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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7
선제에게 (이름이 늘 "황제 알현"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잘 지내었는 지... 서울에서 잠깐 보았을 때 (10분?), 아직도 국민학교 시절 연극 무 대의 주인공으로서 우리를 매료시켰던 외모가 남아있음을 느꼈단다. 난, 네가 탈렌트될 줄만 알았더니 역시 같은 예술(?)의 길인 건축 설계사... 여전히 난 너의 박수 부대란 것을 기억해 줘라. 너의 국민학교 때 상대역을 맡았던 여학생-성이 "주"씨라는 것은 기억이 나는 데-지 금은 어디서 무얼 할까... 나는 WTCA 31차 세계총회 건으로 엄청(?) 바뻤고, 이로 인해 지난주에는 Boston에서 지냈 단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주로 회의-meeting-만 하지). 그래도 유일한 낙은 Boston시장이 자택으로 초대해 요리사를 동원하여 각별히(?) 신경 쓴 옛 동부 전통음식(Old British)이었 고, 또 T.V Soap으로 늘 즐겨보았던 "Cheers"(주인공 여자가 나의 이상형이었고, 내 아내를 "꼭" 닮았거든-내 눈에 보기엔)에 직접 가서 original 맥주잔 (Crystal)을 샀다는 것이지. 몇 일 전 밤에는 아내와 폼 낸다고 그 잔에 한잔하다가 골아 떨어지고 말았지만!-자신의 주량 (?)에 대한 주제도 모르고 (맥주 한잔이 Max.)... Cheers의 주제가 중, "모든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알고, 모든 사람이 당신의 이름(애칭)을 불러 주는 곳..."이라는 가사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옛 순전했던 시절의 얼굴이 있고 추억이 있고 희망이 존재하는 곳, 그 곳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그리워한다. 함께 이 글을 나누는 사랑하는 모든 어릴 적 동기들에게도, 행복한 가정, 그리고 더욱 건강 하시고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워싱턴에서 가을이 깊어가는 새벽 초두에 희돈 추신: 1) 선제야, 나는 11월 8일부터 시작되는 홍콩/마카오 총독 주최의 WTCA Asian Regional Meeting (www.kwtca.org 과 http://www.wtc-macau.com/regional/index.htm)을 주재하러 가는 길에, 11월6일 (월) 밤이나 11월 7일(화)에 서울에 잠깐 머물게 되는 데, 중순 경의 너희 동창회에는 참석하기가 어려울 것 같구나. 만일 너희 동창회가 6일 밤이나 혹은 7일 밤에 열린다면, 나는 여건이 되는 한, 최대한 참석하려고 노력은 해 볼게. 건승해라. 2) 심 상철 동기님, 동기님의 친절한 편지와 안내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특히 오랜만에 동기 들과 함께 나열된 저의 이름을 보니 더욱 더 감개가 새롭습니다. 나의 연락처와 근무처는 http://www.hrd.net/board/lee.html (한글판) http://iserve.wtca.org/board/lee.htm (official/English)입니다. "Good Morning and Good night! (영화 "Truman Show"에서).
