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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觀」수련......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넓다.
이대운
한국내관학회장, 상담심리학박사
1. 「內觀」이란 …
「集中內觀」 일주일간의 수련을 체험했다고 해서 내관이 무엇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것은 좀 주제 넘는 것 같다. 글자 그대로 자신의 마음 속 끝까지 살펴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관은 불교의 禪(선)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요시모토 이신(吉本伊信) 선생님께서(1916~1988) 현대인들에게 맞게 자신을 살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수행법으로 개발하였다.
요즘에 와서는 내관 수련이 자신의 수행 뿐 아니라 정신 및 심리 치료 요법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불안, 초조, 우울, 불면, 신경쇠약 등 정신 및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알코올, 약물 중독자들, 부부 간 혹은 고부 간에 갈등을 가진 사람들, 탈선 및 비행 청소년들, 범죄행위자들 등이 이 내관 수련을 통하여 새로운 깨달음 얻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거의 대부분의 사회적 범죄, 불안과 혼란스러움, 대인 관계에 있어서의 상처 받음, 가정 불화, 마음의 외로움과 허탈함, 좌절감 등 이 모든 것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자의 마음 속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뒤틀림에서 발생하고 확대된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 뒤틀림이 무엇인지를 내면 깊이 살펴본다면 해답이 나오리라고 본다.
그러므로 바로 내관은 자신을 깊이 보고 무엇인가 어떤 깨달음을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 발전시켜나가는 자신의 수행법 혹은 심리요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2. 나는 내관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어느 날 오후 5시경 밖에는 좍좍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날씨가 음산스러워졌다. 우산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집에 갈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왠지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해 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있고 몇 년만 더 있으면 정년퇴직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나의 삶이 시들어가고 마는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나는 하느님 앞에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 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엄습해오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상담선생님을 찾아가 면담을 하였다. 그 선생님은 언제나 나를 따듯하고 푸근하게 대해주셨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나에게 내관 안내서를 주시면서 읽어보라고 하셨다. 내관 체험 리포트로서 제목은 '거짓 없는 진정한 자신을 탐구한다.'였다.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한 번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앞에 값진 삶이 되는지를 깨닫고 싶었다. 사실 나 혼자서 자신을 깊이 살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하루 24시간 중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 외에는 나 홀로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내관 수련을 신청하기 전에 우선 사전 답사를 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직접 내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였다. 마치 토마스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손으로 직접 못 구멍과 창으로 뚫린 옆구리를 만져보고 확인했듯이 말이다. 속고 속이는 세상 속에서 터득한 나의 작은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2002년 5월 18일(토)부터 20일(월)까지 휴가를 내어서 오사카에 있는 가톨릭내관명상의집과 나라에 있는 내관수련원(세계 본부)을 방문했다. 과연 내관 수련이 무엇이고 삶에 찌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오사카에 도착, 후지하라 신부님이 계신 가톨릭내관명상의집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우선 마리아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후지하라 신부님께서 내관을 지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후지하라 신부님은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기차역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너무도 황송하기도 했지만 그 겸손하심에 더욱 놀랐다. 후지하라 신부님은 오사카교구 소속으로서 1973년에 사제서품을 받으셨고 본당 사목과 신학교 영성지도신부님으로 일을 하시다가 10년 전 내관 수련 담당 사제로서 일하고 계신다. 일본 각 지역으로 다니시면서 특히 수도원을 내관 장소로 이용한다. 그 지역의 성직자,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내관 수련을 통한 영성을 지도하고 계신다. 후지하라 신부님은 수도원 성당으로 우리들을 안내하셨다. 작고 아담하였지만 엄숙함과 거룩함이 넘쳐흐르는 성당이었다. 성당안 모퉁이마다 120cm 정도 높이의 창호지로 만들어진 병풍이 처져 있었다. 그 속에 앉아 내관 수련자들이 자신을 살펴본다고 한다. 신부님은 그 병풍 앞에 가서 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셨다. 그리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병풍을 옆으로 살며시 열고 그 속에 있는 수련자를 향해 다시 한 번 큰 절을 올렸다.
