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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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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719(천통 21) |
국적 | 한국, 발해 |
종교 | 불교 |
본관 | 협계(俠溪, 지금의 황해도 신계군) |
요약 699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지린성에 나라를 세운 발해의 시조. 왕호는 고왕이며 이외의 정보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정확하지 않지만 여러 기록에 의해 고구려의 후예로 추정된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혼란하던 중 이를 기회로 삼아 말갈 추장 걸사비우와 고구려 유민, 말갈족을 이끌고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으로 이동했다. 당 군대가 이를 알아채고 추격해오자 적군을 천문령의 밀림에 둘러싸인 산악지대로 유인해 크게 격파했다. 이 전투로 인해 발해 건국의 지도자가 됐고, 당 역시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의 건국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됐다. 713년 최흔에 의해 발해군왕으로 봉해졌고 국호를 진국에서 발해국으로 고쳤다. 사망 후 아들인 대무예가 왕위를 계승해 무왕이 됐다.
개요
왕호는 고왕(高王). 아버지는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그러나 그의 가계나 고구려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다. 〈구당서 舊唐書〉 발해전(渤海傳)에는 그를 고구려인의 별종이라고 했고, 〈신당서 新唐書〉 발해전에는 원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의 족속인데 나중에 고구려에 부속되었다고 했으며, 유득공(柳得恭)의 〈발해고 渤海考〉를 비롯한 우리의 선인들은 모두 그를 고구려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당이 장악한 곳은 요동(遼東) 일대에 불과했고, 압록강 상류와 동북 만주지방에는 여전히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 고종은 고구려가 망한 그해 12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고자 했고, 아울러 고구려의 잔여세력을 강제로 분산시켜 거세하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강행하여 고구려 유민 3만여 호를 요하(遼河) 서쪽인 당의 영주(營州) 지방에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3만 호 중에 대조영의 일가도 끼어 있었다. 즉 그는 당의 전후(戰後) 수습책에 희생되어 요하의 서쪽 영주에 옮겨 살게 되었던 것이다.
영주를 중심으로 한 요서지방은 일찍부터 지정학적 또는 국방상의 가치 때문에 전국시대 연(燕)의 진개(秦開)가 정복한 이후 역대 한민족 왕조에서 동북과 서북에서 남하하려는 비한족세력(非漢族勢力)을 가로막는 요충지였으며 동방 침략의 근거지였다. 마침 이무렵의 영주 부근에는 고비 사막 남쪽에서 세력을 떨치고 동남으로 세력을 뻗치려 하던 투르크족의 돌궐과 동쪽의 고구려 세력에 시달리며 시라무렌(Sira Muren) 유역을 방황하던 거란족
당은 이들 이민족에 대하여 배타적인 통치방법을 써서 끊임없이 감시하고 억압했다. 당은 거란족의 추장 이진충(李盡忠)에게 송막도호(松漠都護), 손만영(孫萬榮)에게는 귀성주자사(歸誠州刺史)의 직함을 주어 무마하면서 통치하고 있었으나, 당시 영주도독 조홰(趙翽)는 잔인함과 거란족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으로 그들을 자극했다.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이진충과 손만영은 696년 요서지방에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하고 예속민들이 굶주리자, 거란의 무리를 이끌고 예속민의 호응을 받아 조홰를 죽인 뒤 당에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당은 토벌군을 보내어 그해 10월에 이진충을 죽였으나, 손만영 등은 반항을 계속하여 이듬해 3월 하북(河北)의 영평(永平) 부근에서 왕효걸(王孝傑)이 이끈 당 군대를 격파했다. 이 난은 돌궐의 힘을 빌려 1년 만에 진압되었으나, 당시 영주 부근에서 당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민족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조영은 이와 같은 당나라 동북정책의 혼란과 이진충의 반란을 기회로 말갈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그 지역에 억류되어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이에 당황한 당의 측천무후는 회유책으로 이전의 행동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대조영에게는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을 봉하여 다시 복속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를 거부당하자 당은 추격군을 파견했다. 거란족 출신 장군인 이해고(李楷固)가 이끈 당 군사가 공격해오자 말갈족이 먼저 교전했으나 대패했으며, 걸사비우도 전사했다.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당 군대의 예봉을 피해 동으로 이동하면서 한편으로는 흩어진 말갈족을 규합했다. 당 군대가 계속 추격해오자, 대조영은 지금의 훈허 강[渾河]과 휘발하(輝發河) 분수령인 장령자(長嶺子) 부근에 있는 천문령(天門嶺)의 밀림에 둘러싸인 산악지대로 유인하여 크게 격파했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당 군대는 더 이상의 추격을 포기하고 이해고는 겨우 몸을 피해 되돌아갔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대조영으로 하여금 발해 건국의 지도자가 되게 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천문령 전투). 그리고 요서지역 거란족의 난으로 신성(新城)의 안동도호부가 공격을 받게 되어, 이 난을 진압하기 위해 돌궐의 힘을 빌렸던 당이 결국 이 지역에 있어서 거란 및 해족(奚族)까지 포용한 돌궐의 세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당 본국과 요동의 교통이 두절되면서 당으로서도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의 건국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천문령 전투에서의 승리와 함께 발해 건국의 객관적 정세를 형성한 것이었다.
천문령 전투 후, 대조영은 동부 만주 쪽으로 이동하여 699년 지금의 지린 성[吉林省] 둔화 현[敦化縣]인 동모산(東牟山)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진(震)이라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했다. 이곳을 터전으로 정한 것은 고구려의 고토(故土)라는 점도 있지만, 요서의 영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밀림지대여서 방어상 유리한 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만주의 지리적 가치는 비단 전략상의 이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지역은 경제적으로는 현주(顯州)의 포(布), 옥주(沃州)의 면(綿), 용주(龍州)의 명주, 노성(盧城)의 벼와 고대 전쟁에서 최대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솔빈(率賓)의 말, 위성(位城)의 철(鐵) 등의 특산물 생산지였다. 대조영은 동으로 빠져나와 먼저 이 철의 생산지였던 위성부터 점령했다.
