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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고래나 잡으러 가
현영은 집 앞 골목길에서 초조하게 서있었다. 잠시면 들어올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동네는 양쪽에 빌라가 총총히 들어서 길이 좁다. 주차장이 없는 가옥이 많아 주택 길목에 차를 세워놓아 차 한 대도 다니기가 빠듯하다. 도심의 개발에 밀려 정부가 세대 당 이십 평씩 장래를 보지 않고 분할한 흔적들이다. 불이라도 나면 소방도로가 없어 피해가 크다. 현영은 방금 전에도 자기 집 앞에 주차된 차를 주인에게 연락하여 길을 넓혀 놓았다. 병든 선자가 타고 올 차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잠시 옛날 생각을 한다. 현영의 집 건너 셋째 집이 선자네 집이었다. 자기와는 두 살 차이로 친했다. 이웃이라기보다 친 자매 같았다. 선자 큰아들이 돈을 잘 벌어 양수리에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이사를 갔다. 그 후로도 서로 왕래하며 줄곧 아이들도 이모라 부르며 돈독한 우애를 다져왔다.
현영은 아들과 딸을 출가시켰다.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나이가 들어도 노인요양 보호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 시한부 암환자호스피스로 오랜 세월 봉사하여 환자를 잘 보살핀다. 요양보호사의 직업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제도가 이제는 시험으로 바뀌었지만 교육을 이수하면 자격을 준 행정에 감사를 하였다. 현영은 늘 풍성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다. 현영의 집에는 동네사람이 들끓었다. 이십 평 두 필라 집을 짓고도 약간의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자두나무와 벚나무가 있었다. 나무 밑에는 넓은 평상이 있었고, 한여름 열매가 달리면 여럿이 그곳에 앉아 아이들은 버찌를 따먹고. 여름에는 흑 자줏빛 자두를 입안이 벌겋게 먹었다. 지금도 앞마당에는 그때의 그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동네 사람을 불러 모으며 나이를 먹어 가고 있었다.
택시의 차문이 열리고 기사가 내린다. 기사가 운전석에서 내려 우측앞자리에 앉았던 손님을 부축을 한다. 부축 받고 나온 선자는 힘이 없어 걷지를 못했다. 기사의 팔을 의지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쉰다. 아주 힘들게 보였다. 기사에게 인계받은 선자를 일으켜 세웠다. 엉덩이 허리춤에 손을 뒤로 넣고 끌어안았다. 몹시 가벼웠다. 뼈가 굵고 살이 많았던 동생이 사십 키로가 겨우 될 성 싶었다.
병든 환자를 앞마당 평상에 앉히고 바라보는 현영이 마음이 울컥거린다. 현영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병색이 짙은 환자는 기진한 아기처럼 흐느낀다.
“언니. 보고 싶었어. ” 손을 부르르 떤다. 얼굴색이 까맣게 변했다. 병색이 체중 선자의 풍성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말랐을까하는 가여운 생각이 매친다.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미안해 언니 이렇게 병들어 불쑥 와서…,” 품에 안겨 한없이 흐느껴 운다. 현영이도 눈가로 눈물이 흐른다.
말기 암 환자 호스피스 봉사를 십 년이 넘게 했던 현영은, 선자의 임종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그러려면 환자 집으로 가는 노인요양보호사도 그만 두어야 한다. 돈벌이는 그만둘 나이가 되었다고, 시집 간 딸의 성화를 이번 기회에 들어줄 생각이 든다. 옛날처럼 직업이 아닌 전문직 봉사의 삶을 살자고 마음을 먹는다.
선자는 생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아들이 갖다 주는 약초 물로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선자 아들 명제는 약장사다. 떴다 방식으로 빈 점포를 잠깐 임대하여 놀이 프로그램으로 장사를 하고 다녔다. 노인들을 모아 게임도 하고 노래도 하고, 진한 야담을 들려주면서 우매한 그들을 현혹하여 물건을 팔고 다녔다. 이 사업은 짭짤하다. 팀워크를 이루고, 의학적인 상식을 대동한 9988의 건강을 목표로 삼는 회사다. 잔머리가 팍팍 도는 돌팔이 의사 행세, 입담 좋은 야화, 노래선생, 율동선생, 판매 독려원. 손님을 실어 나르는 운전기사 등으로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팀원들을 모두 선생으로 부른다.
지방을 돌며 임대가 허름한 점포를 얻어 장사를 한다. 읍내지하상가가 돈을 벌 목적을 이루기에 안성맞춤이다. 지하는 임대로도 싸고, 온 손님들이 쉽게 빠져 나갈 수가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짧은 기간의 임대계약이 일단 성사되면 건강에 좋다는 물건이 잔뜩 지하로 들어간다. 진열장도 고급으로 들어간다. 파장 날 진열장은 헐값에 팔아넘긴다. 다시 끌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이 많이 오른 지역에서는 최고의 매상을 올려준 고객에게 고가의 장과 장식 가구를 특별선물을 하고 홀가분하게 끝낸다.