2000-11-2
김 은주 동기님 (존대말을 해야하나, 반말을 해야 하나 고민중...) 이번 6일 모임(4회)에 대한 내용을 찾다가 반갑게 너의 글을 읽었단다 (에이, 모르겠다. 자 기도 반말하니 나도 이를 기회삼아...) 내용이 마음에 와 닿고,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여 참 좋은 글이라 느꼈단다. 나와 은주 동기는 한 반된 기억이 없어서, 한국에서 보내준 사진으로야 확인해 보았단다. (보아야 뭐, 모두 젖먹이들이지만...그래도 아주 귀여워 보임) 남 은숙 동기는 잘 아는 데, 대구인가 (사투리가 워낙 강해서)에서 3학년 때 전학 온 후 바 로 오자마자 내 첫 짝꿍이 되었고 (공부는 내가 제일 잘하고 착하였거든-정말! 성적표도 부 모님들께서 가지고 계심), "무지하게 친했는 데(도시락도 늘 바꿔먹고)" 어느 날 갑자기 아 이들이 놀린다고 (너무 친하다고-누구야 누구?), 변심(?)하여 나보고 "앞으로는 멀리 지내도 록" 하제 (웬 가시나가 당시 그렇게 조숙한지 몰라!). 나는 어린 마음에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상처(?)를 받은 셈이지 (그런가?). 이후 속도 없는 나는, 은숙이네 집에 숙제물을 전해 준다는 핑계아래 화해(현대말로 "재결합") 하러 갔는 데, 본인은 없고 오빠이신지 어느 중학 생 정도의 남학생이 아주 예리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줄행랑을 치고 말았지 (나의 진심을 의심하는 눈치였더든. 사춘기 본인의 속된 마음으로 이 순진한 나를 잣대질하다니!). 이후의 기억은 전혀 없는 데, 아마도 은숙이가 말하기를 자기 집에는 "마패"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조상 중에 누가 암행어사 였다나...), 이후 한번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Sad story which is endless. (그리고 4학년때는 다른 여자 짝꿍하고 친하게 되어, 나도 변심했거든) 더욱이 이제는 뭐 해부병리과 의사라고? (나는 아직도 의사를 제일 무서워하거든. 그것도 해부라는 말은 뭔가.....나의 무식을 용서하시길 바람) 그러나 더욱 더 슬픈 일은 (네 경험이 분명히 말하거니와) 아마 은숙이에게 물으면, "그래? 그런일이 있었어? 난 모르는 데?"할 모든 여성들의 전형적인 무관심. 그래서 상처받는 것은 남자라 했는 가.... 정취를 더해 가는 가을의 마지막 달 깊은 밤에 워싱턴에서 희돈 (할 일이 앞에 쌓아 있으면 서도 왜 국민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만사를 제치고 옛날로 돌아가는 걸까?) 추신: 참, 은숙이 부군한테 혹시 항의 전화오는 것은 아니겠지? 비화를 이야기 했다고.. (그 래도 마패만 없으면 무서울 것이 없음)
2000-11-3
남 은숙 동기님; 김 은주 동기님의 글을 통해 아주 재미있게 근황을 들었습니다. 또 저의 공개적 예측(?)대로 전형적인 여자들의 "무관심"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하긴 무슨 상관.....) 그래도 그렇지, 국민학교 졸업 사진첩에 보니 연극 같이한 사진도 크게 있더구만 (나는 햇님, 은숙 동기님은 별님, 아, 그리운 옛날이여!). 지금도 생각나는 은숙 동기님의 Trademark는 두 개의 "토끼 이빨"이었습니다. (사실 예쁘 다는 생각보다는, 언제든지 "흉기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요). 고백컨데-또한 은숙 동기님으로 부터의 어릴 적 경험한 실연(?)에 대한 통렬한 복수를 겸해 -, 제가 내 인생의 첫 번째 사랑(?) 편지를 보냈던 사람은 "오 혜경(은석 국민학교. 그리고 아마 성신여고로 갔다던가)"였는 데, 제가 사춘기 중학교(남녀공학) 시절 총학생회장하면서 엄청 좋아했었지요 (아직도 이로인해 우리 아내의 놀림감-채였다고-이 될 뿐만 아니라, 한 번도 다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반드시 그러한 날이 오겠지요.-그러니, 제가 남 은숙 동기 님에게 "기억되지 않는 남자(?)"로 치부된다 해도 무슨 상관...(여자는 자기를 좋아(?)했었 다고 믿었던 남자가 이러한 반응을 보일 때 가장 속상해 한다면서요? -심리학 개론) 은숙 동기님, 무엇보다도 진정한 여성의 실체를 찾고, 또 성취해 가고 있는 동기님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 냅니다. 역시 부군께서는 행운아였을 뿐 아니라, 각별한 선별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 니다. (그래도, 아직 졸업도 안했는 데 데려가는 것은 미성년자 보호법과 공정거래/경쟁법에 저촉되지 않는가? 더욱이 우리 또래들에게는 경쟁의 기회도 없이...비슷한 또래를 좋아한 경 험-특히 짝사랑-이 있는 남자들은 이 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가슴 절절이 이해되실 겁니다.) 