대조영은 동모산에 진국을 세우고 자립하자 곧 돌궐과 손을 잡았다.
돌궐과 손을 잡음으로써 당시 동북아시아에서의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당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던 돌궐을 통해 당의 침략야욕을 막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당으로서는 대조영의 자립을 기정사실화할 수밖에 없게 되자, 무력으로 적대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이에 당 중종(中宗)은 회유책의 일환으로 705년 시어사(侍御史) 장행급(長行岌)을 보내어 화해를 청하였다. 이에 양국 간의 화해가 성립되어 대조영의 둘째 아들 대문예(大門藝)가 당의 수도에 가서 입시(入侍)하게 되었으며, 당과의 평화적 외교의 기틀이 잡혔다.
당과의 화해는 대조영으로서도 호전적인 유목민족인 돌궐과의 불안한 동맹에서 벗어나 왕국의 영속성을 찾고 발전된 당의 문화 유입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후 당
이에 대조영은 곧 국호를 진국에서 발해국으로 고쳤다. 719년 대조영이 죽자 그의 아들 대무예(무왕)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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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 방송종료
출연
대조영(大祚榮) 출생 미상 사망 719년
고왕(高王, 재위 698~719년)
왕호는 고왕(高王). 아버지는 걸걸중상(乞乞仲象)이다
발해의 시조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698년 동모산을 도읍으로 한 진국(震國)을 세웠다
713년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다
고구려를 계승하다
대조영은 발해의 시조로 고왕이라고 한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나라를 세운 뒤 ‘발해’로 국명을 바꿨다
그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고구려군의 일원으로 당나라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의 고구려 유민 분산 정책에 따라 대조영도 가족과 함께 랴오허 서쪽의 차오양(營州) 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차오양은 당나라의 내몽골과 동북아 지역을 통괄하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여러 민족이 얽힌 교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대조영은 옛 고구려의 주민이었던 말갈족과 연대감을 키우는 등 역량을 키워 나갔다
696년 이진충(李盡忠), 손만영(孫萬榮)이 이끄는 거란 족이 반란을 일으켜 차오양을 공격했다
이를 틈타 대조영은 함께 억류되어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탈출해 자립에 성공했다
당시 당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대조영의 아버지를 진국공(震國公)에, 말갈족의 우두머리인 걸사비우를 허국공(許國公)에 봉해 회유하려고 했지만 대조영은 이를 거부했다
당은 우선 거란 족의 반란을 진압한 뒤 대조영 무리를 쫓았다
하지만 대조영은 천문령(天門嶺, 지금의 지린 성 하따링)에서 당나라군을 크게 무찔러 추격권에서 벗어났고 지도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대조영은 동부 만주 쪽으로 이동해 699년쯤 지금의 지린 성 둔화현(敦化縣)인 동모산(東牟山)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했다
국호는 진(震), 연호는 천통(天統)이라고 했다
무단장 상류에 자리 잡은 이 지역은 창바이 산맥의 짙은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충지였다
이곳은 또한 계루부(桂婁部)의 옛 땅이었기에 훗날 대조영의 장남 대무예(大武藝, 무왕)도 계루군왕으로 불렸다
이때부터 대조영은 진을 구심점으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결집시켜 세를 키웠다
오랫동안 당에 억류되었고, 당과 전쟁을 치르며 이동하는 동안 대조영 집단은 강한 전투력을 갖춘 집단으로 성장했다
대외 활동도 시작했다
대조영은 당과 대립하던 튀르크와 국교를 맺고, 신라에도 사신을 보내 진의 건국을 알렸다
당나라의 위협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외교책을 쓴 것이다
한때 대조영을 없애려 했던 당나라는 대조영이 진을 건국한 이후 유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당중종은 705년 사신을 보내왔고, 대조영도 둘째 아들 대문예(大門藝)를 당에 보내 우의를 표했다
713년 당현종은 ‘좌효위대장군발해군왕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이라는 별직을 대조영에게 주었고, 양국은 건국 초기의 갈등을 봉합했다
같은 해 대조영은 국호를 진에서 발해로 바꾸었다
발해는 대조영이 건국한 이후 약 200여 년 이상을 이어가며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우뚝 섰다
현재의 만주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한반도 북부 지역, 북쪽으로 헤이룽(黑龍), 서쪽으로 랴오둥, 동쪽으로는 동해안에 이르는 만주-연해주-북한을 아우르는 넓은 땅에 걸쳐 있던 대제국 발해,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의 마지막 대륙국가로서 그 의미가 크다
대하드라마 대조영의 " 세계관 최강자 " 배우는 최수종[1]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휘하 부장인 대중상안시성 전투[2]
이 때문에 양만춘은 대조영이 태어난 것을 당나라에 대한 승리의 징표라 여기고 조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조정 신료들이 엄연히 황제가 있는 마당에 제왕지운을 가진 아기는 역적노비[3] 노비이긴 했으나 홀로 글과 무예를 깨우치고 단신으로 안시성에 가서 양만춘의 눈에 들기도 하며 연개소문을 자객으로부터 구해내는 등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나중엔 어머니를 만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내고[4][5][6]
