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야그 '04-2탄
('68 사학. 홍광택)
양말에 대하야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만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아직 그려지지 않은
아직 칠해지지 않은 희망을 품고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처럼
이젤에 못 박힌다
끝난걸까?
모든것이 빛나고 흐르고 넘친다
저기에는 검은색
여기에는 붉은 색
파란색을 뿌리고
나는 평온 해진다
***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을 정맥이 바르르 떤다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전반부 시는 프랑스 화가 유대인 러시아 출생의 샤갈(1887-1985)의 시이고
후반부의 시는 "김춘수"시인의 "샤갈 마을에 내리는 눈"
우리나라 "까페"나 "레스토랑"이름에 많이 나오는...
얼마 전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에 음악과 사진과 글로 수고 성원해 준
용권 동지 장고73 김창호 동지 임재무 동지에게 사의를 표하며 이 시들을 띄운다
얼마 전 "호미 홈피"를 넘나들다가 연세대 화우회에 "링크 된 페이지에 일부 내용에
진입 하려다 암호를 대라는 '패스워드'"에 좌절되었다
내용인즉 "화우회 동지들이 만나면 즐겨하는 "카드 놀이의 제목이 뭐냐는 것이다
"하이로"인지 "포카"인지 "훌라"인지 "마이티" 인지 "바둑이"인지
외로운 나그네로 "동류의식을 못 느끼고 빠져 나왔지만
고대 호미회도 이와 비슷한 "패스워드"가 있다면
"서화회 호미회 동지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을 대표할 만한 낱말 하나
그것은 내 생각에 "최종후 교수"가 쓴 "양말"이 아니었을까..
나이롱양말과 같은 스토리는 없지만 이 "양말"에 대한 소회(所懷)가 전혀 없을 수 없어
몇자 적기로 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만 해도 겨울이지만 맨발 벗고 다니는 애들이 뭐 걸치고 다니는 애들보다 많았다
부녀자들은 버선을 신는 경우도 많았고 설이나 추석 같은 때 겨우 한 두개 얻어 신는 경우가 많았는데
무늬가 색동저고리처럼 "빨주노초..요란한 것이 많았는데 요즘처럼 직조 염색기술이 서투른지라
불편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한번은 요란한 색동 무늬의 양말을 얻어 신고 밖에서 놀다 밤에 집에 들어와 양말을 벗엇는데
양말이 그대로 발에 남아 있는 것이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땀이 난 발에 양말의 염색 무늬가 그대로 "이염-요즘 기성복 바지 세탁" "디렉토리"에 보면
다른 세탁물과 함께 빨면 "이염되어 책임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지 않는가..._
양말이란 "서양양 보선말"로 된 합성어가 아닌가 양재기(洋瓷器) 양동이 양배추....
양말은 속옷 종류 중에서 우리의 체중을 이고 다닐 정도로 고생이 막심한 부위 임에도 불구 하고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점이 있지만 한편으로 미적 안식이 높은 사람들이 얘기 하기를
남녀를 불문하고 그 개인의 미적감각의 축도는 구두와 양말을 어떻게 신는가보면 안다고 할 정도로
미적 감각의 최첨단부로서 중요도가 점점 치열해지는 곳이 아니던가
지금은 보선을 신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라져 가는 것중에 하나다.
영국의 유명한 수필가 촬스 램(CHARLES LAMB 1775-1834)은 그의 수필에서 밤에
기차를 타고 가면서 기차 속으로 들어 온 하루살이 나방이가 불빛 주위를 퍼덕이면서
날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운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면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지요.
