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로 이야기房107번째 호주(Australia)는 일단 땅덩어리가 크다. 상대적 비교를 하면 크기를 쉽게 알수 있는데 대한민국의 78배쯤 되며 인구는 한국보다 3000천만명이나 적은 2200만명정도가 살고 있다. 그중 영국계가 아닌 이민자 또는 혼혈계가 대략 600만에 육박한다.공식적으로 정부가 나라구성의 대내외적 명칭을 다문화사회 (Multi-Cultural society)라고 공표하는것도 적지않은 이민인구 비중은 물론 이민자가 보탠 수고와 땀으로 일궈낸 잘 정돈되고 진일보한 나라의 위상에 대한 당연하기도 하고 사실이기도한 보상과 속내가 배인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지상천국.복지의 나라. 살기좋은 땅으로 인식되어 매년 전세계 이민희망자가 우선순위로 세손가락안에 꼽는 꿈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호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일 아침 맞이하는 햇살과 바람처럼 알듯말듯한 팩트를 무의식속에 가두어 놓고 그져 잘살아 보자는 목표에만 급한 마음을 매달고 사는건 아닌지 돌아보고 이땅의 지난 발자취를 헤쳐보고 이해하는것은 꽤나 의미가 있을듯 하여 적어본다. 호주에 먼저 정착한 원주민(原住民)을 영어로 Aborigine이라 칭한다.인류학자들의 기술(記述)에 의하면 6만년전 아시아대륙에서 건너온 종족으로 분류된다. 1606년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의 신대륙 개척붐에 첫 총대를 멘 루이스 데 토레스가 호주 북쪽의 좁은 해협을 최초로 지나갔고 그곳을 선장의 이름을 따라 토레스해협이라 부르게 된다. 이후 지금까지 호주는 복지혜택에서 토레스 해협주민과 원주민에게 덤으로 우선순위를 주고 있다.이듬해 얀스존이 첫발을 디딘 첫 유럽인의 기록을 남기고 10년후 같은나라 아벨 타스맨 선장은 동쪽의 섬을 발견하여 새로운 아질렌트 (네덜란드의 지명이름)라 명명(名名)하니 뉴질랜드(Newzeland)이름이 생겨났으며 또한 그가 찾은 타스매니아 (Tasmania)섬이 역시 9그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1607년 미국의 뉴욕을 발견하고 네덜란드 수도이름을 앞세워 뉴 암스텔담(New Armsterdam)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나라도 작고 땅도 별반 크지못한 네덜란드인의 항해기술로 넓힌 상술과 개척정신에 감탄할 밖에 없다. 당시 우리 조상들이 임진왜란의 상처를 고통과 탄식으로 추스릴때이니 놀라움은 더욱 깊다. 호주(Australia)라는 이름은 라틴어로는 Terra Australis 라 하여 고대 유럽에서 막연하게 가보지 못한 미지의 남쪽 땅이라 해석한데서 시작된다. 헬라제국의 Alexander가 정복한 땅을 이름끝에 ia를 덧붙여 Alexandria. 즉 알렉산더 소유의 땅이라 한것처럼 Italy 를 Italia 라 칭하듯 미지의 땅 Australis 에 역시 ia가 붙어 Australia가 된것쯤은 알아 두어도 좋겠다. 결국 호주를 발견하고 먼저 땅에 상륙하고 이름을 지어준 사람들은 화란(Netherland)인이다. 이후 국제질서상 해군력을 자랑하던 영국의 선제적 점령과 선언에 의해 호주는 영국령이 되고 1901년 제정된 특별이민 제한정책 (Immigration Restriction)백호주의를 철석같이 지켜내며 영국계 백인의 나라를 유지했는데 2차대전중인 1945년 2월 일본이 호주 북단인 다윈 (Darwin)을 공격한것이 단초가 되어 호주는 이민의 문을 열어 젖힌 사실은 모순이자 일반적으로 잘모르는 이민사(移民史)다. 