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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웃 산장(4,050m)은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의 산장은 불에 타 외벽만 겨우 남아 있고, 그 아래쪽에 새 산장이 지어져 있다.
위쪽에는 컨테이너박스 4개가 올려져 있다. 이것 역시 대피소였다.
13년 전 엘브루즈를 왔을 때는 아자우 마을에서 버스로 10여 분 아래쪽에 있는 테르스콜 마을에서 묵은 다음날
무작정 프리웃 산장에 오르고, 이튿날 새벽 정상으로 향했다.
그것도 아이젠도 차지 않은 상태에서 산행에 나섰다가
파스투초프록(4,650m) 상단 약 200m 지점에서 청빙지대를 만나는 바람에 포기하고 산장으로 내려선 다음
급히 러시아제 아이젠을 구입해 이튿날 다시 등정길에 나섰던 것이다.
한국 출발 7박8일 일정에 귀국까지 끝냈으니 그야말로 ‘속전속결 산행’이었던 셈이다.
파스투초프록을 향해 고소적응 훈련 중인 대원들.
이영석씨가 고소증에 시달리느라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스키에 배낭 메고 정상 향하는 외국 클라이머들
장익진 선배가 4,150m 높이의 바위지대까지 올라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경상도 사나이’ 이청산씨가 다시 프리웃 산장으로 내려가 장 선배와 함께 올라온다.
장 선배까지 10명 전원이 예정대로 고소적응을 마치자 모두들 정상에 오른 것 이상 즐거워한다.
오후 4시경 아자우 마을로 내려섰는데도 모두들 컨디션이 좋다.
이영석씨는 또다시 “샤슬릭에 맥주 한 잔!”을 외치고,
다른 사람들은 “기왕 먹을 거라면 다른 것도 먹어보자”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또다시 샤슬릭으로 매듭져지고 만다. 달리 마땅한 선택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또다시 밤새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벗겨지고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오늘은 가라바시 산장(3,600m)으로 베이스캠프를 옮기는 날이다.
짐을 꽉꽉 채운 100리터 용량의 카고백 외에 라면 한 박스, 맥주 한 박스 등
엄청난 짐에 호텔 앞마당에서 기다리던 마리나가 깜짝 놀란다.
사실 단일팀이라면 짐이 이렇게 많을 리 없다.
그러나 각개전투팀이다 보니 공동물품은 분담한다고 했는데도
자기 짐을 챙겨오다 보니 불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오늘은 마리나 외에도 가이드가 3명 더 따라붙는다.
여행사 사장인 빅토리아도 가라바시 산장까지 함께 오르겠단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케이블카를 두 차례 갈아타고 해발 3,470m 지점의 터미널에 도착하자
스노캣(snow cat·캐터필러 설상차)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짐 열세 덩어리에 가이드들 짐까지 싣고 7명이 올라탔는데도 전혀 무리 없이 잘 올라간다.
가라바시 산장의 퀀세트형 6인용 숙소 2개소에 나누어 들어간 일행은 간식으로 점심을 해결한 다음
오전 11시 파스투초프록까지 고소적응에 나섰다.
이틀 후 등정시도 때를 대비해 체력을 아낄 생각에
어제 도달했던 해발 4,150m 지점까지 설상차를 이용하여 오르기로 한다
설상차가 대원 10명에 가이드 4명, 운전사까지 15명이 올라탄 상태에서도
가파른 설사면을 가볍게 올라가자 장익진 선배는
“이 차 타고 그냥 안부까지 올라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농담을 해댄다.
농담이 아니더라도 설상차는 정상까지라도 그대로 밀어붙일 기세로 굴러갔다.
정오를 조금 못 미처 해발 4,100m 눈밭에 내린 일행은
완경사 설사면을 한 발 한 발 오르다 파스투초프록을 200여m 앞둔 지점에서 아이젠을 착용했다.
가이드가 보행요령과 주의사항을 친절하게 일러준 다음 파스투초프록으로 안내한다.
일행 중 6명은 12발짜리 아이젠을 오늘 처음 신어본 것이다.
그런데도 곧 자세가 잡히고 급경사면도 안정된 자세로 올라선다.
