진액과 관계를 맺어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겉으로 슬쩍해 가지고 자란 가지는 엉터리입니다. 그건 말라빠진 가지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죽어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알겠어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같이 기도하고 정성들여야 합니다. 정성들이는 데에 있어서는 어제보다 오늘이 못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보다 금년이 못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이 바빴으면 금년은 더 바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런 사명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이 지상에 있는 동안에 그와 같은 시간을 중심삼고, 순간을 중심삼고, 자기 책임수행에 있어서 자기 생명을 조여 가며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너트 알지요? 볼트에다 너트를 조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그 순간에 있어서 얼마큼을 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루 동안에 누구를 얼마만큼 사랑했으며, 누구를 만나 얼마만큼 있는 정성을 다 퍼부었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원리 강의하는 데 있어서 땀을 흘려 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하고는 저나라에 가서 걸리는 겁니다. 선생님이 그 원리를 밝혀 낼 때 그냥 앉아 가지고 된 줄 압니까?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혈투전에 격투전을 거듭해 가지고 찾아낸 것입니다.
순간을 놓고 얼마나 심각해 보았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현재 입장에 있어서의 책임수행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불평불만할 여지가 없는 겁니다.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성경에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는데, 그 죽고자 하는 사람이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까? '낮고자 하면 높아지고 높고자 하면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삼고 불평을 하는 것이니 그건 벌써 망조가 든 겁니다. 망하는 겁니다.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언제 불평을 하고, 비판을 하면서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는 못 가는 거라구요. '비판해 가지고 다 분석해 보고, 그 다음에 믿자'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같지만, 천만에요. 신앙은 다른 겁니다. 믿고 행해 가지고 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거라구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순간에 있어서 한 생명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싸움을 해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순간에 있어서 얼마나 땀을 흘려 보았느냐? 삼십 분이면 삼십 분 동안 얼마만큼 나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뼛골의 골수를 짜내듯이 정성을 들여 봤습니까? 얼마나 심각해 봤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이 얼마나 심각해야 되느냐 하면 숨소리에도 놀랄 수 있을 만큼 심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복귀노정은…. 숨소리까지도 듣기 싫어 할 정도로 심각할 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순간에 얼마만큼 심중을 털어놓고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심각함을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물을 대하나 모든 인간을 대하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삼십 전에 낯선 외지에 나가 어떤 마을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그 동네를 바라보며 기가 막혀 가지고 눈물 흘려 보라구요. 비 오는 날에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그 동네에 하늘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물 흘리는 걸음을 걸어 봐요. 절대 밥 안 굶어 죽어요. 그런 사람이 동네에 있으면 그 동네 조상이 협조해 가지고 밥을 갖다 주게 됩니다. 영계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일대에는 그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일순간이면 일순간,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그 기간에 얼마만큼 자기의 정성을 들인 양이 많으냐? 사람을 구해주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얼마만큼 사무쳤느냐? 거기서 하늘의 인격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요, 승리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 책임에 있어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어떻게 결정짓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입니다. 더우기 이 시대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다구. 알겠어? 「예」 한 번밖에 없다는 거라구요.
여기 30살이 넘은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요. 많구만요. 그 몸이 얼마나 뜻을 위해서 체면이나 사정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잊어버리고 한 생명을 놓고 얼마나 물고 늘어져 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봤어요? 해봤어요? 전부 다 전도할 때는 그저 보따리를 뒤져 가지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갖고, 동정받겠다는 도둑놈 사촌 같은 마음 가지고….
엄마가 아들딸을 젖 먹여 기르면서 '내가 젖을 먹이는 것은 그 몇 배의 대가를 받아 내기 위해서 먹이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요? 더 주지 못해서 애타는 것입니다. 주고 나서도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서 눈물짓는 부모의 마음이 영원히 가는 것이라구요. 해주고 나서도 다시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없어서 못 주는 애달픈 마음을 가지고 돌아서면서 눈물을 머금을 수 있는 부모는 그 아들을 효자로 만들지 못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의 곳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그 노정을 떠나 가지고는 복귀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혼자 앉아 가지고도 모든 사람이 친구입니다. 순간에 있어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문제는 그겁니다. 내가 어떤 때는, 기도할 때 똑딱하는 순간에 '아버지' 하고 천번 만번 불러보고 싶어서 눈물 흘린 적이 있습니다. 똑딱하는 순간에 '아버지' 한번하고 천번 만번 부르고 싶어서…. 그런 놀음 해 가지고 오늘의 통일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의 행각 노정에서 뚝배기에 막걸리나 마시면서 콧노래 부르는 놀음이 아니라구요. 심각한 거라구요.
