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제주대학에서 열렸던 한국과 일본의 첨단망 관련 교수, 연구원들의 세미나 참가기입니다.
9월 30일
오후에 김포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오른다.
제주대의 국제교류센터에서 열리는 한국과 일본의 공학, 의학교육계 인사들이 참여해 결성한 코어 유니버시티의 세미나에 음악 교육 분야의 발표를 위해 떠나는 길이다.
첨단망을 통해 실생활에 유용한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이 국제학회의 주목적이다.
우리 한국첼로학회에서도 첨단망을 이용해 세계 어느 곳이든 실기레슨 등 음악 쪽의 다방면의 교류 확대를 위해 수년 전부터 참여해 오던 터이다.
미래에는 첨단망을 통해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시간이나 거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차세대의 첨단 시스템 개발이 새로운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나와 실연을 위해 참가한 첼로학회 연구원 전지연 선생, 음악 동영상 강의 연구의 좌장인 충북대 컴퓨터교육과 이옥화 교수, 이 교수는 전자정부 특별위원 등 첨단 컴퓨터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전문가이다. 또 사진 기록을 위해 동국대 김왕준 교수가 동행한다.
먼저 도착해 제주대에서 실연 준비를 하고 있던 이옥화 교수 일행을 두고, 나와 전지연, 김 교수는 호텔에 여장을 푼 후 남는 시간에 산보나 하자 하여 용두암으로 향했다.
비행시간에 쫓긴 관계로 점심을 부실하게 하여 이른 저녁을 하러 제주도에 올 때마다 들리는 용두암 앞의 단골 횟집으로 들어갔는데 이 집은 맛으로 유명하여 예약을 해야 하지만 일찍 들어가 무조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너른 수평선을 보며 맛난 저녁을 하고 푸짐한 배로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데 제주대에서 뒤늦게 이옥화 교수 일행이 합류한다.
식사를 끝내고 충남대 천세영 교수가 마지막으로 합류하여 바닷가의 노천카페에서 담소를 나눈다.
이옥화 교수의 연구원들과 전지연 선생은 자리를 먼저 뜨고, 우리 셋이 남았는데 같은 해 초등학교 입학 동기들이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데 따라 허물없는 대화가 오가고 나는 술을 못하지만 테이블 밑에는 빈 맥주병 숫자가 늘어가는데...
가을밤의 밤바다에는 한치잡이 배들의 환한 불빛이 검은 수평선 위에서 무리를 이루고 있다.
오십대로 들어선 우리는 길게 드리워진 가로등 불빛의 그림자를 보며 각자 지나온 삶에 대한 향수에, 밤바다의 싸늘함도 느끼지 못한 채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나누다가 밤늦게 내일의 행사를 위해 자리를 뜬다.
10월 1일
아침 호텔 식당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인사를 한다. 작년에 일본에서 열렸던 행사에 동행했던 교수들이다. 최완식, 이병국 교수 그리고 처음 보는 인사들과도 인사를 교환했다.
제주대 버스를 타고 행사장에 도착.
우리는 주 세미나장 옆의 부속 세미나실에서 온라인 첼로 교육의 시연에 들어갔다.
제주대와 청주의 개신문화관과 첨단망을 통해 각자 스크린이 설치되고 청주의 개신문화관에 첼로 전공 학생 세 명이 번갈아 가며 화상강의를 통해 교습을 받기 시작했고, 참석한 일본 측 교수들과 연구원들은 유심히 교육과정을 둘러본다.
이옥화 교수가 수백 년간 내려온 고비용 저효율의 음악 실기 교육에 전기를 이룰 이 시스템의 장점과 목적을 간략하게 소개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한다.
한데 우리 시연이 시작될 즈음 코어 유니버시티의 한국 측 대표이며 한국첨단망협회장인 김대영 교수와 이옥화 교수가 갑자기 번개 같은 제의를 해온다.
주 세미나장에서 점심시간 전 20여분 동안 나를 보고 연주회를 하란다.
준비한 곡도 없고 악기는 교습용이며 첼로학회 연구원으로 온 전지연 선생 것이라 내 손에는 서툴다고 했으나 막무가내...
할 수없이 귀에 익은 명곡 소품들과 우리 가곡, 세계적 불후의 명작인 “목포의 눈물”을 참석한 백여 명의 한일 관계 연구원들의 환호성과 열렬한 박수 속에서 연주를 끝내자 앵콜까지 들어온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덤으로 연주한 후, 이화여대 김명희 공대학장의 찬사에 약간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목포는 항구다” 까지 했어야지...
이후부터 나에 대한 예우는 같은 기간 북한을 방문한 우리 대통령 수준이라고나 할까? 후후후......
늦은 점심을 제주대 식당에서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리셉션장으로 간다.
호텔 근처의 식당인데 이름이 “갈치와 고등어” 이다.
한일 교수들과 연구원들이 맛난 저녁을 들며 서로 따뜻하고도 즐거운 담소를 나눈다.
우리 일행은 오전에 김대영 교수의 전언으로 초등학교 동창으로 밝혀진 KIST 책임연구원 권용무, 충남대 권영미 교수를 만나 반갑게 옛날로 돌아갔다.
이옥화, 김왕준, 권용무, 권영미, 나 이렇게 옛날 초딩들이 만난 것이다.