면담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본말을 못하기 때문에 면담 내용은 모르지만 분위기가 대단히 엄숙했다. 약 10분 정도의 면담이 끝나고 또 다시 큰 절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신부님이 평신도 앞에 큰 절을 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내관 수련자 마음속에 계시면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보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정신적 심리적 치료법을 동원해도 해결 안 되는 사람들도 내관 수련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신체적 병과 문제들이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서부터 근원적으로 화해가 되고 치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과 약물 남용자들이 내관 수련을 통해 새 삶을 찾았다고 한다. 땅을 파면 물이 나오듯이 자신에게서 깨달음이 올 때까지 자신의 마음속을 살피면 치유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빛이 비추어지면 어두움은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음은 나라에 있는 내관수련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현재 이곳은 세계 본부이면서 내관 창시자이신 요시모토 이신 선생님께서 내관을 시작하신 곳이기도 하다. 내관의 본산지며 내관 창시자의 정신과 얼이 간직된 곳이다. 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관 수련을 받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 자료실에는 내관에 대한 연구 자료들과 책들로 꽉 차있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정신의학계에서나 심리 및 상담학계에서 내관을 심리치료법으로 널리 활용하고 있으며 임상적으로 입증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일본 내관 학회의 활동이 학술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어 있음을 보았다. 이곳의 내관 수련원 원장은 마에시로 데루아끼 선생님으로 창시자를 1대로 하여 3대째의 원장이다. 임상심리사로 병원에 24년간 심리치료를 담당하였고 대학 심리학 교수로서 2년 전 내관 연수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건물은 현대식 목조로 지어졌으며 2층으로 된 아담한 수련장이었다. 2년 전에 신축한 건물이다. 내부의 모든 시설은 초현대식으로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대회의장과 식당, 화장실, 목욕실 모두가 자동화 되어 있었다. 옆에는 옛날에 쓰던 수련장 건물이 있었다. 주로 이곳에서는 내관의 역사와 세계 속에서 내관의 활동, 그리고 일본 사회 속에서 내관이 기여한 성공적 사례 등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현재 내관 수련이 진행 중인 국가는 미국,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이며 중국 상하이에 9년 전에 내관 학회가 발족되었으나 지도가가 아직 탄생되지 않아 계속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나는 충분히 알아볼 것을 알아보았다. 우선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정신, 신앙생활과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시적인 운동은 아닌가. 어느 일본 민속신앙이나 종파 혹은 신흥종교에 속하는 것 아닌지 등등.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도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도 따져보았다.
내관이 이 혼탁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찾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훌륭한 수행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두 달 후인 7월 초에 여름휴가를 내어 이곳에 와서 7일간의 집중적으로 내관을 수련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3. 내관 수련을 하게 된 동기…
한마디로 말한다면 내 자신을 찾고 싶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자신의 답을 찾고 싶었다. 엊그제까지 함께 재미있게 지내던 친구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혹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나도 언제 하느님이 부르실지 모른다. 나는 과연 하느님 앞에 가서 무엇을 내놓아야 할 것인가. 먹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고달픈 것인가.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오늘 하루도 바쁘게 지나간다. 이렇게 수십 년이 흘러갔다. 어느 누구나 나름대로 특별한 삶을 가지고 있듯이 나도 그렇다. 나의 수련 체험을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가톨릭의 열심한 신자였다고 한다. 약현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영성체를 하였다. 첫 영성체를 하자마자 명동성당에서 복사를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신부가 되고자 소신학교에 들어갔다. 소신학교(성신중고등하교), 대신학교(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그리고 부제 서품을 받았고 사제 서품을 눈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신학교를 나와야 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이었다. 젊음을 다 바쳤다.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되는 착하고 거룩한 사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는데…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려고 지금도 기도하지만 마음 속에 아직까지 한으로 쌓여 있다.
