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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E조를 분석하다
이번 월드컵 조 추첨은 톱시드를 받지 못한 유럽팀이 어느 조로 배정받을지가 최대관심사였다. 그 이유는 그 팀이 속한 조가 곧 죽음의 조기 때문이다.
많은 축구인은 이를 두고 스페셜 포트 팀 중 FIFA 랭킹이 가장 낮은 프랑스를 유력 후보로 지목했다. 하지만 스페셜 포트 주인공은 이탈리아가 됐다.
갑작스레 불운의 주인공이 추첨으로 갈리면서 프랑스는 스위스·에콰도르·온두라스와 E조로 합류했다. 프랑스 축구팬은 환호성을 질렀다. 에콰도르와 온두라스는 각 대륙 출전국 중 최약체로 손꼽히고 스위스는 톱시드 팀 중 최약체로 불린다.
스위스
톱시드 스위스는 유럽 예선 E조서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노르웨이 등을 꺾고 7승 3무 무패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짠물 수비가 빛났다. 경기당 평균 1.7골을 넣고 0.6골만을 실점하는 역습 축구로 재미를 봤다.
오트마르 히츠펠트 감독은 전임 야콥 코비 쿤 감독부터 이어진 빠른 공수전환과 강력한 압박 및 탄탄한 수비조직으로 조직력을 극대화했다. 디에고 베나글리오 골키퍼가 건재한 골문과 탄탄한 수비 조직. 그 앞을 지키는 ‘나폴리 3총사’ 괴칸 인러와 발론 베라미, 블레림 제마일리 모두 히츠펠트 감독의 지휘 아래 크게 성장했다.
또 트란퀼로 바르네타와 그라니트 샤카, 세르단 샤키리로 이루어진 2선 공격진은 장차 스위스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 초호화 멤버다. 기존 멤버뿐만 아니라 아드미르 메흐메디, 파이팀 카자미, 발렌틴 스토커 등 20대 초중반 어린 선수들이 꾸준히 주전을 노린다.
특출난 핵심 선수는 없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거치며 강팀으로 성장했다. 기술이 뛰어난 선수단을 바탕으로 4-2-3-1 포메이션을 통해 균형 잡힌 팀으로 거듭났다. 가볍고 빠르며 매우 유기적인 움직임이 특징이다.
그러나 뭔가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우선 공 소유에 어려움을 느낀다. 중원에서부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해 공 소유권을 효율적으로 잘 빼앗지만, 너무 역습만을 생각해서인지 경기 템포 조절이 아쉽다. 좌우 풀백이 높게 전진해 공격에 가담하고 창의적인 공격수가 많아도 공격이 흐지부지하다.
게다가 세트피스 수비력은 큰 오점이다. 모든 선수가 가담함에도 공중볼을 자주 놓치거나 상대에게 세컨볼 기회를 넘겨주어 실점위기를 맞았다. 불과 3개월 전 한국과 치른 친선 경기서도 홍정호와 이청용은 머리로 2골을 넣었다. 한국이 세트피스 공격이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같은 조 에콰도르와 온두라스도 승산 있다.
바르네타의 활약이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대표팀 경험을 쌓아온 독보적 존재다. 샤카와 샤키리가 있어 이전보다 부담은 덜었지만, 여전히 가장 위협적인 주득점원이다.
에콰도르
우루과이에 골득실이 앞서며 조 4위로 남미 예선을 통과했다. 16경기 20득점 16실점. 예선 내내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으나, 콜롬비아(13실점)와 아르헨티나(15실점)에 이어 탄탄한 수비를 자랑했다.
고산 지대국가라는 지리적 특성도 한몫했다.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와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에콰도르 원정 이후 “이곳에서 경기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경기 초반부터 호흡이 어려웠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에콰도르가 홈경기를 펼치는 수도 키토는 해발 2850m 지점이다. 백두산(2750m)보다 무려 100m가 더 높다. 오직 아르헨티나만이 아구에로의 페널티킥 선취 득점에 힘입어 유일한 무승부(7승 1무)를 거뒀다.
그러나 원정 성적은 비참하다. 3무 5패 5득점 13실점으로 정반대 행보를 걸었다. ‘설상가상’ 팀 내 주포이자 정신적 지주 크리스티안 베니테스가 세상을 떠나며 충격을 주었다.
주 포메이션은 4-4-1-1이다. 레이날도 루에다 감독은 신장이 크고 빠른 선수단 특성을 살려 수비 위주의 역습 축구를 펼친다. 전방에는 펠리페 카이세도와 에네르 발렌시아가 서고 측면에선 예페르손 몬테로와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빠르게 공을 치고 돌파한다. 행여나 반칙으로 역습이 끊겨도 걱정 없다. 왈테르 아요비와 카이세도의 강력한 프리킥은 숨은 무기다.
게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발렌시아와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서 뛰는 카이세도 등 일부 선수를 제외하면 선수단 대부분이 국내파로 이뤄져 선발 명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점 또한 강점 아닌 강점이다.