어떠한 기분이냐? 하나님과 내가 각각 한 천리만한 장대를 가지고, 서로 그 끝을 맞추기 위해서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복귀의 길을, 예를 들자면, 한강변의 모래 한 알이 태풍에 휩싸여 숨겨진 것을 단 한번에 그것을 찾아 내는 것 만큼이나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을 보면 그런 이적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런 길이라는 걸 알지도 못해 가지고 껄렁껄렁해서야 되겠어요?
선생님은 뜻을 품고 손을 얼마나 쥐었는지 손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는 거예요. 뼛골이 전부 다 한데 뭉쳐지는 듯한…. 그런 것이 쉬울 것 같아요? 하늘과 땅에서 장대 끝을 한번에 맞추는 어려움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선생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만 같습니다. 너무나 생생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실증적인 사실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 가운데 태산 같으니…. 부정할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런 터전 위에 통일교회가 섰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심정적으로 빚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전통적 사명을 인계받아야 됩니다. 선생님의 책임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이 세계적인 메시아 사명은 못 하더라도 종족적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가지도 동쪽 가지 다르고 서쪽 가지가 다른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것도 못 하면 잘라 버려야지 뭐 하겠습니까?
이번에 온 독일 대표가 선생님이 한 시간쯤 이야기를 하는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선생님, 우리 독일 식구들이 금식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일주일 금식하고 하루 먹고, 또 일주일 금식하고 하루 먹고 하기를 몇달씩 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엉금엉금 기어 다닙니다' 하는 거예요. 그거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일어서면 핑 도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금식했으니 이제는 금식 안 하면 안 됩니까? 하는 거예요. 그러나 '어림 없어. 해야 돼. 죽을 때까지 해야 돼'라고 명령했더니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책임자를 두었기 때문에 구라파에서 독일이 지금 발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리워서 눈이 붉어지고 강엿 같은 코가 줄줄 흐를 정도로 울어 보라는 것입니다. 복장이 전부 다 찢어질 정도로 심각한 길에서만이 하늘의 심정이 재발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이나 합니까? 선생님은 못 해도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기도합니다. 요즘은 어지간하면 보통 새벽 두 시면 일어납니다. 요 며칠 동안은 일본 식구들이 와 있기 때문에 세 시 반에 준비해 가지고 네 시에 나와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기도해야 되는 겁니다. 선생님은 절대 주먹구구식이 아닙니다. 큰 문제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늘의 협조와 더불어 합니다. 알겠어요? 나는 하나님께도 이런 얘기를 안 합니다. 영통한 사람들이 알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선생님은 안 합니다. 선생님은 진리로써 틀림없는 다리를 놓고, 틀림없는 구색을 갖추어 가르쳐 주기 위한 길을 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선생님만 따라오면 걱정이 없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데 그렇게 좋은 것을 주면 좋은 것인 줄 알아야지, 눈이 어두워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 2천년 동안 그의 제자들과 수많은 기독교도들이 억울한 순교의 피를 머금고 걸어 나오면서 이룩한 그 모든 가치 있는 세계적 기반과 여러분을 비교해 볼 때, 여러분은 그 이상의 기반 위에서 하늘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이 그렇지요? 「예」 사실이 그런 것을 느낍니까? 「예」
그런 걸 느낀다면, 잠을 안 자고 동네방네 뒤져야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세상에 없는 심각한 표정을 해 가지고 통곡을 해야 합니다. 나이 80이 된 할아버지라도 그렇게 해서 모셔야 합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는 고개를 넘어가게 될 때, '내가 이 고개를 넘어갈 때는 혼자 넘어가지만, 다음에 올 때는 이 고개 마루턱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해 봐요?
