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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포해수욕장이 있는 회천면소재지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직 시장하지 않았지만 해안길에서는 서해안 안산 화성의 대부도 이후 처음 보는 메뉴
'소고기 곰탕'을 두고 어찌 그냥 갈 수 있겠습니까.
회를 즐기지 않는 해안길 홀로 나그네에게 가장 큰 애로는 먹을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식당은 많으나 해물 일색인데다 그나마도 1인분은 없기 때문이지요.
한가지 더 있습니다.
맥주병인 제게는 한여름의 수많은 해수욕장들이 너무 가까운 그림일 뿐입니다.
보성에는 녹차의 고장답게 다향길이 있습니다.
율포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제2코스 7.7km중 잡초가 우거진 옛 방조제 길을 걸을 때는
추위와 더위에 대한 느낌이 둔한 편인데도 참기 어려웠습니다.
종점인 서당리 연동마을에서 쭈쭈바를 거푸 3개나 먹었으니까요.
시원한 정자는 주민들로 가득찼고 한 노파는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있는 저를 마치
머리가 이상한 늙은이로 치부하는 듯 했습니다.
득량만을 돌아가면 득량만 방조제로 큰 규모의 농지를 확보한 조성면입니다.
옛날 대홍수 때 물이 넘나들었던 고개라는 무너미고개, 그 때 배가 넘어간 산이라 해서
주월산(舟越山) 등 호남정맥 줄기가 뻗어있는 지역이지요.
해안길이 끊겼으나 방조제 주변에 집을 지으려 했으므로 얼마 남지 않은 거리지만 피서
철 차량들이 급증한 위험한 차로 구간이라 편승을 시도했습니다.
몇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는데 운좋게도 고흥의 녹동, 금산까지 가는 차였습니다.
당초의 계획에는 없었지만 함평~목포 구간에서 세이브된 하루를 바쳐서 차편으로나마
고흥땅을 돌아보기 위해 조성에서 묵으려 한 것인데 10마 9623(SUV) 주인은 내일 실행
하려 한 저의 고흥길을 하루 앞당겨 주었습니다.
소록대교(1.160m)를 지나 거금대교(2.028m) 저편에 저를 내려주고 갔으니까요.
사장교인 두 다리는 소록도와 거금도(금산면)를 섬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특히 거금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복층(2층:차도, 1층:인도와 자전거도) 교량이랍니다.
안전도 100% 인도를 걸으며 드디어 사람이 대접받는 다리가 태어났음을 실감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사장교들의 케이블이 하나같이 투박하고 미적 감각이 부족한 듯 합니다.
레레스 강(스페인 폰테베드라)의 티란테스 다리(Tirantes)가 생각났으니까요.
같은 구조의 사장교지만 케이블들이 하프(harp)의 현을 연상케 할 만큼 현란했는데.
저에게 소록도는 밴쿠버의 미니어처(miniature)입니다.
만일 허용되었다면, 서울 집에서 이사했을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 외에는 살고 싶은 유일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섬과 뭍은 판이합니다.
왠지 소록도가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읍니다.
빈번하게 왕래하는 차량들이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녹동의 해수찜질방을 나와 보성 접경까지 부분적으로라도 해안길을 걸어보려 하였지만
터무니없는 바람이었습니다.
바닷가를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사람이 배려된 도로는 전무합니다.
군내버스의 운행망은 원시적입니다.
도중 환승의 기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모두 고흥읍 터미널을 거쳐야 한답니다.
시간과 금전의 낭비입니다.
결국, 오마도간척지 조성(방조제) 중에 희생된 음성한센인들을 추모하는 공원, 풍남항,
도화면소재지까지 몇번에 걸쳐 편승을 했음에도 다시 고흥읍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벌교읍 터미널에서 재개하여 순천만으로 진출했습니다.
벌교갯벌 둑을 따라서 2번국도 밑과 복층정자가 있는 쟁동마을을 지나고 진석마을까지
이어지는 벌교의 웰빙산책로를 따르면 됩니다.