매출1위 가격 속에 그 가격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매출이 생각보다 저조한 곳에서는 헌가구로 넘길 수밖에 없다. 늘 다음 장소에서는 모두 새 것으로 시작한다. 선자 아들이 중점적으로 파는 품목은 암환자에 좋다는 검증되지 않은 산 약재를 다양한 종류의 환으로 만들어 팔고, 혈과 기운을 북돋운다는 쑥뜸 제품이다. 금액은 천차만별인데 비싼 것은 엄청나다. 원가 이만 원을 이십을 받는 것은 부지기수다. 고가는 덤이 많다. 공짜가 오히려 실속이 있다. 휴지 소금 설탕 쌀 등이다. 그날의 일등, 주 일등, 새로운 손님 모셔오기, 등으로 상품이 다양하다. 공짜 중에 쌀눈이 많이 깎이지 않은 쌀이 있다. 이 현미 쌀 . 만병통치라고 하는 현미 쌀을 타는 것을 어른들은 좋아한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타는 것은 견물생심이고 실속을 따져 일상소모품이 인기다. 고객 중에는 심심찮게 그것만 바라고 다른 물건을 사지 않는 사람도 있다. 팀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먹 티 들이다. 먹 티란 머리가 깨어 어른이 사지는 않고 공짜만 타가는 그런류의 어른이다. 사업의 이윤을 위해 은연중에 찬밥으로 몰아세워 오지 못하도록 한다. 심하면 대놓고 가라고 한다.
명제는 이재가 밝고 운도 따르는지 법망을 잘 피해가며 영업을 확장해갔다. 부를 축적하는데 숨은 공로자는 자신의 부모이었다.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삼 년을 살아주셨다. 아버지의 생존전략이 아들의 회사가 파는 제품을 먹고, 바르고, 뜨면서 오래 버티는 일이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권유했을 때 명제의 설득으로 본인과 가족 모두 의료 행위를 원치 않았다. 아들은 수술하고 항암을 맞고 방사선 치료는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 청유를 하였다. 아버지에게 자기가 있으니 그럴 리는 없지만 말기가 와도 통증을 억제하는 약재로 먹다가 고통 없이 하늘나라를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환상인가. 암 환자가 고통이 없다는데, 꿈같은 일이 아닌가.
못돼 먹은 약장사들 중에 절호의 기회는 가족이 죽을 병이 들었을 때다.
가족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치다가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여기다 환자가 죽으면 돈을 뜯는 사기꾼이 되어 영창을 가야 한다. 생명을 이용하는 악덕상인으로 철창신세를 각오하고 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폭리와 가짜와 과대광고로 법망을 피해 떴다방을 하는 악덕상인 때문에 노인이 사기를 당하고 자녀들이 고발하는 사건이 많다. 돌과 쇳덩이도 암에 효험 있다고 판을 치는 세상이다. 납덩이에 금물을 발라 백에서 오백만원을 달라고 해도 좋다면 사는 사람이 있다. 지치고 약해진 중환자의 심리를 부추긴다.
암에 효험이 있다는 제품을 파는 약장사는 일가친척 가족 중에 암이 걸리면 기회가 된다. 장사를 하는 가운데 사업설명과 물품 설명을 매일 듣다 보면 약장사는 자신이 파는 물건의 효능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잘 표장된 과대광고가 자기 체면에 걸린다. 백 프로 자기 제품을 먹고 일어난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단가가 높을수록 오히려 죄의식이 사라지고 돈에만 집착을 하게 된다. 특히 암환자 부모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최고의 실험 대상이다. 명제의 집착에 아버지인 선자 남편이 그랬다. 삼 년의 투병 가운데 이 년 팔 개월을 약장사의 일원으로 따라 다녔다. 아들이 아버지를 좋은 차에 태우고 전국을 돌아 다녔다.
사업장에 가면 잘 나가는 아들 덕에 “어르신. 어르신!” “회장님. 회장님!” 하며 길을 터주고, 맛있는 것으로 사들이고, 비싼 한복을 수시로 새로 지어 입히고 하는 통에 대통령이 부럽지 않았다. 효자 아들은 둔 덕에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닌다고 생각을 하였다. 초기에 암은 아주 영리하고 환자는 미련하다. 고통이 없을 때도 공격을 암은 하는데 우매한 환자는 자기는 절대로 죽음의 대상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려든다. 그리고 어르고 달래며 물리칠 때까지 공생하며 싸워야 한다는 자체를 잊으려든다.
선자의 남편이 그랬다. 약장사 아들이 있으니 더 든든하였다. 적당한 운동. 좋은 음식. 기쁜 마음. 삼합이 이루어져 팔자 좋게 살고 있었다. 실행이 어렵지 누구나 다 아는 삼합의 원리는 약장사의 프로그램에 전부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가끔 견디기 힘든 일도 있었다. 전국을 누비는 특별한 여행과 호화 생활의 대가로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믿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하는 부모의 거대한 헌신의 표출이었다.
