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활한 대륙의 미국
면적 : 980만 ㎢(남한 면적의 약 100배)
인구 : 약 3억 2천 6백만 명(세계 3위)
인종 : 백인 80%, 흑인 12.8%, 기타 아시아인 등
수도 : 워싱턴(Washington)
언어 : 영어 <1인당 국민소득: 56.000 USD 환율 : 1달러=약 1.135원(won)
종교 : 기독교(개신교) 52%, 가톨릭 24%, 모르몬교 등 기타 24%
<미국 개관(槪觀)>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유럽 각지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많은 사람들(청교도:Puritan/Pilgrim)이 이주해와 미 대륙 동부의 애팔래치아(Appalachia) 산맥 동쪽에 거주하기 시작하는데 1600년대 초 영국의 식민정치가 시작되어 13개의 식민주(植民州)를 만든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1774년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영국과의 전쟁(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13개 주로 마침내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탄생하게 되며, 국기인 성조기(星條旗)에는 13개 주를 상징하는 별(星)이 13개, 줄(條)이 13개 그려지는데 이후 주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줄 13개는 그대로 두고, 늘어나는 주의 수만큼 별을 더 그려넣어 지금은 별이 50개나 된다.
초대 조지워싱턴 대통령의 지도아래 개척정신(Frontier)의 깃발을 치켜들고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여(西部開拓時代) 국가의 기틀이 잡혀갔으나 16대 링컨대통령 때 이르러 오랫동안 쌓여온 남북간(南北間)의 여러 문제가 불거지면서 갈등이 폭발하여 마침내 남북전쟁(1861년)이 발발하고 5년간의 내전 끝에 수많은 사상자와 경제적 손실을 내고 1865년 북군(北軍)의 승리로 끝난다. 남북간 갈등은 종교와 경제문제 등 여러 가지였지만 북부출신인 링컨대통령이 노예제도를 폐지하자 노예합법화를 고집하던 남부의 반발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겠다.
남북전쟁 이전, 실질적으로 멕시코의 지배를 받던(원주민/인디언) 텍사스지역은 1836년, 소수의 백인 이민자들의 주동으로 혁명을 일으켜 텍사스 공화국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샘 휴스턴(Sam Houston)이 취임하였다. 그 이후, 이 텍사스 공화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오스틴(Stephen Austin)이 미국과 합병을 추진하자 멕시코는 이 지역을 자기들의 영토(Territory)라고 주장하며 개입하여 1864년부터 3년간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 전쟁(멕시코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으로 멕시코는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자신들의 영향권에 있던 대부분 지역을 미국에 넘겨주게 되는데 전쟁 보상금형식으로 일부지역은 강제 매각형식을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텍사스공화국은 텍사스(Texas) 전체와 와이오밍(Wyoming), 뉴멕시코(New Mexico), 콜로라도(Colorado), 캔자스(Kansas)주 일부가 포함되었다니 엄청나게 큰 공화국이었던 셈이다. 전쟁 이후 텍사스공화국은 국무장관이었던 오스틴(Stephen Austin)의 주도(협상)로 공화국 설립 8년 만에 미합중국과 합병하는데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주(州)다.
그 이후 동서 냉전시대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1931년 소련(Soviet Union)이 붕괴하자 미국은 명실 공히 세계 제1위의 나라로,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미국의 지형을 살펴보면 동쪽에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서쪽은 로키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그 가운데 부분은 드넓은 평원(Prairie)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캐나다와의 접경에는 거대한 오대호(五大湖:Great Lakes/미시간, 휴런, 온타리오, 이리, 슈피리어)가 있다.
알래스카(Alaska)는 원래 소련영토였지만 크림전쟁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된 소련이 1867년 미국에 720만 달러에 매각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쓸모없는 땅을 샀다고 매매를 성사시킨 미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가 맹비난을 받지만 그곳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미 본토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1912년에는 미국의 49번째 주(州)로 지정되는데 미국의 주 중에서 가장 큰 주(한반도의 7배)라고 한다. 알래스카는 금 뿐 만 아니라 은, 철광석에 석유까지 무진장 매장되어있어 미국이 노다지를 얻은 셈이다. 매각대금 720만 달러는 100평에 우리 돈 2원....