꾸준히 맞춰온 호흡은 조직력 강화라는 이점과 전력노출이라는 약점을 함께 지닌다. 에콰도르는 16실점이라는 기록이 말하듯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역습 축구를 펼쳤지만, 프릭손 에라소와 호르헤 구아구아로 이루어진 중앙 수비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결국 승부처는 역습이다. 최대한 이른 시각 실점하지 않고 발 빠른 공격수를 동원해 한순간 결판을 내야 한다. ‘에콰도르의 메시’ 몬테로를 주목하자. 왼쪽 공격수로 출전해 현란한 드리블과 폭발적인 속도로 이미 예선서 3골이나 터뜨렸다. 다른 선수는 몰라도 몬테로만큼은 대체불가다.
프랑스
극적으로 승부를 뒤엎으며 본선행을 확정했다. 프랑스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지역 플레이오프 2차전서 우크라이나를 3-0으로 꺾으며 합계 3-2로 브라질행 막차에 올랐다.
수비수 마마두 사코가 2골을 터뜨리지 못했다면 예선서 탈락할 뻔했다. 경기마다 심한 기복과 불분명한 전술, 부실한 조직력 문제를 드러내며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디디에 데샹 감독은 여전히 자신감이 넘친다. 화려한 선수구성과 만족스러운 조 편성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마티유 발부에나와 로랑 코시엘니, 폴 포그바, 올리비에 지루 등 모든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조 편성 결과는 덤이다. 혹자는 프랑크 리베리에게 너무 의존한다. 최근 경기력으로 16강 진출은 결코 쉽지 않다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스위스·에콰도르·온두라스를 상대로 무난하게 조 1위를 차지하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단 상대 전력 차가 너무 크다. 주전 선수를 제외해도 마찬가지다. 라파엘 바란과 로익 레미, 무사 시소코, 제레미 메네즈는 꾸준히 주전 자리를 위협하고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와 엠마누엘 리비에르, 안드레 피에르 지냑은 국내 무대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 눈길을 끈다.
데샹 감독은 하루빨리 최상의 조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사미르 나스리와 발부에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며 최전방 공격수는 카림 벤제마와 지루 중 누구를 기용할지 또 요한 카바예를 기용한 4-3-3 포메이션은 ‘형편없는’ 수비대형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아니면 골키퍼 위고 로리스의 맹활약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다. 로리스는 소속팀 토트넘 핫스퍼서 현재 리그 9위에 해당하는 실점(32실점)을 내줬고 대표팀서는 치명적인 실수로 수비진에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월드컵을 4개월이나 앞둔 지금 수비 조직이 탄탄해지길 바라는 것보다 다소 불안하더라도 공격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온두라스
H조 알제리와 월드컵 최약체로 꼽힌다.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팀이지만 멕시코가 부진한 사이 차분히 승점을 쌓으며 조 3위를 차지했다. 통산 3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첫 무대는 1982 스페인 월드컵이었다. 개최국 스페인(1-1)과 북아일랜드(1-1), 유고슬라비아(0-1)와 한 조로 묶여 2무 1패라는 괜찮은 성과를 거뒀다.
두 번째 월드컵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이다. 또다시 스페인을 만나며 칠레, 스위스와 조별 리그를 치렀다. 하지만 결과는 나빴다. 첫 경기 칠레전서 1-0으로 패했고 스페인과의 경기선 다비드 비야가 2골을 몰아치며 2-0 완패를 당했다. 그나마 스위스와 치른 마지막 경기서 무승부(0-0)를 기록했지만, 득점은 없었다.
세 번째 무대는 브라질이다. 프랑스와 에콰도르에 이어 또다시 스위스를 마지막으로 상대한다. 기묘한 인연이다. 앞서 스페인을 연속 두 번 만나 1무 1패를 차례로 기록해 이번에는 스위스를 상대로 패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살짝 든다.
그러나 기묘한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 추첨 이후 온두라스의 루이스 페르난도 수아레스 감독이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안 든다. 에콰도르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라 했듯 온두라스는 이미 에콰도르와 2승 8무 3패라는 치열한 맞대결을 펼쳐왔다.
게다가 수아레스 감독은 90년대 중후반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감독을 도와 에콰도르 대표팀 코치로 활약한 경험이 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에콰도르 팀 SD 아우카스를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대표팀 감독직에 올랐고 2008년에는 아우카스로 돌아가 잠시나마 감독 생활을 이어갔다.
또 온두라스는 에콰도르 대표팀 감독 레이날도 루에다와도 인연 있다. 루에다 감독은 2006년부터 약 4년간 온두라스 대표팀을 이끌었고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감독직서 물러났다. 매우 흥미롭다.
경기력도 나름 준수하다. 온두라스는 4-4-2 포메이션을 주 포메이션으로 사용하고 가끔 4-1-4-1을 사용했다. 객관적 전력이 많이 떨어지고 미드필더 간격이 불안정하지만, 공격수와의 연계 플레이로 뛰어난 역습 축구를 펼쳤다.
특히 제리 벵슨과 강력한 왼발 슛을 지닌 카를로 코스틀리로 이뤄진 투톱은 북중미 최강 조합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둘 만 합쳐 총 16골을 터뜨리며 팀 득점의 64%를 기록했다.
이 밖에도 기술이 좋고 매우 열정적인 앤디 나하르와 한때 기성용과 셀틱서 한솥밥을 먹은 에밀리오 이사기레, 윌슨 팔라시오스가 있어 온두라스의 이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