파스투초프록에 올라선 것은 오후 3시경.
마침 안개가 걷히면서 산 아래 박산계곡 일원과
동구조룬에서 우시바로 이어지는 침봉군이 거대한 장벽처럼 웅장하게 바라보인다.
유진욱씨 형제는 컨디션이 좋아 보이고, 이영석씨는 여전히 재담꾼 역할을 해낸다.
아이젠을 찰 즈음 “나는 이쯤에서 쉬는 게 컨디션 조절에 좋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후배들 등쌀에 떠밀려 올라온 장익진 선배도 화색이 돈다.
평택 여성 산악인인 이응노씨는 18번을 불러대고,
그 노래에 맞춰 이기열씨는 가이드를 일으켜 세워 한바탕 댄스파티까지 연다.
예상치 못했던 이벤트가 파스트초프록에서 벌어졌다.
모두들 너무도 행복한 표정이다.
어쩌면 이런 순백의 풍광 속에서 즐거움을 맛보려고 우리 모두 지금 이곳에 올라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라바시로 내려서는데 모두들 무너지는 모습이다.
다른 대원들에 비해 30분 이상 늦게 프리웃에 내려선 유진관씨는 아예 말을 잃은 상태다.
할 수 없이 설상차로 가라바시까지 내려서기로 계획을 바꾼다.
하기야 여태껏 너무 순조로웠다.
지금 우리가 오르려하는 봉이 그래도 유럽 최고봉이 아니더냐.
러시아 산악인 외에도 외국 산악인들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파스투초프록을 향해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스키를 신고 오르는 이들도 있다.
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오늘 파스투초프록에서 비박한 다음 내일 새벽 정상을 향해 오르려 하고 있다.
고산을 고산답게 대하는 저들의 태도에 위축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동봉 남면을 트래버스중인 대원들.
모처럼 휴일이다.
어제 가라바시 산장에 내려선 이후 가랑비가 내려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다.
발아래 구름바다가 깔리고 엘브루즈 일원의 명봉들이 구름을 뚫고 치솟아 있다.
그림이다.
명화를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오늘은 이청산씨의 50번째 생일이다.
이응노씨와 이기열씨는 이른 아침부터 서두르더니
과자와 초코파이를 이용해 멋진 생일 케익에 미역국까지 차려놓았다.
이 이상 호사로운 생일상이 또 있으랴.
이제 내일 정상에 올라서면 모든 스케줄이 끝이다.
그런데 엊저녁도 못 먹고 잔 유진관씨와 장익진 선배는 몸이 무거워 보인다.
장 선배는 아자우 마을 도착 첫날부터 목감기 때문에 고생하더니 아무래도 깨끗이 낫지 않는 것 같다.
첫날 호텔에서 장 선배가 감기 기운이 온 것 같다고 했는데도 이영석씨가 덥다며 창문을 활짝 열고 잤으니-.
아침밥을 먹고 난 다음부터 바람이 강해진다.
내일이 걱정이다.
마리나는 어제 우리의 등반실력이 미심쩍었던지 하루 종일 쉬자던 일정을 바꾸어 11시부터 피켈 활락법에 대해 훈련하잔다.
그런데 오전 10시를 넘어서면서 비바람이 거의 45도 각도로 몰아친다.
사흘간 날씨가 그렇게 좋더니 꺾였나 보다.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 했으나 비바람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더니 오후 2시경 마리나와 보조 가이드인 블라디미르 밀라노프가 굳은 표정으로 숙소로 찾아와
사무실에서 올라온 일기예보를 보여주면서 가슴 철렁하게 하는 말을 던진다.
“오늘 아침 정상의 날씨는 초속 15m의 강풍에 영하 15℃였다. 내일 새벽은 20m에 영하 20℃다.”
“…”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자 블라디미르는
“예보는 역시 예보일 뿐”이라며,
“새벽 2시경 일어나 5시까지 기다리다 날씨가 좋으면 밀어붙이고,
그렇지 못하면 다음날 등정을 시도하자”고 위로해준다.
“안 돼요. 무조건 전진이에요.”
