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분주하게 지내다보니 평양기행문 올리는 작업이 중단되었었습니다. ^^
다시 정리되는대로 올려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몇 달 지나다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군요.
사진 위주로라도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
중식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2시 조금 지나 다시 모입니다.
오후 일정은 만경대 고향집과 인근에 있는 혁명사적관 방문입니다.
아마 필수코스겠지요?
5호차를 타고 남산 만경봉 만경대 등을 지나(보진 못했습니다. 안내원이 지나간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물론 사진도 못 찍었습니다), 만경대 고향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만경대 고향집은 그 위치가 대동강 하류의 대동강과 순화강 지류가 만나는 지역입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구글어스에서 캡처한 평양 사진 왼쪽 하단에 대동강과 순화강이 만나는 강 유역에 만경대 고향집과 혁명사적관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만경대고향집과 혁명사적관이 있는 지역을 조금 더 확대해서 보면,
만경대 고향집에 대하여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니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보통 만경대(萬景臺)로 통칭된다. 북한에서는 '만경대 고향집'이라고도 부르며 '혁명의 요람' 또는 '태양의 성지'로 떠받든다. 김일성의 조부가 산당집의 당지기로 자리 잡은 뒤로 4대가 거주하였다. 1947년 김일성의 생가가 있는 일대를 만경대혁명사적지로 지정한 뒤 김일성의 부모와 조부모의 묘를 조성하고 방 3칸과 부엌이 딸린 초가집 등을 복원하였으며, 주변에 만경대 정각과 혁명역사관·씨름터·군함바위·그네터 등을 건설하였다.
대동강 하류에 있는 만경대는 '만 가지 경치가 펼쳐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명승지로 이름이 높았다. 김일성 생가 등이 혁명사적지로 조성된 뒤 주체사상탑·개선문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으며, 북한 주민들도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의 태양절을 전후로 집중적으로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조성된 뒤 60여 년 동안 약 1억 1,800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집이 잘 보이는 문 앞에서 촬영.
사진- 고향집 입구의 잔디밭.
안내 문구. ^^
고향집 내부에 전시되고 있는 당시 농기구등...
김일성주석과 그 부모의 사진.
아마 조상들 사진인 듯 합니다. 사진 찍으로 다니느라고 안내원동무의 설명을 잘 못들었습니다. ^^
열심히 설명하는 안내원동무.
울산비전교회 윤재덕목사와 기념촬영. 왼쪽에 잘 생긴 사람이 북한 당국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나온 동무. ^^
안내원동무도 함께... 오른 쪽에 나장로님 보이시는군요. ^^
생가 앞의 우물.
기억이 많이 사라져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빨리 올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2008년 12월 7일 주일 밤에 김영수목사.
첫댓글 많이 기다렸습니다. 김일성 고향집을 보게 되니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김일성 어린 시절도 우리와 비슷한 집에서 살았군요.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