옵서버로 김대영 교수가 우리와 가까운 초등학교를 나오셨다 하여 끼워주기로 했고, 이 날 초딩 시절의 성교육을 강의하셨던 성세진 교수는 아드님이 우리 초등학교 근처에 산다 하여, 역시 우리 자리에 합류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후 오간 격정적인 담론은 발표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그만하련다.
그날 밤 각자 방으로 헤어질 무렵 우리는 모종의 모의를 진행했으니 이름하여 “추자도 습격사건”...
사실은 같은 교육개발원 연구 동기인 이옥화 교수와 천세영 교수가 사건의 발단이었지만 이를 탐지한 김왕준 교수와 충남의대 이병국 교수가 치밀한 준비 작업을 거쳐 천세영 교수를 다방면으로 압박해 추자도로 넘어가는 허락을 받아냈던 것이다.
천세영 교수는 고향이 추자도인데, 기밀이 누설되는 바람에 우리 일행까지 떠맡게 되었다.
어쨌든 추자도를 언제 가보냐 하는 마음으로 다들 열심히 천 교수를 압박한 덕으로 이번 세미나에 귀중한 추임새가 되었다.
10월 2일
아침 천 교수의 주선으로 배 승선 전의 남는 시간에 송악산 오름 등반길을 떠난다.
관광객들이 가는 노선이 아닌 화산 분화구를 돌아 오른 비선에서 바라 본 마라도와 국토 최남단의 풍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막힌 데 없는 대양으로 향한 바다가 가슴을 시원케 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막연한 이국에의 동경으로 끌고 들어간다.
언제 봐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경외를 불러일으킨다.
내려가며 나이가 들면 이런 작은 산도 오르기 힘들다며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제주 선착장에서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던 이병국 교수 덕택에 추자도행 표를 끊어 간신히 얻어 타고 일행은 파아란 남해의 물살을 가른다.
이후 김포 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천혜의 맑은 날씨가 우리 일행의 추자도습격사건을 일생일대의 멋진 추억으로 간직하게 했다.
저녁 무렵쯤 도착한 추자도에서 천 교수가 이미 대절해 놓은 레저용 지프로 섬을 일주하며 어린 시절 얽힌 뭇 얘기를 들으며 남해의 고도, 풍부한 수자원으로 유명한 추자도의 진면목을 맛본다. 추자도 어디를 가나 커다란 고기들이 몰려다녀 따로 낚시터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천 교수는 삼치를 좋아하고 많이 먹었었는데 고향을 떠난 후로는 고향의 맛난 회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가 안내한 삼치 횟집에서 우리는 삼치 회를 주 메뉴로 한 풍성한 저녁으로 포식을 하고 선창가를 거닐며 산보도 한다.
어둠이 밀려오고 점점이 떠있는 주변 섬들이 희미하게 밤바다의 적막으로 덮이기 시작할 때쯤 천 교수가 방파제 끝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긴 방파제 끝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빨간 색 무인등대 앞에서, 우리는 천 교수가 준비한 생소라와 이병국 교수가 준비해 온 각종 와인을 곁들인 와인파티를 시작한다.
방파제 끝 콘크리트 바닥에 저마다 철퍼덕 둘러 앉아, 모처럼 남해 고도의 자유로움을 한껏 만끽하는데 밤바다와 그 위 밤하늘의 별들 때문인지 다들 어린 시절 동심으로, 혹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던 옛 시절로 돌아간다.
작은 어촌 마을의 개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들의 떠드는 소리에 놀랐는지, 같이 짖어대다가 이내 조용해진다.
한참 담소를 즐기는 중 밤바다를 뚫고 슬그머니 불그스레한 반달이 올라오는데 그야말로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장관이다.
추자도가 고향인 천 교수조차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니...
남해 고도의 가을 밤, 달빛이 은근히 내려앉는 밤바다의 풍경과 그 달로 인해 희미한 바다 길이 내 앞에까지 드리우며 쉴새없이 반짝이고...
이옥화 교수와 천세영 교수가 시심을 이기지 못해 동서양 합작품 시를 낭송하자 일행이 자지러진다.
“이경에 월색은 교교한데, 오렌지 향은 바람에 날리고... 후후”
한참 웃음꽃과 와인으로 거나해진 남도의 밤이 짙어질 즈음, 일행은 휘영청 바다를 밝히는 달에 눈과 마음을 온통 빼앗긴다.
당나라 시선 이태백의 달이 이 남해의 고도에도 어김없이 뜨는구나...
나 역시 시심이 발동해 한 수 끄적인다.
산마루 걸린 빈배
은강 위로 흐르는데
그 달에 비친 바다
소리 없이 흐느낀다
뭇 사연 숨은 구름
그리움을 몰고 오네
고개를 들어 보니
외로움의 검은 바다
슬며시 고개 숙여
달빛을 가려 본다
구름이 가리우네
그리움이 밀려드네
그 날 우리는 바닷가 방파제 위에서 파도소리와 함께, 각 도의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며 별빛 달빛 쏟아지는 남해 고도의 밤을 꿈같이 지냈다.
10월 3일
아침 천 교수의 친척 어른 댁에서 푸짐한 방어회와 함께 식사를 대접받고 추자도항에 도착하니 "추자아가씨" 노래에 맞추어 배가 들어온다.
그 노래와 부둣가 풍경이 얼마나 정겨운지...
이윽고 제주항에 도착하여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몸을 실으며 서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주고받는다.
김포에 도착할 즈음 비행기 밖이 잿빛 구름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며칠간의 밝고 맑았던 남도 여행이 기억 저편의 추억으로 멀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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