그러나 드라마 초반은 고구려의 멸망과 부흥운동 자체가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이어진다. 덕분에 대조영은 한국 사극 주인공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생고생을 하게 된다. 결국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자 아직 멀쩡한 안시성에 합류해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검모잠측천무후와 설인귀이문
수 년후 거란이 당나라에게 반란을 일으켜 거란국을 세우고 이진충이 무상가한의 자리에 오르자 고구려 유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거란을 도와 당나라군을 박살내는데 일조하며 요동의 옛 고구려 성들도 다시 탈환한다. 그러나 이진충 사후 거란이 약속을 깨고 고구려 유민들을 내어주지 않자 동맹이 깨지며 곧 거란의 공습을 받게 되는데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이해고가 당나라에 투항해 당나라 대군을 끌고 대조영을 조지러 오자 동모산으로 후퇴를 감행하며 계필사문, 흑수돌, 금란, 대중상의 희생을 감수해 가며 천문령에서 이해고의 당나라 군대를 박살내고 발해[7]
극중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생고생과 고초를 다 겪는 그 파란만장한 일생 덕분에 드라마를 보던 수많은 관객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최수종의 열연 자체는 호평을 받았지만 최수종이 과거에 출연했던 태조 왕건과 해신 등 왕건과 장보고의 캐릭터와 너무 겹친다는 혹평을 받았으며 게다가 지나칠 정도의 이상적 영웅상이다 보니 너무나 능력이 출중한 나머지 후반부에는 영 인간적인 미가 없었다는 평도 제법 있었다. 작중 주인공의 라이벌격인 설인귀, 이해고, 이문
얼마 안되는 성격적 결함을 꼽자면 복수귀이해고가 대조영 측에 쳐들어왔을때 초린과 이검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머리 끝까지 열이 받은 대조영은 당나라를 막으러 회군하는 거란 원정군을 미모사의 만류도 뿌리치고 기어이 전멸시키는 짓을 저질렀는데[8]이 때문에 원군이 없어진 거란은 그렇게 당의 반격과 총공격으로 멸망해버렸고 이로 인해 거란 난민들은 끝까지 대조영을 따르지 않다가 결국 천문령 전투때 이해고[9]
사실 극중의 최악의 행동은 후반부에 흑수돌이 당군에게 잡혀서 처형될때 혼자 구하러 가겠다고 난리치는 상황이었는데, 전투에서의 책임을 생각하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실격 수준의 행동이었다. 결국 주인공 보정으로 살아서 돌아오긴 했지만, 만약 적진에 체포되기라도 했으면 수장이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는 고구려 유민들과 대조영 측 진영은 안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낼 것이다.
여담으로 최수종은 이전 작품인 태조 왕건에서 왕건을 연기했는데, 태조 왕건에서 왕건이 대조영의 후손인 대광현[10]
훗날 덕화TV에서 김하균형은 나쁜 놈이라서 이렇게 죽이면 안되~라고 의견을 제시하여 구타당해서 죽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고구려유민 못지않은 시청자들의 분노를 산 부기원의 처참한 죽음을 모두가 환호할 정도였다
대조영의 측근이자 의형제로, 말갈족 출신의 전사이다. 배우는 최철호[11]
본래 양만춘 휘하의 신참 무장이였으나 노비로 있던 젊은 시절의 대조영과 대련을 하며 얼굴을 익혀갔다. 이후 고려성에서 다시 재회해 그의 동료로 맹활약을 펼치며 잠깐잠깐을 제외하면 마지막까지 대조영과 내내 붙어다니게 된다. 종종 감정에 휘둘리는 대조영과는 달리 늘 냉정하며 과묵한 편으로, ‘요동 제일의 무사’로 묘사되는 무술 실력도 상당한 편.[12]
흑수돌과는 본디 악연이였으나 흑수돌이 연남생을 당나라로 탈출시키는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갈 데가 없어지자 전후과정을 잘 아는 대조영에게 갔고 같이 있던 걸사비우가 흑수돌과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 패턴은 무식한 흑수돌에게 걸사비우가 진농 반농으로 뭐라 하면 흑수돌은 발끈하고 걸사비우는 팩트로 잠재우는 식.[13]
또한 미모사의 휘하에 있던 여성 무관인 금란과도 엮이는데, 눈치를 챈 미모사가 금란은 걸사비우 장군 것이라며 인정해주지만 금란이 천문령 전투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미처 끝을 내지 못한 안타까운 로맨스도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극 마지막까지 전투가 있던 정신없는 전개속에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던 안타까운 사랑이었다.
고구려 멸망 직후, 설인귀에게 사로잡혀 잠시동안 그의 휘하에 있었던 흑역사설인귀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는 내용은 삼국지에서 조조와 관우
초린과도 접점이 있는데, 고구려에 세작으로 파견된 초린이 걸사비우와 전투 도중 치명상을 입자 대조영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중에 초린이 대조영에게 오자 그 일을 사과하지만 쿨한척 앞에서 괜히 뻘쭘해지기도 하며 초린이 임신한 사실도 삼형제 중 홀로 알아차리고 구출을 시도한다. 극 중 검이의 출생 비밀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 대조영에게 이검의 존재를 말할려고 할때마다 뭔가 일이 생기거나 다른 인물이 끼어든 관계로 검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며, 10년 후 거란과 협력할때는 초린과의 다툼 끝에 대조영에게 절대로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기로 약조한다. 때문에 대조영은 거란이 멸망하고서야 검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금란을 지키기 위해 당나라
실제 역사의 걸사비우는 영주 탈출과정에서는 당에서 걸걸중상과 나란히 국공의 작위를 제의받으며, 걸걸중상이 모종의 일로 죽은 다음에는 사실상 우두머리가 된다. 그리고 천문령 전투 이전에 당군과의 전투에서 사망. 이때 걸사비우가 죽어서 대조영이 부상한 거다. 한마디로 굳이 따지면 대조영의 아우뻘이 아니라 삼촌뻘로 하는게 자연스럽긴 하다. 예를 들면 대중상과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고돌발이나 무염 정도의 포지션이 걸사비우의 원래 포지션이다.