미국의 50번째 주 하와이(Hawaii)는 하와이왕국이 외국인이 운영하는 사탕수수농장 국유화를 선언하며 미국과 갈등이 생겼는데 미국인 농장주와 미 해병이 쿠데타를 일으켜 농장주 대표이던 샌퍼드 돌(Sanford Dole)이 하와이 마지막 왕인 릴리우오칼라니(Liliuokalani) 여왕을 몰아내고 임시대통령이 된다. 돌(Dole)은 하와이 태생이지만 부모가 미국 이주민인 백인이었다.
돌(Dole)은 정권을 잡자 곧바로 미국에 편입을 요청하고 미국이 승인하는 절차를 거쳐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는데 모든 설계는 막강한 미국이 뒤에서 조종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검은 구름이 하늘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 기대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하와이 민요 알로하오에(Aloha Oe)는 하와이어로 ‘안녕 그대여’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여왕인 릴리우오칼라니(Queen Liliuokalani)가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여왕은 많은 노래를 남겼는데 이 알로하오에는 그녀가 왕녀(王女)이던 시절 승마장에서 목격한 미 해군 보이드 소령과 하와이 처녀가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의 광활한 땅은 유럽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원주민(Native American)들의 땅이었다. 콜럼버스가 처음 이 땅이 인도인줄 알고 원주민을 인도사람(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아메리카인디언(America Indian)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수많은 부족들이 평화스럽게 살아가던 땅이었다. 지금은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산간오지로 쫓겨나고 이주민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주객이 바뀐, 미국 인디언들의 비극이다.
끝없는 벌판의 텍사스(Texas)
<1> 텍사스 이모저모
끝없는 텍사스의 목화밭
2009년 2월 말, 나는 4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3월 10일, 미국 텍사스주 서북부의 작은 도시 러벅을 방문하는 기회가 생겼다. 러벅에 정착한 딸의 둘째아이 첫돌과 집사람의 환갑이 거의 같은 3월 말이고 또 나의 정년퇴직까지 겹쳐 이래저래 복합적인 목적의 여행이 된 셈이다. 꼭 3개월 간을 러벅에서 머물며 텍사스 주와 인근의 뉴멕시코 주의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 볼 기회가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텍사스는 면적이 77만㎢나 되어 미국에서는 알래스카 다음의 두 번째로 넓은 주인데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거의 8배나 되는 셈이다. 텍사스는 미국이 독립한 후에도 얼마동안 멕시코 땅이었고 수많은 전투 끝에 결국 미국 땅이 되어버린 역사 때문인지 멕시코 풍의 건물, 중남미인들(히스패닉)이 많은 편이고 안내판이나 책자 등에도 거의 영어 밑에 스페인어를 같이 표기하고 있었다.
텍사스는 북쪽으로 오클라호마(Oklahoma), 서쪽으로는 뉴멕시코(New Mexico), 동쪽으로 루지아나(Lousiana)와 아칸사(Arkansas)주, 남쪽으로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바다 및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인근의 루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조지아주와 함께 미국의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미국인의 남부 기질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주도(州都)는 오스틴(Austin)이며 교통의 중심이자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수의 흉탄에 쓰러진 동부지역의 대도시 달라스(Dallas), 그리고 남부에는 관광도시 샌안토니오(San Antonio), 항공우주센터가 있는 휴스턴(Houston), 멕시코 및 뉴멕시코 주와 바로 인접한 남서쪽의 끝에 있는 요새도시 엘 파소(El Paso), 그리고 북부 고원지대의 도시로는 아마릴로(Amarillo), 그리고 그 조금 아래에 위치한 대학도시 러벅(Lubbock) 등이 주요도시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미국의 서부영화라고하면 주로 텍사스, 애리조나 지역이 등장하고 카우보이와 갱들, 커다란 밀짚모자(솜브렐로)를 쓴 멕시코인, 보안관, 소 떼와 말이 연상되는데 이곳이 바로 그 서부영화의 무대였던 셈이다. 텍사스 주의 별명은 'State of Lone Star'로 엠블렘은 초승달과 별이 있는 벌판에 말 탄 카우보이가 있는 그림이고 주기(州旗)는 삼색바탕에 커다란 별이 있다.