밤에 찾아가면, 오시는 교회장을 기다린다고, 밤을 새워 가며 모닥불을 피우고 기다리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거 못해 놓으면 저나라에 가서 고독단신이 되는 겁니다. 여기 그런 사람 있습니까? 거기에서 다 모여 떡도 같이 먹고, 같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이것이 복귀의 길이요, 이것이 기쁨의 환경이요 터전인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만들겠다고 마음으로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선생님을 생각하는 사람 있습니까?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합니까? 하루에 한 번 이상 생각해 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이거 솔직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모르는 줄 알아요?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해서 그렇지 않아요. 잠시도 무심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피곤해 가지고 잠을 자려고 하면 더욱 잠들 수가 없습니다. '아이구, 오늘은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겠구나' 그런 때는 더 미안해 가지고 '당신은 왜 그렇게 불쌍한 하나님이 되셨습니까, 나에게는 24시간 가운데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당신은 6천년 동안 영계를 다스려 나오느라 쉴 시간이 잠시도 없지 않으셨습니까' 하면서, 쉴 새 없이 수고하며 비참한 역사를 도맡아 나오신 그분의 아들인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이불을 못 덮고 엎드려 가지고 기도하다가 잠들 때가 많습니다.
또 그렇게 자다가 눈을 뜨게 되면 깜짝 놀랍니다. 여기는 밤이지만 서구는 낮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시간, 동방에 있는 선생님의 이름을 받들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늘에 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심정적으로 빚 안 지려고 합니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한,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좋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하나되고 선생님과 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춘하추동 계절마다 고깃근이라도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서 천리길도 멀다 않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 그것이 썩더라도 가져다 드리겠다고 하는 사람, 눈물과 더불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고기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안 하면 여러분을 가르치고 지도한 것을 여러분이 도둑질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섭리의 터전에서 책임을 다하라
여러분이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신앙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받는다구요. 그러니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잘못한 것이 뭐 있느냐, 여러분과는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외로울 때, 내가 고단할 때, 내가 어이없을 때에 인간의 위로는 못 받을 망정, 하나님의 위로는 받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게 아닙니까? 그래야 발전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막중한 사명을 짊어진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시대에 처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
우리는 3시대의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그에 대한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노정이 6천년이 걸렸으니 6천년의 고빗길을 어느 한 토막이라도 잘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내가 눈을 깜박깜박하는 이 순간에, 내가 숨을 쉬는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눈이 얼마나, 내 입이 얼마나, 내 손이 얼마나, 내몸이 얼마나 하늘을 중심삼아 필요한 승리점을 이 순간에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바쁘고, 하나님이 다급할 때, 또 하나님께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의논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어려우실 때 나를 불러 서슴지 않고 의논하고자 하실 때, 나도 서슴지 않고 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까? 선생님이 무엇을 시키면 밤을 새워 가며 책임을 다하려 몸부림치고, 선생님이 부탁하는 것이라면 어려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 홀로 가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싸움 가운데서 세계적 책임, 이런 3시대의 책임을 현재의 순간을 중심삼고 다짐하는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지방이면 지방에서 그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후세를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예」 이처럼 우리의 사명이 엄청나니만큼 그에 비례해서 서 있는 무대도 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더우기 선생님과 관계를 맺은 이 시대는 길지 않습니다. 이젠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알고 금번에 여기를 왔다 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혁신을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를 좀더 재비판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 보면서 눈을 부릅뜨고 이 눈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 입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 입이 밥 먹기 위해서? 이 귀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 또 이 몸뚱이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를 비판해 보아야 된다구요. 그리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중심삼고 번영해야 할 현실적인 섭리의 터전에서 책임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길 바라며 말씀드렸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고 가는 많은 세대 가운데서 한 많은 역사의 흐름의 고빗길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참다운 뜻을 품었던 저희의 선조들은 많이 죽어갔습니다.