우리는 잠자고 나면 "사라지는 것의 홍수 속에서 사는 것 같다" 아귀 다툼은 계속 하면서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에 보면 "보션 말"이란 말을 보면 보선은 그 이전부터 생겨난 것같고
혹자는 고려 시대 부터 신었다 하기도 하고 문헌상에 족의(足衣) 또는 족건(足件) 이라 했다 하고
누빈 바느질이 대각선인 "오목버선"과 누빈 바느질이 직선인 "타래 버선"이 있었다지 않는가
버선 양볼에 수를 놓고 버선 코에 색실로 수를 놓았으니 요즘 멋쟁이들이 들고 다니는 명품이라는 것은
태양 앞에 촛불 같은 것이라 생각 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왜 퇴출 시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군대 생활 할 때 1년에 몇 개 지급되는 면양말이 있었는데 품질이 아주 별로 여서
며칠만 신으면 발 뒤꿈치가 빵구가 나는데 발바닥이 시려워 발 뒤꿈치 부분이 발등으로 오도록 신으면
상대적으로 약하게 직조가 된 발등 부분은 무지막지한 훈련의 무게를 못 견디고
하루면 빵구가 나는데 2-3일 후엔 두 토막이 나곤 했다.
"인수분해"라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양말의 이등 분해"라니 군대 같다 온 동지들은 십분 공감 하리라 믿는다
남자들에게 있어 군대 얘기라면 누구에게나 거절할 수 없는 그윽한 얘기가 한 말은 될 터인데
이런 군대 친구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등록금 월사금 향토 장학금 책값등을 부풀려서 용돈을 풍족하게 쓴
아버지의 속을 많이 상하게 한 친구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사람이 되어 오라고 군대를 보냈다.
군대를 보내고 난 후 아버지는 혼자서 많이 울었다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도 군대간 후
석 달이 넘게 연락도 없고하여 시원한 마음은 걱정으로 변하였다.
말썽쟁이 자식놈이 군대 간지 넉 달만에 편지가 한 통 왔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랑하고 존경 하는 아버님
아버님이 사람되어 오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하루도 잊지않고
훈련에 집중한 결과 훈련 성적이 좋은 훈련병들만 배속 된다는
"기병대"에 배속 되었습니다
아버님 여기는 무장을 할려면 돈이 필요 합니다
아래와 같이 청구 하오니 속히 돈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아 래
말값(馬代).......... 150만원
소 총...................30만원
철모 ...................20 만원
총계 200 만원
P .S 다른 아이들은 벌써 말을 사서 말을 타고 훈련 하는데 나는 말이 없어
발로 뛰어 다니기 때문에 발이 심하게 부르 텄슴
197**.*> * 사랑하는 아들 올림."
아버지는 추신 항목 다른 아이들은 말타고 다닌는데 자기 아들만 뛰어 다닌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무장비용 200 만원에 용돈 암만을 더해 한국에서 제일 빠른 송달 수단으로
현금이 전달 되었다
이와같이 하사금을 받을려면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게 중요하다
60년대 만해도 중국 음식점은 거의 "화교""들이 운영 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드신
마나님들은 거의 ""전족(纏足)을 하고 있어 뒤뚱 뒤뚱 몹시 힘겹게 걸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볼 수없으니 10세기경 중국의 시인""이유"'가 궁녀 ""예낭의 발을
비단으로 싸서
요즘 말로 발레리나들이 신는""토우 슈즈"' 처럼 만들어서 황금으로 만든 연꼿 대좌 위에서
춤추게 하였다는데서 연유 했다고 한다
""금병매""나 ""수호지""에는 반금련(金蓮)이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름의 내력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연꽃 위를 걸어 가는 참외 씨같이 생긴 작은 발 그당시 에는 미인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는데 양귀비도 전족을 했다죠
홍콩배우"왕조현"'이 출현 하는 "반금련이 있었지 않는가 바람둥이"서문경과
질타하게 노는..
어떤 의학자가 세계각국의 여자들의 수치심을 느끼는 신체 부위가 어떻게 다른가
연구 하던 중에 중국 여성들이 유일 하게 ""발에서 수치심을 많이 느꼈다는데
이 전족과 무관 하지 않다고 생각 된다
전족의 유래가 중국에 여자가 귀해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설도 있고
전족을 하면 발이 10 쎈치 안짝으로 밖에 성장하지 못해 걷는데 힘이들어
허리가 단련되고 성적 명기가 되거나 발이 작으면 성기도 멋지다는
남자들의 탐욕의 결과라고 하기도 하고...