나를 쫓아낸 교회에 반발하듯이 나는 사회에 나와 이를 악물고 살았다. 미국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고 귀국 후 MBC 애드컴에서 기획실장, 마케팅전략 연구소장을 하였으며 1997년 대한민국 광고 유공인상을 받았다. 신학교를 나온 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다. 아내와 두 아들, 집, 땅도 주셨다. 이제 아들 둘 다 군대를 제대하고 올해 대학 졸업반이다. 건강하고 착하고 공부도 잘해서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나 신학생 때 가졌던 하느님의 그 부르심의 용솟음은 아직까지 내 마음 속에 있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의 행복감을 잊을 수가 없다. 피정도 가고, 기도회도 간다. 술도 마셔 보고 여행도 해본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마음속에는 큰 응어리로 남아 있다. 바로 이것을 풀어 보려는 것이 내관 수련을 결심하게 된 첫째 동기였다. 무엇보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를 찾으려고 하였다.
4. 내관 수련 일지
1) 수련 신청
2002년 7월 7일(일) 오전 10시 아시아나 항공으로 오사카를 향해 출발하였다. 오사카에서 내려 JR선을 타고 나라에 있는 '내관수련원'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수련신청서를 작성하였다. 주소와 성명, 나이를 적는 난이 있었고 혹시 수련기간 동안에 진행 요원들이 알아 두어야 할 건강 상태나 식사 준비에 알아 두어야 할 내용을 적는 난도 있었다. 내관 수련을 받고자 하는 목적과 그리고 동기를 묻는 난도 적었다. 누구를 통하여 내관을 알게 되거나 소개받았는지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관을 시작하기 전에 가족 사항이나 친구, 회사 동료 등 자신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다.
2) 수련 수칙
수련원장은 내관 수련 중 내관자(수련을 받는 사람)들이 꼭 준수해야 할 사항들이 적힌 종이를 주면서 하나하나씩 설명을 해주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곁들여서 설명을 해주었다.
① 내관 중에는 절대 침묵이다. 비록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동행한 친구들을 만나도 절대로 눈길조차 주어도 안 된다. 온전히 자신을 살피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외부와는 절대적 차단으로 법좌(병풍으로 쌓여진 주어진 공간)밖을 나올 수 있는 경우는 화장실이나 하루에 한 번 있는 목욕실 이용 밖에는 허용이 안 된다. 만일 이를 지킬 수 없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식사는 법좌 안에서 내관을 시행하면서 해야 한다. 식사 시간도 내관의 연속이어야 한다. 식사는 원장이나 혹은 내관 진행 요원들이 운반해 준다. 만일 음식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음식량에 대하여 건의 사항이 있으면 즉시 원장에게 알려야 한다.
② 내관의 자세는 벽을 향하고 앉아야 되지만 처음 수련자들에게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벽을 뒤로 하고 기댈 수 있다. 병풍을 마주보고 앉아도 된다. 어느 정도의 편안한 자세는 좋으나 그냥 누워서 잠자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단, 신체적 이유라면 내관 지도자와 상의해서 의자 혹은 침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내관 중 복장은 자유이며 아주 편한 옷이 좋다. 자세는 자유롭다. 선의 자세, 요가의 자세, 기도하는 자세, 두 팔을 높이 쳐든 자세 모두 허용되며 피로할 때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도 된다. 그러나 법좌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추울 때는 담요를 몸에 감아도 된다. 자유로운 자세로 몸의 피로를 풀어주어야 한다.
③일주일 간의 내관 중 하루 수십 분 간의 간단한 작업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청소하기, 그릇닦기, 풀 뽑기 등 몸을 움직임으로써 소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근육을 풀어줌으로써 피로를 회복할 수 있다.