중환자 손님이 오는 날이다. 말기 암환자가 입소문으로 찾아오곤 한다. 한 장소에서 떠날 즈음에 한두 번 있는 일이다. 그런 날은 노인들의 쌈짓돈을 긁고 영업이 끝난 후에 미팅을 한다. 늦게 환자가 보호자와 같이 와서 생체 연구실에 들어와 견학을 하는 거다. 문을 잠그고 은밀한 방에 병원 분위기를 낸 침대에 누워 가슴과 배, 손 목, 기혈 점에 왕 쑥뜸을 뜰 참이다. 환자 가족이 약의 효능과 뜸의 위력을 미리 설명을 듣고 들어와 돌팔이 한의사 외에는 아무도 말을 하거나 묻지 않는다. 방금 미국에서 왔다는 쑥뜸의 대가가 관록이 붙은 의사처럼 진맥을 한다. 환자의 고통과 치료를 위해 연구만 하는 자신을 정부는 불법의료행위라고 자신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외국은 양 한방이 동시에 공존되는 사회로 의료계가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만 유독 그렇다고 변명 아닌 해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양 한방으로 가고 있는 추세다. 개중에 자신이 자격증 없는 돌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정되지 않은 생체실험이 문제되는 것이다. 명제도 그 짓을 하고 다닌다. 비합리적인 사회성 발언만을 주지시키고 환자의 맥을 본다.
그리고 천천히 회장님의 웃통을 젖힌다. 고개를 끄덕끄덕 괜찮다는 묵시된 언어다. 자리에 검은 매직으로 동그라미를 다시 그려 놓는다. 여러 곳이 이미 까맣게 살이 타 흉터가 있었다. 몸이 호전되는데 안 보이는 곳에 상처쯤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검은 별자리 같다. 그 혈 자리에 또 올려놓는 곳도 있었다. 자리를 잡고 큰 둥근 쑥에 불을 붙이자 연기가 모락모락 쑥 향이 진하게 피어오른다. 참혹한 태형의 현장이다. 아버지는 설마 아들이 애비를 죽이겠나 생각하다 태형이 멈추었다,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한 태형. 반복 일곱 수로 한 시간 남짓 태형을 감수해야 살이 타는 냄새가 끝난다. 그 날 저녁은 회를 좋아하는 투사 아버지를 위하여 고급 음식집을 찾아가 저녁을 즐긴다. 태형을 방불케 하는 극기만 없다면 최고의 예우이었다.
견학을 끝낸, 바짝 기대감을 심어준 암환자 가족에게 판 수입이 얼마인가를 가름하는 길은 저녁식사의 등급으로 알 수 있었다. 강의와는 다른 음식 깔끔하게 차려진 고급일식, 영양가 많은 중식, 가벼운 한식 순으로 판가름이 난다.
그러나 허황된 꿈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 년이 지나면서 말기가 되어 기운도 떨어지고 식욕이 없어졌다. 그래도 애비는 아들의 권유를 따라 소진할 때까지 리무진을 따고 현장에 다녔다.
아들은 아버지가 체중이 급속이 떨어지는 것을 직면한다. 논리를 수정한다. 암환자는 체중이 늘면 실패이고, 살이 빠지면 암이 먹을 영양분이 모자라 커지지 않는다는 역설을 폈다. 그리고 처방을 바꿔 진통에 효험이 있다는 국산 약재를 건강원에서 달여 복용을 시켰다. 그것 외에 명제는 아주 고통이 심할 때 마약성 모르핀이 들어 있는 양약을 식구가 보지 않을 때 먹였다.
진통제 용량을 초과하여 먹였기 때문에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 가족은 약재의 효험이 대단하다고 떠들어대었다. 애비도 아들 덕에 리무진을 타고 전국을 여행을 하면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니 여한이 없었다. 병이 깊어지자 왕 뜸을 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왕 쑥 뜸의 태형을 참지 않으니 감사하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천국 길. 암의 고통은 진통제로 감소되었다. 왕 뜸의 고통보다 편했다.
가물가물 천정이 희미해진다. 집안에는 냄새제거로 다시 쑥을 태웠다. 작은 쑥을 배에 올려놓아도 감각을 모른다. 명제는 쑥의 효능을 역설한다. 냄새도 고통도 해결된다고 믿고 있었다.
아들과 부인에게 사는 날 동안 호강한 것을 감사한다고 하며 조용한 임종을 맞이하였다. 장례는 나이가 많아 호상이었다. 조문객은 고통을 오래 겪지 않은 애비의 죽음을 아들 덕이라 효를 칭송하였다. 넓은 전원주택이라 아버지가 호상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기 위해 백일제에 탈상을 모두 마치고 동네잔치를 베풀었다. 떴다방 회사 선생들이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었다. 서산에 노을이 피어오를 때까지 정원에서 흥청거렸다.
선자는 남편이 죽고 삼년이 지나 의료보험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읍 사무실에서 장소를 내 주었다. 흉곽과 위 대장 검사는 버스 안에서 행하였다. 장비가 버스 안에 있었다. 보름 후에 재검을 하라는 통지가 왔다. 피에 이상과 위 내시경 결과 용정이 있어 2차 검사를 하란다. 대학병원으로 갔다. 결과는 위암 초기이었다.
선자는 아들만 둘이 있었다. 막내는 지방 관청에 공무원이다. 막내는 꼼꼼하고 신중하다. 초기인지라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약장사인 명제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위암 초기였던 육년 전과 같은 호재를 누리고 싶었다. 막내 선제가 극구 반대를 한다. 천국에 들은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희생정신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설득을 해도 밀리지 않는 명제다. 형과의 심한 언쟁은 싫었다. 자기가 모시는 입장도 아닌데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초기다. 선제는 암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의사의 진단을 앞 세웠다. 옥신각신 회의가 진행하며 줄다리기를 할 때이었다. 선자가 큰 아들 명제를 데리고 로비로 나갔다.