요즘에는"직조 기술이 발달하여 세탁 후 다림질 하지 않고 바로 입는 천도 많이 보급되고
옛날에는 세탁기가 없기 때문에 손빨래 하는고생이 말이 아니었고
세탁 후에 빳빳한 기운이 오래가게 하기 위해""풀""을 먹이지 않았는가
그 공정이 복잡 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특히 시집 온 ""며느리""들의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고추 당초 매운 세월은 요즘 며느리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었겠나
너무 괴로운 세월이었기 때문에 부억에서 ""시어머니 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어린 나이에 담배를배운 며느리가 많았다는데....
어떤 며느리가 있었다 주체 의식이 꽤 높은 며느리었던 모양이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당시 사회 풍조로 보아 부딪치거나 공격하거나
하는 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던 시절이다
시어머니 의 속옷 빨래도 물론""며느리""의 몫이다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 에게 간접적으로 저항 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당시 여자의 속옷은 젊은이나 늙은이나 요즘 ""팬티 같은 것은 없었고
""속속곳"" 단속곳""같은 속옷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삼베""또는""모시""같은
올이 굵은 베로 만들어야 시원 하기도 하고 살에 달라 붙지도 않았는데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삼베로 만든 속옷에""풀""을 최고로 쎄게
먹였다는 것 아닌가 늙었다고는 하지만 여자의 부드러운 속살을
쎄게 풀먹인 칼날 같은 삼베가 시어머니의 속살에 상처를 주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며느리의 이런 ""레지스땅스""정신이 오늘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손바닥에
놓고 쥐락 펴락 하는 시대가 오게 한 것은 아닌지..
요즘은 이혼율도 높고 고부간의 갈등도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이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나 시집을 증오 하는 일도 많아""시"(媤)자 붙는 것은 무조건 싫어하여
"시금치""도 안먹는다는데 어떤 부부가 견디다 못해
이혼 법정에 섰는데 자녀 양육 문제로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결론이 부인이 자녀를 양육하라는 쪽으로 기울게 되자 이 불쌍한 남편
아래와 같이 항변 한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판사님
어떤 남자가 자판기에""코인""을 넣고 콜라를 눌러 콜라가 나왔습니다
그 콜라는 ""자판기""의것입니까 동전을 넣은 그 남자의 것입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굉장한 처녀 미인 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그 선생님 집은 솟을 대문 비슷한 문이 있는 옛날식 집이었는데
반장등 간부 몇명이서 선생님 댁에 초대되어 그림 숙제를 한 기억도 나는데
그 선생님 옷차림이 상의는"'하얀 저고리 하의는 ""벨벳""치마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고
뒤에 종아리 쪽에 꿰맨 자국이 발 뒤꿈치까지 가는 구식 ""살색 스타킹..
그 당시 최고 처녀 멋장이의 차림새가 그러 하였다
얼마 전 부산에 북측 선수단 응원단이 왔을 때도 그런 비슷한 차림세가
북쪽에서는 유행인가 보던데...
나중에 꿰맨 자국이 없는 심레스(SEAMLESS) 스타킹이 나와 대체 되긴 헀지만
어린 마음에 어찌그리 아름다워 보였던지
70년대엔 살색 스타킹 위에 축구선수들이 신는 것같은 흰색 스타킹을 덧신는 것이
유행인 적도 있었지 않는가
한 때는 중고등 학생들간에 ""일본에서 20여년 전에 유행한 ""루스 삭스""라고 하여
흰색 양말이 규격보다 큰 것을 선택해 축 늘어진 그런 것이 잠간 유행하기도 했지요
이 스타킹의 올을 자세히 보면 잠자리의 날개와 흡사하다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릴적 개천에 나가 잠자리 잡던 기억 하나
잠자리 중에서도 작은 ""실 잠자리도 있고 방망치(방망이의 아랫녁 사투리) 잠자리 같이
쟘보 잠자리도 있는데 이방망치 잠자리가 교미 중에 있는 것을 잡는 것을 애들은
대단하게 생각하였는데 이것을 애들말로""버스""라고 하였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옴니버스""라는말의 준말로 생각되더라
그 큰 말잠자리 중 숫컷은 가슴 부위가 푸른 색인데 대체로 흔한 편이었고
암컷은 가슴 부위가 초록 색인데 그 개체 수가 심히 귀하였다
그 말잠자리를 잡을 때 잠자리채로 잡는 애들은""하수(下手)에 속하고
쉽게 잡히는 말잠자리 숫컷의 가슴에 호박꽃 암술의 노란색을 칠하면 초록색으로 변하여
졸지에 숫컷이 암컷으로 돌변 하는데 성전환된 말잠자리의 다리에 실을 묶고
1미터 쯤되는 막대기에 묶어 흔한 숫컷을 유인하여 잡았던 기억들...
