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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도박에 빠져 아버지와 여동생을 독살하고 어머니와 아내까지 살해하려던 20대 남성이 감기약에 섞어 사용한 독이 협죽도에서 취해진 것이라 한다. 협죽도는 3년 전에 한 20대 무속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지인을 독살할 때 넣었다는 보도에서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협죽도는 잎이 큼직하고 뚜렷하여 일반 가정에서 사랑 받는 관상용 화초로 봄부터 가을까지 화려하고 화사한 꽃을 피운다. 심장질환이나 기관지 천식을 가라앉히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쓰임은 미미하다고 한다. 협죽도의 올레안드린이라는 독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5-15개 정도의 잎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독초가 아파트 베란다에 화사한 모습으로 ‘정체’를 위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으스스해진다. 더구나 묘목부터 다 자란 것에까지 일반 화초처럼 구입이 너무나 용이하다지 않나. 지난 9월에는 광주의 중년 부부가 한약재인 ‘초오(草烏)’로 담근 술을 마신 후 남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초오는 미나리 아재비 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인 투구꽃의 덩이줄기 부분으로, 진통 효과가 있으나 독성이 강해 허가를 받은 사람만 취급할 수 있는 한약재다. 다량을 복용할 경우 호흡곤란과 구토,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약의 재료로 쓰이기도 했다.” – 2015년 9월 30일자 어깨너머 한의학 ’술로 사약을 받은 부부’ 참조
약이나 차, 술, 음식에 독을 섞거나 상극인 음식의 조합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왕가에서부터 민가에 이르기까지 ‘살해 방법의 기본이자 정석’이라 할 만큼 ‘유서’가 깊다. 특히 구중궁궐에 갇혀 지내는 왕이나 왕족을 살해하는 방법으로는 독극물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었을 것이란 짐작은 하면서도 인종, 정조, 고종 등 조선왕조는 독살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일었다. 영조(연잉군 시절)는 보위에 오르기 전 병석의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올려 독살설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게와 감이 아무리 상극인 음식이라 해도 반드시 독으로 작용했을까만, 연이어 독성이 강한 부자와 인삼을 올림으로써 영조는 스스로 혐의를 자초했다. 어차피 경종을 이어 왕위에 오를 영조가 그런 자충수를 둘 리가 만무함에도. 한편 독이 든 식혜를 먹고 절명한 고종의 경우는 매우 안쓰럽고 인간적 비애감을 절로 느끼게 한다. 아내 민비가 일본 폭력배들의 손에 무참히 살해 당한 후 자신 또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에 나날이 시달릴 때 그는 무엇보다 독살을 당할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민비 사후 친일파와 일본 정객들이 장악한 궁에 감금당하는 생활을 하면서 어둠을 틈타 자객이 올까 뜬눈으로 밤을 새운 후 새벽이 밝아오면 그때서야 잠이 들었고 궁에서 만들어 올리는 음식을 일체 거부했다. 당시 선교사들이 밤마다 고종을 찾아와 두런두런 말벗을 해 주고 옆방에서 함께 잠도 자 주었다. 여장부 명성황후를 너무나 의지했던 유약하고 평범한 성품의 지아비의 신세가 그토록 가련했던 것이다.
연세대학교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1859~1916)의 부인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가 쓴 조선에 대한 기록 <상투잽이와 함께 보낸 십오년 세월>에는 당시 고종의 공포와 불안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당시 언더우드 부인이 대한제국 주재 유럽 외교관 부인들과 함께 교대로 고종을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날랐다는 것이다. 고종은 커피를 비롯해서 양식을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오죽하면 ‘파란 눈의 코쟁이’가 만든 음식을 주식으로 삼아야 했을까. 음식은 미국인 예일이 발명한 원통형 자물쇠(일명 예일 자물쇠)를 채운 놋 상자에 담아 언더우드에게 그의 아내가 들려주면 언더우드가 직접 배달을 하고, 임금이 손수 자물통을 열 수 있도록 열쇠를 전했다고 한다. ---------------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글을 끝까지 보여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아래를 클릭하시면 글이 이어집니다.가셔서 그 곳에 공감이나 댓글을 남겨 주시면 '을매나 좋을까요?'ㅎㅎ http://blog.naver.com/jaseng01/220526499367 출처] [신아연의 어깨너머 한의학]날달걀과 깡통연유, ‘배달음식’으로도 막지 못한 고종의 독살|작성자 강남자생한방병원 |
첫댓글 사람은 악하고 풀은 독하네요
명언으로 들립니다.
고종은 자기자신의 안위밖에 모르는 위인이었어요. 오늘날 잣대로 본다면 오래 살아있는게 재앙이지요. 그런 한심한 인간을 나랏님이라고 받들었던 백성들 .. 불쌍하고 슬픈 민족입니다
원래도 그런 성품인데다 시국까지 그를 흔들어 댔으니...민비가 죽은 지 5일 만에 전에 사귀던 후궁 엄씨와 바로 동거를 시작한 것만 봐도 심약한 졸부임을 드러내지요.
붉은 고기와 소시지를 비롯한 가공육을 발암 물질로 .... 겁나부러요. 사실은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