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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바람 부는 날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5반
편소정
초저녁이 지나가고 막 어둠이 시작되려던 무렵이었다. 폭격 소리가 천공을 갈랐다. ‘아주 먼데서 울리고 있어, 괜찮아‘ 몇 번이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폭격 소리는 황소바람이 황무지로 돌진해오듯 세상을 쾅쾅 미친 듯 내달렸다. 하늘과 땅이 맞붙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오직 굉음만이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모두가 그 맞붙는 굉음에 눌려 질식해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때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이불을 두른 채 떨었다. 엄마는 내 귀를 막아주었지만 엄마의 손 역시 작게 떨고 있었다.
몇 번 인민군과 국군이 이 산을 넘나들었다. 아직 커다란 피해는 없었지만, 곧 쳐들어올 게 분명하다며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들과 좀 더 떨어져 산 속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그 소식을 늦게 알았지만……. 한번은 우리 집이 있는 중턱 아래에서 작은 전투가 있었다. 그때는 여름이었는데 총알 날아다니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영숙이네 말로는 솜이 총알을 못 뚫고 들어오게 한다고 엄마한테 그랬단다. 그래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솜이불을 세 겹이나 덥고 땀을 수십 바가지는 흘려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오빠가 있어서 든든했다. 따닥따닥 하다가도 휭하고 바람을 가르는 총알들의 소리가 내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오빠는 나와 같이 이불 밑 방바닥에 배를 깔고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도 될 수 있는 한 오빠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래도 들려오는 총소리에 오빠의 재미난 이야기란 하나도 재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오빠가 옆에 있다는 것은 적이 안심되는 일이었다.
잠시 소리가 멎는 듯해서 문을 살짝 열어보니 앞산의 하늘 아래가 여전히 천둥치듯 번쩍번쩍 하는 게 보였다. 국군에 끌려 나간 오빠 생각을 하니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곧 나는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버선도 두개나 신었다. 금방이라도 군인들이 이 마을로 내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잠잠해진 어둑한 밤에도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좀 가라앉은 나는 버선 하나를 벗었다. 그리고는 소에게 여물을 주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강원도 산골의 밤은 칠흑 같았지만 달이 떠있었기에 희미한 빛은 있었다. 그런데 달빛이 내리쬐는 곳에 누군가 서성이고 있었다. 양 어깨 위의 뻘건 표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 표식! 나는 그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았다. 앞산에서 굴러다니다 왔는지 시커멓고 지저분한 인민군 하나가 문 앞에서 달달 떨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발을 헛디뎌 몸을 휘청거렸다.
“밥 좀…….”
나는 소리도 못 지르고 휙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금이 빳빳했다.
“엄마, 엄마. 밖에 인민군이 우리 집에 들어올라 해.”
“뭐?”
“밥 달래. 근데 총은 안 들고 있어.”
엄마는 나를 방에 두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좀 있다가 재빨리 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찌나 불안했던지 나는 손이 달달 떨렸고,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는 엄마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엄마는 달달 떠는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오빠가 전쟁터에 나간 뒤로 인민군이라면 치를 떠는 엄마가 집안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려하다니…….
“어방치기 하셨겠지마는 내 걸리면 죽슴네다. 해종일 숨어있었는데 오데 밥이 있어야지요. 그래두 이 에미나이가 나와서…….”
한 겨울이라 우리 먹을 것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수북이 가져왔다. 형편없는 감자와 깨작깨작 부스러진 꽁보리밥, 시뻘건 양념이 덕지덕지 베어있는 김치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우리 오빠도 전쟁터에 끌려 나갔다. 엄마는 오빠 생각이 나서 이러는 게 분명하다. 그는 얼마나 굶었는지 쉴 틈 없이 입으로 다 넣었다. 중간 중간 식량 공급이 끊긴 이야기도 하며, 또다시 우적우적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소리로 오직 밥그릇을 응시하며 퍼 넣기 바빴다. 그가 밥그릇을 다 비워갈 때쯤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 소 여물을 줬다. 줄 여물조차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아침 좀 넘어서와 밤에 조금씩 나눠서 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방에 들어오자 그는 그릇을 다 비우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다. 나는 밥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우리 색시도 여물 끓이고 있을기요.”
“색시도 있어?”
“장가 가자마자 이렇게 끌려왔슴네다.”
“저런, 우리 아들도 끌려 나갔어.”
“아버지는 안계시소? 아주매를 보니까는 어머니 생각이 나네. 우리 어머니도 혼자시라요.”