남편이 리무진을 타면서 아들을 따라다닌 여행이 선자를 유혹하고 말았다. 그 호강과 호사와 죽은 후에 본 호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귀퉁이로 가서 아들에게 말을 꺼냈다.
선자는 일본에서 낳고 일본에서 공부를 한 신여성이었다. 흠이 있다면 급한 성격과 남을 자기보다 낮게 여기는 거만함이 넘쳤다. 머리도 좋아 판단력이 빠르다.
“나 아버지처럼 좋은 차를 태우고 다니며 죽을 때까지 여행시켜 줄 거니?”
“어머니 당연하지요. 더 좋은 차도 있어요.”
“그래. 먹는 것은?”
“좋아 하시는 것 다 해드릴게요.” 한 옆에서 부모와 자식이 거래를 하고 약속을 다짐한다.
“너만 믿는다.”
“아버지를 보셨잖아요.” 명제가 힘을 얻어 의기가 충천이다.
“그럼 됐다. 제 놈들이 뭐를 다 안다고, 가자.” 시원한 해법을 찾은 선자는 당당하였다.
귀퉁이에서의 암약에 힘입어 선자가 돌아와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나 수술 안 하고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가기로 했다.”
의사가 안타까운 생각으로 쳐다본다. 맥이 풀린 채 재차 만류를 하였다. 다급하게 막내도 말린다.
“위암은 수술하면 최소 일 년에서 오년 이상 보장이 됩니다. 아니 초기에 잘라내면 십년도 가능하지요.”
“어머니.” 애처롭게 막내아들 선제가 부른다.
“싫다. 한두 해 더 살면 무엇 해. 나는 아버지처럼 짧고 굵게 여행을 다니다 살란다. 됐다. 가자.”
“이건 아닌데......,”
막내 재경의 허탈한 마지막 말을 뒤로하고 퇴원수속을 밟도록 명제에게 시켰다. 얼마 후에 병원의 소독약 냄새와 흰 벽을 남겨두고 유유히 병원을 나왔다. 명제의 검은 세단 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보인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둘러싸인 강가에 별천지 콘도와 캠프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음식점과 위락시설이 꽉 들어차 있는 전망이 좋은 동네다. 거기에 전원주택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명제는 약장사로 나섰다. 돈 가방을 차에 실고 수금을 하면 되는 노련한 출자원이다. 모두 사장님이라 부른다. 법망이 좁혀올 때는 해외로 빠져 나가 골프를 즐긴다. 장사는 대타를 시킨다. 대타가 걸리면 가족을 책임지고 보상을 한다. 대타를 일명 바지사장이라고 한다. 명제는 의리가 있어 신의를 우선시한다.
선자는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각지로 다니는 아들과의 동행이 즐거웠다. 흥이 많아 아들이 하는 프로그램을 잘 소화 하였다. 선자의 18번인 섬마을 선생님 노래도 부른다. 야담은 들은 즉시 잊어버려도 애완견 강아지와 남편의 공통점과 다른 점의 개그는 계속 또 들어도 재미가 있었다.
‘공통점은 사랑해주고 같이 놀아달라고 한다. 좋으면 쫓아다니며 살랑거린다. 한 이불에서 잔다. 다른 점은 돈을 갖다 주고 안 갖다 주는 차이, 강아지는 발로 찰 수 있고, 남편은 발로 찰 수 없는 차이. 남편은 아내를 배신할 수 있지만 강아지는 배신을 하지 않는다.’ 다양한 유머와 개그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시간이 선자는 좋았다. 매번 분위기를 띄워 깔깔 웃는다. 때로는 선자는 고객노인들에게 구매충동을 일으키는 선생으로도 통한다. 일본 물도 먹은 선생으로 최고의 고참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보험회사 팀장을 한 노하우도 있었다. 집요한 설득력도 있었다. 아들처럼 뱃장도 있었다. 더욱이 위트도 있다.
여름에는 양평군에 있는 소나기 마을 동네에 있는 캠프장을 일주일 임대를 하고 건강 프로그램에 등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하는 캠프는 입소문과 지병이 있는 지인들을 통해 알려진다. 스마일 건강 여름캠프는 인터넷을 통해 접수를 받는다.
이 기간에는 약을 판매는 하지 않고 자연치유라는 이름으로 운동과 식이요법 웃음치료인 긍정적 사고를 주입시키며 활력을 주는 교육에 힘을 기울인다.
빠른 템포의 통 기타와 드럼을 이용하여 자연치유력이 우리 몸에 있다는 토대 하에 좋은 에너지는 건강한 정신에서 생성 된다느니, 웃음에서 엔도르핀이 만들어진다고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창조의 이론과 의학적 용어를 넣어가며 노인의 망가진 뇌에도 쏙쏙 박히게 강의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장에 나와 ‘구령으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다 나았다.’ 산 공기를 마시고 중미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체조로 하루의 문을 활짝 연다. 출발이 신선하다. 아침을 왕같이 먹고, 점심은 천천히 우아하게, 저녁은 간단히 감자와 야채를 원탁에 모여 본인의 활성화된 신체리듬을 기분 좋게 이야기 하며 마무리한다. 점심에 중미산을 올라가고 힘이 넘치는 사람은 유명산까지 다녀온다. 꼬불꼬불 중미산 길도 좋으나 유명산의 계곡물과 돌의 조화는 치유의 원동력으로 묘사를 한다. 힘이 든 환자들을 위해 봉고차가 산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건강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아 휴가를 내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 웰빙 음식 만들기와 섭생법. 규칙적인 운동. 밝게 사는 것을 배우기 위해 값비싼 접수 비를 내고 온 사람과 중병으로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참여한 사람 두 부류의 사람이다.
