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령고개 정상 들머리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급경사 코스를 오르고 있는 일행들
직진하면 경운산 방향으로 진행
경운산과 오봉산 갈림길에서 낙엽쌓인 등로를 따라 오봉산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일행들
1봉(나한봉)에 오른 일행들
그런데 이곳 오봉산은 다섯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비슷비슷한 봉우리들이 올망졸망 이어지고 있어 어느 봉우리가 몇봉인지 알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1봉에서 5봉까지 봉우리 이름은 아주 그럴듯하게 (나한봉, 관음봉, 문수봉, 보현봉, 비로봉) 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데도 일체 봉우리 정상 표지석이 아무것도 없어 구분이 쉽지 않다. 이곳 오봉산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서는 대리석이 안되면 최소한 이정목 만드는 나무 기둥이라도 세워 각 봉우리 표식을 해야할것이다.
2봉을 향하여
옆에는 "쓰레기를 되가져 갑시다"란 현수막이 있음에도 불구 우리 일행들보다 먼저 2봉에 오른 어떤 안내 산악회 회원님들이 버너에 불을피워 라면과 찌게를 끓여 점심을 들고 있다. 그렇게 산불 관계로 고심하며 통제까지 하는 시기에 산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낙엽 쌓인 등산로에서 버너 사용하여 먹거리 준비를 하고 있다니... 쯔쯔쯔 봄바람에 불붙는것은 정말 순간적인데 그 순간의 방심이 천혜의 자원인 아름다운 산의 수목을 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산을 사랑하시는 분들이면 깊이 마음에 새기시어 적어도 산에서 만큼은 버너 이용하여 취사행위 하시지 않기를 당부 드립니다.
전방 가야할 능선에 봉우리들이 보이지만 봉우리 이름을 알기 쉽지 않다.
구름다리도 지나고
도봉산에 있는 축소판 우이암을 닮은 이름모를 바위
급경사 암릉구간도 오르고
청솔바위
청솔 바위위에 마치 분재같은 소나무가 한그루 자라고 있다.
가파르지만 스릴를 느낄 수 있는 암릉구간길이 아깃자깃 이어지고 있다.
후미일행들을 돌아본 모습
멀리 용화산이 보인다.
오봉산 해발 779m
배후령에서 산행 시작하여 2시간만에 오봉산 정상에 도착하여 단체 사진
찍고 정상 인근 적당한 장소에서 가던길을 멈추고 점심 식사를 하고 간다.
암릉과 노송이 어우러진 하산길 구간은 그야말로 명품 낭만코스로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노송
그 노송모습에 반하여 너도 나도 모두 디카를 들고 사진찍기에 여념이없다.
노송지대에서
해산굴을 통과 하시는 물안개님 꼭 늦둥이 하나 더 순산하시길 바랍니다. ㅎㅎㅎ
전방에 보이는 무명봉만 넘으면 이내 줄곧 암릉구간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절대 겁먹을 필요는 없지요 아주 편안한 암릉 지대로이니까요
청평사 방면 소양호
스릴있는 암릉구간엔 영락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대열이 이어지고 있고
이정표에서 암릉구간이 힘든 사람들은 해탈문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건너편 암봉에도 마치 도봉산 Y계곡을 통과하기 위하여 늘어진 인파처럼 줄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국 각처 어느곳이던지 일요일이면 몰려드는 저 많은 인파 대열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마 우리나라 만큼 산악인구가 많은 나라도 없을것 같다.
중국 황산에 명품 10송이 있다면 이곳 오봉산엔 황산보다 더 아름다운 명품송이 즐비하다.
전방에 소양호가 보이고 암봉에 사람들이 보이지만 그쪽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하산하기
위하여 늘어져 암릉구간에 대기하는 관계로 우리들은 약간 좌측 부용계곡 코스로 하산을 한다.
일행들이 부용계곡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나는 뻔히 저 아래 뾰족하게 솟은 무명봉이 신기
해서 일행들을 이탈하여 300여미터 지역에 위치한 기암을 돌아보고 일행들 뒤를 따른다.
요즘같이 산행하기 삭막한(낙엽길 먼지, 해토로인한 진흙) 분위기에도 이곳 오봉산 코스는 다행이 암릉과 사암토 구간으로 이어지고 있어 산행을 하기 최적의 분위기에 더욱 싱그럽게 푸르름을 자랑하는 노송지대에서 뿜어나오는 싱그러운 피톤치드향이 산행길 내내 그윽하게 몸에 배어나는것 같음을 느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곳곳에 소나무가 수난을 당한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지난겨울 눈과 바람으로 인한 피해인듯
살아천년 죽어천년을 사는 주목은 아니어도 이곳 오봉산 노송은 죽어서도 아름다운 자태로 품위를 지키며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포즈를 취해주며 "죽어서도 살아있는것처럼 우리 인간에게 소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암봉에서 내려다 본 청평사
흙도 한줌 보이지 않는 삭막하기 이를때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영양공급을 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정말 소나무의 일생이 신기하고 베일에 쌓여있는듯 하다. 노송의 인고의 세월을 알려면 열번의 말보다 바로 코 앞에 저 거북이 등짝같은 노송 모습을 보라!