흑수돌
대조영의 측근이자 의형제이다. 가상 인물이며, 원작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배우는 김학철[14] 북한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캐릭터로 명대사는 날래 덤비라우!, 다 죽이갔어!, 이런 간나 쉐끼! 노비 출신의 평범한 백성이었으나 당나라군의 공격으로 마을이 초토화되고 가족도 모두 잃게 되자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하였다고 한다. 작중 출중한 무력과 용맹함이 돋보이는 캐릭터로, 이에 지지않게 성격도 상당히 단순하고 다혈질적인 편이다. 돌대가리라는 말을 싫어해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발끈한다.
연남생의 눈에 들어 그의 호위무사 역할을 했으며, 그의 아버지이자 당나라에 적대적인 연개소문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극 초반부 연남생은 대조영을 매우 싫어하는 만큼 흑수돌 또한 대조영과 사이가 나빴고 그와 같이 다니는 걸사비우도 마찬가지 취급. 연남생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지만 쿠테타로 쫒겨난 연남생이 당나라와 협력하자 연남생에게 큰 실망감을 표현한다.[15][16]
캐릭터 특유의 단순무식함에서 어우러져 나오는 엉뚱함과 코믹성을 김학철이 잘 연기하여 좋은 평을 받았으며 특유의 서북 방언[17]
이해고와 이문의 대군에게 쫓기는 대조영 일행이 천문령을 넘어갈 수 있게 후방에서 결사대를 조직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며 몇번의 승리를 가져온다.
결사대를 조직하고 대조영 군벌 최후방에 남아있는 흑수돌을 향한 이문의 평이 꽤 인상적인데,[18] 성질이 포악하고 전장에서 후퇴하는 법이 없는 맹장 중의 맹장. 시청자들로 하여금 대조영이나 걸사비우의 무력[19]물론 그 이후 바로 설계두가 돌대가리라고 깠다.
계필사문, 마파 등과 함께 막아내는데 성공하며 대조영 일행에게 시간을 벌어주지만 계필사문의 죽음에 이어서[20]
특히 출병을 앞두고 대조영, 걸사비우와 간단한 술자리를 한 후 형들을 먼저 보내고 결사대와 남아 그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꽤나 명장면이고 꽤나 명대사다.
(술병을 들며)
이 술을 잘 보라우! 이 술은 내 형님이신 대조영 장군께서 주신 술이야.
(바닥에 술을 붓는다)
다들 봤네? 이 귀중한 술을 지금 이 땅바닥이 몽땅 마셔 버렸어! 내 말 잘 들으라우.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적들의 피로 우리의 목을 축일 것이야. 만일 장렬히 죽는다고 해도 술을 마신 이 땅 속에 파묻힐 것이니 더 이상 목 마를 걱정은 없어야! 그러니 걱정 말고 싸우라우!
(함성)
이 흑수돌이는 우리 유민들이 무사히 천문령에 당도할 때까지 단 한 놈도 여기 못 지나가게 할 거야! 다 죽여 없애 버리갔어! 그리들 알라우! 다 죽이갔어!
(함성)
간나 쉐끼들, 얼마든지 와라우! 다 죽이갔어! 다!
단순무식에 무력이 강한 캐릭터성으로 같은 무식한 캐릭터들과 잘 엮이는데, 자신과 쌍벽을 이루는 개그 캐릭터인 설계두와는 라이벌 관계로 맨날 치고박고 싸우며 거란과 대조영이 협력 관계일 때는 설계두 휘하에 있으면서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계필사문이 마음에 든다며 계필이라고 부르며 마구 까댄다. 계필사문 못지 않는 무식을 자랑하는 퉁소와 같이 개그콤비를 이루는데 설인귀 홍패 못지않다. 그 외에 비슷하게 생긴 방효태와도 잠깐 묶이기도 한다. 애초에 가상인물이고 원작 소설에서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인물이다. 대조영 걸사비우 흑수돌의 나이 순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으나 대조영의 리더십을 인정한 걸사비우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형님으로 모실 생각이었고 걸사비우와 흑수돌 사이에는 나이(띠)를 대는 씬이 있었다. 흑수돌이 계해년[21]
차라리 드라마에서 역사대로 걸사비우를 죽이고 그 대신 흑수돌을 살려 훗날 왕위에 오른 대조영이 동생인 흑수돌에게 국성인 대씨를 줌으로써 그동안 극중에서 보이지 않았던 대야발로 설정하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의견도 있다.
실존인물이다.
배우는 홍수현[22]
주인공인 대조영의 히로인이지만, 원작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가 크다. 원작 소설에서는 비중이 큰 반면,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극히 적으며 제작진의 거란족 우대에 의해 멀쩡한 대본의 분량도 방송에서 잘려나가는 등 수난을 당했다. 심지어 대조영과의 첫날밤 장면까지 편집되었을 정도이다. 오히려 초반부에는 초린이 히로인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대조영이 당나라를 탈출할 때부터나 대조영과 함께 하는데다, 주로 하는 일이 후방 지역 통치이다 보니 비중이 있을래야 있기 어려운 것이다.[23]
라이벌이자 한때 대조영의 연인이었던 초린과도 평생 악연인지 인연인지 모를 관계를 유지한다. 상호간에 직접 적대하거나 한 적은 없지만 묘하게 얽히는 관계이다. 숙영이 당나라 액정궁에 관노로 끌려와 있을 때 궁녀들에게 찍혀 살해당할 뻔한 걸 초린이 구해준 적이 있다. 보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영주에서 초린을 도와 손만영의 반란 진압에 협력한다. 천문령에서 초린과 대중상과의 포로 교환 때 작별인사를 하는 것으로 초린과의 인연은 끝이 난다. 드라마 막바지에는 그동안 보여주던 선한 모습은 어디갔는지 대조영이 이검을 총애하자 거란 피가 섞인자가 왕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책봉하라고 대조영에게 재촉한다. 후에 이검이 스스로 발해를 떠나자 자신의 한 행동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악어의 눈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구려고구려 최후의 무장
양만춘 장군의 심복 부장이었다보니 그에 걸맞게 무술 실력도 최상급.[24]
배우는 임혁[26][27]나 안시성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에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
수십년 후 2차 고당전쟁때 고려성으로 찾아온 대조영과 재회하게 되며 [28]
이후 한성 부근에서 비밀리에 병력을 모으고 대조영의 동명천제단에 합류시켜 요동성의 안동도호부를 몰아내려 하나 실패하면서 붙잡혀 당나라로 압송된다. 도중에 대조영의 습격으로 탈출에 성공하나 정작 대조영이 붙잡히는 바람에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대조영이 살아남아 당나라를 탈출하자 뒤이어 탈출해 합류한다.