7박 8일의 마지막 날은 캠프에 와서 치유를 확신하는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이 직접 나와 강단에서 발표를 한다. 발표자는 본인이 스스로 신청을 하는데 선자는 게스트로 등장한다.
암환자가 기적을 체험하며 치유 받아 가는 과정을 말한다. 선자는 유년을 일본에서 자라 달변은 아니나 말을 설득력 있게 할 줄 안다. 건강 스마일 프로 회사의 대장 명제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무게감은 회장으로 격이 맞았다. 선자는 급해 실수가 있어 가족으로 표하지 않고 회사원인 선생으로 임명을 하였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식솔이라는 사실을 꺼내지 않는다. 기획은 아들이 맡았다. 여름캠프는 대박이었다. 설악과 오색 약수터에서도 하였다.
선자는 여름캠프를 상쾌하게 두 번이나 지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동하며 시간이 꿈같이 흘렀다. 잘 먹고 호강하였다. 노후를 멋지게 보냈다. 봄눈이 녹으면서 속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 동안 금딱지를 붙이고 작은 쑥을 올려놓고 쑥 향을 즐기던 뜸질이 남편처럼 왕 뜸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선비로 우직하고 참을성이 강했다. 리무진을 태워 주는 아들의 사업을 위해 아픔을 참았었다. 그리고 쑥은 기와 혈을 돌려 몸을 뜨겁게 하고 면역력을 강화시켜, 병의 악화를 억제하는 효험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들이 마련한 청개구리 실험의 대상이 자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모르핀의 힘으로 고통을 감수하며 이별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선자는 정 반대다. 즉흥적이고 참을성이 부족하다. 남을 배려하는 폭도 작다. 늘 자기 위주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았다. 집안이 편했던 것은 과묵한 남편이 늘 참아줬었다. 선자의 기질로는 왕 뜸을 뜨는 태형의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일곱 번 중 두 번은 참고 다섯 번은 거부하였다. 표본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였다. 아들은 어머니가 엄살이 심해서 화가 났다. 그리고 아버지 때보다 매출이 저조하다. 프로그램의 금개구리는 힘이 없고 뛰지 않았다. 선자는 아픈데 거짓을 말하기가 싫었다. 아들의 재촉에도 시큰둥하다. 아들의 위선을 알았기에 이제야 남편의 편안한 죽음이 자식을 위한 참을성 많은 애비의 희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제의 팀원들이 대한민국의 정부와 의료봉사자들이 이권만 생각하여 자기들을 왕 뜸의 효험을 방해하며 창시자를 감옥에 잡아넣어 벌금과 구류를 반복. 권력행사의 공권력을 비판하고 있었다. 선자는 이것을 강력하게 규제를 하지 않으면 초기에 수술의 기회를 놓치고, 희생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자는 아들을 성토하였다. 돈을 그만큼 벌었으면 불법에서 빠져 나오도록 애원하였다. 아들은 오히려 화를 내었다. 어미가 삼년 가까이 산 것이 쑥과 약재의 효능이라고 반박을 하였다. 언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선자는 밥도 먹을 수가 없게 체력이 곤두박질을 쳤다.
아들은 밥을 안 먹어도 된다고 양배추 쌈은 물과 약재를 달여 먹였다. 순전히 통증완화를 위한 채소와 산초만을 주었다. 몸무게는 사십 킬로가 내렸다. 기운이 없어 걸을 수가 없었다. 들어가는 것이 없으니 장이 운동을 못하고 배변을 할 수가 없었다. 손으로 파도 안 된다. 손톱깎이 긴 것을 이용해본다. 그래도 돌덩이 같은 변을 부스기가 싶지 않았다. 불이 번쩍 나 어금니를 깨물어도 심한 통증은 참을 수가 없었다.
“여보 빨리 나를 데려가시오. 어떻게 참았소. 이런 고통을.” 소리는 비명이 된다. 정원이 넓어 강도 산도 선자의 울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띄엄띄엄 떨어진 전원주택이라 태형을 가해도 이웃까지 들리지 않는다.
참다못한 선자가 병원을 가자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명제는 아버지와는 다른 어머니가 싫었다. 마지못해 읍에 나가 진단을 받았다. 고통의 원인은 진전된 말기 암이다. 암환자라 동네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었다. 거기에 아들이 낫기 위한 의료적인 최소의 행위도 원치 않았다. 환자의 선례로 보아 때가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병원은 말기에 나이 든 환자라 아들의 말을 존중한다. 변비를 관장으로 뚫었다. 그것이 전부다. 명제는 선자에게 상태가 악화 되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명제는 의사에게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강한 진통제로 올려주는 처방만을 요구하였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관장을 해주고 영양제 최고의 알부민을 맞춰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양제 링거를 꽂고 집으로 퇴원을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선자가 심상치 않은 부종과 황달로 온 몸이 부어오르며 고통이 심해져 사경을 헤매었다. 그러다 며칠 뒤 정신이 잠깐 들었을 때 성남에 있는 선자 언니가 떠올랐다. 한 번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양푼에다 보리밥을 비벼 먹던 생각. 도토리 묵. 두부를 만들어 먹던 일이 생생하다. 입맛이 돋는 기분이다. 속은 몹시 쓰리다. 물도 먹고 싶었다.