수많은 유색인종이 자유롭고 떳떳하게 활보하는 21세기 호주거리 모습은 일본군국주의 팽창정책이 만든 호주로서는 원치않았던 우연이지만 엄연하고 파행적 정책의 결과물이다. 당시 700만 호주국민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엄청난 일본의 군사력앞에 절실했던 국방과 산업화의 연료탱크로 치플리 (Chiefly)정부는 여론을 강제하고 인구유입을 결정한다. 일본이 호주의 닫힌 이민의 문을 침략으로 열어젖힌 재미진 아이러니는 2편에서 상세히 소개하기로한다.영국의 호주점령사를 살피건데 1770년 제임스 쿡선장이 엔디버호를 타고 때마침 미국을 잃고 새로운 대체 전략기지와 죄수유배지로 호주를 선택하였고 시드니 근교에 상륙한다. 캡틴 쿡 팍 (Captin Cook Park) 이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8년뒤인 1778년 플린더스호를 몰고 죄수 1530명을(그중 생계형죄수 736명) 동반한 아서필립(Arthur Phillip)이 1.26일 오페라하우스가 지척인 포트잭슨(Port Jackson)에 닻을 내리니 그날이 오늘까지 호주의 날이 된다 (Australian day).뒤를 이어 80년간 16만명의 죄수가 호주로 이주하고 1823년 그 유명한 메리노 양(羊)이 호주로 유입되며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로 농업국가로 자리매김한다 .19세기 중엽전에 이미 호주는 원주민과의 싸움(실제로는 살육전쟁)에서 90%의 원주민 도륙을 감행한다. 곧이어 금광이 발견되고 19세기 후반엔 청나라인들이 골드러시에 합류되며 임금경쟁과 광부들의 봉기가 빈번하게 되고 이를 Ureka봉기라고 부른다. 급기야 영국정부는 호주에 자치권을 부여하게 되며 1901년 6개지방자치주(州)에 자치령과 독립권이 보장된다. 수도(首都)를 정함에 있어 다툼이 시드니와 멜번사이에 극렬하여 중재안으로 캔베라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녹색 호수도시가 Australia capital territory 인데 줄여서 ACT라고 불러 오늘에 이른다.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1964년 호주를 국빈 방문하여 Rex호텔 높은층에 머물며 바라본 멋진 호주의 수도 캔베라의 모습에 감동한 대통령 박정희가 캔베라의 도시계획을 본따서 만든 한국의 경남 창원시가 지금은 본의(本意)를 벗어나 복잡한 200만 밀집 산업도시로 변모하여 지도자가 원하던 모습에서 전혀 다른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영국은 1931년 호주에 외교.군사권을 부여하고 1942년 Westerminster 헌장에 의거 비준하였다. 1914년 1차대전에서는 뉴질랜드 군인과 연합하고 영국의 지휘하에 갈리폴리 대전에서 700년을 지탱한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장렬히 싸워 이겼으며 1923년 오스만제국의 종말에 큰힘을 보태니 이날을 기념한 ANZAC(Australia Newzeland Armys Corps) day가 현재 호주의 현충일이 된다. 대공황이후 닥친 2차대전에서는 막강한 독일 일본과 접전을 하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여 전사(戰史)에 남는 가평전투를 통해 한반도 허리를 적으로 부터 지켜낸건 참으로 머리숙여 감사할 일이다. 1.2차 대전에 500만인구중 30만명이나 참전하면서 호주는 세계속에 존재를 각인시키게 되고 평화와 공존공영을 향한 바른 의식의 전환을 이루어 낸 특별한 나라이기도 하다. 1951년 호.미(濠美) 방위조약인 ANZUS를 6.25전쟁참여를 계기로 맺었으니 한미방위조약과 흡사하다. 