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의류는 기본적으로 보온을 위한 장비다. 그러나 등산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 그 결과 생기는 땀 생각도 해야 한다. 따라서 의류를 마련하고 사용할 때는 이 두가지를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한다.
보온과 땀배출의 묘는 무슨 옷이어야 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운용의 문제다. 그 비결에 레이어시스템(layer system)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적절하게 껴입고 벗기'쯤 되겠다.
웃옷의 껴입는 순서는 반팔티셔츠, 긴팔남방셔츠, 바람이 불어 체온을 빼앗길 때는 윈드재킷(wind jacket)이라는 이름의 바람옷을 입고, 추위를 느끼면 바람옷 대신 스웨터나 폴라플러스 저고리로 갈아입는다. 봄 여름 가을에는 이 이상의 옷을 입을 경우가 별로 없다. 그래도 춥다면 바람옷을 덧입으면 된다. 스웨터는 여름이라도 비상용으로 넣어 다니는 것이 좋다.
'껴입고 벗기'의 요체는 산행중 땀을 흘리지도, 추위를 느끼지도 않는데 있다. 이는 가장 합리적인 에너지관리 방법이기도 하는 바, 땀을 흘림은 에너지를 낭비한 것이고 추위를 느낌은 에너지의 보존이나 보충을 소홀히 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봄 가을이라면 아침에 기온이 낮아 네 옷 중 세가지쯤 입고 집을 나서게 마련이다. 그러나 산행이 시작되면 이내 몸이 더워진다. 그러면 재빨리 겉옷을 벗어 배낭속에 넣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비싼 고어텍스 바람옷 벗기를 주저하는 이는, "저 사람에게는 청소부들이 입는 노란 비옷이 딱 알맞겠다"고 사람들이 빈정거려도 할 말이 없다.
올라갈수록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므로 체온은 다시 높아지게 된다. 이때는 2단계로 남방셔츠의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어붙인다. 이윽고 최후의 보루인 반팔티셔츠에 이르면 한번쯤 쉬어 체온을 내리거나 남자라면 배꼽을 드러낼 일이다.
'최후의 보루'는 런닝셔츠 아닌 티셔츠라야 한다. 런닝셔츠를 입었을 경우에 점잖은 분이라면 남방셔츠가 마지노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등산인은 자식들의 옷장을 엿보거나 시장 노점을 기웃거려 볼 필요가 있다.
남방셔츠는 일반적으로 순면제품이 좋다. 늦가을이나 겨울에는 천만 모직으로 바꾸는데, 구입해야 될 경우에는 시장에서 사 입는 것이 경제적이다. 다른 장비는 등산장비점에서 사야 하나 의류만큼은 유명회사의 제품을 구할 필요가 없다.
전문산악회에서 신입회원들에게 정석이라고 가르치는 바지는 '버리려고 하는 아버지의 모직 양복바지'다. 여름에는 물론 면바지가 된다. 그러나 뭔 모른 신입회원이 청바지를 입고 온다면 그날 그의 뺨은 제것이 아니다.
청바지는 산행에 있어 가장 부적합한 옷이라고 알려져 있다. 요즘 제품은 꼭 그렇지 않지만 청바지는 일반적으로 몸에 꼭 끼어서 활동하기 불편하고 보온성이 없으며 비를 맞으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르면 전통 있는 산악회에서 왜 '아버지 모직바지'를 으뜸으로 내세우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활동성만 보고 골덴바지를 즐겨 입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보온성이 좋지 않다. 니커바지라고 불리는 니커보커즈 즉 중동바지는 여름용과 겨울용을 구별해서 입어야 한다.
이 밖의 바지에는 반바지가 있다. 이는 활동성에서 따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바람이 살랑대는 초원길을 갈 때는 환상적인 기분에 젖게 한다. 그렇지만 잡목숲을 지날 때는 다리가 낙서판이 되므로 앞길을 잘 판단하여 입을 일이다.
반바지는 부피가 작으므로 웬만하면 배낭 한구석에 넣어 둠직하다. 긴바지가 터졌을 때의 예비용으로도 의의가 있다.
바른 등산인들이 청바지와 함께 꺼리는 것은 스타킹을 바지 위로 올리는 짓이다. 원래 초보의 등산인들이 관록있는 등산인들의 중동바지 스타킹을 보고 흉내내었을 이 패션(?)은 아무 효용도 없는 과시적 꼴불견일 따름이다.
스타킹은 클레터슈즈의 딱딱함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바짓가랑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정석이며 밖으로 내놀 하등의 이유가 없다.
스타킹을 내놓으면 신에 흙이 들어가기 쉽고 나뭇가지에 걸려 성긴 올이 터지기에 알맞다. 보온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바위 등에 정강이가 부딪쳤을 때 완충도 덜된다.
산에 갈 때 빠뜨리기 쉬운 것이 모자다. 봄 가을이라면 민방위모자나 예비군모자도 무방하지만 여름에는 채양이 넓고 둥글며 땀흡수가 좋은 면제품이 좋다. 이런 것은 수건 대용으로도 가능하고 배낭에 넣어도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다.
배꼽드러내기를 해야 할 정도로 더울 때는 모자를 벗어 넣고 독립군처럼 이마를 스카프로 동여매면 좋다. 머리의 열 발산이 잘 되고 스카프가 땀을 차단해 눈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해 준다. 겨울이 아닐 때 장갑은 섬섬옥수의 규수들 외에는 필요가 없다.
여름이라면 우비를 가져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넓은 등산로에서는 우산을 써도 되나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나 바람 센 능선, 암릉 등에서는 우산이 무용지물이 된다. 이럴 때를 대비해 비옷이나 판초를 준비하는데 방수성의 이런 것은 옷을 한두 개쯤 벗고 입어야 땀으로 젖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판초 아닌 비옷의 경우에는 배낭이 젖지 않도록 배낭커버나 방수비닐도 있어야 한다.
겨울장비인 덧장갑, 덧바지, 내복, 파카, 목도리, 행전(스패츠)는 눈이나 추위가 예상될 때만 가져간다. 그러나 목도리와 스패츠는 예외적으로 이른 봄과 늦가을의 필수품으로 분류해 두는 것이 좋다. 부피와 무게가 작아 넣은지 안 넣은지 모를 정도인 데다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기 때문이다.
추운 날 목도리는 옷 한벌값을 한다. 털실로 짠 귀가리개로 대용할수도 있는데 이때는 그만큼 쓰임새가 다양하다. 그리고 행전은 때아닌 눈이 내렸을 때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