옛날 서부를 Wild Wild West 라고들 부르던 기억이 있는데 내가 본 서부는 Wide Wide West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었다. 러벅에서 댈러스까지 자동차로 6시간 정도 걸리니 동쪽 주 경계 부근인 텍사캐나(Texarkana)까지는 8시간도 넘게 걸리고, 북쪽으로도 4시간, 남쪽 바다를 보려면 8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하니 주가 아니라 국가라고 해도 큰 나라인 셈인데 아무리 달려도 산이나 강이 나타나지 않는다. 끝없는 평원이 계속되고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2~3시간 달려도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의 연속이며 일직선의 도로가 지평선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마을이라도 있으면 그 근처는 목초지나 목화밭으로 일구어져 있고 나머지는 그냥 황량한 황무지이다.
텍사스 북부지역은 대부분이 고원 평원지대이며 기후는 사막기후와 비슷하여 햇볕은 뜨겁고 강하지만 매우 건조하여 그늘만 들어서면 시원한 느낌이고 땀이 잘 나지 않는다. 따라서 메마른 땅에 적응한 쓸모없는 잡초만 흩어져 있고 목초지나 목화밭이 있으면 틀림없이 커다란 바퀴가 수없이 달린 엄청나게 거대한 움직이는 급수시설이 꼭 있다. 목화밭이나 목초지는 물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 가는 곳마다 드넓은 목장(Ranch)이 눈에 들어오고, 소와 말들이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가장 넓은 목장은 우리나라 경상남도의 넓이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넓은 황무지에는 곳곳 마다 수많은 기름 퍼 올리는 기계들이 꺼떡거리고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탓으로 엄청나게 큰 바람개비가 돌며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수없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풍부한 자원 때문인지 주 재정이 매우 탄탄하여 소득세(Income Tax)를 부과하지 않아 봉급쟁이들에게는 천국이라는데 텍사스 토박이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매너가 다소 거친 편으로 치부되는데 북부 출신들은 텍사스인들을 촌스럽다고 깔보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2> 대학도시 러벅(Lubbock)
러벅 주택가 연못에 날아든 겨울 철새들
내가 3개월 동안 머물었던 러벅은 텍사스 서북부의 자그마한 도시(인구 30만 정도)인데 사위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텍사스 주립공대(Texas Tech)가 있다. 말이 공대이지 10여 개의 단과대학에 학생수만 4만 여명, 교수들도 1천명이 넘는다. 텍사스 주립대는 주도인 오스틴에 있는 Texas Austin과 러벅에 있는 Texas-Tech으로 나누어지는데 학과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에서도 상당히 상위권에 드는 대학이다.
러벅은 다른 산업시설은 거의 없고 도시 전체가 텍사스공대(Texas Tech)로 인해 형성된 도시로 보였다. 대학 캠퍼스는 엄청나게 커서 걸어서는 도저히 다닐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대학 목장까지 포함하면 미국에서 가장 넓은 캠퍼스를 자랑한다고 한다. 건물들도 굉장히 아름답고 특징을 살려 아기자기하게 지었다는 인상이었다.
러벅은 미국에서 술을 팔지 않는 몇 안되는 도시 중의 하나(Dry City)로 유명했는데 내가 있는 동안 주민 투표를 거쳐 팽팽한 격론 끝에 결국 술을 팔기로 결정이 되었고, 일부 사람들이 이에 불복하여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웃기는 것은 사위와 함께 술을 사러 시 외곽으로 몇 번 갔었는데 30분쯤 달려 시의 경계선에 오면 시 경계 바로 너머에는 휘황한 불을 밝힌 술가게와 술집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러벅 사람들은 수시로 이 경계를 넘어와 술을 사 가는데 한 번 올 때마다 몇 박스 씩 사가는 모습이었다.