“이제 어쩔 생각인가? 도망친건가? 어데로 갈텐가?”
“모르겠시오. 나만 살아남았소. 여기 남쪽 군인들이 다 깔려있어서 내래 북쪽으로 올라갈 일이 막막하오. 아주매, 나를 좀 숨겨 주시면 안되겠시오? 내 오래는 안 있을거라요. 제발 좀 살려주시라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도 자식 가진 부모인데, 내 아들을 생각해서 어떻게 내치겠어.”
엄마는 오빠의 무명옷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는 몇 번이나 절을 하며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작은방으로 안내했다. 원래 오빠가 쓰던 방이다. 언제고 오빠가 다시 올 것 같아서 매일 쓸고 닦았다. 그 방에 인민군을 재운다는 것이 느낌이 이상하긴 했다. 한밤중이었지만 큰방에서 작은 방까지 걸어가는 몇 초 안되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총대를 들이밀고 군인들이 우리를 겨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큰방으로 돌아와서 나는 엄마 품에 안겼다. 저녁이 시작되던 쯤에 그 난리가 있었는데 바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했다. 나는 이부자리에 누워 엄마 팔에 머리를 묻었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오빠 방에 인민군이 있다. 어쩌면 그는 우리 오빠에게 총대를 겨눈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수류탄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자꾸 느낌이 이상했다.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심심하면 내 머리를 쥐어박고 볼을 꼬집는 오빠가 보고 싶었다. 계곡 찾아서 오빠 친구들하고 저 멀리까지 갔던 일, 오빠 학교 쫓아가다 혼난 일. 그날 밤은 오빠 생각으로 아주 늦게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를 작은 방에서 재우고난 다음날 아침이었다. 동이 터오고 새벽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나는 어슴푸레 잠에서 깼다. 푸르스름한 새벽문밖의 낌새가 이상한 걸 알아차린 엄마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문으로 나간 엄마는 잠시 뒤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누군가 문밖에서 소리쳤다.
“누구 계십니까?”
엄마는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한무리의 국군들이 서 있었다. 나는 어젯밤처럼 또다시 굳어버렸다.
“혹시 간밤에 빨갱이 새끼들 보지 못하셨습니까? 다 뒈지고 몇몇 새끼들이 도망쳤습니다.”
“인민군이 무슨 낯짝으로 이 집에 들어오겠습니까? 알고 들어오던, 모르고 들어오던 우리 아들이 국군으로 전쟁터에 끌려나가있는데 ……. 오면 곧바로 신고해버리겠습니다. 근데 고생이 많소, 물이라도 한 대접 드릴까? 살림살이가 변변치 못해서,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는데 뭐 대접할 것도 없고.”
“괜찮습니다. 잠깐 집안을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어이, 저 방부터 살펴봐.”
그들은 엄마의 말을 믿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는듯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지만 내색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도 떳떳하다는 듯이 손수 방문을 모두 열어젖혔다.
“아니 왜 사람 말을 안 듣는대? 군화 좀 벗고 들어가요. 아니다 됐다, 됐어. 이보게, 그 이불을 뭣 하러 들쑤시나? 거기에 사람이 납작하게 접혀 들어가기라도 한단 말이야? 그래 다 봐도 좋은데 좀 쓸데없는 건 건드리지 마요. 안 그래도 치우기 힘들어 죽겠소. 어이 거참, 방문 다 부셔버리겠네.”
엄마는 일부러 조잡스러운 말들을 내던졌다. 나는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은 이것저것 조사했다. 이불을 들쳐보기도 하고 발로 이리저리 차기도 했다. 그때 군인 하나가 작은방 문을 열었다. 작은방 문이 열릴 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 그가 누워있던 이부자리도 깨끗이 개어 있었다. 그는 어디 있는 것일까? 그들은 대충 방만 들쑤시고 나갔다. 의심할게 없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부하들이 여기도 없다 저기도 없다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시끄럽게 굴자 그들의 우두머리가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모두 지쳐보였다.