④ 내관 중에는 TV, 라디오, 신문, 잡지, 전화, 편지 쓰기가 절대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외부와의 차단 속에서 오로지 내관에만 열중해야 한다. 술은 안 된다. 단, 담배는 금단 증상이 심한 내관자에게만 허용되지만 흡연실에서만 가능하다. 오히려 금단현상이 내관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⑤내관 중 메모를 한다거나 글을 쓰는 것은 허용이 안 된다. 단 최소한의 메모는 허용할 수 있으나 내관 집중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 분 일 초라도 아껴서 내관에 집중해야 한다.
⑥내관 수련비는 접수 창구에 접수해야 한다. (7만엔)
3) 수련 방법
① 먼저 병풍(1/4평 정도) 속에 들어가 평안한 자세로 쿠션 위에 앉아 긴장을 풀어야 한다. 쿠션은 두 가지 형태이다. 하나는 방석 형태이고 나머지 하나는 둥근 형태인데 허리받이용으로 사용한다. 방석 형태의 쿠션도 두 개가 있다. 겹쳐 앉아도 좋다.
②다음은 내관에 들어가야 한다. 먼저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깊게 영향을 미쳤던(미치고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중에서 어머니부터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혹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면 부모님 대신 은혜를 입었던 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아내 혹은 남편, 자녀들, 형제들, 친척들, 은사 은인들, 친구들, 이웃 사람들, 직장 상사, 동료, 부하 직원들 등 가장 영향을 입었던 사람들부터 시작한다. 본인이 내관에 들어가면 순서를 결정하게 된다. 만일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내관을 한다면 a.어머니로부터 나는 어떤 은혜를 받았나. b.내가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드렸나. c.나는 어머니에게 폐를 끼치거나 마음 상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나. 위의 세 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③ 자신을 살펴보되 연령별로 구분해야 한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음은 초등학고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사회생활 1년부터 3년까지… 현재까지 살펴보는 것이다. 기간을 구별할 때 내관에 들어가면 내관자 스스로가 년수를 자를 수 있다. 물론 내관 지도자와 면담 때 다음 내관 내용에 대해서 말하겠지만 스스로가 그 기간들을 알게 될 것이다. 삶에 있어서 어떤 묶음들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④ 만일 어머니에 대한 내관이 나의 연령별로 다 끝나면 다음은 아버지, 아내, 자녀들, 형제 등 순서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⑤ 통상적으로 1~2시간 내관 중 3~5분 정도의 내관 지도자와의 면담이 있다. 내관 지도자는 내관 병풍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 깊은 절을 한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두 손으로 병풍을 살며시(조심스럽게) 옆으로 밀고 내관자와 함께 또 절을 한다. 그때 내관자도 함께 두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 한다. 내관자와 면담이 이뤄진다. 주로 내관 지도자는 이번 시간에는 누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고등학교 시절에 어머니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고마움은…… 있고, 제가 어머니께 해드린 것은…… 입니다. 그리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것은 입니다. 라고 내관자는 내관한 내용을 말한다. 내관 지도자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은 대학 생활 동안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주십시오.한다. 역시 처음과 같이 서로 깊게 절을 하고 지도자는 병풍을 조용히 닫고 또 다시 한 번 깊게 절을 한다.
⑥이 밖에도 지도자는 이제까지 자라오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교육비를 포함해서 받은 양육비를 환산해 보도록 하기도 한다. 혹은 거짓말이나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있는지도 살펴보라고 한다. 혹은 이제까지 마신 술을 돈으로 환산해 보도록 하기도 한다.
⑦아침 5시에 잔잔한 기상 음악과 함께 일어난다. 지도자의 아침 인사가 흘러나온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늘은 7월 8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관에 정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관자는 일어나 각자 맡은 곳에 가서 청소를 해야 한다. 나는 수련장 방을 청소하는 것을 맡았다. 다른 사람들은 화장실, 복도, 마당 쓸기 등 수련 시작하기 전에 구역을 정해주었다.