러벅은 한국 사람들이 150여 명 거주한다고 하는데 한인침례교회(Lubbock Korean Baptist Church)에 많이 나와 친교를 나누고 있었고 또 이 교회의 시설을 빌려 러벅한글학교도 운영하고 있어 내 전공을 살려 ‘교가’를 만들어 주고 한국동요 25곡 쯤 기억을 되살려 채보하여 주고 온 것에 보람을 느낀다.
<3> 비극의 현장 댈러스(Dallas)
케네디 암살 장소/ 7층 건물의 교과서 창고
댈러스는 국제 공항(Fort Worth)이 있는 대도시로 휴스턴에 이어 텍사스 제2의 도시이다.
인구 130여 만의 댈러스는 크게 국제공항이 있는 포트워스와 다운타운으로 구분되며, 미국 남서부지역 문화와 패션의 중심이라고 한다. 1963년 미국 제35대 케네디 대통령 암살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달라스는 비극의 현장이었던 다운타운의 텍사스 교과서 창고(Texas School Book Depository)를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메모리얼 광장(John F. Kennedy Memorial Plaza)이 있고 건물 1층은 법원 건물로, 오스월드가 총을 쏘았던 6층은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6층 전체가 기념관으로 꾸며져(Six Floor Museum)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인근에는 텍사스 최초의 집이라는 오두막(Oldest House)이 있고 또 서부 개척의 시발점이 되었던 유니언 철도역에는 지금도 열차가 다니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어마어마한 하얏트 호텔의 28층 타워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댈러스의 다운타운은 고층건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운타운에서 조금 벗어나면 100여개의 점포가 모여 있는 아울렛(Outlet) 매장이 있었는데 유명 브랜드의 명품들을 좋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승용차로 6시간 거리의 러벅에서는 댈러스에 오는 사람만 있으면 꼭 여러 집의 부탁을 모아 주로 식 재료를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가서 나누어 준다고 한다. 러벅에도 수많은 식료품 가게가 있건만 댈러스가 값도 싸고 더 품질이 좋다나....
<4> 그림 같은 도시 샌 안토니오(San Antonio)
미국의 자존심 - 샌 안토니오의 알라모 요새
샌 안토니오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알라모 요새가 있는 텍사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로 2월 초에 갔는데도 따뜻한 날씨로 반팔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곳은 원래 멕시코 땅이었던 까닭으로 건물들이나 도시모습 전체가 미국이라기보다는 멕시코에 가깝다고 하겠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유명한 리버 웍(River Walk)으로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은 도시 지표면보다 5~6m 낮아서 계단을 통하여 강변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강변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들어차있고 수많은 아름다운 다리는 물론, 건물 밑까지 배가 들어간다. 폭이 5~6m 정도로 꼬불꼬불한 운하는 양쪽으로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고, 작은 관광크루즈가 쉴새없이 다니는데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줄 뒤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8달러 50센트를 받는 관광크루즈는 45분정도 도심 가운데 운하를 도는데 저녁이 되면 운하 양쪽에 들어서 있는 수많은 까페와 노천 음식점들은 오색 불빛을 밝히고 손님들이 넘치고 있는데 4~6명으로 구성된 마리아치(솜브렐로를 쓰고 멕시코 전통 복장을 입은 악단)들이 식당을 돌며 기타와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경쾌한 멕시코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이색적이었다.