이응로씨와 이기열씨는 이러한 상황에도 별로 흔들리지 않고 식당에 들어가 감자를 깎는다.
감자전을 부쳐 대원들에게 영양보충을 시켜주기 위해서다.
사실 엘브루즈 기슭에 도착할 때까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10년 전 킬리만자로를 오른 이청산씨는 그래도 전문 등반을 해왔고,
석상명씨는 타고난 고소체질에 체력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산꾼이다.
유진욱씨는 에베레스트 등반 경험에 지난해에는 매킨리를 오른 바 있다.
비록 지난해 가을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후 후유증으로
박영석씨의 에베레스트 횡단등반대에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경험 많은 산악인이다.
그밖의 대원들은 산에 오래 다녔더라도 전문등반 경험뿐 아니라
고산다운 고산을 경험해보지 못해 잘 해낼까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뜻밖으로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모두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나간다.
특히 박희정씨는 지리산 종주 한 번 안 해본 초보자인데도
평소 테니스로 다져온 체력 덕분인지 흔들림 없이 잘 해내고 있다.
동봉과 서봉 사이의 안부. 등정길 중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설원지대다.
오후 3시가 넘어 감자전이 한 장 한 장 부쳐지자 매실소주와 맥주까지 곁들여 내일의 등정을 기원한다.
이제 번개가 번쩍이는 날씨에도 걱정되지 않는다.
해발 5,642m의 고산을 오르는데 폭풍설 한 번 겪지 않는 데서야 말이 되겠나.
침대에 드러누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날씨도 불확실하고, 시간이 다가오면서 과연 이 구성원으로 무사히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화이트아웃은 반복되지만 그래도 구름이 떠오르는 게 다행이다 싶다.
뒤척이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이청산씨가 외치는 기상 소리에 눈을 뜨고 보니 새벽 2시15분.
얼른 식당으로 가보니 마리나가 식사 중이다.
빙그레 웃으면서 오늘 서미트에 나서잔다. 이렇게 좋을 수가-.
그런데 설상차 앞에서 장비점검을 하는데,
장익진 선배가 앞 지퍼를 열어놓은 우모복 차림에 안전벨트는커녕 아이젠도 제대로 차지 않고 있다.
서둘러 챙겨드리고 설상차에 올라탔는데 이번에는 보안경이 없단다.
난감해진다. 해가 떠오른 이후 보안경 없이 설산에 있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행위인 것이다.
“형님, 제 예비용 안경 쓰시죠.”
석상명씨가 배낭에서 예비용 보안경을 꺼내 장 선배에게 건네주었지만,
장 선배의 표정이 뭔가 애매해진다.
“아무래도 난 하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도중에 포기하면 후배들한테 피해줄 테니 말여.
대신 평택 아줌마들은 꼭 올려줘야 혀.”
오후 4시경 설상차에서 내려 10분쯤 걸어갔을까, 장익진 선배가 하산을 결심한다.
아자우 도착 이후 계속 컨디션이 나빴던 장 선배는 이미 몇몇 사람에게
“아무래도 등정은 무리”라고 예기했건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기자로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라바시 산장에서 출발하기 전 벨트를 차지 않고,
고글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은 이미 결심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아니, 형님 뭐 하시는 거예요?”라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해댔던 것.
어둠을 뚫고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오르는 대원들은 모두 보무당당한 용사의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파스투초프록을 지난 지 30분쯤 되었을 때 유진관씨가 하산을 결심한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전에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이응노씨(앞)와 이기열씨. 석상명씨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유진관씨가 가이드 한 명과 하산하고나자 이제 대원 8명과 가이드 3명만이 정상으로 향한다.
밑에서 볼 때는 왼쪽으로 계속 틀면서 올라가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거의 곧장 오르는 급사면이다.
추위와 바람도 대단하다.
날이 밝아오자 얼굴에 선블럭을 바르려고 장갑을 벗자마자 손가락이 얼어붙는 것만 같다.
설사면에 휘날리는 눈보라는 우리 모두를 긴장케 했다.
