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진은 저희 학교에 연례 행사인 '2009 더불어 사는 통나무인' 행사때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고 편집하신분은
한국통나무학교 프로39기 출신이신 삼무곡 자연예술학교의 김종률 목사님 이십니다. 전재를 허락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2009년 7월 13일
더불어사는 통나무인 공식일정이 시작 되었다.
새벽 날이 밝기 전
잠자리를 정갈히 정리하고 눈을 감는다.
몇 번 호흡을 가다듬다보면
고요해진 마음 속에서
어서 날이 밝았으면 하는 바램이 뜨겁게 솟아 오른다.
오늘 하루
땀흘려 할 일이 있다는 행복감,
통나무인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대는 어떤가?
오늘 벌어질 일이 기대가 되어
가슴 설레이며 아침을 기다리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가장 먼저 일어나 작업 현장을 돌아보는
김병천 교장 선생님,
나는 이분으로부터 참으로 큰 은혜를 입었다.
아침이기다려지는
가슴뛰는 삶을 만나게 해 주신것,
세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명상의 방법을 만나게하시고,
내가 얼마나 힘이있는 존재인지를 알게 하셨다.
통나무 일은 내게 새로운 언어다.
더이상 머리와 입으로 살지않고
온 몸으로 살게하는
생명의 언어다.
골조를 실은 24톤 트럭이
현장에 도착했다.
삼무곡에 들어 온 가장 큰 차다.
안타깝지만
진입로에 서있던 세그루의 벗나무를 베어 냈고,
트럭엔 여기 저기 상처가 났다.
2004년 더불어사는 통나무인때는 자재를 실은 트럭이 논에 빠졌었다.
그 경험 이후
삼무곡에 트럭이 들어와야 하는 날은
적잖이 긴장하게 된다.
드디어 첫번째 실로그가 놓여졌다.
창조가 시작되는
첫 순간이다.
한국 최고의 로그빌더 주병근 강사와
일본 최고의 로그빌더 무라까와 슈지
삼무곡 입구에사는 좋은 길벗 동화씨의 소개로
통나무집 조립에 참여한
크레인 기사!
자신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적의 역사가 참으로 경이로운듯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두번째 실로그가 놓여졌다.
미리 튀겨 놓은 콘크리트 바닥의 먹선과
통나무의 먹선을 일치 시키는 일,
이는 얼마나 정교한 집을 지을 것인가를 결정한다.
우리의 배움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리의 근본이요, 바탕인 스승의 가르침에
내뜻을 일치 시키는 일,
이는 오직 진리 앞에 낮게 엎드림으로서만 가능하다.
조립을 기다리는 부제들,
우리도 스승과 만나기 전에는
한조각 부제에 불과했다.
먼저 길을 가신 스승의 안내에 따라
좀더 쉽게 우리의 삶을 완성 할 수 있는 방법이 안내 되고
생겨먹은 모양새 대로 서로 아구가 맞아
견고한 삶의 토대를 놓아 간다.
마침내 실로그(토대) 조립이 끝났다.
이제 그 위에
누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기둥들이 세워 질것이다.
언제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잘 다듬어 진 기둥들이지만
그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것은
있는듯 없는듯 자리를 지키는 토대 들이다.
지금 우리 삶의 토대는
누구인가?
묵묵히 김병천 교장 선생님의 곁을 지킨
한국 통나무 건축의 산 역사
주병근 강사.
스승은 길을 내고
학생은 그 길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는 스스로 길이 된다.
그 길위에 다시 서는 학생들,
그들 또한 언젠가
자신이 바로 길임을 알게되리라!
드디어 1층 기둥들이 모두 섰다.
홀로 서 있는 기둥들을 보라!
얼마나 불안하고 어색한가...
기둥은 자신의 몸으로 무엇인가를 떠받들었을때만 의미가 있다.
그때가 가장 안정적이다.
그대, 기둥이 되고 싶은가?
떠 받들고 모셔라.
그대의 스승을,
그대의 이웃을,
그러면 어느날
역사를 떠받들고 선 위대한 기둥이 되어 있을 것이다.
브릿지 조립이 시작 되었다.
기둥과 기둥이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
우리는 어떤 존재로 태어 났는가?
기둥인가?
다리인가?
10시 정각,
브레이크 타임이다.
역동적이고 스피드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멈춰서는 것이 중요하다.
멈춰 설 수 없다면
중독된 것이다.
중독된 사람은
즐길수 없다.
즐길수 없다면
노예다.
그래서 통나무인들에게 브레이크 타임은
절대적이다.
어찌 통나무인들에게만 그러하랴만...
모든 창조는 생각에서 시작 된다.
생각은 언어가 되어
그림이 되고, 시가 되고, 음악이 된다.
보라,
그가 떠올린 생각 하나가
도면이 되고,
그 도면이 공간 안에 어떻게 창조 되어지는지를...
창조는
참으로 쉽다.
그대의 바탕 생각을 살펴라.
그러면 그대의 인생에 무엇이 창조 되어질지 알 것이다.
물론
때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할 때도 있고
때로는 잘못 끼워맞춰질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떤가?
인생은 오직 기회의 연속인걸!
살다 보면 조금 기울어 질수도 있고,
때로는 기울어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괞찮다.
우리의 기울어짐을 올곧게 세워 주실
스승이 계시지않는가?
스승을 모시는 일은
그래서 행복하다.
가르침을 따라 살다보면
마침내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을 바로 세우시던 스승이
바로 자신 안에 계셨음을!
보아라,
이제는 스스로 바로 세우지 않는가?
나는 안다.
자립이 결코 오만한 이성으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때로는 천길 낭떠러지 앞에
위태롭게 홀로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두려워 할 것 없다.
그대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해도
그대를 잡고 있는 손,
그대를 놓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진리요,
신앙이요,
삶의 본질이다.
토대 위에 기둥이서고,
기둥 위에 보가 얹히고,
보 위에 다시 기둥이 서고,
기둥위에 다시 보가 얹힌다.
역할과 기능이 다른 부제 들이 서로 어우러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이것이
조화로움이다.
조화로움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 차릴때 비로소 열려지는 세계다.
기둥이 기둥임을 알아차리고,
브릿지(인방)가 브릿지임을 알아차리고,
보가 보임을 알아차릴때
서로를 비교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자들,
그들이 하는 것이 경쟁이다.
선의의 경쟁?
그런건 없다.
눈 먼 자들이 자신을 추동해 낼때 사용하는 어리석은 동력이다.
그 동력은 서로를 파멸로 이끌어 간다.
보라,
묵묵히 기둥을 붙잡고 서서
행복해 하는 저 사람을!
눈 뜨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는 것!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
경쟁을 정당화 하는 그 어떤 말도
속임수요, 사기다.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이 해야 할일을 알고
그 일에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모습!
그러한 삶이 서로 만나
더 높은 이상을 현실로 창조해 내니
아, 아름다워라!
스스로 선 자들이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로 깨어난 자들이여!
집 짓는 일이
어찌 집을 세우는 자들만의 일이겠는가?
보이지 않게 그들을 공양하고
섬기고
모시는 이들!
보이지않는 그들의 사랑이
보이는 기적을 창조하나니
자랑할 그 어떤 결과에도
내가 했노라 감히 나서지 마라!
만물이 서로 어우러지니
꽃 한 송이 저절로 피어났을 뿐이다.
2009년 7월 13일의 기록을
8월 24일에야 하다.
현곡
첫댓글 저는 사진이 배꼽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