청소 후 세면을 하고 5시 30분에 법좌에 앉아 내관에 들어간다. 6시에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는 창시자 요시모토 선생님의 내관에 대한 설명과 사례를 담은 녹음테이프가 나온다. 식사는 진행 요원이나 지도자가 병풍 앞으로 가져오면 병풍 속에서 식사를 하고 병풍 밖으로 내놓으면 가져간다. 7시에 첫 면담이 이뤄진다. 11시 30분에 점심식사를 하고 5시 30분에 저녁식사를 한다. 특이한 것은 꼭 더운 물로 20분간 목욕을 한다. 순번대로 하되 맨 마지막으로 목욕한 사람이 목욕실을 청소해야 한다. 다음 번 목욕할 사람을 위하여 말끔히 청소를 해야 한다. 피로를 풀기 위해서 꼭 목욕을 해야 한다. 저녁 9시에 취침 음악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
4) 수련 체험
①작은 병풍 속으로…
지정된 병풍 속으로 들어갔다. 책상다리로 앉으면 꽉 차는 공간이다. 사방에 병풍을 치는 이유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고 오로지 자신을 살피는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앞 옆이 다 막혀 있고 오직 고개를 위로 들면 천정만 보일 뿐이다. 1분도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후지하라 신부님은 이를 '마음의 암자'라고 하셨다. 이제부터 내관이 시작되는구나! 어떻게 일주일을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가 걱정이 앞섰다. 혹시 자신을 살펴 깨닫기는커녕 정신병자가 되어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과연 기대한 것만큼 효과가 있을까 의심이 가고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였다. 이곳은 신부님이 지도하는 것도 아니고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지도하는데 혹시 나의 신앙과 동떨어진 것은 아닌가! 몸이 비비꼬이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려고 노력해 보았다. 사실 항상 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두 눈을 뜨고 보기만 하고 살았다. 따지고 보면 하루에 外觀(외관)이 16시간인 셈이다. 이곳에 왔으니 반대로 內觀(내관)을 위하여 16시간 이상을 보내는 셈이 된다.
그동안의 나는 모든 판단을 보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저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지. 상대방의 결점, 건방짐, 불순한 태도, 나에게 해 끼침만 보고 판단하고 결정하였다. 나 자신을 정당화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음이 가라앉고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1/4평 규모의 이 병풍 속이 좁고 불안하기도 했는데 점점 더 넓어져 마침내 넓은 바다 속으로 변화여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헤엄쳐 가게 되었으니 이 병풍이 넓기도 넓었다.
이 속에 모든 것이 있었다. 내 삶이 있었고, 내 부모님이, 아내가 있고 자식들이 있고, 이제까지 함께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있었다. 기쁨과 슬픔이, 행복과 불행이, 감사와 저주가, 사랑과 미움이, 용서와 앙갚음이, 성공과 실패가, 참회와 거부가, 평화와 불안이 이 속에 있었다.
②내관 속으로…
나의 내관 순서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아내, 큰아들, 작은아들, 형제들, 작은삼촌, 고모들이었다. 사실은 일주일 동안 나의 삶 속에 함께 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내관하려고 했는데 식구들만 하기에도 너무 바빴다. 내관 시기는 우선 기억날 때부터 시작하여 초등학교 3학년까지,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시절(군대가기 전까지), 군 복무 기간, 제대 후 부제 서품까지, 사회에 나와서 미국 유학 가기까지, 유학 생활, 다시 귀국하여 IMF 명예퇴직 할 때까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때를 내관 기간으로 잡았다.