그들이 다시 집밖으로 나갔을 무렵, 나는 엄마에게 그 사람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엄마는 말없이 부엌으로 가서 감자를 담은 포대와 쌀 포대를 큰 항아리 위에서 내렸다. 항아리 뚜껑을 열자 구겨져 있는 듯한 우스운 모양새로 그가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원래 쌀독인데 엄마가 그를 숨기느라 자루에 얼마 없는 보리쌀을 옮긴 모양이었다. 어째서 여기 있는 걸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무쪼록 다행이었다. 나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자기가 죽었다고 확신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던 그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나와 엄마를 보자 고비를 넘겼다는 듯이 따라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놓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자 왠지 측은하게 느껴졌다. 우리 오빠도 어디서 저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엄마는 평소처럼 나를 둔 채 장터로 나가야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는 눈치를 채고는 걱정 말라며 나를 잘 돌보겠다고 했다. 그는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았다. 아주매, 아주매하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오빠가 없었던 그동안은 엄마가 장에 나가서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있어야 했다. 놀 또래도 없었다. 워낙 첩첩 산중이고 그나마 가까운 이웃집도 따지고 보면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있으니까 입은 안 심심할 것 같았다. 순간 이 생각이 당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엄마가 나가고 나자 그는 작은 방으로 손짓을 했다. 나는 망설였다. 그 사람이 싫은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우리 오빠처럼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곧 호기심 반, 괜한 두려움 반으로 따라 들어갔다.
“너 나이가 몇이네?”
“아홉 살이에요.”
그는 이리저리 방을 훑어보더니 벽에 붙어있는 누리끼리한 흑백의 사진을 가리켰다.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큰 맘 먹고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오빠는 교복을 입고 찍었는데 아주 맵시가 좋게 나온 사진이었다. 그래서 나도 볼 때마다 자랑하고 싶어지는 사진이었다.
“느 오라버니 맞지?”
나는 순간 망설여졌다. 저 사람에게 우리 오빠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말을 계속 했다. 우리 오빠가 아주 훤칠하니 잘생겼단다. 명줄도 아주 길어 보이니 걱정 말라고 하기에, 나는 씩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학교는?”
“전쟁 중이라 학교는 아직. 근데요, 우리 오빠 오면 나 꼭 학교 보내줄거에요.”
“내가 한글 좀만 가르쳐줄까?”
“글자 알아요?”
“이 콩알만 한 에미나이 좀 보게. 내래 고등중학교까지 나왔는걸.”
“나이가 몇이에요?”
“스물 하나야. 네 뭐 공책 없어?”
나는 오빠의 책들을 뒤적이다가 대충 지저분한 공책을 들고 왔다. 그리고 오빠가 아끼는 연필들도 두개 가져왔다.
“네 오라버니꺼를 이렇게 막 써도 되간?”
“상관없어요. 우리 오빠는 괜찮다고 할 거예요.”
그는 내 볼을 꼬집더니 공책의 깨끗한 면을 폈다. 그리고는 가나다라를 적어 내려갔다. 순간 그 사람이 볼을 꼬집었을 때 그가 오빠처럼 느껴졌다. 그부터 나는 무슨 배짱인지 곤두서있던 신경이 누그러졌다. 마침내 그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다 적고나서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니 이름이 뭐야?”
“김영옥이래요.”
또박또박 공책에 ‘김영옥‘을 쓴 뒤 그는 내게 말했다.
“이게 니 이름이야. 다른 건 몰라도 네 이름 석자는 쓸 줄 알아야해.”
나는 그렇게 그에게 조금씩 내 이름자를 배웠다. 당장 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국민학교를 가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김영옥, 처음으로 써보는 글자였다. 이렇게 생긴 게 내 이름자라니. 삐뚤빼뚤 형편없었지만 나는 우쭐했다. 그날 저녁 그에게 감자 몇 알을 가져다주고 나서, 고작 세 개의 글자지만 내 이름 쓰는 모습을 엄마 앞에서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엄마는 걱정이 됬는지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나는 그 사람이 착한 것 같고, 오빠의 친구들처럼 좀 친해질 것 같다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듣자, 엄마는 하루 종일 그 사람과 놀게 맡겨둬도 괜찮다고 마음을 조금이나마 놓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숨어있는 처지였고, 무엇보다도 생긴 것부터가 내가 가져다준 감자처럼 더없이 착해 보였다. 나는 감자 하나를 집어 기분 좋게 베어 물었다.
다음날도 나는 오빠의 공책을 끼고 그 사람에게 글자를 배웠다. 어제보다는 그 사람이 편해졌다. 기억, 니은, 디귿 외우는 것보다도 우리는 떠드는 게 더 많았다. 나는 이 사람이 이야기를 하나씩 해줄 때마다 점점 우리 오빠처럼 좋아졌다. 그는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천년 묵은 여우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해주었다. 그 여우를 구미호라고 하는데 무덤가에서 간을 찾아 먹는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할머니한테서 들은 것도 같지만 하여튼 나는 무서웠다. 무섭지 않은 척 점잔을 빼보기도 했지만 다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겁에 질려 하는 모습을 꽤나 재밌어 하는 것 같았다. 천년 묵은 여우 이야기가 시들해질 무렵 뜸을 들이더니 그가 말했다.