탈출 후 대조영과 거란이 동맹을 맺자 거란국에 머무르면서 현지의 고구려 유민들을 통솔하고 현지의 정보를 접수해 대조영에게 보내주며 고구려 유민세력의 대표 노릇을 했다.[29]
발해 건국 직전의 최후의 전투로 나오는 천문령 전투[30][31] 실질적 총사령관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대중상이었던 만큼 그의 죽음[32][33]
아래는 대중상이 마지막 대혈투를 벌이기 전의 명대사
"고구려의 장졸들은 내 마지막을 똑똑히 보아두거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패한다면 살아서도 꿈을 잃을 것이나 승리를 한다면 우리는 죽어서도 지킬 나라가 생길것이다!
나 대중상은 이제 마지막 칼을 뽑아 부끄럽지 않은 생을 마치려 한다!
살아서 꿈을 잃느니 죽어서도 이 천문령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리라!!!"
설인귀와는 라이벌이자 애증의 관계인데, 안시성 전투 당시 처음 만난 이후로 거의 일평생을 숙적으로 지내면서도 서로의 무예와 지략을 존경하는 수준에 이르었다. 때문에 적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목숨을 구원해준 적이 여러 번 있다. 진중한 덕장인데다, 활을 잘쏘며, 무엇보다 이덕화가 연기한 캐릭터와 애증의 관계라는 점에서 임혁이 전작 무인시대에서 연기한 두경승(무인시대)와 비슷하다(설인귀 역시 이의민
실제 역사속에서는 걸걸중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조영과 실제로 부자지간인지도 의심을 받고 있다. 일단 대중상이 대조영의 아버지가 맞다고 보는 측에서는 '걸걸'이 당시 고구려어 혹은 말갈어로 '크다'라는 뜻이었다고 해석한다. '큰' 중상, '큰' 조영인데 아버지는 음차로, 아들은 뜻으로 표기했다는 것. 일단 말갈 유민을 이끈 걸사비우와 비교되어서 고구려 유민을 이끌어서 고구려 계통으로 보기는 한다. 고구려에서의 행적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로, 지금은 위서로 밝혀진 협계태씨족보에서는 중급군관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대조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장군감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삼국기
대중상의 동료 무장이자 의형제로 대중상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늘 따라다닌다. 배우는 장순국[35][36]
무염2.5
대중상의 부장으로 대중상이 고려성으로 좌천되고도 계속 대중상의 부장으로 있다. 돌발보다는 계급이 약간 낮은 듯. 당연히 가상 인물이며, 원작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중상이 고려성으로 갈 때 무염도 같이 고려성으로 갔으며 1화 때부터 장군으로 등장한 돌발과 달리 고구려 멸망 전에는 쭉 부장이었다가 고구려 멸망 후에 검모잠이 고안승 등과 함께 고구려국을 세운 후에나 장군이 된다. 천문령 전투때 대조영이 숙부라고 칭했다.
회차가 많은 본 드라마에 전 회 출연한 몇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未謨思
실존인물이다.
배우는 김정현백제
이후 대조영 일행은 기회를 노려 수송선을 탈취하는데, 고려성 군사들이 항해에는 문외한이라 애써 점령한 배를 포기해야할 찰나 신고로 관청의 당나라군을 부르는 계략으로 순식간에 선원을 모은다. 실은 이 밀고는 미모사의 노림수로 야밤에 배는 구할 수 있어도 배를 모는 인력을 모집하기는 벅차기에 밀고를 한 것으로 백제촌의 관아에 있는 군사들은 모두 백제 출신인 유민들인지라 미모사의 밀고를 받고 달려온 당나라 군관은 자기가 데려온 백제인 유민 군사들에게 살해당하고 미모사가 백제인 유민 군사들이 항해술이 뛰어나다며 같이 데려가라고 보내준다. 현지 당나라군도 백제 유민인데다 항해술도 익혔던 만큼 이들을 선원으로 투입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당나라 보급창고의 위치까지 알려 줘 대조영이 2차 고당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데 일조한다.
고구려 멸망 후에는 당나라에 끌려가서 낚시로 세월을 지내던 보장왕의 말벗으로 재등장한다. 미모사 말로는 2차 고당전쟁 이후 당나라군이 백제인 거주지를 멸족시켜버려서 자기 혼자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보장왕은 자신이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한량 행세를 했으나 미모사는 보장왕의 정체는 물론 그가 본심을 숨기고 야망이 없는 척 하고 있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문의 한성 침공 당시 고구려 부흥운동에 동참하고자 보장왕을 떠나 대조영에게 가게 된다. 때마침 대조영은 이해고에게 습격을 당해 치명상을 입고 저승 문턱까지 간 상황이었는데, 그 난장판에서 대조영을 구해서 장풍으로 대조영을 목숨을 구한다. 보장왕을 떠나기 직전 고안승을 고구려를 떠받을 만한 재목이 아니라고 까면서 진짜 고구려를 살릴 인물은 자신 바로 앞에 있는 태왕 폐하
보장왕이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당 조정으로부터 "조선왕" 직책을 받아 안동도호부로 파견되자 다시 고구려 부흥운동에 시동을 거는 대조영과 보장왕을 연계시켜 비밀 결사 조직인 동명천제단을 결성하도록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안동도호부가 이사온 요동성에 취성루라는 고급 주점을 열어 당나라 고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동도호부의 내부 정보와 자금을 대조영에게 제공한다.
