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갓집은 영주시 가흥동 일명 아지골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단산행 버스를 타고 아랫기내를 지나고 웃기내를 지나 백사장이 아름다운 냇가 다리를 지나면 뒷산을 등지고 몇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방학이 되면 나는 엄마와 함께 영화속 한장면같이 멋진 포플러 나무가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는 곳에서 버스를 내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은채 총알같이 외갓집 사립문을 열고 외가집 마당으로 뛰어들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무렵엔가 처음으로 동생들과 나만 외갓집을 다니러 간적이 있었는데 버스를 내릴때 버스안내양에게 내린다고 소리치는 것이 부끄러워 그 먼길을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용기없는 언니를 둔 죄로 초딩 저학년이던 동생들은 덕분에 다리 부리질 뻔 했다.
외가에는 나보다 나이가 여섯살 많은 이모가 있었다. 그때 이모는 한참 꿈많던 여고생이었는데 내게는 하늘같은 존재였었다. 들일 하시는 할머니를 대신해 가마솥에 저녁짓고(그것도 능숙하게) 반찬도 뚝딱하고 밥 먹은 설거지는 당연히 이모가 했다.
내게 이모는 어른이었으므로 이 모든 일들이 당연하게 생각되어졌고 이모의 고생은 안중에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모는 그저 꿈많은 그것도 십대인 소녀였을 뿐이였던 것을....
그런 이모가 저녁 설거지후에 부엌을 살그머니 빠져나가면 방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문 닫는 소리만 기다리던 나는 얼른 문을 열고 신발을 찾았다.
나 몰래 마실가려던 이모는 언제나 내게 꼼짝없이 들키는 신세가 되었다. 나를 데려가지 않으려는 이모와 따라가려는 나의 실랑이는 언제나 나의 승리로 끝이나고 우리는 사이좋게 이모친구들이 모였는 어느집 방안에 모여서...화투를 쳤다.
내기에서 진팀의 벌칙은 언제나 같았다. 김치 훔쳐오기.. 이모팀이 졌을때 나도 몇번 따라다녔는데 캄캄한 밤에 남의 집 장독 열던 그 스릴은 잊을 수 없다.
얼음이 서걱서걱한 김장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맨입에 먹던 김치맛은 꿀맛이었다. 냉기도는 겨울밤을 입김 내뿜으며 집으로 돌아올때면 태산보다 더 든든한 여섯살 많은 이모가 있어 무섭지 않았다.
하늘의 별들은 찬공기 때문인지 더욱 차갑고 영롱하게 빛났었다. 앞산 근처에 떠있던 휘영청 밝은 달은 우리를 외가집 앞마당까지 고이고이 바래다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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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외가집은 내 마음속에만 있다. 외할머니가 오지게 춥던 그 겨울 자식들 오면 줄 참기름짜러 가신다면 나가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그 이태후쯤 할머리를 그리워하시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셨다.
어쩌다 영주가는 길 외갓집 가는 그 길을 지나노라면 그 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가슴으로는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추억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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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예 나어릴적 모습이 보이는듯 조은글 잘보앗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