“야, 콩알. 근데 여긴 감나무가 없나?”
“저쪽으로 내려가면 많아요. 왜요? 한겨울이라 감은 벌써 다 떨어졌잖아요.”
“우리 집엔 아다모끼로 생긴 감나무가 있어.”
“아다모끼가 뭐래요?”
“그것도 모르나, 콩알? 고저 막 생겼다, 이거 아니야. 마구잡이도 모르나.”
“그래서요?”
“고게 어떻게 생겨먹었냐면은, 큰 가지가 두 개 뿐이 없어. 이상하지? 내도 몰라. 내 나기 전부터 있었거든.”
“왜 갑자기 감나무 얘기래요?”
“콩알, 왜 말이 많어. 어제 느 엄마가 추운데 마루에 나와서 눈을 못 붙이더래. 그래서 내가 방문을 조금 열어놓구서 아주매 왜 그래요, 이랬어. 느그 오빠가 많이 보고 싶은 모양이야. 그거를 보니깐 우리 엄마 생각이 나잖아. 우리 각시랑 그 감나무에 빌고 있을 기야. 내 살아 돌아오라고 말야. 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는 또 다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야, 콩알 너 그럼 눈꽃바람은 아니?”
“그건 또 뭐에요?”
“내가 좋아하는 날이야. 바람이 잔잔히 불고 눈꽃이 날리는 날. 예쁘지않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침내 나는 궁금해 하던 것이 번뜩 생각났다.
“집이 여기서 멀어요?”
“많이 멀지는 않어. 끝자락이긴 하지만 내나 나도 강원도인걸. 근데 쉽게 갈 수가 없어.”
가깝지만 쉽게 갈 수가 없다는 말을 꺼내면서 목이 메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오빠를 생각했다. 우리 오빠도 가까운 곳에 있는 게 아닐까. 쉽게 올 수가 없어서 조금 늦는 것일까. 나는 연필 뒤꽁무니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내셨다.
“이렇게 눌러 붙어 있는 것도 도리가 아닌데…….”
그 다음날 그는 아침밥을 먹고 떠났다. 떠나기 전 큰 절을 하고 이름과 주소를 남겼다.
“전쟁이 끝나게 되며는 이 은혜 꼭 갚을기야요. 내 이름도 적어놨어요. 김만식. 그때 이리로 오시 라요. 내 어머니를 시켜 서리 한 상 차리라고 할끼요. 참말로 고맙슴네다. 아가, 콩알 아가도 잘 있으라. 나중에 키도 크고 글자도 다 배워서 네 엄마랑 놀러오라. 알간?”
나는 살며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 속은 섭섭함으로 말이 아니었다. 조만간 갈 줄은 알았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어제 간다고 말이라도 해주었다면 덜 섭섭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산 하나 제대로 못 건네고 벙어리처럼 서있었다. 물론 우리 오빠가 아니고 인민군이었지만, 오빠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채워준 사람이었다. 그는 내 볼을 살짝 쓰다듬고는 인사했다. 엄마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그래 꼭 만나자. 조심히 잘 가야해. 건강히, 그저 건강히 집으로 꼭 돌아가라. 내 꼭 찾아 가 한 상 얻어먹어 볼란다.”
그의 두 손을 꽉 쥐어보는 엄마의 손길에, 그는 방긋 웃으면서 집밖을 나섰다. 날은 많이 풀려있었다. 그가 가르쳐준 눈꽃바람처럼 포근하진 않았지만 눈이 날리고 있었다. 내리는 눈 속에서 그는 흰 눈을 뽀드득 밟으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를 처음 본 날 만큼이나 떨리는 심정으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이지 않을 때쯤 엄마와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 손에는 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를 곱게 접어들고, 다른 손으로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괜히 잡아당겼다. 그 사람이 간 게 나한테는 얼마나 서운한 일인지 엄마는 모를 것이다. 사실 몇 번씩 나는 그 사람에게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오빠 친구들한테도 윤식이 오빠, 철형이 오빠 이렇게 쉽게 불렀는데, 왜 이번만은 그렇게 쉽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뒤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그 짧은 시간에 정이라는 게 확실히 들었나보다. 한동안 보고 싶은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기를 아다모끼로 생긴 감나무 대신에 대추나무 아래서 기도했다. 그리고 또 이제 더 이상 오빠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기를 빌었다.