그런데도 등 뒤로 펼쳐지는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두터운 구름을 뚫고 솟구친 침봉들은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면서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블라디미르는 서봉 너머로 펼쳐지는 야트막한 산군 뒤에 흑해가 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웬 사람이 앞뒤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우리를 촬영해댄다.
쇼트스키를 배낭에 매단 그는 어떨 때는 멀찌감치,
또 어떨 때는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어댄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상업사진가였다.
비록 CD 한 장과 사진 7장에 40달러씩 주고 개인 사진을 구입했지만,
전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잘 찍은 사진이었다).
너무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이 부럽게 느껴진다.
트래버스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기열씨는 벌써 지친 모습이고,
이영석씨는 포기할까 묻는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눈이 너무도 초롱초롱하다.
트래버스를 마치고 동봉과 서봉 사이의 안부에 올라선 것은 오전 8시40분.
좋다. 이대로라면 두어 시간 뒤면 모두 정상에 올라선다.
안부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충분히 쉬는 사이 이청산씨와 석상명씨는 동봉을 자꾸 쳐다본다.
두 사람은 2개봉 연속등정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무사 등정을 위해 자신들의 꿈을 곧 버리고 만다.
정상에 선 아마추어 8명 환희에 겨워
가이드들이 이제부터는 경사가 가파르다며, 한 손에 피켈을 들고 다른 손에 폴을 잡으라 권한다.
이어 가이드인 세르게이 푸르소프는 슬링을 꺼내 이기열씨의 벨트에 연결한다.
아무래도 안전을 위해서다. 출발하자마자 모두들 힘들어한다.
산행을 시작한 이후 내내 유지하던 2~3m 간격의 대열이 깨지면서 3개조로 나뉘어 오른다.
이응노씨는 뜻밖에 멀쩡한데 이기열씨는 얼굴이 너무도 창백하다.
유진욱씨는 아픈 무릎을 참고 오르느라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그러나 누구 한 명도 포기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1시간쯤 오르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허리를 반쯤 굽힌 채 올라오는 이기열씨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마리나는
“그만 하산하는 게 어떻겠느냐?” 묻더니, 30분쯤 지나서 다시 한 번 “괜찮겠냐?” 묻는다.
그 때마다 이기열씨의 대답은 “무조건 전진”이다.
설사면을 10분쯤 더 올랐을까, 설릉 뒤편으로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마리나는 오른쪽 봉이 정상이란다.
모두들 숨을 고른다. 이제 100여 걸음이면 정상이다.
설릉을 따르다 막판의 가파른 사면을 올라설 때는 모두들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가 굽혀진다.
그래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여보~, 내가 해냈어~.”
“미정아~, 사랑한다-.”
유럽 최고봉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모두들 감격의 함성을 질러대고,
곧이어 각자 소속 산악회 깃발을 펼친 채 멋진 폼도 잡아본다.
자신의 체력이나 인내심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정상을 향했던 대원 모두 환희에 넘치는 표정이다.
하지만 정상에서 1시간 가까이 머물다 하산길에 접어든 이후 대원들의 표정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정점을 향하느라 온몸의 힘을 다 짜냈던지라 쏟아질 듯 가파른 설사면을 내려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하산하는 사이 우리 팀 뒤를 이어 정상을 향하던 외국 산악인들이
안부에서 포기하고 내려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파스투초프록을 향해 내려설 때는 또다른 산악인들이 며칠 후의 등정길을 위해
고소적응차 설사면을 한 발 한 발 올라오고 있었다.
엘브루즈는 아마추어들에게는 영원한 도전의 대상이었다.
[엘브루즈 등반법]
여유있는 고소적응이 등정률 높여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는
서로 다른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동봉(Vostochaya·5,621m)과 서봉(Zapadnaya·5,642m) 쌍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반로는 동봉 남사면을 거쳐 동봉과 서봉 사이의 안부로 올라선 다음
급경사 설사면을 타고 서봉 정상에 오르는 게 가장 일반적인 루트다.
체력이 뛰어난 산악인들은 안부에서 동봉을 먼저 오른 다음 서봉을 오르기도 한다.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는 남동릉 노멀루트를 따를 경우 특별한 등반기술을 필요하지 않다.