다음 날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비극의 현장 알라모 요새를 관람하였다. 18세기 초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전도소로 지어졌던 알라모(Alamo)는 수도회에서 이지역의 전도를 포기하자 스페인(사실 멕시코)이 점령하여 요새로 사용했는데 이곳 주변에 미루나무가 많아 미루나무라는 의미의 알라모(Alamo:스페인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1835년 12월 텍사스 의용군 부대는 멕시코 군대를 몰아내고 알라모를 되찾는데 샘 휴스턴을 비롯한 미국의 텍사스 지도층은 이곳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철수 하지만 의용군들은 끝까지 사수하기로 하고 철수를 거부하였다. 1836년 2월 23일, 멕시코의 ‘산타 안나(Santa Anna)’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정규군의 대 공세가 시작되자 의용군을 이끌었던 ‘제임스 보이(James Bowie)’ 대령과 ‘윌리엄 트래비스(William Travis)’ 대령은 183명의 의용군을 지휘하여 5.000여 명의 멕시코 군과 14일 간이나 저항하다가 전원이 전사한다.
이 알라모 전투에서 멕시코는 1.000~1.600명의 전사자를 냈다고 한다. 이들이 알라모 요새에서 14일 간 버티어 준 덕분으로 샘 휴스턴 장군이 이끄는 미국 정규군은 방어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었고, 결국 멕시코 군을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 전쟁 결과로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일부의 엄청난 땅이 미국 영토가 되었고, 그 이후 알라모는 텍사스 인들의 자랑이자 영웅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사자들 전원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매월 첫 토요일은 그날을 기념하여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의용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당시 사용하였던 각종 무기들을 보여주고 행진하는 모습도 보여 주는데 내가 갔던 날이 마침 2월 첫 토요일이라 운 좋게도 수많은 관광객과 함께 모든 것을 보고 즐길 수 있었다.
당시 전투에서 어린아이와 여자들 8명이 살아남았다는 조그만 방, 수많은 당시의 유물들을 전시한 몇 개의 방과 꽤 넓은 안마당, 외벽 등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알라모 요새 앞의 거리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넘치고, 길거리는 예쁘게 치장한 꽃마차 여러 대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었으며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차 있었다.
또, 근처의 자그마한 공원에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 기념 조형물이 있었는데 한국전 참전기념 조형물은 겨울철인 듯 참호 속에 두터운 방한복을 입은 미군 두 명이 피로한 표정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어서 가슴이 쓰라렸다. 그 둘레로는 전사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쓰여져 있고... 한국전쟁에서 미군 5만여 명이 전사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샌 안토니오는 지극히 멕시코적인 도시모습으로, 또 미국 자존심의 대명사인 알라모 요새로 미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
<5> 남부의 대도시 휴스턴(Houston)
남부의 대도시 휴스턴 중심가
휴스턴은 1823년 멕시코 ‘산타 안나’ 장군의 침공으로 크게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도시로 휴스턴 장군의 이름에서 도시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인구는 200만 정도인데 인근의 중소도시와 합친 대도시권은 400만 이상으로 남부 최대의 도시라고 한다. 또 남쪽 멕시코만 근처 35km 지점에는 유명한 미우주항공국(Nasa:Space Center)이 있다.
휴스턴은 또 석유화학, 쌀과 목화 생산지, 목축산업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스포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다운타운은 엄청난 고층건물이 즐비하며 초기 정착민들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공원(Heritage Park)도 다운타운에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교육과 시민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었다.
내가 갔던 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미항공우주국으로 가는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NASA 관광을 포기하고 그냥 다운타운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미국 남부는 대부분 침례교회(Baptist Church)가 차지하고 있는데 오후 3시 쯤 다운타운을 걷다가 웅장한 성당이 보이길래 들어갔더니 마침 미사를 하고 있어서 참례하였다. 미사를 드리면서 보니 신부님과 100여 명의 신도들이 아시아인들로 보였는데 강론말씀이 영어도, 일본어도, 중국어도 아닌 것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물어 보았더니 베트남인들 미사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베트남인들이 휴스턴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6> 팔로 듀로 캐년(Palo Duro Canyon)
팔로듀로 캐년의 자랑 - 등대바위(Light House)
팔로 듀로 캐년은 러벅에서 3시간 북쪽으로 달리면 ‘캐년(Canyon)’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인근에 있는 주지정(州指定) 공원으로 거대한 계곡이다.