마침내 우리 오빠가 돌아온 것은 대추나무에 잎들이 제법 솟아나려고 하는 늦겨울에서 초봄쯤이었다. 물론 오빠는 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를 끝내고 온 것이라, 아주 멀쩡히 돌아왔다고 볼 수 있었다. 아들 가진 집들은 초상집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오빠가 멀쩡히 돌아온 것은 실로 대단한 경사였다. 엄마는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버선발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는 오빠를 끌어안고 눈물 콧물 칠해가며, 몇 번이나 하늘에 대고 감사하다고 했다. 나 역시 오빠의 허리춤을 붙들고선, 연신 보고팠던 얼굴을 쳐다보며 우리 오빠가 확실한지 확인했다. 오빠는 키가 쑥 큰 나를 번쩍 들어 안아 올렸다. 오빠는 예전보다도 훨씬 몸이 단단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는지 모르지만, 눈빛이 전보다 날카로워진 것 같아 무섭긴 했다. 보고 겪은 게 많아 할말이 많았던 오빠는 엄마가 밥상을 내왔을 때에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말 많은 오빠가 돌아온 사실이 꿈만 같았다.
“영옥이가 벌써 열 살인가? 이제 곧 전쟁이 끝나면, 오빠가 영옥이 꼭 학교 보내줄게.”
“학교? 우와 갈래. 근데 오빠 나 이제 글자 조금 읽고 쓸 줄 안다.”
오빠는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까막눈인 엄마를 쳐다보았다.
“말하자면 길어. 인민군 애 하나를 조금 숨겨줬었다. 그때 걔가 조금 가르쳐줬대. 말이 그렇지 제 이름 밖에 쓸 줄 몰라.”
“정말이에요? 엄마 잘하셨어요. 그래도 그런 일은 위험해요. 저도 북에 갔을 때 어느 집에 잠깐 머물긴 했어요. 그 집도 홀어머니가 키웠나 보더라구요. 아들은 장가 간지 얼마 안되서 인민군으로 끌려 나갔대요. 그 집 며느리랑 아주머니가 매일 밤마다 정화수 떠놓고 빌기에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났는지 몰라요.”
엄마는 혹시 서로 자식을 바꿔 돌봐준 거 아니냐며 빙긋이 웃어넘겼다. 엄마는 웃고 넘겼을 뿐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진짜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만 말이다. 오빠는 우적우적 밥숟가락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밥그릇을 비웠고, 그러면서도 할 얘기가 많은지 말하기까지 하느라 입은 정신이 없었다. 오빠가 밥상을 다 비우기까지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오빠가 하는 많은 얘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났다. 그 사람도 집에 갔을까 하는 궁금함이 나를 간질였지만, 누구한테 할만한 말은 못됐다. 내가 왜 걱정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시킬 사람도 없었고, 알아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빠는 나를 업고 마당가로 나왔다. 돈을 벌고, 공부도 더하고……. 오빠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꿈꾸듯이 말했다. 오빠가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을 곱씹어 생각하던 나는 학교 얘기를 더 해달라고 졸랐다. 우리 동네 여자들은 학교를 졸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졸업도 하고 싶었다. 오빠에게서 졸업까지 시켜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아냈다. 실로 오랜만에, 너무나 오랜만에 오빠의 어깨에 얼굴을 부비며 나도 꿈꾸듯이 오빠의 말을 듣고 있었다. 모든 게 내 소원대로 된 것만 같았다. 이렇게 겨울이 따뜻해지다니……. 이건 꿈이 아니야. 이제 봄이 오는 거야. 마당에도 산에도 꽃이 필거야. 나는 속으로 언제까지고 꿈이 아니라고 나를 다독거렸다. 문득 작은 눈송이가 내 상기된 볼에 떨어져 녹았다. 살짝 감아보았던 두 눈을 다시 떴다. 바깥은 눈꽃바람이 포근히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매섭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소감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5반
편소정
이야기가 끝나갈 때면 몇 번이고 조르며 다시 해달라고 하던 지난날이 생각납니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는 몇 번이고 들어도 매번 다시 듣고 싶은 어떤 끌림이 있습니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아직도 외할머니께서는 다 큰 손녀에게 옛이야기를 해주곤 하십니다.
속초 바닷가에서 당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제 소설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강원문인협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심사평을 토대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가족과 안양예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외할머니만큼 멋진,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이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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