단지 파스투초프록 이후 설사면의 경사가 점점 가팔라져 아이젠을 착용하고,
피켈과 스키폴을 의지하면서 등반해야 하기에 피켈과 아이젠 사용법은 익힌 다음 원정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해발 5,642m 높이의 정상에 오르려면 적절한 고소적응 단계를 밟아야 등정률이 높다.
거의 대부분 케이블과 스키용 리프트를 이용해 해발 3,600m 지점의 가라바시(Garabash) 산장까지 오른 다음
이 산장이나 프리웃 산장(4,050m)에서 이틀동안 고소적응을 하고,
셋째 날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날에는 대개 캐터필러식 설상차(snow cat)를 타고
파스투초프록(4,650m) 약 200m 아래 설사면까지 접근한 다음 이후 도보 산행에 나선다.
산장 출발 시각은 대개 새벽 2시로,
산행 시작 후 정상까지는 7시간 안팎 걸린다.
물론 고소증을 느끼거나 체력이 떨어진다면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다.
이번 원정대는 일반적인 팀에 비해 이틀 더 긴 12박13일 일정으로 산행에 나섰다.
때문에 여유롭게 산행을 즐기면서 고소적응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
엘브루즈 도착 이튿날 동구조룬 조망대라 할 수 있는
체겟봉(Cheget·3,461m) 트레킹을 하면서 엘브루즈 일원의 산봉을 조망하고,
다음 날에는 소녀의 머리카락 폭포(Girl's Hair Waterfall)를 거쳐 해발 3,000m 높이의 관측소로 이어지는 트레킹에 나섰다.
그 사이 대원 모두 3,000m 안팎의 고지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모든 짐을 가지고 가라바시 산장이나 프리웃 산장으로 오르지 않고,
일단 빈 몸으로 프리웃 산장 위 해발 4,150m의 바위지대까지 올랐다가
다시 호텔로 내려서 편안한 잠자리에서 푹 쉬었다.
이튿날 짐을 가라바시 산장에 올린 다음 파스투초프록까지
고소적응 훈련에 나설 때는 해발 4,150m 높이까지 설상차를 이용했다.
어차피 설상차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고소적응 훈련 중에도 설상차를 이용하는 게 체력을 아끼는 데 도움이 많이 될 듯싶다.
이어 파스투초프록까지 고소적응 훈련을 마친 뒤 이튿날 가라바시 산장에서 하루 푹 쉰 다음
정상을 향했던 게 컨디션 조절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추어가 아닌, 고산 경험이 많은 산악인들이라면
가라바시에서 취사야영장비를 짊어진 채 파스투초프록까지 올라 하룻밤 비박하고,
이튿날 새벽 등정길에 나서는 게 어울리는 등반법일 것이다.
특히 자연 눈에서의 스키 보행과 활강에 자신있는 산악인이라면 스키등반도 시도해볼 만할 것이다.
등반 적기는 6월 말부터 9월 말.
그 외의 시기는 눈이 많이 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고,
특히 겨울 시즌에는 기온이 영하 30℃ 이하로 떨어질 적이 많아 등반이 쉽지 않다.
등반적기일지라도 화이트아웃 현상이 일어나면 방향 감각을 잃기 쉽다.
설사면이 넓게 펼쳐져 일단 방향을 잃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추락할 위험도 있다.
현지 가이드들은 GPS를 이용해 위치를 확인하면서 등반하기에
하산길에 화이트아웃을 만나더라도 거의 헷갈리는 일 없이 귀환한다고 한다.
엘브루즈는 국내 산악인들에게는 오로지 유럽 최고봉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유명한 스키 리조트이기도 하다.
스키시즌이면 가라바시로 이어지는 케이블카와 곤돌라는 줄을 서야만 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스키어들이 찾는다고 한다.
스키어들은 대개 가라바시에서 파스트초프록을 거쳐 해발 5,200m대의 설사면까지 도보나 스키로 접근한 다음 활강한다.
물론, 파스트초프록 아래까지 설상차(약 15인 탐승)로 접근할 수 있으나 200달러 안팎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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