10번고속국도 밑으로 해서 벌교갯벌어촌체험마을(장양)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면 너른
간척지 호산들이 펼쳐집니다.
긴 방조제가 별양면(순천)과의 경계인 호동리 말미까지 이어지지만 잡초숲으로 인하여
통행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다음 마을(거차) 사이에는 갯벌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2번국도로 탈출해서 길게
우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논길을 지루하게 걷는 중에 논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트럭에 편승하게 되었는데
고마운 이 편승이 저를 곤경에 빠뜨릴 줄이야.
보성땅에서 농사짓는 순천인인 운전자는 난감하게도 저를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정문
앞에 내려놓고 갔습니다.
그는 순천만을 걷는 중이라는 연배인 저를 특히 배려해서 제가 잠시 조는 동안에 여기
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바다가 가까운 도중에 하차했어야 하는데.
공원에서 역(逆)으로 순천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일이 충분하거니와 세계5대 연안습지중 1라는 순천만을 반타작할 수는 없으니까요.
뉘엿거리는 해를 붙들어 놓을 수 없으므로 빨리 걸을 수 밖에요.
공원~ 순천만 탐조대~ 인안교의 4km가 넘는 둑길을 걷는 동안에 어두워졌으나 전망대
가든에서 식사를 한 후 정자에 집을 지을 요량으로 더욱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동났다는 식당, 5km쯤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정자,
어느 것도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장산마을을 지나올 때 봐둔 매점과 정자를 겨냥하고 급히 발길을 되돌렸으나 이미 닫은
매점의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천막을 꺼내지 않아도 되는 정자(방충망 설치)와 군학마을 K옹이 챙겨준 마른 누룽지가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궁즉통(窮卽通/No way out, some way out)을 떠올리며 고소짓는 밤이었습니다.
순천만 해안도로를 역코스로 걸으려면 간밤에 왕복했던 전망대가든 고개까지 지방도를
다시 걸어야 합니다.
이른 아침, 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사찰(봉화산 연국사)에 공양을 청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독신 승려라 불가능하답니다.
이 절의 부처님도 저처럼 굶기를 밥먹듯 할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인스턴트(instant) 또는 패스트 푸드(fast food)에 이미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차도를 떠나 바닷가로 내려가면 우명마을입니다.
바다에 밀착한 해안길이 화포해변까지 계속됩니다.
해를 등지고 걷는 아침나절이라 아주 편한 길입니다.
잠시 차로를 따른 후 방조제에 이은 해안길은 거차마을 뻘배체험장까지 편안하게 계속
되지만 순천만의 해안길은 여기에서 끊기고 보성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에서 여기까지를 역으로 걸으면 순방향 진행이 되며 어제 트럭에
편승하지 않았다면 지금 시간쯤에는 공원을 통과했을 것입니다)
김치를 구하면 누룽지를 끓여먹으려고 들른 거차마을 복지회관은 잔치분위기였습니다.
마을 여성이 다 모인 듯 회관에 가득찬 여인들이 말복메뉴로 닭죽을 먹는 중이었답니다.
늙은 나그네에게도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인 닭죽을 권했습니다.
말복인 줄도 모르고 걷다가 단지 허기졌을 뿐인데 거푸 마신 3잔의 막걸리와 포식한 닭
죽은 아마도 꿀맛으로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어제, 벌교에서 먹은 점심 이후 처음인, 24시간 만의 식사인데 어찌 아니 그랬겠습니까.
실은, 먹는 문제가 늙은 나그네의 유일한 현안인데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먼 나라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먹거리(빵) 구하기가 용이한데 반하여 내 나라 해안에서
애로사항이 되다니?
"배고프면 잠도 안와요, 할아버지가 삼복 염천에 웬 고생이다요"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인데 거차마을의 연만한 여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이 말을 귀에 담고 마을을 떠났습니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에서 다시 시작한 해안길은 갈대숲을 헤치고 용산전망대에 오른 후
여수와 접경인 와온해변(해룡면)으로 이어집니다.