이제, 모든 순전했던 시절의 동기들에게, "보고싶다는 말"보다는 "Ditto"(영화 "Ghost"의 남 주인공 대사)라는 한마디로 저의 마음을 가득 실어 보냅니다. 건승하십시오. 추신: 1) 저의 아내가 외국인인줄로 동기들이 오해하는 것 같아 사진을 과감히(?) 공개합니다. 저의 유럽 유학시절에 만나 (돈 없고 별 볼일 없던 고학생 시절), 꿈을 나누며 모든 어려움 을 기쁨으로 받아준 아내가 너무 고마워, 제가 정기적으로 준비하는 "결혼 기념일" 행사에 서 촬영한 것 입니다. 아이들은 은혜(Grace)-딸/은준(Jonathan)-아들이지만, 저도 이미 대학 생 딸(?) (미국계 양녀-그래서 제가 오해도 받는답니다)이 있고, 또 이번에 새로 입양할 아 이(3살 가량/Eunice-한국계)도 있으며, 앞으로 12명의 자녀(?)를 갖는 것(입양)이 목표입니 다. 아마 모든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내서인지, 저는 그 어느 순간에라도 아내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그 사람이 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사실"이 삶을 늘 풍성하게 하지 않습니까?) 2) 이 서신 쓰느라 지금 주요 staff meeting조차 연기하고 있는 데, 아마 한글을 몰라서 그 렇지, 알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걸요? 즐거운 하루 하루 되십시오.
2000-11-4
동기님 (4회); 제가 동기님에게 보내드린 서신을 보고 저의 중학 동기(한국의 표준형 아줌마-고 3 남학생 을 아들로 거느린)가 이렇게 귀한 서신을 보내왔지 뭡니까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녀(?)의 섬세함과 더불어). 이어지는 글은 그 서신에 대한 저의 답신입니다. 모두 더욱 아름다운 날들을 맞으십시오. ************* > 온 세상이 이리도 곱고, 화창한 날에 > "가을동화"를 읽으니 > 하나도 안 슬프고, 너무 재미있어서 > 2000년의 가을을 못 잊을 것 같은 > 예감이 드는군요. (중략) 제 첫 사랑 (서신 보낸 동기의 짝이었음)에 관한 자세한 정보 (그러나 이미 지나버 린 중학교 시절의 것만)와 더불어...(옛 친구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 아련한 추억은 언제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철모르던 시절의 풋사랑은 나이가 들어도 멀어져 가지 않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비로서 배운 것은 "사랑은 6일의 추억으로 10년을 사는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사랑의 추억은 언제나 마음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종종 세상사에 지쳐있다가도 그 순 전했던 시절, 그 자리에 다시 돌아가 설 수 있게 도와줍니다. 밤에 쓴 시인의 인생론처럼, 이제 그 사랑은 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 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슴 아파하고 긴 밤 세웠던 그 까마득한 옛 성장의 기억은 이제는 너무나 소중한 내 삶의 기록이 되어 우리를 풍성하게 합니다. --뉴욕 허드슨 강가 (WTC 뉴욕본부)에서 희돈
2000-12-24
서신 I: 사랑하는 딸 은혜(13세)가 아빠의 글에 대한 답신으로 보내준 성탄절과 새해 선물입니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날들이 되십시오. "당신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첫 번째 남자였어요 그 것은 순수하고 꾸밈없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진 선물이예요."-내용 중에서 You were my hero Not like all the rest When it came to fathers You were always the best. You were a teacher Like none I've ever known Teaching that reaping comes From the seeds that are sown. You were my best pal My first real friend You remained that to me Until the very end. You were the first man That taught me about love One pure and simple Sent from God above. You were the man To all others I would compare You placed the stars in my eyes.. That makes me shine.