이문과 이해고에게 동명천제단이 와해된 이후로 쭉 대조영 일행과 함께하며, 대조영이 이문에게 붙잡히자 일행의 브레인을 담당, 철저한 설계를 통해 대조영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일행이 당나라를 탈출하여 10년간 힘을 기를 때 쯤에는 백제 부흥운동이나 고구려 부흥운동 그런거 상관없이, 자신의 주군인 대조영을 새로운 왕조의 창시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온갖 고생끝에 마침내 발해
책사 포지션답게 감정적인 행동보다는 다소 냉혹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후반부에 대조영의 주인공 보정이 강해져 계책도 대조영이 다 내게 되면서 비중이 많이 줄었지만, 대조영이 다소 감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 미모사는 늘 철저한 분석을 통해 실리를 강조한다. 물론 겉으로만 냉혹하지 속마음만은 그렇지 않아서 백제성에서 할아버지와 같은 백제 주민들이 모조리 살해당한 아픔을 가끔 드러내곤 하며, 금란이 죽었을 때도 겉으로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금란의 시신을 보며 자신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등 츤데레에 가깝다.
거란족을 지속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간에 단독으로 군사를 움직여 영주성의 거란국에 쿠데타 시도를 했다가 실패해 모두 목이 날아가 버릴뻔한 적도 있다. 거란족이 유민들을 돌려주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계속해서 배신을 때리는 행보를 보여준 것도 컸다. 그나마 이진충이 살아있을 때는 대조영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유민 다수도 요동으로 이주시킬 수 있었으나 이진충이 죽자마자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해고가 통수를 날리고 고구려 유민들을 강제 징집하며 대중상을 인질로 잡아 죽이려는 한편 요동을 공격하는 행보를 이어간다. 발해 건국 후에는 돌궐과 당나라를 경계해야 한다는 간언을 한다.
후계 문제에서는 검이와 초린 또한 아직 이해고의 자식이라고 말하며 언제든 배신의 가능성이 있음을 경계했다. 발해 건국 이후에도 검이를 경계하고 숙영의 자식들을 후계자로 밀어주는 행보를 보였다. 반면에 일찍부터 초린과 대조영을 접했던 걸사비우는 검이를 후계자로 밀었다.
삼국지 오마주 사극답게, 대조영에서 제갈공명
담당배우 김정현은 평소 찌질이에 무개념 캐릭터를 자주 맡아왔는데, 본작의 미모사는 완전 딴판인 진중한 캐릭터성에 현명한 책사로 묘사되기 때문에 김정현을 다시 봤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대조영 종영 후 도로 찌질이 전문 배우로 돌아가서 그렇지.
금란2.7
미모사의 심복. 당연히 가상 인물이며, 원작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배우는 심은진베이비복스
본래는 백제 궁녀의 딸이었으나 어린 나이에 죽을뻔한걸 미모사에 의해 거둬져 인간흉기[37]
걸사비우와의 로맨스가 화제가 되었는데 두 인간흉기[38]
대조영 휘하 돌궐윤용현[39]
오랫동안 당나라의 골치를 썩혀서 여러 번 토벌대를 파견했으나 산세가 험하고 조직원들도 구 돌궐군 소속이라 그런지 매번 허탕을 친다. 그러나 대조영 일행이 당나라로 압송되는 보장왕과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몰래 잠입해[40][41]
고생 끝에 간신히 조직을 재건하지만[42]
영주에서 퉁소와 부하 한 명과 식당서 무전취식을 하려다가 하필 손만영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대로 체포되었다.[43]
이후 흑수돌과 함께 말갈 세력을 복속하고 설인귀의 당나라군과 이해고의 거란군을 박살내는데 큰 공헌을 하는 등 명성에 걸맞는 전공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천문령 전투 직전 결사대로 나서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 와중 이해고에게 화살을 정통으로 맞고도 무리한 탓에 치명상을 입고 결국 흑수돌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죽음에 분노한 흑수돌은 그의 칼을 들고 유인에 걸린 당군을 몰살시키고 손수 마인절과 이다조[44]
대조영 휘하의 장군으로, 고구려 군기를 내걸고 싸우지만 본인이 돌궐족이라는 정체성 자체는 잃지 않은 인물이다. 이는 대조영 군벌 안에서도 이례적인 일인데, 말갈족으로 묘사된 걸사비우는 고구려인으로 본인을 칭하고[45]
하지만 계필사문은 돌궐의 카간 묵철에 등장에도 "같은 돌궐인임에도 나는 대의를 품고 대조영 밑에 있다." 라거나 결사대를 이끌고 전선 최후방에 남은 흑수돌을 구하러 갈 때에도 퉁소에게 "우리 돌궐족과 군마를 부탁한다." 라는 형태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본인이 돌궐족이라는 정체성만큼은 확실한 듯.
