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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생님들, 명절은 잘 보내고 있으신가요?^^
앞전에 앞부분만 드렸던 [겨울새는 추위에 울지 않는다]는 에피소드를 잘라서 두 편으로 만들고 있고요,
다른 작품을 그보다 먼저 완성했어요. 동화 느낌의 소설인데 [신비한 문]을 먼저 썼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 작품을 좀 품평 받고 싶은데 선생님들께 어찌 연락할 방법이 없네요. ㅜㅜ
아니면 다다음 시간에 해도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배워가는 단계이니 부족한 점은 아주 날카롭게 지적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단편소설
신비한 문
구연경
모든 것이 지겨워져버린 한 중년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부인과 단 둘이 어느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랑스럽던 자식들은 모두 다 커서 더 이상 부모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늙고 뚱뚱하고 못생긴 데다 성질까지 고약해 함께 살기에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부인은 이 남자의 모든 습관들을 싫어했습니다. 남자가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바스락거리며 읽는 것도 싫어했고 매일 아침 커피를 끓여달라는 부탁도 귀찮아했습니다. 두 사람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부인과 헤어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 밥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그녀의 신경질을 참아내는 것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자는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 있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배에 몸을 싣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행을 떠나 혼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우울하고 쓸쓸했습니다. 붉은 빛을 토해내며 망망한 바다로 가라앉는 태양을 보니 왠지 인생의 활기를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한 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여행객들을 가득 실은 배는 설렘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남자는 더욱 자신이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연인들이 붉게 물든 석양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취해 키스를 나누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아득한 기억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지겨운 생활에 쪄들어 있어 행복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마녀 같은 부인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습니다. 젊은 부부 한 쌍이 어린 자식들의 손을 잡고 그의 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자식들이 그리웠습니다. 힘들게 키워주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언제부턴가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이 야속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자신도 결혼한 이후 부모님을 별로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평생 부인을 위해, 자식을 위해 헌신했지만 모든 것이 처음 꿈꾸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사랑도 허무하고, 가족도 허무하다는 생각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내 인생은 없었어.’
사방이 어둑어둑 해지고 배의 갑판 위에는 여기저기 불이 들어왔습니다. 객실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갑판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자 불꽃축제를 준비하는 행사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갑판으로 모여들었고 화려한 불꽃축제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배의 난간에 기댄 채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남자의 주위로도 행복감으로 상기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숫자를 세었습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드디어 축제의 불꽃이 터지며 오색찬란한 빛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환희의 함성을 지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불꽃축제는 갈수록 더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것은 천국 같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격정적인 감동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남자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 속에 묻혀 초라한 어깨를 늘어뜨린 자신의 모습을.
남자는 축제의 음악 속에서 춤을 추며 열광하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객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약한 일인용 침실로 들어가 황급히 문을 닫았습니다.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도 문을 잠갔습니다. 그리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바깥은 사람들의 열띤 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객실에는 아무도 없어 그는 마음 놓고 울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울음인지도 모른 채 그는 한참을 목 놓아 울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젖은 눈으로 객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객실은 비좁았고 컴컴했으며 자신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오로지 굳게 잠긴 창백한 회색의 문 밖에 없었습니다. 바깥의 소란은 꿈처럼 아득해져갔습니다. 이윽고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배가 침몰한다!!!”
남자는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갑자기 바깥은 격한 소동에 휩싸였습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어디론가 달려 나가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배는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남자는 공포감으로 온몸이 빳빳이 경직되었습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생각에 문으로 달려들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잠갔던 빗장까지 다 풀었는데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틈 아래로 물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이대로 죽는구나.’
남자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살려주세요!! 꺼내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물은 계속 차 오르고 온 몸을 부딪쳐 문을 열려던 남자는 어느 순간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남자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잔잔한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남자는 서서히 눈을 떴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어느 섬의 해변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긴 어디지?’
남자는 몸을 일으켜 섬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섬의 크기는 아주 작았고 사람이나 동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고요했고 바닷물은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였으며 나지막한 연둣빛 숲으로 가득 찬 섬의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로워보였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있는 곳에서 몇 걸음 앞에 회색의 문짝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열려고 애썼던 그가 탔던 배의 객실 문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어떤 특별한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암초에 부딪쳐 침몰한 것이 아닐까. 심하게 부딪친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자신이 저 문짝을 타고 여기까지 표류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허기가 몰려왔습니다. 남자는 먹을 것을 구하러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숲은 온갖 과실나무가 가득했고 손닿는 곳에 먹음직스런 열매들이 잔뜩 열려있었습니다. 그는 메론 만한 크기의 열매를 따서 뾰족한 돌로 단단한 껍질을 쪼개고 속을 파내어 먹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신선하고 달콤한 맛이었습니다. 그는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숲을 한 바퀴 돌아보니 이 섬이 무인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협적인 짐승들이 없다는 것은 안심이 되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어떻게 구조를 요청해야 할지, 만일 구조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무인도에서 살아가야 할지.