서신 II: 사랑하는 딸 은혜(13세)가 아빠의 글에 대한 답신으로 보내준 성탄절과 새해 선물입니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날들이 되십시오. "가족끼리의 사랑이란, 장난스럽고 짖궂은 놀림과 그들 외엔 이해하지 못하는 긴밀한 웃음가운데 존재하는 것이예요."-아래 내용 중에서 Love means so many things... It means trusting myself with someone who has seen me at a my worst and loves me anyway. It means teasing each other and laughing at inside jokes that nobody but us understands. It means feeling safe enough to talk about anything and having the patience to work out disagreements. It means counting on someone who sympathizes when I've had a bad day, worries about me when I'm gone too long, and always welcomes me with open arms. Love means so many thing... Because, to me, love is you. 아빠,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언제나 저는 아빠와 엄마를 생각해요. 기억하세요, 아빠.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으며 어떠한 일에도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Dad, everytime when I read this poem, it makes me think of you and mommy. Remember, Dad, "love never fades away. No matter what happens." -Grace.
2000-12-5
<감사의 계절에 가지는 단상>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가에 대한 작은 되새김입니다. 오늘 아침 당신이, 잦은 병 치레 속에서라도 맑은 의식 속에 눈을 뜰 수 있었다면, 이는 한 주마저 온전히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갈 수백만의 사람들보다 축복되어졌음을 의미합니 다. 만일 당신이 전쟁의 위험과 감옥의 외로움과 고문의 고통, 그리고 기근의 참담함을 경험하 지 않았다면, 이는 당신이 현재도 이러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전 세계 5억의 사람들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당신이 핍박과 체포와 고문과 죽음의 위협 없이 교회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최소한 전 세계 30억 인구보다 축복되어 졌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만일 지금 당신의 부엌에 나눌 음식이 있고, 장롱에 입을 옷이 마련되어 있으며, 머리라도 가려줄 지붕이 있는 처소가 있다면, 당신은 전 세계 75%의 인구보다도 훨씬 부자임에 틀림 이 없습니다. 더욱이 당신이 작은 예금통장과 더불어 오늘 쓸 용돈이 지갑에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종종 거스름 동전으로 모아 둘 저금통이 있다면, 당신은 전 세계 최고 8%에 속하는 부자임에 틀 림이 없습니다. 만일 당신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또 두 분이 일생을 회로한 분들이라면, 무너져 가는 주위의 가정가운데서 당신은 너무나 진귀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오늘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 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지 않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참으로 축복되 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주변의 힘든 이웃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며, 또한 가슴 가득히 품어줄 때, 당신 은 이미 남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치료하는 사람으로 축복되어 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이는 지금도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과 또 이 글이 읽혀질 수 있는 소수의 사람 중에 당신이 속한다는 이유 때문에 더 더욱 축복되어졌습니다. 좋은 날 되시고, 당신이 가진 축복을 하나 하나 기억해 가면서, 우리가 얼마나 축복된 삶을 사는 가를 서로에게 일깨워 주는 아름다운 사랑의 나눔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축복하기 위해서 축복되어 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 은혜(Grace)의 13회 생일날 (12월 3일),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질 크리스마스 선물을 함께 마련하며...(Trans. and Rearr.by David H. Lee)- 추신: 은혜야,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지? 내 생명보다 더! 그러나 기억해두렴, 엄마보다는 언제나 나중이야!
