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마을...석교(石橋)!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돌 따리 !!!
돌 다리
아주 먼 옛날 한내 뜰
강 줄기 건널수 없어 헤맬때
누런 구덩이 돌 놓였네.
농부는 맨 발로 오가고
선비는 흙 묻은 짚신 신고 오가고
새색시 빨간 고무신 신고 오가고
당신 때문에 한내 뜰이 꽃피고... 이하 생략.
설은 부 입니다.
충남 '대천'의 '한내 들'에 있는 '돌 다리'에 대한 '이 문규'님의 詩 입니다.
참 시골스럽고 아기자기... 옛 기억이 생각나게 하는 군요.
우리도 '돌 다리'... 아니 '돌 따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멋진 시가 없죠?
마을 앞 냇가에 아주 특이하게도 널찍하고 적당히 납작한 자연석...
'돌' 하나가 턱~가로 놓여진 다리가 있었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돌따리... 석교(石橋) 입니다.
고향 '금산'의 종로통 '삼거리'에서 쭉~ 곧게 거침없이
뻗어 나가다 보면 '옹지미' 고개를 넘고
'웃 떡띠'... '아래 떡띠'를 막 벗어나면
또 다시 까~만 길만 뻗어 깜빡 지나치기라도 하면 곧 바로 '남성'입니다.
그렇게 정신놓고 지나치면 '아래 떡띠'와 그의 구분을 놓지고 말지만
'아래 떡띠'의 정자 나무를 지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척~ 하고 나타나는곳이 바로 여기...
'석교 마을... 돌 따리' 입니다.
'석교... 돌 따리'는 보이는 것은 작은 마을 인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을 주민 전체가 똘똘 뭉쳐서 거대한 단결력을 보여주는 아주 큰 마을 입니다.
굳세기를 말하면 어느 마을도 따라올 수 없는 '돌'... '돌'로된 마을이라
'돌 따리 !!' 아니겠습니까? !!
실제로 7080 당시 식량증산 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졌던
'퇴비증산 풀베기대회' 에서 작은 마을의 큰 단결력을 보여
마을 주민이면 남녀 노소를 불문한 모든 주민이 합심 단합하여
영예의 면내 1등상을 비롯하여
군 내에서도 수상을 하는등 많은 실적들을
연속 해서 이루어 내는 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에 받은 상금으로 마을 회관을 건립 하기도 하였답니다.
사람이 크다는 것은 그렇습니다.
큰 사람이 큰 일을 하면 당연 한거지요.
그러나 작은 사람이 상상외의 성과를 낸다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뭉쳐서...
합심 단합해서 크다란 성과를 이루어 냈을때의 그 파급효과는
대단한 것입니다.
시상금, 상품, 표창장을 눈에 보이는 효과라고 한다면
그 자부심이나 단결력... 성취감 등은 보이지 않는 효과 일 것입니다.
그로 인한 이웃간의 정리 라던지, 주민들의 신뢰나
'하면된다 !'는 성공에 대한 굳은 의지는
자손대대로 물려 갈 것입니다.
깨끗이 티끌 하나없이 정리가 된 마을 안길을 보면서
과연 알뜰하고 확실한 분 들의 마을 답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을앞 한길 가에서 예쁜 아주머니 두분이 차를 세우더군요.
삼거리 농협에 가신다고 했습니다.
" 아지매들은 같은 면에 살아도 잘 모르겠네예 !"
" 오대 사시는데예?"
" 나는 개내 삽니더. 이름은 '문 병식' 이고예..."
" 아이고 고마바라... 차도 다 태이 주고..."
" 그기 뭐이라꼬예... 가는 길에 같이 가시모 되는긴데..."
"그래도 오대 걸 십미꺼... 요새는 얼른도 엄심니더."
" ㅎㅎㅎ 그래예? 그런데 아지매 들은 누구 십니꺼? "
" 아저씨는 나 가 올매나 됬는데예?"