③내 용
내관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공개할 수는 없고 다만 몇 가지만 적어 보려고 한다. 나의 기억은 4살~5살 때부터인 것 같다. 부산 다대포로 피난을 갔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다. 나는 어머니 배 위에서 잠을 잤다. 피난 생활에 땔감이 어디 있었겠는가. 냉방에서 이불도 없이 자야하니까. 어머니는 나를 얼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몸빼(군대 모포로 만든 통바지) 속에 집어넣어 몸의 온기로 나를 재우셨다. 그 당시 아버지는 경찰관이셨다. 모자와 검은 안경, 옆에 권총, 그리고 지프차를 타시던 아버지는 나에게는 대단히 위대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집에는 가끔 오셨다.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나는 하루 종일 지프차를 지켜야 한다. 동네 아이들이 만지면 안 된다. 어떤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차가 너의 아버지 차냐? 그래 우리 아버지가 운전하고 왔단 말이야. 아니야, 이 차는 나라 차란 말아야. 그리고 마구 만지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주저 앉아 고함을 지르고 울었다.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떠 올라 나도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였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친척집 잔치에 데리고 가셨다. 한 참 걸었다. 아마 3~4시간 정도 걸은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부엌과 마당에 가득 있었다. 나는 그때 쌀밥을 처음 먹어본 것 같았다. 실컷 먹었다. 할머니께서 당신 밥을 더 덜어주셨다. 먹은 것은 좋았는데 집에 오는 길에 배탈이 나서 그냥 바지에 실례를 했다.
유학 생활 당시 일본 식당에 가서 웨이터를 했다. 그날 팁에 따라서 아내는 내 다리를 안마해 주었다. 10달러를 벌면 10분, 30달러를 벌면 30분이다. 크리스마스이브 때 팁을 80불 받았다. 그날은 반으로 잘라 40분 안마를 받았다.
모든 것이 다 감사였다. 특히 나는 아내에게 감사한다. 한 푼 두 푼 모아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면서 집도 샀다. 이 모두가 아내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 가장 가슴 아프게 해드린 것은 내가 사제가 못 된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이 기도하시며 희생하셨는데… 내관을 하면서 우리 식구들에게서 은혜는 많이 받았는데 해드린 것은 없고 오히려 마음만 아프게 괴롭혀드려 무척 가슴이 아팠다.
내관 수련은 마치 가톨릭의 고해성사와 같았다. 단, 사제가 고해를 듣고 교회와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죄하는 것만 빼놓고 방법은 같았다. 고해성사는 5가지의 필수 요소가 있다. 즉 성찰, 통회, 정개, 고해, 보속이다. 내관에서도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이뤄진다. 받은 은혜가 무엇이며, 내가 해드린 것이 무엇이며, 마음을 상해드린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피다 보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온다. 이는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며, 해드리지 못하고 폐를 끼친 통회의 눈물이기도 하다. 또한 변화의 눈물이기도 하다. 저절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심이 생긴다. 마음의 빛을 보게 된다. 갑자기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해서 생긴 상처가 없어지고 어두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밝음으로 가득 차 기쁨과 행복감이 이 몸을 가득 채운다. 저절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다른 사람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이 아름다움, 선함, 밝음을 보고 두 무릎을 꿇고 깊게 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선하심이요, 현실 세계 속의 하느님의 나라라고 믿는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약함을 겸손되이 고백할 때 시작된다고 믿는다. 내관은 마음을 비우고 성령께서 비추시는 그 빛 속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영성의 방법으로 생각한다. 지도자와 면담할 때 앞으로 자신의 삶의 변화가 어떻게 이뤄져야 되는지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지도자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한다. 마치 두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는 섬기는 자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④깨달음
되돌아 볼 때 너무 감격스러울 정도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까지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였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었다. 그러다보니 감사하는 마음도 없었다.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남을 위해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나를 위해서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마음 비움의 기초이며 용서를 위한 선행 조건이기 때문이다. 비움 속에 마음의 빛이 생기고 그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보답한 것은 별로 없다. 생각이 안 날 정도이다. 나는 이제까지 얻어먹고만 살았다. 앞으로는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폐를 끼치고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는 폐 끼친 것보다 보답하는 것이 더 많은 생활을 해야 하겠다.