2000-12-17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줄 아는 이유>> 세상 아름다운 여자의 표준은 우리 아내이다. 아내와 닮으면 미인이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나의 유일한 미의 척도이다. 세상의 모든 유행가를 나의 이야기로 만든 후, 일시에 용도 폐기케 한 여자. 나는 유행가를 잊었다. 그녀는 나의 노래이다. 그녀를 안을 때마다 첫날밤의 열기를 느낀다. 내 인생 첫 번째 입맞춤의 여자, 내 아내. 아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 주겠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내가 싫어하는 일들은 결단코 하지 않겠다. 5분 이상의 말다툼을 끌어가지 못한다. 내 인생의 기쁜 순간마다, 힘든 시절을 같이 보내 준 아내와의 가난했던 행복이 떠오른다. 술 찌꺼기를 같이 나누던 아내, 조강의 처. 내 식성은 간데 없고 그녀의 입이 내 입이 되어 버렸다. 15년 결혼 생활 동안 한번도 그녀 외엔 다른 사람에게 머리 손질을 맡기지 않았다. 덥수룩한 나의 머리. 사랑스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녀의 모습을 찾으려한다. 아내를 닮은 아이일수록 더욱 보기 좋다. 아내의 체취를 사랑한다. 떨어져 있는 순간, 그녀가 그립다. 여행 중에도 그녀의 체취 속에서 잠을 잔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알려주고, 달려가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 때마다 그녀와의 풍경이 떠오른다. 사방이 아내와의 추억으로 물들어져 있다. 부모와 아이들은 내 생명처럼 귀하다. 그러나 아내를 위해서라면 그 어느 순간에도 그들에 앞서 내 목숨을 던질 수 있다. 사랑의 숫자는 언제나 하나이다. 그 숫자는 영원히 내 아내이다. 꿈속에서도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용서할 수 없다. 내 유일한 질투의 대상.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다. 아내가 싫어하는 것은 나도 싫다. 좋아하던 것은 좋다가도 싫고, 싫던 것은 싫다가도 좋다. 내 일터에서, 아내로부터의 전화는 언제나 1 순위이다. 어떠한 사람도 아내의 전화보다 우선할 수 없고, 내 매일의 전화를 업무의 이름으로 힐난할 수 없다. 아내에게는 무엇을 해 줄수록 더욱 기쁘다. 아내가 아프면 내가 더욱 더 아프다. 아내를 키워준 처가 식구들이 고맙다. 처형들은 내 아내를 여자 되게 해주어서 더욱 더 고맙다. 아내가 마련해 준 어떠한 옷도 나에게는 최선의 의상이다. 세상의 온갖 화려한 장식도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아픔도 연약함도 나에게는 당당함을 준다. 아내는 나를 성공시켰다.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만났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아이를 낳아주었다. 나는 결혼에 성공하였다. 아내는 나에게 사랑과 행복을 가르쳐 주었다. 결혼이란, 같은 꿈을 가진 반려자의 길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커진다는 것을 그녀의 삶을 나에게 가득 채우며 보여 주었다. 나는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는 줄 안다. -사랑하는 아내의 생일(2000년 12월 18일)을 축하하며, 당신의 형제요 반려자 이 희돈 씀. 추신: 사랑하는 친구들, 친구들의 격려 덕분으로 승진( http://www.hrd.net/board/lee.html ) 하게 되어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고, 또 마침 아내의 생일인 12월 18일부터 새 업무 수행을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답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꿈들 이 서로를 통해 이루어가는 것을 보며 "삶은 어릴 적 꿈에 의해 좌우된다" 것을 고백합니다. 옛 동기들의 가정에 성탄절을 맞아 "하늘에서의 기쁨이 땅 에서도" 있기를 바랍니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2001-1-20