" 예... 나는 한 오십 댓 됬이낍니더...ㅎㅎㅎ"
"그라모... '변사또' 알겄네예? '변 연수'!... 이 사람이 마느랩니더."
룸 밀러로 그 예쁜 분을 보아 두었습니다.
" 아~! 그래예? 첨 뵙겠십니더이... 또 한 분은예?..."
이번에는 '연수'선배 부인이 설명을 하신다.
" 이분은 그 키 크고... '김해'서 일 한다 쿠는..."
" 아~! 혹시 '동술이'형님 ?..."
" 하모예 !! 그 양반 형수 아입니꺼"!!..."
그렇습니다.
미쳐 인사를 나누지 못 했을 뿐이지 우리는 다 이웃 이었습니다.
" 돌 따리가 크다 쿠더마는 큰 마을답게 무궁화가 쭉~ 피어 있데예 ?!!"
"..........??"
" 그런데... 와 '돌 따리' 에 '돌 따리'가 엄십니꺼?"
" 엄지예...!! 세월이 얼만데예?!!"
".........."
" 저~개 들로 나가는 저 길에 가모 '돌 따리'는 업서도 새로 논 다리가 있십니더."
그렇게 아지매들을 내려 드리고 다시 차를 돌려 돌아 와서
그 다리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석교마을... 돌 따리' 출신 우리 카페의 향우님들도 제법 보이는 군요.
우선 제일 멋 있고 부지런히 후배들을 챙겨 주시는
키 만큼이나 마음도 크신 '강 동성... 돌다리' 선배님이 계십니다.
'doldarino'님도 있고요, '성 양택'님, '성 진택'님도 있습니다.
'성 숙희'님, '정자'님, 신화같은 '신화'님도 있고...
그리고 늘 솔선하는 46대표격인 '장 이환'님 은
서울서 돼지를 만드는 공장을 하신 답니다.
옛날에 학교가 없어 훈장님을 모셔다가 공부를 했다는골짝...
'서재골'은 그 터 만 남아 이름을 전하고 있습니다.
70도가리나 되는 고동처름 생긴 논이 있던 '고동골'은 잡초만 무성 하답니다.
예전에 '애기장'이나 '가 매장'을 했었다는 '가장골'...
절벽이 병풍처름 들러쳐져 있는 '병풍 장산'.
'병풍장산' 정상에 있는 바위로 '집현', '대곡'이 훤히 보인다는 '놀음바위...
공동 식수장 이었던 '새샘'.
'남성'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가뭄에 식수로 이용했던 샘...'섬베기 샘'
'줄'이란 이름의 습지 식물이 많이 자라던 '줄 또랑'...
'두더지'가 팠다는 이름의 '디지기 웅덩이'... '디지기'는 '두더지'의 사투리
'뒤쥐...디지'로 된 모양입니다.
그 정답고 그리운 모습이나 장소들이 점차 이름만 남기고
사라져 가고 있으니 못내 아쉽습니다.
** 옛날 '돌 따리'가 있던 자리...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
아 ! 아 !~ 알립니다. '석교마을... 돌 따리' 동민 여러분 !!
그리고 전 세계에 계시는 우리 향우 여러분 !!
'석교마을... 돌 따리'는 훌륭하고 멋진
우리가 죽을때 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사랑 해야 할 우리의 고향입니다.
또, 지금 있는 이 다리도 훌륭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그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진짜 그 시절 그 때의 그 '돌 따리' 하나 만들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지금 우리 고향은 그 기념비적인 '돌 따리' 하나 만들어
더 큰 자긍심과 아울러 찐~한 애향심을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 따리'에는
꼭 !!...
'돌 따리'가 있어야 합니다.
** 충남 대천의 한내 들 '돌다리'...**
돌 다리
하 청호.
깡총 깡총... 별들이 건너 뛰다가
퐁당 퐁당... 물 속에 빠져 버렸네.
반짝 반짝... 냇물 속에 빠진
수, 수많은... 별, 별... 들.
설은 부 였습니다.
참고문헌... 금산면지, 진양 지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