남자는 우선 밤이 오기 전에 나뭇가지와 돌로 오두막이라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부지런히 나무를 꺾고 돌을 모아 자그마한 집을 만들었습니다. 입구를 만들었지만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문이 필요해!’
남자는 자신과 함께 무인도의 해변으로 떠밀려 온 객실 문을 떠올렸습니다. 그 문이 튼튼하고 크기도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행운의 문이니 자신을 또 집으로 데려다 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그는 살짝 찌그러진 회색 문을 해변에서 오두막까지 끌고 왔습니다. 놀랍게도 그 문은 오두막의 입구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남자는 그것을 좋은 징조라 여겼습니다. 문을 완전히 고정한 뒤 남자는 흡족하게 오두막을 바라보았습니다. 불현 듯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괜스레 노크를 세 번 한 후 마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듯“여보!”하고 부르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앗!’
어찌 된 일인지 회색 문으로 들어선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과 함께 살던 방의 내부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방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그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이제야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기쁨에 차 소리쳤습니다.
“여보! 여보! 내가 돌아왔소!”
그런데 집안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나간 것 같았습니다. 거실로 나가보았습니다. 자신이 보던 신문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반가워 정겨운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아 신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신문 옆에는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습니다. 커피는 갓 끓인 듯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내가 끓여놓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익숙한 커피 향을 음미하며 정말 자신이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던 그는 테이블 위에 메모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들어 자세히 보니 아내의 글씨였습니다.
‘미안해요. 우리가 계속 이대로 함께 사는 것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인 것 같아요. 저는 떠나요.’
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허둥지둥 아내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다녀 보았습니다.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연락해 보았지만 아무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가 혹시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 불도 켜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든 삶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아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그의 머리는 덥수룩하게 자랐고 그의 수염이 온 얼굴을 뒤덮었습니다. 어느 날 어둡고 침침한 방안에서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힘없는 눈을 들어 자신의 앞에 비스듬히 서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은 아내가 있을 때보다 더욱 볼품없고 초라해졌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던가……. 못생기고 뚱뚱하고 성질마저 고약한 그녀가……. 난 왜 그녀와 결혼한 거지? 무엇에 이끌려서? 그는 거울 속에 보이는 추하게 늙은 자신의 얼굴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점점 그 질문은 울부짖음이 되어갔습니다. 난 왜 그녀를 사랑했던 거지!!! 그리고 난 왜 이렇게 추하게 변해버린 거야!!!
그의 울부짖음이 극에 달하자 갑자기 거울 속의 그의 모습이 강물처럼 일렁이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머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지고 검게 빛이 났으며 수염도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얼굴의 주름이 서서히 펴지며 광채가 흐르는 말끔한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청년은 남자의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청년의 눈빛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반짝였습니다. 헛것이 보이는구나……. 남자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을 날이 다가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울 속에 나타난 자신의 아름답던 청년시절의 모습을 보니 그는 뜨거운 감정에 사무쳐 손을 뻗어 그 모습을 어루만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손이 거울 너머로 쑥 통과했습니다. 이어서 그의 몸도 알 수 없는 빛에 이끌려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그는 다시 그가 표류했던 무인도의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앞에 펼쳐진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문득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그 신비한 문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문짝은 자신의 방에 있는 거울과 연결되어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들어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말끔하고 고운 청년 시절의 손이었습니다. 얼굴을 만져보았습니다. 주름이 사라진 얼굴은 매끈하고 탄력적이었습니다. 고여 있는 물에 얼굴을 비추어보니 과연 그는 청년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활력이 가득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왠지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무인도에서 다시 젊음을 누리며 새로운 삶을 일구어나가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한편 아무리 젊다 해도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그는 복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석양에 물든 해변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는 맨발로 하얀 모래를 밟으며 걸었습니다. 잔잔한 파도가 그의 발등을 타고 넘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불현 듯 타오르는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가 불타는 감정에 사무쳐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앞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다 먼 곳의 석양을 바라보며 해변에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잔잔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칼이 파르르 날리고 있었습니다. 석양이 너무 붉은 나머지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고 그녀의 모습은 검게 어둠이 서린 채 그림자처럼 아른거리기만 했습니다. 청년이 된 남자는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달려 나가 그녀를 껴안으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주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한발 한발 가까워지자 그녀의 옆모습이 보였습니다. 가녀린 몸을 하고 슬픔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그녀는, 아! 그녀는 자신의 아내였습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와 아내는 타국의 한적한 해변에서 그렇게 운명처럼 만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시간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음을 그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가까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때 그는 그녀가 이미 한참을 울고 난 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눈물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이미 몹시 사랑했기에 그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그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다시 먼 바다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저는 이제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모든 사랑은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다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속지 않기로 했어요. 저는 영원히 혼자 살아갈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변하지 않는 사랑도 있어요. 그렇지 않은 사랑도 있다는 걸 제가 보여드릴게요. 마지막으로 저를 한 번 믿어보세요!”