때 마침 명제와 며느리가 없었다. 억지로 거실로 기어가 성남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타고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언니.” 위급을 청하 듯 소리가 다급하다.
“선자야! 전화를 못 받더니 괜찮아?”
“명제가 나를 굶겨 죽이려고 해.” 누가 수화기를 빼앗을까 두려워 급하게 SOS를 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명제가?” 뜻밖에 현영은 진실을 듣는다.
“이제는 내가 명제가 하는 약장사에 쓸모가 없어졌거든.” 자기의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가끔 명제 처와 나누던 통화와는 전혀 다르다. 통 털어 아버지 같이 아주 편안하게 사시다 가신다는 명제의 말이 거짓 이였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든다.
“왜? 그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를 약장사에 이용하고 나를 이용했는데 나도 이제 끝이야.”
“무슨 소리야?”
“지 애비가 명제 놈을 위해 죽도록 아픈 고통을 참은 거야.” 흐느껴 우는 소리가 소화기를 타고 들린다. 현영도 가슴이 미어진다. 정말로 아들이......,
막상 어떤 위로의 말도 생각이 안 난다.
“…….지금 죽도록 아파?”
“응 죽도록……, 언니”
“세상에 명제가 어미에게 그럴 수가…… 나쁜 놈.”
“살지 못해도 좋아. 나 언니한테 가서 보리밥에 열무도 먹고, 두부도 만들어 주면 먹고, 하루만 실컷 먹다 죽고 싶어. 아니 물이라도 지금”
“물이라고 물? 물말이야 물도 없어? 선자야 올 수는 있니? ” 현영이의 말이 허둥댄다.
“ 힘이 없고 걸음을 못 걸어. 간신히 기실을 기어 나왔어 ”
“ 그래 내가 갈까 ”
“ 늦었잖아 언니. 명제 놈이 올 때가 되었어.”
아니 콜을 불러. 콜택시를 부르라고……,”
“ 돈도 없고, 힘도....., ”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 콜택시 아니면 119불러. 빈 몸으로 지금 나와 우리 집에 빨리 와 ”
긴급하게 연결하여 한 시간 반 만에 탈출을 한 것이다.
둘은 현영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들어와 부둥켜안고 한 참 울었다.
침대에 선자를 눕혔다. 말 보다 안정이 필요하다. 현영은 능숙한 호스피스답게 작은 탁자 위에 환자가 필요한 물품을 가지런히 놓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 안정이 된 선자를 야채를 갈아 호스로 먹였다. 편안해져서인지 통 안 넘어가던 음식물이 넘어갔다. 소화가 될 무렵에 조심스럽게 욕실로 데리고 갔다. 간단하게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겼다. 허연 피부가 앙상한 몸을 싸고 있었다. 비늘이 허옇게 떨어진다. 현영이 보기에 말기 암 선고 두 달을 남겨놓은 환자 같았다. 지금 상태라면 무료 호스피스병동에 연락하면 갈 수 있는 상태다. 그런 시설도 있으나 현영은 자기가 친구의 임종을 지켜주고 싶었다. 모르핀은 호스피스병동을 운영하는 목사님에게 말씀드려 처방을 받아오면 된다. 목사님은 무료 가정 간병이 앞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호스피스 자격증 연수 교육에서 꼭 말을 하셨다.
현영은 정신이 들기 시작하는 선자에게 목욕을 깨끗이 씻긴 후에 부드러운 죽을 끓여 먹여 보았다. 평온하기도 하고 현영이 해주는 먹을 것만 상상해서 그런지 입맛이 돌았다. 물김치를 옆에 곁들여 놓으니 건더기를 선자가 입에 넣어본다. 거칠게 입안에서 돈다. 휴지를 찾는다. 휴지를 주기 전에 먼저 현영이 손바닥을 벌린다. 주저한다.
“ 괜찮아. 내손에 뱉어. 너는 환자야. 나는 정식 호스피스고 요양보호사야” 선자가 환자인 것을 주시시킨다.
“아직은......, 휴지 좀 언니 삼일 후부터는 진밥을 먹어본다. 씹었더니 껄끄럽다. 그러나 구수하니 밥 냄새가 향기롭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다. 열무도 입에 넣어 씹다가 넘어가지 않아 뱉으려고 하였다. 빨리 현영이 손바닥에 내밀었다. 선자는 곧바로 뱉지를 못한다. ”
“그 깐깐한 성격은 여전하구나. 너는 환자고 나는 언니잖아.”
“그래도 아직 정신을 놓지 않았잖아”
“뭐든지 편하게 생각해야 병도 물러나가”
환자와 호스피스가 동고동락이 시작되었다.