은주 동기; 참 바쁘게 살아왔고 (오래 전엔 고학생으로 각 나라에서 고생도 엄청하며), 지금도 바쁘게 삽니다 (이 곳에선 30분 단위 Meeting 스케쥴에 산답니다). 이 순간도 한쪽으로는 회의/서류를 점검하면서, 그러나 머리에서 맴도는 글들은 바로 기록해 놓기도 하지요. (한글 system을 쓸 수가 없어 서너차례의 conversion을 거치면서도). 좌우명이 "불꽃처럼 산다" "재를 남기지 않는다"입니다. (생각외로 너무 치열하지요?) 멕아더 장군이 군인은 "Honor(명예)", "Country (조국)", "Responsibility (책임)"를 위해 산다고 했는데, 남자들에겐 Honor, Value (인생관/가치관이나 혹은 종교관일 수 있음), Responsibility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무엇을 못한다기보다 (모두에게 똑같은 24시간이므로), 어떠한 "우선순위(priority)"를 가지고 사느냐가 인생을 주관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내 삶의 주요 부분인 동기들은 내 시간 사용의 우선 순위이기도 합니다. 제 건물내에서는 (백악관에서 약 70-80m 거리) 대통령 취임식 준비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고 (내일 저녁 T.V. 중계 준비), 조금있으면 또 어제 처럼 폭죽이 터지기 시작해 세상은 바빠지겠지만, 여전히 동기들은 내 시간 사용의 주요한 부분입니다. 모두에게 가슴 깊은 속에서 사랑을 전합니다. 추신: 워싱턴 시각 금요일 오후 4시 현재, 백악관 앞 Pennsylvania 거리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고, 방금 전 지나간 팡파레 행렬은 다시 조용하기만 합니다 (거리 통제). 그러나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잔치에 흥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나라의 가치를 되새기며, 축제가 끝난 후 이 거리에 서서 조용히 남을 위해 기도하는, "작은 그 한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2001-1-19
Answer: 글도 안올리고 바로 나가 버리는 동기, 바로 너! (It is you!!!!!!!!!!!) 바쁜 나날 속에(모두가 그렇지만) 지나다 보니, 온 정성을 다해 우리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은주의 서신들에 "감상문(?)"조차 올리지 못하였구나-"대답없는 메아리" 그래도, 은주의 서신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여주는 구나 (나는 너의 열렬한 fan이란다. 학교다닐때는 어쩌다 너의 모습이 들어오지도 않았는 지 몰라. 아, 눈이 너무 높았던 나, 그리고 운명의 장난......Oops! 부군께서 이해하겠지?) 이 곳은 대통령 취임식 때문에 더욱 바쁘고, 취임식 당일(이번 주 토요일) 만찬 무도회가 우리 WTC에서 주관하는 관계로 같이 바쁘구나 (나는 춤도 못추면서...) 이전에 Reagan 대통령 부인인 Nancy 여사(우리 이 곳 WTC건물이름이 Ronald Reagan 대통령을 기념한 연방빌딩임)와 저녁 음악회(백악관 첼로 연주)에 참석해, 식사후 식곤증에 졸려서 "고문(?)"당하는 줄 알았는 데...(나도 내 무식의 한계를 모르겠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삶의 행복은 가깝고도 작은 곳"에 있고, 또 그 것을 모르는 우리 인생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란다. 내가 가장 부러운 것은 주위에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고,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을 옆에 두고 사는, 한국에 거주하는 "특권"을 가진 친구들의 모습이란다. 나는 언제나 그런 날이 올 수나 있으려나.... 기회가 되면 한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날도 있겠지하며 위로해 본다. 결심 1: 이제부터는 간단하게나마 은주의 글에 대해 "독후감"을 올리려고 하니, "굳세어라, 은주야!" 결심 2: "은주를 위하여!" (For what??????????????)
2001-1-30
도관이 (풀어쓰면 "도가니"); 지난 번에 너를 보았을 때 너무 미남인 의사분이라 자존심(?)이 한참 상했는 데 (그래도 우리 아내는 내가 최고라고 믿고 사니 무슨 상관?!), 사고방식도 "역시나"구나. 다만 이름이 좀... 먹음직한 "도가니탕"이 생각나는 계절인지라...(한번 한국에 가서 먹어봐야지. 요사이는 웬지 생각도 않나던 한국 음식이 다 떠오르곤 한단다. 나이가 드나....) 하긴 친구의 우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너의 이름을 "도가니"같은 열정의 소지자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은주, 도관이가 아직까지 장가 못 갈 정도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겠냐........ 그리고.... 오늘까지도 방문 안하고 글 안남긴 친구들은 다시 한번 경고성(?) 편지를 받는 수모(?)를 겪도록 해주어야겠다. (사실 내가 2년간 지도 교수에게 매주 Progress Report를 보내, 명색이 세계 최고 석학이라던 분한테, 실력으로 아닌 "질리게 해서" 학위받은 사람이다!) "매 맞고 올래, 순순히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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