선한 피를 뿌리면서, 한때의 승리의 날이 오리라고 천상을 우러러보며 죽음을 다짐하였던 역사적 시대 시대를 회고해 보게 될 때, 오늘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총탕감하여야 할 현실적인 사명이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교회장들과 통일교회를 책임진 저에게 있다는 걸 생각할 때, 이 자리는 아버님 앞에 부족하고, 아버님 앞에 죄송스러운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기쁨의 자리가 천상의 인연을 이어 받들 수 있는 자리가 못 되거든, 그 기쁨의 자리를 저희는 도피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생활이 아무리 처절하고 비참하다 하더라도 당신의 혈통적인 인연이 연결되어지고 옮겨질 수 있는 터전이면 저희는 이를 악물고라도 극복하여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
3시대의 사명을 한 점을 중심삼고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은 저희 일생의 심각하고도 확고한 자리에서 결정짓지 않으면 안 되겠사온대, 결정적인 한 찬스에 결정적인 한 추를 달지 못한 저희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가 언제 나라 없는 백성의 서러움을 느껴 보았으며, 언제 부모 없는 고아의 서러움을 느껴 보았으며, 언제 주인 없는 종의 입장에 서 봤으며, 언제 외로운 자의 입장에서 서러움을 느껴 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사옵니다.
아버님은 언제나 그러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역사를 수습해 나오셨고, 수많은 저희 조상들을 이끌어 나오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만이 과연 불쌍하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분이 저희의 아버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마음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서러움과, 움직여 나오는 동맥의 맥박이 저희의 마음을 통하여, 심정을 통하여, 심장을 통하여 울려 나와야 될 것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피는 저희의 피로 말미암아 순환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피로 말미암아 움직여질 수 있는 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희의 감정 또한 저희 자신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의 거룩한 감정에 동화되어서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비참한 눈물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부여안고,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몸을 비비면서 이 한때의 한을 풀기 위해서 아버지께 호소하고, 아버지께서는 '너를 찾아왔노라'고 하시며, 서로가 의논하는 자리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그런 자리를 갖지 않고는 영계에 가더라도 자기 스스로의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이 시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3시대의 부활권을 갖추어 가지고 그 책임 완결을 다짐하여야 할 현재의 가치권내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실적을 갖지 않고는 저희들은 돌아갈 수 없는 불쌍한 무리인 것을 확실히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던 당신의 아들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저희는 한 개인 개인으로 볼 때에는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세계의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의지할 곳 없는 고아와 같은 자들이옵니다. 그러한 외로운 자리에 선 것은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한 것이요, 그러한 괴로운 자리에 선 것은 아버지의 인연권내에 서기 위한 것이옵니다.
괴로우면서 괴롭다 말할 수 없고, 외로우면서 외롭다 말할 수 없고, 눈물 흘리면서라도 자기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뭇 사람을 동정해야 할 입장이 책임자의 입장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입이 아버지를 부르기 위해서 고달픈 때가 얼마나 있었으며, 내 마음이 아버지를 사모하기에 하루의 모든 일과를 잊어버린 때가 얼마나 있었는가를 묻게 될 때, 그렇지 못한 자신이었사옵니다. 이것은 하늘을 안다고 하면서도 경거망동했던 자기 자신이었음을 재인식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늘을 이용했던 자신을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청평 이 지역을 당신이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 처음 온 아들들도 있사옵니다. 정성들이는 이곳에 당신이 거동하시옵소서.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삼천리 반도 위에 새로운 불을 붙여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 민족이 갈 수 있는 내일의 희망의 문이 어디 있느냐 묻게 될 때, 저희들이 그 열쇠를 갖고 있고 저희들 자체가 그 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는 아니 되겠사옵니다.
저희 자신들이 민족과 종족을 개방시킬 수 있는 무리가 되어서 이 민족과 종족을 고이 인도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을 보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어린 자녀들도 있사오니, 그들이 처하여 있는 교회 교회, 흑인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불쌍하다면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을 뒤에 두고, 남편을 뒤에 두고, 홀로 나가 있는 그들을 생각하게 될 때, 이번 이 기간이….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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