선자의 매일 여러 번 몸을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마사지는 혈액순환에 좋았다. 밥도 먹고 먼 길에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늦게 전화가 왔다. 선자의 며느리가 없어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다 현영의 집에 걸어본 거였다.
“안녕하세요.”
“주희 어미구나. 어머니를 찾지?”
“네. 우리 어머니 이모 댁에 계세요?”
“그래.”
“지금 뭐 하세요?”
“밥을 먹고 주무시고 있어.”
“잡수면 안 된다고 민수 아빠가 그랬어요.”
“음식이 안 땅겨 못 먹은 것이 아니라 안 먹였다는 소리냐?”
“아니 암에 좋은 대체 약재를 드셨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자네 시어머니가 명제가 굶겨 죽이려 했다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구나.”
“어머니가 옛날 같지 않으세요. 터무니없는 주장만 세우고 거짓말을 잘 하세요. 몰래 다 잡수시고 안 먹었다는 소리를 하세요.”
“그만하게. 안 준 것은 사실이군, 그러니 몰래 잡수셨지.”
“암 환자는 살이 찌면 안 된다고 했어요. 조금씩 조절해 드렸는데 어머니는 안 먹었다는 치매와 같은 강박증 증세이에요.” 선자가 안 먹었다는 소리는 치매 시초의 증상으로 몰았다.
“사십 키로밖에 안 되는데 치매까지 몰아가고 있군. 그러나 앞으로는 내 방식대로 간병을 할 테니 염려 말고 내 집에서 운명해도 원망은 하지 말게 나.”
“그럼 말할 수 없이 고맙죠. 어머니가 하도 거짓말을 하셔서 애비와 언쟁을 하고, 나도 죄를 많이 져요. 그래서 못할 말이 지만 빨리 죽기를 바랬거든요.”
시어머니가 죽기를 바란다는 말을 쉽게 말할 수 있다니 기가 막혔다.
선자는 명제 처와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차츰 회복이 되었다. 삼일 후부터는 죽 수준을 면한 진밥을 먹어본다. 씹었더니 껄끄럽다. 그러나 구수하니 밥 냄새가 향기롭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다. 열무도 입에 넣어 씹다가 넘어가지 않아 뱉아 내었다. 거리낌 없이 현영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현영이 말대로 편안하게 선자는 현영이 손바닥에 건더기를 뱉었다. 잡곡밥으로 바뀌었다. 식욕을 찾아가며 골고루 아주 조금씩 먹었다. 먹는 것이 조금씩 되니 변비가 문제가 되었다. 현영이가 관장을 시켰다. 관장도 병원에 가지 않고 어른 기저귀를 깔아 놓고 현영이 능숙하게 손으로 직접 파 주었다. 현영은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파는데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변을 살피며 배설의 양과 색을 중요시 하였다. 환자가 변의 색깔이 좋아지고 주기적으로 대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 년에 한두 명 다시 소생하여 나가는 기적을 보았는데 선자의 경우가 그랬다. 매일 매일 달라졌다. 벌건 김치도 먹고 상추도 잘 먹었다. 보름 만에 몸무게는 오 킬로가 늘어났다.
둘이 대형마트에 찬찬히 나가 선자가 먹고 싶은 식재를 사오기도 하였다.
더 이상 몸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 않아 운동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부기는 내리지 않았다. 현영은 어딘가 이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선자는 전에 워낙 성태가 나빴기 때문에 걸어 다닐 수 있게 호전된 것을 현영이 공으로 돌리며 괜찮다고 그랬다.
현영의 우려대로 다음날 선자가 속이 아프다고 하더니 신음소리를 내었다. 위급상황이 발생하였다. 119를 불렀다. 동네 내과로 갔다. 위 촬영을 하였다. 복막염이란 결과가 나왔다. 수술을 급하게 요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하다. 허락이 있어야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아무리 친해도 친구는 소용없다. 현영이 연락하여 작은 아들 선제가 먼저 왔다. 형한테 전화를 한다. 그 때 선자의 큰 아들 명제는 농협진흥청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유기농 쌀 매출을 올리고 홍보에 열심이라 전국 영농인 조합과 농협에서는 이미 명사가 되어 있었다. 건강 강의로 자주 행차를 한다.
선제에게 명제는 어떤 조치도 하지 말고 통증을 완화 하는 진통제만 놓으라고 일러준다. 심각한 위급상황의 진행방향을 핸드폰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서로의 좋은 의견 제시가 아니고 명제가 일방적 답을 내놓았다. 해법은 절대로 수술을 하지 않는단다. 의사는 환자가 건강이 회복이 되어 수술이 가능하다고 재촉한다. 복막염이다. 시간을 다투었다. 복막염이래도 명제는 말기 암인데 돈을 들여 수술을 왜 하느냐고 장례준비를 하란다. 환자에게 진통제를 놓고 병원도 모두 최종 결정권자인 명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 중에 진두지휘를 하던 아들이 여섯 시간 만에 나타나 어머니에게 나가자고 회유를 하였다.
“이 놈 나보고 그냥 죽으라고……,”
“그게 아니고요…….수술이 더 고통스러워요.”
“ 하루 이틀을 못 넘긴다는데. 이놈!”
“ 암 말기에요. 배를 열다 돌아가신다 말입니다.”
