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金相沃 - 한국적 정서와 가락의 연금술
이재창
艸丁 김상옥 시인은 1920년 3월 15일 경남 충무시 항남동에서 태어났다. 소년기부터 독학으로 공부했고, 인쇄소 문선공으로 주경야독하며 보냈다. 1938년 김용호 함윤수 등과 함께 <貘>동인으로 활동하며 시「모래알」을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문장』지에 시조「봉선화」가 추천받고,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낙엽」당선되면서 본격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일제때는 반일 사상의 소유자란 혐의로 수차례 囹圄의 생활을 겪기도 했다. 그는 1945년 아동문학지『참새』발간하기도 했으며, 시서화와 도자기 등에도 조예가 깊어 골동품점인 <亞字房>을 경영하기도 했다. 시조집으로 자신이 직접 만든『草笛』『三行詩』『묵을 갈다가』등이 있고, 시집『故園의 曲』『異端의 시』『衣裳』과 동시집『석류꽃』, 동요동시집『꽃 속에 묻힌 집』, 산문집으로『시와 도자』등의 저서가 있다. 제1회 노산문학상과 제1회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의 소재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전통적 서정에서 생명의 구원을 위한 광명에의 희구, 사물의 배후에 깃든 생명감 등을 포착하여 영롱하고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이뤄져 있으며, 민족 고유의 예술미와 전통적 정서를 형상화 한 것들은 그의 특징이다. 초정의 문학사적 의미는, 노산의 관념적 특성과 가람의 사실적이고 청신한 감각을 두루 섭렵한 현대시조의 한 지표를 세웠다는 점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축이시며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그 소리 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千年을 머금은 채
따스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 망정 뜻을 달리하리오.
-「玉笛」전문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風磬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님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不老草 돋아나고
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純朴하도다.
-「白磁賦」전문
그의 초기 시조는 매우 한국적이고, 그 내면에 흐르는 한국적 정서와 가락이 풍겨내는 울림이 크다. 그리고 의고조로 일삼던 많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들 중에서 현대시조에 걸맞는 시어의 고아하고 세련된 품위가 한층 그의 문학적 지위를 돋보이게 한다. 구슬처럼 영롱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언어감각은 후배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이러한 언어감각은 리듬의 가락까지 힘을 얻으면서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위에 인용한 두 작품에서도 그러한 특징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용한「玉笛」과「白磁賦」는 김상옥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초기시에서 보여주는 특징은 한국적 정서와 가락이 언어의 연금술사와 같은 조련술을 거치면서 특유의 문학적 경향은 시조단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옥적이 신라시대 울려 퍼지던 그 모습을 마음 속으로 상상하면 선조들의 고아하고 순박했던 예술정신과 우리 민족의 뛰어난 정서적 감각이 옥피리에 전해옴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이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옥피리를 그 당시의 신라인이 연주하는 것을 형상화 해 지금의 현재형으로 처리한 시적 상상력이 대단하다. 서라벌에 퍼지던 옥피리. 그것을 부르던 신라인의 자세가 너무도 진지하고, 옥피리 자체가 지니고 있는 높은 예술성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당시 신라인의 상상을 통해 자신과 옥피리의 예술성이 하나가 됨으로서 시적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백자부는 그의 고아한 취미생활을 엿보이게 한다. 백자 그 자체가 가지는 품격과 거기서 풍겨 나오는 우아한 운치와 그림을 통해 한국의 정서, 낭만, 예술, 문화, 철학 등을 한국의 상징으로 형상화 했다. 백자에 그려져 있는 송학을 통해 조상들의 고고한 생활상을 흠모하고, 보고 싶은 임이 오셨을 때 꽃술을 담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한국의 산하에 대한 풍경과 신비한 불로초, 사슴이 뛰놀 듯 우리 선인들의 인생관을, 그리고 불 속에서도 얼음같은 영롱한 자태를 지닌 백자의 모습이 순박한 우리 선인들의 모습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