와온은 여수땅에서 잘까 순천땅에서 하루 더 묵을까 고민하게(?) 하는 지점입니다.
백두대간 탈 때 삼도봉(三道峰)들에서 늘 그랬던 것 처럼.
우여곡절 끝이기는 해도 1차 목적지 여수를 목전에 두고 순천땅에 머문 것이 참 잘한 일
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해변 모텔, 식당인 '코리아 나폴리'의 정자에 집을 지었는데 인심이 후한 주인입니다.
자기네 메뉴에 없는 1인 식사도 제공하고 샤워도 하라고 권하는 등.
한 마을의 다른 식당은 야멸차게 외면했는데.
이 늙은 나그네가 줄곧 생각하는 주제중 하나인 인심의 단위는 이중환의 주장처럼 마을,
읍면, 시군, 시도가 아니고 개인이라는 생각을 다시 굳힙니다.
후한 인심 덕에 아주 특별한 저녁노을 현상도 목격했습니다.
저의 무지를 고백하며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여수땅 율촌면에 들어서면 순천만은 여자만(汝自灣)으로 바뀝니다.
여자만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 여자도(汝自島)를 딴 이름으로 여수, 순천, 벌교, 보성을
아우르는 넓은 바다를 뜻한답니다.
첫 마을 상봉에 대기중인 버스 기사에게 여자만 해안길 통행 여부를 물었습니다.
순천인들로부터는 불가하다고 이미 들었으면서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지요.
차량은 불가해도 걸어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설명에 원기 백배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해안길을 당당하게 걸어서 엑스포장에 골인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불과 2.5km 정도의 지점에서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얼마 가지 못해 앞길은 막히고 뒷쪽은 불어나는 밀물에 잠겨가고.
간이 커서 그런지 겁이 없기로 공인된 늙은이가 곧 빠져나갈 밀물에 갇힌다고 겁내기야
했겠습니까 마는 실망이 큰 것 만은 사실이었습니다.
피우던 담배를 숨길 정도로 예절바른 운전기사는 왜 무책임한 말을 해서 늙은이를 골탕
먹이는 결과를 초래했는지.
편승한 승용차의 젊은 운전자는 제 기분을 이해했는지 버스정류장까지만 부탁했는데도
자기의 목적지를 벗어나 엑스포장 입구에 내려주고 갔습니다.
인도가 있는 시가지 만이라도 걸어서 가려 했는데.
해안따라 걸어서 야간입장시간인 17시쯤에 엑스포장에 도착하려 했으나 참으로 싱겁게
입성함으로서 남는 시간을 오동도 동백숲에서 보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엑스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기간내에 도착한다는 일정을 만들었을 뿐이므로 입장 직전까지도 망설였습니다.
오동도에서 내려다 보는 엑스포장은 몹시 협소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93일 동안에 1.000만명의 입장을 바랐다면 1일 평균 11만명인데 그 많은 군중이 들끓는
좁은 공간에 아무리 볼거리가 많다 해도 저는 기피했을 것입니다.
여러 수사적(rhetoric)인 표현과 행사, 절반의 성공 운운하지만 폐막 4일을 앞둔 야간의
제 나름의 느낌은 서-남-동 길의 완결 이후에 할 연재에서 밝히겠습니다.
다만, 무사고를 자랑하는 경찰과 관계 당국에게는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당신네의 철저하고 세심한 대비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엑스포 종사원이 명함을 주며 소개한 찜질방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당연시 되는 바가지 상혼(商魂)은 인명과는 무관하므로 잠시 기분이 나쁠 뿐입니다.
사람과 차량이 밀집하는 행사장 등 노출지역은 오히려 안전 사각지대가 아닙니다.
당신네는 행사로 인해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대중이 집결하는 비노출지역의 화재, 폭발
등 위험에 대한 점검과 대비를 했습니까?
사각지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행히도 사고가 없었다 해서 안전엑스포 공로를 과시
하다니 후안무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