호주 현대사에 흠이 있다면 백호주의와 함께 원주민을 향한 문명화정책을 시행하며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강제로 격리하여 교육목적의 도시 이주를 시키며 비인도적 반인륜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점이다.이름하여 잃어버린세대 (Stolen generation)라하는데 원주민에 대한 인권탄압의 과오를 채무의식울 짊어지고 지금도 국민과 정부에 짐이되고 빚이되고 있다. 훗날 살육과 탄압의 채무를 탕감하고자 하는 인도주의적 정치합의가 원주민 땅을 반환한다는 마보(MABO)정책으로 귀결되어 엄청난 오지의 국토가 원주민 손에 쥐어지기도 했다.일련의 시행착오가 급기야 1973년 인종차별 금지법이 제정공표되어 잘 지켜지고 있다.앞서 언급한 대로 호주의 이민역사는 1947년 신설된 이민성의 초대장관 아서 콜웰(Arthur Colwell)에 의해 대변혁의 이민정책이 시험대에 오른다. 호주는 백호주의 나라로 오래 각인된 나라다. 그런데도 특이한것은 이들의 건국정신이 평등주의 라는 것이다. 프랑스어 에갈리떼(Egalite')에서 파생된 평등의 뜻인 Egalitation 이다.영국의 이른 산업혁명이 출산한 실업과 생계불안이 초래한 불가항력적 먹거리 범죄가 다수이긴 하지만 죄수들이 유입돼 건국한 나라라서 동일한 신분 같은 처지의 죄수를 일컫는 영어 Inmate 가 만든 동료의식(Mateship)이 평등을 구가하고자 생겨난 유래라 믿는다. 호주인들이 때문에 인사를 굿데이 매이트!(G'day mate)라 외친다. 지금은 거의 못듣는 말이지만 간혹 유색인종이나 이민자를 비하하며 부르는 비속어들이 있는데 예컨데 일본인을 Jap,중국인을 칭총,유럽인을 볼트엔 넛트라고 부른다. 심지어 제 조상(祖上)격인 영국인도 Pommy라는 폄훼어(貶毁語)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차별과 불손한 별칭의 공격을 마주하면 이민자들이 되받아 치는 말을 소개한다.해석을 앞에 두면 이렇다. <너희는 수갑.족쇄차고 이땅에 왔지만 우린 비행기 타고 왔다> 싸울일은 아니고 해서 좋을일 없지만 간간히 목도하는 언쟁이다. 죄수출신이 뭐 할말이 있냐는 말이니 이 또한 격앙을 넘어 심히 마땅찮은 언사이니 듣기 거북하다. 옮기기는 젊잖치 못하나 영어로는 이와같다. <You came in chains ,we came in planes> 역사적 줄거리를 뼈대만 추려 시차별로 늘어 놓은 호주역사다. 이런 나라가 다문화사회가 되는데 백호주의 정책의 첫날로 부터 100년이 걸렸고 국방과 산업화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동력이 된 (動力) 이민자를 받아 700만 인구가 세배인 2100만이 되는데 꼭 70년이 됐다. 2편에서는 이민 그진실편을 실어 함께 나누어 볼 참이다. 지금 호주는 중국과 중국인 붐이다.1947년 흰피부 유럽인을 받아들이는데 너그러운 대신 600명의 중국인들을 힘으로 배에실어 추방하던 사실은 온데 간데없고 중국자본이 광산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무차별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역사는 왜 중요한가? 어제가 오늘을 담보하고 오늘은 내일을 창조하는 거름이기 때문이다.역사는 인류가 그려낸 궤적을 적은 인생고백사라고 정의한다. 반복되는 만큼 인간의 한계가 그속에 고스란히 목도된다.가릴것은 가리고 배울것은 오롯이 챙기는 유훈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기에 난 역사에 남다른 눈길을 떼지 못하고 산다.
첫댓글 호주의 역사가 영화처럼 펼쳐지네요. 시드니노리터 함께 만들어가게되어 영광이고 감사합니다