⑤좌담회
내관이 끝나기 전 날 밤(12일,금) 내관자들과 지도자 그리고 진행 요원들과 함께 내관을 통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에는 우리 팀 외에도 3명의 소녀들과 1명의 숙녀가 자리를 함께하였다. 3명의 소녀들은 소위 말해서 비행 청소년이었다. 나이는 13~14살이다. 3명은 모두 학생이고 친구들이며 항상 어울린다. 학교에도 안 간다. 집에도 안 들어 간다. 물론 공부도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포기 상태이다.
그들은 내관 후 완전히 달라졌다. 부모들이 그들을 데리러 와서 얼굴을 보면서 놀라했다. 다른 아이들이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일시적인 변화인지 혹은 정말 태도를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상황으로 보아서는 이제 마음을 잡은 것은 틀림이 없어보였다. 부모에게 잘못했다고 포옹하면서 용서를 청하는 저 소녀들은 천사와 같았다. 깊숙한 곳에서 진정한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바로 고마움을 알게 된 것이 그들을 천사로 변하게 한 것 같다.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모든 사회악들이 없어질 것 같다. 성냄도 욕심도 미워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없어질 것 같다.
5. 일상내관
이제는 누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 내관의 세 가지를 생각한다. 저 사람한테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내가 보답한 것이 무엇인지, 가슴 아프게 한 것이 무엇인지. 이렇게 내 자신을 살피다 보면 밉고 속상한 마음이 모두 사라진다. 이 내관의 수행은 시작이다. 일주일간의 내관을 통해 달인이나 도사 혹은 성인군자가 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자신을 살피는 방법을 체험했을 뿐이다. 수시로 내관을 실시하는 것을 일상 내관이라고 한다.
6. 한국 내관학회의 발자취
-2002년 5월 1일 한국내관학회 발족, 회장 박영호 교수
발기인: 허근 신부(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 박영호 교수(가톨릭대학교), 홍유석 교수(대진대학 교) 이대운 상무(가톨릭출판사)
-2003년 5월 23일 ‘내적갈등과 심리치료’ 세미나 개최, 프레지던트 호델, 100 여명의 심리 및 상담 전문가 참석
-2003년 10월 12일 일본 요나고 내관학술발표회 참석
-2004년 5월 일본 고베 내관학회 참석
-2005년 11월 10일-13일 중국 상해 국제내관학술발표회 참석
-2006년 10월 20일 서울 가톨릭출판사 ‘심리요법으로서 내관’ 국제심포지엄 개최(일본, 중국, 국내, 심리 및 정신의학자 참석, 100 여명)
-2007년 5월 1일, 한국내관학회 회장으로 이대운 박사 추대
-2007년 9월 7일-11일, 중국 천수 국제내관심포지엄 참석
-2007년 10월 5일-6일 일본 오까야마 일본내관의학 및 국제내관요법학회에서 이대운 회장의
논문 발표: ‘내면아이의 치유를 위한 내관영성의 접근’
-그간 일본 푸지하라 신부님(오사까 교구 내관영성지도 전담)을 모시고 서울 분도회관에서 3 회에 걸쳐 성직자와 수도자, 상담자를 중심으로 집중내관수련 실시
-현재는 이대운 회장(인천 샤미나드의 집)의 지도로 내관수련 실시(심리상담전문가, 성 직자, 수도자, 신자)
7. 소개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University of Nebraska at Omaha와 Creighton University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시스템을 전공하였음, 미국 Mutual of Omaha Companies(보험그룹)에서 시장분석전문가,
서울 MBC 애드컴에서 기조실장, 마케팅전략연구소장, 가톨릭출판사 편집영업총괄상무,
미국 Minnesota Graduate School of Theology에서 상담심리학 박사학위 취득, 현재 인천부평에 위치한 샤미나드의 집(노인전문요양원)에서 상근 자원봉사로 심리상담의 일을 하고 있음, 한국내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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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원고는 2010년 10월 6일 까리타스수녀원(우물터)에 제출한 원고입니다. '왜 나는 내관수련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대충 내관을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와 사랑이 가슴에 전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