성격이 단순무식하면서도 호쾌한 면이 있어 흑수돌과 친구가 되어 개그 콤비를 이루었다.[46][47][48]
실존인물인 계필사문은 계필하력의 동생이자 선덕여왕 시기의 사람으로 계필하력도 천문령 전투가 있기 20년전인 677년에 사망했으며, 계필사문이 귀부한 설연타
퉁소2.9
계필사문의 부관. 배우는 방형주. 당연히 가상 인물로, 원작 소설에서는 계필사문이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독립된 인물로 등장하며 드라마에서는 원작 소설보다 비중이 높다. 계필사문이 대조영을 돕던 중에 산채가 거덜나버리자 결국 갈 데가 없어져서 대조영의 휘하에 들어간다. 계필사문과 마찬가지로 단순무식한것이 매력 포인트로 오죽하면 그 계필사문이 퉁소를 무식하다며 마구 까댄다. 주무기는 부월(도끼). 가축을 기르는데 능력을 가진 돌궐장수답게 전쟁 중의 임무도 그 쪽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드라마상에서는 계필사문을 매우 신뢰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가끔씩 기발한 책략을 하나씩 내놓기도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홍패 포지션. 실제로도 흑수돌, 계필사문, 퉁소 3인방중에선 머리가 가장 좋아 셋이 활동할 때에는 여러 책략을 내놓기도 한다. 스스로 전투 중에 군사임을 얘기할 정도로 지략을 가졌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다. 계필사문이 흑수돌의 결사대를 지원하러 갈 때, 계필사문은 남은 돌궐 병력들을 지휘하라며 퉁소를 본진에 남겼고, 덕분에 끝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발해가 건국되고 발해의 장군이 된다.[49]
장산해2.10
고구려 태학 사범 출신의 재상. 배우는 임선택고안승이 배신하여 검모잠, 온사문, 이기우 등의 주요인물들이 모조리 피살당할 때 유일하게 생존했으며[50]
마파2.11
기타
3.1이적3.2이도종3.3소정방3.4방효태3.5장손무기3.6장량3.7부복애3.8설인귀3.9홍패3.10이문3.11당태종 이세민3.12당고종 이치3.13측천무후3.14
4.1보장왕4.2연개소문4.3연남생4.4연남건4.5양만춘4.6부기원4.7사부구4.8신성4.9검모잠4.10고사계4.11
5.1이해고5.25.35.4설계두5.5이진충5.6손만영5.75.8
인물 [0] 내용
[1] 삼국사기에는 아예 없으며 삼국유사에는 한 문장 만이 있다
[2] 대조영의 출생 시기는 ?이기 때문에 이 때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이 되는 안시성 전투를 라이벌 연개소문(드라마)동북공정으로 말이 많았기 때문에 중국이 깨지는 대표적인 전투를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3] 연개소문이 말에서 오르내릴 때 엎드려서 계단 역할을 한다
[4] 이 과정에서 대조영 모자가 같이 붙잡히며 대조영은 겨우 풀려났으나 대조영의 어머니는 모든걸 뒤집어 쓰고 처형된다
[6] 본래는 계속 개동이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연개소문에게 애원했으나 대조영의 진심을 확인한 연개소문은 조정에서 논공행상을 논할 때 양만춘과 함께 보장왕에게 이를 간청하여 대중상과 대조영,달기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8] 이때 이 거란 원정군은 이미 대조영과 싸울 이유도 의지도 잃고퇴각 중인 군대였다
즉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는 군대를 개인적 복수심으로 인해 공격한 것, 더구나 이 전투를 하면서 이해고를 무조건 죽이라고 외치는 것이나 이해고와 싸울 때의 회상신 등은 이 전투의 목적이 이해고에게 당한 것에 대한 대조영의 한풀이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9] 사실 이것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대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손으로 이해고에게 죽어간 자들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받아준 것이다
[10]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대광현의 혈통이 대조영인지, 대야발인지 알 수 없다
[11] KBS 사극 대왕의 꿈에서는 상대등 비담 역을 맡아 연기했다
걸사비우는 포위된 상황, 즉 1대 다수의 상황에서의 싸움에서 굉장히 멋있게 잘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대조영이 일기토가 많은 것과는 대조적
[13]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한 낮에 담장너머 흑수돌이 걸사비우를 부르기 위해 부엉이 소리를 낸다
영문을 모르는 걸사비우는 무슨 낮에 부엉이냐며 돌을 던지고 그 돌에 흑수돌이 맞고, 어찌어찌 둘이 접선해서 흑수돌이 쏘아 붙이면 낮에 우는 부엉이가 어딨냐는 식이다
[14] 태조 왕건에서 박술희, 야인시대에서 조병옥을 맡은 배우이다
[15] 이때 흑수돌이 절망한 나머지 몇번이고 연남생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려고 했을 정도
[17] 후에 이 "간나 새끼"는 드라마 정도전(드라마)
[18] 이문은 당시 당나라 군부에서도 대장군 반열에 오를 정도의 인물이다
[19] 두 사람 모두 세계관 최강자급의 무력을 보여준다
[20] 계필사문이랑 정말 친했다보니 그의 생각도 못한 죽음에 제대로 이성을 잃고 진노해서 이해고를 죽이기로 작정한다계필사문의 시신을 대조영에게 보낸 뒤 계필사문의 대도를 가지고 끝까지 싸웠을 정도이다
[21] 배역을 보면 아는데 대조영을 수염 없는 아역 개념으로 출연시켰을 때 이들은 수염이 무럭무럭 있었다
[22] 대조영이 개동이라는 이름을 쓸 무렵 비무대회에 참석한 연개소문 (혹은 보장왕) 을 없애려는 계획을 눈치채고 막으려던 시기였다
그때 숙영 역시 입막음을 당해 죽을 위험에 처해있었으나 (도중 길을 잘못 들었다.) 대조영이 숙영을 구해준다
이후 대조영이 낮은 관직에 있음에도 언제나 존댓말을 하거나 숙영을 좋아하는 남생이 대조영에게 숙영을 데려오라 할 때 "한 신하가 어찌 왕족에게 오라가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라며 대조영에게 실망을 표할 때에도 대조영이 연남생의 심부름을 해서가 아닌, 숙영은 대조영을 좋아하는데 정작 대조영은 눈치가 없었던 것에 화난 듯한 뉘앙스가 강하다
[23] 간단히 말해 등장은 하되 매번 상황이나 요약하는 설명충 정도이다
[26] 용의 눈물의 하륜, 무인시대의 두경승, 명성황후에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 징비록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삼국기에서는 양만춘 역을 맡아 대조영에게 고구려를 다시 세우란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29] 측천무후가 도망친 대조영을 다시 회유할 때 대중상에게 벼슬을 내리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30] 이 즈음에서야 이해고가 부지광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며 이해고에게 부지광의 진심을 밝히며 충고+경고했고 이해고한테 죽을 때에도 자신이 부지광을 죽일 때랑 똑같은 패턴을 재현한다
[31] 더군다나 그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인의 전투력에 대해 느끼고 그 이후로도 지긋지긋하게 느꼈기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
[35] 전작 무인시대에서 석린을 연기했고, 태조왕건에서는 장수장으로 나왔다
[36] 대중상이 최후의 비책을 실행하기 직전 대중상에게 안된다고 고개를 저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38] 사실은 등 뒤로 날아오는 화살을 다 맞아서 걸사비우를 살리려는 의도였다
[40] 철저한 지형조사 끝에 마도산 진지로 통하는 샛길을 찾아낸 뒤 지형만 믿고 정면 경계만 하는 계필사문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46] 이봐 흑수돌(흑장군)! / 이보라우 계필이!