여기서는 텍사스의 그랜드 캐년(The Grand Canyon of Texas)이라고 자랑하며 그랜드 캐년에 이은 미국 제2의 캐년(溪谷)이라고 자랑을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정도는 아니었어도 아무튼 엄청나게 규모도 크고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러벅에서 출발하여 네비게이션에 의하면 분명 근처까지 왔는데도 전혀 산이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평지에서 아래쪽으로 계곡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랜드 캐년도 그런 식이었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계곡은 웅장하면서도 그랜드 캐년과는 다른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전망대 부근의 기념품가게를 겸한 안내소에 들어갔는데 이 계곡은 1만 2천년 전에 형성되었다 하고, 돌화살촉 등 선사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아파치(Apache)와 코만치(Comanche) 인디언들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인디언들이 살고 있지 않지만 가게를 가득 채운 기념품들은 대부분 인디언들에 관한 것들이었고 그들의 생활모습과 과거의 유명했던 전투 모습들을 비디오로 설명을 곁들여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면 무조건 국립공원이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크다보니 주립공원으로 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 전망대에서 차로 30여분 골짜기를 내려가면 계곡의 바닥에 닿게 된다. 물은 작은 개울정도가 흐르는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계곡 바깥과는 다르게 나무들이 무성하고 제법 사람들이 살만 하겠다 싶었지만 무척이나 덥고 메마르기는 마찬가지다.
계곡의 극히 일부분만 차로 돌아보도록 개방되어 있는데 주로 학생들의 캠프장 시설이 들어서 있었고 기념품 가게라고 조그만 것이 있었지만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계곡 속에서 쳐다보면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모습에 눈이 어지러운데 뜨거운 햇살아래 높다랗게 자란 선인장들 사이로 금방이라도 인디언들과 기병대들이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달려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캐년관광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30분 거리 북쪽에 있는 아마릴로(Amarillo)로 향하였다. 아마릴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소 도살장으로, 또 스테이크가 맛있기로도 미국 제일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 집 ‘빅 하우스(Big House)에서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건물도 어마어마하게 클뿐더러 건물 내부는 벽면이 온통 거대한 뿔이 달린 사슴 머리의 박제로 채워져 있고, 예전 카우보이들의 복장은 물론 당시의 장신구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 종업원들의 옷차림도 커다란 모자는 물론 박차가 달린 긴 부츠 등 당시의 카우보이 복장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건물 밖에도 커다랗게 써 붙였지만 1시간 동안에 72온스의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은 공짜, 대신 실패하면 72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갔을 때도 한 백인 젊은이가 도전하고 있었는데 옆에서는 디지털시계가 남은 시간을 표시하고 있고... 결국 반쯤 먹고 실패했다. 1인분이 6~8온스니까 거의 10인분...
건물 밖에는 서부 개척시대의 포장마차(Fargo), 높이가 3m 쯤이나 되어 보이는 엄청나게 큰, 뒷축에 박차가 달린 카우보이 신발, 실물의 2배도 넘는 소의 동상 등 텍사스를 상징하는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메뉴판에는 텍사스 특유의 남부 사투리도 씌어 있는데 이를테면 'How de yo'll?' 이런 비슷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How do you all?'의 남부 발음이라고 하며 다른 지역에서의 이런 표현을 잘 안쓰고 굳이 쓴다면 'How do you guys? 정도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텍사스 고유의 전통으로 스테이크 집에서는 땅콩을 무제한 제공하는데 까먹은 껍질을 바닥에다 그냥 버려 엄청나게 많은 껍질들이 테이블 밑에 흩어져 있어 처음 들어가면 꼭 쓰레기통을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금을 가미하여 껍질째 구운 땅콩으로 까먹으면 짭짤하다. 고급 스테이크집도 예외가 아닌데 걸어가면 빠작빠작 껍질 부서지는 소리, 또 먼지도 많이 날 것 같은데 손님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땅콩을 입에 털어 넣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것이 텍사스의 전통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