의사가 오자 환자가 고통을 참고 떨리는 음성으로 애원을 한다.
“수술하고 하루라도 더 살아 언니가 주는 보리밥을 먹고 열무김치를 먹게 해주세요. . 입맛이 돌아와서 통증만 없으면 먹을 수 있어요. 살려주세요. ”
의사의 가운을 메마른 손으로 잡는다. 의사는 답답하여 살짝 손을 놓고 자식들과 상의를 하라고 나갔다.
명제가 선자에게 말을 한다.
“통증 치료를 위해 한의로 가면 괜찮아요.”
“나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수술을 할 거야.” 전 과는 반대 의사다.
“수술은 못해요. 힘이 없어서 안 됩니다.” 수술을 해도 고통만 심하고 못할 짓이에요. 고통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한 치 건너 두 치, 자기 살이 아니기에 판단이 쉽게 될 수 있다.
“의사가 된다는데 네가 뭔데.”
“저놈들이 뭘 알아요.”
초기에 처음 선자가 수술을 거부했을 때의 말을 아들은 그대로 쓰고 있었다.
“안 속는다. 이제 는 안속아.”
“뭐를 안 속아요?” 아들은 화가 나 언성을 높였다.
“에비도 죽이고 나도 죽이려고. 이제는 안 돼. 선자 이모가 나를 살려 냈어.”
“어머니는 상태. 우리가 말을 안 하고 숨겨왔는데 암 말기란 말입니다.”
“나도 이제는 알아 그래도 좋다. 안하고 내일 죽어 후회하기보다 수술하고 죽으련다. 복막염을 떼어내고 적어도 한두 달은 충분히 살 수 있다. 안 가.”
선자는 사진 찍을 때 입은 환자복을 입고 병원침대에 아주 올라갔다. 진통제를 먹었어도 통증의 고통은 점점 심했다. 그러나 쪼그리고 앉아 끝까지 대응을 하고 있었다. 의사는 수술을 거부하는 아들과의 싸움에 짜증이 났다. 자신을 낳은 어미를 포기하고 오늘의 죽음을 선택하려는 아들이 한심스러웠다. 퇴근 시간도 지났다. 생명의 존엄성을 모르는 사람과 있고 싶지 않았다.
“빨리 병원을 나가십시오. 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세요. 시간을 끌면 오늘밤을 못 넘깁니다. 복막염과 암까지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던가.” 자기병원을 나가라고 의사가 단호하게 말을 하고는 병실을 나가버렸다.
현영이가 보다 못해 팔을 걷어붙였다.
“나쁜 놈 같으니. 낳아 준 부모의 은혜를 모르다니.”
“이모 그게 아니고 환자가 더 고통이에요. 불확실한 끝없는 고통은 진정한 삶이 아니잖아요?”
“고얀 놈 수술을 원하는 어미를 이렇게 죽이겠다고?”
“진통제를 잡수시고 집에 가셔서 쑥뜸을 뜨면 고통이 없어져요.”
“오늘 하루를 못 넘긴다는데 그래도 이놈아.” 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일곱 시간을 옥신각신 하다 현영과 선자의 막내 선제의 강경 대응으로 대학병원으로 이동하였다. 복막염 수술이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응급실에 들어가 그 밤에 수술을 네 시간 하였다. 복막염 수술 진행과정이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위에 암 덩이와 복막염을 떼어내었다. 그 과정에서 위를 절반 이상을 잘라 내었다. 건강에 방해되었던 나쁜 세포를 모두 제거 하였다. 경과가 좋아 이틀 만에 병동으로 올라왔다. 노인이라 항암은 포기하고 , 방사선도 쪼일 필요가 없이 깨끗이 수술이 되었다.
일반 환자 내과병동으로 나와 입원환자들을 보니 선자는 제일 경한 환자 같아 보였다. 특별한 통증도 없었다. 간병은 철저하게 현영이 맡았다. 명제네 식구도 병원에서 자지 않았다. 수술 주머니를 달고도 천천히 운동을 시작하였다.
“어르신. 십 년은 더 살 겁니다.” 회진 중 담당 교수가 결과를 직접 들려준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내가 미련해서 병을 키웠습니다. ”
“ 그래도 어르신은 운이 좋습니다. 복막염이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이제는 편안하고 즐겁게 사세요. ”
수술결과가 워낙 빠르고 좋아 퇴원이 결정되었다.
담당의의 소리에 지금껏 누리 팅팅 불만이었던 아들 명제의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현영과 막내아들 선제도 기뻐하였다.
“어머니 수술 잘 하셨습니다.” 명제가 자기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화해의 제스처임에 틀림없었다.
“어찌 금방 마음이 바뀌었니?” 눈을 흘긴다.
“어머니 나하고 침대칸이 있는 외제차를 타고 여행을 다닙시다.”
“침대칸이 있는 외제차? 철이 들었나 했더니 아니구나. 그래서 바뀌었구나? 또. 그 짓을 하자고?”
“십 년 동안 멋진 인생을 다시 펼칩시다.” 멋쩍게 명제는 웃었다.
“사람 잡지 말고, 나는 선제랑 살란다. 너는 고래나 잡으러 가. 고래나.” 선자는 사업수완이 좋은 명제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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