그는 그녀와 함께 말없이 한참 동안 해변을 걸었습니다. 어느덧 그는 그녀를 신비의 문 앞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금이 시작이에요!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는 눈빛을 보이다 결심한 듯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신비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그녀와 함께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그는 긴장된 마음으로 거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서서히 그의 모습이 시야에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는 다시 주름진 얼굴의 중년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달랐습니다. 그의 눈빛과 마음은 청년의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그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습니다. 그의 아내가 뒷모습을 보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반가움에 소리쳤습니다.
“돌아왔군요, 여보!”
그녀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녀의 앞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움직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착각하지 말아요. 얼마 전부터 당신이 외투의 옷깃이 떨어진 채 입고 다니던 게 생각났어요. 이걸 계속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욕하겠어요. 게을러터진 여자라고! 몇 가지 일만 정리하고 난 다시 떠날 거예요. 내가 무얼 하든 상관하지 말아요.”
“내 곁에 있어주면 안되겠소? 난 예전의 내가 아니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약속을 기억하오? 변치 않는 사랑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한 말?”
그녀는 그 말을 듣자 바느질을 멈추고 경멸스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 말 따위는 처음부터 믿지도 않았어요. 난 이제 당신한테서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않으니까 이제 그만 날 내버려둬요. 변치 않는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줘요. 나를 잡지 말라구요!”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살찐 턱선이 더욱 일그러졌습니다.
“여보,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제발 내 눈을 한 번이라도 쳐다 봐줘요.”
그녀는 참지 못해 소리쳤습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이렇게 뚱보가 되어버렸는데? 얼굴은 마녀처럼 일그러졌는데? 영원한 사랑?! 웃기고 있네! 난 당신 외투의 이 찢어진 옷깃 같은 존재일 뿐이야! 입을 만큼 입어서 닳아빠지고 찢어지고 이제는 아무리 꿰매어도 예전 같을 수 없는 이 초라한 옷깃 같은 거라구! 제발 내가 떠나도록 내버려둬!”
그녀는 집어던진 남자의 외투를 다시 집어 들고 앉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거친 태도로 바느질을 계속하였습니다. 어서 그 일을 마치고 떠나려는 듯이.
“그래요. 떠나도 좋소. 대신 나도 함께 갑시다. 우리 배를 타고 석양을 바라보면서 처음 만났던 그곳으로 가요. 그러면 생각이 날 거예요. 내가 진심이었다는 것이.”
이제 그녀는 아예 그의 말을 듣지 않는 듯 자신의 일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손놀림은 더욱 거칠고 빨라졌습니다.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감정에 복받치는 듯이.
“앗!”
그녀는 그만 바늘로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선홍색 피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독기로 가득 차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가락을 입속으로 가져가 물었습니다. 그가 놀라 다가와 그녀를 보살피려 했으나 그녀는 뿌리치며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구제불능이야!”
남자는 깊은 절망감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깊이 탄식했습니다.
“맞소. 난, 구제불능이오. 내가 당신을 망쳐버린 것이오. 나의 무리한 사업으로 큰 빚을 떠안게 했고 당신을 남의 집 현관바닥을 닦게 하고 우리의 아이들이 우는 동안 다른 집 아이의 기저귀를 갈게 했소. 아이들을 키워내는 동안 난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 아이들이 커서 나가자 당신은 외로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하염없이 먹기만 했고 당신은 변하게 되었지. 나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당신을 두고 난 바람을 피우고 말았소. 내가 당신을 망쳐버린 것이오……. 그래도 우리 자식도 결국 다 키워냈고 이렇게 아직도 함께 살고 있잖소. 우린 해낸 거요. 이제 앞으로 다시 행복을 되찾으면 돼요. 여보, 나도 그때는 너무, 힘들었소. 나를 이해해줄 수 없겠소? 구제불능인 나를? 가엾은 나를? 우리 처음을 생각해 보면 안 되겠소? 행복했던 날들을.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우리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오.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배려하진 못했지만 그보다 더한 인생의 고난들을 함께 극복해 왔잖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서로를 배신한 적이 없소. 우리는 단지 지쳐있었을 뿐이야.”
어느새 바느질을 멈춘 여인의 무릎에는 남자의 외투가 가지런히 접혀 있었습니다. 다 꿰매어진 외투의 옷깃 위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져 번지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간청했습니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소. 어쩌면 지금이 시작일지 몰라요. 나와 다시 시작해 보지 않겠소?”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있는 그에게 그녀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다시는 놓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함께 석양을 바라보는 중년의 부부는 아름다웠습니다.
해가 지자 그들의 머리 위로 영원한 사랑을 축복하는 오색찬란한 별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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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경씨! 지치지 않는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직 젊은 새댁이 노년의 부부가 느낄 것 같은 감정을 이렇게 생각해 내니 놀랍다는 생각을 합니다. 화이팅 입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써 놓고 나서 요즘의 문학 작품들을 보니 제가 정말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뭣이든 쓰고 지적을 받고 나면 다른 문학작품들도 더 눈에 잘 들어오더라고요. 어쩌면 모르면 용감하다는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