[53] 은근히 무력이 강하며, 발해 군영에서 마파의 공과 짬은 무시할 정도가 전혀 되지 못한다
[54] 전전작 무인시대에서는 이의민제국의 아침에서는 초선, 태조 왕건엣는 견훤의 딸인 국대부인 견씨 역을 맡았다
[55] MBC드라마 주몽에서 온조[56] 용의 눈물에서는 이숙번, 정도전에서는 이지란 역을 맡아서 연기했다
[58] 근초고왕에서 모용수, 광개토태왕장사의 신 - 객주 2015에서는 대원군의 적장자인 이재면
[59] 불멸의 이순신에서 기효근, 근초고왕 에서 해씨 가문의 수장인 해녕 역을 맡았다
[60]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라좌수영 병사인 짝보를 연기한 배우다
[61] 워낙 규모가 큰 드라마라서 한 배우가 다역을 맡은 경우가 있으므로
[64] 정도전에서는 배극렴 , 태조 왕건에서는 홍유광개토태왕에서는 고국양왕을 맡는다
[66] 명성황후에서 흥선군의 장남 흥친왕 이재면 역을 맡아서 연기했다
[68] 당고종이 유언장에서 '내가 죽고 무후가 정사에 개입하려고 들면 태후의 위에서 폐위시키고 감업사로 내쫓으라'고 명한 상황이었다
[71] 근초고왕에서는 계왕의 장남인 위례공 부여민, 대왕의 꿈에서는 보장왕 역을 맡았다
[75] 애시당초 거란에게 항복을 한다고 했을때도 몰래 함정을 파고 당 군사들을 몰살시킨 게 이해고다
[77] 야인시대에서는 김좌진, 광개토태왕에서는 고구려 국상 개연수, 대왕의 꿈에서는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불멸의 이순신 에서는 도도 다카토라
[80] 불멸의 이순신에서 무의공 이순신, 정도전에서는 조준, 태조 왕건에서 금강, 무인시대에서 이린 역을 맡았다
[83] 게다가 이문에 의해 대조영은 6일 동안 굶은 상태였다
[86] 야인시대에서 김기홍 전작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에서는 권율
[89] 설인귀가 드디어 대중상을 박살냈다고 좋아하는데 고사계가 잡혀오자 미쳐서 펄펄 날뛴다
[94] 선덕여왕에서는 미실의 정적인 천명공주 역을 맡았다
[97] 무인시대에서 의종, 불멸의 이순신에서 임천수로 나온것에 이어 3연속으로 KBS 대하드라마에 출연하였고, 징비록 에서는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출연하였다
[100] 신홍의 악행으로 가려져서 그렇지 작중 후반부에 이해고가 대조영에게 간발차로 패하거나 다잡은 승기를 재발로 차는 트롤링정신승리만 하다 대조영에게 끔살당한다
[102] 부기원에 의해 감옥에 갇혔을 때 자물쇠를 푸는 능력을 보여줬다
[103] 광개토태왕에서는 고구려를 노리는 후연의 황제 모용수
[105] 거란국을 집어삼키려는 야심이 있는 인물인지를 떠보기 위하여 거란의 무상가한(왕)의 자리를 주려하였으나 대조영이 이를 거절하고 설득함으로써 반란의 목적이 거란국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106] 이진충이 살해당한 사실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107] 태조 왕건광개토태왕에서는 모용수의 아들인 모용희 역을 맡았다
[123] 잘 싸우지는 못하지만 직접 칼을 휘두르고 싸운다
[128] 극중에서 귀부산을 탈출한 직후 대조영에게 돌궐 부흥을 꾀하는 형님을 도우러 갈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설인귀는 이문이 전해온 참담한 패전소식에 눈앞이 깜깜하고, 설계두와 도협은 목숨을 내던지며 이해고의 도주를 돕는다.
동모산에 당도한 숙영은 개국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대조영은 악에 받쳐 맹렬하게 이해고를 추격한다.
신홍은 유인계를 써서 이해고의 도주를 도우려 하나, 대조영은 오히려 신홍을 역이용해 이해고를 찾게 된다.
마침내, 요하성 앞에서 대조영과 이해고가 마주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