잠시 속옷 얘기를 더하고 마치기로 하죠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지금 우리가 걸치고 있는 옷은
국적이 전혀 없는 옷이라는 것에 관심도 없이 우리는 흘러가고 있다
또한 이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들이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소이이기도 하다
서양의 옷은 볼륨을 좋게하고 ""실루엣""이 들어나게 하는""렐리프(돋을 세김"")같다면
한복은 볼륨을 감추는""음각""같다고 할까
한복 치마는 통이커서 푹 퍼진다면 일본의 기모노(着物)는 통이 너무 적어
앉을 때 책상 다리를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앉게 구조가 되어있고
걸을 때도 종종 걸음을 걷도록 되어있다
오늘의 ""팬티""같은 역할을 하는""다리 속곳"이 있었는데 밑이 터져 있어
용변이나 성관계를 할때 편하도록 했다고 한다
사대부와 같이 "뼈대 있는집에서는 성관계 할때도 가급적이면 옷을 입고 하라는
권장사항 이었다는설도 있다
이는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도 ""내우 "했다는 뜻이 아닌가
다리 속곳 위에 ""속속곳"" 그위에 "'고쟁이"" 그 위에 단속곳을 입었다는데
단속곳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옷이기 때문에 가급적 좋은 천으로 만들었다 한다
""무지기""라는 우리의고유 치마가 있는데 들어 보셨나요
""길이가 각기 다른 치마 여러 층의 치마 겉치마 폭이 푸""하게 퍼지도록
서양의""페티코트""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치마
치마 끝에 무지개빛 물감을 들여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와 비슷한 열두폭으로 만든 왕족 들이 입었던 ""대슘치마""도 있었다 하고..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보면 ""주인공 여자""비비안리""가
파티에 입고 가기 위해""크리놀린(CRINOLINE)치마를 입는데
흑인 하녀가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크리놀린은 말총으로 ""틀을 만든 스커트를 부풀게 만든 딱딱한 페티코트다
""페티코트 작전""이란 전쟁 영화도 있었다 말총이란 말 꼴랑지 털을 말함이 아닌가
바이오린 줄도 이것으로 만든다는데..
동서양을 막론 하고 이와같이 여자의 멋을 위해서 ""후까시""가 유행 하면서
낭비도 불사 하였다 1840-1860년 대에 대 유행한 서양의 이 치마들은
한 개를 만들기 위해 30마 무려 27미터 정도의 천이 필요 했다는 것 아닌가
조선시대 어떤 선비가 쓴 글을 보면 정을 준 여인이 헤어지면서
버선 한 짝만 남기고 가니 바위가 갈라진 틈에서 봄만 되면
보선 모양의 버선꽃이 핀다 그런 글이 있다
그 당시의 버선은 요즘 연인들이 쓰는 손수건 보다 더욱 애틋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 된다
경칩도 내일 모래로 다가 왔네요 화동미전에 참여는 못하지만 나도 내년쯤에는
그림을 한번 내보자 독한 마음을 먹으면서 이번 화동미전 전시장에 꼭가는게 금년
목표 입니다
선후배 제현들의 건강한 봄을 기원 하면서
2004.3.2 홍 광 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