분재를 닮은 외로운 소나무
우리들은 부용계곡 방향으로
바람에 휘어지고 눈보라에 찢어지고 꺽이는 아픔을 당하면서도 늘
그자리에 당당한 모습으로 산하를 지켜주는 노송처럼 살고 싶다.
건너편 암릉 구간에 줄지어 늘어선 인파가 길게 늘어져 있다.
이곳 하산 구간에는 수많은 소나무가 바람에 배배꼬여 생육하다 고사한 모습을 수도없이 많이 볼 수 있다. 긴 세월동안 저 아픔을 참으며 살다간 소나무 일생을 생각하니 세상에 뭣 하나 수월하게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는일이 쉽지 않은것 같다.
노송과 소양호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청평사 방향 소양호
후미일행들이 가던길을 멈추고 줄다리기 하면서 놀면서 산행을 한다.
이세상에 나보다 더 아픔을 격은 사람들은 없을것이다.
부럽다. 살아있는 모든것들이 ... 그러니 사람들아 살아있을때 누구와
시기하지도 말고 오직 주어진 그길을 더욱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라
오봉산엔 아직도 진달래는 몽우리도 생기지 않았고
하산길에 유일하에 생강나무꽃을 만날 수 있었다.
청평사
중창기(重創記)에 의하면 이 절은 973년(광종 24)에 세워진 백암선원(白巖禪院)을 1068년(문종 22) 이의(李?)가 중건해 보현암(普賢庵)이라 했으며, 1089년 이자현(李資玄)에 의해 절이 크게 중창되었고, 현재의 절 이름은 1550년 보우(普雨)가 극락전과 그밖의 모든 요사채를 새로 지은 뒤에 고쳐 부른 것이라고 한다. 본당인 능인전(能仁殿)은 1851년(철종 2)에 소실되었으며, 6·25전쟁 때 여러 당우가 소실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회전문(廻轉門:보물 제164호)·소승방(小僧房) 등이 남아 있다.
야생화와 영지
청평사 영지
이곳은 오봉산의 옛 이름인 경운사이 물위에 그림자처럼 떠 오른다고해서 영지라 불리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원은 최대한으로 살리고 주위에 경관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이 못은 청평사 은거 하면서 평생을 보내 이자현이 만든 정원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사다리꼴 모양의 못안에는3개의 큰 돌을 배치하여 단순하 면서도 입체적 변화감을 더 하여 주고 있다. 이곳의 정원은 청평사 입구의 구성폭포 아래의 거북바위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절 뒷편이 청평선동 계곡까지 약 1km에 이어지며 영지는 그 중심에 위치한다.
구성폭포
거북바위
청평사(공주와 상사뱀)의전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 청평사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당나라에 공주를 사모하던 한 평민청년이 있었다. 신분상의 차이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자 홀연히 한 마리 뱀이 나타나 공주의 몸을 감아버린다.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혼이 상사뱀으로 변한 것이었다. 놀란 당태종은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영험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우리나라 사찰을 순례하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날 범종소리가 들려오자 "절이 멀지 않은 듯합니다. 밥을 얻어오려고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 수 있는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다녀오겠습니다." 하니 한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에서 내려와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 나선다.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 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죽은 뱀은 빗물에 떠내려 ?다.
공주가 밥을 얻어 가지고 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일을 알 수 없는 공주는 짬짝 놀랐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서 머무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공주가 노숙했던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한 웅덩이 를 공주탕, 삼층석탑이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대교를 지나 소양호 나룻터로
소양호 청평사 선착장 대인 요금 2,500원 주말에는 시간없이 수시로 유람선이 오고간다.
소양호를 오고가는 유람선
유람선을 타고 소양호를 건너는 동안에도 몇 척의 유람선이 청평사를 향
하여 지나가고 쾌속정 보트놀이를 즐기는 매니아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양호 준공 기념탑
기념탑 하단에는 1973년 9월 30일 대통령 박정희라 쓴 친필 휘호가 새겨있다.
담수비와 소양호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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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석합니다 승차지:병점 동부출장소앞
감사합니다
참석합니다~북문 아울렛앞 승차!
최영희씨 병점 동부출장소앞승차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